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장풍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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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4월 5일~1930년 11월 4일
옌시산의 반란




1. 개요
2. 배경
3. 전개
3.1. 서북군의 거병
3.2. 등봉-임여진 전투
4. 결과
5. 참고문헌
6. 관련문서
6.1. 인물
6.2. 사건



1. 개요[편집]


1929년 10월 11일부터 11월 20일까지 장제스펑위샹의 2차 전쟁. 탕성즈 등을 동원한 장제스의 승리로 끝났다.

2. 배경[편집]


1차 장풍전쟁의 패배로 펑위샹은 옌시산의 근거지인 타이위안의 건안사에 사실상 연금 상태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펑위샹은 자신의 휘하인 서북군의 여러 장령들과 긴밀히 연계하고 있었고 펑위샹 산하의 서북군의 규모는 1차 장풍전쟁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30만에 달했다. 옌시산은 1차 장풍전쟁에서 반장과 옹장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장제스의 편을 들어 펑위샹 토벌에 참여하였으나 토벌전 막바지에 펑위샹 세력이 완전히 붕괴되면 자신도 위험해질 것이라 여겨 펑위샹을 옹호하며 보호를 제공한 바가 있고 덕분에 7월 6일 펑위샹 체포령이 취소되었다.

허나 편견으로 인한 군축과 정치분회 폐지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는 것은 옌시산 역시 마찬가지였고 펑위샹이 녹종린을 난징으로 파견해 군정부장 대리로 삼게 하여 장제스와 관계 개선을 도모하자 옌시산은 장제스와 펑위샹의 화해가 이루어지면 위험해지는 것은 자신이라 여기고, 건안사의 펑위샹을 찾아가 공동으로 반장을 할 테니 장제스에 대한 2차 반란을 일으키라고 선동했다. 이에 솔깃한 펑위샹은 난징과의 협상을 중단하고 거병하기로 했다. 옌시산은 이에 대해 산서군을 동원해 지원할 것을 약속했다. 때마침 9월에 광서에서 장파쿠이계계군벌을 선동하여 2차 장계전쟁을 일으키면서 중앙정부의 관심이 그쪽에 집중되었고 펑위샹은 다시 반란을 준비하였다.

3. 전개[편집]



3.1. 서북군의 거병[편집]


1929년 10월 10일 은거한 펑위샹을 대신하여 서북군을 지휘하고 있던 쑹저위안(宋哲元), 석경정 등 27명이 편견회의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며 장제스의 6대 죄상이라는 것을 거론하고 장제스가 물러나지 않으면 중국이 망한다고 주장하며 중앙정부에 항전할 것을 통보하였다. 서북군은 일제히 9갈래로 나뉘어 섬서에서 하남으로 진출하고 뤄양에 사령부를 설치한 후 농해철로를 따라 동진하는 한편 우한을 노렸다. 국민정부는 10월 11일, 서북군에 대한 토벌령을 발동하고 쑹저위안, 석경정 등을 면직했다. 장제스는 10월 14일 토벌군 총사령관에 취임하였고 <전국 장병에게 알리는 글>을 발표했다.

한과 적은 양립하지 않고, 혁명과 반혁명은 공존할 수 없다. 반역군을 소멸시키지 않으면, 반역군에 소멸당할 뿐이다. 각 장병은 당과 국가의 생존을 위해 단결하여 반동세력을 뿌리뽑고 혁명군인의 천직을 완수하기 바란다.

장쉐량은 10월 10일,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옌시산, 펑위샹과 연대하여 장제스를 협공하여 신정부를 수립하는 일에 대해 논의했으나 원금개를 비롯한 만주 구파 원로들은 보경안민 정책의 고수를 강력히 주장했다. 장제스가 통전을 보내 펑위샹을 치기 위한 출병을 요청하자 장쉐량은 중앙옹호를 통전하면서도 중동로 사건 처리를 위해 군대를 뺄 수 없다고 대답했다. 10월 19일 장쉐량은 회의를 열어 동북군 장령들의 의견을 살폈다. 탕위린 등 동북군 장령들은 옌시산과 제휴하여 펑위샹을 토벌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고 장쉐량은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한편 탕성즈, 방정영이 지휘하는 토벌군이 서북군을 타격하기 위해 출동했고 10월 말, 뤄양 동남쪽 임여, 등봉, 흑석관을 통과한 토벌군은 쑹저위안, 손양성, 석경정과 격렬한 교전을 벌였다. 이 시점이 되자 만약 장제스가 펑위샹과 옌시산의 연합군에 의해 무너질 경우, 강성해진 펑위샹 세력이 동북을 위협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만주 구파가 중앙옹호를 결정했다. 10월 31일 만주의 원로들이 장쉐량에게 중앙을 옹호할 것, 옌시산과 펑위샹에 대해서는 평화수단을 채택할 것 등을 건의했고 장쉐량은 이를 수용했다.

11월 3일 장제스가 직접 허창으로 나아가 독전했지만 정예부대를 앞세운 서북군은 등봉, 임여진의 각 요지를 점령하고 밀현에 이르렀다. 이는 허창과 정저우를 정면공격을 통해 함락시켜 평한철로와 농해철로의 교통을 차단하려는 것이었다. 토벌군은 반격을 통해 밀현의 서북군을 격퇴했으나 서북군의 저항이 완강하여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3.2. 등봉-임여진 전투 [편집]


등봉에서 손양성, 임여진의 쑹저위안이 직접 서북군을 통설하여 2주에 걸쳐 토벌군에 대한 맹공을 퍼부었다. 토벌군은 이들의 공세를 한차례 격퇴했으나 서북군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에 국민정부는 증원부대를 파견하여 이들을 포위하고 준비를 갖춘 후 등봉과 임여진의 주변 요충지를 공격해 점령했다.

11월 15일, 장제스는 총공격 명령을 내렸고 토벌군은 11월 16일 오후에 등봉을 함락시켰다. 하지만 임여진의 쑹저위안의 저항이 격렬하였다. 이에 16일 아침, 임여진에 대한 토벌군의 총공세가 벌어졌다. 쌍방의 전투에서 각종 화포가 100여대나 동원되어 격렬한 포격전이 전개되었다. 하지만 서북군의 맹포격에도 불구하고 양걸의 10군과 서원천의 48사단이 각 지휘관들이 직접 독전하여 서북군에 대한 총공격을 감행했고 펑위샹 군대의 전차 4대가 격파되었다. 서북군의 피해가 계속 누적되자 밤이 되어 쑹저위안은 서쪽으로 도주를 시작했다. 11월 17일 토벌군이 임여진을 점령했고 2만 명 이상의 서북군이 포로가 되었다. 정예군을 잃은 서북군의 패주는 계속되어 11월 20일, 뤄양이 국민정부의 손에 떨어졌고 서북군은 섬서로 지리멸렬하게 퇴각하였다. 사태를 관망하던 옌시산은 서북군의 패퇴 이후 군사를 일으켜 내응하겠다는 약속을 파기하고 펑위샹과의 단절을 선언했다. 이로 인해 펑위샹과 옌시산의 관계는 크게 악화되었다. 옌시산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펑위샹이 자신을 배신했다고 비난을 한 것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였다.

4. 결과[편집]


이로써 펑위샹의 2차 반란도 진압되었지만 장파쿠이의 반란은 진압되지 않았고 장파쿠이는 광서파 잔당, 탕성즈, 스여우싼과 연대하여 내전을 확대하게 되면서 장당전쟁이 일어났다.

5. 참고문헌[편집]


  • 다큐멘터리 중국 현대사 2권, 서문당 편집실, 서문당.
  • 중화민국과 공산혁명, 신승하, 대명출판사.
  • 왕징웨이 연구, 배경한, 일조각.
  • 동북군의 관내진출과 그 결과, 송한용, 중국 근현대사연구 6, 중국 근현대사학회.
  • 국민당 3전대회 전후의 반장운동, 김영신, 중국학연구 30, 중국학연구회.

6. 관련문서[편집]



6.1. 인물[편집]



6.2. 사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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