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비(삼국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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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비 삼국전투기.png
1. 개요
2. 작중 행적
2.1. 유성 전투
2.2. 강릉 전투 ~ 동관 전투
2.3. 탕거 전투
2.5. 삼로 전투
2.6. 최후
3. 비판
5. 여담



1. 개요[편집]


최훈 작가의 작품 삼국전투기에서 조비를 서술하는 문서.

1년전쟁 당시의 샤아 아즈나블로 패러디되었다. 이쪽은 투구 안쪽도 금발이라 흑발인 아버지보다는 조금 더 원본과 닮은 게 특징.


2. 작중 행적[편집]




2.1. 유성 전투[편집]


첫 등장은 조조심배가 수성하는 업성을 끝내 함락시키고 업성에 입성했을 때이며, 원희의 처 견희를 아내로 맞이했다고 언급된다.[1]

2.2. 강릉 전투 ~ 동관 전투[편집]


강릉 전투 편에서는 주유의 화공에 대패하고 돌아온 조조가 조충의 사망소식을 듣고 오열하는 가운데, 조창과 조식이 조비에게 형님의 앞날이 밝아졌다고 말하자 아버지가 딱히 서열을 따지는 분도 아니고 아직 너희들이 남아있지 않냐고 말한다.[2]

동관 전투 편에서는 조조가 직접 동관으로 출진하게 되어서 정욱과 함께 업을 지키는 역할을 맡았다. 같이 남은 정욱에게 요즘 전장이 나가지를 않는다며 한 마디 하기도 했다. 참고로 정욱은 자기는 현장에서는 은퇴했다고 답했다.

2.3. 탕거 전투[편집]


과거 자신의 반대로 조조의 사위가 되지 못한 정의가 조조에게 받는 신뢰를 바탕으로 최염과 모개를 첨언하여 각각 자살, 파직으로 몰아넣고 조식을 태자로 만들고자하는 세력이 커지자 가후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가후의 조언대로 조조가 한중으로 떠나려고 할 때 눈물을 흘리며 배웅하면서 조조가 자신을 태자로 만들도록 맘먹게 만든다.

2.4. 이릉 대전[편집]


조조가 죽자 조조의 뒤를 잇는다. 조조의 뒤를 잇자마자 정의를 죽이고, 조식을 내쫓은 뒤 가후의 진언에 따라 화흠에게 내각을 맡긴 뒤 하후돈조인을 각각 대장군과 거기장군에 임명하되 조인에게 실권을 맡긴다.

맹달이 투항해오자 맹달에게 서황과 하후상을 붙여주어 상용을 공략하게 만든다.

헌제에게 선양을 받아 황제가 된 뒤 위나라를 건국하고 헌제를 산양공에 봉한다.

유비관우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손권을 칠 것인지에 대한 토론을 연다. 동소는 유비가 손권을 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유엽은 유비가 반드시 손권을 칠 것이라 단언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권에게 칭신을 하는 서신을 받는다. 이에 유엽이 손권을 치자는 남벌론을 건의하지만 거절하고, 손권을 오왕으로 봉한 뒤 공납을 요구한다. 이 때 진짜 시도때도 없이 공납을 요구해서 손권에게 크나큰 스트레스를 안겨 줘 그의 노후 성격의 막장화에 꽤나 기여한 것으로 묘사됐다(...)

우금이 돌아오자 우금에게 조조의 사당 위치를 알려주어 우금이 사당에 방문하게끔 말하는데, 조비는 화공에게 우금을 조롱하는 그림을 그리도록 시켜두었고 우금이 그 그림을 보자 분통해하며 피를 토하고 사망한다.

황권이 투항해오자 황권을 받아주며 투항한 것 때문에 유비가 황권의 가족을 죽이지 않겠냐고 말한 뒤 그럴 경우 자신이 황권의 복수를 해주겠다고 말하지만 황권은 유비와 신뢰가 돈독하기 때문에 유비가 가족을 죽일 일은 없을 것이라는 대답을 듣는다. 그 밖에는 황권과 같이 투항한 방림을 보고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고 평하기도 했는데, 정작 조비는 본편 중 방통과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다(...)

2.5. 삼로 전투[편집]


손권에게 근사한 관직을 하나 만들어 두었다는 구실로 아들을 보내라는 서신을 보내지만 신비에게서 손권이 거절했다는 소식을 전해듣자 정확히 예상한 대답이라며 오와 전쟁을 일으킬 것을 선언[3], 세 방향으로 군을 일으켜 조진을 수장으로 장합과 하후상, 문빙을 강릉 방면, 조휴를 수장으로 장료장패를 무창 방면, 조인을 수장으로 장제와 왕쌍, 조태를 유수구 방면으로 진격시킨다.

조인을 유수구로 보낸 시점에서 조비가 가장 신경쓰던 포인트는 유수구 쪽인 것으로 묘사되었으며, 그래서 당시 가장 신임받는 군사 중 하나였던 장제를 포함한 온갖 지원을 유수구에 보냈다고 묘사됐다.

이 와중에 왕쌍과 대면하기도 했다. 왕쌍의 가랑이 사이의 알 2개(...)를 보고 이게 유성추냐며 직접 만져 보기도 했으며, 그 실체를 깨달은 뒤에는 매우 열심히 손을 씻는 개그씬도 찍었다. 어쨌든 이후 왕쌍도 합비로 보냈다고 묘사됐다.

강릉의 하후상이 부교를 설치해 강을 건너서 오군을 공격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거 괜찮겠다고 평했지만 바로 그 말을 하자마자 동소가 부교는 좋지 않다고 하며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동소는 부교의 문제점에 대한 설명을 마친 뒤 그 생각만 하면 피골이 상접할 지경이라고 말하지만, 말과는 달리 때깔이 너무 반질반질해서 조비는 네가 거짓말을 하진 않겠지만 그 때깔은 여전하다며 태클을 걸기도 했다.

장료가 죽었을 때는 괜히 너를 무창으로 보냈다며 울면서 슬퍼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릉 방면은 주연의 철벽 방어와 전염병 문제, 무창 방면은 장료의 병세 악화로 인한 사망과 하제의 지원군 도착 그리고 유수구 방면은 조인의 돌연사로 모두 막히고만다.

2.6. 최후[편집]


남만 전투 편에서는 유비의 사망소식을 듣고 파티를 열던 중 황권이 우울해한다는 소리를 듣고 황권의 속내를 이해하며 그 그릇의 크기까지 전부 간파하지만 그러면서도 자기가 막 화난 척 하면 재밌을 것 같다는 이유로 황권을 소환한다. 조창이 죽은 뒤 나레이션으로 '우연일까?'라는 문구가 나오자 당연히 우연이라고 성질을 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진종의 투항을 받아들인 뒤 그를 기춘으로 보내 깔짝깔짝 오를 괴롭히게 했다고 언급되기도 했다.

석양 전투편에서 조비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장남이었던 조앙 사후, 그는 문무에 있어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착실히 커리어를 쌓아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인 조조가 동생들에게 관심을 더 쏟자 이때부터 삐딱선을 타게되며, 자신이 왕이 되자, 우금을 치욕사로 죽인 것도 모자라 애첩들에 관심을 쏟다 정실인 견희를 자살하게 하고, 하후상이 자신의 동생인 적실을 멀리하고 애첩과 눈맞자, 애첩을 죽여버리는 오지랖을 펼치고[4], 삼촌인 조홍이 자신에게 돈을 안 빌려줬단 이유로 꼬투리를 잡아 조홍을 처형하려고도 했으며, 앙금이 있던 포훈도 꼬투리 잡아 처형했다.

하지만 자신의 위치를 이용하려는 환관들과 외척들을 완벽히 차단하고, 주술에 의존하는 정치를 멀리하며, 조조처럼 능력을 보고 사람을 뽑고, 폐습의 얽매이지 않고 상식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며, 복지 정책을 펼쳤다고 언급한다.

그러다 돌연 사망처리 된다.

사망한 이후 살아 생전 조비의 행적이 잠깐 언급된다. 유비 사후에 촉은 여기저기서 반란이 터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촉은 지형적 문제 때문에 공격하기 영 께름직한지라 조비는 주된 공격 타겟을 동오로 잡았다고 언급되었다. 유수오를 공격했을 때는 허구헌날 깨졌으니 아예 광릉에서 직접 건업을 공략한다는 새로운 작전을 들고 나왔지만 224년엔 폭풍으로, 225년엔 한파 때문에 싸우지도 못하고 뱃머리를 돌려야 했다고 언급되었다.


3. 비판[편집]


삼국전투기에서 가장 크게 논란을 일으킨 캐릭터 중 하나로 실제 역사와 달리 지나치게 옹호적인 서술과 사료 취사선택으로 장점은 포장하고 단점은 덮는 등 왜곡 수준으로 그려져 문제가 많다. 장료와 더불어 작가가 가장 크게 왜곡한 캐릭터. 개인이 특정 인물에 대해 호감을 갖거나 좋은 평가를 내리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지만, 최훈 작가가 조비가 훌륭한 군주감이라며 옹호하는데 사용한 근거들과 주장은 전부 설득력이 지나치게 떨어진다.


그 시대보다는 현대의 냉철한 CEO에 어울리는 군주이자 행정가이며, 소인배는 아니지만 사이코패스라고 묘사되는데, 삼국통일 기회를 제발로 차버린 조비의 실책과 미성숙한 인격을 고려하면 이상할 정도로 평이 좋다.[5]

작가는 조비에 대해서 매우 옹호적인 편인데, 실제와 비교해보면 이렇다.

  • 조비의 싸이코 짓은 그럴 사람이 아닌데 가끔 그러는 것으로 취급하고, 헌제를 선양 후 살려줬다는 것 따위로 인품이 좋다고 무리하게 옹호하는 게 대표적.[6]그럼 촉과 오를 멸망시킨 사마소나 사마염도 옹호할 수 있다 실제로 조비의 성격은 동시대 사람들도 쉬쉬하면서 깠을 정도로 개같았으며, 삼국전투기의 묘사와는 반대로 평소엔 사이코패스인데 가끔 제정신으로 일처리를 하는 인물이었다. 선양은 형식상으로는 어진 자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며, 역사적으로도 선양은 실제로는 찬탈일지언정 그 형식을 위해서라도 전 황제를 참살해버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즉 그냥 당연한 사실을 들고 온 것 뿐이고 이걸로 인품 운운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우금을 분사시킨 건 그대로 그렸지만 그 외 왕충의 어쩔 수 없는 인육 섭취를 조롱하는 등의 묘사는 죄다 잘라버린 것도 문제.

  • 삼국전투기에서는 조비는 신생 국가를 위해 필요한 정책들을 냈다고 묘사하는데, 단기적으로라면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말아먹은 게 한두 개가 아니다. 또한 작가는 조비가 과부와 고아들을 생각하는 현대의 복지 정책의 개념을 가지고 있던 성군으로 그리는데, 과부와 고아를 위한 정책들은 이전 황제들도 시행해 온 정책이라 새로울 게 없으며, 당장 명제기에서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복지에 관한 똑같은 구절이 두 번이나 나온다.
그리고 훗날 제갈각이 시행한 동일한 정책을 "백성들에게 환심 사기 위한 정책"이라고 평가하면서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제갈각 항목에서 나오듯, 마지막에 오만에 빠져 대사를 그르쳐서 그렇지 제갈각 역시 이런 식으로 무조건 환심을 사려고 했던 사람은 아니며 고명대신을 맡으면서 전 황제 손권을 떠나보낸 슬픔과 나름대로 앞으로에 대한 생각을 편지를 통해 동생에게 보낸 적도 있었다.

  • 조비가 현대였으면 더 각광받았을 리더라고 추켜세우는데, 조비가 주위 사람들에게 저지른 개싸이코짓은 먼 옛날의 황제여서 그정도로 넘어간거지 현대였으면 범죄행위고 사회매장감이다. 물론 과거의 인물들을 연재로 대입하면 분명 이런 케이스가 많긴하나 당대 사람인 진수조차도 '(조비가) 인덕이 있었으면 어찌 현군이 따로 있었겠는가'라고 대놓고 비판할 정도로 정도가 심했다. 현대에 조비같은 리더가 있었으면 각광은 커녕 갑질 논란으로 몇달에 한번씩 뉴스에 나왔을 거다.


  • 조비가 자신에게 돈을 안 꿔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조홍을 온갖 방법으로 괴롭히는 치졸함이 극에 달하는 장면을 뒤집어, 피해자인 조홍을 찌질이로 묘사하는 오류를 저질렀다. 숙부가 돈 안 꿔준게 그렇게 큰 죄인가? 실제로는 조비가 돈 꿔놓고 먹튀하는 게 많았다고 한다. 애초에 조홍은 인성과는 별개로 조조가 세력이 없을 때부터 고생하며 섬긴 인물인데 완전히 개그 캐릭터로 만들어 놨다.[7] 이때 이 사건이 얼마나 큰 문제였는가하면 그때까지 정치 개입을 잘 안하던 어머니 변씨가 직접 나서서 조비를 말렸고 조비의 아내에겐 대놓고 '너 이거 안 말리면 내가 황제에게 말해서 니 자리에서 쫓아낼거다'하고 대놓고 겁박했다.(...)

  • 정작 실제로는 웃음거리였던, 맹달을 상용태수에 임명한 이유를 조비가 해명한 사건도 극단적으로 미화해 놓았다. 이걸 개그씬으로 해야 역사대로 집필한 게 되지만 최훈은 그러지 않았다.

  • 조비의 잦은 원정 실패에서 삼로전투는 길게 그린 대신, 224~225년의 두번의 원정을 자연재해 탓으로 실패했다며 단 두 컷으로 처리해버렸다. 장료가 안 나와서 그래 이로 인해 서성과 손소의 활약은 통으로 생략당했다.

  • 조비의 사망 소식을 들은 제갈양이 크게 놀라며 하늘이 아직 촉을 버리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실제 역사에서 제갈량은 상황판단 못하는 조비보다는 정확한 판단으로 동서 양쪽 전선을 대응해내는 조예 때문에 크게 고전한다. 이릉대전 때 조비가 보여준 판단력과 234년 촉오동시 북진 때 조예가 보여준 판단력을 비교해보면 둘은 비교가 안 된다.
조비가 사망할 당시 조예는 군주로서 아직 제대로 된 검증을 받지 않은 신인이었고, 본래 군주가 사망하면 필연적으로 혼란이 생기기 때문에 타국에선 당연히 기회가 되니 조비가 죽었을 당시로만 한정하면 제갈량이 하는 말도 맞긴 하지만, 문제는 그걸 스크린으로 보고 있는 독자들에겐 마치 능력 있는 조비가 죽었다는 식으로 오해시키거나 의도하는 씬이라는 것이다.

  • 다만 챕터 70 전투외편 8-2에서 위나라 멸망을 다루는 특집에서 구품관인법과 황족 배제를 시킨 조비의 실책에 대해서 어느정도 언급은 했다. 그 와중에 조비 뒤통수 때리는 조조 이때 베플은 '유비가 유선 뒤통수 때리는 컷도 넣어주시지'(...)[8]

정리하자면 조비의 인격은 당대에도, 후대의 평으로도 바닥을 찍다 못해 뚫은 것이 확실하며 능력적으로도 잘 쳐줘봐야 '머리는 좋았다' 수준인데 작가 개인의 애정으로 작중에서는 지나치게 후하게 평가, 묘사했다.

4. 게임[편집]


  • 8성을 기준으로 스텟과 스킬 발동확률을 표기했다.

소속
조조군
스텟
무력
115
활력
122
맷집
122
스킬
사망시 52% 확률로 부활
공격시 56% 확률로 이군 1명의 체력 회복

5. 여담[편집]


외전에서 아내 견희에 관한 에피소드(수위주의)에 등장한다. 목욕하는 모습을 몰래 엿보던 동생 조식과 아버지 조조에게 한소리 하는데 정작...부전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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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때 조조는 업성 부루마불 땅문서(...)를 들고 조비에게 바꾸자고 제안하지만 조비가 깔끔하게 거절한다. 이때 조비에 안긴 견희는 스이긴토로 패러디되었다.[2] 경우에 따라서는 이미 죽은 조충처럼 나머지 형제들을 죄다 숙청해 없애버리겠다는 의지가 담긴 매우 섬뜩한 대사로 해석할 수도 있다.[3] 이 때 관우 코스프레를 하고 나와서 오나라의 쥐새끼들을 모조리 소탕한다고 소리치기도 했다. 신비에게 관우같았냐고 묻기도 했지만 신비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4] 이에 하후상이 애첩의 무덤을 파헤칠 정도로 미치자, 앞에서는 그를 욕하면서도 끝까지 돌봐주다 그가 죽었을 때 슬퍼하는 모습이 나온다.[5] 작가의 '조비에 대한 평가 내용'은 삼국전투기 연재 중 작가설명 편에서 평소에 작가가 참고한다고 언급한 책 중에 고이데 후미이코가 저술한 '삼국지 인물사전'이라는 책이 있는데 상기한 책에서 조비를 서술하고 평가한 내용이랑 정확하게 일치한다. 삼국지 팬덤 사이에서 상술한 책은 방대한 인물들을 기록을 참고하여 각 세력별로 또 연의에서만 나오는 등장인물 범주까지 분류하고 서술하느라 작가인 고이데 후미이코가 기울였을 노력 자체에서는 의의를 두나 실증 역사 측면에서는 대표적으로 조비 관련하여 지적을 받는다. 조비에 대해서 조비가 재위 중에 실패한 외정들은 거의 서술하지 않고 오히려 '지나친 외정을 자제시켰다'고 저술하기도 하며 조비에 대해 화려하지는 않지만 관료적 덕목을 잘 갖춘 군주라 평하는 등의 우호적 서술로 인해 구설수가 많다.[6] 삼국시대 이후 위진남북조 시대 당시 동진을 멸망시킨 유유이후 부터 선양은 곧 죽음과 황실의 몰살을 의미하게 되긴 하였지만 이걸 고려해서 쓴 것인지는 불명.[7] 조홍은 조조가 서영에게 패하여 죽을 위기에 처했을때 "천하를 위해 이 조홍은 없어도 되지만, 귀공(조조)은 필요합니다."라고까지 하면서 조조를 구하려고 했던 충신이란걸 생각하면... ... 참고로 최훈은 저 장면마저 개그씬으로 만들어놨다(...).[8] 링크는 여기고, 그 베뎃은 3번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