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로동당 제4차대회

덤프버전 :





조선로동당 제4차대회

개막
1961년 9월 11일
폐막
1961년 9월 18일
의제
당면목표
- 전국적범위에서의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 및 북반부에서의 사회주의 완전승리
최종목표
- 공산주의 사회 건설
통계
당원 : 1,311,563명
세포 : 65,000개
대의원 : 1,657명
인구 대비 당원 비율 : 12.2%

1. 개요
2. 배경
3. 전개
3.1. 9월 11일
3.2. 9월 12일
3.3. 9월 13일
3.4. 9월 14일
3.5. 9월 15일
3.6. 9월 16일
3.7. 9월 17일
3.8. 9월 18일



1. 개요[편집]


조선로동당 대회의 제4차 대회.

2. 배경[편집]


1956년 3월, 조선로동당 제3차대회 시점에서 이미 김일성 개인에게 개길 수 있는 지도자들은 모두 제거되었고, 나머지는 기껏해야 김일성에게 2인자 자리나 심복 자리를 구걸해야 하는 수준의 인물들 뿐이었다. 김일성의 이이제이 전략으로 인해서 파괴되고 분열되었던 고려인들과 연안계는 김일성에게 지도부 개편과 개인숭배 중지를 요구했으나 김일성이 이를 묵살하자 1956년 8월 전원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저항하길 선택했으나 모두 진압당했다. 이후 1958년 3월, 1차 당대표자회를 거쳐 김일성은 당, 정, 군과 사회 전반에서 대숙청을 감행하여 반대파들을 모조리 숙청하고 수령 독재를 확립하였다. 유일한 장애물이었던 중국과 소련도 간섭을 중지함에 따라 김일성은 신나게 북한을 개인왕국으로 바꿔놓을 수 있었고, 1961년에 '승리자들의 대회'라 부른 4차 당대회를 의기양양하게 소집하게 된다.

3. 전개[편집]



3.1. 9월 11일[편집]


평양 대극장에서 개회되었다. 외국 대표로 소련공산당(단장 코즐로프), 중국공산당(단장 덩샤오), 독일사회주의통일당, 루마니아 노동당, 몽골인민혁명당, 불가리아 공산당, 알바니아 로동당, 베트남 노동당, 헝가리 사회노동당,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폴란드 통일노동당, 쿠바 통일혁명조직, 뉴질랜드 공산당, 서독 공산당(독일 공산당), 말레이 공산당, 프랑스 공산당, 베네수엘라 공산당, 스위스 공산당, 스페인 공산당, 스리랑카(실론) 공산당, 시리아 공산당, 일본 공산당, 이탈리아 공산당, 인도네시아 공산당, 영국 공산당, 오스트리아 공산당, 알제리 공산당, 캐나다 공산당, 태국 공산당, 네덜란드 공산당 등 32개 당의 대표단이 참석했다.

국내 대표로는 총 1157명의 결의권 대표와 73명의 발언권 대표가 참석했는데, 결의권 대표 중 3명이 병환, 출장으로 결석하였다.

8시 30분에 회의가 시작되었고 최용건이 개회사를 맡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주체에 미쳐돌아가지 않던 시점이라서 최용건은 안토닌 자포토스키, 해리 폴리트, 빌헬름 피크, 유진 데니스, 윌리엄 포스터를 비롯한 외국 공산주의자들을 추도하는 것으로 시작하였고 이어 박달류경수를 추모하였다. 이후 함경북도 대표 리광실이 대회 집행부 구성을 제기함에 따라 75인의 대회집행부가 선거되었다.


이후 강원도 대표 한창순의 제기에 따라 대회 서기부를 선출했다.

  • 서철, 최기철, 리재윤, 로룡삼, 김국훈, 오태봉, 리창선, 정기련, 최학선.

이어 자강도 대표 김무회의 제기에 따라 대회 문헌편집위원회를 선출했다.

  • 김창만, 김도만, 허석선, 리재영, 김관섭, 백선일, 배기준, 양형섭, 채기준, 유건양, 박봉욱.

이어 평남 대표 피창린의 제기에 따라 대회 대표자 자격 심사위원회가 선거되었다.

  • 김익선, 고혁, 강희원, 최용진, 김왈룡, 오제룡, 리원무, 로익명, 장윤필, 리장수, 김방식.

대회 의정은 다음과 같이 결정되었다.

  • 1.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 보고자 김일성.
  • 2. 조선로동당 중앙검사위원회 사업총화: 보고자 김계림.
  • 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경제발전 7개년(1961-1967) 계획: 보고자 김일.
  • 4. 조선로동당 중앙지도기관 선거.

의정을 확정한 후 김일성이 6시간에 걸쳐 사업총화 보고를 함으로 1일차 회의가 끝났다.

3.2. 9월 12일[편집]


이날 회의는 김일성이 사회하였다. 오전에 김계림이 중앙검사위원회 사업총화를 보고한 후 토론이 시작되었다. 오전회의에 함남 대표 리재윤, 평남대표 윤승과, 량강도 대표 김문화, 함북대표 박금철이 토론하였으며 "전 당과 전체 인민이 김일성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 주위에 그 어느때보다도 굳게 결속되어 있다."라고 자화자찬했다. 다만 주체사상 주접을 떨기 이전이라서 '레닌적 통일과 단결'이라고 평한 것이 인상적이다.

이후 소련대표단장 코즐로프의 축하연설이 있었으며, 레닌 초상화를 선물로 주었다. 이후 회의 의장 김일이 결정서 초안작성회 선거를 제기하여 15명을 결정서 초안작성위원으로 선거했다.

  • 김일성, 최용건, 김일, 박금철, 김창만, 리효순, 김영주, 김도만, 박용국, 현무광, 정두환, 김종한, 피창린, 림진규, 김세봉.

잠시 쉰 후 오후에 회의가 재개되었다. 중국대표단장 덩샤오핑이 축하연설을 하였으며, 이어 평양 대표 길확실, 황북 대표 한기창, 평북 대표 김석봉이 토론하였다. 토론이 끝난 후 독일사회주의통일당 단장 알프레트 쿠렐라, 일본공산당 대표단장 미야모토 겐지가 축하연설을 하였다.

3.3. 9월 13일[편집]


박금철이 회의를 사회하였다. 평남 대표 문정숙, 평양 대표 김수복, 개성 대표 리창순, 함남 대표 김창만이 토론하였으며 청산리 정신이 강조되었다. 이후 루마니아 노동당 대표단장 키부 스토이카, 몽골인민혁명당 대표단장 냐린 자그랄, 불가리아 공산당 대표단장 게오르기 찬코프, 알바니아 노동당 대표단장 마누쉬 미프티유가 축하연설을 하였다.

오후 회의에서는 베트남 노동당, 헝가리 사회노동당,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폴란드 통일노동당의 축하연설이 있는 등 전체적으로 외국 손님들의 축하가 이어졌다. 이후 당대회 대표자 자격심사위원회 보고를 당대회 대표자자격심사위원장 김익선이 보고하였으며, 만장일치로 승인하였다.

이어 쿠바 대표단의 축하연설이 있었으며, 평남 대표 피창린, 함흥 대표 리영구가 농업문제를 토론하였다.

3.4. 9월 14일[편집]


김창만이 회의를 사회했다. 뉴질랜드 공산당, 말레이 공산당, 프랑스 공산당, 베네수엘라 공산당이 축하연설을 하였으며, 뉴질랜드 공산당 전국위원회, 독일 공산당 중앙위원회, 말레이 공산당 중앙위원회, 버마 공산당 중앙위원회 축하문이 전달되었다.

이어 강원도 대표 리종옥, 조선인민군 대표 김광협이 토론하여 중공업의 중요성과 인민군 내부의 당적 사상 체계 확립에 대해 토론한 것으로 오전 회의가 끝났다.

오후 회의에선 스위스 공산당, 스페인 공산당, 실론 공산당, 시리아 공산당, 이탈리아 공산당의 축하연설이 있었다. 이어 총화보고에 대한 토론이 이어져 평북 대표 박정애, 황남 대표 강칠룡, 평남 대표 김왈수가 조선로동당이 거둔 업적에 대해서 칭송했다.

마지막으로 소년단이 김일성장군의 노래 공연을 하였으며, 김창만이 소년단원들을 축하하였다.

3.5. 9월 15일[편집]


박정애가 회의를 사회했다. 인도네시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축하문 전달 이후 영국 공산당, 오스트리아 공산당, 알제리 공산당, 캐나다 공산당, 태국 공산당, 네덜란드 공산당이 축하연설을 하였으며 조총련 축하단장 김은순도 연설하였다.

이어 총화보고에 대해 개성 대표 오제룡, 평남 대표김병수, 자강도 대표 리효순이 토론하였으며 남한에서의 반미 투쟁을 벌려 적화통일을 해야 한다고 주접을 떨었다.이어 오제룡이 <전체 조선인민에게 보내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선언서>를 채택할 것을 제의했고 이는 만장일치로 접수되었다. 이것으로 오전 회의는 끝났다.

오후 회의에서는 평양 대표 림계철, 함북 대표 리광실, 평나마 대표 한설야, 평양 대표 김옥심, 평남 대표 리일경이 토론하여 각자 분야에 대해서 칭송했다.이어 북조선민주당 대표 강량욱, 천도교청우당 대표 박신덕이 축하연설을 하였다. 이어 19명으로 구성된 선언서 초안작성위원회가 만장일치로 선거되었다.

  • 김일성, 최용건, 김일, 박정애, 박금철, 김창만, 리효순, 김광협, 하앙천, 한설야, 백남운, 박용국, 김중린, 리일경, 박성철, 김왈룡, 오현주, 김옥순, 리승기.

3.6. 9월 16일[편집]


리효순이 회의를 사회했다. 오전 회의에서 황북 대표 남일, 함흥 대표 김왈룡, 강원도 대표 한창순, 자강도 대표 서병식, 평남 대표 최창석, 평북 대표 오현주, 함흥 대표 리승기, 함남 대표 림택룡이 각자 분야에서 토론했다.

당대회 집행부는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와 당중앙검사위원회 사업총화보고에 대한 토론이 충분하므로 토론을 종결할 것을 제의하였고 이는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오후에 내각 제1부수상 김일이 7개년 계획에 대해 보고하였다.

3.7. 9월 17일[편집]


김창만이 회의를 사회했다. 김창만은 7개년 계획 통계 초안작성위원회 선거를 제의하였으며 만장일치로 선거되었다.

  • 김일성, 최용건, 김일, 박정애, 박금철, 김창만, 리종옥, 정준택, 리주연, 한상두, 김태근, 로수억, 림계철.

이후 평북 대표 정준택, 함북 대표 최용진, 황남 대표 장윤필, 함남 대표 강영창, 평양 대표 김종항이 7개년 계획에 대한 김일의 보고에 대해 토론했다.

이어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 결정서가 만장일치로 채택되었으며, 7개년 계획도 만장일치로 접수되었다. 이어 김도만이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선언서 초안을 낭독했고,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김창만은 총 27,264통이 축문, 축전을 받았으며 국내에서 보내온 것이 26,296통, 국외에서 온 것이 968통이라고 보고하였다. 국내 축전은 공장, 기업소에서 보낸 것이 5,980통, 농업 및 수산협동조합에 보낸 것이 5,370통, 교육문화기관과 사무기관에서 온 것이 8,487통, 장, 정권기관, 사회단체에서 온 것이 6,355통, 인민군, 경비대에서 온 것이 104통, 개인이 보낸 것이 117통, 재외동포가 보낸 것이 956통이라고 보고했다.

또한 베네수엘라 공산당 중앙위원회, 아르헨티나 공산당 중앙위원회, 이라크 공산당 중앙위원회, 이란 투데당 중앙위원회, 인도 공산당 중앙위원회, 에콰도르 공산당 중앙위원회, 튀르키예 공산당 중앙위원회, 온두라스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축문, 축전을 보내왔으며 함흥에 있는 동독 기술자단과 남포의 동독 선원들의 축문도 왔다. 243매의 축기와 9,037점의 선물이 접수되었다.

3.8. 9월 18일[편집]


8일 간의 회의 끝에 9월 18일에 4차 당대회가 폐막했다. 마지막 회의는 박금철이 사회하였으며, 당규약 수정에 대해 토의하고 채택했다. 이어 핀란드 공산당 중앙위원회 축하문이 전달되었다. 그리고 당중앙위원회와 당중앙검사위원회를 선거하였으며, 오후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1차 전원회의가 개최, 김일성을 당위원장으로 다시 추대하고 정치위원회를 선거하였다. 또한 당중앙검사위원회 제4기 제1차 전원회의도 개최되어 검사위원장 및 부위원장을 선거하였다.

김일성이 폐회사를 하였으며, 4차 당대회는 끝났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7 02:08:16에 나무위키 조선로동당 제4차대회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