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베이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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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프 베이조스
(1994~2021)


제2대
앤디 재시
(2021~ )









아마존 창업자
아마존 이사회 의장

제프리 프레스턴 베이조스
Jeffrey Preston Bezos[1]


출생
1964년 1월 12일 (60세)
미국 뉴멕시코앨버커키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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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재산
1,631억 달러 (한화 약 218조 1,000억원)[2]
종교
불명[3]
신체
171cm
학력
프린스턴 대학교 (컴퓨터과학 / 학사)
직업
기업인
현직
아마존닷컴 이사회 의장
워싱턴 포스트 CEO
블루 오리진 최대주주
경력
아마존닷컴 CEO 겸 회장
미국 국방부 혁신자문위원회 위원
디이쇼 수석 부사장
뱅커스트러스트 부사장
배우자
맥킨지 터틀[4](1993년~2019년)
파트너
로렌 산체스[5](2019년~ )
자녀
슬하 3남 1녀[6]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Threads 아이콘.svg

1. 개요
2. 생애
2.1. 아마존 창업
2.4. 이혼
2.5. 아마존 경영 일선에서의 퇴진
2.6. 민간 우주 여행 도전과 성공
3. 비판
4. 기타
5. 관련 문서
6.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미국의 기업인.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초대 CEO, 현 이사회 의장. 2023년 기준 세계 부자 순위 1위.[7]

2017년 10월 ~ 2020년 12월까지 3년 2개월 동안 세계 보유 재산 순위 1위였던 기록을 갖고 있다.#[8]


2. 생애[편집]


제프 베이조스는 1964년 1월 12일 미국 뉴멕시코주 엘버커키에서 덴마크계 미국인인 테드 조겐슨(요르겐센, Ted Jorgensen, 아버지),[9] 재클린 자이스(Jacklyn Gise,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제프의 출생 당시 테드는 18세, 재클린은 17세로 모두 고등학생이었다. 당연히 제프가 태어났을 당시의 성은 베이조스가 아니라 조겐슨(요르겐센)이었다(Jeffrey Preston Jorgensen). 제프가 태어나기 전에 테드와 재클린은 결혼했으나, 17개월 뒤 이혼한다.[10][11] 곧 재클린은 쿠바 출신 미겔 베이조스(Miguel Bezos)와 재혼하여 미겔은 제프의 새아버지가 되는데, 우리가 아는 베이조스라는 성은 그에게서 온 것이다. 미겔은 아무 밑천 없는 10대 쿠바계 미국인 이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노력하여 석유기업 엑슨(EXXON)에 입사하고 훗날 경영진에 오르는 등 제프 베이조스의 롤 모델이 되었다. 그는 제프 베이조스가 아마존을 설립할 때 첫 투자자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각종 인터뷰에서 제프는 자신을 키워준 새아버지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존경을 드러낸 바 있다.

제프 베이조스에게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이는 외할아버지 프레스턴 자이스(Preston Gise)였다. 프레스턴 자이스는 젊은 시절 미국 국방부의 연구기관인 DARPA의 우주 공학 및 미사일 방어 시스템 분야의 전문가로 일했으며 원자력위원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제프 베이조스는 16살이 될 때까지 매년 여름 방학을 텍사스에 있는 외할아버지의 농장에서 보내었는데, 이 때의 경험들이 기업가의 꿈을 키우는데 중요한 영양분이 되었다고 밝혔다. 외할아버지 농장

이후 그는 휴스턴의 리버오크스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그곳에서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컴퓨터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컴퓨터 사용시간의 대부분을 친구들과 스타트렉 게임을 하면서 보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초등학생 시절에 자기 방 출입문에 사이렌 경보장치를 달아서 동생들이 들어오면 알람이 켜지게 하는 등 아이디어와 기술에 뛰어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의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평가는 대단히 총명하나 리더의 자질은 없다는 것이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플로리다 대학에서 주최한 과학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실버기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시의 팔메토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베이조스는 물리학을 전공하기 위하여 프린스턴 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다. 그러나 양자역학을 배우면서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데.. 당시 반에 30명 정도 있었는데 그 중 학우 서너 명이 자신은 12시간을 걸려 이해하고 푼 문제를 아무 거리낌 없이 풀며 이해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물리학자가 되기를 포기했다. 프린스턴 일화 이후 컴퓨터과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졸업했다. 훗날 베이조스는 인터뷰에서 프린스턴대학교는 자신이 훌륭한 물리학자가 될 수 없음을 알려준 동시에 컴퓨터과학이 자신의 적성에 맞음을 가르쳐주었다고 밝혔다.

졸업 후 제프 베이조스는 유명 대기업인 인텔, AT&T의 벨 연구소, 앤더슨컨설팅의 오퍼를 거절하고 무명의 벤쳐기업 피텔[12]에 입사하여 통신 프로토콜 프로그래밍 업무를 수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입사 1년 후 기술 및 사업개발담당 부책임자로 승진하였으나 입사 2년 후 퇴사한다. 제프 베이조스는 그 이후 뱅커스 트러스트에 컴퓨터 관리자로 입사했다.[13] 그는 뱅커스 트러스트 입사 10개월 만에 회사 내 최연소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 이후 제프 베이조스는 신생 금융사 D.E. Shaw로 옮겨 테크놀로지 기반 트레이딩 전략팀을 이끌기도 하고 인터넷 기반 사업 구상을 담당하기도 했다. D.E. Shaw 입사 1년 후 26세 최연소 부사장, 몇 해 후 수석 부사장이 된다. 그리고 그때 D. E. Shaw에서 같은 회사 연구원인 매킨지 터틀을 만나 1993년에 결혼했다.

그렇게 잘 나가던 그는 1994년 돌연 회사를 때려치우고 시애틀로 향했는데...


2.1. 아마존 창업[편집]


파일:kuzsy3G.jpg
제프 베이조스가 아마존닷컴 창업을 준비할 때 냅킨에 그렸던 다이어그램.
이는 '아마존의 플라이휠'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지면서 스타트업 성장 구조의 모범으로 통한다.

1994년 7월 그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시애틀로 출발하게 된다. 그의 동행은 아내와 인터넷 서점[14]이라는 창업 아이템이었다. 그는 친척과 친구들에게 200만 달러의 창업자금을 투자받았는데 그 중에는 제프 베이조스의 아버지인 미겔 베이조스의 투자금도 있었다. 제프 베이조스는 자신의 아버지 미겔 베이조스에게 사업 성공 가능성을 30%라고 이야기한 후 아마존닷컴주식 58만 2528주를 팔아 10만 달러 상당의 자금을 확보했다고 한다.[15][16]

그 이후 1995년 7월. 제프 베이조스는 시애틀 자신의 집 창고에서 3대의 워크스테이션을 가지고 아마존닷컴을 창업했다.[17][18][19] 그리고 마침내 1995년 7월 16일에 사업을 개시한 아마존닷컴은 창업 일주일 만에 미국 전역과 전세계 45개 도시에 서적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1996년 5월에는 월스트리트지가 Amazon.com을 일면에 대서 특필하기도 했다. 물품 없이 온라인 카탈로그만 존재하는 순수 전자상거래 업체로 출발한 아마존닷컴[20] 1997년 5월 주당 18달러에 상장됐고 이후 주당 2천 달러까지 상승했다. [21]

파일:3YmjJpb.jpg
최초의 아마존닷컴 사이트 모습

하지만 그렇게 잘 나가던 것도 잠시, 리먼 브라더스아마존닷컴이 일 년 안에 파산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게 된다. 이 보고서 발표 후 아마존닷컴은 1주일만에 주가가 19%나 급락했다. 게다가 뒤이은 2001년닷컴버블의 파장으로 자금 경색이 심화된 아마존닷컴은 최고 100달러였던 주가가 2002년에는 6달러로 추락할 정도의 경영 위기를 겪었다.

결국 아마존닷컴은 2001년 직원 1300명을 해고한 후 사업 다각화를 실시했는데, 우리가 아는 종합쇼핑몰 아마존닷컴이 바로 이 때 탄생한 것이다. 이렇게 닷컴 버블 붕괴와 경영 위기를 종합쇼핑몰 변신이라는 사업 다각화를 통해 타개한 제프 베이조스는 이후 e-book 단말기 킨들 시리즈와 킨들 파이어, 그리고 파이어폰 등의 제품과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계속해서 내놓으며 공격적으로 사업 확장을 하는 경영전략을 구사한다.

여담으로 아마존닷컴의 파산을 예상한 리먼 브라더스는 2008년 금융 위기로 직격탄을 맞고 파산했다. 아마존한테 예언했는데 사실 자신들한테 예언한 것이었다(...) 반면 아마존닷컴은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면서 세계 최정상급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2.2. 워싱턴 포스트 인수[편집]


2013년 8월에 제프 베이조스가 경영난에 허덕이던 미국 3대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를 개인 돈 2억 5천만 달러로 인수하였다.

인수 이후 워싱턴 포스트는 제프 베이조스의 지휘 아래 디지털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고 한다. 엔지니어를 대거 고용하고 온라인 컨텐츠를 대대적으로 강화했다. 그래서인지 2년 만에 워싱턴 포스트 웹사이트 방문자가 3배가 증가했다고 한다.

그런데, 경영성과와는 별개로 대통령 당선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너무 심하게 극딜하다 보니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아마존과 워싱턴 포스트를 디스하면서 제프 베이조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2.3. 블루 오리진 설립[편집]


비슷한 삶을 살아온 일론 머스크스페이스X를 세워 우주산업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것처럼 베이조스도 2000년 블루 오리진을 세워 자체 로켓 및 우주선 개발, 로켓 재사용 등을 연구하고 있다. 어렸을 때 도서관에서 공상과학 소설을 읽기가 취미였고, 다섯 살이던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는 장면을 보면서 우주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고등학교 졸업식 때 연설하면서 친구들에게 마지막 개척지인 우주에서 만나자고 말 할 정도였다 한다. 민간 사업자로서 ULA에 로켓엔진을 납품하는 등 매우 건실한 행보를 보이지만, 경쟁자 구도로 세워지는게 그 스페이스X인지라 아무래도 블루 오리진에 대한 관심은 덜한 편이다. 가장 관심을 많이 받는건 재사용 보다는 오히려 엔진 제품군인 BE-3와 BE-4. ULA의 러시아 엔진 의존을 멈춰줄 차세대 유망주들이 되시겠다. 2024년 달 착륙이 목표다.

발사체 재사용 기술 때문인지, 스페이스X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다분히 의식한 발언을 많이 하는 편이다.[22] 물론 발언 후에는 넷상에 퍼져서 스페이스X와 비교되며 조롱 당하는 처지이다. 실제로 스페이스X는 이미 수십회 로켓 재사용과 유인우주선 드래곤 V2 비행에 성공하고 화성행 우주선까지 개발하고 있는 마당에 블루오리진은 아직도 지구 궤도까지도 못갔으니... 게다가 아르테미스 계획에 사용될 달 착륙선도 스페이스X에게 뺏겼다.


2.4. 이혼[편집]


2019년 1월 돌연 결혼 생활 25년차인 아내 매킨지와 이혼한다는 뉴스가 떴다. 원인은 베이조스의 외도로[23], 베이조스가 거주하고 있는 워싱턴 주의 법에 따르면 12년 이상 결혼을 지속했을 시 무조건 이혼 때 50:50으로 재산을 나누는 법에 따라, 위자료를 받고 난 후의 매킨지는 세계 4위의 여성 부자가 되며 추가로 베이조스가 가지고 있는 아마존 주식도 반토막나서 경영권 보호에 위기가 올 수도 있다.[24] 결국 매킨지에게 최소 350억 달러, 한화 약 43조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한다. 기사

이후 매킨지는 합의금 중 일부를 기부했다.#

외도를 폭로한 주체는 대해 사우디의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으로, 해커들을 이용해 베이조스의 아이폰을 해킹해서 정보를 빼냈다고 한다. 빈 살만과 베이조스는 서로 왓츠앱으로 개인채팅을 할 정도로 관계가 있었는데 반사우디 언론가이자 베이조스가 소유한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인 자말 카슈끄지가 사우디 정부로 추정되는 세력에게 살해된 이후로 급속도로 사이가 나빠졌다. 살해사건에 대해선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암살 사건 참조.

신문기사에 따르면 빈 살만은 워싱턴 포스트가 자신에게 부정적인 기사를 쓰는 것에 분노했고 왓츠앱을 통해서 해킹링크를 보내 베이조스의 아이폰을 해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베이조스의 외도를 최초로 공개한 타블로이드 신문 내셔널인콰이어러의 경우 신문의 대표가 빈 살만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어 미국에서 사우디에 우호적인 기사를 발행해 영향을 끼치고 있다. 따라서 살만이 자기가 아는 언론에게 의도적으로 해킹자료를 제공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

베이조스의 주장에 따르면 내셔널 인콰이어러측이 베이조스가 찍은 성기 사진을 포함한 민망한 사진 9장을 추가로 갖고 있다고 말했고 "이 사건에서 정치적인 동기가 있거나 정치적 배후세력이 있다고 볼 만한 근거가 없다."라고 시인하지 않으면 사진을 뿌리겠다고 협박했다.#

베이조스는 협박에 순응하지 않았고 "물론 나는 내 개인적인 사진이 발행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협박, 정치적 편향, 정치적 공격과 부패 등 그들의 잘 알려진 행태에 관여하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이 발표로 미국인들 사이에서 베이조스를 대하는 반응이 좋아졌고 기업 이미지는 훼손 없이 잘 넘어갔으며 사우디 정부의 이미지는 오히려 나빠졌다.


2.5. 아마존 경영 일선에서의 퇴진[편집]


2021년 2월, 아마존의 CEO직에서 물러나고 이사회 의장으로 직위를 변경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사실상 아마존의 경영 일선에서 은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후임은 그의 그림자라고 불려온 최측근, 아마존웹서비스(AWS)의 기획자이자 CEO인 앤디 재시가 맡기로 결정되었다.[25] # #

실리콘밸리 CEO들의 전통답게 사내 이메일로 간단하게 CEO직 사퇴를 밝혔다.

아래는 그 이메일의 한글 번역본. 출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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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동료들에게.


이번 3분기에 아마존 이사회 의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앤디 재시가 CEO가 될 것이라는 점을 밝히게 되어 신나는군요. 이사회 의장으로서 나는 내 에너지와 관심을 신제품과 초기 프로젝트에 쏟으려고 합니다. 앤디에 대해선 다들 잘 알고 있으시죠. 앤디는 나와 비슷한 기간 아마존에서 일했습니다. 뛰어난 리더가 될 것이고, 나는 그를 전폭 신뢰합니다.


이 여정은 27년 전 시작됐습니다. 아마존은 그저 아이디어였을 뿐, 제대로 된 이름도 없었죠. 당시 사람들이 내게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이거였어요. “대체 인터넷이라는 게 뭔데?” 이제 그런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축복이죠.


오늘날 우리는 130만 명의 재능있고 헌신적인 임직원을 고용하고 있고, 수억 명의 고객과 회원사를 위해 일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 중 하나로 널리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독창성 덕이죠. 독창성이야말로 우리 성공의 근간입니다. 우린 함께 남들이 보면 미친 짓을 했고, 그리고 그걸 정상으로 만들어냈죠. 우리는 고객 평가라는 것을 선도했고 (중략) 미친 듯 빠른 배송을 시작했습니다. (중략) 뭔가를 제대로 해내면 그게 처음에는 놀라운 발명이라고 해도 수년 후엔 평범한 게 되어버리죠. 사람들은 하품을 하겠고요. 그리고 이 경우, 하품은 그 독창성을 발휘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찬사랍니다.


아마존처럼 훌륭한 창의력 실적을 보유한 기업을 저는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가장 독창적이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이런 창의력을 나처럼 자랑스러워하길 바랍니다. 당연히 그래 마땅하거든요.


아마존이 덩치를 키워가면서 우리는 우리의 규모와 폭을 중요한 사회적 이슈를 이끌어가는 데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영향력이 컸던 두 가지 대표적 사례를 들어볼까요.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책정한 것과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의 약속입니다. 이 두 가지를 위해 우리는 우리의 리더십 지위를 활용했고 다른 이들에게 우리를 따라올 것을 요청했죠. 다 효과가 있었습니다. 다른 대기업들도 우리의 길을 따라 걷고 있어요. 이 역시 자랑스러워하길 바랍니다.


난 내 일이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어요. 나는 가장 똑똑하고 가장 재능이 있으며 가장 천재적인 동료들과 일을 합니다. 운이 좋을 땐 겸허히 일을 했습니다. 어려운 시절엔 강력히 대처하며 서로를 지지했고, 서로를 웃게 만들었죠. 이 팀에서 일하는 건 기쁨입니다.


난 여전히 출근할 때 탭댄스를 출 정도로 신이 나지만, 이번 변화에 대해서도 역시 신이 난답니다. 우리의 서비스를 기다리는 고객이 수백만 명이 있고, 우리 기업에 생계를 의지하는 임직원이 백만여 명 정도 있죠. 아마존의 CEO라는 직업은 깊은 책임감을 요하며, 굉장히 피곤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책임을 져야 할 땐 다른 어떤 것에도 신경을 쓰기가 어려워요. 이사회 의장으로서 나는 아마존의 주요 프로젝트엔 여전히 관여하되 데이1 펀드와 베이조스 지구 펀드, 블루 오리진, 워싱턴포스트(WP), 그리고 내가 열정을 가진 다른 일에도 시간과 에너지를 들일 수 있을 겁니다. 지금 나는 어느 때보다 더 에너지로 넘친답니다. 은퇴가 아니거든요. 새로운 일이 낼 수 있는 영향력에 대해 나는 엄청난 열정을 갖고 있어요.


아마존은 미래에 가장 적합하게 포지셔닝된 회사입니다. 세계가 우리에게 기대하듯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죠. 세상을 계속 놀라게 할 일을 준비하고 있고요. 우리는 개인 고객과 기업고객 모두를 위해 일하고, 두 가지의 완벽한 업계를 선도했으며 새로운 기기의 세계를 열었죠. 우리는 머신러닝에서부터 배송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리더이며, 아마존 동료의 아이디어가 다른 기술을 요한다면, 그 기술을 습득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유연함과 인내심 역시 갖추고 있습니다.


계속 창의력을 발휘하세요 여러분. 그리고 새롭게 뭔가를 발명할 때 그 아이디어가 미친 일처럼 보여도 절망하지 마세요. 길을 잃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당신의 호기심이 당신의 나침반이 되도록 하세요. 우린 언제나 첫날입니다.


제프


2021년 7월 5일자로 CEO직에서 물러났다. 이날은 현지시간으로 아마존 창업 27주년이 되는 날이다. #


2.6. 민간 우주 여행 도전과 성공[편집]


스페이스X에 자극을 받았는지,[26] 블루 오리진 우주 캡슐의 첫 유인 비행을 2021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기념일에 맞추어 계획하고 있으며 제프 베이조스 본인이 직접 탑승하겠다고 발표했다.

2021년 7월 20일, 블루 오리진 우주 캡슐을 타고 우주 비행에 성공했다.[27] # 이 우주 여행에 동생 마크 베이조스를 포함한 3인과 동행했다. 82세인 월리 펑크는 1960년 당시 NASA의 우주비행사 시험을 통과하고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우주인이 되지 못했다가 이번에 동행하며 최고령 민간 우주인의 영예를 안았고, 네덜란드의 물리학 예비전공생인 18세 올리버 데이먼[28]은 최연소 민간 우주인 겸 최초 유료 우주관광객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

지구로 귀환하는데 성공한 직후 소감을 밝히는 인터뷰 자리에서 "모든 아마존 직원들과 고객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당신들이 이 모든 것을 지불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는데, 평소 아마존닷컴 관련 논란과 맞물려 비판을 받았다.

2022년 1월 안티에이징을 연구하는 미국생명공학 스타트업 Altos Labs에 투자했다. 해당 라운드에서 무려 30억 달러 투자금을 조달했는데, 역대 생명공학 기업이 조달한 최대 규모의 액수였기 때문에 더욱 화제를 몰았다.

3. 비판[편집]


아마존닷컴 문서의 논란 항목 참조.

그가 만든 아마존닷컴은 독점의 폐해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물론 미국에는 반독점법이 존재하지만 아마존닷컴은 이를 ATI 승인[29]으로 우회한다.

가장 악명 높은 사건은 베이조스가 고안한 가젤 프로젝트#이다. 제프는 직원들에게 산업을 지배하는 방법을 자연의 생존방식에 대입하며 치타는 연약하고 병든 가젤부터 사냥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연약한 소규모 업체들에게 정해진 할인리베이트를 채우지 않으면 추천항목에서 보이지 않게 하거나 매수버튼을 삭제해버려서 매출을 급감시키는 것이다. 이 천재적이지만 잔혹한 방식으로 아마존은 점유율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렸고 엄청난 가격경쟁으로 경쟁 소매업체들을 파산시켜 소매시장에서 절대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고객점유율이 늘어나자 영세업체뿐만이 아니라 대형업체들도 가젤이 되어 아마존을 거부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정도면 거의 21세기판 록펠러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30]


4. 기타[편집]



  • 사우스 파크 시즌 22 에피소드 10에 등장한다. 사우스 파크에 아마존닷컴 물류센터를 세우고 마을 주민 대부분에게 프라임 회원등급을 준다. 그러자 사람들이 아마존닷컴에 의존하게 되어 마을 상가는 말라죽고 사우스 파크 주민들 대부분이 물류센터의 노동자가 되어버린다.[31]




  • 저서로는 "Invent and Wander: The Collected Writings of Jeff Bezo"이 있다. 번역서는 "제프 베이조스, 발명과 방황"라는 이름으로 위즈덤하우스에서 출판했다. #

  • 그를 신랄하게 까는 노래가 존재한다. 저커버그, 게이츠, 버핏을 아마추어라고 폄하하고, 남의 아내를 강간하고 잡아먹은 뒤 자신이 비난한 아마추어들을 사냥한다는 신랄하고 정신나간 가사를 보여준다. 베조스가 불륜으로 스캔들이 퍼졌고 남과 비교하는 걸 싫어하며, 아마존의 경영스타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한 풍자이다.

  • 톨키니스트이다. 반지의 제왕 드라마 제작 이유가 개인적 욕망이라는 루머가 있고 드라마도 본인이 홍보할 정도로 반지의 제왕에 대한 팬심을 드러내고 있다.

  • 2007년부터 10년동안은 정치헌금을 5만 2600달러밖에 내지 않았다. 그러나 2012년에는 워싱턴 주에서 동성결혼 합법화를 위해서 250만달러(한화 26억 7천만원)를 기부한 적이 있다. 2018년 9월에 2018년 미국 중간선거의 참전용사 출신 후보 33인(민주당 19명, 공화당 14명)을 후원하기 위해 1천만 달러(한화 112억원)를 기부하면서 정치계의 큰손으로 등극했다.

  • 2022년, 전 가사도우미로부터 인종차별과 비위생적인 노동환경 등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화장실도 없이 일했다고 한다. #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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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ˈbeɪzoʊs/[2] 2023년 9월 포브스 기준. 세계 부자 순위 3위. 보유하고 있는 아마존 지분 12.3%와 블루 오리진 자금을 위해 매각한 아마존 지분 100억 달러 이상이 주요 자금 출처.[3] 베이조스의 양아버지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고 전 부인 맥킨지의 부모 역시 팜비치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천주교 신자들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베이조스와 전 부인인 맥킨지는 종교적 주제를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야기한 적이 없으며 공개적으로 알려진 사실은 베이조스와 맥킨지의 1993년 결혼식 주례자가 Richard Riccardi라는 New Utrecht의 천주교 신부였다는 것 밖에 없다. 천주교일 가능성이 있으나 본인이 직접 자신의 종교에 대해 밝힌 바가 없으므로 불명으로 기입한다.[4] 베이조스의 불륜으로 인한 이혼 소송 절차를 밟아 그의 재산 25%인 아마존 주식 4%를 위자료로 받았다. 당시 시세로 356억 달러. 이후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기빙 플레지에 서약한 뒤 자선재단을 만들어 재산의 50%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선언했다.[5] 리포터 출신 사업가이다. 불륜으로 만났으며 2023년 약혼을 발표했다.[6] 딸은 중국에서 입양했다.[7] 2023년 2월 포브스 기준[8] 2021년 1월부터 일론 머스크가 1위를 탈환하고 한동안 1위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했으나, 2021년 하반기에 테슬라 주가가 급등하면서 머스크의 주식 자산이 폭등하며 격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이다.[9] 덴마크어로는 요르겐센, 영어로는 조겐슨이다.[10] 걸핏하면 술에 취해 집에 늦게 들어오는 등 아버지의 역할을 등한시했다고 한다.[11] 2013년 한 언론에서 아마존에 관한 특집 기사를 쓰기 위해 제프의 생부인 테드를 찾아냈는데, 테드는 제프에게 새아버지가 생긴 뒤로 완전히 연락을 끊었으며, 아마존의 CEO가 자기 친아들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후에는 건실하게 살았는지 애리조나 주에서 자전거 가게를 경영하고 있는데 동네 사람들의 평판도 좋다고 한다.[12] 컴퓨터 네트워크 주식거래 시스템을 개발하는 회사였다.[13] 뱅커스 트러스트는 제프 베이조스의 표현에 의하면 "컴퓨터와 금융의 교차점에 있는 회사"라고 한다.[14] 제프 베이조스는 인터넷 서점 창업 준비를 위해 1994년 9월 2일까지 미국서점협회에서 주관하는 서점 운영을 위한 재정, 고객서비스, 재고관리 등의 강좌를 모두 수강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강좌에서 스퀘어북스의 운영자 리처드 호워스의 강의에 감명받은 제프 베이조스는 훗날 호워스가 중요시하는 대면접촉을 통한 고객서비스를 자신 나름대로 아마존닷컴에 적용하여 오늘날의 아마존닷컴을 만들었다고 한다.[15] 당시 주식 매입가는 1주당 17.17센트, 이 주식은 아마존닷컴 주식 공개 후 가격이 매입가의 582배나 뛰어오르게 된다.[16] 이 이야기에는 한 가지 더 반전이 있는데, 사실 제프 베이조스 본인이 생각하던 사업 성공 가능성은 10%였다는 것, 그는 말 그대로 도박을 한 셈이다.[17] 시애틀은 미국 최대규모 서적 공급업체인 Ingram의 본거지이다.[18] 아마존닷컴의 초기창립멤버는 컴퓨터 전문가인 셸 카판과, 폴 바튼-데이비스, 그리고 아내인 매킨지 터틀이었다.[19] 최초의 회사 이름은 아마존닷컴이 아닌 cadabra.com이었다.[20] 서적의 배송은 Ingram이 담당했다.[21] 2020년 1월 기준 1850달러 선으로 유지한다[22] 열등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실제로 뉘앙스적으로 그러한 느낌이 많이 드는 편.[23] 로렌 산체즈(Lauren Sánchez)라는 앵커와 바람을 피웠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도 유부녀였다.[24] 다만 전처 매킨지는 전 남편인 베이조스의 아마존닷컴 경영권 유지에 문제가 없도록 최대한 협조한다고 뜻을 밝히긴 했다.[25] 후임 AWS CEO로는 태블로의 CEO인 아담 셀립스키를 영입했다.[26] 설립은 블루 오리진이 2년 더 앞섰다.[27] 7월 12일 리처드 브랜슨이 상공 88.5km에서 우주관광에 성공하고, 21일에 제프 베조스가 상공 106 km에서 성공했다. 베조스가 두 번째 민간 우주여행이라는 의견이 있으나, NASA는 80.5 km부터 우주라고 규정하고, 국제항공연맹(FAI)은 상공 100km부터 우주(카르만 라인)라고 규정지으므로 누가 민간 우주여행 최초인지는 논란이 있다. 국제적으로는 후자가 좀 더 공신력이 높은 편.[28] 헤지펀드 창업자인 부유한 사업가의 아들로, 아버지가 막대한 금액의 우주여행 티켓을 구입하고도 일정에 차질을 빚어 동행하지 못하게 되자 대신 참여했다.[29] '반독점면제(ATI, Anti-trust Immunity)' 제도[30] 빌 게이츠도 본인은 에디슨이 되고 싶어하지만 실체는 록펠러에 가깝다고 비판을 받았는데 정말 과거의 악명 높은 독점자본가 록펠러와 비교되는 인물은 따로 있는 것이다.[31] 물류센터 작업 중 사고로 작은 택배 상자에 포장되어 버린 조시라는 노동자(진공포장이 되었고 억지로 욱여넣은 상태라서 상자를 열면 몸이 터져 죽음)가 다른 노동자들을 선동해서 파업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일으키려 하자 그를 납치한 다음 경품이 들어있다고 아이들을 속여 상자를 뜯게 만들어 죽인다거나, 아마존닷컴에서 판매하는 스마트 스피커인 아마존 에코를 통해서 마을 주민들을 도청하거나, 자전거 퍼레이드에서 우승하지 못하게 된 주인공 4인방 중 스탠 마시, 에릭 카트먼, 카일 브로플로브스키가 자전거 퍼레이드에 억지로 트집을 잡아서 취소시켜 달라고 하자 아마존 에코를 통해서 케니를 죽이는 등 악역으로 등장한다. 악역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특유의 스킨헤드가 굉장히 과장된 형태로 묘사된다. 힘줄이 두드러지게 튀어나왔고 뒤통수에는 구형 물체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것이 묘하게 고환을 연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