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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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마이어의 역임 직책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베르티 포크츠
(1977~1978)

제프 마이어
(1978~1979)


베르나르트 디츠
(1979~1981)

FC 바이에른 뮌헨 역대 주장
프란츠 베켄바워
(1970~1977)

제프 마이어
(1977~1979)

게르트 뮐러
(1979)


제프 마이어의 수상 이력



제프 마이어의 기타 정보







독일의 축구인


파일:Sepp Maier.jpg

이름
제프 마이어
Sepp Maier
본명
요제프 디터 마이어
Josef Dieter Maier
출생
1944년 2월 28일 (80세)
나치 독일 바이에른주 메텐
국적
[[독일|

독일
display: none; display: 독일"
행정구
]]

신체
185cm
직업
축구 선수 (골키퍼 / 은퇴)
축구 코치 은퇴
소속
선수
바이에른 뮌헨 (1959~1962 / 유스)
바이에른 뮌헨 (1962~1979)
지도자
독일 대표팀 (1988~2004 / 골키퍼 코치)
바이에른 뮌헨 (2010~2011 / 골키퍼 코치)
국가대표
95경기 (서독 / 1966~1979)

1. 개요
2.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지도자 경력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여담



1. 개요[편집]


독일축구 선수 출신 코치.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골키퍼였으며 별명은 안칭의 고양이.

현역 시절 70년대 프란츠 베켄바워, 게르트 뮐러 등과 함께 바이에른 뮌헨유러피언컵 3연패와 서독유로 19721974 월드컵 우승을 이끌며 바이언과 서독 축구의 최전성기를 견인한 골키퍼이다. 은퇴 후에는 1988년부터 2004년까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코치를 맡았다.[1] 또한 2020년에는 발롱도르 드림팀 골키퍼 부문에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편집]


파일:external/static.sportskeeda.com/muller_maier_kaiser-1101845.jpg

좌측부터 게르트 뮐러, 제프 마이어, 프란츠 베켄바워


제프 마이어는 1959년 부터 1962년까지 바이에른 뮌헨 유소년 클럽에서 뛰다가 마침내 1962년에 프로 무대에 데뷔한다. 당시 바이에른 뮌헨은 지금과 같은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는데 제프 마이어, 프란츠 베켄바워, 게르트 뮐러가 활약하면서 바이에른 뮌헨은 독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팀이 되었고, DFB-포칼 2연패 달성, 1968-69 시즌에는 대망의 마이스터샬레를 들어올린다. 마이어는 뮌헨에서 총 4번의 마이스터샬레DFB-포칼 트로피를 들어올렸으며 남은 것은 유러피언컵이었다. 그러나 바이에른 뮌헨은 요한 크루이프가 이끄는 AFC 아약스에게 처참히 패배했지만 크루이프가 바르셀로나로 떠나면서 곧 바이에른 뮌헨의 시대가 열린다. 1973-74 시즌 바이에른 뮌헨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꺾고 유러피언컵 우승을 이루었으며 분데스리가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더블을 이룩한다. 그후 프란츠 베켄바워-게르트 뮐러 - 제프 마이어가 이끄는 바이에른 뮌헨은 유러피언컵 3연패를 달성하였고, 1976년에는 인터컨티넨탈컵에서 크루제이루를 꺾었다. 그러나 마이어는 1979년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해 선수 생활을 더이상 지속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은퇴를 선언한다.


2.2. 국가대표[편집]


파일:제프_마이어.png
마이어는 1966년에 국가대표에 데뷔했는데, 클럽에서의 활약으로 이른 나이에 국대에 승선하지만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 서독의 스쿼드에는 이미 한스 틸코프스키라는 골키퍼가 주전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는 벤치에서 조국의 준우승을 지켜봤다. 클럽 동료였던 베켄바워가 대회에서 미친듯이 활약한것에 비하면 본인은 아쉬울따름.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프란츠 베켄바워게르트 뮐러와 함께 주전으로 맹활약하였고 조별리그를 전승으로 이끌며 8강에서 디펜딩 챔피언 잉글랜드를 만난다. 참고로 서독은 전 대회인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결승전에서 잉글랜드의 제프 허스트에게 해트트릭을 내주며 4:2로 패배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

마이어는 초반에 2골이나 내주어 잉글랜드에게 2:0으로 끌려가다가 잉글랜드의 에이스인 보비 찰튼이 교체되어 나가자 곧바로 서독은 프란츠 베켄바워, 우베 젤러가 동점골을 넣으며 연장전으로 끌고 갔고, 마침내 게르트 뮐러가 결승골을 넣으며 잉글랜드를 꺾고 준결승에 진출한다. 준결승전 상대는 이탈리아였고, 전반에 로베르토 보닌세냐에게 선제골을 내주어 서독이 밀리기 시작하고, 프란츠 베켄바워가 경기 중 쇄골이 깨지는 부상을 입어 원래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으나, 카를하인츠 슈넬링어가 동점골을 넣으며 연장전으로 끌고갔고, 게르트 뮐러가 94분에 골을 넣어 다시 앞서가기 시작하나 타르치시오 부르그니치에게 동점골을 내주었고 104분에 루이지 리바의 슛을 마이어가 막지 못하면서 다시 밀리기 시작하고, 게르트 뮐러가 다시 동점골을 넣었으나 결국 마이어는 111분에 잔니 리베라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결국 4:3 패배, 결승 진출이 좌절된다.

이후 우루과이와의 3·4위전에서는 볼프강 오베라트의 골로 1:0으로 서독이 승리하면서 3위를 차지한다. 월드컵 우승이 좌절된 마이어는 이후 UEFA 유로 1972에서 소련과의 결승전에서 클린시트를 달성하였고 서독은 3:0으로 우승하여 앙리 들로네를 들어올린다.

훗날 자국에서 열린 1974년 서독 월드컵. 마이어는 월드컵 우승이 절실했였고, 1차 리그에서 칠레를 1:0 격파, 호주를 3:0으로 격파하였으나 동독과의 경기에서 후반 77분에 위르겐 슈파바서에게 결승골을 내주어 1:0 패배, 2위로 2차 리그에 진출한다. 이후 유고슬라비아를 2:0 격파,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전반 24분에 랄프 에드스트룀에게 선제골을 내주었으나 후반 51분 볼프강 오베라트가 동점골을, 후반 52분에 라이너 본호프가 역전골을 넣어 2:1로 앞서가기 시작했으나 마이어는 1분 만에 롤란드 샌드버리에게 동점골을 내주고 만다. 그러다가 76분에 위르겐 그라보프스키가 역전골을 89분에 울리 회네스페널티 킥을 넣으며 4:2로 스웨덴을 꺾게 되었다.

준결승전에서 그제고시 라토가 이끄는 폴란드를 상대로 마이어는 잘 막아내었고 게르트 뮐러가 76분에 결승골을 넣으며 1:0 승리,

마침내 결승전에서 토탈 풋볼로 돌풍을 일으키며 디펜딩 챔피언 브라질을 꺾고 올라온 요한 크루이프가 이끄는 네덜란드와 만난다. 크루이프의 드리블을 막던 울리 회네스페널티 킥을 내주었고 마이어는 요한 네스켄스의 슛을 막지못해 전반 2분만에 네덜란드가 앞서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서독의 사냥개 베르티 포크츠가 크루이프를 말 그대로 지워버렸고, 기세를 탄 서독은 전반 25분에 파울 브라이트너페널티 킥으로 동점골을 넣었고, 전반 43분에 뮐러가 결승골을 넣으며 2:1 승리. 마침내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다. 이후 마이어는 UEFA 유로 1976에서도 맹활약하지만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안토닌 파넨카에게 굴욕적으로 파넨카를 허용하며 결국 서독은 패해 메이저 대회 3연패가 좌절된다.[2] 이후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도 출전했으나 2차 리그에서 탈락하였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마이어는 '안칭의 고양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또 그 별명답게 아주 날렵한 모습을 보여줬다. 동물같은 반사신경과 다이빙능력으로 들어가는 볼도 감탄을 자아내게 만드는 세이브를 보여줬다. 당시로써는 괜찮은 키를 보유하고 있어 신체조건적으로는 아주 우월했다. 중거리슛, 1대1, 공중볼까지 못 막는게 없는 완벽한 키퍼였다. 또 리더십 역시 뛰어나 수비를 조율하고 이끌어가는데도 아주 능했다.


4. 지도자 경력[편집]


선수 은퇴 후 오랫동안 바이에른 뮌헨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코치로 있으며 후배들을 키우는데 전념했다. 보도 일그너, 안드레아스 쾨프케올리버 칸 조차도 그가 키워낸 작품이라 할 만 하다. 특히 올리버 칸에게 최고의 멘토였으며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옌스 레만을 중용하려 하자 그와 의견차이로 충돌을 벌이다 경질당하기까지 했을 정도로 칸을 아꼈다. 이후에도 바이에른 뮌헨에서 골키퍼 코치로 활동하다 2011년 은퇴했다.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5.2. 개인 수상[편집]




6. 여담[편집]


바이에른 현지 팬들은 지금도 역대 최고의 골키퍼로 올리버 칸, 마누엘 노이어 등 쟁쟁한 골키퍼들을 제치고 제프 마이어를 꼽는다고 한다.

환상적인 반사신경과 더불어 온화하고 유쾌한 멘탈로 팀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했다. 약간 개그 캐릭터이기도 했는데, 1976년 보훔과의 리가 경기중 멀리 날아가버린 공때문에 경기가 한동안 지연되었고,[3] 지루했던 마이어는 마침 오리가 난입한걸 발견했는데, 잔디로 먹이를 주는 제스쳐를 취하면서 계속 유인하더니 급기야 마이어는 수 차례 몸을 던져 그 오리를 잡으려 하였다. 공이 들어오고 경기가 진행됐으나 마이어의 오리 사냥은 멈추지 않았다. 게르트 뮐러가 반대편에서 골까지 넣었으나 계속해서 오리를 향해 몸을 던지며 관중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영상 6초부터가 마이어의 오리잡이 부분. 그 외에도 영상 전체를 보면 알겠지만 똘끼가 여간 장난이 아니셨다.

파넨카 킥을 허용하는 마이어

최초로 파넨카 킥허용한 골키퍼이기도 하다. UEFA 유로 1976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사상 최초로 안토닌 파넨카가 선보였고, 이 킥으로 독일은 우승을 놓치며 3연속 메이저 대회 우승의 꿈을 접어야 했다.

파일:골닷컴 시대별 최고의 골키퍼.png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골키퍼 5인을 선정했는데, 1970년대 최고의 골키퍼 3위에 이름을 올렸다.
[1] 독일 대표팀 코치와 바이에른 뮌헨 골키퍼 코치를 항상 병행해왔다. 2010년부터는 고령으로 독일 대표팀 골키퍼 코치에서 물러나 바이에른 뮌헨만을 담당하다 은퇴한 것.[2] 이 경기가 독일 역사상 유일한 승부차기 패배다.[3] 당시에는 경기장 양 끝에 볼보이가 겨우 2명뿐이었고, 약팀들이 시간을 끌기위해 공을 안드로메다로 걷어내버리는 '작전'도 가능한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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