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석(1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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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배천 조씨
출생
1861년 8월 21일
평안도 정주목 덕달면 이리[1][2]
(현 평안북도 정주시 오성리)
사망
1920년 11월 3일
만주 통화현[3]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조용석은 1861년 8월 21일 평안도 정주목 덕달면 이리(현 평안북도 정주시 오성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0년 한일병합이 선포되자 동지들과 함께 남만주 통화현(通化縣)으로 망명했다. 이후 1918년 통화현 반납배(半拉背)[4]에 아우인 조후석(趙厚錫)과 승진, 김기전 등과 함께 배달학교(倍達學校)를 설립하여 청소년들에게 항일의식을 고취시켰다.

1919년 간도 용정에서 발발한 3.1 운동에 참가하였으며, 한족회(韓族會)의 일원으로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20년 8월 21일 배달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 일본군이 간도 참변을 자행할 때 통화현에서 배달학교 교감 김기선, 교사 조동호(趙東鎬)·조용주(趙龍珠) 등과 함께 체포되어 피살당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조용석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1895년 평안북도 정주군 덕달면 이리 → 1914년 부군면 통폐합, 정주군 덕달면 덕성동 → 1939년 정주군 덕언면 덕성동 → 1952년 군면리 대폐합, 평안북도 정주군 오성리.[2] 배천 조씨 집성촌이다.[3]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퉁화(通化)시.[4]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퉁화(通化)시 퉁화현 반라베이거우(半拉背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