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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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조우관.jpg 파일:고구려 벽화 깃털 관모.jpg
파일:EhDQP5MVoActE3Q.jpg
파일:D1mXfFRU4AUSVwZ.jpg

변형모(弁形帽), 조우관(鳥羽冠)·조미관(鳥尾冠)[1], 절풍(折風)[2]

1. 개요
2. 역사
3. 미디어
4. 외부 링크



1. 개요[편집]


高麗俗服窮袴, 冠折風一梁, 謂之幘. 知讀五經. 使人在京師, 中書郎王融戱之曰: 「服之不衷, 身之災也. 頭上定是何物?」 答曰: 「此卽古弁之遺像也.」

高璉年百餘歲卒.

고(구)려인의 습속은 좁은 바지를 입고, 관(冠)으로는 일량(一梁)의 절풍(折風)을 쓰는데, 이를 책(幘)이라 한다. 오경(五經)을 읽을 줄 안다. (고구려의) 사신이 수도(國都)에 있을 때 중서랑(中書郞) 왕융(王融)이 희롱하기를, "입은 것이 적합하지 않는 것은 몸의 재앙이라는 말이 있는데, 머리 위에 얹혀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하니, (고구려 사신이,) "이것은 바로 옛날 고깔(弁)의 잔영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고연(高璉)은 나이 백여세에 졸(卒)하였다.

남제서(南齊書) 동남이열전(東南夷列傳) 고구려(高句麗) 출처


고대 한국 삼국시대에 쓰던 모자. 스키타이(샤카 Sakā) 문화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관모(冠帽) 부분과 조우(鳥羽)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로 신분이나 지위가 있는 사람이 쓰는데, 고깔[3]에 양 옆으로 깃털을 꽂은 다음 머리 위에 올리고 턱 아래에서 끈을 묶어 고정하는 식으로 쓴다. 대체로 깃털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을 더 높은 계급으로 친다.

세 나라가야: 나는?[4]에서 공통적으로 쓰던 관모라는 점도 재밌지만, 이 시기 한반도 사람들이 모자를 깃털로 장식한 이유는 과거 중앙아시아 유목민족를 숭배하던 샤머니즘 요소가 반영된 것으로 추정한다.[5] 머리를 깃털로 장식하는 풍습은 수렵시대부터 동북아시아 북방 민족들에게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절풍(折風)은 뒷날까지 일반 고구려인의 대표적인 모자로서 고깔(弁)모양이었다. 사인(士人)들은 이에 조우(鳥羽)를 꽂아 장식하였는데 조우를 관(冠)에 꽂는 것은 북아시아 제종족(諸種族)에서 널리 보이는 원시종교로서의 조류숭배(鳥類崇拜)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항마양귀(降魔攘鬼)의 주술적인 성격을 지녔다. 새털을 모자에 꽂는 풍속은 신라와 백제에도 있었다.

『북사(北史)』고려전(高麗傳)에서 전하는 귀인(貴人)의 관(冠)이라는 소골(蘇骨)을 절풍과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양자(兩者)를 구분하여 소골을 『삼국지(三國志)』의 '책이무후(幘而無後)'한 관모로 보는 설도 있다.

≪參考文獻≫ 李龍範, 「高句麗人의 鳥羽挿冠에 대하여」『東國史學』 4, 1956. 출처



2. 역사[편집]


초기에는 여러가지 깃털을 사용한 천연 깃털 양식을 썼던 것으로 보이는데 시대가 흐를수록 고위 귀족들 사이에서 금속제 양식이 나타났다. 이런 금속제 양식은 삼한 중에서도 특히 신라에서 많이 썼다.

회화에서도 조우관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데, 고구려의 쌍영총과 무영총 고분 벽화에서 조우관을 쓴 사람이 말을 달리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고, 백제는 양직공도에서 조우관을 쓴 백제 사신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신라는 1971년 중국 섬서성박물관이 발굴한 예빈도 그림에서 조우관을 쓴 신라 사신을 볼 수 있다.

파일:external/www.kocis.go.kr/15897791580_f50358b9ef_c.jpg

파일:external/www.kocis.go.kr/Afrosiab_Wall_Painting_NMK_Article_00.jpg

7세기 중반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에서 조우관을 쓰고 환두대도를 찬 사신들이 발견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6] 고구려나 신라의 사신이며 고구려라면 연개소문 집권 돌궐과의 연합을 위해 당시 당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보낸 밀사라는 설이나 사마르칸트에 직접 고구려인들이 사신을 보낸건 아니고, 조우관은 극동의 고구려인에 대한 상징으로서 고구려 사절을 그려놓았다는 주장도 있다.

시대가 흐르며 모자의 형태는 계속 바뀌었고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중기부터는 관복을 중국식으로 바꾸었다는 기록도 있지만 조우관 문화는 여전히 공존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발견된 당나라 황태자 이현(李賢, 654~684)의 무덤 벽화 예빈도에서 신라 사신이 조우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막고굴 제355굴에도 조우관을 쓴 한국인 2명이 그려져 있는데 이 그림은 삼국시대를 한참 지나서 통일신라 말에 해당하는, 즉 중국이 오대십국시대 즈음에 접어들 무렵이다.

고려 이후에는 관모에 깃털 장식을 하는 경우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전립, 주립, 등 다른 모자에 깃털 장식을 하는 문화는 남아서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3. 미디어[편집]


실제 삼국시대 역사에서는 조선시대만큼 자주 보이는 모자이지만 어째서인지 사극에서는 조우관을 쓴 인물들을 보기가 힘들다. 아마도 실제 큰 새의 깃털을 사용해야 하고 장기적인 소품 관리가 까다로운 점이 가장 큰 이유인듯 하다. 그래서 그냥 상투를 들고 이마에 두건을 두르는 걸로 처리하거나 중국식 관모나 쓰개를 쓰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KBS사극 삼국기에서 엑스트라들이 잠깐 착용했었다.

파일:external/img.kbs.co.kr/068006133_L.jpg

KBS사극 대조영에서 초기에 잠깐 나왔다. 고사계와 요동출신들이 이 조우관을 잠깐 착용했다.

MBC 사극 계백에서 김춘추가 이 조우관을 쓴 모습이 몇차례 나오기는 했다. 또한 초기에는 백제의 관모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재현해서 사용하는 모습이 보여 호평을 받았으나, 중후반대 이후로 자본의 압박인지 중국식 상투쓰개를 사용한다(…). 다행히 제왕의 딸 수백향에서 다시 상당수준으로 고증된 백제 관모와 금동관모가 등장해 중국식 상투쓰개 일색이던 고대사 사극에서 후술할 근초고왕, 대왕의 꿈과 더불어 좋은 선례를 남겼다.
파일:/image/076/2011/03/04/201103040100042400002422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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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초고왕에 등장한 오라관
대왕의 꿈에 등장한 조우관
근초고왕대왕의 꿈에서는 지위가 높은 주연, 조연들이 하나같이 조우관을 포함한 삼국시대 관모를 쓰고 나오는 개념있는 고증을 선보였다. 중국식 상투쓰개가 아예 없지는 않지만 그간 변형모 자체가 등장조차 하지 않던 사극에 비하면 월등한 고증이라고 볼 수 있다.

코에이에서 여포에게 항상 이 조우관 비스무리 한 것을 씌운다(...).[7]

쿠키런흑당맛 쿠키가 착용하고 있다.

4.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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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변형모에 의 날개나 꼬리에서 따온 깃털을 꽂은 것[2] 고구려에서 부르던 별칭이다. 말을 탈 때 바람을 막아주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바람막이[3] 고깔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 조우관의 몸체 부분을 가르키는 말에서 유래했다. 고대 한국어에 대한 차자 표기로는 高思曷伊(고ㅅ갈이).[4] 기록에 없어서 그렇지, 가야도 조우관을 사용했었다. #.[5] 비슷하게 와 관련이 있는 문화로 솟대가 있다. 이 또한 선사시대부터 이어온 문화이다.[6] #[7] 중국 내부에서 그려진 여포 그림이 원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