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차 국민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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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80년 10월 22일 치러진 대한민국의 5번째 국민투표로 19,453,926명의 유권자가 참여했으며 95.5%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91.6%의 높은 찬성률로 헌법 개정안이 가결되었다.
2. 배경[편집]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 헌법/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12.12 군사반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26 사태 이후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노태우 등의 신군부 세력의 압박으로 최규하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선제 방식을 통해 1980년 8월 27일 전두환이 11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계엄령을 선포한 후, 1980년 10월 22일 헌법 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쳤다.[1]
3. 결과[편집]
이전의 국민투표들과 비슷한 결과로 찬성표가 압도적이었다.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전라남도 광주시의 찬성률이 75.3%로 전국에서 가장 낮았다.[2]
1980년 10월 22일 실시한 국민
투표에서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
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
성으로 확정된 헌법개정을 국무회
의의 심의를 거쳐 이에 공포한다.대통령 전두환
1980년 10월 27일
국무총리 남덕우
국무위원 경제기획원장관 신병현
여담으로 당시 개표방송[3] 에 가수 윤시내가 '어제는 어제'를 KBS 경음악단 반주에 맞춰 부르는 장면이 남아있다.[4] 이 영상은 컬러로 남아있는데, 5차 국민투표는 1980년 10월 22일 실시되었고, 컬러방송은 동년 12월 1일부터 시행되었는데, 당대의 다른 특집프로그램처럼 보존용이나 시험방송용으로 컬러로 녹화했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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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당 계엄령은 이미 10.26 사태부터 선포되어 있었고, 1980년 5월 17일 전국으로 확대되어 5공화국 선포를 앞둔 1981년 1월 24일 전면 해제되었다. 그 후 전두환 정권은 국민들에게 각인되어 있었던 기존의 딱딱한 군인 이미지를 탈피하는 동시에 국민들의 관심사를 정치가 아닌 다른곳으로 돌리기 위해 본격적으로 유화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다.[2] 광주시를 제외한 전남의 찬성률은 전국 평균 찬성률보다 높아 전남의 평균 찬성률은 90.1%였다. 사실 광주를 제외한 전남 지역은 1987년 이전까지만 해도 민주정의당과 전두환 정부의 지지율이 높았다.[3] 1987년 대선까지 선거 개표방송은 합동방송 체제로 진행되었다.[4] 2018년 KBS 스포츠 다큐 88/18에서 최초 공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