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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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미
曺美美 | Cho Mimi


파일:조미미선생님.jpg

본명
조미자 (曺美子)
본관
창녕 조씨
출생
1947년 1월 17일
전라남도 영광군
사망
2012년 9월 9일 (향년 65세)
서울특별시 구로구 오류동
가족
남편 안성기[1]
장녀 안애리, 차녀 안애경
조카 김주나
종교
개신교(평강제일교회)[2]
데뷔
1965년 '떠나온 목포항'

1. 개요
2. 생애
3. 대표곡
4.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가수이다. 1965년 데뷔해 2012년 사망할 때까지 활동하였으며, 육지를 그리워하는 도서지역 주민들의 애환을 담은 노래들을 다수 불렀다.


2. 생애[편집]



파일:조미미 젊은 시절.jpg

젊은 시절.

1947년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태어나 목포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5년 동아방송이 주최한 가요백일장에 참가해 김부자, 김세레나와 함께 최종 선발되어 '떠나온 목포항'으로 데뷔했다.

이후 1970년 작사가 정귀문이 경상북도 월성군 감포읍 나정항을 배경으로 작사한 바다가 육지라면으로 인기가수 반열에 오르고, 1973년 정태권 작사, 유성민 작곡의 서귀포를 아시나요로 대중에게 존재감을 확인시켰다. 이 노래는 삼다도 소식, 제주도의 푸른 밤과 함께 제주특별자치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곡으로 원곡은 오은주가 1972년 출시한 내고향 서귀포이다. 원곡보다 리메이크곡이 더 유명해진 케이스 중 하나다.

이 외에도 단골손님, 서산 갯마을, 란 같은 여자, 해지는 섬포구 등등 많은 명곡들을 남겼다.

1990년대 이후에는 평범한 주부로 생활하며 딸 2명을 키웠고, 그 중 조카가 가수 김주나다.

2000년에는 재일교포이자 사업가인 남편과 일본에서 생활하다가 2010년 귀국해 별세할 때까지 가요무대에 간간히 출연하였다.

평소 운동도 좋아했는데, 사망 1달 전이었던 2012년 8월 6일, 마침 체중감량 문제로 병원에 갔다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입원해 치료하다가, 본인 요청으로 오류동 자택으로 귀가 후 3일 뒤인 9월 9일 사망했다.

가톨릭대학교 부천성모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유족들 외에도 태진아, 금방울 자매 등 여러 동료, 선후배 가수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태진아는 "늘 조용했지만 후배들에게 친절하게 잘 대해줬던 마음이 따뜻한 선배였다.”면서 “갑작스러운 소식에 눈물만 흘렀다"라며 고인의 죽음을 추모하였고, 당시 대한가수협회 회장으로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 장례를 도왔다. 장지는 경기도 양평군 무궁화공원묘원이며, 어머니 옆에 안치되었다.



조미미 노래 모음


3. 대표곡[편집]




4. 여담[편집]


  •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1960년대 중반 대중가요계는 남진, 나훈아, 이미자, 조미미 씨 등 네 명의 가수가 주도했다.”며 “특히 조미미 씨는 후덕한 외모와 맑은 목소리 등으로 이미자를 뒤잇는 인기 여가수로 각광받았다.”고 평가했다. “노래를 특히 잘했고, 남진 씨와 함께 호남 지역을 대표하던 스타였다.”고 말했다.

  • 가수 주현미가 예능 프로그램 트롯신이 떴다에서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가 조미미라는 것을 밝힌 바가 있다.

  • 1999년 당시 고3이던 친조카 조봉기군이 버니라는 예명으로 '쟈니버니'라는 남성 듀오로 데뷔한 적이 있다. 대표곡은 주영훈이 작곡한 댄스곡 '프리마돈나'.

  • 공교롭게도 조미미가 별세한 다음날에 후배 가수 최헌도 작고하였다.

  • 2022년 6월 영광군은 조미미를 기리는 노래비를 백수해안도로 노을전시관 앞에 세웠다. 노래비는 너비 5.4m, 높이 3m 규모로 포토존과 뮤직박스가 포함되어 있다. 노래비 앞면에는 조미미의 생애와 대표곡이자 히트곡인 '바다가 육지라면'의 노래 가사를 새겼으며, 뒷면에는 조미미의 대표 앨범 3장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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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연히 배우와는 동명이인이며, 재일교포이다.[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