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여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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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與芮
(1207년 ~ 1287년)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중국 남송시대의 인물로, 조송의 14대 황제인 이종의 아우이자, 15대 황제인 도종의 친아버지이다.


2. 생애[편집]


조여예는 1207년에 태조 조광윤의 10대손이자 태조의 장남 조덕소의 9대손인 조희로(趙希瓐)와 자헌부인 전씨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형은 조여거였다. 조여거와 조여예의 집안은 소흥부 산음현에 살았는데, 본디 조희로 이전 세대부터 조덕소의 봉작을 물려받지 못하고 일반 백성으로 지냈던 남송의 방계 종실이었다. 조여거, 조여예 형제는 어린 나이에 부친 조희로가 세상을 떠나자, 생모 전씨를 따라갔고 전보장의 집에서 생활했다.

조여거와 조여예는 당시 조송의 제13대 황제였던 영종과 촌수로 따지면 먼 친척이었지만, 영종은 슬하의 아들들이 모두 요절하는 바람에, 황실 종실 중 1명에게 제위 계승권을 넘겨주기로 하였다. 영종은 본래 조덕소의 후손인 조여원을 양자로 삼아 조순(趙詢)이라는 이름을 주고 키웠으나, 조순이 1220년에 사망하여 영종은 다시 종실의 자손들 중 품행이 바른 아이를 찾아오라고 지시하였다. 그래서 선발된 후보가 진강혜왕 조덕방의 후손인 조귀화와 조여예의 형인 조여거였다.

하지만 조귀화(훗날 조횡으로 개명)은 당시 남송의 재상이었던 사미원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사미원을 중심으로 한 조정 대신들은 영종의 황후였던 공성인열황후 양씨와의 논의 끝에 영종이 병으로 누운 사이 조여거를 영종의 후계자로 책봉하였고, 1224년에 영종이 세상을 떠나면서 조여거가 조윤으로 이름을 고치고 황제로 즉위하니, 이가 바로 조송의 14대 황제이자 남송의 5대 황제였던 이종이다.

형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조여예도 황족이 되어 복왕(福王)으로 책봉되었으며, 부친인 조희로는 영왕(榮王)으로 추봉되었다. 조여예는 형인 이종과 민간에 있을 때부터 친하게 지낸 관계였다. 이종은 황제로 재위하는 동안 아들 1명과 딸 1명을 두었지만 모두 요절하는 바람에, 이종은 자신의 아우인 조여예의 자식을 양자로 삼아 그에게 제위를 물려주기로 하였다. 그렇게 이종의 후계자로 결정된 조여예의 자식이 바로 제15대 황제인 도종이었다.

도종이 1274년에 죽고, 조여예의 손자인 조현이 도종의 뒤를 이어 즉위했는데, 이가 바로 조송의 제16대 황제인 공종이다. 당시 남송은 조여예의 형인 이종 때부터 40여 년에 걸쳐 몽골과 전쟁을 치르고 있었는데, 1276년에는 남송의 수도였던 임안이 함락되면서 공종은 몽골군에 항복하였고 조여예도 이때 공종을 따라 원나라의 수도 대도로 압송되었다. 조여예는 원나라에서 금자광록대부로 제수되고 평원군공으로 제수되었다가 1287년에 사망하였다.

조여예의 다른 손자인 조하조병은 1276년에 임안이 함락된 직후, 저항군을 편성하여 1279년 애산 전투에서 패배할 때까지 원나라에 항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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