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기계화보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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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육군 보병사단 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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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비사단 기계화사단 ■ 지역방위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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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1機械化步兵師團
The 11th Mechanized Infantry Division
파일:attachment/11xx.jpg

(11사단 홈페이지)
1. 개요
2. 역사
3. 상세
4. 특징
5. 예하부대
5.1. 사단직할
5.2. (구) 신병교육대
5.3. 제9기계화보병여단(투호여단)
5.3.1. 여단본부
5.3.2. 9여단 군수지원대대
5.3.3. 127기계화보병대대(돌격대대)
5.3.4. 128기계화보병대대(투호대대)
5.3.5. 56전차대대(백호대대)
5.4. 제13기계화보병여단(사자여단)
5.4.1. 여단본부
5.4.2. 13여단 군수지원대대
5.4.3. 112기계화보병대대(진격대대)
5.4.4. 129기계화보병대대(충무대대)
5.4.5. 36전차대대(천마대대)
5.5. 제61기계화보병여단(결전여단)
5.5.1. 여단본부
5.5.2. 61여단 군수지원대대
5.5.3. 108기계화보병대대(철마대대)
5.5.4. 109기계화보병대대(무적번개대대)
5.5.5. 12전차대대(질풍)
5.6. 포병여단(시그마여단)
5.6.1. 여단본부
5.6.2. 55포병대대(청룡대대)
5.6.3. 78포병대대(승리대대)
5.6.4. 91포병대대(백호대대)
5.6.5. 955포병대대(흑룡대대)
5.7. 개편 후 사라진 부대
5.7.1. (구)20기계화보병여단(제20기갑여단으로 독립)
5.7.2. (구)11사단 포병여단본부
5.7.3. (구)20포병대대(황룡대대, 2019년 10월 부 해체)
5.7.4. 53포병대대(백룡대대, 제20기갑여단으로 배속 이전)
5.7.5. 59전차대대(제20기갑여단으로 배속 이전)
6. 사단가
7. 기타
7.1. 매봉산
7.2. 태권도
7.3. 사건사고


1. 개요[편집]




파일:11사단부대마크.jpg
한국 육군의 기계화보병사단이다. 부대마크는 11을 45도 정도로 눕혀놓은 것이다. 경례구호는 화랑이다. 답변 구호는 노랑,파랑

2. 역사[편집]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8월 27일 경북 영천에서 창설되었다. 1951년 2월 최덕신의 지휘 아래 거창 양민 학살사건을 일으켰으며 전선이 중부에 고정된 뒤로는 설악산, 향로봉 등 주로 동부전선에 배치되어 전투를 벌였다. 종전 시점에는 화천에 배치되어 있었다.

1967년에 수립된 육군 사단 특성화 계획에 따라 육군에 3개 특화사단이 지정됐는데, 이 중 제11보병사단이[1] 1968년 1월 23일부로 상륙작전을 수행하는 상륙사단으로 전환된 과거가 있었으나 나중에 육군 특화사단 체제가 중단되면서 다시 일반보병사단으로 복귀하였다.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에는 제2보병사단과 함께 투입되어 전과를 올렸으나 이 과정에서 한 병사가 전사하였다. 하필이면 전사한 병사가 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 병장이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실은 상병이었고 전사 후 병장으로 특진되었다.

2004년부로 대한민국에서 5번째로 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됐다. (구)20사단수기사다음으로 K-21보병전투장갑차를 전력화 하였고 기갑수색대대에 K-2 전차를 전력화 중이다.

2016년 12월 1일부로 11사단, 8사단, (구)26사단이 제7기동군단으로 배속이 변경되었으며 따라서 상급부대도 제1야전군이 아닌 3야전군으로 변경되었다.이후 제1야전군과 제3야전군의 통합에 따라 지상작전사령부 예하부대로 개편되었다. 결국 원 위치로 돌아온 셈?

2019년 11월 29일 해체된 제20기보사단과 통합되었다.


3. 상세[편집]


강원도 홍천에 제3기갑여단과 함께 주둔 중이다. 이말은 11기계화사단+3기갑여단을 같이 두고 있다가 강행도하해야 하는 동네는 3기갑, 공병도 같이 가야 하는 대규모의 지원이거나 도하가 필요 없는 경우 11기계화사단을 쓴다는 의미이다.[2]

대대급 6주 집중훈련을 가장 처음으로 하는 부대로 선정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공병대대가 이 6주 집중훈련을 4월 23일~ 5월 31까지 받는다고 한다.

2018년 11월 30일에 올라온 통폐합 소식에 의하면 제20기계화보병사단이 추후 해체되고 제11기계화보병사단으로 통합될 예정이다.# 그리고 2019년 11월 29일 통합이 완료되었다.#

여담으로 부대마크가 미 육군 제3보병사단의 마크와 비슷하다.

4. 특징[편집]


서부전선의 수기사, 8사단, 30사단이 담당하는 역할을 동부전선에서는 11사단[3]이 담당한다고 보면 된다.

제3기갑여단과 같이 있으며 같은 임무를 가지고 있다. 1개사단+강행도하가능 1개여단으로 부대도 같이 있고 훈련도 같이 해서 1+1이라고 보면 된다.

작전 반경이 북쪽의 최전방 부대들까지라서 출동이라도 하게 되면 한참을 가게 된다. 동부전선에 유일한 기계화보병사단인데다 한때는 사단급 전방부대임에도 불구하고 군단에 배속되지 않고 곧바로 군사령부 직속이어서 보급순위도 높았지만 편제가 바뀌어서...

보통 사람들은 젓가락 부대라고 불렀었다. 이유는 물론 11이라는 숫자에 있겠지만 이 부대에 떨어지면 너무 고생해서 젓가락처럼 빼빼 마른다고, 별명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개는 이게 가장 많이 언급된다. 요즈음 입대하는 장병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시외버스 터미널로 나가보면 이 부대 출신 어르신들께서 수고한다고 격려해주시는 경우도 있다.

기계화되기 전까지는 행군을 많이 하기로 소문난 사단이었으나 개편 뒤로는 많이 나아졌다.

기계화보병사단 최초로 2011년 정찰대가 천리행군을 했는데 1군 예비사단이어서 훈련이 워낙 많기 때문에 부수적으로 행군도 많은 것이다.[4] 부사관들의 말에 따르면 행군으로 화천까지 가서 훈련한 다음 도로 행군해서 복귀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현재도 그곳까지 가서 훈련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나, 이동은 장갑차 또는 육공 트럭으로 실시한다. 심지어 보병도 아닌 포병이 화천까지 진지공사하러 걸어왔다고도 한다. 거리로 따져보면 왕복 약 150km 정도이다. 예비사단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부대의 대항군 훈련은 기본이고 작계가 범상치 않아서 화천, 인제까지 가는 경우도 많았다. 돌아올 때는 통신부대 등 몇 부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행군으로 왕복했으며 행군을 자주하는 부대만큼 속도도 남달랐다고 한다.(전날 밤에 출발해서 다음 날 오후에 일찍 도착했는데 출발 장소가 화천 27사단 주둔지이다.) 훈련 때면 안 걸어도 되는 보직까지 일부러 행군을 시키는 경우도 많았고 먼저 부대로 돌아왔지만 아직 보병이 걸어오고 있다고 다음날 아침부터 그들이 돌아오는 시간까지 산악행군을 한 적도 있었다. 기계화사단으로 바뀐 지 꽤 지난 2011년에는 사단의 모든 일반 보병부대가 무박 100km한적이 있다. 수색대나 정찰대가 아닌 일반 보병들의 완주률이 엄청 높은편이였는데 이 무박100km 행군 완주를 위해서 40km행군을 한두 달에 한 번 꼴로 했었다. 이쯤되면 장갑차 전차가 주전력인 기계화사단이 아니다 ...

행군을 많이 하던 시절에는 '11사단은 전투화를 한 켤레 더 받는다.'[5]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았다.

기계화보병사단으로 바뀌었다고 훈련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어서 여전히 여러 가지 훈련이 매우 많다. 1군 사령부 직속 예비사단이었기에 강원도 전역을 상대로 대항군 노릇도 하고 여러 훈련들로 인해 8사단과 더불어 연간 훈련 계획표상 훈련수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육군 사단이다. 군복무가 24개월이던 시절에는 보통 전역시 까지 18개 정도의 훈련을 뛰었으며 심한 경우 22개의 훈련(그중에서도 몇 개는 2주)을 뛴 전역자도 있었다. 98년~00년 군번의 경우 3주 훈련과 4주 훈련도 있었다. 한 훈련을 마치고 돌아와 흙과 풀더미로 범벅이 된 훈련장비들을 정비하고 있는 도중에 계획표 상에 없던 새로운 훈련이 1주일 후 시작 된다는 소식을 방송으로 듣고 넋이 나간 상태가 되는 일도 다반사이다. 심지어 군장도 없는 전차병에게 보병 군장을 주어 행군시킨 적도 있다.(전차병은 메고 다니는 군장은 없다.) 물론 군대의 특성상 하나를 주면 하나를 얻는 특징이 있어 훈련이 빡빡한 대신 다른 특별한 임무는 별로 없고 모두가 기대하는 ASP 경계근무 투입 정도가 기다리고 있다. 여타 다른 기계화사단들 보다 훈련이 힘들다고 느끼는 원인은 강원도 라는 작전지역의 특징때문이다. 수기사 만하더라도 시가지를 전시에 작전지역으로 삼기때문에 장갑차로 이동하는 일반보병들이 무리하게 행군하거나 이동시킬 필요가 덜하다. 그에 비해 11사단은 온통 산으로 된 강원도가 주작전 지역이기 때문에 보병들은 훈련장까지만 장갑차로 이동하고 전술훈련은 여타 전방보병부대와 마찬가지로 산을 열심히 탄다.

다른 기계화보병사단들처럼 훈련과 교육, 작업을 하고 돌아오면 없는 일과 쪼개어 각종 정비와 장비 검열에 동원되는 현실이 마주하는데 거기에 아무리 해도 줄어들지 않는 훈련들의 개수까지 더해져 지옥을 선사한다. 덕분에 기계화보병사단으로 바뀐 초창기만 해도 행군하다 죽어도 좋으니 보병시절이 차라리 나았다고 과거를 회상하는 선임이나 간부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포병의 경우 북한도발같은 유사시에는 1군 유일 기계화부대의 포병이라는 명목으로 작계지역인 최전방으로 출동을 했었다. 실제로 2015년 8월에 있었던 서부전선 포격 사건 당시 포병여단 4개대대가 작계지역으로 출동해 화력증원임무를 수행했다. 현재는 통합 후 변경됨.


5. 예하부대[편집]



5.1. 사단직할[편집]


  • 사단본부
  • 공병대대

  • 정비대대
  • 보급수송대대
  • 정찰대
  • 의무근무대
  • 정보통신대대
  • 기갑수색대대
  • 군사경찰대
  • 화생방지원대
  • 방공대대
  • 보충중대


5.2. (구) 신병교육대[편집]


(구)신병교육대는 2007년에 지어진 신 막사로 깨끗하며 생활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과거 쓰이던 구 막사는 단층 일자 형태로서 매우 길었다. 한 방에 한 개 소대가 이용하였고 시설은 냉방은 말할 것도 없고 난방이 극악을 달렸으나 신 막사가 지어졌음에 해결되었다. 현재 구 막사는 종교시설로 이용 중.

신 막사에서는 소대별로 방이 구분된다. 생활관마다 텔레비전이 구비되어 있으나 훈련기간 중에는 사용이 금지된다. 텔레비전 밑 찬장에는 장기, 바둑, 부루마블(!)까지 비치되어 있으나 텔레비전과 마찬가지로 사용금지. 단 퇴소식 당일은 사용이 가능하였다. 또한 드럼세탁기까지 세탁실에 있으며 주말에 개인정비시간을 이용하여 세탁이 가능하다.

신병교육대 치고는 규모가 작은 편이기 때문에 훈련장 간 이동거리가 짧은 경우에 속한다. 제일 먼 곳이 막사에서 1.5km 남짓. 육군훈련소 출신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매우 배아파 한다. 모 여단 본부와 같은 곳에 있다. 여단에서 좀 더 올라가면 신병교육대이다.

내부에 길을 따라 개울이 흐르는데 수질을 장담할 수 없으니 훈련 받고나서 목마르다고 함부로 마셔선 안 된다. 실제로 식중독에 걸렸던 사례가 있으니 주의!

짬밥은 군대 짬밥 중에서는 나름대로 퀄리티가 높다. 취사 도와주시는 아주머니도 계시는 몇 안 되는 훈련소 짬밥이다. 여기 걸린 사람들은 운이 좋은 거다 맛있게 먹자. 다만 이래서 비만소대가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주된 요인이 됐다.

종교활동은 천주교, 불교[6], 개신교가 있으며 불교가 막사와 제일 가깝기 때문에 가장 선호되지만 그때 그때 퍼지는 루머[7]에 따라 사람수가 달라진다. 구막사 시절에는 사단 사령부 인근의 절에서 불교행사를 했는데, 기본으로 국수를 비롯하여 간혹 유명 브랜드 도넛의 짝퉁, 심지어 자장면까지 별식으로 제공한 적이 있어, 한때 법당에 인원이 꽉찬 것도 모자라 밖에도 설 자리가 없어 훈련병들이 2회로 나뉘어 법회에 참석했던 적도 있었다. 한동안 별식에 대한 기대감으로 훈련병 수송작전에 기본적으로 두 대의 사단 대형버스가 동원되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절의 훈련병 우선 정책에, 그들이 먹고 남는 별식을 겨우 받아 먹어야 했던 자대 기간병들의 불만이 폭주하는 기현상도 있어 염불보다 잿밥임을 입증. 천주교는 종교행사 종료 후 부대 복귀시간이 가장 빨랐기 때문에 중식 취사사역에 동원이 되어 종교행사 중 가장 인기가 없었다.

행군은 중의적 표현으로 아름답다. 홍천강을 끼고 한바퀴 휘 돌때 탁 트인 광경이 볼 만하다. 무려 홍천 9경중 하나인 금학산 노일리 부근을 통과하는데, 꽤나 장관이라서, 행군로에 펜션들이 산재해 있는데 여기서 들리는 가가호호 즐거운 소리가 정말 짜증난다. 그리고 여름 시즌엔 행군로 중간에 11사단 유격장이 위치해 있는 탓에 현역들이 유격훈련으로 신나게 구르는 장면을 미리 구경할수도 있다. 유격장 입구 바로 앞에 팬션들이 줄서있다. 훈련병일 땐 좋았지만 막상 자대가서 유격하면 기분 나쁘다 다만 포장도로가 끝나고 비포장 산길로 들어서면 지옥이 시작된다. 상류지라 주먹만한 자갈들이 상당히 많은데 잘못 하면 발목이 나갈수도 있으니 조교나 간부들이 정신차리라고 할때 잘 차리자. 또 잔망 떨어서 수통에 물을 반만 뜨거나 식수 조절을 잘못해 물이 부족하게 되면 30km 행군때 지옥을 맛보게 된다. 하라는대로 하자. 몇년 전에 수통에 물을 1/3만 채웠다가 급성탈수로 기절한 훈련병도 있었다.

2008년 기준 중대마다 훈련 난이도가 천차난별이었다. 어떤 중대는 말년 중대장이 있던 중대였는데, 원래 훈련 커리큘럼보다 1시간, 2시간 일찍 종료될때가 심심치 않게 있었고, 이에 남는 시간은 막사에서 휴식을 취하게 해주었다고 한다. 같은 시기 갓 대위를 단 대위의 모 중대는 FM의 진수를 맛보았었다.

2019년 현재는 해체되어 그 자리에 보충중대가 창설되었다가 다시 해체되고 20기갑여단 소속의 방공중대, 기갑수색중대, 정보중대, 화학중대가 입주하고 있다. 20사단 시절 직할대들의 2중대들이 일괄적으로 이동 및 개편 창설된 것.

이로서 육군 전체적으로 사단별 운영 신교대는 1사단, 5사단, 6사단 3곳을 제외하고 모두 해체되었다.

5.3. 제9기계화보병여단(투호여단)[편집]



5.3.1. 여단본부[편집]


홍천에서도 가장 촌동네인 시동에 위치해있다. 제9보병연대가 전신이다. 시동 안쪽으로 들어가면 가까이에 제3기갑여단이 위치해 있다. 여단본부 입구에는 호랑이 동상이 세워져 있다. 촌동네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편의점이나 적절한 동네 맛집 정도는 매우 가까이 붙어있기 때문에 간부들이 자주 마실나온다. 현재 11사단장인 강신철 소장이 대령 시절에 9여단장이었으며 중대장 시절에는 20사단에서 중대장직을 수행 하였다.

최근 사격장 관련 민원과 민간지역 공사 등으로 골치를 썩고 있다고 한다.


5.3.2. 9여단 군수지원대대[편집]




5.3.3. 127기계화보병대대(돌격대대)[편집]


시동에 위치한 9여단 예하 기보대대. 128대대와 울타리 하나를 두고 붙어있는 구조이다. 또 여단 본부가 길 건너편에 있다보니 부대 위치가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막사, 취사장, BOQ, 창고 등 모두 신축건물이라 환경은 좋은 편이다.


5.3.4. 128기계화보병대대(투호대대)[편집]


128대대에서 울타리만 넘으면 127대대로 넘어 갈 수 있다. 위병소 앞에 구광사란 절이 있으며 주말에 종교활동 갈때에 매우 편하다. 막사는 신막사인데 취사장이 구형 건물이라 위생뿐만 아니라 설거지 하는곳 배수상태가 매우 좋지않다. 배식하는 소대는 취사장 청소할 때마다 그 더러운 물 빼느라 고생이다.


5.3.5. 56전차대대(백호대대)[편집]


9여단 중 제일 멀리 떨어져 있는 부대로 127대대와 걸어서 약 10분~15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위에서 말한 제3기갑여단과 철문을 사이에 두고 붙어있다.

동네 맛집이 근처에 있는 여단본부, 타부대와 동떨어져있다보니 위병소 밖으로 보이는 것은 논과 산밖에 없다. 부대의 규모나 인원이 작기 때문에 지내다보면 담당이 아니더라도 대충 부대가 돌아가는 상황이나 타 중대원들 얼굴들을 다 알게된다.
https://youtu.be/5kqRJaNvb40
https://youtu.be/fLJGPXsCAzg



5.4. 제13기계화보병여단(사자여단)[편집]



5.4.1. 여단본부[편집]


제13보병연대가 전신이다. 다만 이 연대는 한국전쟁 초반 제1보병사단 소속으로 임진강과 파주 방어전에서 대대수준까지 전멸당한 뒤 5사단 15보병연대를 보충하고 15연대장이었던 최영희 대령도 해당 연대장으로 임명함으로서 3개 대대 체계로 재건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 연대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15연대 출신 장병들이 호칭문제(13연대 호칭)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고, 이를 수렴한 연대장의 건의로 육본 일반명령(육53호)에 의거 다부동 전투 말기인 8월 25일부로 15연대로 개칭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제11보병사단이 신규 창설될 때 그것과 동일한 제13보병연대를 신설함으로서 부활하였으나, 구 13연대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8]

현재 여단본부와 20기갑여단 소속의 방공중대, 기갑수색중대, 정보중대, 화학중대가 같이 주둔하고 있다. 여단본부는 11사단 시절 그대로이고 신교대가 위치하던 곳에 20기갑여단 직할중대들이 입주한 것.


5.4.2. 13여단 군수지원대대[편집]




5.4.3. 112기계화보병대대(진격대대)[편집]


추가바람.


5.4.4. 129기계화보병대대(충무대대)[편집]




관련기사

코뿔소 마크가 인상적인 부대. 비공식적으로 코뿔소대대라 부른다. 북방사거리 근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대 정문이 오르막길이고 출입구 앞에 탱크 모형이 떡하니 서있는게 인상적이다. 시설이 꽤 준수한 편이고 여단본부 근방에 위치해 있다. k200 계열 장갑차로 무장하고있으며 중대는 전투소대 3개와 화기반 1개로 이뤄져있다.

5.4.5. 36전차대대(천마대대)[편집]


부대개편으로 인래 59전차가 20기갑여단으로 가고 대신 20여단의 36전차가 13여단 예하로 들어오게 되었다.

부지는 거의 완벽한 평지에 가깝고 [9] 부대 뒤 쪽으로 홍천강이 흐르고 있으며, 여단 본부와 마찬가지로 읍내에 위치한 사단 본부를 하고는 읍내 접근성이 가장 좋은 부대이기도 하다. 입지조건으로는 최고의 환경을 자랑한다.

이러한 이유로 사단 내 간부 체력 측정이라든가 보여주기 식 이벤트성 행사를 이곳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청춘불패 시즌1의 군대체험 촬영을 이 대대에서 했다. [10] 물론 대대 인원들은 촬영에 사용 할 장비나 막사 청소 환경 정리로 2주 넘게 고생했지만...[11]


5.5. 제61기계화보병여단(결전여단)[편집]



5.5.1. 여단본부[편집]


본래는 20사단 출신 부대로 통합되면서 11사단으로 넘어왔다.

이름이 화랑여단이라 사단과 겹쳐서 변경될 소지가 있었고, 결국 20사단 예하 여단 중 유일하게 존속한다는 점을 활용하여 '결전여단'으로 명칭을 바꿨다. 해체된 20사단 애칭이 결전사단이기 때문에 61여단이 결전사단의 정신을 이어받는다는 뜻이다.

여단을 중심으로 벽화 그리기를 자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통 대대의 벽을 그리는 작업을 했지만 2013년에는 양평의 지역사업을 위하여 면사무소와 연합하여 실질적으로는 군인들뿐... 마을, 강가 다리를 벽화를 그렸다. 하지만 높은 분들에 의해 현재는 미완성 상태로 남아있고, 또한 소방차가 지나가야 할 길을 위해 마을을 전부 허물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결국 돈 낭비 이 여단이 좋은 것은 벽화 파견은 자주 뽑는다는 것. 본래 이곳 소속이던 110기보대대가 양평종합훈련장을 담당했으나 현재는 해당 부대가 해체되어 누가 관리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여단 위치가 양평이다보니 이 여단 소속 부대가 관리할 것으로 추정.


5.5.2. 61여단 군수지원대대[편집]



부대 위치는 예전 20기계화보병사단 소속에 있는 111기계화보병대대 위치 막사를 이용해서 61기계화보병여단 군수지원대대를 이용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5.5.3. 108기계화보병대대(철마대대)[편집]


여단 내에서 막사 시설이 가장 좋다고 평가받는 곳이다.[12] 하지만 단지 그것 뿐이다...


5.5.4. 109기계화보병대대(무적번개대대)[편집]



본래는 20사 62여단 소속이었지만 통폐합으로 62여단이 해체되면서 61여단과 함께 11사단 소속으로 넘어왔다. 신막사 개선이 되어 있어 최고의 시설을 자랑한다고 한다.
109대대는 20사단에 편성 될 당시 일정 빡빡하기로 소문난 62여단에서 가장 빡세기로 유명하다.[13] 병영 프로젝트 완공이 2012년에 완료되어 시설은 사단 내에서 최고급이라 꼽히긴 하지만 정작 설치해놓은 에어컨[14], 통풍이 잘 되도록 설계하여 겨울에는 생활관이 영하의 온도를 유지하는 등 매우 추워 믿지 못하겠지만 침낭번데기가 되어 취침을 취한다. 차라리 구막사는 온돌이라 뜨끈하기라도 했지...겨울에는 1층에 위치한 1중대는 칼바람에 얼어죽을 지경이고, 여름에는 3층에 위치한 3중대가 쪄죽는다. 3중대 위가 옥상이라 한낮에 달궈진 콘크리트의 열기가 밤에도 뿜어져 나와 가장 덥다.
신막사 건축 당시 3중대 구막사는 헐렸기 때문에 몇 년간 컨테이너 막사에서 생활하였다. 다만 공사 도중 건축회사가 '부도' 나버리는 악재가 있어 시공사를 재선정하는 과정을 거치느라 공사가 중단되어 '꿈의 신막사'는 오랜기간 '흉물'로 방치되어있었다.우여곡절 끝에 완공되어 2011년 12월 신막사로의 입주를 시작하였다. 이때 전입 온 신병 개꿀
컨테이너 막사가 보기에는 불편할 것 같아도, 내부에 에어컨과 전기장판이 시공되어있어 전 중대 막사 중에 가장 좋았다. 살아보지 않으면 모른다. 어느정도였냐면, 더운 한여름 밤에도 에어컨을 춥게 켜고, 동시에 바닥의 전기장판으로 바닥을 뜨뜻하게(...) 하는 전기 낭비가 가능했다. 다른 중대 막사였다면 꿈도 못 꿀 상황. 게다가 간부들이 컨테이너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는 이상 생활관 내에서 뭘 하는지 알 수 없어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었다.부조리 가능? 대신 샤워장과 화장실이 많이 불편했던 게 사실이다.
최근 진짜사나이에 방영된 부대.등장 부사관들의 모습, 특히 S상사와 J상사는 전역자들에게 소름끼치게 악랄한 추억을 되새겨준다 이전 당시만 해도 폐급의 구막사를 안 써도 된다며 다들 좋아했지만 막상 이전을 하고나선 컨테이너에서 지내던 3 중대를 제외하곤 폐급의 구막사를 그리워하는 여론이 많았다. 차고지까지 거리 늘었지, 타 중대랑 같은 건물을 사용하여 마주치는 간부늘었지, 노래방 등 여가시설이 모두 공용이 되어버렸지, 침대, 관물대 빼곤 나아진 게 없지, 선진병영프로젝트랍시고 14개 생활관에 같은 계급끼리 쑤셔박아버리고생활관마다 분대장 개념(생활관 실장이라고 부른다) 비슷한 병사를 두어 할당량은 더 늘어 말이 엄청 많았다.

* 61여단소속의 110기보대대 해체 후 부대번호(3692부대)를 모체로 62여단 111기보대대주둔지에서 군수지원대대창설
62여단 109기보대대는 그대로 61여단 소속으로 배속 변경
현재 구: 62여단 본부에는 7군단예하 7포병여단(이전 이천시에 있던부대) 본부와 창설된 군수지원대대가 주둔


5.5.5. 12전차대대(질풍)[편집]


61여단 군인아파트 바로 옆에 있는 전차대대.

이 부대의 PX는 원래 부대 중심에 있는 식당 근처에 있었으나 95년 초 새벽에 전기 누전으로 추정되는 화재로 전소[15]되어 한동안 PX 없이 훈련소처럼 1주일에 한번 들러주는 꽃마차를 기다려야 했었다. 얼마 후 지금의 코딱지만한 PX가 위병소 앞에 새로 지어졌다. 연병장 끝에 위치한 본부중대는 낡은 구막사 그대로 페치카를 기름보일러로 개조한 막사[16]로 94년 11월 개축 완료당시는 항시 뜨거운 물을 쏟아내어 타 전투중대의 부러움을 샀으나, 이듬해 통합막사가 완료 되면서 오히려 일반 전투중대의 1인 침대와 철제 관물대를 부러워하게 되었다.

현재 K-2 흑표를 13대 초도 배치 완료하였다. 여기 병사/간부 모두 K2를 X2라고들 곱씹는다. 이유는 남들(K1에 비해) 2배 빡세서(...)

이 부대 대대장실과 현관의 모형은 수준급이라고 한다



5.6. 포병여단(시그마여단)[편집]



5.6.1. 여단본부[편집]


20사단 포병여단이 통합사단의 포병여단으로 선정되었다. 따라서 구 11사단 포병여단 본부는 해체. 따라서 여단본부와 2개 대대는 양평에, 나머지 2개 대대는 홍천 양덕원리(홍천의 서쪽 끝에 있는 작은 마을로 양평 용두리와 붙어있다.)에 위치하게 되었다. 강원도와 경기도로 나뉘긴 했지만 두 지역이 사실 붙어있기 때문에 거리만 조금 멀어졌을 뿐 완전히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이 말은 곧 여단 주관 검열에 4개 대대 모두 시간 내에 털린다는 이야기...

여단본부 위치는 구 20사단 본부 근처에 있다.


5.6.2. 55포병대대(청룡대대)[편집]


20포병대대와 함께 포병여단 선봉대대를 번갈아 맡던 역사가 있다. 부대 지형자체가 언덕이다. 위병소로 가는 길목 초입부터 부대 맨 위에 있는 수송부까지 꾸준하게 오르막길로 경사가 상당하여 걸어올라가기가 조금 짜증난다.

2010년 기준 BTL 공사 전 각 포대의 위치는 위병소에서 올라가는 기준으로 1포대, 2포대(의무대 포함), 본부포대, 3포대 순이었으며, 건물 가운데에 행정반이 있는 한 일자(一자)방식의, 양쪽에 일자침상이 있는 구식 막사였다. 현재는 통합 신형막사. 제일 꼭대기에는 수송부와 궤도정비동이 있으며 위의 산에 간이 훈련장 비스무리한 게 있었다. 취사장 후문에서 오른쪽 밑으로 내려가면 철조망 가운데 출입가능한 문이 있는데 이 문을 열고 나가서 정화조에서 파낸 짬찌꺼기들을 파묻곤 한다.

구보 중 말년병장들은 내리막 초입에 있는 1종창고로 몰래 빠져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있다가 내려갔다 올라오는 병력들 사이에 슬그머니 끼어든다.

제13기계화보병여단과 협력 관계로 화력지원장교를 이쪽으로 파견보낸다.

16-17년 당시 대대장 중령 ㅇㅇㅇ이 폭언과 욕설 등 하급자, 특히 부사관들에 대해 인격모독을 심각하게 하였고 예하 포대장들에게도 가혹행위를 지시했다는 것이 대대장 전출 후 간부들의 집단 고발로 인해 드러나 매우 시끄러웠다고 한다. 거기다 추가적으로 사단 행정장교와 대대 내 간부들에게 강압적으로 지시한 행정비리까지 추가로 드러나면서 육사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군생활까지 끝났다. 당시 이러한 콩가루 상태라서 부대의 분위기가 매우 나빴으나 후임 대대장으로 오신 분이 사실상 말년(대령 포기한 중령)이신데다 중령 임기 초기에 53포병대대 대대장을 하셔서 11사단 포병 부사관들과 관계가 좋았고 또한 사람을 존중해주는 분이라 대대 분위기가 상당히 좋아졌다.


5.6.3. 78포병대대(승리대대)[편집]


밖에서 봤을 때는 신막사라 좋아보이지만 실제로 거주해보면 별로 좋지 않다. 2014년 3월부로 구막사 리모델링을 위한 컨테이너 생활에 들어갔다. 대대장 계획으로는 8개월 만에 완공 예정이라고 했는데 정작 실제 작업부에게 물어보니 최소 2년은 걸린다고...사실 이 계획도 1년이나 연기되어 14년에 하게 되었다. 승리대대라는 이름이 있지만 비공식적으로 78포병대대의 별칭은 맘모스 대대다. 부대 마크도 맘모스이고 PX 이름도 맘모스 PX.

추가로 최근에 구닥다리 위병소와 위병조장실을 합친 멋진 면회실이 생겼다. 그리고 2018년도부터 장비편제가 K-9으로 변경되면서 대대적인 공사를 하고 있었다. 오래된 취사장은 쓰지않고 방치중인 BOQ를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신건물로 공사할 예정이고 덤으로 보수대대 차량이 와서 정비를 같이 하고 있다.

전투체육시간에서는 부대 바로 앞에 있는 흑천에서 체력단련을 하는데 상병장할 것 없이 해야한다...

61여단을 직접지원한다.


5.6.4. 91포병대대(백호대대)[편집]


신막사이므로 시설이 매우 좋다. 20사단 시절에는 최고의 시설로 이름을 날렸으나 11사단 통폐합 후에는 홍천 내에서 대대급 시설 넘사벽으로 알려졌던 20포병대대 주둔지를 넘겨받은 955대대와 막사의 편의성 탑을 다투고 있다.[17] 본래는 이곳 대대와 955대대가 각각 자기 사단에서 지원포병으로 K-9를 굴리고 있었는데 현재는 기보여단과의 거리 문제로 이쪽이 사단 일반지원임무를 이어받았다.


5.6.5. 955포병대대(흑룡대대)[편집]


본래는 양덕원으로 진입하는 입구길에 폐허 수준의 주둔지가 있었으나 2019년 10월 부로 20포병대대와 통합되면서 주둔지를 20대대의 장소로 옮겼다.

현재는 통폐합 이후 20포병대대의 모든 신형 시설로 이사한 상태이다. 이 주둔지는 사단 내에서도 역대급 최고 시설로 찬사를 받았던 곳이다.[18] 이 신형 건물은 본청과 휴게동으로 나누어져있는데 2층이 구름다리로 연결되어있다. 휴게동(1층은 취사반이고 2층은 PX와 오락실, 컴퓨터실[19]과 노래방[20], 목욕탕 고쳐지는 일이 절대 없는 만년고장시설. 시공 때부터 1층에 물이 새는 등 설계에 문제가 있었던 부실공사...)이 있는 신관 2층으로 넘어갈 수 있다. 연병장 옆에는 작은 테니스장 코트가 있어 중장년 간부들이나 테니스를 친 경험이 있는 병사들이 일과 이후 사용한다. 병사들끼리 치고 있어도 딱히 터치는 없는 편. 본청 3층에는 당구대 4개가 설치되어 있어 휴식시간에 포대별로 할당된 곳을 사용한다.

홍천이나 강원도 내륙 쪽에서 비발디 파크로 들어가는 길목 상[21]에 부대가 위치해있는데 해당 길이 인도가 깔려있지 않아 도보로 나가기가 상당히 위험하다. 양덕원 읍내까지는 도보로 15~20분 조금 넘게 걸린다. 때문에 휴가나 외출은 대대 25인승 버스로 실어나른다. 간부들의 경우 도보로 갈 때는 살짝 나간 후 마을에 들어가서 이동하도록 지침이 내려와있다. 이렇다보니 겨울에는 스키장에 가기 위해 미친듯이 내달리는 외제차들이 위병소 앞을 슝슝 지나가기 때문에 운전병들이나 근무병들이 가끔 스트레스를 받는다. 추가로 원래 비발디파크로 가려면 꼬불꼬불한 지방도를 타고 산을 넘어가야 했으나 넓은 터널이 새로 뚫리는 바람에 교통량이 늘어났다. 또한 해당 길을 통해야만 매봉산 훈련장을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타 부대 훈련이 잡힐 때마다 위병소나 그 옆에 자리잡고 있는 BOQ에서는 궤도 소리가 미친듯이 울려퍼진다. 특히 겨울 훈련 때 이동하는 궤도장비들 사이로 외제차들이 답답한 듯 안절부절 못하는 꼴을 보는 것도 재밌는 풍경이다.

비발디 파크가 상황 발생 시 포병여단의 관할구역이기도 하기 때문에 가끔 스키장에 군복입은 아저씨들이 출몰한다면 그들은 필시 훈련이나 검열 전 정찰을 하러 온 것이라 보면 된다.

부대 근처에는 사이비 종교 시설로 보이는 곳이 하나 있다. 군부대마냥 입구를 막고 초소를 운용하고 있어 여러 소문이 무성하다. 심지어 군부대 시설처럼 내부가 위성사진으로는 산림처리가 되어있어 도대체 어떤 세력이 이 곳을 차지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병사들이 많았다.

부대 옆으로 기갑수색대대와 공용으로 사용하는 독신간부아파트가 두 동 있다. 보통 부모님들이 면회오거나 타 부대에서 이쪽으로 방문할 때 찍는 주소가 이 아파트의 주소. 그 외 독신간부들은 영내의 간부숙소에서 생활하고 BOQ, BEQ 구분없이 부사관과 장교가 같은 건물에서 지낸다. 1인 1실이기 때문에 장교들은 중위 진급 후 숙소이동을 할 때 쾌적한 원룸생활의 BOQ이냐, 영외의 자유가 있는 아파트냐를 두고 갈등하지만 방의 수를 맞춰야 해서 결국 한두명을 빼고는 모두 아파트로 이사한다.

부대 뒤편으로 작은 개울 줄기가 흐르고 있는데 장마 때는 물이 많아서 괜찮으나 비가 한참 오지 않는 늦여름날에는 개울이 마르고 어마어마한 이끼 틈에서 모기가 대량번식하기 때문에 창문을 잘못 열면 온 몸의 피부가 뜯긴다. 아주 예전에는 이 개울에서 민물고기 낚시가 가능하여 짬이 높은 부사관들은 낚시를 해 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부대 근처 농공단지와 마을에서 흘러나오는 생활폐수로 인해 상당히 더러워졌다. 그나마 비가 많이 내리면 건더기가 싹 쓸려내려가 많이 깨끗해진 물이 시원하게 흘러내린다.

통폐합 이전 구 주둔지 근처에 고등학교가 있어서 탄약고 근무시 등하교시간에 맞춰서 망원경으로 고등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부대 옆에는 종교활동 시설인 절이 있었으며, 독립포대에 교회가 있다. 통폐합 이후 독립포대 주둔지는 20대대 시설로 들어가면서 더이상 사용하지 않고 토지는 여전히 군부대용이라 교회만 조용하게 살아있다. 천주교는 차 타고 홍천 시내로 간다.

이 구 주둔지의 부지가 넓은 편이라 농담 아니고 정말 각 포대마다 미니사이즈의 연병장이 있다. 대대 위병소에서 1포대로 가는 길목에 대대 목욕탕이 있으며 1포대의 경우 포대 연병장 바로 밑이 포상 및 정비동이며 한 달에 한 번씩 2포대와 번갈아가며 탄약고 근무를 맡기 때문에 시기가 맞아떨어진다면 전투장비지휘검열 때 2포대 화포에서 모자란 물품을 빼돌리기 좋았다. 단, 연병장 앞 언덕, 강당, 절, 탄약고등 근처 부지가 넓어서 예초 시즌 때 죽어났다. 2포대는 부대내에 이상한 언덕같은 곳에 파묻혀 있다. 가장 구닥다리 시설이지만 BTL에서 탈락한 이유는 기보사단 개편 문제로 통폐합 예정 부대였기 때문이었다.

본래는 사단 일반지원임무였으나 개편 후 20대대의 9여단 지원임무를 넘겨받았다.


5.7. 개편 후 사라진 부대[편집]



5.7.1. (구)20기계화보병여단(제20기갑여단으로 독립)[편집]


2019년 11월 29일 제20기계화보병사단이 11사단으로 통합되면서 20여단은 독립하여 제3군단 직할 제20기갑여단으로 개편되었다. 동홍천IC 근처 화촌면에 위치하고 있는 부대로 통칭 독수리 여단. 다만 73여단이 26사단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8사단에 배속되면서 불무리 사단의 이름을 이어받아 불무리여단으로 불리고 있는 사례가 있다보니 이쪽도 이름이 바뀔 수도 있다. 다만 이쪽은 원래부터 11사단 소속이었다가 독립한 것이기 때문에 이름이 바뀔 가능성은 낮은 편. 일단 부대마크에도 독수리가 들어가는 디자인이다.


5.7.2. (구)11사단 포병여단본부[편집]


홍천에서 양평으로 넘어가는 길목의 작은 마을인 양덕원에 위치해 있다. 바로 앞에 화랑마을 아파트[22]가 있어서 상당수의 간부들이 도보로 출퇴근했다.

본래는 포룡여단이라 불렸는데 이 의미는 사실 이 의미는 Four 龍 여단... 예하부대가 각각 황룡, 청룡, 백룡, 흑룡으로 4개 부대였기 때문에 네 마리의 용이라고 하여 포룡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물론 여단장에 따라 'Four룡이 외계어도 아니고 뭐냐? 포병의 용들이니 砲龍이 맞는 것 아니냐?' 하는 분도 계셨다...

현재는 통합 후 20사단의 포병여단 본부가 존속되면서 이쪽은 해체되었다.


5.7.3. (구)20포병대대(황룡대대, 2019년 10월 부 해체)[편집]


전통적으로 55포병대대와 함께 포병여단의 선봉대대를 엎치락뒤치락 하였다는 역사가 있고 BTL의 효과를 가장 크게 보았다고 알려진 대대였다. 2019년 10월 17일 부로 임무가 해제되고 955대대에 흡수 통합되었다. 20대대의 신형 막사와 진지는 955대대 소속으로 변경. 후술하는 내용은 통폐합 이전의 내용이다.

사단 내에서 가장 시설이 좋은 부대로 소문나 있다. 또한 부대 부지가 완전히 평지이기 때문에 언덕길의 고통이 전혀 없다. 문제는 이렇다보니 타 부대에서 홍천 인근으로 훈련을 나오면 어떻게든 숙영지를 20포병대대에 협조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그 덕에 어마어마한 요청 전화로 교육장교본부포대 행정보급관이 매우 빡치는 일이 많았다. 호국훈련 때는 훈련에 참여를 안 해도 시달리고, 참여를 해도 주둔지 비어있을 테니 빌려달라고 전화한다... 언덕이 없으니 굳이 연병장이 아니더라도 텐트 칠 곳이 차고 넘치며 특히 기보나 전차부대의 경우 궤도장비도 편하게 주차할 수 있기 때문. 문제는 연병장을 궤도로 갈아버리거나 정문 끝부분을 부수고 튀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결국 후속조치는 본부포대와 작전과가 다 한다... 혹은 당직사령이 아침운동 땡땡이치는 나이롱들을 시켜 발로 연병장을 다지게 했다.

홍천이나 강원도 내륙 쪽에서 비발디 파크로 들어가는 길목에 주둔지가 있다보니 이러한 지리적 특징을 이용해 자차가 있는 젊은 독신간부들은 파티를 짜서 근무가 없는 주말마다 스키를 타러 다녔다. 또 일부 간부는 병사들을 데리고 적절히 조치한 분대외출로 하여 가기도 했었다.

간부와 병사 간에 매우 친밀한 부대였다. 분위기는 포대별로 분위기가 조금 달랐는데 본부포대는 4개 포대 중 가장 군기가 없고 약간 개인주의 성향이 강했던 반면 3포대는 가장 강한 군기로 유명했다. 그러다보니 극과 극은 충돌한다고 본부포대와 3포대는 오랜 시간 동안 사이가 매우 나빴었으나[23] 18년 이후로는 포대 간 대립하던 세대가 전역한데다 상급부대 때문에 대대 전체가 힘들어지자 어느 정도 괜찮은 사이로 회복한 듯 하다.[24]

여담으로 본부포대는 특성 상 군대에 늦게 오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간부들이 병사들하고 말하기가 애매하다고 느끼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이렇다보니 사적인 자리에선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2015~16년, 본부에는 나이많은 간호사 출신의 의무병이 있었는데 포대 분위기를 온화하게 주도하는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이 사람은 모든 후임들에게도 항상 존대로 대화하고 타 포대여도 만나면 먹을 것을 많이 사주는데다 현직 간호사 출신답게 의무대에서 많은 도움을 주다보니 인기가 많았다. 당시 군의관이 좀 심각한 근무태만자다보니 이로 인해 사이가 안 좋았다는 소문이 있다. 이 사람은 원래 간호장교를 지원하였으나 나이(대학 자퇴 후 간호학과 재입학을 하느라 입영연기가 꼬였다고 한다.)와 경력 등 여러 제한사항[25]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병으로 입대했다

레토나가 버티지 못하는 부대로 소문이 있는데 실제로 편제에 꽉 차도록 레토나가 두 대 있었는데 16년 호국훈련 통제관 파견 때 민간 덤프트럭이 정차해있던 레토나를 들이박는 교통사고를 내어 결국 이 차량은 파손되어 입고되었고 한 대는 17년 KCTC 훈련 부대에 임대해줬다가 엔진 등 속이 완전히 박살나서 돌아와 이것 역시 입고를 보내게 되었다. 결국 민수 코란도 한 대로 돌려막기를 하고 있으며 야간에 환자가 여러 명 발생할 때는 대대장의 승인 하에 1호차 코란도까지 동원하여 사단의무대나 병원까지 돌아다닌다.

제9기계화보병여단과 협력 관계로 화력지원장교를 이쪽으로 파견보냈다. 그 대가로 이쪽 기보여단이 관리하는 개인화기 사격장을 쓸 때 조금 우선권이 있는듯.

매봉산 훈련장에 가장 가까이 있는 부대라 여기에서 박격포 사격이 있으면 통제관을 보내야만 한다. 11사단 예하 대대들 뿐만 아니라 강원 남부의 향토사단 사격 시에도 늘 여기에서 나간다.

영점사격장을 부대 뒤 개울 건너편에 가지고 있는데 이 사격장 옆에 소규모 군용 교회가 새로 건립되어 기독교 종교행사는 그곳에서 한다. 불교와 천주교는 포병여단 내 기타 대대들과 같은 곳에서 실시했다.


5.7.4. 53포병대대(백룡대대, 제20기갑여단으로 배속 이전)[편집]


유일하게 홍천 시내에 배치되어있는 포병대대였고 본래부터 20기계화보병여단을 지원했기에 제20기갑여단 독립창설에 따라 소속부대가 바뀌었다.


5.7.5. 59전차대대(제20기갑여단으로 배속 이전)[편집]


13여단 소속이었으나 개편으로 인해 20여단으로 전환 후 20기갑여단으로 개편됨에 따라 함께 독립했다.


6. 사단가[편집]


1절
지키자 삼천리 화려한 강토
지키자 반만년 찬란한 전통
화랑이 가는곳 승리가 온다
우리는 빛나는 화랑사단 용사

2절
조국에 몸바친 젊은전우여
들어라 빛나는 정의의 총검
받들자 바치자 빛나는 충혼
우리는 영광의 화랑사단 용사

3절
하늘에 호국용이 용트름 친다.
신라의 빛난문화 화랑의 자랑
나가자 빛내자 화랑의 정신
우리는 씩씩한 화랑사단 용사

4절
영천벌 높이든 구국의 깃발
조국을 지키는 화랑부대다
노도같이 휩쓸며 적을 무찌른
우리는 무적의 화랑사단 용사


7. 기타[편집]



7.1. 매봉산[편집]


홍천과 강원도 내륙에서 비발디파크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산. 위치상 가장 가까운 부대는 2019년 기준 955포병대대[26]이지만 포병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28] 따라서 포병들은 보통 꿈의 도시 화천 내의 7사단 민통선 너머 포병사격장이나 6, 15사단등의 부대 내 부지를[29] 타 군단 지역을 빌려쓴다. 기보대대들이 전용으로 사용하는 곳이다보니 59전차대대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관리소대장과 병력들이 파견나온다. 59전차대대에서 관리하는 이유는 매봉산 훈련 부지가 59전차대대 소속이기 때문이다.[30] 부지는 어마어마하게 넓고 박격포 사격을 11사단뿐만 아니라 강원 남부 향토사단도 빌려서 사용한다. 원래는 20포병대대가 가장 가까운 부대이기 때문에 매봉산에서 박격포 사격이 있을 때마다 사격통제관을 파견보냈는데 통폐합 후 최신시설을 이어받은 955포병대대가 이 짬까지 물려받았다.

직할대를 제외한 모든 11사단 출신들이 이 산을 기억하는 이유는 바로 공포의 방화지대 공사 때문이다. 9, 13, 20, 포병여단 예하 모든 대대가 동원되어 해마다 구역을 순환하면서 방화지대 공사를 하는데 공사지역이 하나같이 험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덜 험한 지역이면 관리구역이 어마어마하게 넓고, 구역이 좁다 싶으면 서있기도 힘들 정도에다 애초에 모든 구역으로 가기 위한 산길이 답이 없다... 아예 처음부터 도보로 가는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까지는 5t 트럭을 타고 이동하는데 하필 하차하는 공간이 생각보다 좁아서 운전병 한 명만 어리버리해도 개판이 되어버린다. 20여단은 독립하여 이 임무에서 빠졌고 61여단이 매봉산을 짬맞을 것으로 예측된다. 그럼 종훈장은 누가 하지?


7.2. 태권도[편집]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보병사단 당시 이 부대의 태권도 훈련은 상상초월이었다. 근 10년 가까이 전군 태권도 대회에서 다수의 우승을 차지하고 결승상대는 해병대일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자부심도 엄청났다. 전 사단 대원의 평시 태권도 훈련도 강도가 높아서 단증을 따지 못하는 부대원에게는 말년 병장이 될때까지 두고 두고 간부와 고참에게 갈굴거리를 제공했다고 한다. 태권도 단증이야 누구나 다 따는 것 아니냐 하겠지만 문제는 이 부대의 태권도 단증 심사. 정확히 말하면 단급심사. 엄청나게 까다로운 기준으로 심사를 보며 제대로 단련을 안하거나 체육에 소질이 부족한 부대원은 당연히 탈락하고,사회에서2단 취득한 병사가 기준미달이라며 초단에 도전 다시 취득하게 하였다. 운동 꽤 했다는 부대원들도 심심찮게 떨어지곤 했다. 심지어 태권도 때문에 자살을 한 병사도 있었다고 한다. 그 부심 아니랄까봐 혹한기 훈련 당시 태권도 도복을 설상 위장복 대신 입고 훈련을 했을 정도.....2015년 현재는 타 사단과 비슷해졌다. 일부 태권도 유단자에 한해 교육하고 파견보내는 정도.


7.3. 사건사고[편집]


2013년 6월 17일, 악성 뇌종양을 앓던 신성민 상병이 숨졌다. 작년 12월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했는데, 중대장이었던 서선석 대위[31]는 꾀병이라고 하면서 한 달 동안 방치되었고, 결국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국군수도병원과 일반병원을 오가다 5월 14일부터 급격히 증세가 나빠졌고 폐렴까지 겹치면서 결국 사망했다. 해당 상병은 내무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간부, 특히 대대에서 성질 더러운 것으로 유명했던 중대장의 눈 밖에 난 병사였고 평소 신상병의 행실을 아니꼽게 본 중대장이 임의로 꾀병이라고 판단해버린 것. 신성민 상병이 허무하게 죽었는데도 말 그대로 인간 말종이자 살인마 그 중대장 놈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다른 부대로 전근갈 때까지 자기가 병사 하나를 죽였다는 사실을 무용담처럼 떠벌리며 뻔뻔하게 잘 있다가 전역했다.

2009년 10월 부근 즈음부터 위, 아래 2개월 동기제를 시행 중이다. 그렇지만 사단 예하 모든 부대가 이를 따르지는 않는다. 일례로 이 단락을 작성한 위키러의 경우, xx포병대대에서 복무하던 중 사고를 쳐서 영창에 갔다온 후 바로 밑에 위치한 xxx포병대대로 전출 갔는데 해당 부대의 1포대에서는 한 달 단위로 선후임 구분을 했다.

2015년 1월 27일 9여단(투호부대) 여단장이 여군하사를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현재 활동하는 연예인들과 운명적인 인연이 많은 부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은근히 이 부대 출신 연예인들이 좀 된다. 김국진, 탁재훈[32], 개그맨 김현철, 김호창, 김대희, 조빈[33], 컬투(정찬우)[34], 형곤(A-JAX) 등이 이 부대 출신 연예인 들이다. 다른 유명인으로 소설가 고원정, 아나운서 출신 국회의원 한선교 등이 보병으로 복무했으며, 추격자황해를 만든 영화감독 나홍진은 수색대 출신이다.

코미디언 김현철의 경우 05년 사단 주임원사님께서 말씀하시길, 화랑교육대 관리병으로 굉장히 유쾌한 병사였다고 한다.

추가로 조권이 본 부대로 입영, 현재 사단 군악대에서 근무 중이다.

사단 사령부가 터미널과 굉장히 가깝다.(걸어서도 30분 안에 도착한다.) 9여단만 제외하면[35] 대부분 읍내와 지척에 있으니 휴가 나가기 굉장히 좋은 여건이다.(가까운 예로 화천의 부대들은 나오는 데만 시간 단위가 걸린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읍내로 나가면 시간 때우는 간부, 운전병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1군 직할 예비 사단이었다 보니 1군의 다양한 행사(?)에 차출 되었는데, 실례로 1999년에는 지금 없어진 76사단의 진지공사 지원을 위해 한개 연대가 통채로 몇 개월간 화천으로 파견 나간 적도 있었다. 실제 일반 보병들은 화천 진지공사에 행군으로 걸어갔다.

이명박 대통령이 11사단 신교대를 방문하는 바람에, 훈련복귀가 지연된 예하부대도 있었다. 그리고 그때 사인을 했던 축구공이 화랑사단 박물관에 전시되고 또 그게 화랑사단 소식지에도 실렸다. "1군 전투력 발휘의 핵심" 이라고 적은 자필(인지는 불명)서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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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머지 두 사단은 산악사단으로 지정된 2사단과 공정사단으로 지정된 5사단.[2] 3기갑 공병이 와서 도와줘야 될 만큼 대규모 강하가 아니면 11사단 자력으로 도하한다는 뜻이다.[3] (구)20사단을 통합하여 경기 양평권까지 담당.[4] 정찰대의 경우 2년간 공식적으로 인증된 행군 길이만 1200km에 달한다.[5] 육군의 병 피복 보급이란 게 필요한 건 언제나 부족해서 새 전투화를 받기란 하늘에 별따기다. 하지만 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되기 전 대부분의 병사들은 지급받은 두 족의 전투화로는 감당이 안 돼서(더군다나 A급 한 족은 남겨두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전역자들이 남겨놓은 전투화 또한 품귀상태인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는 병사들의 사제 전투화 구입이 일부 묵인되기도 하지만 현재는 징계이다.[6] 나누어주는 불교 경전을 보면 훈련소 선배들이 남긴 깨알 같은 훈련 매뉴얼들이 있다. 다만 이 경전이 보통 1년마다 갱신되므로 없을 수도 있다.[7] 2주차 때 불교에 40명 남짓한 훈련병이 왔었는데 그날 그 당시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던 고화질 원더걸스 영상을 기습적으로 틀어주었다. 법사님은 "허허 제가 실수 했네요"하면서 "실수도 부처님의 뜻인 만큼 마음껏 보세요"며 30분간 뮤직뱅크 영상을 틀어주었다. 이후 3주차 때 불교엔 150명이나 오는 대혼란이 벌어졌다.[8] 이와 비슷한 관계로는 수도기계화보병사단제7보병사단이 있다.[9] 막사 옥상에 올라가면 대대 전경이 한눈에 보일 정도이다.[10] 청춘불패 세트장이 사단 주둔지인 홍천군 시동에 있는 데다 타 대대는 부지가 산중턱에 있거나 막사가 구막사이거나 등등.. 위와 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36전차대대가 선정되었다.[11] 참고로 촬영이 끝나고 바로 돌아오는 주 월요일에 전 중대 5박 6일 전술훈련을 나갔다.[12] 그도 그런게 막사가 2006년에 완공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생활관이 10인실 침대형이다.[13] 진지공사 등의 작업이 있어도 무조건 짬을 내 주특기, 승무원 훈련등을 실시한다. FM대로라면 이게 맞긴하지만 하급자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작업 때문에 하루종일 굴렀는데 교육까지 구르라니 욕이 안 나올 수밖에 없다.[14] BTL 신막사 건축 사업으로 '공조기'를 최초로 시범설치하였다. 흔히 생각하는 에어컨이 아니라 자그마한 통풍구처럼 생겼다. 하지만 야심차게 가동한 결과 공조기가 냉방은 기대도 못하고 선풍기만도 못한 바람 때문에 가동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생활관마다 선풍기를 지급해놓았다.[15] 대략 새벽 4시경이며, 119 신고도 했지만, 소방차는 아침 점호시간이 되어서야 도착했다....앙대~ PX가 타들어가는 모습에 미친듯이 물을 퍼날랐으나 결국 완전히 잿더미가 되었다[16] 이 공사기간 동안 창고로 쓰이던 건물을 싹 치우고 막사로 개조하여 새우잠을 자야 했다. 물론 막사 작업은 덤...[17] 사실상 전체적인 시설의 질을 여단 단위로 따져보면 11사단 내에서는 포병여단이 탑을 먹었다고 볼 수 있다. 20사단 최고시설과 11사단 최고시설의 좌우합작.[18] 모든 주둔지가 평지이고 언덕이 전혀 없는 꿈의 지형이다.(이런 곳은 수도권이나 향토 사단에서도 정말 보기 힘들다.) 다만 이렇다보니 간부들 입장에서는 훈련 시즌마다 타 부대의 훈련주둔 협조요청이 미친듯이 오기 때문에 짜증을 어마어마하게 받는다. 주둔지를 빌린 부대가 연병장을 개판으로 갈아엎으면 뒤처리는 결국 점호 중인 955대대 병사들이 다 한다...[19] 사이버지식정보방이 아니라 근거리망을 사용한 소규모 PC방 같은 개념. 온라인은 오직 자기들끼리만 가능하고 인터넷은 안된다. 포켓몬 디펜스 등의 워크 유즈맵들과 레포데, 스타1, 문명5를 엄청 많이 했다...[20] 통풍이 잘 되지 않아 여름에는 퀴퀴한 땀내와 찜통더위로 가득 차기 때문에 야간 시간을 활용하거나 노래에 미친 자가 아니면 잘 가지 않았다.[21] 차량으로 15~20분 거리이다. 잘 나가는 차로 좀 밟으면 10분 이내 주파도 가능. 산길일 때에는 시간이 더 많이 걸렸지만 터널 개통이 굉장히 큰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22] 포병여단, 9여단, 3기갑 소속 기혼 간부 가족들이 거주하는 아파트. 시설은 신축 건물이다보니 깔끔한 아파트 수준이다.[23] 당시 본부는 3포대에게 '구시대적 똥군기 집단'이라 욕하고 3포대는 본부에게 '껄렁껄렁한 양아치들'이라며 욕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낀 1포대와 2포대는 둘 다 노답이라고 욕했다... 당시 군기 강도의 순서는 3포대>1포대>2포대>본부 순. 이는 대대 통합 선후임제를 유지하던 수송부와 정비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24] 포대 간의 사이는 양호해졌으나 3포대 자체에 부조리함이 상대적으로 타 포대보다 많았다. 어느 정도냐면 대대장"3포대 너희들이 문제가 좀 많은거 같다? 나는 너희 포대 해체시키고 타 포대로 통합시킬까 생각중인데?" 라는 말을 할 정도니... 이 말은 무려 대대장이 용사들에게 대면해서 직접 한 말이다! 대대장이 저런 말을 한다는건 정도가 무척이나 심각하단 것이다.[25] 간호장교 대부분이 여군으로 이루어져있다보니 임관 조건이 거의 여군에게 맞추어져 있다.[26] 구 20포병대대 주둔지였는데 현재는 955대대로 통합되면서 인수했다[27] 105mm 똥포라면 몰라도 155mm급 자주포들은 이런 단거리에 맞는 장약은 거의 보유하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다. 어떻게든 해보겠답시고 쏘면 그 탄은 민간 지역으로 갈 위험이 너무 크기에 안전 문제로 사용하지 않는다.[28] 훈련장의 곡사화기 사거리가 너무 짧아서 포병은 자주포 방열 등을 제외하고는 이 훈련장을 쓸 여건이 안된다.[27] 그나마 방열도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전개교장을 활용하다보니 관측반이나 화력지원반 파견 말고는 이 훈련장에 발도 들이지 않는다. 정확히는 혹한기 훈련을 할 훈련장을 못 빌려서 기보여단 사이에 꼽사리 끼는 상황이나 후술할 방화지대공사 빼고 아예 쳐다도 안 본다는 이야기.[29] 1야전군 소속일 때까지는 이쪽을 사용하였으나 3야전군으로 전환되고 18년 6월 이후부터는 포탄사격 등의 훈련은 5군단 소속 철원의 훈련장을 사용한다. 다만 전술 및 작계훈련은 여전히 화천에서 한다.[30] 훈련장 내부를 돌아다니다보면 폐막사와 연병장이 있는데 그곳이 원래 59전차대대였다. 59전차대대가 제20기갑여단으로 분리된 후에도 지속 운영하는 것으로 추정. 다만 거리가 본대와 멀다보니 관리소대 점검은 가까이 있는 포병대대들이 하고 있다.[31] 2008~2010년 사이에 임관, 군장학생을 하다가 학군사관으로 전환된 임관일 가능성이 높다.[32] 9여단 여단본부 참모부 군수과 서무계원이었다고 한다. 탁재훈 군복무 시절 쓴 편지JTBC 기사[33] 1995년 7월에 입대. 원래 수색대였다가, 먼저 문선대에 차출되었다가 복귀한 김대희의 소개로 일병 말호봉 때 문선대에 차출되었다고 한다.국방일보 기사[34] 원래 수색대대 본부중대 81밀리소대 소속으로 평소에는 위병소 위병이었으나 일병 때 문선대에 차출되었음[35] 여기는 버스로 읍내와 40분 정도의 거리이다. 하지만 양평과 매우 가깝게 있기 때문에 시외버스로 30분 만에, 용문역까지 갈 수 있다. 오히려 기차나 수도권 전철(경의중앙선 한정)을 이용해야하는 입장에선 이쪽이 나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