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로이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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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로이스터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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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번호 8번
딕 디츠
(1972)

제리 로이스터
(1973~1975)


레지 스미스
(1976~1981)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번호 4번
라벨 블랭크스
(1972~1975)

제리 로이스터
(1976)


비프 포코로바
(1977~1984)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번호 13번
블루 문 오돔
(1975)

제리 로이스터
(1977)


후안 아이첼버거
(1988)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번호 1번
델 크랜달
(1953~1963)

제리 로이스터
(1978~1984)


알버트 홀
(1986~1988)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번호 3번
후안 보니야
(1981~1983)

제리 로이스터
(1985~1986)


대럴 셔먼
(1993)
시카고 화이트삭스 등번호 1번
켄 윌리엄스
(1986~1987)

제리 로이스터
(1987)


랜스 존슨
(1988~1995)
시카고 화이트삭스 등번호 5번
루이스 살라자르
(1985~1986)

제리 로이스터
(1987)


론 카코비스
(1987~1988)
뉴욕 양키스 등번호 28번
헨리 코토
(1987)

제리 로이스터
(1987)


헨리 코토
(1987)
뉴욕 양키스 등번호 46번
로베르토 켈리
(1987)

제리 로이스터
(1987)


히폴리토 페냐
(1988)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번호 4번
비프 포코로바
(1977~1984)

제리 로이스터
(1988)


제프 블라우저
(1989~1997)
콜로라도 로키스 등번호 1번
팀 창단

제리 로이스터
(1993)


트렌트 허바드
(1994~1995)
콜로라도 로키스 등번호 3번
팀 창단

제리 로이스터
(1993)


데일 머피
(1993)
밀워키 브루어스 등번호 3번
필 가너
(1992~1999)

제리 로이스터
(2000~2002)


펠리페 로페즈
(2009)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3번
페레즈
(2007.7.13.~2007)

로이스터
(2008~2010)


정보명
(2011~2013)
보스턴 레드삭스 등번호 43번
랜디 윌리엄스
(2011)

제리 로이스터
(2012)


팻 라이트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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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티그레스 데 킨타나 로오 입단식
제론 케니스 "제리" 로이스터
Jeron Kennis "Jerry" Royster

출생
1952년 10월 18일 (71세)
캘리포니아 주 새크라멘토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학력
새크라멘토 고등학교
신체
183cm, 85kg
포지션
내야수[1], 좌익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70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LAD)
소속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73~1975)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976~1984)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1985~1986)
시카고 화이트삭스 (1987)
뉴욕 양키스 (1987~1988)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988)
지도자
콜로라도 로키스 3루 주루코치 (1993)
밀워키 브루어스 벤치코치 (2000~2002)
밀워키 브루어스 감독대행 (2002)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산하 마이너 수비 코디네이터 (2003~2004)
라스베가스 51s 감독 (2005~2006)
롯데 자이언츠 감독 (2008~2010)
보스턴 레드삭스 3루 주루코치 (2012)
티그레스 데 킨타나 로오 감독 (2015)
가족
사촌 그렉 본

1. 개요
2. 선수 시절
3. 롯데 자이언츠 감독
4. 롯데 자이언츠 감독 이후
5. 감독 성적
6. 평가
8. 인기
9. 별명
10. 여담
11. 명언



1. 개요[편집]


미국야구인.

2. 선수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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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부터 1988년까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3루수2루수를 많이 맡았지만 외야 수비도 가능했는데, 선수 커리어 마지막 해에도 포수와 1루수를 제외한 내외야 전 포지션을 돌아가면서 봤다. 선수 시절 평가는 2할 중반의 타격과 괜찮은 주루 능력, 안정적인 수비력을 갖춘 내야 유틸리티 정도. 아마 KBO 역대 감독 중에서는 김재박, 박진만, 이승엽 등과 더불어 가장 수비를 잘한 감독일 것이다. 그런데 롯데 자이언츠가 로이스터 부임 이전이나 이후나 수비 못하는 팀이란 평가를 받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하다.

비록 백업인 데다 암흑기였지만 뉴욕 양키스에서 뛰기도 했다. MLB 16시즌 통산 1428경기 4208타수 1049안타 40홈런 352타점 189도루 타율 .249를 기록했다.

MLB 역대 최악의 단일시즌 fWAR 2위라는 무시무시한 기록의 보유자다. 1977년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시절 기록한 fWAR이 자그마치 -3.8. 이 수치는 무려 2018년 크리스 데이비스와 비슷한 수치이다!

은퇴 후 마이너와 메이저를 오가며 코치를 하다가 2002년에 밀워키 브루어스의 임시 감독을 역임한 바 있고, 2005~2006년에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산하 트리플A 팀에서 감독 생활을 했다.


3. 롯데 자이언츠 감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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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No.3
제리 로이스터 (Jerry Royster)

2007년 말,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으로 부임. KBO 리그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감독[2]이 되었다. 로이스터가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으로 오는 과정에서는 그의 친구인 바비 발렌타인과 연관이 돼 있다.

당시 자이언츠 구단의 모기업인 롯데그룹신동빈 부회장[3]은 자신이 구단주 대행을 맡고 있는 치바 롯데 마린스의 감독이던 바비 발렌타인에게 후임 자이언츠 감독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했고 발렌타인은 자신의 친구인 로이스터를 신 부회장에게 추천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됐다.

첫 시즌인 2008년, 8888577 찍던 롯데 자이언츠를 시즌 최종 3위로 포스트시즌에 올리는 로이스터 매직을 발휘했다. 2008년 9월 28일 사직 야구장에서 부산 갈매기를 부른 뒤 허남식부산광역시장으로부터 명예 부산시민증을 받았다. 이 해 최종 성적은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한테 3패로 탈락했지만 두산이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을 이겼기 때문에 페넌트레이스 성적인 3위가 되었다.

2009년에도 역시 롯데 자이언츠를 포스트시즌에 올려놨지만, 시즌이 끝난 뒤 재계약에 대해 온갖 설왕설래가 많았다. 본인은 계속 팀을 맡고싶어 했지만 구단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고[4], 준플레이오프에서 2년 연속으로 처참하게 패배한 것과 4차전이 패배로 끝났음에도 한복을 입고 웃으며 팬들에게 인사를 했던 것에 대해서 언론의 집중 폭격까지 받은 것이 걸림돌이 됐다. 물론 반대 의견도 상당히 있으며, 반대가 아니더라도 대안이 없기에 로이스터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상당히 많다.

결과적으론 2010년 1년 재계약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애매모호한 이 계약 자체가 로이스터 체제에 대한 극단적인 시선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2010년, 시즌 초반부터 여러 선수가 부상 악재로 인해서 전력 유출이 많이 되었으며, 불펜진이 불을 저지르는 일이 많아서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대호의 지속적이면서도 엄청난 기록 행진, 전년도와 비교해 괄목상대한 팀 타자들[5]의 활약에 힘입어 또다시 4강에 올랐다. 옆동네 FC 기탈리아의 연패를 비롯한 호조와 특히나 팀의 핵심 타자가 2명이나 큰 부상을 당하는 상황속에도 자멸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굳건해지는 팀 분위기 쇄신을 이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덕분에 롯데 팬들에게 로이스터의 지지도는 매우 높았다. 재계약 서명에 대한 반응이 꽤나 뜨거울 정도. 인기가 어느 정도였나면 위와 같이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를 중심으로 롯데 팬들이 조금씩 성금을 모아 신문에 연임 지지 광고를 냈을 정도.

파일:external/i2.media.daumcdn.net/20100825111028332.jpg

이런 성적에도 불구하고 갈매기 마당에서는 '망할 흑인' 취급을 받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갈마는 롯데를 좀먹고 있는 부산고등학교, 경남고등학교, 용마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등의 학연지연의 총본산이다. 애시당초 그걸 용납하는 팬들이 없다면 구단 혼자서 그렇게 맹목적으로 학연지연 연줄 인사를 할수 있겠는가? 장성우가 갈마돌이 되고 강민호가 미친듯이 까이는 것은 장성우가 성골 경남고, 강민호는 아무런 연줄 없는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도 있으며, 외국인, 그것도 흑인인 로이스터는 당연히 배척받는다.

2010년 9월 16일, SK 와이번스와의 시즌 마지막 2연전을 이기면서 3시즌 만에 통산 200승을 이루었다. 롯데 감독 통산 4번째고 최단. 승률도 1시즌을 맡은 성기영 전 감독을 제외하면 가장 높고 유일한 5할이다.

2010 시즌 후 다시 재계약에 대한 설왕설래가 많았는데, 재계약 조건이 최소 한국시리즈 진출이었다는 기사가 떴다.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 프런트는 마치 약속을 지키는 것 마냥 2010년 10월 13일 부로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준플레이오프 5차전이 끝나고 있었던 그룹 고위층과의 만찬회에서 커티스 정의 초대가 배제되고 분위기가 20년 동안 우승하지 못한 것에 대한 추궁으로 흘러갔을 정도로, 준플 탈락과 동시에 해임은 결정되어 있었다.

일단 본인은 한국의 다른 팀의 감독을 맡고 싶어했으나 좋지 못한 결과를 남긴 포스트시즌 성적으로 인해 우승을 노리는 팀들과는 이렇다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리빌딩에 나선 팀이나 새롭게 창단된 신생구단에서 감독 후보를 거론할 때는 후보군의 한 자리에 거론되었으나 결실을 맺지는 못하고 있다.


3.1. 락라인[편집]


그런데 2008년에는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3:0의 폭풍 탈락. 2009년에는 준PO 1차전에서 승리를 챙기며 플레이오프 진출의 희망을 심어주지만 이후 3연패로 3:1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2010년에는 두산을 상대로 2연승 뒤 3연패하며 3:2로 탈락. 이로써 락라인 가입 확정. 부산의 거스 히딩크로 불리며 팀을 포스트시즌에 올려놨지만, 거스 히딩크처럼 4강이 한계인 듯하다.

그러나 한국축구가 4강 올라간 것처럼 롯데가 그 전력에 4강 올라간게 기적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롯데 자이언츠는 로이스터 부임 이전까지 수년간 연속으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 한번 못했다. 강병철이 이대호에게 트리플 크라운을 안겨 주긴 했지만 그게 팀의 승리로 이어지지는 않았고, 나머지 감독들이야 뭐...이러한 배경 탓인지 로이스터를 싫어하는 사람을 두고 '첫술에 배부른 사람들' 취급을 하는 경향도 있다.

롯데의 전력으로 3년 연속 4강안에 들어가게 만든 것 자체가 이미 나쁜 감독은 아니라는 증거. 더군다나 롯데의 무능력 코치진들을 생각한다면 그걸 뚫고 어떻게든 3년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것은 나름의 업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사실 로이스터가 부임하면서 데려온 자기사람은 페르난도 아로요 투수코치 단 1명 뿐이었고...그나마도 아로요 투수코치가 고령을 이유로 은퇴하자 구단은 로이스터의 요청을 깨끗히 무시하고 양상문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낸다. 사실상 로이스터의 임기내에 구단의 지원은 사실상 없었던 셈.


4. 롯데 자이언츠 감독 이후[편집]


"창원 제9구단의 감독으로 어떨까?" 하고 NC의 고위직 임원이 사석에서 말했다고 한다. 물론 관심도 있었던 듯하다.[6] 그러나 김경문을 선임하면서 무산되었다. 2011년 KIA 타이거즈가 준PO에서 탈락하고 조범현 감독이 이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 책임 소재에 따른 퇴진 요구가 강해졌는데, 만일 조 감독이 구단의 조기 해임 결정에 따라[7] 남은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으면 KIA 감독으로 선임될 가능성도 있었으나, 선동열을 선임하며 없던 일이 되었다.

2011년에 로이스터는 FREE 상태. 메이저리그 캐스터를 맡을 거라는 발언을 했다. # 결국 보스턴 레드삭스의 신임 감독으로 임명된 바비 발렌타인의 부름을 받고 보스턴의 3루 주루 코치로서 현장에 복귀하게 되었다. 그런데 캐스터 때 보스턴 선수들을 너무 씹어서 선수들이 자기를 잘 안 따라준다고 한다. 다만 이건 바비 발렌타인 감독이 선수단을 너무 강하게 휘어잡으려다가 오히려 역풍으로 선수단과 싸워서 그런 것도 있으니...

2012년 8월에는 한화 이글스한대화 감독이 중도 사퇴하면서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한화가 김응용 감독을 선임하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2012 시즌이 끝나고 보스턴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바비 발렌타인 감독을 경질하면서 같이 따라온 로이스터 주루코치도 같이 잘랐다. 그 후임자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11년간 코치직을 했던 브라이언 버터필드 코치. # 2013년 6월 경, 류현진 경기를 관람하러 LA 다저스 경기장을 찾은 장면이 어느 기자에게 포착되어 기사에 소개되기도 했다. # 기사에 의하면 2013년 한해는 통째로 소속없이 휴식을 취한 듯.

2014년 멕시칸 리그티그레스 데 킨타나 로오 팀의 감독이 되었으나, 2015년 5월 시즌 도중 경질되었다. 2015년 9월 기준 무직 상태.

2015년 9월 15일, OSEN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복귀행을 강하게 시사하는 인터뷰를 했다. 단, 아직까지 롯데 자이언츠 측에서는 어떠한 인터뷰도 진행한 적이 없다고 한다.

2015년 10월 8일, 이종운이 해고되고 조원우를 새 감독으로 선임할 때라는 말로 팬들의 염통을 불살라버리고 있다. 김시진 경질하고 이종운 선임할 때도 같은 소리를 한지라 팬들은 대격노 중.

2016년 10월 18일, 뜬금없이 넥센 히어로즈에서 염경엽 감독의 후임자로 고려 중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일단 넥센 구단 측에서는 고려한 바 없다며 부인하고 있다. 기사. 그러나 이 기사를 쓴 사람이 넥센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OSEN의 고유라 기자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넥센빠들은 로이스터 감독의 임명설을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여기고 있다. 하지만 넥센은 장정석을 신임 감독으로 뽑으면서 이는 최종적으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정황상 넥센이 염경엽 감독이 시즌 중반 시즌 후 사퇴 의사를 밝힌 후 로이스터를 고려해 본 것은 사실이나, 팀의 컬러가 바뀌며 생각을 접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2019년 8월 27일에는 난데없이 공석인 롯데 자이언츠 단장직에 후보군으로 거론됐다는 기사가 떴다. 팬들은 대체로 환영한다는 반응이었으나, 감독도 아니고 외국인 단장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존재했다. 애초에 롯데 프런트가 이미 특정인을 내정해놓고 언플하기 위해 로이스터의 이름을 꺼냈다는 냉소적인 반응도 있었다.

2019 시즌, 롯데 자이언츠꼴찌로 시즌을 마치자 구단에서 다음 시즌 감독을 외국인 감독으로 정하고 후보군으로 그를 포함했다. 로이스터 외에도 스캇 쿨바, 래리 서튼을 감독 후보군으로 공개했다. 오랫동안 현장 지휘봉을 놓은 탓인지 쿨바와 서튼에 밀려 유력 후보로 분류되지는 않았지만, 9월 30일 극비 입국해 롯데그룹 관계자와 독대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롯데 감독으로 복귀가 유력한 상황이거나 감독은 아니라도 구단 고위직에 내정된게 아니냐는 소문이 무성하다. #

2019년 10월 3일 새벽, 롯데 자이언츠의 1군 감독이 아닌, 2군 감독으로 부임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다만, 롯데구단은 낭설이라면서 소문을 일축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래리 서튼이 취임하게 되면서 위 기사는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많은 롯데빠들이 그를 그리워하는 것과는 별개로 현장을 너무나 오랜 기간 떠난 것이 마이너스로 작용한 듯 하다.

한편, 롯데의 새 감독으로는 허문회가 선임되었다.

2020년 현재는 로스앤젤레스 인근의 Sierra Canyon School이라는 12년제 사립 초등학교 야구부의 감독을 맡고 있다.#

2022년 7월 16일 KBO 올스타전 이대호의 은퇴 투어 때 전광판의 영상으로 등장하며 많은 롯데 팬들의 환호를 받게 되었다.[8] 이후 10월 8일 이대호의 은퇴식 때에도 전광판 영상으로 다시 등장했다.

5. 감독 성적[편집]


역대 감독 전적
연도

경기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08
롯데 자이언츠
126
69
57
0
3위
3위
2009
133
66
67
0
4위
4위
2010
133
69
61
3
4위
4위
통산
392
204
185
3
­


6. 평가[편집]


파일:external/kppaimg.castnet.co.kr:8080/6f7dfc0b6a9655e02ab278efw540.jpg
승리 후 강민호와 기쁨을 나누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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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포스트시즌에서 패배한 후

롯데 자이언츠 팬들 그리고 선수들의 거스 히딩크이자 가장 사랑받는 감독으로, 카림 가르시아는 진정한 리더로 평가했으며 조성환자신의 야구 인생에서 가장 큰 도움을 준 은인이자 신과 같은 존재라고 말했고 은퇴식 때 "저에게 야구와 기쁨과 모든 것을 알려주신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이대호는 자신의 멘토로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꼽았다. 황재균도 당시 넥센 히어로즈에서 유구골 부상으로 1군과 2군을 오가며 마음고생을 하다가 롯데로 트레이드 된 후, 로이스터와의 첫 만남에서 '앞으로 너에게 마이너리그는 없다'라는 믿음을 주는 한 마디에 눈물이 났다며, 감독님을 위해 잘 해보겠다고 다짐을 했다고 한다. #

또한 롯데 자이언츠와 한국 야구계에 스타일리쉬한 유산을 남긴 감독으로, 염경엽 감독은 취임 당시 "김시진 전 감독과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나의 멘토"라고 밝혔고 류중일 감독 또한 로이스터 감독과 김경문의 야구를 선호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야구계의 중흥기로 평가받는 2008~2012 시즌 동안 가장 색깔이 뚜렷한 감독으로 김성근과 로이스터를 뽑는 경우가 많다. 팀 컬러 실종 사건 그리고 로이스터 감독 이후 롯데가 부진할 때마다 언급되는 것이 바로 로이스터 감독과 그의 야구 지론인 No Fear이다.


그리고 롯데가 KBO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지 않는 이상 롯데 감독들에게 계속 존재할 가장 커다란 벽이다. 아래에 후술되어 있지만 비록 프런트와는 사이가 안 좋았을지언정, 로이스터에 대한 팬들 그리고 선수들의 애정만큼은 진심이고 이는 로이스터가 한국 야구를 떠난지 11년이 지난 2021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로이스터 이후 롯데는 양승호, 김시진, 이종운, 조원우, 양상문, 허문회, 래리 서튼 일곱 명의 사령탑을 거쳤는데, 이들 중 구단 역사상 첫 정규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 직행의 성적을 거둔 양승호 감독 취임한지 얼마 안된 현 감독인 래리 서튼을 제외하면 성적 부진으로 비참하게 떠나거나 비판을 받고 있으며, 성적뿐만 아니라 경기 외적인 부분에도 항상 로이스터와 비교되어 왔다. 사실 로이스터 시절의 팀 컬러는 비단 롯데뿐만 아니라 프로야구 전체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만큼, 후임자들이 계속 비교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긴 하다. 실제로 로이스터 이후, 특히 김시진, 이종운 시절의 롯데는 팬들뿐만 아니라 다른 야구 팬들에게도 재미없다는 인상을 심어주기도 하였으며, 이는 결국 같은 경남권에 NC 다이노스가 창단된 것과 맞물려 급격한 관중 감소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그 명과 암이 극명하게 가려지는 감독. 진정 팬들을 위하는 야구를 했고, 팀의 오랜 패배의식을 그가 나간 후에도 5년 가까이 떨쳐내는데는 성공했으며[9] 오랫동안 한국 야구계가 잊고 지낸 야구의 기본들을 상기시켜준 귀중한 지도자였다. 선발 중심 야구,[10] 어떤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는 과감함,[11] 프로로서 자율적인 훈련과 자기관리, 팬에 대한 서비스. 모두가 지극히 당연하지만 한국 야구계가 지키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는 이 단순한 진리들을 누구보다 강조했고 이를 한국 야구계에 적용시키려 했다.

단기전에서의 전술 부족 등의 암이 있었긴 했지만, 적어도 그가 성공했다면 보수적이고 꽉막힌 한국 야구계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하기 위한 시간이 부족했고, 주어진 환경은 언제나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이러한 것들이 겹쳐져 극복하지 못한 그의 단점이 결국 발목을 잡았고, 그는 롯데 프런트의 푸대접을 받으며 쓸쓸히 퇴장했다.

하지만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프로 야구 본연의 진리들을 추구하며 굳어있던 한국 야구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것만으로도 그가 한국 야구 역사에 남긴 족적은 결코 적지 않다. 몇 가지 리스크가 그의 발목을 잡고 있지만,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분리해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후 김시진이 이대호만 빼면 갖출 거 다 갖춘 전력으로도 팀을 말아먹고, 그 과정에서 꼴런트의 만행이 만천하에 드러남에 따라 로이스터와 양승호 두 사람에 대한 무한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상황이다. 두 감독 모두 각각의 장단점이 있었지만, 상대한 프런트가 프런트이니만큼 엄청난 프리미엄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


7. 스타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제리 로이스터/감독 스타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인기[편집]


올드팬들은 2회 우승을 일궈낸 강병철이나 1999년의 감동을 안겨준 김명성을 떠올리는데 2008년 이후 폭발적으로 유입된 팬들의 경우에는 제리 로이스터가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마치 "롯데의 히딩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성적이 더 잘나온 양승호의 경우에는 학원 야구 지도자 시절 돈을 챙긴 혐의로 감옥님이 되어 흑역사로 치부하게 되었고[12] 김시진은 로이스터와는 비교도 안되는 투수 혹사와 자기 학연 챙기기, 그와 동시에 추락한 팀 성적과 이를 가리기 위한 언플로 평가가 바닥이다. 선수들도 2010년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 때 차기 감독으로 내정된 양승호가 지켜보는 가운데서도 수상 소감으로 "로이스터 감독님께 감사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로이스터는 갔지만, 골든글러브에 추억 남았다

특히 2008년 암흑기를 깬 최초의 4강 진출[13]과 2009년 드라마틱한 4강 진출,[14] 그리고 역대급 타선으로 평가받는 2010년의 불방망이등 그가 지휘봉을 잡은 모든 시즌이 컨셉이 있었으며 특히 2010년의 불방망이는 이후 감독들이 부진할 때마다 롯데팬들이 "차라리 시원시원한 로이스터의 노피어 야구가 좋았지..."라는 추억팔이의 대상이 되는 시즌이기도 하다. 정작 성적은 투수로 조지던 양승호 체제 때 성적이 더 좋았다는 점.[15]

이는 조성환의 은퇴 당시 아이스 버킷 챌린지 지목자로 조진웅, 김주찬을 거론한 후 "저한테 많은 배움과 기쁨과 정말 모든 것을 주셨던 미국에 계신 제리 로이스터 감독님!"이라고 하자 팬들의 반응이 이전 2명을 거론했을 때보다 훨씬 폭발적이었다는 것 만으로도 알 수가 있다.

2010년에는 사퇴 반대 광고를 팬들이 직접 모금해가며 신문사에 기재할 정도였으며, 앞으로 롯데 자이언츠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하는 감독이 나오기 전까지는 가장 인기있는 감독으로 남아있을 듯 하다.

2014 시즌 종료 후 로이스터가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하자 보여준 댓글들의 반응이 그의 인기를 제대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9. 별명[편집]


성적이 좋을때는 '로중달', 성적이 나쁠때는 '로꼴통', '흑인천'[16] 톰과 제리의 제리에서 따온 '쥐' 등의 별명이 있다. 심판과의 언쟁을 자주 하면서 보여준 폭풍 항의를 보면서 '로미넴'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그 밖에도 포스트시즌 탈락 최다 기록에서 롯데를 구한 명장이라며 '로순신'이란 별명도 있었는데, 거의 잊혀졌다가 후임 감독이 그야말로 원균과 같은 행보를 보이면서 '양원균'에 대조되어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별명은 아니지만, 허구연의 발음을 따르면 쮀리 로이슈톼 감독.


10. 여담[편집]


  • 을 무지 잘한다. 그래서 야구팬들은 에미넴+로이스터 합성어로 로미넴이라고 부른다.

  • 한국에서 활동하던 시절에 카라를 대단히 좋아했다고 한다. 차녀의 이름이 '카라 로이스터'로 스펠링까지 같아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하며 특히 멤버인 니콜과 친분이 강했다고 한다.


  • 롯데 자이언츠 감독시절 인기가 좋아서 롯데 후불교통카드 광고를 찍었는데, 니 아직도 충전하나?라는 대사를 남겼다. 그리고 같이 출연한 김아중의 싸인을 받아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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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니세프 회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유니세프가 롯데 스폰을 할 수 있게 도와줬다. 참고로 유니세프는 전세계 단 4개팀만 후원하고 있으며 이중 아시아 클럽은 롯데 자이언츠가 유일하다.

  • 같은 부산이 연고지인 K리그 부산 아이파크의 홈구장인 부산 아시아드 주 경기장에 방문해서 시축을 한 적이 있다.[17] 또한 비시즌에는 부산 KTF 매직윙스의 홈경기에 2차례 시투한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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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해운대에서, 만취한 사직 아재에게 병살타 친 걸로 한 껏 조롱당하다 빡친 이대호를 'Calm down, Take it easy'라며 말리는 찰나의 단역으로 나온다.

  • 김성근 당시 SK 와이번스 감독의 투수 교체[18]흉내 낸 적이 있었다.

  • 정수근이 푼 로이스터썰.


  • 현재 골프와 개인 사업을 하며 미국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

  • 독이 든 성배로 불리는 한화 이글스 차기 감독 후보군에 있다는 설이 있었으나, 이상학 담당 기자에 의하면 구단에서 아예 외국인 감독은 고려하지 않는 상태라고 한다.



  • 미국 마이너리그 2021 올스타 경기에 내셔널리그팀 1루코치로 선임되었다.

  • 2017년 강민호가 삼성으로 떠나고, 2018년 황재균이 kt로, 2021년 손아섭이 NC로 떠난데에 이어 2022년을 끝으로 이대호가 은퇴하며 한때 로이스터와 함께 롯데의 전성기를 이끈 선수는 이제 전준우밖에 남지 않았다.

  • 요즘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인즉, 요즘 한국에는 잘하는 선수가 없어서라고.

  • 재계약 건으로 롯데 구단에 면접을 본 적이 있는데 당시 심경에 대해 다소 모욕적이었다고 표현하였다. 본인의 재임 기간동안 많은 성과가 있었기에 면접까지 볼 것은 없었고, 또한 감독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때문이라고.

11. 명언[편집]


외국인 감독이어서 그런지 립서비스가 굉장히 좋았다. 오죽하면 로이스터 명언 봇마저 나왔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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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Fear.(두려워하지 마라).


내 모든 관심사는 이 팀이 조금 더 강해지게 만드는 것이고, 그래서 이 팀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많은 팬들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게끔 하는 일뿐이다.

2008년 6월, "4강에 가지 못하면 경질될 수도 있다."라는 기자의 질문에.기사.


Calm down, Take it easy![19]


X발 못한다 못한다 말만 들었지 이 정도로 못할지는 생각도 못 했다![20]


야구는 열정이다.선수들은 무엇보다 많이 뛰고 많이 즐기는 야구를 할 줄 알아야 한다.

2007년 구단 상견례 중에서.


팬들이 팀의 일부라고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2007년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인터뷰##.


좋은 팀들이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팀은 우리 팀이다. 롯데가 최고다.

2008년 개막전을 앞두고.


그렇게 생각하라고 해라. 우리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2008년 개막전 4연승이후 반짝돌풍이 아니냐는 지적에.


Just Do It What You Do(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

2008시즌 4월 12일 경기에서 4:3으로 앞서고 있는 무사 1루에서 투수 강영식에게 직접 올라가 전해준 말.


"우리가 뭘 해야 하는 지 집중해! 너희들 모두 돈 받고 운동하는 거잖아. 이기는 경기를 해! 지지도 말고! 비기지도 마! 제대로 하라고! 그게 내가 원하는 거야. 두려워하거나 긴장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고! 팀을 위해 너희 자신을 희생해. 우린 롯데 자이언츠야! 최고가 돼야 해!"

영화 〈나는 갈매기〉 중.[21]

[22]


경기가 끝날 때까지 졌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여러분이 그리했기 때문에 작년그런 성적이 난 것이다. 진다는 두려움을 버리고 끝까지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경기에 임하라.

2008년 4월 25일. 조성환오승환을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치며 승리한 경기 후 인터뷰


져도 괜찮다. 내일 이길 수 있다.[23]


도루를 시도하다가 혹은 1루에서 3루로 과감히 진루하려다가 아웃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닙니다.저는 오히려 과감한 플레이를 해야 할 때 두려움 때문에 시도를 주저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2008년 9월 30일 인터뷰 중


난 7위나 하려고 태평양을 건너온게 아니다. 과거의 롯데는 중요하지 않다.

2008년, 롯데의 감독으로 선임되고 나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발언. 참고로 이때 2007시즌 DVD를 롯데 측으로 부터 받았는데 보지 않았다고 한다.


Who were the good players? Every single one of them.(누가 좋은 선수냐고? 우리 선수들 하나하나가 다 좋은 선수다.)

2008년 9월 15일, kbs 단박인터뷰 중 어떤 선수가 좋은 선수냐는 질문에.


The Best is yet to come.(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2010년, 홍성흔의 부상 등으로 5위 기아와의 승차가 1경기 반까지 좁혀진 상황에서 맞이한 문학야구장 SK 와이번스전을 앞두고 한 말. 이말 이후 기적같은 연승을 달리며 승차를 벌리기 시작했다. 당시 기사 특히나 당시 SK상대로는 1승 8패를 기록하는등 천적중의 천적이었던 팀이었는데 그 누구도 스윕을 예상하지 못했다.


Have Faith and Trust That the team will get better(팀이 나아질 것이라는 신뢰와 믿음을 가져라.)[24]

2011년, 양승호 감독 부임 이후 시즌 초반 부진을 겪고 있지 롯데 팬들이 로이스터 감독 페이스북에다 부정적인 글을 남기자.


얻어맞을 생각부터 하지말고, 자신있게 결정구를 던져라.


아웃 당하더라도 한 베이스를 더 달려라.


삼진을 두려워 하지마라 어설프게 스윙하지말고 자신있게 스윙해라


Something New Just for You!


사직 야구장의 롯데자이언츠 글자가 안보이게 팬들이 많이 와 줬으면 좋겠다.[25]


부산의 열기를 알고 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컵스 팬들도 정열적이고 팀을 사랑한다. 그러나 롯데 팬은 다르다.(크게 웃음) 컵스 팬도 여기 오면 인정을 할 것이다. 과연 비교할 대상이 있을까. 우리 팬들은 야구와 함께 사는 팬들이다.


오늘 경기의 승패만큼 중요한 것은 단 한 명의 팬이라도 즐겁게 경기를 보다가 귀가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연봉을 받는 이유다."

2008년 준PO 3차전을 앞두고 그물망 사이로 팬들에게 사인을 하며 오늘 같이 중요한 날 사인을 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


결과는 미리 알 수 없지만 그 목표를 이루는 것은 정말 특별하고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큰 가족이다. 우리는 모두 함께 그 목표를 향해 갈 것이다.


우리 팀이 최고다.


제 가족 하나 건사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팀과 팬들을 돌보겠다는 말이냐??


[1] 내야 유틸리티.[2] 로이스터의 감독 선임 시점보다 16년이 빠른 1991년에 KBO리그 사상 첫 외국인 감독이 롯데에서 탄생할 뻔한 적도 있다. 롯데에서 코치로 뛰었던 도위창이 주인공. 자세한 것은 도위창 항목 참조.[3] 2011년에 회장으로 승진했다.[4] 감독으로서 성과를 낸 시즌에 재계약 면접을 보자고 한것이 모욕적이었다는 인터뷰가 있다.관련기사[5] 똑딱이에서 완전체 타자로 변신한 홍성흔, 올해에 더욱 더 정확도를 높인 타격을 하는 조성환, 롯데의 약점이던 중견수 포지션에서 공수 대활약을 펼친 전준우 등.[6] 원래는 구단주 김택진은 본인의 영웅과 같았던 최동원을 원했다고 한다. 최동원도 긍정적으로 생각했지만 암질환 때문에 맡지 못했고 그해 사망하였다.[7] 구단 측의 공식 발표는 남은 계약기간 1년을 더 지켜보고 결정한다는 것이지만, 현재 조감독에 대한 비난 및 퇴진 요구 관련 기사를 막지는 않고 있어 여론을 보고 결정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8] 참고로 바로 다음 영상이 양상문이라서 영상이 넘어 가는 순간 환호가 싹 사라지고 침묵만 흘렀다.[9] 뭐,정수근이나 송승준의 사건을 보면 혼자서 열심히 하는 성실한 선수들 외에 나태한 선수들은 자율이란 이름 아래 또 열심히 놀아제낀 모양이지만... 역시나 정수근은 개인방송이나 박명환야구TV에서 로이스터를 거의 신 수준으로 칭찬하고 김성근 등 일부 노감독들의 견제를 받는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강병철 감독 시절에는 야구장에 그렇게 가기 싫었는데 로이스터 감독 시절에는 훈련이 기다려지고 야구장으로 가는 버스가 너무나 화기애애했다고 한다.[10] 물론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지는 바람에 빛이 바랬지만. 그리고 이는 역으로 그만큼 롯데 자이언츠의 불펜이 얼마나 허술했는가를 보여주는지를 보여준다.[11] 몸쪽 승부를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무조건 몸쪽으로 던지라는 게 아니라 몸쪽 승부가 필요할 때 기죽지 말고 과감하게 가라는 것.[12] 물론 그럼에도 로이스터가 넘지 못한 준플레이오프를 넘어 감독 임기 기간 동안 모두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성과를 이뤄내어 감독으로서의 성과에서는 롯데 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횡령 혐의가 있었다 할지언정 19시즌 롯데 프론트가 양승호에게 다시 한번 감독 제의를 한 것으로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13] 조성환의 오승환 상대 마무리 브레이킹, 디펜딩 챔피언 SK 스윕 등 명장면도 많았다.[14] 초반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승차 -14로 꼴지를 기록했으나 6월부터 불펜의 말도 안되는 각성으로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가져가며 극적인 4강 티켓을 거머쥐었다.[15] 정확하게 양승호 체제에서의 롯데는 로이스터의 강공과 적절한 작전야구를 혼합하여 팀을 이끌어나갔다.[16] 밀워키 브루어스 감독 대행 시절 2할 승률을 기록, 02년 백인천의 2할 승률과 비교하며 나온 별명. 공교롭게도 골프를 좋아한다는 공통점도 있다.[17] 답례로 황선홍 감독과 안정환 선수가 사직 야구장을 방문해 시구를 했다.[18] 2009년 7월 19일 문학원정경기에서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나승현을 내리고 이정훈을 올리는 퍼포먼스를 보였다.[19] 영화 해운대에서 화난 이대호를 말리는 장면에서 나온 대사다.[20] 당연히 실제로 한 말은 아니다. 2007 시즌 취임 당시 상동구장에서 가졌던 연설 장면을 가지고 당시 비밀번호 끝자락이던 꼴데의 현시창스러운 경기력을 자학하던 짤. 여기에 추가드립으로 X같은 새키들아 난 롯데라고 해서 지바 롯데인 줄 알았는데 낚을 게 없어서 이딴 걸로 낚냐 X발 도 존재한다. 워낙 임팩트가 큰 짤이다보니 "못한다 못한다 말만 들었지"를 중심으로 한 배리에이션들이 많다.[21] 로이스터는 이 말을 할 때 다섯 번의 F-word를 썼다. 그만큼 빡친 상태..[22] 위의 번역은 순화버전이고 실제로 억양과 분위기를 살리면 "우리가 집중, 집중해야할 이유를 알잖아. 여기 있는 너네 모두 씨발 이기고 돈을 받아가라고! 비기거나 좆같이 지지 말란 말이야! 너희들은 씨발 이겨야해. 겁먹고 긴장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고. 우린 롯데 자이언츠야. 우린 최고가 돼야 해." (we focus, focus of we need to do to get this done. every single guys in here get paid money to play the game and try fucking win. not tie, not fucking lose, you're paid fucking win. take out you being good guys that's all the master you try to be good. don't fucking get scared and nervous try to be good dedicate yourselves guys. we are lotte giants.we should be on top.)정도가 되겠다.[23] 위의 두 명언과 상반된다고 할 수도 있지만, 각각 경기 전/경기 중/경기 후의 마음가짐이라 보면 자연스럽다. 어차피 진 경기는 돌이킬 수 없으니...[24] '신뢰와 믿음을 가져라. 그것이 팀을 나아지게 할 것이다.'라는 버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오역이다. 저 번역대로 되려면 ...trust, and the team... 이렇게 써야 한다. 단순히 쉼표 하나만 추가해서 될 일이 아닌데, 쉼표 뒤에는 that이 올 수 없기 때문.[25] 사직야구장 외야석 의자에는 롯데 자이언츠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후 외야석이 리모델링을 하고 대형 전광판 설치 등으로 2010년대 중반엔 글자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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