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니 미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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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미첼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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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5ARYZvK4L2afx8AcWcf6kF-1.jpg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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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조니 미첼
JONI MITCHELL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
(개인자격)
입성 연도
1997년
후보자격 연도
1994년
후보선정 연도
1994년, 1995년, 1997년


























CC
조니 미첼
Joni Mitchell


파일:미첼 누나.jpg

본명
로버타 조안 앤더슨[1]
Roberta Joan Anderson

출생
1943년 11월 7일 (80세)
캐나다 앨버타주 포트 매클라우드
국적
파일:캐나다 국기.svg 캐나다 |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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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직업
싱어송라이터, 화가
서명
파일:Joni_Mitchell_Signature.svg.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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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빌 앤더슨
머틀 앤더슨
자녀
슬하 1녀
켈리 데일 앤더슨 (1965-)
배우자
척 미첼 (1965–1967, 이혼)
래리 클라인 (1982–1994, 이혼)
학력
Alberta University of the Arts중퇴[1]
신체
168cm, 63kg
혈통
부계: 사미족 · 노르웨이|모계: 스코틀랜드 · 아일랜드
활동
1964년 – 현재
사용 악기
보컬, 기타, 피아노, 덜시머
장르
포크, , 재즈,
레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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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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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경력
3. 평가 및 영향력
4. 여담
5. 음반
5.1. 스튜디오 앨범
5.2. 라이브 앨범



1. 개요[편집]



파일:조니 미첼 라이브.jpg

캐나다의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 화가이다.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싱어송라이터이며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가히 전설적으로 평가되는 자기고백적 여성 싱어송라이터다.


2. 경력[편집]


1943년 11월 7일 캐나다 앨버타 주의 포트 매클라우드(Fort Macleod)라는 작은 마을에서 출생했고 서스캐처원 주의 새스커툰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 교사였던 어머니의 반대로 기타 대신 우쿨렐레로 처음 악기를 배웠으나 이내 피트 시거의 노래로 기타를 독학했다. 이후 친구들과 재즈 음악을 연주하며 음악에 관심 쌓다가 새스커툰의 한 클럽에서 유료 공연을 하기도 했다. 에이든 바우먼 콜리젯(Aden Bowman Collegiate)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Saskatoon Technical Collegiate에서 미술 수업을 들었고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1963년, Alberta College of Art에 입학했으나 미술 공부에 흥미를 잃고 캘거리에 위치한 The Depression Coffee House라는 클럽에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포크 가수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다닌지 1년 만에 대학을 중퇴하고 1964년, 20살의 나이에 토론토로 옮겨 가 길거리 공연을 시작하지만 캘거리에서 만났던 전 남자친구와 사이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그녀의 보수적인 가족은 미첼의 아이를 입양 보내게 된다. 출산 후, 친구와 토론토의 욕빌(Yorkville) 지역 주변에서 공연을 하다 Penny Farthing라는 포크 클럽에서 일자리를 찾았고 그곳에서 첫 남편이었던 척 미첼을 만났는데 그가 미국으로 건너가면 자신이 아는 커피하우스들에서 꾸준히 공연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설득해 1965년 미국디트로이트로 떠났다. 1967년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 포크씬에 입성한 뒤, 1968년 첫 데뷔앨범 "Song To A Seagull"을 발표하면서 가수 활동을 시작한다. 1960년말부터는 미국 LA에서 쭉 거주했다.

"'Song To A Seagull"', '"Clouds"', "'Ladies of the Canyon"' 이 세 앨범을 발표하면서 감미로운 기타사운드와 목소리, 자연 친화적이면서도 내밀한 가사들로 인해 1970년대 초 싱어송라이터 열풍에 동참하면서,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게 된다. 1971년 발매한 Blue 앨범이 평론가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그 후에는 1974년 발표한 "'Court and Spark'"를 기점으로 1975년 발표한 '"The Hissing Of Summer Lawns'"같은 재즈에 영감을 받은 걸작들을 발표하면서 대중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상당히 광대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마일즈 데이비스찰스 밍거스[2] 등의 재즈 뮤지션과의 교류도 깊었다.

최근 앨범으로 2007년 발표된 "Shine"이 있으나 2009년 이후 병환으로 활동 중단 상태이다.[3] 2015년 뇌동맥류로 사경을 헤맸지만, 다행히 걷고, 말하고, 그림을 그리는 수준으로 회복됐다고 한다. 2016-17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걸 보면 완전히 회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생각보다 차도가 있었던 모양. 2018년 75세 생일 축하 콘서트가 열려서 참석했다. 2020년 워너 뮤직 그룹와 함께 본인의 전작을 아카이브화하는 프로젝트를 발표했고 2021년 6월 초기 대표작들이 리마스터되어 발매되었다. 첫 앨범 새 리믹스 감수에 [4] 참여한 것으로 보아 건강 상태는 괜찮은 것으로 보인다.

2022년 7월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깜짝 단독 라이브 무대를 펼쳤다! 이렇게 여러 곡을 무대에서 부른 것은 20여년만이며 [5],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는 53년 만에 올라서게 되었다. 의자에 앉아서 주로 불렀지만 중간에 서서 기타 솔로를 연주하는 등 정정한 모습을 보였다.

2023년 11월 80번째 생신을 맞았다.

3. 평가 및 영향력[편집]


국내 인지도는 그럭저럭인 수준이지만, 북미권에서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으로 평가받는 뮤지션으로, 캐롤 킹과 더불어 여성 싱어송라이터 시대를 언급할 때 항상 언급되는 아티스트이다. 북미권에서 조니 미첼 이후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중에서는 조니 미첼의 영향권 아래에 없는 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음악계, 특히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에게 조니 미첼이 가지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약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포크, , 재즈, 블루스 등 다양한 장르를 기타, 피아노, 둘시머[6] 등의 다양한 악기를 통해 넘나든 여성 싱어송라이터는 조니 미첼 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조니 미첼 특유의 사색적 가사와 자기고백적 성향의 압권이라고 할 수 있는 4집 Blue는 20세기 최고의 명반을 꼽을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수작 중의 수작. 마돈나, 프린스, 비요크, 밥 딜런, 하임, 닐 다이아몬드, 테일러 스위프트, 호지어 등 조니 미첼을 자신에게 영향을 준 가수로 꼽는 가수들은 수두룩 빽빽하다.

비단 가수들 뿐만 아니라 아티스트로서의 조니 미첼이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한데, 단적인 예시로 2018년에 열린 조니 미첼의 75번째 생일 콘서트의 게스트 라인업을 보면 답이 나온다. 콘서트에서 미첼의 곡을 커버한 이들은 글렌 한사드, 루퍼스 웨인라이트, 제임스 테일러, 그래험 내쉬, 노라 존스. 콘서트에 참석한 이들은 톰 행크스, 카메론 크로우, 세인트 빈센트, 존 햄, 제이크 질렌할. 축하 메세지를 보낸 이들은 메릴 스트립, 안젤리카 휴스턴.(...)

조니 미첼은 휼륭한 기타리스트로서도 유명하다. 2003년 롤링 스톤즈지는 조니 미첼을 역대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중 72번째로 꼽았는데, 이는 여성 중 가장 높은 순위였다. 조니 미첼이 기타리스트로서 보다는 싱어송라이터로서 더 잘 알려져있고, 다른 여성 기타리스트들도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타리스트로서의 조니 미첼을 잘 보여주는 대목. 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반 2020년 개정판에서 조니 미첼의 Blue 앨범을 3위로 꼽기도 했다.


4. 여담[편집]



  • 1972년 발표된 "For The Roses" 앨범 게이트폴더를 열어보면 누드 뒷모습의 조니 미첼이 나온다.

  •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OST에 본인의 곡인 "Both Sides Now"가 새롭게 편곡되어 수록되어 있다.[7] 영화에서도 엠마 톰슨알란 릭맨의 대화 중 조니 미첼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반지를 기대하던 엠마 톰슨이 조니 미첼의 앨범을 받고 엄청 실망하는 장면이 나온다

  • 빌 클린턴의 딸인 첼시는 조니 미첼의 곡인 "Chelsea Morning"에서 이름을 땄다.


  • 앨범 커버 여럿이 조니 미첼의 자화상이다.


  • 반지의 제왕 작가로 유명한 J. R. R. 톨킨의 팬이었다. 톨킨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자신이 세울 음반사와 출판사 이름에 '로리엔'과 '성큼걸이'를 쓸 수 있겠냐고 문의했을 정도. 톨킨은 이를 허락했으나 성큼걸이(스트라이더)의 경우 기존의 다른 회사 스트라이드와 유사해 반려되었고, 다시 신청한 아라고른(Aragorn) 역시 아라곤(Aragon) 사가 있어 반려되었다. 최종적으로 간달프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차리게 되었다.



5. 음반[편집]



5.1. 스튜디오 앨범[편집]


1. Song to a Seagull (1968)
2. Clouds (1969)
3. Ladies of the Canyon (1970)
4. Blue (1971)
5. For the Roses (1972)
6. Court and Spark (1974)
7. The Hissing of Summer Lawns (1975)
8. Hejira (1976)
9. Don Juan's Reckless Daughter (1977)
10. Mingus (1979)
11. Wild Things Run Fast (1982)
12. Dog Eat Dog (1985)
13. Chalk Mark in a Rain Storm (1988)
14. Night Ride Home (1991)
15. Turbulent Indigo (1994)
16. Taming the Tiger (1998)
17. Both Sides Now (2000)
18. Travelogue (2002)
19. Shine (2007)


5.2. 라이브 앨범[편집]


1. Miles of Aisles (1974)
2. Shadows and Light (1980)


5.3. 컴필레이션 앨범[편집]


1. Hits (1996)
2. Misses (1996)
3. The Beginning of Survival (2004)
4. Dreamland (2004)
5. Songs of a Prairie Girl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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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첼'은 첫 남편의 성이다.[2] 1979년 발표된 10집 앨범 "Mingus"는 찰스 밍거스의 추모앨범이라 할 수 있다.[3] 2009년 희귀병에 걸리는 바람에 잠정 은퇴상태에 놓였다. 병은 호전되었지만 향후 복귀계획은 불명이라고. 그런데 이 상태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예전 동료였던 밥 딜런이 표절을 일삼는 가짜, 마돈나는 폭군이라고 주장해서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4] 기존 마스터 믹싱 상태가 안 좋았다고 한다. 조니 본인도 '무슨 젤리 그릇 밑에서 녹음한 것처럼 음향이 끔찍해서 고쳤다' 라고 밝혔을 정도.[5] 연초 MusiCares 행사에서 공연을 펼쳐서 첫 복귀까지는 아니다.[6] 타현 악기의 일종이다.[7] 이 곡은 우리나라에서는 빈폴 TV 광고에 삽입된 곡으로 유명해졌다. 광고 삽입 버전은 조니 미첼 버전이 아니라 The Singers Unlimited가 커버한 버전이지만... 또한 'Hall Bartlett' 감독겸 프로듀서의 1969년도 영화 'Changes'의 주제가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주연배우는 'Kent Lane'과 'Michele Car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