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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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제3지대 본격화 이전
2.3. 청년층들의 대안으로 부상
2.6. 비박계 보수 빅텐트
2.7. 김종인 빅텐트
2.8. 손학규의 중도통합론
3. 제3지대의 예외
5. 주요 인물
6.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에서 민주당계 정당보수정당이 국회를 양분하고 있는 것을 비판하며[1] 제3지대를 주장할 때 나오는 말이며, 대개 중도 성향과[2] 지역 홀대론, 인물론, 무당층과 정치 무관심층 포섭을 기조로 두는 정당을 일컫는다.


2. 역사[편집]


한국에서 제3지대라 불린 정당의 역사를 보면 많은 국민적 요구가 뒷받침된다기보다는 으레 일정 비율은 있는 양당 정치에 질린 내부의 불만과, 꾸준하게 제3지대를 요구하는 민심을 파고 들어 정주영, 김종필, 이인제, 손학규, 안철수 등 독자적인 세력을 꾸릴 만한 정치인과 강력한 물주들이 연합하여 생기기 시작한 경우가 많은 편이었다. 대한민국의 정당법 특성상, 정당 설립과 지역당 구성등 정당 하나를 만들기 위해 드는 돈이 민주주의 국가들 중에선 가장 크고, 그나마도 당명과 정당 유지를 위해 꾸준히 선거 때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득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지역 몰표건 전국적인 팬심이건 득표를 해올 유력한 중앙정치인이 동시에 있어야 한다.

이중에서도 사실 의석수나 지속성 측면에선 안철수, 김종필 외엔 크게 유의미한 세력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주영의 정당은 정주영이 돈이 많아서 당세는 꽤 셌으나 정주영 본인이 정치인으로써는 함량 미달이다 보니 그 기간이 짧았고(물론 정주영 본인의 정치 행보만 따지자면 대북사업 등 2000년대 초까지 이어지긴 한다), 심지어 김종필도 60년대부터 쿠데타로 정치를 시작해 주류 스펙트럼에서 놀다 점점 밀려나서 결국 울며겨자먹기로 제3지대로 간 양반인걸 고려하면 사실 정계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풍을 일으켜 그것도 꽤 장기간 정치 세력을 유지한 케이스는 안철수가 거의 유일하다. 그것조차 2020년대 들어선 거의 꺼져가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을 따르는 정치인도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나 숭고한 이유를 가지기보단 그냥 거대 양당이 싫어서 혹은 그 내부의 정쟁에서 패한 이후 나온 이들이 많았다.

한국에서 큰 규모를 갖췄던 일부 제3지대 정당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보수정당의 안티테제라 할 만한 특징도 가지고 있었다. 제3지대 정당이라고 평가받는 세력은 모두 전국정당을 운영할 수 있는 운영비를 댈 수 있는 유력한 자본가가 한명은 필수적으로 있고, 대표가 될만한 전국구 정치인과 관련된 강력한 지역 기반 하나를 얹고, 다른 지역기반에서 높은 중도 확장성 덕에 양당을 위협할 수 있을 수준의 성과[3]를 낸 적은 종종 있었지만 결국 선거구제 문제 등으로 인한 양당 정치의 한계상 정당의 지속 가능성에서 문제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다.[4]

이 때문에 한국 정당사에서 제3지대 정치세력은 지나친 고비용 정치 특성상 극우건 청년이건 정체성 정치를 주로 하는 정당은 대부분 누군가의 자본 지원을 받아도 꾸준한 득표를 책임질 전국구 정치인이 없어서 늘상 실패하고, 특정 지역기반을 바탕으로 한 홀대론 혹은 거대양당을 비판하는 대안정당에서 출발한 경우가 대다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는 늘 구심점이 될 지역 보스급 보수 정치인이 한 명 씩은 있고, 지역 자본이 십시일반 모으면 어떻게든 정당 하나 만들 정도의 돈은 충당이 되기 때문이다.[5]


2.1. 제3지대 본격화 이전[편집]


제3지대라는 명칭이 등장하지는 않던 시절이었지만, 90년대엔 대안정당격 제2야당으로 활동했던 정주영통일국민당이 존재했다. 통일국민당은 한국의 첫 제3지대 정당으로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정주영이 反YS, 非DJ 지역인 강원도[6], 충청도, TK를 중심으로 공략해 제3신당으로 자리매김한 정당이었지만 92 총선에서 신승을 거뒀으나, 92 대선에서 패배를 기점으로 몰락한다. 대선 패배 이후 정주영이 통일국민당을 탈당하면서 당은 구심점을 잃고 말았고, 대다수의 당직자들이 민주자유당으로 이동하였다.

같이 출마한 정주영의 존재감이 강해 묻히는 경향이 있지만, 박찬종신정치개혁당 또한 나름 돌풍을 일으켰다. 14대 대선에서 지역 기반도 없는 군소정당 소속으로 오직 박찬종이라는 이름값 하나로 6%를 득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러나 신정당은 박찬종 1인에 의존하는 정당이라는 한계가 있있다.

이때문인지 신정당은 낙동강 오리알이 된 통일국민당과 합당해 신민당(1994년)을 창당한다. 그러나 김동길과의 갈등으로 인해 창당대회 과정에서의 각목 난투극으로 인해 이미지가 손상되었으며, 그 후 김동길은 정계를 은퇴하였고, 박찬종은 계속되는 선거 낙선으로 인해 정계를 은퇴하고 만다.


2.2. 김종필핫바지[편집]


1995년, 민주자유당에서 쫓겨난갈라져나온 김종필을 위시한 충청권 올드보이들이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한다. 자민련은 '정통보수론'을 내세워 민주자유당을 저격하였으며, 충청 지역주의를 자극하는 '핫바지론'을 내세워 지지기반을 만들었고, 96 총선으로 세를 불려 97 대선에선 DJ와 손을 잡으며 제2야당과 이후 공동여당 역할도 한동안 어느정도 수행했으나, 오직 충청권에서만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한계가 있었으며, 전국정당과 지역정당에서 갈피를 못 잡으며 좌고우면하다 결국 17대 총선 국면에서 김종필의 낙선과, 심대평국민중심당 창당으로 인해 구심점을 잃어 해산하고 만다.

2.3. 청년층들의 대안으로 부상[편집]


신한국당이인제 후보는 이회창이 이긴 97 경선 결과에 불복한 뒤 신생정당인 국민신당을 창당해 제3의 후보 길을 걷는다. 처음에는 이회창을 제치고 여론조사 2위에 오르는 기염을 보였으나 신생정당의 조직력 한계로 중장년층의 지지를 잃어 3위로 추락한다. 그러나 김대중이회창 둘 다 불신하는 청년들의 지지를 얻는데 성공해 19.2%를 득표한다. 이후 신한국당으로 돌아가진 못하니 DJ에게 가서 실제 2002 민주당 유력 대선후보로도 거론되었지만,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역습을 당하며 대권 자리를 또 내주고 만다. 이후 2007 대선 국면에서는 빈껍데기 정당이 된 민주당(2007년)을 빈집털이 하면서 대선 후보로 출마했으나 0.7%의 득표율을 받고 유력 대권주자로서의 위치를 상실한다.

2007 대선 국면에서는 창조한국당문국현 후보가 공약의 경쟁력이 강하다는 이유로 이명박정동영도 불신하는 청년층들의 대안으로 떠올랐고, 특히 인터넷에서의 지지세가 강해 인터넷 대통령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결과는 5.83%로 다소 아쉬운 득표율을 얻었으나 20대에서 15.9%를 득표해 3위를 기록하면서 청년층에서의 지지가 강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창조한국당은 문국현의 지역구 당선과 비례대표 2석을 얻으면서 나름대로의 성과를 얻었으나, 정반대의 성격인 자유선진당과의 교섭단체 설립으로 인해 개혁 성향의 지지층을 잃어버렸으며, 문국현 대표의 공직선거법위반으로 인한 국회의원직 박탈로 인해 몰락하였다.

2.4. 안철수새정치[편집]


2012년 정계 입문 이후 본격적인 대권주자로 떠오른 안철수는 문재인 후보에게 양보한 대선이 끝난 이후 젊은층과 진보, 중도층의 지지를 등에 업고 12월에 '국민과 함께 하는 새정치 추진위원회'를 출범한다. 이른바 새정치연합은 창당 선언과 동시에 민주당, 새누리당의 지지율을 흡수하고 단숨에 26%라는 지지율을 얻게 된다. 그러나 윤장현, 윤여준 등 과거 자민련의 실패 이유로도 지적되던 올드보이 영입에만 골몰하게 되고 지지율이 허수라는 비판까지 띄며 주춤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3월 2일 돌연 민주당과 합당을 하며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한다.

그러나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분당이 일어나며 천정배, 안철수, 박주선, 김한길 등은 다시 제3지대론을 꺼내든다. 그러면서 각자 국민회의, 국민의당, 통합신당 등 정당을 창당하고 후엔 다들 국민의당으로 합당한다. 국민의당은 20대 총선에서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38석이라는 주목할만한 성과를 거두게 되나 2017 대선 이후 민주당에 지지층을 뺏기며 또다시 부진을 낳게 된다.

그 이후, 국민의당은 바른정당과 합당하였으나 이 과정에서 호남계가 이탈하였고, 지방선거에서의 참패로 인해 내분이 생겨 결국 안철수는 바른미래당을 빠져나와 국민의당(2020년)을 창당하였다. 국민의당은 21대 총선에서 비례 3석이라는 애매한 성적표를 받았고,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안철수가 후보로 등판했으나, 여론조사에서 밀려 오세훈 후보와 단일화를 하였다.

결국 2022 대선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단일화하면서 사실상 안철수 스스로 극중주의, 새정치론을 포기하게 되었다.


2.5. 반기문 대망론[편집]


2010년대 반기문 출마설이 떠돌기 시작하자 나온 제3지대론으로, 친반통일당, 친반국민대통합, 친반국민희망연합, 친반평화통일당, 국민희망총연합 등 딱히 반기문과 연도 없어보이는 어중이떠중이 친반기문 성향 신당들이 쏟아졌다. 바른정당은 해당 논의를 바탕으로 나온 정당이라는 말까지 있었으며, 그 중 김무성은 실제 교류가 있었다고 시인할 정도로 적극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2017년 반기문이 결국 불출마 선언을 하며 무력화되었다.


2.6. 비박계 보수 빅텐트[편집]


20대 총선의 패배에 이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당시 새누리당 주류를 차지하고 있던 친박과 박근혜가 국민의 지지를 잃어버렸음이 만천하에 알려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개칭한 후에도 당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한 비박계들이 새로 정치판을 짜기 위해 뭉친 세력으로, 김무성, 유승민, 정병국, 원희룡, 정운찬 등이 주력이었다. 주력 중 친이계는 늘푸른한국당을 창당하며 제3지대론을 주장하고 친무, 친유계는 바른정당을 창당하나 결국 자력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만 입증한 채 얼마 가지 않아 자유한국당으로 합당되거나 사라진다. 그나마 이후 총선을 통해 친박계 의원들이 몰락하고 비박계가 당권을 장악하긴 한다.


2.7. 김종인 빅텐트[편집]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주장된 것으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이 주장한 제3지대론이다. 김종인은 기성 양당으로는 안 된다며 보수와 진보를 포괄하는 빅텐트를 만들어야 한다며 스스로 대권 출마를 선언하고 정치인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에 김병준, 장기표, 홍석현, 정운찬 등 김종인을 포함한 5명이 주요 제3지대 대권후보로 분리되게 된다. 그러나 역시 또 기성 늙은 정치인들의 모임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데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요 5당에 밀렸다. 자신을 포함해 대권주자들을 초청한 토론회에 스스로만 참가하는 등 굴욕을 맛보게 된다. 결국 5명 전원이 불출마하고 해체되며 와해된다. 사실 참여한 인물들의 이력이 특이해서 잠깐 주목을 끈 것일 뿐 제3지대라고 하기도 민망한 제대로 된 의석 하나 없던 조직이었다.


2.8. 손학규의 중도통합론[편집]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제3지대 통합과 관련해 “한국정치의 구조를 바꾸기 위한 제3지대 중도 통합은 대안신당, 민주평화당 등 기존 정당과의 통합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지만, 이들 정당과의 통합은 필수적 요소”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정치 발전을 위해, 민생중심의 실용적 중도 개혁 정치의 발전을 위해 저를 바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호남을 구심점으로 하는 정당으로 탄생한 민생당은 2020년 2월 24일 바른미래당, 대안신당, 민주평화당과 무소속 의원 등이 통합하여 창당하게 된다. # 그러나 민생당 손학규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은 제21대 총선에서 완패하게 된다. #


2.9. 2023년 제3지대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주요 변수/제3지대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기본적으로 유력 정치인 + 지역기반을 기본으로 깔고 갔던 기존의 제3지대 정당과 달리, 오직 거대양당을 불신하는 무당층 포섭만을 기조로 두는것이 특이점이다.

2.9.1. 이준석·유승민 신당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준석·유승민 신당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위 3지대론에서 파생된 신당론으로, 국민의힘비윤계인 이준석유승민을 중심으로 한 신당 창당론이다.

2.9.2. 비명계 신당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비명계 신당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역시 위 3지대론에서 파생된 신당론으로, 더불어민주당비명계이낙연을 중심으로 한 신당 창당론이다.

3. 제3지대의 예외[편집]



3.1. 진보정당[편집]


민주노동당부터 정의당까지 이어지는 진보정당계들은 대개, 거대양당 다음가는 제3의 정당 포지션을 차지하고는 있으나, 제3지대 정당의 중요한 덕목인 강력한 물주, 대권주자, 중도층과 무당층 포섭에서 약세를 보였다. 중도층과 거대양당 불신층 포섭으로 기존의 거대양당과 차별화를 할 수 있는 제3지대 정당과 달리, 대다수의 진보정당은 거대양당 중 하나인 민주당과 지지층이 겹치기 때문에, 민주당보다 더 좌측으로 가있다는것 이외에는 차별화를 하지 못했다. 또한 진보정당은 야권 단일화라는 명분으로 민주당과의 협치와 단일화를 통해 의석을 따낸 역사가 많았기 때문에, 자력으로 생존하는 경우가 적었다. 이 탓에 진보정당은 양당을 비판하는 행보를 보여도 대안세력이라는 이미지보단 좌파의 극단[7] 혹은 민주당 2중대란 식으로 인식 혹은 폄하 당하는 경향이 더 있는 편이다. 물론 그렇다고 모두가 그런 시선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고 진보정당을 제3지대로 분류하는 언론도 몇 존재하긴 한다.

다만 제3지대라 치더라도, 한국 정당사에서 노동, 진보정당은 아직 제대로 집권할만한 세력을 키워낸 역사가 없었기에 특정 직장집단, 노동조합 위주로 지지층이 구성되어 소선거구제에서 몇몇 노동자 강세 지역에서 소수 의원 당선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 탓에 대선에서 15% 이상의 득표율을 얻은적이 없으며,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해본적도 없다. 그나마도 매우 높은 정당법 허들 때문에 전국 정당 지도부를 유지할 정치자금과 정당의 존속을 위한 2% 이상의 득표에서 간신히 현상유지에만 성공하는 것이 대부분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제3지대나 대안세력으로 부상하기엔 운영능력, 득표기반 모든 것이 부족하다. 말그대로 전국정당으로 숨만 쉬는 수준에 불과한 상황.


3.2. 기타[편집]


비슷한 이유로 극우정당, 종교정당, 원 이슈 정당들 또한, 제3지대로 부르지 않는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특정 성향의 지지층으로만 구성되어 있어 중도층 포섭이 매우 힘들며, 지역기반부터 없는 상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전국정당 운영능력 자체가 미달이다.

거대양당에서 분리된 정당의 경우 상황에 따라 다른데, 국민의당(2016년)의 경우는 안철수라는 강력한 대권주자와 탄탄한 호남에서의 지역기반, 그리고 중도주의적 가치 추구라는 3박자가 맞았기 때문에 제3지대 정당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었으나, 열린민주당의 경우는 대권주자와 지역기반의 부재, 그리고 이른바 '조국기부대'라 할 수 있는 강성지지층만을 겨냥한 방향성 및 중도층 외면 탓에, 제3지대 정당으로 보지 않고 당세 약한 민주당계 정당 혹은 아예 민주당 멀티로 취급받았다.

4. 정당[편집]




5. 주요 인물[편집]



6. 둘러보기[편집]


파일:대한민국 국장.svg
대한민국의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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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0년 치러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보면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이 300석 중 283석(민주-180석, 국힘-103석)을 챙겨 의석을 양분했다.[2] 물론 진짜 중도인 경우도 있고, 그냥 좌우 지지층 흡수하고자 중도 코스프레를 한 경우도 있었다.[3] 대선에서 득표율 15% 이상(선거비 전액 보전 가능 수준) 득표, 총선에서 단독으로 원내교섭단체(20석 이상)를 구성, 지선에서 광역자치단체장을 최소 한 석 이상 얻는 경우를 말한다.[4] 예시로,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은 정주영이 탈당하자 맥없이 무너져버렸고, 안철수의 국민의당은 호남 토호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으로 분열되어버렸다.[5] 이 때문에 현재 지방소멸 가속화로 인해 언젠가 대한민국에 완전히 지역정당이 생존 불가능하게 될 상황이 올 가능성이 크다. 서울과 경기의 경우는 이미 양당이 다 먹고 있어 제3지대를 할 파이가 나오지 않고, 나머지 메가시티 후보 도시들의 지역 재정상태는 날로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6] 본인 고향이기도 하다. 정확하겐 이북에 있는 강원도 통천군 지역이 고향.[7] 서구의 선진국에 비해 비교적 보수적인 한국 정치지형 특성상 진보정당은 급진파로 인식되는 경우가 허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