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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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페시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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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페시
Joe Pesci


파일:조 페시.png

본명
조셉 프랭크 페시
Joseph Frank Pesci
출생
1943년 2월 9일 (81세)
뉴저지 주 뉴어크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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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직업
배우, 가수
데뷔
1961년
신체
163cm
배우자
클라우디아 하로 (1988년 결혼 / 1992년 이혼)
자녀
딸 티파니 페시

1. 개요
2. 생애
2.1. 초기 활동
2.2. 배우 활동
3. 출연작
3.1. 영화
3.2. TV
4. 기타
5. 외부 링크



1. 개요[편집]



미국배우, 가수.

1980년대 ~ 1990년대에 거친 캐릭터와 독보적인 연기력으로 활약한 성격파 배우다.


2. 생애[편집]



2.1. 초기 활동[편집]



어린 시절의 조 페시

조 페시는 1943년 2월 9일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메리 페시와 바텐더인 안젤로 페시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전형적인 노동자 집안에서 자랐고 어린 시절 뉴저지 주 뉴어크에서 자라면서 연기, 탭댄스, 노래, 기타를 공부했다. 페시는 아역배우, 아동가수로도 활동했는데 5살에 이미 뉴욕에서 연극 무대와 공연장에 출연하고 있었다.

1953년에는 코니 프랜시스도 출연한 "스타트타임 키즈"라고 불리는 TV 버라이어티 쇼의 고정 출연자로 등장했다. 당시 그의 아버지 안젤로 페시는 아들 조의 수업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제너럴 모터스와 앤하이저부시의 운전 기사와 바텐더로 활동하며 세 개의 직업을 유지했다. 아버지 안젤로는 페시와 그의 두 형제를 자신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여러가지 일을 배우게 해, 다양한 활동을 하게 했다.[1]

벨빌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조 페시는 20대 초반에 음악 활동에 집중했다. 그는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고 밴드 조이 디 & 스타리터스의 뒤에서 기타를 연주했고, 디의 영화 'Hey, Let's Twist!'에서 엑스트라로 출연했다. 페시는 공연에 그다지 열정적이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수입도 좋아서 유명해지기 전임에도 부유하게 됐다. 1968년에는 'Little Joe Sure Can Sing'이라는 앨범을 내기도 했다. 1970년부터 1976년까지는 그의 친구 프랭크 빈센트와 함께 '빈센트와 페시'[2]라는 그룹명으로 뮤지컬 코미디 공연을 했다. 나이트클럽이나 공연장에서 순회공연을 했다고 하며 이 활동으로 꽤 유명세를 얻었다고 한다.


2.2. 배우 활동[편집]



파일:mbdrabu_ec008.jpg

출세작이 된 《분노의 주먹》

조 페시는 1976년부터 본격적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페시는 자신의 장편 영화 데뷔작인 저예산 마피아 영화 '비정의 해결사'에 주연으로 출연한 후, 할리우드로 이사를 하게 됐다. 그러나 캐스팅 제의가 없어서 연기 활동을 얻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배우 일을 포기하려고 했고, 브롱스에 있는 레스토랑인 아미치를 관리하기 위해 동부로 돌아가야만 했다.

하지만 로버트 드 니로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비정의 해결사'의 출연한 조 페시의 연기를 우연히 보게 됐고, 이들은 그의 뛰어난 연기에 감탄을 했다. 결국 스코세이지 감독은 페시를 '분노의 주먹'에 캐스팅했으며, 영화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인 권투 선수 제이크 라모타의 동생으로 캐스팅했다. 이 작품은 조 페시의 출세작이 됐다. 아카데미 시상식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 후보 지명을 받았으며, 뉴욕 영화 비평가 상을 수상했다.[3] '분노의 주먹' 이후 그는 많은 영화의 출연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국내 영화팬들에게는 나 홀로 집에 시리즈에서 케빈에게 수없이 망가져 나가는 도둑 해리 역으로 잘 알려져 있어, 언뜻 코미디 배우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나 홀로 집에 시리즈 뿐만 아니라 리썰 웨폰 시리즈에서도 귀엽고 코믹한 캐릭터로 여러 번 출연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극을 공부해서 다양한 배역을 소화한 명품 연기파 배우로, 1990년대 이전에는 오히려 범죄 영화의 마피아 전문 배우로 더 유명했고, 사납고 무서운 이미지였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이기 때문에 유난히 같은 이탈리아계와 많이 엮인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 매우 친한 걸로 알려졌으며, 과거 배우로 활동하다가 접어두고 레스토랑을 경영하며 살아가던 그를 배우로 다시 끌어들인 게 스콜세지이기도 했고. 스콜세지 영화에 자주 나온 페르소나 관계의 인물#해외이며, 로버트 드 니로, 레이 리오타와 함께 《좋은 친구들》에 나와 그 영화로 1991년 제63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레이징불(분노의 주먹)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때문에 나이 지긋한 영화팬들에게는 마피아 조직원 이미지가 강하다.

조 페시는 의심할 여지 없이 가장 사실적이고 사상 최고의 마피아 배우입니다. (중략) 그는 진짜에요. 그는 내가 아는 어떤 마피아보다 마피아 조직원들을 더 잘 묘사합니다.

마이클 프란지스 #


하비 카이텔, 로버트 드 니로 등과 함께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마틴 스코세이지페르소나로 유명했을 만큼 그의 영화에 많이 출연했고, 입에 욕을 달고 사는 표독스럽거나 폭력적인 이탈리아계 미국 마피아의 정체성을 많이 연기했다. 갱스터 역으로 출연했던 1990년대 작품 '좋은 친구들'이나 '카지노'에서는 수 틀리면 칼로 푹푹 찌르고 총으로 쏴 버리는 등 욱하면 말릴 답이 없는 이탈리아계 마피아의 폭력성을 연기로 자연스럽게 잘 보여줬다. 지금은 손을 씻은 마피아 콜롬보 조직의 간부였던 마이클 프란지스는 조 페시가 자기가 본 배우중에 가장 마피아역을 잘 연기한다고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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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 모습

좋은 친구들》에서의 연기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조 페시의 짧은 수상 소감이 유명한데,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It's my privilege, thank you.)"만 하고 바로 퇴장했다. 소감이 그렇게 짧았던 것은 진짜 받을줄 몰라서 너무 당황해서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그런 것이라고 한다. 가장 짧은 소감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진짜로 가장 짧은 아카데미 수상 소감은 앨프리드 히치콕이 1968년 공로상을 받을때 한 소감인 "Thank you."다.

표독스러운 마피아 연기 이외에도 많은 작품을 가리지않고 다작을 하며 주연이나 조연으로 등장했다. 1982년에는 로드니 데인저필드 주연의 코미디 영화 '이지 머니'의 출연했고, 1983년에는 서독 뮤지컬 '디어 미스터 원더풀'에서 스타의 꿈을 가진 볼링장 주인을 연기했으며, 1987년 이탈리아/프랑스 합작 영화인 '맨 온 파이어'에 공동 주연을 맡았다. 1988년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전기 영화에서 미국 작가 존 도스 파소스를 연기했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 영화 '문워커'에서 만화 같은 갱스터를 연기하면서 판타지 영화에도 출연했다.


이후 1989년 '리썰 웨폰 2'의 출연하며 리썰 웨폰 시리즈의 레귤러 캐릭터 중 하나가 된다. 1990년과 1992년에는 크리스마스 영화의 고전이 된 '나 홀로 집에'와 '나 홀로 집에 2'의 출연해 큰 인기를 끌었으며, 1991년에는 'JFK'의 데이비드 페리같은 코믹한 연기를 하며 폭넓은 인기를 얻었다. 또한 1991년에 주연으로 출연한 법정 코미디 영화 <나의 사촌 비니>도 나름 숨은 수작으로 평가받는다.[4] 극중 6수(...)한 변호사로 나와 어벙하지만 착한 변호사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흥행에도 성공했으며 본인은 아니지만 극중 약혼녀로 출연한 배우 마리사 토메이에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안겨준 작품이다.[5]

'나의 사촌 비니'의 성공 이후 여러가지 작품의 주연으로 등장했으며, 1991년 '슈퍼'나 1994년 '하버드 졸업반', 1997년 '두 낚시꾼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같은 작품도 찍었는데, 흥행이나 비평적으로도 실패를 거뒀다. 이 시기 그에게 가장 중요한 작품은 역시 1995년 스코세이지 연출의 '카지노'다. '좋은 친구들'보다 이 작품에서의 마피아 연기가 더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정도로 명연기를 펼쳤다. 아쉽게도 아카데미상에서 노미네이트 되지는 않았다. 이후 뜬금없이 1998년에는 30년만에 스윙 재즈 앨범[6]을 냈었는데, 이때 함께 싱글로 힙합 음악을 부른 적 있었다. 심지어 뮤직비디오도 있다. 이 앨범은 1992년 영화 나의 삼촌 비니에 나오는 그의 캐릭터의 이름을 따서 'Vincent LaGuardia Gambini Sings Just for You'라고 지어졌다.


파일:joe-pesci-the-irishman.jpg

은퇴 이후 복귀작 《아이리시맨》

1999년에 연기 활동을 은퇴했다. 당시 마지막 작품이 '리썰 웨폰 4'였다. 카메라로부터 떨어져 사는 삶을 즐기기 위해 은퇴한다고 발표했다. 은퇴 이후에도 카메오나 성우 활동을 하기도 했다. 동갑내기 친구인 로버트 드 니로와도 매우 친해서[7] 은퇴 이후 드 니로가 감독한 <굿 셰퍼드>에서 범죄에 연루된 이탈리아계 이민자로 카메오 출연한다. 비록 출연 시간은 매우 짧지만 주인공 역을 맡은 맷 데이먼과의 대화가 상당한 명장면으로 꼽힌다. 2012년에는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HBO 드라마 '럭키'의 캐스팅 제의를 받았지만, "나는 일자리를 찾고 있지 않다."고 말하며 거절했다.

2019년 아이리시맨의 러셀 버팔리노 역으로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하면서 스콜세지-드 니로와의 갱스터 영화 인연을 이어갔으며, 기존에 연기했던 잔혹하고 다혈질인 마피아 조직원 역할과는 차별화된 뒤에서 흑막으로써 암약하는 차분하면서도 냉정한 마피아 보스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내며 팬들의 극찬을 받았다. 이 작품으로 29년만에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도 올랐다. 아이리시맨 출연 이후 다시 은퇴 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2022년 코미디 드라마 부프키스(Bupkis)의 출연한다는 기사가 발표됐다.


3. 출연작[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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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영화[편집]


년도
제목
배역
비고
1961
헤이, 렛츠 트위스트!
페퍼민트 라운지에서 댄서
크레딧 없음
1976
비정의 해결사
조 살비노

1980
분노의 주먹
조이 라 모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
1982
아임 댄싱 애즈 패스트 애즈 아이 캔
라저

디어 미스터 원더풀
루비 데니스

1983
용의자
마야코프스키

이지 머니
니키 세로네

1984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밀주 거물 프랭키 미날디

에브리원 인 제일
코라도 파리시

1987
맨 온 파이어
데이비드 쿨리지

1988
문워커
프랭키 리데오

더 레전데어리 라이프 어브 어니스트 헤밍웨이
존 도스 패소우즈

1989
리썰 웨폰 2
리오 겟츠

1990
캐치파이어[8]
레오 카렐리
카메오 크레딧 없음
벳시즈 웨딩
오스카 헤너

좋은 친구들
토미 드비토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
나 홀로 집에
해리 라임

1991
더 슈퍼
루이 크리츠키

JFK
데이비드 페리

1992
나의 사촌 비니
빈센트 라과디아 갬비니

리썰 웨폰 3
리오 겟츠

더 퍼블릭 아이
리온 번스타인

나 홀로 집에 2
해리 라임

1993
브롱스 이야기
카미네

1994
지미 할리우드
지미 알토

하버드 졸업반
사이먼 와일더

1995
카지노
니키 샌토로

1997
가방 속의 8머리
토미 스피넬리

두 낚시꾼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죠 워터스

1998
리썰 웨폰 4
리오 겟츠

2006
더 굿 셰퍼드
조지프 팔미
카메오
2010
러브 랜치
찰리 본템포

2016
어 워리어즈 테일
모기왕
목소리
2019
아이리시맨
러셀 버팔리노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


3.2. TV[편집]


년도
제목
배역
비고
1985
하프 넬슨
록키 넬슨
에피소드 6
1992
크리프트 스토리
빅/잭
에피소드: "개인정보 분할"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본인/호스트
에피소드: "조 페시 / 더 스핀 닥터즈"
2023
부프키스




4. 기타[편집]


  • 대표적인 뉴욕 발음 완벽 구사자 배우이다.[9] 뉴욕 발음 자체가 이탈리아계 영향이 매우 커서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조 페시가 구사하기 수월한 부분도 있다. 또다른 뉴욕 발음 구사자 배우로는 존 터투로.[10] 두 배우 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이다.


1990년대 말에 SNL에 Joe Pesci Show 라는 코너가 있었다. 배우 본인이 나온건 아니고 크루가 연기한다. 본 코너에서는 1970~80년대 인기배우들이 희화화된다. 특히나 친한 동료인 로버트 드 니로나 같은 이탈리아 계인 알 파치노는 단골소재.

  • 아카데미상에서 총 세 번 후보에 올라 한 번 수상을 했는데, 이 작품들이 모두 다 마틴 스코세이지 연출작이다.


  • 데이비드 레터맨레이트 나잇에 출연했을 당시 레터맨의 앞에서 대놓고 시가를 피운 적이 있다.[11]

  • 2019년 1월에 맥컬리 컬킨이 출연한 구글 어시스턴트 광고를 접하게 되었다.# 그는 "많이 컸네..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흐른건가?" 라며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힘들었던 지난 날[12]을 뒤로하고 밝게 지내니 기분이 좋다."며 그렇게 당하기만 하던 지난 날을 뒤로 하고 소회를 밝혔다.

  • 미국 아니 전세계 최고의 인기를 누린 영화인 나 홀로 집에에 같이 출연한 동료인 다니엘 스턴과도 매우 친한 관계이다. 실제로도 공석뿐 아니라 사석에서도 자주 만난다.

  • 조지 칼린과도 절친했다. 조지 칼린은 스탠딩 코미디를 하면서 조 페시에 대해 이러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내가 누구한테 기도하는지 알아? 조 페시. 두 가지 이유: 우선, 나는 그가 좋은 배우라고 생각해, 알았지? 난 그게 중요해. 둘째, 그는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조 페시는 빈둥거리지 않는다. 사실, 조 페시는 신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두 가지 일을 해냈다.

  • 사생활중에도 욕을 입에 달고 살며 그 때문에 나홀로 집에 촬영 중에는 어떻게든 욕을 안 할려고 괴성을 질러 얼버부렸다고 한다. 촬영 중 조 페시가 자꾸 F워드를 말하려고 하자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은 발음이 비슷한 Fridge(냉장고)로 대체해보라고 한 일화가 있는데 실제로 BB탄총으로 고자샷을 맞는 장면을 보면 그런 부분이 드러나며 2편에서 케빈이 뉴욕에 있는 친척어른의 집에 불러들일 때에도 그를 알 수 있다. 또한 엄청난 골프 중독자로 아침 7시에 깨웠다고 조감독을 때릴 정도로 아침을 싫어하면서 촬영 중에도 새벽 4시쯤 몰래 빠져나가 골프를 치고 9시에 출근하길 즐겼다고 한다.

상술했듯이, 골프광으로 유명한데 잭 니콜슨,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자주 골프를 쳤다고 한다.


Life is short with a temper like Joe Pesci
조 페시처럼 화만 많으면 인생은 짧아져





5.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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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 페시는 후일 인터뷰에서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이들을 밀어붙이기 때문에 아버지는 나에게 그것을 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저는 사업에서 자랐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아버지는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내가 노동자나 그 무엇도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죠. 저는 그게 옳은 일인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2] 1루수가 누구야로 유명한 에벗과 코스텔로의 영향을 받은 코미디를 했다고 한다.[3] 안타깝게도 아버지 안젤로 페시는 아들의 성공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는 '분노의 주먹'이 촬영되기 전에 사망했다.[4] 특히나 극적인 면에 치중한 법정물과 달리 법정이 배경인 코미디물이라 오히려 실제 재판 과정을 가장 사실적으로 그려낸 영화로 여겨진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의 신동운 교수(2017년 정년퇴임)는 형사소송법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미국 형사소송의 실제를 이해하는 데에 가장 도움이 되는 영화'라며 '나의 사촌 비니'를 추천했다고 한다.[5] 근래에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스파이더맨의 숙모 메이 파커 역을 맡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이 분 역시 100% 순수 이탈리아계 미국인이다.[6] 원래 가수를 준비하다가 배우로 갈아탔다.[7] 같이 출연한 작품도 꽤 된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부터 좋은 친구들, 성난 황소, 카지노, 아이리시맨까지... 이외에도 다수.[8] 데니스 호퍼가 감독, 주연을 했으며 조디 포스터가 여주로 나온 영화지만 흥행이나 평은 실패했다. 제작자들이랑 다툼도 있어서 감독 이름을 알란 스미시로 표기. 국내에서는 91년에 대우비디오에서 '뒤로 가는 남과 여'라는 해괴한 제목으로 비디오를 냈고 93년 5월 1일 토요명화에서 비디오 제목으로 더빙 방영했다. 탁원제가 조 페시를 맡았다.[9] 뉴욕 발음은 조 페시가 단골출연하는 마피아계 영화에서 흔히 듣는 그 발음이다. 뉴욕 발음 구사하는 또다른 유명인이 바로 마피아 출신 가수인 프랭크 시나트라 [10] 영화 트랜스포머 시리즈섹터 7미친 요원 역할하는 그 배우이다.[11] 당시에는 심의가 지금과는 다른 의미로 달랐기에 흡연도 그대로 방송을 탔다. 미국 토크쇼 황제인 자니 카슨도 광고 후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12] 정확히는 누나인 다코타 컬킨이 사망한 2008년부터 2014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