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닌자대전

덤프버전 :



1. 개요
2. 상세
3. 주요 사건 및 여파


1. 개요[편집]


만화 나루토의 등장인물 사루토비 히루젠이 호카게이던 시절인 25년 전에 발생한 전쟁으로 이타치를 포함한 우치하 일족과 일족의 생존자중 하나인 우치하 사스케[1], 그리고 하타케 카카시우치하 오비토에게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전쟁.

2. 상세[편집]


제2차 대전에서 큰 피해를 당한 5대국의 통치가 흔들리면서 국경 부근에서 소국들이 잦은 충돌에 말려들었고 점차 전쟁이 확대되어 3차 대전이 일어나게 되었다.[2]

전대미문의 소모전이 된 이 전쟁에서는 각국도 전력 부족에 시달렸고 강대국인 나뭇잎 마을도 예외는 아니어서 어린 소년들도 전장에 투입되어 목숨을 잃었다.[3]

제2차 대전에서 활약한 전설의 3닌자도 여전히 큰 활약을 하였고 지라이야의 제자 나미카제 미나토가 상급 닌자로서 활약했다고 알려진 전쟁으로 미나토가 이때의 공적을 바탕으로 호카게가 된것으로 추정된다.

마이트 다이에게 안개 마을 닌자도 7인방이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네 명은 전사, 세 명은 탈주. 마이트 다이 본인도 사망했다.

3. 주요 사건 및 여파[편집]


미나토가 제자인 하타케 카카시, 우치하 오비토, 노하라 린 등을 이끌고 칸나비 교를 공격하여 바위 마을의 보급을 차단했다고 한다.[4] 이 전쟁에서 카카시는 사륜안의 영웅이라 불리게 되어 명성을 떨치게 되었지만 동료인 오비토를 잃고 린도 안개 마을과 얽혀 모종의 이유로 사망한다.

구름 마을에서는 아직 라이카게가 되지 않은 에이(나루토)와 에이의 의동생인 킬러 비도 참전하여 미나토와 싸운 적이 있었다.

3대 라이카게가 사망했다.

모래 마을의 어린 천재 꼭두각시 술사 사소리가 만든 인형이 많이 활약하고 모래에 적들의 피가 스며들어 붉게 되었다는 것에서 유래되어서 '붉은 모래'라는 이명을 얻게 된다.

우치하 이타치가 4살(한국 나이로 5, 6살) 때 발생하여 이것이 이타치에게 있어 크나큰 트라우마가 되어 우치하의 비극이 일어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였고, 사이의 부모님이 이 전쟁에서 전사하여 나뭇잎 마을의 암부인 뿌리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안개 마을의 닌자인 아오가 이 전쟁에서 나뭇잎 마을휴우가 일족백안을 얻었다.

애니메이션에 따르면 엔노 교자가 츠치구모 일족의 리더로 금술을 이용하여 마을 하나를 한 방에 박살내는 일도 있었다고 하며, 나뭇잎 마을의 영웅이라 불린 첸 노사, 그의 제자가 참전했지만 첸 노사의 제자가 전쟁에 전사하자 첸 노사는 전사한 것으로 위장해 종적을 감췄다.

우치하 후가쿠가 만화경 사륜안을 개안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6 14:18:59에 나무위키 제3차 닌자대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이 전쟁으로 인해 이타치는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를 강하게 받아 전쟁에 반대하는 쪽에 섰고, 결국 단조의 명령으로 를 포함한 우치하 일족을 제 손으로 몰살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명령을 내린 단조는 후에 진실을 알게 된 사스케에게 끔살당한다.[2] 사실상 이 대전을 포함한 모든 닌자대전들이 1차 닌자대전을 시발점으로 삼아 도미노처럼 벌어진 경향이 있다. 가령 2차 닌자대전은 제 1차 닌자대전의 여파로 일어났고, 그 2차의 여파로 3차가, 3차의 모종의 사건 때문에 4차 닌자대전이(...) 하는 순. 아마 제1차 닌자대전 때 각국의 균형과 동맹이 본격적으로 흔들리게 된 것이 원인인 듯.[3] 12~13세 나잇대의 애들(이제 갓 중닌시험 본 꼬마들)까지 차출해다가 소년병으로 삼아서 전선에 투입한 걸 각국이 자행한 걸 볼때, 제2차 닌자대전에서 얼마나 전력소모가 심했는지 알만하다.[4] 참고로 칸나비 교의 위치는 풀 마을에 있었다.(아마도 이 다리가 있는 풀 마을의 위치가 나뭇잎과 바위가 소속된 나라들의 국경지대여서 바위마을의 보급로로 선택된듯) 그리고 풀 마을은 이 때 칸나비 대교를 잃고 그 다음에 또 천지교라는 다리를 나뭇잎 닌자에게 또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