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러미 마이클 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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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제25대 해군참모총장
제러미 마이클 보더
Jeremy Michael Boorda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Jeremy_M._Boorda.jpg

출생
1939년 11월 26일
미국 인디애나사우스벤드
사망
1996년 5월 16일 (향년 56세)
미국 워싱턴 D.C.
묘소
알링턴 국립묘지
재임기간
제25대 해군참모총장
1994년 4월 23일 ~ 1996년 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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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무
미합중국 해군
1956년 ~ 1996년
최종 계급
제독 (미합중국 해군)
주요 참전
베트남 전쟁
보스니아 전쟁
주요 서훈
국방공로훈장 (2회)


1. 개요
2. 생애
4. 여담



1. 개요[편집]


미합중국 해군 출신의 군인. 미국해군사관학교를 나오지 않은 수병 출신 제독[1]으로서 해군참모총장까지 지냈다.


2. 생애[편집]


1939년 11월 26일에 태어났다. 고향은 인디애나 주 사우스벤드였다.[2] 아버지는 옷가게를 했는데 일리노이로 이사를 갔다. 보더는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에 16세의 나이였던 1956년(생일이 아직 지나지 않은 때)에 미 해군에 입대했다. 처음에는 키도 몸집도 작은데다 나이도 어린 어리버리한 고문관 취급도 받아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3] E-5(Petty Officer 2nd Class)[4]까지 진급했고 주로 해군 항공대에서 근무했다.

파일:external/www.navy.mil/cno-sn.gif
이등병 시절.

1962년에 로드아일랜드에 위치한 뉴포트에서 OCS(Officer Candidate School) 과정에 입교[5]했고 같은 해 8월에 항해소위로 임관하였다. 해군구축함학교(Naval Destroyer School)를 1964년에 마쳤고 병기관으로 근무했다. 베트남 전쟁에는 소해함인 USS 패럿(USS Parrot (MSC-197)) 함의 함장을 맡았다.

1971년에는 뒤늦게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로드아일랜드대학교에서 문학사를 땄다. 1977년에는 해군부 인력부차관(Assistant Secretary of the Navy (Manpower and Reserve Affairs))[6]를 보좌하는 선임보좌관을 맡았다. 1981년에는 제22구축함전대를 지휘했다.

1988년에는 해군의 인사참모부장(중장)을 맡았고 1991년에 대장으로 진급하여 유럽사령부 해군구성군 사령관 등을 거쳤으며 보스니아 전쟁에도 참전했다. 1994년에는 유대인 최초이자 非 해사 출신으론 처음으로 해군참모총장이 되었다.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어린 나이로 이등병이 되었던 그가 세계 최강 미 해군의 지존에 오른 것이다.


3. 기수열외[편집]


파일:attachment/boorda.jpg
여군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 키가 꽤 작은 편인 여군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라는 점에서 보더 제독의 키가 꽤 작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수병 출신으로서 수병과 부사관들의 복무여건을 끌어올리고 남녀 차별을 철폐하는 해군 개혁의 선봉장이 되었다. 수병출신으로서 그들이 얼마나 열악한지 잘 알았던 보더 제독은 항상 저자세로 수병들을 대했고, 그의 시기에 미 해군은 여군의 전투함 승선이 허락되어 여군의 처우와 위상이 전에 비해 크게 향상되었으며 여성들에게 조종을 시키지 않던 해군 항공대에 여성 조종사를 전투기 조종사로 앉혔다. 또한 그와 함께 복무한 이들의 평에 따르면 작지만 강한 큰형님, 부하들을 사랑한 아버지 등의 현명한 덕장이라는 평가가 중론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치적인 면에서 해군 항공대 장교단과 사이가 좋지 못했는데 일단 아스널쉽 같은 해군 지상타격 전술의 변화를 꾀했고, 윌리엄 제퍼슨 클린턴 행정부에서 테일후크 스캔들 등으로 문제를 일으킨 해군을 개혁하기 위해 非해사 출신에다 수병 출신인 그를 기용했기 때문이었다.[7]

테일후크 스캔들 당시에 해군에서 성추행 당한 여군 장교들을 극딜하는 동안 그는 여군 장교들을 두둔했다. 이 때문에 당시 해군참모차장이었던 스탠 아서(Stan Arthur, 1935-)와 사이가 좋지 못 했다. 스탠 아서는 테일후크 사건 당시에 참여했던 인물 중 1995년에 현역 최선임이었고 항공 병과장이었다. 스탠 아서는 역대 2번째로 많은 11회의 비행무공십자훈장(Distinguished Flying Cross)을 받는 등 베트남 전쟁 참전 파일럿으로서도 전설이었고 제독 진급 후에도 제7함대 사령관 등 요직을 역임했던 항공병과의 리더였으며, 통합군 태평양사령관으로 지명될 예정[8]이었으나 미네소타의 상원의원이었던 데이비드 듀런버거(David Durenberger)[9]의 요청을 받은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반려되었다. 스탠은 사퇴했고 퇴역을 선택했다.[10]

그러자 항공병과 장교단은 폭발했고 보더는 비공식적으로 그를 두둔했음에도 분풀이 대상을 찾던 장교단에게 극딜, 나아가 기수열외하극상을 당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한번의 꼬투리를 잡아서 그것을 무시무시한 결점으로 뻥튀기하는 결정타를 날렸는데, 바로 V기장 사건이다. 관행적으로 월남전 당시 참전용사 V기장을 달던 것을 두고 엄청 부도덕한 것처럼 뉴스위크에 제보하는 등 언플을 했다. V기장은 참전은 했지만 직접적으로 전투를 겪지 않은 사람은 달 수 없는 기장이었다. 하지만 당시 상관이 부대원 전체에 V기장 패용을 허락했었고 보더 제독도 상관이 허락했으니 그냥 패용해도 되는 건 줄 알고 있었다. 여기엔 한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보더 제독이 베트남전에서 실전을 경험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더 제독이 병기장교이던 시절 다낭에 고립된 미 해병대를 구원하기 위해 구축함으로 지상타격을 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시 보더 제독과 그의 지휘관을 포함한 장병들은 당연히 자신들도 V기장을 달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배가 피격된 적이 없으므로 전투에 참여한 게 아니다'''라는 답변만 들었다.[11] 이런점 때문에 단단히 빡친 당시 지휘관이 그냥 절차를 다 무시하고 V기장을 패용하는걸 허락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언플로 인해 보더 제독은 심각한 심리적 압박과 회의감[12]에 시달렸다. 해군 항공단은 이미 미해군의 명예를 추락시켜가면서 까지 보더 제독을 어떻게든 끌어내리려 했다. 결국 1996년 5월 16일에 가슴에 총을 쏘아 자살했다. 그의 자살 소식을 듣고 경악을 하다 침통해하는 빌 클린턴 대통령. 유서에서는 "전 미합중국 해군 장병들께 사죄드립니다..." 등의 내용이 써있었는데 이 내용이 알려지자 해군개혁을 위해 그를 해군참모총장에 앉힌 빌 클린턴 대통령과 월남전 당시 참모총장 엘모 줌왈트 제독 등 수많은 전현직 해군 장병들이 탄식을 금치 못했다. 줌왈트 제독은 자신이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당연히 V기장을 허락했을거라며 아무 죄 없이 세상을 떠난 그를 애도하면서 해군 항공대를 에둘러 디스했다. 보더 제독이 무슨 명예욕에 환장한 인물도 아니었고, 패용 자체도 고의가 아니었으므로 단순히 실수에 대한 해명 및 사과로도 충분한 일을 이렇게 키운 건 항공병과 장교단의 잘못이 매우 크다. 그가 사망하자 그가 추진하던 아스널쉽 또한 그와 함께 사라져갔다.

후임 참모총장으로는 F-14 조종사로서 졸리 로저스 비행대대장 등을 역임하고 50세도 되기 전에 4성제독이 되었던 제이 L. 존슨 해군참모차장이 임명되었다. 그리고 보더의 자살로 인해 아스널쉽 계획은 폐기되었다. 결국 해군 항공대는 제독들의 반란에 이어 다시금 대통령에게 우회적으로나마 항명을 한 셈이다. 이런 전후 사정 때문에 소수 의견으로나마 지금도 해군 항공대를 개혁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해군 항공이 워낙 미 해군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높아서 쉽지가 않다. 이후의 참모총장들도 항공병과 출신이 아니더라도 다들 항공병과와 인연이 없는 인물이 없다. 사실 작금의 미 해군은 항해장교들도 아예 잠수함 쪽 등으로 커리어를 파지 않는 한 항모전단에서의 활동경력이 없다면 진급상한선이 확 낮아지기 때문에 참모총장 선에서 항공과 인연이 없는 인물을 선임하는건 불가능에 가깝다. 항공모함 같은 경우는 아예 항해가 아니라 항공대령만이 함장이 될 수 있고, 항모전단장도 십중팔구 항공 제독이 하며 가끔 非항공 출신이 항모전단장을 한다고 하면 그 인물은 용자로 평가받는다.(보더를 포함해 냉전 이후의 수상함 출신 해군참모총장들도 모두 항모전단장 경력이 있다) 항해대령이 함장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배는 강습상륙함이지만, 이마저도 항공대령이 보직 가능하기 때문에 일부를 빼앗긴다.

다만, 보더의 자살 이후 취임한 제이 존슨 이후 항공병과 출신 해군참모총장은 배출되지 않고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존슨 이후의 유력한 참모총장 후보군과 그들의 항공 병과 인맥이 우수수 썰려나가며 후유증이 심각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숙련된 조종사 인원이 원래의 규모로 맞춰지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기에 후배 조종사들이 다시 항공 병과의 연줄을 구성했지만, 선배들이 워낙 몹쓸 짓을 해놨다보니 해군참모총장 인선에 있어서 문민 관료들에게는 여러모로 꺼려지는 듯. 또한 이런 이유로 존슨 제독이 이임한 후의 미 해군은 고양이가 분쇄되고 항모가 벌집이 되는 현실 속에서도 역대 참모총장 중 F/A-18 조종사가 없다. 물론 다른 자리에서 항공 출신 4성 제독은 꾸준히 나오긴 했지만 해군참모총장에는 오르지 못했다. 해병대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에이머스가 있기야 하지만 애초에 미해병대 항공대와 미해군 항공대는 조종훈련만 같은곳에서 받을뿐, 완전히 별개이다. 해군참모총장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냉전시기 미 해군참모총장들은 대부분 조종사 출신이었고, 끽해야 냉전 말기에 하이먼 리코버의 퇴역 이후 잠수함 경력자들이 배출되는 정도였다. 그런 참모총장 자리가 항공병과 출신자를 배제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개혁이 조금은 먹히고 있다는 증거라 하겠다.


4. 여담[편집]


파일:external/www.navy.mil/presidnt.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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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navy.mil/mcpon.jpg
1996년 5월 21일 영결식에서 추도연설을 하는 당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좌상단), 국방장관 윌리엄 페리(William J. Perry, 우상단), 해군장관 존 돌턴(John H. Dalton, 좌하단), 해군주임원사 존 헤이건(John P. Hagan, 우하단).

영결식 영상 자신에게 늘 손주 자랑을 하던 보더의 모습을 떠올리며 눈물까지 흘리는 해군장관과 여러 고관들 사이에서 짧게 덤덤한 태도로 성경 구절만 인용한 추모사를 낭독하는 항공병과 출신 제이 존슨 참모차장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75px-Boordajeremy.jpg
알링턴 국립묘지에 위치한 그의 묘지. 정작 그는 유대인 가정 출신이었지만 기독교도와 결혼했고 자녀도 기독교도인데 해당 업무를 담당한 해군 측에서 유대교로 알고 다윗의 별을 새겨 놓았다.

아내와 아들 둘을 두었는데 둘 다 해군 장교로 복무했고 며느리 중 한 명도 해군 장교이다. 손자들도 군에서 복무했는데 할아버지가 해군에게 비난을 받고 죽은 일 때문인지 해군에선 근무하지 않고 있다. 손주 피터 보더는 해안경비대 수병으로 근무했고 앤드류 보더는 미 육군 기갑장교로 근무 중이다.[13] 다른 손주인 필립 보더는 미 해병대에서 상륙장갑차 부대 장교로 근무한다. 양손자도 하나 있는데 육군 포병 장교라고 한다.

그의 죽음을 두고 음모론도 많다. 밑바닥부터 시작해 지존에 오른 역전의 용사가 엘리트 코스 부하들에게 억울한 트집을 잡히고 비난의 대상이 되어 스스로 삶을 마쳤다는 이야기는 여러가지로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그의 평가는 냉전 종식 후 미 해군의 발전방향을 제시하면서 해군 내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던,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알레이 버크, 엘모 줌왈트에 이은 위대한 해군참모총장으로서 존경받고 있다. 항모전단과 원정전단을 십수개씩 굴려대는 미 해군의 특성상 근시일 내에 해군 항공대와 대립했던 양반의 이름을 딴 군함이 진수되기는 힘들어보이는게 사실이지만 일부 밀덕들은 수십년 후 구축함명으로 보더가 선정되길 바라기도 한다. 또한 수병들의 군장학생 선발 프로그램인 STA-21[14]에서도 당연히 롤모델로 존경받고 있다.

풀 메탈 패닉!미스릴 작전부장 제롬 보더 제독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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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술군이라는 큰 특성을 갖고 있는 해군과 공군은 사병 출신으로서 주요 전투병과에서 활동하며 4성까지 오르는 일이 육군이나 해병대에 비하면(물론 이들도 쉽다는건 아니다) 매우매우 힘들다. 특히 조종사들이 요직을 휩쓸 수밖에 없는 공군이나 수상함 장교들이 기를 못 펼 정도로 조종사들의 목소리가 컸던 미 해군이라면 더욱 힘들다. [2] 할아버지가 우크라이나에서 이민을 왔다.[3] 2014년의 미군은 18세 이상만 입대가 가능하며 18세 이하의 경우에는 청소년 학군단 또는 지연 프로그램 등으로 입대 예비 과정을 밟을 수는 있다.[4] 현재 대한민국 국군 계급 대응은 병장이고 실질적으로는 하사에 해당하는 계급이지만 보더가 복무하던 시기의 현장 직책을 감안하면 중사정도이다. 어차피 나라마다 계급체계가 다르고, 국군의 계급별 한영번역 명칭은 미군은 물론 타국의 사병 계급체계와 역사를 고려하지 않은 채 무식하게 끼워맞추기만 한 수준이므로 여기서는 초급 부사관 경력이 있다는 점으로 해석하면 적절하다.[5] 미군의 OCS는 국내에서는 학사장교로 흔히 번역되곤 하지만 실제로는 간부사관 과정까지 포함하는 과정이다. 3년 이상 해당 군에서 근무한 병과 부사관에게도 학사 학위 소지여부 관계없이 지원 자격이 주어진다.[6] 미 국방부는 규모가 더럽게 큰 관계로 Secretary(장관), Deputy Secretary(부장관), Under Secretary(차관), Assistant Secretary(부차관), Deputy Assistant Secretary(차관보) 등으로 되어 있다. 장관과 부장관은 합참의장보다 높고 차관은 합참의장을 제외한 4성장군/제독보다 높고 부차관들도 4성급 대우를 받는다.[7] 이런 케이스로는 해군에서 보더와 육군에서 합참의장까지 오른 존 샬리카시빌리(John Shalikashvili, 1936-2011)와 12대 공군참모총장인 래리 웰치(Larry D. Welch, 1934-)등이 있다. 샬리카시빌리는 1958년에 육군병으로 입대했고 1959년에 소위로 임관했다. 래리 웰치는 1951년에 공군병으로 입대하여 1953년에 조종장교로 임관했다.[8] 참모차장 자리면 엄연히 해군의 2인자지만 실권은 참모총장 부재중에만 행사하곤 하는지라 이후 기타 통합군사령관, 해역 함대사령관 등으로 영전하는게 일반적이다.[9] 테일후크의 주요 피해자인 레베카 핸슨(Rebecca Hansen)이 그의 지역구에 살았다.[10] 실제 퇴역은 1996년이었다.[11] 심지어 그가 실시한 사격때문에 해병대 병력들이 무사할수 있었음에도 해군은 공로를 인정하지 않았다.[12] 해군신문에서 "보더 제독은 신의를 잃었다" 라는 익명의 제보가 실렸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방일보에 각군 참모총장이나 합참의장, 국방부 장관을 정면으로 노린 모독이 대놓고 실린 것이다.[13] 앤드류와 피터는 쌍둥이로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로드아일랜드 대학에서 학사를 받았다. 물론 할아버지처럼 뒤늦게 딴 건 아니고.[14] 기존에 중구난방으로 운영되던 미 해군의 OCS 체계를 현역 수병/부사관들의 군장학생 선발로 일원화한 프로그램으로, 미 해군의 수병들 사이에서 매우 높은 경쟁률을 자랑하는 장교 임관 프로그램이다. 정식 명칭은 Seaman To Admiral-21, '21세기의 수병 출신 제독을 양성한다'는 프로그램으로, 당연히 보더의 커리어를 가지고 이름지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