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백야극광)

친애하는 관객님, 저 스스로... 제 카드 점을 보았으면 한다는 겁니까? 원하는 바를 그렇게 감춰 두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기원의 카드가 부산스레 당신이 절 찾아오는 오늘을 보여 주었거든요.
그럼 제가 일반 관객처럼 기원의 카드 중에서 한 장을 뽑겠습니다... 으음? 보십시오, 태양 카드로군요.
태양이라... 확실히 제 어린 시절은 태양으로 가득했습니다. 추상적인 표현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말이지요. 제겐 이미 저물어 가는 황혼 같은 시절입니다만, 그때는 제게 밖에 나가서 햇볕도 좀 쬐고 그러라는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도 먼지와 콩벌레가 가득한 방에서 절 끄집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엘비스 단 하나뿐이었지요. 당신이 하버 시티에 가 본 적이 있고, 호수 속에서 고개를 흔드는 붕어들보다 기억력이 좋다면, 이 이름을 분명 기억하고 계시겠죠. 그 무렵의 엘비스는 백야성의 귀족도, 하버 시티의 통치자도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당신이 아는 것처럼 병약하지도 않았지요... 그저 평범한 이웃집 형이었습니다.

두 번째 카드를 뽑겠습니다... 호오? 달 카드로군요. 이는 지금까지 당신에게 했던 제 모든 거짓말을 솔직히 밝혀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원의 카드가 지닌 힘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제 곁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어쩔 수 없지요... 엘비스는 평범한 이웃집 형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마술을 접하기 전까지, 그는 저를 이 세상과 이어주는 단 하나의 다리였습니다. 우리는 동이 트기도 전에 백사장으로 달려가 바닷물에 쓸려 반짝이는 진주조개를 줍곤 했죠.
또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태양과 견줄 수 있는 색채와, 바다와 겨룰 수 있는 조형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의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했었습니다. 엘비스는 세계 곳곳의 미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을 열고 싶다고 했었고 말이지요. 아이들은 항상 자신의 꿈이 쉽게 이루어지리라 의심하지 않지요. 마치 [우리 내일 또 만날 수 있어] 같은 시시하고 평범한 약속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웃으면서 그런 약속을 한 사람이 파도가 가장 잔잔했던 밤에 그의 가족들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는 겁니다.

세 번째 카드는 별 카드로군요. 아, 오늘의 운세는 어떻게든 우리가 이 기나긴 이야기를 계속하길 바라는 모양입니다. 부모님을 따라 하버 시티를 떠나기로 했을 때, 저는 낙서가 가득했던 노트들을 모조리 근처 미술품 상인에게 팔아 버렸습니다. 그 상인이란 자는 대체 왜 어둠의 위기가 다가오는데 몸을 피하지도 않고 장사나 하고 있던 건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말이지요. 부모님은 저를 위해 상인과 흥정해 동전을 더 받아 내셨습니다. 두 분이 혹시나 발생할 비극을 피하기 위해, [에메랄드호] 의 장기 승선표를 구하려고 그동안 모은 돈을 모조리 쓰셨다는 것은 그때의 저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에메랄드호에서 저는 처음으로 마술을 접했습니다. 전임 단장님은 주머니에서 비둘기 한 마리를 꺼냈고, 그 비둘기가 날아오르며 깃털 하나가 제 머리에 살며시 내려앉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마술이야말로 태양의 빗깔보다 더 화려하고, 바다보다 섬세한 조소 기술을 지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제 방황의 끝이었지요.
아... 이런! 그 실수는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군요... 손에 있던 불꽃은 점점 커졌고, 머리끝까지 화가 난 단장님은 [너는 두 번 다시는 마술을 할 자격이 없다!]라고 소리를 치셨죠.
저는 넋이 나간 채 에메랄드호를 떠났습니다. 부모님께 작별 인사도 하지 않았지요. 왜냐하면 저는 [가장 위대한 마술사] 가 되어 돌아오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불에 타 괴물처럼 변한 이 두 손으로 거리에서 절 조금이라도 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공연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앞에 어떤 여성분의 치맛자락이 흩날리더군요. 고개를 드니 그 여성분은 제게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카드들을 건넸습니다. 저는 전율하며 그걸 건네받았고,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과 현란한 기술을 사용해 그것을 다뤘습니다... 카드는 제 손길에 춤추고, 놀라운 힘을 폭발시켰습니다... 기존의 모든 마술 기술을 혁신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그 카드를 원한다면, 날 따라오렴.]
진리의 결사에 가입한 후, 저는 다른 사람들처럼 기도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년이 지나 다시 에메랄드호를 봤을 때, 자연스럽게 다시 배에 탑승했지만... 부모님께서는 병으로 돌아가신 지 오래였습니다. 끓어오르는 분노의 화살은 단장을 향했고, 저는 그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가 진다면 에메랄드호를 제게 넘기라고 했었지요. 그는 이미 오래전에 절 잊은 모양인지 제 도전을 받아들였고... 제게 졌습니다. 참 기뻤습니다. 그가 일부러 져 줬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기 전까진 말이죠.
아니지, 단장님은 분명 진작부터 절 알아보셨을 겁니다! 그는 비밀리에 제 기술을 관찰했고, 제가 그의 마지막 시험에 통과해 서커스단을 이어받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게 바로 단장님의 마지막 마술이었던 것이지요! 어쩌면 전임 단장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마술사] 일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이제 당신께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저야말로 [가장 위대한 마술사]라는 것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