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부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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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48년 9월부터 1972년 12월 사이에 존재한 북한 정부의 공식적 2인자.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훗날의 정무원 부총리, 내각 부총리에 비해서 상당한 실권이 있었으나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이 되었다.
2. 법적근거[편집]
3. 연혁[편집]
1948년 9월 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이 채택되면서 도입된 직제이다. 위를 보면 알겠지만 이때는 수상이 유고할 시에 부수상이 그를 대리하며, 대리 시에 수상과 동등한 권한을 가진다고 규정되고, 선출 시에 최고인민회의에서 수상과 같이 선서를 하는 등 법적으로는 상당한 권한이 보장되어 있었다. 훗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부주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무원 부총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부총리,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등에게는 이런 궐위 시 계임에 대한 조항이 단 한번도 보장된 적이 없다. 그나마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제1비서 직함이 만들어져서 조선로동당 안에서나 공식적 2인자가 생겼으나 그나마도 임명된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부수상은 여럿인데 그중에 어떤 부수상이 계임하게 되는지 여부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걸 보면 그냥 장식으로 넣은 규정일수도...
초대 부수상은 박헌영, 홍명희, 김책 세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이후 우후죽순으로 늘어서 훗날의 정무원 부총리, 내각 부총리처럼 여러 사람이 돌아다니게 되었다. 1953년, 허가이가 자살하고 박헌영이 숙청되고 나서는 김일성에게 개길만한 부수상은 없었으며 그나마 1956년 8월 종파사건 때 궁지에 몰렸던 최창익, 박창옥 등의 부수상이 김일성에게 이빨을 드러냈었다. 물론 그들도 허망하게 진압당하고 처형당했다.
이후 부수상들은 완전히 김일성의 졸개들로 채워졌으며 상당수는 1972년 12월, 사회주의 헌법 도입 이후 정무원 부총리로 유임된다. 물론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고 박의완, 김창만, 김광협, 고혁, 석산 등은 숙청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거나 실종되었다.
4. 역대 부수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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