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방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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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역대 수장
4. 기타
5. 지명 조방앞


1. 개요[편집]


1917~1969년까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일대에 존속했던 방직업체로, 줄여서 조방(朝紡)이라고 한다.


2. 역사[편집]


일제강점기 초반이던 1917년, 미쓰이 그룹이 부산부 동구 범일정 700번지에 대규모 방직공장을 세워 1922년 조업을 개시했다. 이듬해 화재로 주요 건물이 소실됐고 1925년에 고쳤다. 종업원 대다수가 여성 노동자인데다 일제 시기 여느 기업이 그렇듯 일본인에 의한 민족 차별임금체불이 횡행했기에 1930년 조선인 여성노동자들이 대대적으로 파업을 일으킨 바 있었다. 1934년에 만주국 영구방직을 공동운영했다가 이듬해 인수했다.

1945년 8.15 해방미군정에 의해 귀속재산으로 넘어간 후 군납업을 주업으로 했다. 1955년이승만 대통령과 친분이 깊은 강일매 관리인에게 불하됐으나, 강일매 사장은 1951년 '조방 사건' 당시 관리인 승계 과정에서 정치적인 흑막 등 안 좋은 면이 있었고, 대대적인 신규 채용과 해고, 노조 어용화 시도 등으로 1952년에 파업이 터지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1956년 당대 재계순위 2위였던 삼호방직에 넘어갔다가[1] 1968년에 그동안의 누적적자 때문에 부산시가 재개발 목적으로 매입했고, 1969년에 해산되었다.


3. 역대 수장[편집]


  • 대표이사 사장
    • 강일매 (1955~1956)
    • 정재호 (1956~1967)

  • 관리인
    • 하원준 (1945~1951)
    • 강일매 (1951~1955)

4. 기타[편집]


  • 6.25 전쟁 직후까지는 기업 자체도 남아 있었기 때문에 조선방직 축구단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군내 축구팀을 제외하면 사실상 1950년대 중반 한국축구를 지탱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기업이 부산에 있었던 덕에 전쟁으로 망가지지 않은 유일한 팀이었을 테니... 1954 스위스 월드컵 당시의 대표팀 명단을 보면 조선방직 축구단 소속이 여럿 포함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외 나머지는 죄다 국군 측 구단 소속이다.
  • 해산 1년 전부터 본사 부지에 새 시청사 및 시외버스터미널 등을 지으려 했으나 진척이 없어 수년간 부지가 방치된 바 있었다. 지금도 범일동 인근에 있는 부산진시장, 평화시장, 자유시장, 남문시장 등의 전통시장에는 혼수/의류/지류 매장이 유독 많은데, 이 역시 방직공장 주변에 있었던 일종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5. 지명 조방앞[편집]


옛 공장 터를 부산시가 인수하면서 부산시민회관이 생겼고, 시장들이 확장되었는데 조방이 사라졌음에도 계속 이 일대를 사람들은 관습적으로 조방 앞이라고 불렀다. 2023년 현재도 비공식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지명이다.[2] 아예 이 일대를 지나는 도로 중 하나가 '조방로'일 정도다.

이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기업에서 유래한 이름이라 조방 앞이라는 지명을 쓰지 말자는 여론도 있다. 아무래도 범일 2동이라는 멀쩡히 있는 행정동 이름을 놔두고 일제강점기 시절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기 때문. 물론 부산 주민들의 반응은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이 지역 일대에서 낙지 요리가 인기가 많았는데, 2021년 현재도 전국 곳곳에 '조방낙지'라는 이름의 식당이 많다. 아예 부산을 넘어서 주변도시는 물론 별 상관없는 수도권에도 조방낙지라는 식당이 10곳 넘게 있을 정도로 브랜드화가 된 상태인데 그 기원이 이곳. 여기 낙지볶음은 타지역의 일반 낙지볶음과 형태가 다른데, 그래서 여기 스타일 낙지볶음 스타일 자체를 조방낙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금도 이쪽 거리에 낙지볶음 식당이 여럿 있어서 부산 사람들은 낙지볶음 먹으러 이 동네에 오는 사람이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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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나 삼호방직도 반사회적 기업으로 낙인찍혀 1973년에 해체되었다.[2] 부산에서 이미 없어진 옛날 지명이 지금도 비공식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대표적 사례로 이웃 동네인 서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