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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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군인. 본관은 한양(漢陽).
22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냈으나, 참모총장 임기 도중인 1994년 헬리콥터 사고로 순직하였다.
2. 생애[편집]
1937년 11월 29일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주실마을에서 아버지 조현석(趙玄錫, 1910 ~ 1955. 7. 17)과 어머니 영양 남씨 남증숙(南曾淑, 1908. 9. 10 ~ 1998. 5. 16)[5] 사이에서 4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첫째 작은아버지 조영석(趙寧錫, 1916 ~ 1945. 3. 1)에 입양되었다.
당대의 명문 경북고등학교(38회) 출신으로 1957년에 공군사관학교 9기로 입학했고 1961년에 임관했다. 제15특수임무비행단 비행단장, 공군본부 감찰감(현 감찰실장), 군수참모부장, 작전참모부장, 공군교육사령관, 공군작전사령관을 거쳐 국방정보본부장으로 재직했다.
1993년 합동참모의장으로 영전한 이양호 장군에 이어 공군참모총장이 되었다.
1994년 3월 3일 오후 2시 35분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차 UH-60 헬리콥터를 타고 이동하던 중 탑승한 기체가 공중폭발한 뒤 경기도 용인군 외사면(現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삼리 야산에 추락하면서 순직하였다. 동승했던 아내 조인화(당시 48세), 조종사 강성윤 소령(당시 35세), 부조종사 유영재 대위(당시 31세), 전속부관 이상훈 대위(당시 31세), 승무원 전해술 원사(당시 35세)도 모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국군 창군 이래 전시상황이 아닌 상황에서 현역 대장이 사망하기로는 1984년 제2야전군사령관이던 김홍한 육군 대장 이후 2번째다. 관련기사 계급 특진 문서에도 쓰여있지만 조종사와 승무원, 전속부관 등은 모두 1계급 특진하였지만 조근해 장군은 원수로 특진할 수 없었으므로 대장 계급 그대로 장례를 지냈다.[6]
유가족들은 UH-60의 원 제조사인 유나이티드테크놀로지코퍼레이션과 라이센스 생산업체인 대한항공을 대상으로 소송을 냈으나 패소하였다. 관련기사
역대 대한민국 공군참모총장들은 현직은 정모를 쓰지 않은 프로필 사진을 쓰고 퇴임한 사람은 정모를 착용한 사진을 사용하는데, 조근해 장군도 정모 착용 사진이 있는 걸로 보아, 참모총장에 취임할 때 정모 착용 사진도 같이 찍는 걸로 보인다. 만약 전역 직전에 찍는다고 가정할 경우, 조근해 장군의 정모 착용 사진은 없어야 하기 때문.
차후 5일간 참모차장 최동환이 직무대리를 하다가 다음 참모총장이 취임한 후 바로 차장으로 돌아갔다.[7]
3. 여담[편집]
4. 참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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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경공파(良敬公派)-병참공파(兵參公派) 26세 해(海) 영(泳) 수(洙) 항렬.[2] 한양조씨대보 13권 양경공 병참공파 564쪽에는 1938년생으로 기재되어 있다.[3] #. 인근의 도계리, 가곡리와 함께 한양 조씨 양경공파(良敬公派)-병참공파(兵參公派) 집성촌이다. 조헌영 전 국회의원, 시인 조지훈, 역사학자 조동걸, 조운해 전 강북삼성병원장, 조태열 전 외교부 차관도 이 마을 출신이다.[4] 1994년 3월 4일 동아일보 기사[5] 송정공파(松亭公派) 손재(遜齋) 남진오(南鎭五, 1880 ~ 1948. 4. 23)의 장녀이다.[6] 원수는 계급 중 유일하게 국무회의뿐만 아니라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즉 대통령을 제외한 삼부요인과 거의 동급이기에 쉽게 진급시킬 수 없다.[7] 참모총장이 출장, 휴가, 사건사고 등으로 부재중, 직무정지되거나 유고 상태면 참모차장이 직무대리를 하는 규정이 있다. 물론 이때 공식 직함은 권한대행이지만 호칭과 계급을 제외하면 모든 점에서 참모총장과 같은 예우와 권한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