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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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토레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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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
1996
1998
1999
2000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96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감독 상
루 피넬라
(시애틀 매리너스)

자니 오츠
(텍사스 레인저스)
조 토레
(뉴욕 양키스)


데이비 존슨
(볼티모어 오리올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98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감독 상
데이비 존슨
(볼티모어 오리올스)

조 토레
(뉴욕 양키스)


지미 윌리엄스
(보스턴 레드삭스)











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torre_plaque.png
조 토레
헌액 연도
2014년
헌액 방식
베테랑 위원회 선정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71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MVP
자니 벤치
(신시내티 레즈)

조 토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자니 벤치
(신시내티 레즈)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번호 15번
스탠 로파타
(1960)

조 토레
(1960~1968)


할 킹
(1970~1971)
뉴욕 메츠 등번호 9번
조지 시어도어
(1973~1974)

조 토레
(1975~1981)


브루스 보치
(1982)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번호 9번
루이스 고메즈
(1980~1981)

조 토레
(1982~1984)


아지 버길
(1986~1988)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번호 22번
팀 존스
(1988~1989)

조 토레
(1990)


밥 맥클루어
(1991~1992)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번호 9번
테리 팬들턴
(1984~1990)

조 토레
(1991~1995)


에노스 슬로터
뉴욕 양키스 등번호 6번
토니 페르난데스
(1995)

조 토레
(1996~2007)


영구결번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번호 6번
토니 아브레우
(2007)

조 토레
(2008~2010)


애런 마일스
(2011)



파일:joetorre_crop_north.jpg

뉴욕 양키스 No. 6
조셉 폴 "조" 토레
Joseph Paul "Joe" Torre

출생
1940년 7월 18일 (83세)
뉴욕주 뉴욕시 브루클린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가족
프랭크 토레
신체
188cm / 96kg
포지션
포수1루수, 3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59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MLN)
소속팀
밀워키-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960~1968)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69~1974)
뉴욕 메츠 (1975~1977)
지도자
뉴욕 메츠 감독 (1977~1981)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감독 (1982~1984)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 (1990~1995)
뉴욕 양키스 감독 (1996~2007)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감독 (2008~2010)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2~2013)

1. 개요
2. 선수 시절
3. 선수 성적
4.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1]
5. 지도자 시절
6. 감독 성적
7. 은퇴 후
8. 관련 문서
9.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미국의 전 야구선수, 야구감독. 1996년부터 2007년까지 12시즌 동안 뉴욕 양키스의 지휘봉을 잡았으며, 토레가 지휘하는 동안 양키스는 단 한 번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적이 없다. 총 10차례의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했으며, 6번의 리그 챔피언과 4번의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1996, 1998-2000[2])를 획득했다. 통산 .605의 승률과 2,326승을 기록한 명장이다.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뉴욕 양키스 영구결번을 획득했다.


2. 선수 시절[편집]


파일:external/humanclippingservice.files.wordpress.com/torre66card1.jpg
파일:external/lostangelesblog.com/joe-torre.jpg
메이저리그가 국내에 알려질 때는 이미 뉴욕 양키스의 감독으로서 알려져서 선수 시절 명선수라는 이미지는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실은 조 토레는 선수로서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수였다. 1960년에 데뷔, 통산 3할에 가까운 타율 (.297)과 2,342개의 안타, 통산 9회의 올스타, 1971년 내셔널리그 MVP를 수상했고 통산 타율-출루율-장타율 .297-.365-.452를 기록한 강타자이다.

특히 포수로서는 자니 벤치라는 강자에 가려서 2인자 이미지였지만 공격형 포수로서 손꼽히는 선수이다. 1971년 30세 시즌부터는 3루수로 전향해 MVP를 따는 등 강타자로 커리어를 연장했고, 1977년 36세의 나이에 뉴욕 메츠에서 은퇴한다. 선수 시절 4연타석 병살타라는 불명예스러운 경기를 한 적이 있다.[3][4]

단 아쉽게도 통산 성적이 살짝 아쉬워 선수로 명예의 전당 입성은 실패했다. 훗날 감독으로 입성하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었지만.

3. 선수 성적[편집]


파일:MLB 로고.svg 조 토레의 역대 MLB 기록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60
ATL
2
2
1
0
0
0
0
0
0
0
1
.500
.500
.500
1.000
0.0
0.0
1961
113
441
113
21
4
10
40
42
3
28
60
.278
.330
.424
.754
3.0
3.4
1962
80
248
62
8
1
5
23
26
1
24
24
.282
.355
.395
.750
2.0
1.8
1963
142
556
147
19
4
14
57
71
1
42
79
.293
.350
.431
.781
4.4
4.8
1964
154
646
193
36
5
20
89
109
2
36
67
.321
.365
.498
.863
5.8
5.4
1965
148
594
152
21
1
27
68
80
0
61
79
.291
.372
.489
.862
5.2
4.1
1966
148
614
172
20
3
36
83
101
0
60
61
.315
.382
.560
.943
6.9
6.4
1967
135
534
132
18
1
20
67
68
2
49
75
.277
.345
.444
.790
5.0
5.1
1968
115
464
115
11
2
10
45
55
1
34
72
.271
.332
.377
.709
2.6
2.3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69
STL
159
678
174
29
6
18
72
101
0
66
85
.289
.361
.447
.808
3.3
3.0
1970
161
704
203
27
9
21
89
100
2
70
91
.325
.398
.498
.896
6.0
5.6
1971
161
707
230
34
8
24
97
137
4
63
70
.363
.421
.555
.976
6.9
5.9
1972
149
613
157
26
6
11
71
81
3
54
64
.289
.357
.419
.776
3.4
2.7
1973
141
596
149
17
2
13
67
69
2
65
78
.289
.376
.403
.779
2.6
2.6
1974
147
611
149
28
1
11
59
70
1
69
88
.287
.371
.401
.772
3.2
2.6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75
NYM
114
400
89
16
3
6
33
35
0
35
55
.247
.317
.357
.674
1.1
0.7
1976
114
340
95
10
3
5
36
31
1
21
35
.306
.358
.406
.764
1.5
1.6
1977
26
54
9
3
0
1
2
9
0
2
10
.176
.204
.294
.498
-0.6
-0.4
MLB 통산
(18시즌)

2209
8802
2342
344
59
252
996
1185
23
779
1094
.297
.365
.452
.817
62.3
57.5


4.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5][편집]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조 토레
12
71
96
40
HOF 입성자 평균
27
144
100
50

  • JAWS - First Base (24th)

career WAR
7yr-peak WAR
JAWS
조 토레
57.6
37.2
47.4
1루수 HOF 입성자 평균
66.4
42.7
54.6


5. 지도자 시절[편집]



5.1. 뉴욕 메츠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감독 시절[편집]


파일:external/mit.zenfs.com/TorreCards.jpg
1977년부터 뉴욕 메츠의 선수 겸 감독이 되면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당시의 토레는 별 볼일 없는 성적을 거두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메츠를 떠나 친정팀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도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호성적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그러니까 브레이브스 레전드인 필 니크로데일 머피가 브레이브스 시절 유일하게 가을야구를 했던 1982년에 플레이오프에 한 번 진출한 것에 그쳤을 정도.

그렇게 명선수는 명감독이 되기 어렵다는 사례 중 하나로 남는 듯 했지만...


5.2. 뉴욕 양키스 감독 시절[편집]


파일:external/www.pittsburghsportingnews.com/Torre.jpg
1996년 뉴욕 양키스와 감독 계약을 하더니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뉴욕 양키스가 다시금 왕조의 영광을 누리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에 이른다!

특히 감독들 중 보기 드물게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의 비위를 잘 맞춰주고, 앤디 페팃, 버니 윌리엄스, 데릭 지터, 호르헤 포사다, 마리아노 리베라 등으로 이어지는 골든 제너레이션을 데이빗 콘, 데이빗 웰스, 폴 오닐 등의 베테랑들과 잘 규합하여 양키스의 월드시리즈 3연패[6]와 4년 연속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이끄는 데에 있어 중심이 되었다. 감독으로서 월드시리즈에 6번 진출해 4번을 우승했는데, 모두 양키즈 시절이다.

2007년에는 선수로서 2천승, 감독으로서도 2천승 (총 4천승 이상)을 거두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본인의 지도력보다는 강팀 양키스의 전력에만 기댄 운 정도로 치부하는 시각도 있지만, 조 토레 이전의 양키스는 혼란기였다. 1981년 디비젼 1위를 한 이후로 양키스는 10년이상 플레이오프에 나간 적이 없고, 90년대 초반은 오히려 암흑기였다. 7개팀이 있던 당시 디비젼 기준으로 1982년부터 1992년까지 아메리칸 동부지구에서 5-3-3-2-2-4-5-5-7[7]-5-4 위를 차지했다. 당연히 플레이오프는 단 한번도 나가지 못했다. 이러니 감독 목숨은 파리 목숨이라서 임기를 채운 감독이 없다. 이 기간 동안 감독은 밥 레몬 - 진 미카엘 - 클라이드 킹(이상 1982) - 빌리 마틴(1983) - 요기 베라(1984-85) - 빌리 마틴(1985) - 루 피넬라(1986-87) - 빌리 마틴(1988) - 루 피넬라(1988) - 달라스 그린(1989) - 벅키 덴트(1989-1990) - 스텀프 메릴(1990-91)로 바뀌었다. 빌리 마틴의 경우는 이 이전 5년에도 2번이나 감독에 임명되었다가 잘렸기 때문에 이 시기와 합치면 5번이나 임명과 해임을 반복했다. 그나마도 5번에서 그친 것은 1988년 빌리마틴이 사망했기 때문으로, 만일 그 때 교통사고로 사망하지 않다면 빌리 마틴의 기록은 5번에서 끝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감독 잔혹사를 최초로 끊고 4년간 감독직을 유지하면서[8] 양키스를 플레이오프로 보낸 인물이 벅 쇼월터이지만 쇼월터도 1995년[9] 15년만에 최초로 양키스를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10] 다음에 바로 잘렸다. 이걸로 조지 스테인브레이너는 취임 첫 17년동안 감독을 17번 자르는데 성공했다. 덤으로 브라이언 캐시먼 이전의 단장들은 11번 잘랐다.

그리고 양키스 감독에 오른 인물이 조 토레이다. 14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킨 감독의 후임이고, 더욱이 NL 전통의 강호 브레이브스와 카디널스를 웃음후보로 추락시킨 어두운 과거까지 있는 인물이다보니 감독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팀 장악도 제대로 못할 것이란 게 언론의 예상이었다. 이 시기에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진출한 시기와 거의 겹치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언급이 있었는데 주요 관심사는 조 토레가 얼마나 오래 감독자리를 유지할 것인가였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조 토레는 부임 첫해에 친정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제물로 개인 통산 첫, 팀에게는 18년 만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 성공했고, 한 해 숨을 고른 뒤, 1998년~2000년 3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을 기록한다. 4연패도 2001년 월드 시리즈 7차전에서 마리아노 리베라가 좀만 더 버텨줬다면 불가능이 아니었다.[11] 양키스에서, 특히 조지 스타인브레너 아래서 12년 연속으로 감독직을 유지하려면 보통 인물로는 무리란 이야기인데, 아무래도 양키스같은 완숙기 구단의 감독이 체질이었던 듯 싶다.


5.3.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감독 시절[편집]


파일:external/latimesblogs.latimes.com/joe_torres_a_dodger_now.jpg
하지만 2008년 시즌을 앞두고 재계약 문제로 양키스와 싸우다 영 좋지 않게 헤어졌고[12], 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감독으로 부임한다. 분위기가 어수선하던 다저스의 기강을 확실하게 잡았고 그 결과 2년 연속으로 다저스를 지구 챔피언으로 만든다. 그러나 필라델피아 필리스에게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패하면서 다시금 우승반지를 획득하는데는 실패한다. 2010년 시즌을 끝으로 후배이자 제자인 돈 매팅리에게 감독직을 물려준 다음 사임한다.

다만 감독생활 내내 불펜 혹사가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대단했던 감독이다. 대표적인 예가 불펜투수 주제에 한 시즌에 100이닝을 소화한 적이 두 번이나 있는 스캇 프락터로, 프락터는 토레 감독의 혹사를 견디지 못하고 토미 존 수술을 받고 2012년 크보두산 베어스와 계약하고 말았다. 오죽하면 프락터가 양아들 소리를 들었을까…. 더하여 상기한 마리아노 리베라도 본인의 타고난 내구성으로 이례적으로 장기간 활약하여 레전드가 되었을 뿐 1996년의 순수 구원 100이닝 달성은 명백한 혹사였다.


5.4.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편집]


2012년에는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미국 대표팀 감독으로 내정되었다. "선수를 무사히 구단에 돌려보내는 것이 최대의 일"이라는 발언으로 메이저리그가 WBC를 짐짝 취급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고, 영 좋지 않은 투수교체와 선수기용 등으로 많이 까였으며 미국은 2라운드에서 탈락했다.


6. 감독 성적[편집]


역대 감독 전적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1977
NYM
117
49
68
.419
지구 6위
-
1978
162
66
96
.407
지구 6위
-
1979
163
63
99
.389
지구 6위
-
1980
162
67
95
.414
지구 5위
-
1981
105
41
62
.398
지구 5위
-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1982
ATL
162
89
73
.549
지구 1위
CS 탈락
1983
162
88
74
.543
지구 2위
-
1984
162
80
82
.494
지구 3위
-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1990
STL
58
24
34
.414
중도 취임
-
1991
162
84
78
.519
지구 2위
-
1992
162
83
79
.512
지구 3위
-
1993
162
87
75
.537
지구 3위
-
1994
115
53
61
.465
지구 4위
-
1995
47
20
27
.426
중도 해임
-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1996
NYY
162
92
70
.568
지구 1위
WS 우승
1997
162
96
66
.593
지구 2위
DS 탈락
1998
162
114
48
.704
지구 1위
WS 우승
1999
162
98
64
.605
지구 1위
WS 우승
2000
161
87
74
.540
지구 1위
WS 우승
2001
161
95
65
.594
지구 1위
WS 준우승
2002
161
103
58
.640
지구 1위
DS 탈락
2003
163
101
61
.623
지구 1위
WS 준우승
2004
162
101
61
.623
지구 1위
CS 탈락
2005
162
95
67
.586
지구 1위
DS 탈락
2006
162
97
65
.599
지구 1위
DS 탈락
2007
162
94
68
.580
지구 2위
DS 탈락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2008
LAD
162
84
78
.519
지구 1위
CS 탈락
2009
162
95
67
.586
지구 1위
CS 탈락
2010
162
80
82
.494
지구 4위
-
총계
4329
2326
1997
.538
WS 4승 2패 5CS 4DS
통산 PS 83승 ­


7. 은퇴 후[편집]


은퇴 후에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운영 담당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2011년 말~2012년 초에 있었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인수전에 참가한다고 하여 관심을 모았지만, 찌질한 구단주 맥코트와 싸우는 게 싫어서 도중에 그만두었다고 한다. 결국 최종적으로 스탠 카스텐-매직 존슨 컨소시엄에 인수되었다.

2013년 12월 9일 바비 콕스, 토니 라 루사와 함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만장일치로 헌액된 세 감독의 승수가 총 7558승(...)으로 웬만한 메이저리그 팀의 통산 승수라고 해도 믿을 지경이고, 투표에 나올 선수들이 다들 메이저리그 역사에 빛나는 전설들[13]이라 2014년 치러질 헌액식은 사상 전무후무한 별들의 잔치가 될 것이란게 중론이다.

뉴욕 양키스에서 감독을 하면서 6번을 달아서 한 자리수 등번호를 받은 인물로는 2번을 단 데릭 지터와 함께 생존해 있는 사람.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정되면서 2014년 8월 23일자로 그의 등번호 6번이 양키스에서는 이제 결번으로 남게 되었다.# 이제 2014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데릭 지터의 등번호도 영구결번되면서 뉴욕 양키스에서 한 자리 등번호는 달 수가 없다고 하지만...아직 '0'번이 남아 있다. 그리고 2019년 FA 자격을 얻은 특급 불펜투수 애덤 오타비노가 양키스로 이적하면서 0번을 달게 되었다.

9.11 테러 20주기인 2021년 9월 11일, 시티 필드에서 열린 뉴욕 양키스뉴욕 메츠의 경기에서 2000년 월드 시리즈 당시 메츠의 감독이었던 바비 발렌타인과 함께 시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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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뭔가 부족해 보이는데 이건 토레가 선수 시절의 업적이 아닌 감독으로의 업적으로 HOF에 입성했기 때문이다.[2] 메이저리그 역사상 월드시리즈 3연패를 달성한 감독은 조 토레를 포함해서 케이시 스텡겔(1949-1953, 뉴욕 양키스), 조 맥카시(1936-1939, 뉴욕 양키스)까지 세 명 뿐이다. 그 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딕 윌리엄스(1972-1973), 알 닥(1974) 감독 체제 하에 월드시리즈 3연패를 차지한 적 있다.[3] 참고로 한 경기 최다 병살타 타이 기록이기도 하다. 조 토레 외 한 경기 병살타 4개를 친 선수로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구스 고슬린빅터 마르티네즈가 있다.[4] 참고로 본인은 이에 대해 "나도 나지만, 내앞의 타자였던 펠릭스 밀란도 탓해라, 그가 줄줄이 단타만 쳤기에 이런 기록이 생겼다." 라고 대꾸했다.[5] 뭔가 부족해 보이는데 이건 토레가 선수 시절의 업적이 아닌 감독으로의 업적으로 HOF에 입성했기 때문이다.[6] 10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서도 월드시리즈 3연패는 네번밖에 안나온 대기록이며, 특히 최소 11경기를 승리해야 하는 디비전-챔피언십-월드 시리즈 체제가 확립된 1995년 이후는 유일무이하다.[7] 동부지구 꼴찌. 이때만 해도 각 리그는 동부와 서부 둘로만 나뉘어 있었다.[8] 이건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1990년부터 1993년까지 3년간 영구제명으로 추방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사이에 벅 쇼월터가 팀 성적을 끌어올려서 1993년부터 2-1-1의 성적을 기록했기 때문에 버틴 것.[9] 1994년에도 지구 1위를 달렸지만, 시즌 도중 벌어진 선수단 파업으로 잔여시즌과 포스트시즌이 모조리 취소되는 바람에 지구 1위 기록은 리그 역사에 적히지도 못하고 취소되어 버리고 가을야구도 못 갔다.[10] 결과는 디비젼 시리즈 탈락[11] 하지만 당시 마리아노 리베라는 정규시즌 50세이브 기록을 위해 80이닝이나 던진데다가 포스트시즌 2이닝 마무리를 자주 들어와서 몸에 이상이 있었던지라 얼마간 감독으로서의 관리책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그 리베라가 포스트시즌 2이닝 마무리를 자주 해주는 그 공로로 3연패도 가능했던지라 온전히 리베라만의 책임으로 돌리긴 힘든게 사실이다. 실제로 다음해 리베라는 부상으로 안식년을 가진다. 사실 1996년 셋업맨으로 선발등판 없이 구원으로만 100이닝 넘긴지라 이미 클로저로 장기간 전성기 보낸 것 자체가 이미 상궤를 벗어난거 맞다. 그리고 2002년 안식년이었고 해도 정규시즌은 거의 다 보냈다. 그의 정규시즌 소화를 막은건 외야에서 훈련 돕다가 당했던 시즌 아웃 뿐이었다.[12]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매해 디비전시리즈에서 탈락하자 스타인브레너 구단주는 500만불의 연봉에 포스트시즌 단계마다 100만불, 월드시리즈 진출시 1년 계약 연장과 함께 800만불을 지불하는 계약을 제시했다. 구단에 장기간 헌신한 감독에게 모욕적인 처사였다.[13] 약물 혐의가 확실한 선수들을 제외하더라도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프랭크 토마스 등의 전설들이 쏟아져나와 결국 2014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그밖의 명전 헌액 후보자로 크레익 비지오제프 배그웰도 빨리 헌액되기는 힘들어보이고 커트 실링과 새로 합류하는 마이크 무시나도 장수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