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대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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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투표**
6차
1987년 10월 27일
시행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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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대 부통령 선거는 대통령 선거와 병행하지 않고 이시영 부통령의 사임에 의해 별도로 시행한 보궐선거이므로 편의상 보궐선거로 분류함.
** 국민투표는 선거에 포함되지 않으나, 편의상 기술함.
*** 2014년 7월 24일 헌법재판소가 국민투표법 제14조 제1항 내용 중 일부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으나, 국회에서 추가적인 법률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2016년 1월 1일자로 효력을 상실하여 시행 불가함.




대한민국 제12대 대통령 선거

파일:12대선1.jpg파일:12대선2.jpg파일:12대선3.jpg파일:12대선4.jpg
후보자들의 선거 벽보


1981년 2월 25일
12대 대선

1987년 12월 16일
13대 대선

투표율
99.89%[1] ▲ 0.48%p
선거 결과
후보
[[민주한국당|

민주한국당
]]
유치송
[[민주정의당|

민주정의당
]]
전두환
득표율


7.66%
90.11%
득표수
404
4,755
대통령 당선인

파일:전두환전대통령.jpg

민주정의당
전두환

1. 개요
2. 내용
3. 선거인단 선출 결과
4. 결과
5. 여담



1. 개요[편집]



파일:전두환 내외.jpg

기뻐하는 전두환 대통령 내외

파일:81전두환당선_조선일보.png

대통령 당선 확정을 알리는 조선일보 기사
}}}
대한민국 제12대 대통령 취임식 영상[2]

선진조국 창조

전두환 정부국정지표

1980년 8월 27일 제11대 대통령이 된 전두환여당국민들의 여망인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하는 대신, 기존의 대통령 선출 기관인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폐지하고 새롭게 대통령선거인단 제도를 마련했다. 이는 명목상으로는 대통령 선거인단을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미국의 방식을 따르자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제1야당도 안기부의 지원을 받는 관제야당이고 선거 자체가 이미 당선인이 결정되어 있었음으로 이 선거는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선거라고 할 수 없었다.


2. 내용[편집]


우선 1981년 2월 11일 전국 1,905개 대통령선거인선거구에서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5,278명의 대통령선거인이 선출되었다. 이 중 당선이 취소된 부산의 한 선거인을 제외한 5,277명의 선거인들은 2월 25일 지역별로 모여 제12대 대통령을 선출하였다. 당초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처럼 모든 선거인들이 한 곳에 집결해 선거를 실시하는 방안이 논의됐으나, 5,000명이 넘는 인원이 한 곳에 사고 없이 모이게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의견이 있었고 선거인들의 투표 결과가 지역별로 더 상세하게 집계되어야 선거인들이 공약한 바와 다른 후보를 찍는 유권자 배반 행위를 할 가능성이 줄지 않겠느냐는 주장이 있어 전국 77개 국회의원 선거구별로 모여 투표를 진행하는 방식을 택하게 되었다.

대통령 후보로는 민주정의당 전두환 후보, 민주한국당 유치송 후보, 한국국민당 김종철 후보, 민권당 김의택 후보 등 4명이 출마하였다. 당시 제대로 된 야권의 대선 주자인 김대중, 김종필, 김영삼3김은 모두 정치 규제를 당해 출마할 수 없는 상태였고, 대신 신군부에서 기존 정치인들 중 가장 무색무취한 인물로 뽑은 위의 인물들이 구색을 맞추는 정도로 출마를 한 것이었다.[3]

선거인 후보들의 수준도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었는데, 그 이유가 정치를 한 번 열심히 해보겠다, 지역을 발전시키겠다는 등의 기본적 공약을 내거는 후보가 있는가 하면, 서울 동작구의 한 선거구에서는 후보자 합동연설회 날 2명의 후보가 정확히 같은 연설문을 읽어내려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4] 그나마도 여당인 민주정의당을 제외한 당들은 대부분의 지역구에 선거인 후보를 내지도 못했는데, 민정당 다음으로 많은 후보를 낸 민주한국당도 후보자 수가 선거인단 정원의 5분의 1인 1,000여 명에 그쳐서 설령 민한당 선거인단 후보가 전원 당선된다 쳐도 선거 결과가 뒤바뀔 가능성은 없었다. 심지어 김종철 한국국민당 대통령 후보가 사는 선거구에는 한국국민당 선거인 후보가 없어 김종철 후보는 무소속 후보에게 투표해야 했다. 기사

선거 결과 전두환 후보가 유표투표수의 90.11%4,755표를 득표하여 당선되었다. 제12대 대통령 임기는 제5공화국 헌법 부칙 제3조와 대통령선거법 부칙 제2조에 따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전두환의 당선을 확정 발표한 2월 25일 밤 9시 경 개시되었으나, 취임식은 3월 3일 거행되었다. 이 대선을 통해 전두환이 제12대 대통령에 취임하여 대한민국 제5공화국이 출범하게 되었으며 이후 더 이상의 간선제 대통령을 원하지 않은 국민들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다. 그래서 12대 대선은 1972년 제8대 대통령 선거를 시작으로 치러진 5차례의 간선제 대선 가운데 마지막 선거이며, 1978년 제9대 대통령 선거부터 4년 연속 치러진 간선제 대선으로서도 마지막 선거이다. 4년간 연속으로 매년 한 차례씩[5] 대선이 있었다는 것은 10.26 사건 이후 12.12 군사 반란, 5.17 내란 등이 발생하였던 정치적 혼란과 정국 안정의 미흡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전술했듯 12대 대통령 선거일이 당해 2월 25일이었기에, 전두환의 제12대 대통령 임기는 당선일을 기준으로 만 7년인 1988년 2월 24일까지였으며, 후임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의 6명의 대통령 역시 모두 2월 25일에 취임하였다.[6] 이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임기 단축이 이뤄짐으로서 19대 대선 이후 때부터 5월 10일을 취임일로 삼게 되었다.[7]


3. 선거인단 선출 결과[편집]


2월 11일 열린 대통령 선거인단 선거 결과 민주정의당이 3,667석, 민주한국당이 411석, 한국국민당이 49석, 민권당이 19석, 무소속이 1,132석 등 5,278명의 당선자가 확정됐다. 그러나 이 중 민주정의당 김창식 선거인의 당선이 취소되어 전체 선거인 수는 5,277명으로 줄었다.

지역
민주정의당
민주한국당
한국국민당
민권당
민주사회당
무소속
합계
서울
551
137
4
7
0
157
856
부산
234
33
2
0
0
55
324
경기
545
44
3
3
0
75
670
강원
240
4
3
0
0
52
299
충북
207
13
3
0
0
33
256
충남
338
42
10
0
0
75
465
전북
291
26
0
6
0
84
407
전남
351
51
20
1
0
183
606
경북
449
26
0
0
0
280
755
경남
420
34
4
2
0
127
587
제주
41
1
0
0
0
11
53
합계
3,667
411
49
19
0
1,132
5,278

지역
민주정의당
민주한국당
한국국민당
민권당
민주사회당
무소속
합계
서울
1,918,215
(56.5%)

540,552
(15.9%)
29,647
(0.9%)
48,868
(1.4%)
-
857,442
(25.3%)
3,394,724
(100%)
부산
799,981
(63.8%)

148,403
(11.8%)
9,397
(0.7%)
4,491
(0.4%)
-
291,745
(23.3%)
1,254,017
(100%)
경기
1,361,727
(69.0%)

283,184
(14.4%)
12,297
(0.6%)
17,937
(0.9%)
-
297,622
(15.1%)
1,972,767
(100%)
강원
523,467
(64.2%)

75,430
(9.3%)
15,716
(1.9%)
1,932
(0.2%)
-
199,444
(24.4%)
815,989
(100%)
충북
423,375
(65.8%)

77,118
(12.0%)
20,920
(3.3%)
3,993
(0.6%)
825
(0.1%)
117,071
(18.2%)
643,302
(100%)
충남
669,381
(63.0%)

133,964
(12.6%)
35,604
(3.3%)
8,121
(0.8%)
-
216,173
(20.3%)
1,063,248
(100%)
전북
607,747
(62.6%)

106,700
(11.0%)
4,552
(0.5%)
24,520
(2.5%)
-
227,064
(23.4%)
970,583
(100%)
전남
763,293
(52.2%)

160,666
(11.0%)
34,406
(2.3%)
6,120
(0.4%)
-
498,328
(34.1%)
1,462,813
(100%)
경북
1,249,107
(57.5%)

125,530
(5.8%)
803
(0.0%)
-
-
797,702
(36.7%)
2,173,142
(100%)
경남
815,478
(62.1%)

116,802
(8.9%)
11,366
(0.9%)
8,233
(0.6%)
-
361,358
(27.5%)
1,313,237
(100%)
제주
118,491
(68.1%)

9,658
(5.5%)
-
-
-
45,872
(26.4%)
174,021
(100%)
합계
9,250,262
(60.7%)

1,778,007
(11.7%)
174,708
(1.1%)
124,215
(0.8%)
825
(0.0%)
3,909,821
(25.7%)
15,237,838
(100%)

4. 결과[편집]


대한민국 제12대 대통령 선거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김종철(金鍾哲)
85
3위

[[한국국민당(1981년)|
파일:한국국민당(1981년) 글자.svg
]]

1.61%
낙선
2
김의택(金義澤)
26
4위


0.49%
낙선
3
유치송(柳致松)
404
2위

[[민주한국당|
파일:민주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7.66%
낙선
4
전두환(全斗煥)
4,755
1위

파일:민주정의당 글자.svg

90.11%
당선

선거인 수
5,277
투표율
99.89%
투표 수
5,271
무효표 수
1

5. 여담[편집]


선거인단 선거에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서울 종로 제1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건설, 자동차, 조선 등 그룹을 일으키는데 최대 보증인이 되어준 박정희가 사라진 상황에서 신군부에 밉보이지 않으려던 조치로 해석된다.[8]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도 같은 선거구에 무소속 출마했으며 2위로 당선되었다.[9]

이외에도 종로 3구에 구자경 럭키그룹 회장과 최종환 삼환기업 회장이, 중구 2구에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이, 용산 1구에 김일환 전 내무부 장관이, 마포 6구에 김원기 전 부총리가, 강남 2구에 유양수 전 동력자원부 장관이, 강남 3구에 홍성철 전 내무부 장관이, 강남 6구에 배덕진 전 체신부 장관이, 강동 10구에 배의환 전 한국은행 총재가, 영등포 2구에 황정연 전 해군참모총장이, 전라북도 이리 2구에 이춘기 전 의원이 출마해 당선되었다. 최원석 회장은 민주정의당 후보로, 나머지는 모두 무소속으로 도전했다.

정주영, 구자경 등은 지지 후보를 끝까지 밝히지 않았으나 조중훈, 배의환, 김일환, 홍성철 등은 적극적으로 전두환 지지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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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통령선거인단에서의 간접선거.[2] 이 때부터 대통령 취임선서 내용이 기존의 "국헌을 준수하고"에서 지금과 같은 "헌법을 준수하고"로 바뀌었다.[3] 그나마 유치송과 김의택은 각각 신민당 최고위원, 신민당 총재 권한대행을 지낸 바 있어 거물급 인물이라고 주장할 만한 건덕지라도 있었지만 김종철 한국국민당 후보는 대통령 후보라기에는 내세울 경력이 전무했으며 한국국민당 소속 정치인들 중 국회의원 선수가 가장 높다는 것 정도다.[4] 두 후보가 같은 웅변학원에 연설문을 의뢰했고, 그 학원에서 연설문을 그냥 동일하게 써준 것이다.[5] 1978년 박정희, 1979년 최규하, 1980년 전두환, 1981년 전두환.[6] 전두환을 포함한다면 7명이나, 전두환은 정권 장악 후 11대 대통령으로 이미 전년도인 1980년 8월 27일자로 취임하여 이미 6개월 정도를 재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취임일이라고 말하기 애매해진다.[7] 더불어 제6공화국에서 선거법상 대통령 선거일을 "대통령의 임기 만료일 전 70일부터 첫 번째로 돌아오는 수요일" 등으로 규정하였으므로, 70일 전은 12월 16일이 된다. (선거일의 요일은 때마다 수, 목, 금 등 변동되었음), 특히 16대 대선(목요일)/17대 대선(수요일)/18대 대선(수요일)의 경우는 모두 12월 19일에 치러졌다. 대통령의 임기 만 5년은 산술적으론 365 × 5 = 1825일이지만, 여기에 윤년이 들어가기 때문에 1826~1827일이 되는데, 17대 대통령 임기의 경우처럼 임기 중 윤년이 두 번 들어가는 경우 7로 나누어 떨어져 선거일이 고정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점은 17대 대통령인 이명박의 생일과 결혼기념일, 그리고 그가 당선된 17대 대선과, 그의 임기 중 치러진 18대 대선 모두가 12월 19일이었다는 점이다.[8] 또 하나의 행보는 1988 서울 올림픽 유치활동. 이후 신군부의 정치자금 요구에 질릴대로 질린 나머지 본인이 직접 정치에 뛰어들게 된다. 참고로 이 시기 삼성은 이미 사돈가의 주력 사업장이자 3남의 첫 직장인 TBC 동양방송강탈당한다. 특히 신군부 핵심인사들이 이병철에게 버림받은 장남 이맹희와 막역한 사이였기 때문에, 그 3남은 전두환이 국제그룹을 날려버리는 살풍경을 지나, 본인이 그룹을 승계한 후에도 문민정부가 출범하는 1993년까지 자의반 타의반 은둔의 경영자로 지내게 된다.[9] 1위만 당선되는 게 아니라 지역구에 따라 2위에서 5위까지 당선되는 시스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