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령(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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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미령(1929).jpg
성명
조미령()
본명
조제순
출생
1929년 2월 4일 (95세)
경상남도 마산
배우자
이철혁 (사별)
최동원 (재혼)
영화 데뷔
《해연》(1948)

1. 개요
2. 생애
3. 수상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여배우.


2. 생애[편집]


1929년 2월 4일 경상남도 마산에서 태어났다. 8살 때 연극 《임자없는 자식들》에 처음 출연했고 1939년 극단 청춘좌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했다.

1948년 이규환 감독의 《해연》으로 영화 데뷔했다. 1955년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에서 성춘향 역을 맡아 특유의 고전전 매력으로 관객의 폭발적 호응을 얻으면서 영화는 광복 이후 최대의 흥행 기록을 세웠다.[1] 1956년 이병일 감독의 《시집가는 날》에서는 맹진사 댁 몸종 입분 역을 맡아 순수한 매력을 선보였으며, 《춘향전》과 《시집가는 날》은 명실공히 그녀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후 강대진의 《마부》, 유현목의 《성웅 이순신》(1962), 김수용의 《혈맥》, 신상옥의 《로맨스 그레이》(1963) 등 1960년대까지 199편[2]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전성기를 보냈다.

영화 《해연》을 찍을 당시 제작자였던 이철혁과 결혼하여 1남 2녀를 두었다. 이철혁은 《해연》 외에도 조미령이 출연한 《춘향전》, 《왕자호동과 낙랑공주》, 《아리랑》을 제작했으며 한국영화문화협회 이사를 역임했다.

이철혁은 1958년 3월 16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남편이 죽고 나서 1962년 불륜으로 피소된 적이 있다. 유부남이었던 재미교포 최동원과 만나 동거하면서 임신까지 하게 되어 그의 부인으로부터 고소당한 것.[3] 최동원은 미국 하와이 출신으로 미군에 입대하여 한국에 파견나와 근무 중이었다. 조미령이 최동원을 알게 된 것은 남편 이철혁이 사망하기 몇 년 전으로 제3회 아시아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에 갔을 때 지인의 소개로 최동원의 본부인을 알게 되어 집에 초대되었고, 여기서 당시 미군 대위였던 최씨를 만났던 것이다.#

1969년 영화계를 은퇴하고 최동원과 재혼하여 하와이로 건너가 기념품 가게를 하며 살고 있다.#

1981년 조문진 감독의 영화 《두 아들》에 출연하기 위해 귀국했다가 촬영을 마치고 하와이로 돌아갔다.#

2015년 영화 《해연》이 발굴되며 오랜만의 모습을 들어내 소감을 밝혔다 .#


3. 수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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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기록은 이듬해 《자유부인》에 의해 경신된다.[2] 이 중 1편만 1981년작이다.[3] 평소 워낙 얌전하다고 알려진 조미령이었기에 이러한 사건에 연루되자, 영화계 동료들은 매우 놀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