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

덤프버전 :






Second Schleswig War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

기간
1864년 2월 1일 ~ 10월 30일
지역
슐레스비히
교전국
파일:프로이센 왕국 국기(1803-1892).svg 프로이센 왕국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오스트리아 제국
파일:덴마크 국기.svg 덴마크 왕국
지휘관
파일:프로이센 왕국 국기(1803-1892).svg 빌헬름 1세
파일:프로이센 왕국 국기(1803-1892).svg 오토 폰 비스마르크
파일:프로이센 왕국 국기(1803-1892).svg 헬무트 폰 몰트케
파일:프로이센 왕국 국기(1803-1892).svg 알브레히트 폰 론
파일:프로이센 왕국 국기(1803-1892).svg 프리드리히 폰 브랑겔
파일:프로이센 왕국 국기(1803-1892).svg 프리드리히 카를 니콜라우스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프란츠 요제프 1세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빌헬름 폰 테게토프
파일:덴마크 국기.svg 크리스티안 9세
파일:덴마크 국기.svg 디틀레프 고타르 몬라드
파일:덴마크 국기.svg 크리스티안 알브레히트 블루메
파일:덴마크 국기.svg 크리스티안 드 메자
파일:덴마크 국기.svg 게오르크 게를라흐
파일:덴마크 국기.svg 막스 뮐러
병력
병력 61,000명
병력 38,000명
피해
1,275명 전사
2,933명 전사
결과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의 승리

1. 개요
2. 배경
3. 전개
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은 프로이센 왕국덴마크 왕국 사이에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주인을 두고 싸운 전쟁이다.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을 일으킨 전조 중 하나였고, 독일 통일을 위한 한가지 단계였다.

여담으로 본 전쟁의 승전으로 계획, 건설한 것이 베를린 전승기념탑이다.


2. 배경[편집]


슐레스비히는 이전부터 독일계 민족과 덴마크 민족의 대립이 많았다. 이러한 민족적 대립의 와중에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7세[1]1848년 자유주의에 입각한 헌법을 공표하자 이 지역의 독일계 귀족들이 이것에 거세게 반발했다. 독일계 귀족들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만의 독자적인 헌법과 독일 연방 가입[2]을 덴마크로부터 요구하면서 봉기를 일으키고 프로이센 또한 참전을 하였으니 국제적 압력에 평화조약이 맺어지니 이를 제1차 슐레스비히 전쟁이라 한다.

더 이상 리펜 조약을 지킬 필요가 없는 1863년 프레데리크 7세의 죽음으로 두 공작령이 드디어 분할되게 된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프로이센 왕국오스트리아 제국과 연합하여 덴마크와의 전쟁을 일으켰고 이 전쟁이 바로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이다.


3. 전개[편집]


1864년 2월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연합군이 덴마크군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이미 프로이센은 1862년부터 표방한 철혈정책으로 인해 막강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었고, 오스트리아까지 연합하면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결국 순식간에 전쟁은 마무리가 되어버렸다.

1864년 10월 빈 평화협정으로 덴마크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을 포기하고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공동 관리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물론 프로이센은 이 지역을 병합하고자 하였고, 오스트리아는 이 지역을 연방국가화 시키고자 했기 때문에 결국 두 노선의 차이가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4. 둘러보기[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6 14:41:05에 나무위키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슐레스비히 공국과 홀슈타인 공국을 모두 덴마크의 영토로 확고히 귀속시키려고 했던 인물.[2] 홀슈타인이야 애초부터 독일 연방에 가입되어 있지만, 슐레스비히까지 독일 연방에 가입할 것을 요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