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희(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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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참고문헌



1. 개요[편집]


북한의 정치인, 건설 테크노크라트.

2. 생애[편집]


1938~1939년 사이 출생.

김일성 시대부터 건설테크노크라트의 경력을 밟아왔다. 최소 1982년 이전부터 단천 광업건설련합기업소 지배인으로 사업하였으며, 1982년 2월, 7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단천 광업건설련합기없소 지배인으로 사업하면서 단천제련소 건설 등을 지휘하였다. 1986년 11월, 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1990년 4월,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며, 1992년 4월 1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김일성훈장을 수훈받았다. 1994년 5월 5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조철준의 뒤를 이어 정무원 건설부장에 임명되었다.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을 지냈다. 그런데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 명단엔 없었다.

1998년 7월,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며, 9월 5일, 최고인민회의 10기 1차 회의에서 김일성 헌법 개정으로 내각이 부활하면서 홍성남 내각에서 기존의 건설부와 건재공업부를 합쳐서 생긴 건설건재공업성의 상으로 유임되었다. 1999년 9월, 리종옥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2002년부터 조선육상협회 위원장을 겸했다. 2003년 8월,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9월 3일, 최고인민회의 11기 1차 회의에서 박봉주 내각이 출범할 때도 건설건재공업상으로 유임되었고 2004년 조선건축가 동맹 창립 50돌 기념식에 참석하는 등 10여차례 공개석상에 나섰으며 사망 직전인 2005년 1월 1일까지도 박봉주를 수행하여 대안친선유리공장 건설을 위해 평양에 체류 중이던 중국 기술자들을 방문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였으나 2005년 1월 11일, 향년 67세를 일기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김정일이 다음날 화환을 보내주었다. 조윤희 사후 동정호가 신임 건설건재공업상에 임명되었다.

3. 참고문헌[편집]


  • 통일부 정보분석국 사회문화담당관실, 북한의 주요인물 2005(서울: 통일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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