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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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철
曺永哲 / Cho Young-Cheol

출생
1989년 5월 31일 (34세)
울산광역시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신체 조건
182cm, 74kg
포지션
윙어, 세컨드 스트라이커
학력
울산내황초 - 학성중 - 학성고
프로 입단
2007년 요코하마 FC
소속팀
요코하마 FC (2007~2008)
알비렉스 니가타 (2009~2011)
오미야 아르디자 (2012~2014)
카타르 SC (2014~2015)
울산 현대 (2015~2018)
상주 상무 (2016~2017 / 군 복무)
경남 FC (2018)
알비렉스 니가타 (2019)
티아모 히라카타 (2020~2021)[1]
도치기 시티 FC (2022)[2]
국가대표
12경기 1골 (대한민국 / 2010~2015)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축구선수. 포지션은 윙어 및 세컨드 스트라이커였으며 최전방도 소화가 가능했다.


2. 클럽 경력[편집]



2.1. 아마추어 시절[편집]


울산학성중학교시절부터 전국에서 손꼽히는 유망주로 이름을 알렸고, 학성고 1학년에 대한축구협회 우수 선수 해외 유학생 3기에 꼽혀 조범석과 함께 FC 메츠 유소년 팀에서 1년 간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후 고교 2학년에 학성고로 복귀했고, 고교 3학년전부터 졸업도 하기 전에 일본 요코하마 FC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을 정도. 그만큼 고등학생 신분으로서는 정말 이례적일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2.2. J리그[편집]


그리고 다른 팀이나 대학에서 하이재킹 해갈까 두려웠던 요코하마 FC에서 2007년 당시 고등학생 신분이었던 조영철을 바로 팀에 입단시켰다. 요코하마 FC 이후로는 알비렉스 니가타, 오미야 아르디자까지 총 세 팀에서 뛰었는데, 의외로 가는 팀마다 팬들에게 인기가 엄청났는지 세 팀 모두에서 팀내 최고 인기선수 중 한 명으로 꼽혔다.[3] 실제로 일본내 한 스포츠 신문에서 실시한 J리그 한국 선수 인기도 조사에서 박지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던 적도 있다. 친화력이 강한지 일본인, 카타르인 등 외국인 동료들과도 잘 어울리고 팬들에게도 팬 서비스를 잘 해서 그런 듯. 그의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등 SNS 계정을 보면 동료들과 어울리는 사진들이 올라오고 그리고 음식 사진들 일본 여성팬들이 보내온 선물 사진들이 올라오는가 하면 일본 여성팬들이 일본어든 한글이든 그를 응원하는 멘션과 댓글을 쓴 것들도 적지 않게 올라온다. 특히 시즌 끝날 때마다 일본에 들르는데 2015년 시즌 카타르, 울산 현대에서 시즌을 마쳤을 때도 마찬가지. 하지만 상무에 있을 때는 전역하기 전엔 일본에 못 가겠지 이제 전역했다 아마 상무에 입대한 뒤에도, 더구나 상무가 2015 K리그 챌린지에서 1위로 승격해서 2016 K리그 클래식에서 뛰게 되었으니 일본 팬들도 그의 소식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을 것이므로 조영철 본인이 SNS 활동은 자주 못하게 되더라도 일본 팬들의 선물과 응원 공세는 이어질 듯 싶다.


2.3. 카타르 SC[편집]


2014년 7월 6일 카타르 스타즈 리그 소속 카타르 SC로 이적하였다. 계약기간은 2년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15년 7월 24일 카타르 SC와의 계약을 1년만에 해지하였다. 갑작스러운 계약 해지로 인해 대부분의 팬들은 의아해했는데...

2.4. 울산 현대[편집]



2.4.1. 2015년[편집]


2015년 7월 28일 울산 현대 축구단과 2년 6개월 계약을 맺었다.[4] 반면 윤정환 감독이 부임 후 끝없는 부진에 허덕이고 있던 터라 조영철의 가세를 환영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조영철은 8월 12일 FC 서울을 상대로 교체 투입되어 K리그 첫 데뷔전을 치룬 이후 잔부상에 시달리며 한동안 경기에 투입되지 못하였고, 데뷔전을 치룬지 2달 후인 10월 17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 오랜만에 투입되기도 하였지만 역시 별다른 임팩트를 주지 못했다. 결국 2경기 출장에 그친 뒤 15시즌을 마쳤고, 시즌 종료 후 바로 상주 상무에 합격하면서 울산 팬들에게 부상 때문에 자주 못 뛰었다고는 하지만 순전히 입대만을 위해 울산에 온 것이 아니냐며 강한 성토를 받았다.[5]

2.4.2. 상주 상무 (군 복무)[편집]


파일:external/www.sangjufc.co.kr/1488245821_1.jpg

논란을 뒤로 하고 상주 상무에 합격하면서 2016년부터 2시즌 동안은 상주에서 뛸 예정. 상주에서는 23경기 3골을 기록하며 부상에서 회복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페이스를 울산에 복귀한 후에도 유지한다면 팬들의 평가가 반전될지도 모른다.

이후 2017년엔 공격수의 상징과도 같은 등번호인 9번을 달고 준주전급으로 출장했으며, 전역할때까지 새로 입대한 주민규와 함께 상주의 공격진을 이끌었다. 그리고 2017년 9월 14일 전역하였다.

2.4.3. 2018년[편집]


등번호로 8번을 받았다. 토요타의 한국어 선생 그러나 이 팀에 조영철 이외에도 측면 자원이 많았던 터라 별 기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가...


2.5. 경남 FC[편집]


결국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경남 FC로 이적했다. #

반년간 뛰면서 리그 9경기 1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2.6. 알비렉스 니가타[편집]


2019년 알비렉스 니가타로 이적하며 8년만에 친정팀에 복귀하였다.#

일본에서는 많은 인기를 자랑하던 선수답게 일본 복귀를 알리는 인스타그램에 수많은 일본팬들이 환영댓글을 남겨줬지만, 전지훈련에서부터 부상을 당하며 재데뷔가 늦어졌다.

이후로 8월까지 리그 5경기 출전에 선발 출전은 1회도 없다. 9월 말이 되도록 벤치 명단에도 들지 못하는 중. 팀의 미래가 될 줄 알았던 과거 유망주의 복귀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결국 11월 24일 계약이 만료되었다. #


2.7. 하부리그[편집]


2020년, 일본 축구 5부리그 격인 간사이 1부 리그 팀이자 오사카부에 위치한 티아모 히라카타에서 조영철을 영입했음을 발표했다. #

아직은 프로 리그에서 활약해도 무방한 나이임에도 아마추어격인 5부리그까지 이적해서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던지 본인의 sns를 통해 이적한 이유를 밝혔다. 니가타 시절 동료가 이번 시즌에 감독으로 취임했고 미래를 생각해야 될 나이에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고 한 것을 보면 은퇴 후 팀의 스태프로 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 이후 어렵게 시작된 시즌 5부리그의 메시로 군림하며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지역 챔피언스리그에서도 3골을 기록하는 활약을 보여줬고 대회에서 히라카타를 우승으로 이끌며 JFL로 승격시키게 되었다.

2021년 JFL에서도 승격팀인 히라카타를 상위권으로 이끌며 당시 무패를 달리던 이와키 FC도 잡는 등의 돌풍을 일으켰다. 다만 2022시즌 J3 라이선스 취득에 실패하면서 바로 또다시 승격은 하지 못했다.

2022시즌을 앞두고는 간토지역 1부 리그팀 도치기 시티로 이적했다.


2.8. 은퇴[편집]


그렇게 도치기에서 1년간 활약한 뒤 계약기간이 아직 남았음에도 2022년 12월 4일 다소 갑작스런 현역 은퇴를 발표하였는데, 후에 인터뷰에서 밝히기를 아버지가 암을 선고받게 되어 가족들에게 더 많은 신경을 쓰기위해 결국 은퇴를 한것이라고 밝혔다.#[6]



3. 국가대표 경력[편집]



3.1.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1 이범영 · 2 오재석 · 3 김민우 · 4 임종은 · 5 김영권 · 6 홍정호 · 7 구자철

C

8 서용덕 · 9 김동섭 · 10 조영철 · 11 서정진 · 12 김승규 · 13 정동호 · 14 문기한
15 최성근 · 16 장석원 · 17 윤석영 · 18 이승렬 · 19 김보경 · 20 박희성 · 21 김다솔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1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250E77; font-size: 0.8em"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홍명보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건하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서정원 · 파일:일본 국기.svg 이케다 세이고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봉수


홍명보 감독이 이끈 FIFA U-20 월드컵에서는 첫 경기 카메룬전에 선발 출전하였으나 팀의 0-2 패배를 막지 못했고, 이후 팀이 승승장구하며 8강까지 진출하는 동안 후반 교체로만 투입되어야 했다.

3.2.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요코하마 FC 입단 후에는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에도 뽑혔는데, 이 때 대표팀 연령 규정이 85년생 이후 출생자, 즉 23세 이하였다. 그리고 당시 조영철의 나이는 89년생인 19세. 무려 4년을 월반해서 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조영철은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 온두라스전에서 후반 교체로 투입되었는데 여러 차례 나이답지 않은 과감한 슈팅과 돌파를 선보이며 축구팬들에게 이름을 각인시켰다. 여담이지만 이 때 올림픽 대표팀에 뽑힌 89년생이 조영철 말고 한 명 더 있는데 그게 바로 기성용.[7]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참가했다.

이후 런던올림픽을 대비한 89년생을 주축을 출범한 올림픽 대표팀의 첫 삽이라 할 수 있는 창원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선발 출전하여 선제골을 기록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올림픽 지역예선 때에도 출전 기회를 어느정도 얻었고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사우디 아라비아전에는 결승골도 넣었지만 그나마 PK였고, 결국 런던 올림픽 본선 엔트리는 들지 못했다. 그래서 몇몇 축구팬들은 J리그가 망친 최고 유망주를 꼽으라면 대부분 백성동과 더불어 조영철을 꼽기도 한다.

3.3.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성인 대표팀에선 대표적으로 김민우, 남태희와 함께 항상 감독 부임초기에 소집해서 테스트를 받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개업화환'으로 유명하다. 묘하게도 김민우와 조영철은 J리그의 인기스타라는 공통점이 있다.[8]

조광래가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고 나서 첫 경기인 나이지리아전을 준비하면서 조영철을 깜짝 선발하여 화제가 되었었고 본 경기에서도 선발 출전했지만 깊은 임팩트를 남기지는 못했고, 심지어 포지션 파괴자 조광래에 의해 우측 풀백으로 강제 포지션 이동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홍명보 감독 취임 후 첫 무대인 동아시안컵에서도 출전 기회를 얻었지만 팬들의 평가는 긍정적이지 못하다. 팬들도 이젠 기대하다 기대하다 못해 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

2014년 10월 슈틸리케호 1기멤버에 발탁되었다. 10일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 최전방공격수로 선발 출장하여 한골을 터뜨릴 뻔 했으나 오프사이드로 무효가 되었다. 그러나 조영철의 위치는 명백한 온사이드로, 부심의 오심 때문에 A매치 데뷔골을 날린 셈. 비록 기록지상으로는 무득점이었으나 그동안의 부진했던 조영철이라고는 상상도 안 될 정도로 위협적인 침투와 부드러운 연계플레이, 부지런한 전방압박으로 축구팬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동안 측면에만 기용해 왔던 감독들이 선수의 능력을 오판한 것이 아닌가 하는 평가마저 나왔을 정도.

11월 요르단 전에서는 토템 스트라이커 때문에 4-1-4-1전술 때문에 오른쪽에서 한교원, 차두리와 번갈아 자리를 바꾸며 부지런히 공간을 만들고 침투와 패스를 시도했다. 실패는 했지만, 수비수를 제끼고 슈팅을 날리기도. 요르단전 항목에도 나와있듯 전반 27분에 슛을 날린 건 조영철이 아니라 한교원이었다. 슛팅 후 조영철이 바닥에 침을 뱉고 따봉을 날려서 중계진도 헷갈린 모양. 다만 그 전에 남태희의 스루패스를 받지 못한 건 조영철이 맞다.

파라과이전만큼은 아니지만 공격과 수비 압박을 무난하게 수행한 점을 보면 새로운 감독 체제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 듯 하다.
1 정성룡 · 2 김창수 · 3 김진수 · 4 김주영 · 5 곽태휘 · 6 박주호 · 7 손흥민 · 8 김민우
9 조영철 · 10 남태희 · 11 이근호 · 12 한교원 · 13 구자철 · 14 한국영 · 15 이명주 · 16 기성용

C

17 이청용 · 18 이정협 · 19 김영권 · 20 장현수 · 21 김승규 · 22 차두리 · 23 김진현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1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ff; font-size: 0.8em"
감독 파일:독일 국기.svg 울리 슈틸리케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건하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신태용·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카를로스 아르무아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봉수


2015년 1월 4일 사우디아라비아와 평가전에서 선발 출전했다. 전반전 대표팀 경기력이 워낙 끔찍했기 때문에 구자철과 더불어 많은 우려와 비난을 샀다. 결국 72분 이정협과 교체되어 나갔고, 이정협은 후반 추가시간에 득점을 기록하면서 대표팀 최전방 공격수 경쟁에 불을 붙였다.

1월 10일 2015년 AFC 아시안컵 오만전에서 전반 막판에 결승골을 터뜨려 대한민국이 1:0으로 승리했다. 구자철의 중거리 슈팅 후 튕겨나온 공을 순간적으로 몸을 날려 밀어넣는 집중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사우디전과 마찬가지로 최전방 공격수로서 함량 미달인 모습을 여러 차례 노출했다. 특히 전반 중반까지 상대 수비와 싸워주지 않고 자꾸 왼쪽 측면으로 나가는 바람에 선수들이 왼쪽 좁은 공간에 지나치게 밀집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사우디전과 마찬가지로 70분 이정협과 교체되었고, 조별 3차전 호주전부터 이정협이 계속 선발로 나서면서 라인업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아시안컵 이후로는 황의조, 이재성, 권창훈 등 신예 공격 자원들이 속속 발탁이 되면서 2015년을 끝으로 대표팀과의 연은 다하게 되었다.


4. 여담[편집]


  • 별명은 욘초루. 이름인 조영철을 가타가나로 표기하면 일본어 발음의 한계 때문에 チョ・ヨンチョル로 표기해야 되는데, 이에 따라 영철이 욘초루가 된 것. 여담으로 2017년 전역하면서 없어졌지만, 상주 상무 공식 홈페이지의 선수들 자기소개를 보면 조영철이라 쓰고 욘초루라 읽는다고 쓰여져 있었다 (...) #

  • 울산에서 뛰던 2017년에 유부남이 되었다.

  • 해외에서 뛰는 선수의 종합소득세 관련하여, 대법원까지 간 '중대한 이해관계의 중심지' 판례에 불명예로 이름을 남겼다. #


5. 관련 문서[편집]



[1] JFL 소속팀으로, J리그부터 따지자면 당시 5부리그에 해당되는 팀이었다.[2] 간토 사커 리그 소속 팀이다.[3] J리그 팬들은 자기가 응원하는 팀 소속의 선수의 팬이 되면 그 선수가 나중에 응원하는 팀을 떠나더라도 나쁘게 이적하지 않은 이상 응원해준다.[4] 상무와 경찰청 입대를 위해선 입대 전 시즌에 K리그에서 뛰어야 한다. 상주 상무의 나이 제한이 만 27세이며, 안산 경찰청도 만 29세에서 만 27세로 하향되어 15시즌에 복귀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마지노선에 맞춰서 입대한 셈.[5] 특히 조영철이 울산광역시에서 태어났고, 울산 최고의 축구 명문으로 손꼽히는 학성고등학교 출신이었기에 로컬 보이로 성장할수도 있었음을 생각하면... 근데 조영철은 2년 6개월 계약이라 어차피 제대 후에도 남을 것이다[6] 이후 안타깝게도 부친은 2023년 3월 15일날 작고하였다.[7] 다만 기성용은 빠른 89년생이기 때문에 당시 같이 뽑힌 88년생 이청용과 동기이다. 기성용, 이청용도 역시 조영철과 같이 비교적 어린 나이에 뽑혔다.[8] 다만 김민우는 일본에서 사간 도스 단 한 팀에서만 뛰었고, 조영철은 두 차례의 이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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