정휘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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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의 왕녀
정휘옹주 | 貞徽翁主


파일:정휘옹주묘.jpg

정휘옹주와 류정량 합장묘 전경
출생
1593년(선조 26년) 8월 7일
사망
1653년(효종 4년)
(향년 61세)
능묘
전주류씨묘역[1]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산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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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전주 이씨
부왕
선조
생모
경혜인빈 김씨
부군
전창군 유정량(全昌君 柳廷亮)
자녀
슬하 2남 2녀
장남 - 류심(柳淰)
차남 - 류흡(柳潝)
장녀 - 류백임(柳伯任)
차녀 - 류중임(柳仲任)
봉호
정휘옹주(貞徽翁主)

1. 개요
2. 생애
2.1. 가계
2.2. 옹주 시절
3. 가족 관계



1. 개요[편집]


정휘옹주(貞徽翁主)는 조선 중기의 왕족이다. 선조인빈 김씨의 막내딸이다.

2. 생애[편집]



2.1. 가계[편집]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3년 황해도 해주(海州)의 행궁에서 선조와 그 후궁 인빈 김씨의 여섯째 딸이자 막내딸로 태어났다[2]. 성은 이(李),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원종(元宗, 정원군) 등과 친남매간이며, 인조(仁祖)의 고모이다.

정휘옹주의 생모 인빈 김씨선조의 총애를 많이 받은 후궁이다. 그녀의 아들 중 정원군의 장남이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 되니, 그가 곧 인조이다[3].

2.2. 옹주 시절[편집]


정휘옹주는 1604년(선조 37년) 영의정을 지낸 류영경(柳永慶)의 손자이자 류열(柳悅)의 아들 유정량(柳廷亮)과 혼인하였다. 이때 유정량은 전창위(全昌尉)에 봉해졌다.

한편 정휘옹주는 1653년(효종 4년) 음력 윤7월 15일 향년 6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4]. 정휘옹주는 사망 후에도 3년동안 녹봉을 지급받았다[5]. 묘소는 경기도 양주의 도봉산(道峯山)에 마련되었다가, 훗날 남편 유정량의 묘에 합장되었다[6].

3. 가족 관계[편집]



  • 부마 : 전창군 효정공 유정량(全昌君 孝貞公 柳廷亮, 1591 ~ 1663) - 영의정 전양부원군 류영경(領議政 全陽府院君 柳永慶)의 손자
    • 장남 : 예조참판 전평군 류심(禮曹參判 全平君 柳淰, 1608 ~ 1667)
    • 며느리 : 영월 엄씨(寧越 嚴氏) - 응교 엄성(嚴惺)의 딸
    • 며느리 : 해평 윤씨(海平 尹氏) - 현감 윤경(尹敬)의 딸
    • 차남 : 금천군수 류흡(金川郡守 柳潝, 1611 ~ ?)
    • 며느리 : 반남 박씨(潘南 朴氏) - 참봉 박성(參奉 朴煋)의 딸
    • 장녀 : 유백임(柳伯任, 1616~?)
    • 사위 : 진사 이중규(進士 李重揆, 1614 ~ 1637?) - 부제학 이민구(副提學 李敏求)의 아들
    • 차녀 : 숙부인 유중임(淑夫人 柳仲任, 1617 ~ ?)
    • 사위 : 종성부사 정화제(鍾城府使 鄭華齊, 1618 ~ 1674) - 형조참판 정양필(刑曹參判 鄭良弼)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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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양주시 향토유적 제10호 지정[2] 《국조인물고》〈유정량〉[3]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인빈김씨〉”. 2016년 3월 2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7월 30일에 확인함.[4] 《조선왕조실록》효종 11권, 4년(1653 계사 / 청 순치(順治) 10년) 윤7월 15일(무신) 1번째기사[5] 《조선왕조실록》효종 대왕 행장[6] 《국조인물고》〈유정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