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보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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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보병사단
第五十三步兵師團
53rd Infantry Division
파일:제53보병사단 부대마크.svg
충성으로 지키고 열정으로 행한다.
부산, 울산을 지킨다!

창설일
1970년 8월 16일(부산경비단)
1982년 8월 16일(제53보병사단)
상징명칭
충렬(忠烈)부대
소속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제2작전사령부
규모
사단
역할
부산, 울산 지역 방위
사단장
소장 강관범(육사 49기)
위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동




1. 개요
2. 상세
3. 예하 부대
3.1. 사단직할대
4. 과거부대
5. 출신인물
5.2. 장교/부사관
5.3. 병
6. 기타
6.1. 근무환경
6.2. 사단가
7. 사건 사고
7.1. 127연대 하사 총기난사 사건
7.3. 이 모 상병 자살 사건
8. 여담



1. 개요[편집]



사단령
제1조(설치) ① 육군에 사단을 둔다. ② 사단은 관할구역의 작전·훈련 및 군 행정에 관한 사항을 관장한다.
대한민국 국군 제2작전사령부 예하 지역방위사단. 부산, 울산, 김해, 양산전역을 관할 위수지역으로 삼고 있다. 지리적으로 가장 최후방에 위치해 있는 부대일 것 같지만 절대 아니다. 실제로 가장 최후방 부대는 전남 지역에 있는 제31보병사단이다.


2. 상세[편집]


1970년 제2군관구사령부 예하부대로 창설된 부산경비단이 모체이며 1982년사단으로 승격되어 육군군수사령부로부터 부산 지역 위수임무를 인수받았다.

아무튼 부산 지역 지역방위사단의 창설이 늦어지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1960년부터 부산 땅에 있었던 기행부대육군군수사령부(구)제69보병사단이 부산지역 위수임무를 한동안 떠맡았던 흑역사[1]가 있었다. 그래서 과거 군사독재 시절 부산지역 계엄사령부 수임부대가 제53보병사단이 아니라 육군군수사령부였다.

입영부대 본인 선택제 시행 당시에는 부산, 울산 출신 입영자들의 거의 절대다수가 이 곳을 선택하였다. 해안가에 인접해 있는 부대이다 보니 일부 예하부대는 해안경계도 하지만 광안리 해수욕장, 해운대 해수욕장, 송정 해수욕장 등지엔 초병이 아예 없는 등 눈에 잘 안띈다. 사단 본부와 (구)신병교육대좌동 해운대 신시가지와 상당히 가까운 편.[2] 신병교육대 야외교장에서 각개전투 훈련하다가 언덕에 올라가면 저 멀리 어렴풋이 바다가 보인다고 한다.

과거에는 부울경 출신 인원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여 70~80% 정도가 제53보병사단 신병교육대 출신이었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부터는 전국적으로 받아 부산 울산 사람들이 적고, 수도권 사람들이 대다수.

부대 표식은 관할 지역인 부산, 울산, 양산의 3개 지역을 의미하는 삼각형 안에 '5'와 '3'을 합쳐서 한반도 모양을 본딴 형태. 부대 명칭은 한때 '오륙도', '진충(盡忠)'[3]이었지만 영남 지역 지역방위보병사단들을 총괄하던 11군단이 2007년에 해체되면서 다시 '충렬(忠烈)'로 회귀하였다. 사단 역사에 따르면 1982년부터 쓰던 이름이지만 1987년에 창설된 11군단이 이 이름을 가져갔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한동안은 '오륙도'가 상징명칭이었지만 1995년에 '진충'으로 개정했다가 다시 되찾아왔다고 한다. 2008년 뉴시스 보도, 2008년 연합뉴스 보도

국방개혁으로 인해 2020년 12월 1일부로 예하 연대들이 여단으로 승격되었다. 2022년에는 양산대대가 해체되면서 양산시 지역위수임무가 제39보병사단(김해대대)에 인계되었다.


3. 예하 부대[편집]





3.1. 사단직할대[편집]


  • 본부근무대[4]
  • 정보통신대대
  • 공병대대
  • 기동대대
  • 방공대대[5]
  • 군악대[6]
  • 군사경찰대
  • 의무근무대
  • 정비근무대
  • 보급수송근무대
  • 화생방대대
  • 보충중대[7]
  • 충렬대대
125여단 해체에 따라 여기서 맡고있던 예비군 교장들을 관리하기 위해 신설되었다. 사실상 여단급 부대가 대대급으로 감편당한 셈이다.[8] 2025년~2030년 동안 폐쇄절차를 밟게되며 최종적으로는 개금, 송도훈련장(구 2, 4대대)만 남게된다. 참고로 이 두 훈련장은 이미 126여단 예하 대대로 재편되었다.
  • 충렬 1대대: 동구, 영도구(구.1대대) 예비군 훈련장이다. 과거 영도(태종대)예비군훈련장으로 불리던 곳이며 구 125여단본부와 인접해있었다.
  • 충렬 2대대: 북구, 사상구(구.5, 6대대) 예비군 훈련장이다. 일명 모라예비군훈련장으로 불리던 곳이다
  • 충렬 3대대: 사하구(구.3대대) 예비군 훈련장이다. 일명 신평예비군훈련장으로 불리던 곳이다. 여기는 과거 산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이미 폐쇄 및 개편을 준비중이었다.
  • 충렬 4대대: (구)제53보병사단 신병교육대부지에 있던 부대가 충렬4중대가 되었다. 충렬대대 안에서는 장산부대라고 한다.

3.2. 제126보병여단 코끼리[편집]


  • 여단본부 해운대구 좌동
  • 제2대대 남구/수영구 (백호)
  • 제3대대 해운대구/기장군 (장산호랑이)
  • 제4대대 동래구/연제구 (불사조)
  • 제5대대 금정구 (청송)
  • 제O대대 사하구/영도구/중구/동구/서구
  • 제O대대 부산진구/북구/강서구/사상구
  • 제17해안감시기동대대
  • 제18해안감시기동대대
관할: 부산 지역
별칭: 장산대, 코끼리여단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제126보병여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3. 제127보병여단 울산[편집]


  • 여단본부 울산
  • 제1대대 울주군
  • 제2대대 동구/북구
  • 제3대대 중구/남구
  • 제19해안감시기동대대
관할: 울산 지역
별칭: 울산여단, 돌고래여단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제127보병여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과거부대[편집]


  • 제53보병사단 동원지원단[9]
  • 제125보병여단
  • 963 포병대대[10]
  • 해안감시대[11]
  • 신병교육대: 2022년 4월부로 해체되었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제53보병사단/신병교육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출신인물[편집]



5.1. 사단장 [편집]


볼드체대장 진급이 된 사단장.

역대 제53보병사단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7대
박성익




8대
양우천
예) 대장
육사 26기
2작전사령관

13대
한민구
예) 대장
육사 31기
합동참모의장 ,육군참모총장
국방부장관
14대
서진현
예) 소장
육사 31기
사단장

15대
최용림
예) 중장
육사 33기
육군특수전사령관

16대
김한선
예) 소장
육사 35기
사단장

17대
이재수
예) 중장
육사 37기
국군기무사령관, 육군인사사령관

18대
박한기
예) 대장
학군 21기
합동참모의장, 前 제2작전사령관

19대
이형석
예) 소장
육사 41기
사단장

20대
장달수
예) 소장
3사 21기
육군3사관학교장

21대
여운태
예) 중장
육사 45기
육군참모차장
[12]
22대
김봉수
중장
육사 47기
제3군단

23대
여인형
중장
육사 48기
국군방첩사령관

24대
강관범
소장
육사 49기
사단장


5.2. 장교/부사관[편집]



5.3. 병[편집]



6. 기타[편집]



6.1. 근무환경[편집]


53사단의 전지역은 눈이 거의 오지않아 제설작업이 없다. 다만 9월달이면 태풍의 영향권에 접어든다. 따라서 결박 작업 및 쓰러진 나무 정리 작업이 필요하다. 태풍피해로 인한 대민지원도 잦은 편이다. 후방이라서 별거 없어 보이지만 아무래도 부산에는 유엔공원도 있고 주요 시설도 많아서 높은 사람들이 은근히 많이 찾아온다.


6.2. 사단가[편집]



백두산 정기뻗어 이곳에 맺히고

동래성 충렬의 피 가슴에 뛴다

내 고장 평화 안전 지켜나가고

내 조국 통일할 대한의 자랑이란다[13]

[14]

금수강산 내 나라를 빛나게 가꿀

우리는 천하제일 53사단

밀려오는 높은 물결 힘차게 닦는

오륙도의 굳센 기상 믿음직하다

우리는 젊음 바쳐 나라지키는

충성을 다짐한 우리는 충렬이란다

금수강산 내 나라를 빛나게 가꿀

우리는 천하제일 53사단

─ 53사단가


6.3. 신불산 사격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신불산 사격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사건 사고[편집]



7.1. 127연대 하사 총기난사 사건[편집]


1984년 7월, 병사들에게 기수열외를 당한 하사관이 밤중에 무단이탈하여 술을 마신 뒤 내무실에서 병사들을 살해한 사건. 자세한 내용은 오마이뉴스 기사로.

7.2. 53사단 장교 무장탈영 사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53사단 장교 무장탈영 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3. 이 모 상병 자살 사건[편집]


사건의 내용은 각종 언론의 유가족 인터뷰, 추적60분 방영분을 토대로 작성했다.

2014년 12월 29일, 53사단 태종대연대 소속 1대대 부대에서 이 모 상병이 오전 8:15분경 동료들에 의해서 예비군 안보교육관 화장실에서 목을 맨 채로 사망한 상태로 발견된다. 당시 고인은 당일 당직근무 투입을 위해 아침점호 열외를 받은 상태였다. 최초 발견한 동료 2명은 응급처치를 시행해야겠다고 판단, 화장실 칸에 매달려있는 고인을 내려서 화장실 바닥에 눕힌후 CPR(심폐소생술)을 실시한다. 하지만 이미 고인은 사망한 상태였다.

육군제2중앙수사단과 53사단 헌병대에 의해 자살사고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당시 고인의 관물대에서 스마트폰이 나왔고, 디지털포렌식 검사에 의해서 카카오톡 내용의 복구를 통해 자살 이유를 압축했다. 고인은 당시 10살 연상의 여자친구와 교제중이었는데, 마지막 휴가 복귀 전에 여자친구로부터 이별을 통보받고 자살을 결심한 것으로 군은 판단했다.

2015년 1월 31일, 추적 60분 <군 미인수 영현 135 가족은 왜 군을 믿지 못하는가?> 편에서 메인테마로 다뤄지기도 했다.

추적 60분 방영분에 따르면 고인의 가족은 '군의 수사는 군 내부의 문제가 아닌 가족문제(여자친구)로 가닥을 잡아가는 것 같다' 라고 말하며 안타까워했지만, 정황증거상 가족의 내용은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었다.

먼저 고인의 원래 소속부대는 1대대(영도구 동삼동)가 아닌 3대대(사하구 신평동) 소속이었으나 후임에 대한 강압행위로 의해 1대대로 전출될 만큼 자살 당시(전역을 4달 앞둔 상말) 누구에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하극상을 당할 성격은 아니었다. 또한, 후임들에게 잘해주고 정 있게 해주는 선임으로 주변 부대원들에게 기억될만큼 군 내부 문제라고 특정짓기엔 많은 무리가 있다.

유가족들이 주장하는 의혹을 살펴보자면
1. 발견당시 가위로 손목의 동맥을 끊을려고 자해한 흔적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손으로 매듭을 짓고 스스로 목을 맬 수가 있냐?(KBS 9시뉴스 인터뷰)
2. 여동생과 함께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증거가 될만한 유품은 수거하고 증거로써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면 처분할 때였는데 헌병대 수사관의 실수로 인해 소나기(소중한 나의 병영일기, 수양록)를 버려버린다. 당시 헌병대 수사관은 증거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고 입회한 여동생도 동의를 했기 때문에 처분했다고 하지만 유가족 입장에서는 의혹을 부풀리는 기폭제가 되었다.(KBS 추적60분)

당시 자살 사건이 일어난 1대대의 경우 고인이 생활하던 생활관은 폐쇄되고 12명 정원의 생활관에서 20명 이상이 부대끼며 생활해야했고 담당 중대장을 비롯한 중대원 분대원은 경찰청에 의한 거짓말탐지기 수사까지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타살 혹은 군 내부의 문제라고 특정 지을 수 있을만한 내용은 발견하지 못했다.

추적60분에 나온 내용처럼 현재도 고인의 시신은 국군부산병원에 안치되어 있고 사건은 미제 상태로 남아있다. 현재는 국군부산병원이 해체되어 인근의 국군대구병원으로 이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7.4. 울산 군부대 폭발 사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울산 군부대 폭발 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여담[편집]


  • 지리상으로는 후방에 위치한 부대[15]로, 해안사단이라 그런지 신형 전투복 보급이 4순위였다.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긴 하나 보급이나 시설 역시 전방에 비해 별로 좋진 않다. 특히 서부산을 책임지는 모 연대는 전군 최의 시설과 장비를 자랑한다. 내륙대대는 건빵이 1달간 안 나온다든지... 한 생활관에 30명씩 들어가는 경우를 볼 수 있다.[16] 나머지 두 곳도 별반 다르지 않다. 본격적인 해안경계부대가 아니라 지역방위사단이라서 그렇다. 그래도 해안경비를 직접 맡고 있는 부대들의 시설은 그럭저럭 봐줄만한 수준.

  • 예하 대대에서 복무하게 된다면 예비군카빈소총을 정말 지겹게 볼 수 있었다. 현역들이 예비군 관리도 겸하고 있기 때문. 카빈소총에 적힌 US. ARMY 각인은 덤. Inland라는 문구도 있는데, 이 회사는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카빈소총 만들던 회사[17]다. 그러다가 2014년 부터는 카빈 소총은 지급하지 않고, M16 소총으로 지급한다.

  • 부울경지역 자체가 워낙에 이 안오는 지역이다보니, 이 부대에 배치된다면 군 생활 중에 제설작전할 일은 없다고 보면 된다. 제설작업 한번 안하고 수료전역하는 기수도 드물지 않게 나오는 수준. 오히려 제설작업을 한 기수찾기가 더 어렵다. 하지만 그로 인해 그때마다 병사들의 제설작전 노하우의 전승이 자주 끊기고, 그 탓에 전방부대라면 '이게 눈이냐?'는 말이 나올 정도의 싸라기 눈이 와도 노하우가 부족해 맨땅에 삽질하는 기분을 느끼며 제설체험을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보급으로 꼬박꼬박 들어오는 제설용 삽을 보면 '이딴 거 주지 말고 그냥 삽을 달라고'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온다. 물론 있는건 어떻게든 써먹는게 군부대라서, 배수로에 쌓인 낙엽 퍼내거나 고인 물 퍼내기에 제설용 삽을 잘 사용해먹곤 한다.

  • 수도방위사령부가 장점이 많다고 알려져 있지만 여기도 장점이 많다. 주요 방위 지역이 부산과 그 주변 도시인데다, 부산은 제2의 도시인만큼 인프라가 잘 되어 있다. 장산역해운대역이 군 부대 바로 근처에 있고 해운대 신시가지가 바로 보인다. 신해운대역이나 장산역에서 전철을 타면 부산의 주요 번화가인 해운대, 센텀시티, 광안리, 대학가, 서면[18] 등 젊은이들이 놀고 먹을 곳은 많다.

  • 본부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주둔지들이 부산, 울산이기 때문에 주요 번화가까지 비교적 쉽게 나갈 수 있다. 대대급 부대 하나가 양산시 외곽에 있긴 한데, 여기도 시내버스 노선이 부대 바로 코앞까지 들어오는데다 이 버스를 타면 양산역 일대까지 30분 안쪽이면 갈수있고, 양산역 일대도 나름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어 문화생활을 하는데는 크게 부족하지 않다.[19]

  • 당연히 제2의 도시다보니 타지로 나가는 교통편도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편하다. 경남 지역과 경북 남부 지역 도시[20]은 물론이고 그 외 도시들도 4~5시간이면 도착한다. 멀다고 느껴지는 전남 동부 지역[21]이나 경북 북부 지역 도시들도 2시간에서 2시간 30분 내에 도달하며 전남 서부 지역[22]은 서울에서 가는거 보다 오히려 시간이 적게 걸리는 경우도 있다. 만약 해운대쪽에 부대가 있다면 해운대터미널을 이용할 수 도 있다.[23]

  • 울산 쪽으로 배정받게 되어도 주둔지에서 울산의 주요 도심지까지 거리가 그리 멀지 않으며 외부로의 교통망도 괜찮은 편. 일단 울산터미널에서도 부산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많은 노선들이 있으며 호남권 노선도 역시 어느정도는 갖춰져 있다. KTX 울산역도 있으며 울산공항에서 비행기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 울산소재 예하대대중 격오지 중대가 53사단 내 숨은 절경이라고 한다. 천혜의 자연명소라 그 지역으로 처음 자대배치받은 신병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하길 태평양 인근 휴양지같은 곳에 군부대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부대 자체가 아름답다(?)고 한다.

  • 강원도, 경기북부쪽으로의 교통편은 그저 묵념.(...) 저쪽으로 가는 교통편은 53사단의 주요 주둔지에서 한참 떨어진 노포동터미널로 가야 버스편이 있는데 그나마도 자주 없다. 경기북부지역의 경우 구리, 의정부, 고양, 동두천 정도를 제외하곤 사실상 노선이 없으며 그나마도 있는 저 세 노선들은 직통이 아니라 도시 한 두군데를 경유해서 가는 방식이다 보니 버스 탑승시간만 5시간을 그냥 넘어간다. 울산쪽은 상황이 더 심각해서 저 두지역으로 갈때 차라리 서울을 경유하는게 더 나을지경이다. 차라리 경기북부나 강원도쪽에 산다면 연고지병이나 훈련소 본인선택 등을 통해 여기로 오지 않을수 있는 방안을 찾는게 더 좋다.[24]

  • 사단본부를 걷다보면 야생동물보호 표지판을 확인할 수 있는데, '사람이 사는 부대내에 무슨 야생동물?'하면서 방심하다가 갑툭튀사슴이나 고라니 등에 기겁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 10수년을 사단본부의 명물로 있었고 그 때문인지 사단본부 접견실 테이블 가운데에 사슴 모형이 떡하니 있다. 다만 사단장이 교체[25] 되면서 사슴들을 전부 동물원으로 입양보냈다고 한다.

  • 부산에 있던 육군군수사령부가 2007년에 대전광역시로 옮겨가면서 군수사 군악대가 53사단 군악대에 흡수되었다.

  • 2014년 6월 26일 나라사랑 보금자리 준공식을 실시하였다.





  • 2019년 부산 해운대구 산불 당시 다수의 예하부대들이 화재 진압에 동원되었으며, 방공대대 등의 인접 부대들 역시 지원 대기 명령으로 복장과 장비를 갖추고 차량을 준비시켜 몇 시간 동안 연병장에서 대기 했었다.

  • 상근예비역 중 자신이 거주하는 곳이 가락동인 경우는 매우 골치아픈데, 이들의 생활권은 김해[26]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활권인 김해로 가는 순간 탈영이 되어버린다. 가락동 거주자들을 잠재적 범법자로 만들어버린 셈. 심지어 가락동으로 들어가려고 해도 강서7-2번을 타거나 김해 시내버스로 환승하여 들어가는 경우에는 39사단 위수지역인 김해를 거쳐서 가야하기 때문에 1005번을 탄 뒤 택시를 타지 않는 한 빼도 박도 못하고 탈영을 잠깐동안 한 뒤 위수지역으로 다시 들어가야하는 셈. 차라리 김해 원도심 지역도 53사단이 방위하게 하거나, 가락동을 39사단이 방위하게 하면 될 일이다. 물론 지휘관 성향에 따라 지역 사정을 잘 아는 경우 가락동 사는 사람이 김해 원도심 (구체적으로는 장유동을 제외한 김해시 동 지역)으로 점프뛰는 것 정도는 봐주는 경우가 많다.[27] 그리고 후방지역의 특성상 전방보다는 군사경찰의 밀집도가 높지 않은점도 그나마 다행... 다만 잠깐 점프를 뛴 사이 사고에 엮여버리면 굉장히 골치가 아파진다. 물론 외출, 외박인 경우는 출타범위가 시간단위로 개편되었기 때문에 상관없다.[28]

  • 게임 러브 딜리버리 권라떼 루트에서 주인공이 입대한 부대가 이 부대라고 한다.

  • 부산시와 해운대구청은 해운대에 있는 53사단 부대들 모두 다른 곳으로 이전하기 위해 검토하고 있다. # 그 이유는 도시개발이 지속되고 있으나 해운대 장산 일대가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이 되어있어 개발에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이며 해운대구청장의 공약이기도 하다. 다만 이사를 보낼만한 장소가 없다는게 문제아닌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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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래서 군수사령부 예하에 별도의 전투부대가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2] 특히 (구)신병교육대는 동해선 신해운대역에 내리면 걸어서 입대할 수 있을 정도다. 기차타고 신해운대역에서 나오면 바로 옆에 위병소 입구가 있다.[3] 충성을 다함. 진충보국(충성을 다해 나라에 보답함)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으며 한자 문화권인 한중일 3국에서 모두 널리 쓰였다.[4] UN기념공원을 경비하는 UN경비반이 있다.[5] 영외 부대인데, 간혹 사단 직할대라 사단 본부나 장산대에 남는 줄 알고 좋아하고 있다가 버스에 태워 외딴 곳으로 끌려가는 현실에 대해 절망하는 신병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래도 대대본부는 산 아래에 지하철역이 있고, 지하철 또는 버스로 서면, 광안리까지 10분 이면 갈 수 있다. 부산도심에 있다보니 어떻게보면 사단보다 여건이 더 좋다. 그리고 한개 중대는 울산에 있다. 접근성은 좋지못한편.[6] 본부대 소속이 아닌 육군유일 사단 직할 군악대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본부근무대에 흡수될 가능성이 있다.[7] 신병교육대가 폐지되면서 새로 신설되었다. 과거 신교대가 있었던 시절에는 신병교육 수료식까지 마친 중대를 보충중대로 전환해 운영했다. 53사단 전입신병의 기초교육, 배속지결정, 그린캠프 입소 예정자, 현역복무부적합 심사 대상자등을 잠시 맡는 역할을 수행한다.[8] 참고로 125여단 직할대에서 근무하던 대부분 병사들은 사단직할대와 126여단 직할대로 넘어갔다.[9] 공식 명칭이 제53보병사단 동원지원단이었으나 2018년 4월 6일 육군동원전력사령부가 창설된 이후 동원전력사령부 예하 부대로 독립되자 "제53동원지원단"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10] 2022년 11월 30일부로 해체되었다.[11] 기존 해안감시대 병력과 장비는 각 해안감시기동대대로 흡수되었다. 2022년 11월 30일 해체.[12] 사단장 이임 후 정형균 제22보병사단장(육사 48기)의 보직해임으로 인해 제22보병사단장에 부임하여 사단장을 2회 하였음.[13] "대한의 자랑이란다" 이 부분은 2015년 여름에 개사되었다. 개사 전에는 "내 조국 통일할 사나이, 사나이란다"였었다-- => 현재는 다시 "대한의 자랑이란다."로 신병교육대에서 교육중[14] 한 유튜버가 본인이 군복무 중 공모전을 통해 개사했다며 밝힌 적 있다.[15] 일단 최후방 부대는 광주에 위치한 31사단이긴 하나 이곳 역시 후방이긴 하다.[16] 특히 신병교육대대가 그렇다. 심한 경우엔 40명까지 집어넣는다. 충렬 19-12기는 47~48명이 한 생활관에 들어갔었다.[17] 이 회사만 만든건 아니다. 2차대전 당시 미국 유수의 업체들이 군수공장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10개가 넘는 회사들이 카빈 소총을 제작했다. Inland 제조 사업부가 2백만정이 넘게 제작했으며 이곳은 원래 제너럴 모터스에서 차량용 목재 핸들을 만들던 부서다.[18] 다른 번화가인 덕천동사상역 인근은 본부에서 좀 많이 멀다.[19] 택시비도 만만치않은데, 양산택시 요금체계가 기본요금 3300원에 주행·시간요금이 130원씩 올라간다. 더군다나 오지인 내석 쪽의 특성상 할증요금이 붙는다.[20] 김해, 양산, 거제는 시내 교통으로 바로 접근이 가능하고, 대구, 울산, 창원, 포항, 경주, 구미는 고속철도로는 1시간 내에 도착하고 개통 예정인 광역철도를 사용해도 1시간 30분에서 2시간 내에 도달 가능하다.[21] 순천, 여수, 광양[22] 광주, 목포[23] 해운대터미널에 동서울, 서울남부, 일부 경기권 노선 등이 있다. 만약 본인이 수도권에 사는 53사단 근무자라면 노포동, 사상으로 가는 것보다 총 이동시간 면에서는 훨씬 낫다. 시간이 좀 더 걸리긴 하지만 해운대까지 한번에 가기 때문에 충분히 이용해볼만 하다.[24]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위쪽지역 거주자들이 의외로 이 사단에 많이 전입되는 경우가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 접근성이 눈물나기 때문에 위쪽 지역에 산다면 가급적 이 사단뿐 아니라 2작사 예하 사단 배정을 피하는 게 좋다. 후방이라고 해서 편할 거 같지만 각종 자연재해등이 자주 발생하는 주둔지의 특성상 마냥 편하지만도 않다. 무엇보다 만성적인 병력 부족으로 인해 작업, 근무량이 상당하며 시설도 전방보다는 한참 낙후되었다. 물론 주둔지의 특성상 즐길거리는 많겠지만 병력난으로 인해 출타도 쉽지 않기 때문에 생각보다 혜택을 누리기는 어렵다.[25] 박한기 (전)합참의장 - 19대 사단장 이형석 소장[26] 심지어 부산시내버스가 들어가지 않는 동네이다. 김해시 시내버스와 부산 강서구 마을버스만 들어간다.[27] 그렇다고 진영읍, 주촌면 등 김해의 읍면 지역이나 장유동 쪽으로 점프를 뛰지는 말자. 김해 원도심처럼 가락동 주민들의 생활권이라서 사고만 안치면 봐주는 곳이 아니라서 빼도박도 못하는 탈영이다.[28] 참고로 과거 지역단위로 출타범위를 지정했을때는 외출, 외박때도 김해를 갈 수 없었다. 53사단의 출타범위는 부산, 울산, 양산이었기 때문이다. 같은이유로 39사단 장병들 또한 출타때 부산, 울산, 양산을 갈 수 없었다. 39사단의 출타범위는 양산지역을 제외한 경남 전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