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콜(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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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콜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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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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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前 축구선수


파일:dda.jpg

이름
조 콜
Joe Cole

본명
조셉 존 콜
Joseph John Cole
출생
1981년 11월 8일 (42세) /
잉글랜드 런던 패딩턴
국적
[[잉글랜드|

잉글랜드
display: none; display: 잉글랜드"
행정구
]]

신체
175cm, 76kg
직업
축구선수 (미드필더[1] / 은퇴)
축구코치
소속
선수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1998~2003)
첼시 FC (2003~2010)
리버풀 FC (2010~2013)
릴 OSC (2011~2012 / 임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2013~2014)
아스톤 빌라 FC (2014~2016)
코번트리 시티 FC (2015~2016 / 임대)
코번트리 시티 FC (2016)
탬파베이 라우디스 (2016~2018)
지도자
첼시 FC (2019~2020 / 유스 코치)
국가대표
파일: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56경기 10골 (잉글랜드 / 2001~2010)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지도자 경력
6.1. 첼시 FC
7. 여담



1. 개요[편집]


잉글랜드의 前 축구선수.

2000년대 초반 웨스트햄이 배출한 또 다른 황금 세대의 재능 중 하나였으며 제 2의 폴 개스코인으로 불리웠으나, 지독한 부상 악령에 시달리며 재능만큼 커리어를 꽃피우지 못한 선수였다.

주제 무리뉴 감독 부임 이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가 그의 전성기였으며, 경기를 잘 소화하던 시즌엔 언제나 리그 최고의 선수 상 후보에 오르내릴 정도로 임팩트가 있었으나 티에리 앙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웨인 루니, 스티븐 제라드, 프랭크 램파드 등의 전성기와 동시대를 뛰었던 선수였기에 수상을 노리기는 힘든 위치였다. 그러나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선 주전 왼쪽 미드필더로 나와서 인상적인 골을 기록하는 등, 분명히 자신만의 위치와 캐릭터를 갖고 있었던 선수였다.

이후 테크니션들의 고질적인 사례인 부상으로 인한 운동 능력 저하로 인해 기량을 잃어감과 동시에 축구의 패러다임이 또다시 전환하던 시기와 맞물려 높은 수준의 운동 능력을 유지할 수 없어진 그는 점점 커리어의 내리막을 겪다가 은퇴하게 된다.


2. 클럽 경력[편집]



2.1.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편집]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에 프로로 데뷔하여 21살의 나이에 주장 완장을 찰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으나 팀이 2부로 강등당하자 첼시로 이적한다.


2.2. 첼시 FC[편집]


라니에리 감독 시절에는 주전 경쟁에 밀려 자주 출장하지 못했는데, 첼시가 무리뉴 감독을 선임하고 돈다발을 쏟아붓자 점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이 때 무리뉴 감독에 의해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측면으로 위치를 옮기는데, 이게 대박을 쳤다.

04/05, 05/06 시즌 첼시의 우승에 큰 역할을 하며 EPL 정상급 윙어로 올라서게 된다. 특히 05/06 시즌 맨유와의 경기에서 보여준 골은 그의 재능의 화룡점정. 그리고 첼시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왼쪽 윙 자리도 차지했다. 본래는 오른발잡이이기에 오른쪽을 선호하지만 당시 데이비드 베컴이 부동의 오른쪽 자리를 고수하고 있던지라 콜은 왼쪽으로 자리를 옮겼다.[2][3] 2006 독일 월드컵 때 유명한 골 중 하나인 독수리 슛의 장본인.

그러나 06/07 시즌을 앞둔 미국투어에서 부상을 당하며 기나긴 부상의 역사를 쓰기 시작한다. 부상의 정도가 심각했던 탓에 06/07 시즌을 통째로 말아먹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4] 그러다 07/08시즌 극적으로 부활하여 04/05, 05/06의 기량, 아니 그이상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팬들을 사뭇 설레게 하였다.[5] 특히 30R 토트넘전에서의 보여준 경기력은 가히 신급. 시즌 종료 후에는 첼시 올해의 선수로 뽑혔다. 그리고 모사이트에서 실시한 설문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라이벌로 선정되기도 하였으나[6] 08/09시즌이 시작되자마자 또 부상을 입었다.시즌전에 A매치에서 2경기 3골을 넣었고 08/09시즌 개막전에서 팀의 시즌 첫골을 성공시키는 등 쾌조를 보였던터라 08/09시즌에도 활약이 기대되었지만 10R 정도 지나자 급하락세를 보이며 결국 시즌아웃. 시즌이 끝나고 인터뷰에서 조 콜은 개막전을 제외하고는 몸이 정상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 후 부상-복귀-부상-복귀를 반복하다 09/10 시즌을 끝으로 자유계약으로 첼시를 떠났다. 이미 그 이전부터 이적 루머는 무성했으나 조 콜의 팀에 대한 자부심과 충성이 대단했기에 루머로서 끝났으나 계속된 부상과 포지션 경쟁자 플로랑 말루다, 니콜라 아넬카 등이 주전자리를 확고히 함에 따라 결국 본인도 팀을 떠나기로 결심하였다.[7]

2.3. 리버풀 FC[편집]


리버풀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안필드에 화려하게 입성했으나 개막전에서 양발 태클로 퇴장을 당하는 등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리버풀에서 부진한 모습을 계속 보이는 원인 중 하나는 그가 뛰고 싶어하는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는 팀의 레전드 스티븐 제라드가 뛰고 있다는 것이었다. 42경기 5골이라는 첼시 시절보다 초라한 성적만 남기고 팀을 떠나야 했다.


2.3.1. 릴 OSC (임대)[편집]


2011년 8월 31일,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서 전 년도 프랑스 리그 우승팀인 릴 OSC로 1년간 임대 이적을 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9월 1일 입단식을 통해서 공식 확정되었다.(등번호 26번 배번)

여담으로 프랑스 리그를 뛰지만 영국의 집에서 출퇴근을 한다고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아무리 릴이 프랑스 최북단 지역에 있다지만 현실적으로 힘든 이야기인지 프랑스에서 살았다.[8] 릴에서 어느 정도 좋은 모습을 보였고 프랑스 생활에 만족한 듯. 특히 음식은 환상적이라고 인터뷰했다.

하지만 릴에서의 시즌이 끝나고 리버풀로 다시 복귀하였다. 그리고 첫 경기 교체 출전 뒤 다시 부상으로 교체당하면서 유리몸 기질 어디 안 간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결국 주전 확보에 실패했다.

여담으로 릴에서 뛰던시절 당시여러 빅클럽들에게 구애받던 에덴 아자르에게 첼시행을 추천했다고 한다. 여러 클럽들의 오퍼에 갈팡질팡 하던 아자르에게 결정을 하는데 어느정도 도움을 준듯하다.


2.4.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편집]


마침 고향팀 웨스트햄의 샘 알라다이스 감독의 오퍼가 들어와 2013년 1월 이적시장을 통해 이적료 없이 친정팀으로 돌아갔다. 1년 6개월 계약으로, 등번호는 데뷔 당시 웨스트 햄에서 달았던 26번. 이변이 없는 한 웨스트햄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것으로 보였다.


2.5. 아스톤 빌라 FC[편집]


그런데 2014년 2월 3일자로 시즌이 끝나고 MLS로 이동한다는 기사가 떴다. # MLS행은 루머로 끝났고, 2014년 6월 9일 아스톤 빌라 FC로 이적하였다. 아스톤 빌라에서는 백업 멤버로 14-15 시즌 13경기(리그 11경기)에 출장하였다.

2015년 10월 16일 3부리그의 코번트리 시티로 단기 임대되었다. 2016년 1월 8일 겨울 이적 시장에서 코벤트리 시티로 완전 이적되었다.


2.6. 코번트리 시티 FC[편집]


35일짜리 긴급 임대였는데 프리킥으로 전성기 시절 못지않은 멋진 골을 기록하는 등 꽤나 괜찮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2016년 1월 3일까지 임대 기간이 연장되었다.

코번트리 시티가 그를 겨울 이적 시장에서 완전 영입하고 싶어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 결국 코벤트리 시티가 조 콜을 완전 영입했다. 계약 기간은 6개월이다.


2.7. 탬파베이 라우디스[편집]


5월 4일 MLS 2부 리그격인 NASL리그의 템파베이 라우디스에서 2017년까지 1년 연장 옵션 포함하여 이적하였다.#

2018년 11월 13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56경기에 출전해 10골을 넣었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의 조별 리그인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안드레아스 이삭손을 당황케하는 장거리 발리슛으로 득점에 성공했고, 그 골은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골 중의 하나로 꼽힌다. 영상 보기


4. 플레이 스타일[편집]



폴 개스코인의 뒤를 이었던 천재적인 재능의 선수였다. 팬들은 훗날 같은 첼시의 10번이 되었던 에덴 아자르와 많이 엮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서로가 테크니션이라는 점 외에는 그렇게 닮은 구석이 많지 않다.둘다 잘생긴 단신 빡빡이란것은 닮았다 오히려 개스코인이나 잔프랑코 졸라의 케이스와 비교해야 마땅할 것이다.

에덴 아자르릴 OSC 시절주터 윙어로서 주목 받는 선수였지만, 조 콜은 본디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선수였으며, 요즘의 기준에선 스타일상으로 에덴 아자르보다는 잭 그릴리쉬에 가까운 선수였다. 거대한 재능과 열정을 가졌으나, 전술적으로 미묘한 어긋남을 보였던 선수. 폴 개스코인, 데얀 사비세비치 등 이러한 틀이 잡혀 있지 않은 변덕쟁이 천재 유형의 선수들이 그렇듯이 조 콜 또한 그 재능에 비하여 선수 생활 내내 자신의 메인 포지션을 굳혀서 꾸준히 재능에 걸맞는 위대한 성과를 낸 적이 없었으며, 팀의 사정에 따라 여러 포지션을 전전하였다.

상투적인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었던 선수였다고 할 수 있다. 에덴 아자르에게는 없는 수비 능력과 의지 또한 어느정도 가지고 있었다. 양 발로 강슛을 날릴 수 있었고, 슛팅이 위치를 가리지 않아서 각도가 없는 측면이나 먼 거리에서의 독수리 슛 같은 골들도 있었다. 라보나 킥을 구사한다던가, 화려한 턴 동작도 많았으며, 공간을 파고드는 것도 잘 했고, 패스의 종류도 다양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무기는 드리블이었으며, 공간을 확보한 상태에서의 드리블도 좋았지만, 선수들에게 둘러 쌓인 난전 속에서 드리블로 벗겨나와 빠져 나가는 데도 능했다. 한창 때는 각종 축구 게임들에서 조 콜의 능력치는 매우 높았으며, 풋볼매니저 같은 게임에선 아예 천재성이 20점 만점에 20점이었다. 자신의 세대에선 가장 뛰어난 잉글랜드의 재능으로 널리 인정 받았었다.

그는 본디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였지만, 첼시의 환경에서는 측면 미드필더를 소화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덕분에 굉장히 터프하고 호전적인 경기 스타일을 갖고 있었다. 거친 슬라이딩 태클과 적극적인 압박 등은 주제 무리뉴 감독의 부임 이후 그에게서 주문 받은 것들인데, 아주 성실하게 잘 이행하며 주전 경쟁을 순조롭게 펼쳐갔다.

다만, 피지컬적으로 그리 튼튼하지 않은 몸임에도 거칠고 헌신적인 플레이와 역동적인 테크닉을 모두 구사하며 경기 욕심을 구가하였기에 필연적으로 선수 생활 내내 부상을 동반하며 시즌을 보내곤 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세대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과 재능을 가진 선수임에는 변함이 없었으나, 계속 되는 부상으로 인해 리버풀 이적 즈음에서는 이미 신체 능력의 손상으로 재능을 다리가 맞춰주지 못하면서 전성기가 꺾이게 된다. 그 이후 릴 등을 전전하며 그저 그런 커리어를 쌓았으나, 2000년대 중반까지 보여주었던 그 명성만큼은 그 시절의 축구를 보았던 많은 사람들에겐 아직까지 남아 있다.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5.2. 개인 수상[편집]




6. 지도자 경력[편집]



6.1. 첼시 FC[편집]


2018년 12월 28일 조 콜은 첼시 아카데미 코치로 선임되었다.

19/20 시즌 종료 후 아카데미 코치직에서 물러났다.


7. 여담[편집]



  • 첼시 시절에 당시 인기 글래머 스타였던 킬리 하젤의 방에서 잠들었다가 그녀의 남자친구에게 두들겨 맞은 사건을 겪은 바 있다.


  • 첼시의 유스 코치직에서 물러난 이후로는 주로 방송에 출연하며 축구 패널로 일하고 있다. 첼시 선수였고 첼시 코치까지 맡아서인지 주로 첼시 전문가 포지션으로 출연하는데 구단에 대한 애정과 코치 시절에 현 첼시의 유스 출신의 주축 자원들을 지도했기 때문인지 메이슨 마운트리스 제임스같은 첼시 유스 출신 선수들을 입이 마르고 닳도록 칭찬한다.

  • 22-23시즌과 23-24시즌 성적이 곤두박질 치고있는 첼시를 보며 로멜루 루카쿠를 왜 내보냈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했지만, 루카쿠와 첼시의 불화가 누가 스타트를 끊었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경솔하게 내뱉은 말에 불과하기 때문에 첼시의 팬들로 부터 비판을 받고있다.
[1]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2] 당시 잉글랜드 대표팀에는 마땅한 왼쪽 윙어가 없었던 면도 컸다. 조 콜은 원래 오른발잡이이지만 왼발도 상당히 잘 썼기 때문에 왼쪽에서 뛸 수 있었던 것이다.[3] 2000년대 후반부턴 주발과 반대되는 사이드에 위치하는 인버티드 윙어라는 개념이 낯설지 않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4] 리버풀과의 챔피언스리그 4강에 나와 결승골을 넣는 등 간간히 활약했지만 리그에서 한 골도 못 넣는 등 극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5] 그전의 조콜은 드리블을 너무 남발한다던가 불필요한 묘기플레이가 많았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07/08시즌에는 완벽히 팀에 녹아드는 팀플레이를 선보이며 한층 향상된 기량을 과시했다.[6] 사실 라이벌이라기보단 이 시즌 호날두의 활약이 넘사벽이었기에 그나마 호날두 다음으로 좋은 활약을 한 윙어로 조 콜이 선정된 것에 가깝다.[7] 이적 전 주급 문제로 구단과 재계약을 못하다가 떠났다고는 하지만 사실 팀내 점차 좁아지는 자신의 입지가 이적의 결정적 원인이었다.[8] 영국 동남부와 프랑스 북동부는 해저터널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거리가 가깝다면 배나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출퇴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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