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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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요보의 역임 직책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은완코 카누
(2006~2010)

조지프 요보
(2010~2014)


빈센트 엔예아마
(2014~2015)


조지프 요보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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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베스트팀
파일:아프리카 축구 연맹 로고.svg

2005 · 2008


조지프 요보의 기타 정보






Nigeria National Football Team


파일:Yobo_Profile.jpg

이름
조지프 요보
Joseph Yobo
본명
조지프 마이클 요보
Joseph Michael Yobo
출생
1980년 9월 6일 (43세)
나이지리아 리버 스테이트 코노
국적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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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 [[잉글랜드|

잉글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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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신체
188cm
직업
축구선수(수비수 / 은퇴)
축구코치
소속
선수
미쉐린 포트하커트 (1996~1997 / 유스)
스탕다르 리에주 (1997~1998 / 유스)
스탕다르 리에주 (1998~2001)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2001~2003)
CD 테네리페 (2001~2002 / 임대)
에버턴 FC (2002~2003 / 임대)
에버턴 FC (2003~2012)
페네르바흐체 SK (2010~2012 / 임대)
페네르바흐체 SK (2012~2014)
노리치 시티 (2014 / 임대)
지도자
나이지리아 대표팀 (2020~ / 수석 코치)
국가대표
파일: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101경기 7골 (나이지리아 / 2001~2014)


1. 개요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2. 국가대표 경력
3. 지도자 경력
4. 여담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1. 개요[편집]



파일:Yobo_Everton_1.jpg

나이지리아의 前 축구선수로, 나이지리아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으로 손꼽히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한 나이지리아 국적의 선수였다.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1998년, 나이지리아를 떠나 스탕다르 리에주에 입단한 요보는 2년뒤 1군에서 프로데뷔를 한다. 그리고 팀을 떠나는 2001년까지 46경기에 출전했고, 프랑스의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로 이적한다.

마르세유에 입단한 그는 스페인의 CD 테네리페에서 임대를 떠나지만 단 한경기도 출전하지 못하고 원소속팀으로 복귀한다. 02-03시즌을 앞두고 잉글랜드의 에버턴 FC로 100만 파운드의 임대료를 통한 이적으로 합류한다. 그의 이적은 막 팀에 부임한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의 첫 샤이닝이었다. 그리고 단단한 수비력을 선보이며 감독과 팬들을 흡족하게 했고, 에버턴은 완전 이적을 타진한다. 그러나 이적료를 둘러싸고 마르세유와 에버턴간의 분쟁이 생기면서 이적이 무산되나 싶었지만 다행히도 잘 해결되며 에버튼이 400만 파운드를 지불하고 그를 데려오는데 성공한다.

이후 그는 에버턴 수비의 핵심으로 자리잡았고, 기복없이 꾸준한 활약으로 팬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다. 그러다 2006년 초 팀과의 재계약이 지연되자 아스날 FC와의 이적설이 뜨기도 했었지만 시즌을 앞두고 7월 22일, 소속팀과 재계약을 채결한다. 2006-07 시즌이 시작되고 새로 영입된 졸리온 레스콧과 함께 프리미어리그 전 경기에 출장하며 환상의 파트너십으로 6위 달성에 힘을 보태면서 자신을 지지하고 믿어준 팬들에게 확실한 보답을 했다. 2007년 4월 15일에는 에버턴 역사상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한 외국인 선수로 기록에 남았다.[1] 10월 5일에는 UEFA 컵 라리사 FC전에서 필 네빌 대신 처음으로 주장 완장을 달며 구단 최초로 주장완장을 달고 출전한 아프리카 선수가 되기도 했다.

2009-10 시즌에는 자신과 좋은 호흡을 보여준 레스콧이 맨시티로 떠나게 됐고, 필 자기엘카마저 부상으로 대부분의 경기를 결장하면서 초반에는 신입생인 실뱅 디스탱과 센터백 라인을 구성하며 자주 출전했다. 11월 19일, 리버풀과의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자책골을 넣으면서 팀은 0:2로 패배했다. 이후 부상과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차출로 인해 시즌 중반부터는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대회 복귀 후에도 모예스 감독이 실뱅 디스탱 - 욘 헤이팅아 조합을 선호하면서 그는 주전에서 밀린다.

월드컵을 마치고 그는 변화된 입지를 받아들이고 터키 쉬페르리그의 명문팀인 페네르바흐체 SK로 1년간 임대를 떠난다. 거기서는 리그 30경기에 출전하여 리그 우승을 견인함으로써 만족스러운 임대생활을 보낸다. 시즌을 마친 뒤 2011년 9월 6일, 70만 유로를 지불하는 형식으로 1년 임대연장에 합의하면서 한 시즌 더 페네르바흐체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2011-12 시즌에도 확고한 입지로 시즌내내 주전으로 활약한다. 그리고 2012년 8월 4일, 페네르바흐체와 3년 영구이적에 합의하면서 7년간 정들었던 구디슨 파크에서의 생활을 마감한다.

이후 2013-14시즌부터는 부상도 있었고 주전경쟁에서 밀리며 전반기동안 리그 1경기 출전에 그쳤다. 결국 그는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정기적인 출전을 위해 2014년 1월, 노리치 시티로 영구이적조항이 포함된 임대이적을 통해 오래간만에 프리미어리그 무대로 복귀한다. 그리고 시즌 종료전까지 리그 8경기에 출전했다.

소속팀으로 복귀 후 은퇴를 선언한다.


2.2. 국가대표 경력[편집]


1999년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에 출전하여 조국의 8강 진출에 기여했고, 2년 후인 2001년 3월 24일 잠비아와의 2002 FIFA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2002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출전하여 팀을 3위로 이끄는 활약을 선보였고, 2002 FIFA 월드컵 본선에도 출전하여 스웨덴과의 F조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줄리어스 아가호와의 득점을 어시스트하기도 했으나, 팀은 1:2로 석패했다. 그리고 2010 FIFA 월드컵 본선에서는 은퇴를 선언한 은완코 카누 대신 주장 완장을 차고 조별리그 3경기에 모두 출전했으나, 팀의 조별리그 탈락을 막지는 못했다.

그러나 2013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팀의 19년만에 이뤄낸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에 기여했고, 이듬해인 2014 FIFA 월드컵에서도 1998 FIFA 월드컵 이후 무려 16년 만에 팀의 통산 3번째 월드컵 16강 진출에도 일조했다. 그리고 2014년 월드컵이 끝난 직후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며 유니폼을 반납했다.


3. 지도자 경력[편집]


2020년 2월 12일, 슈퍼 이글스의 수석코치로 부임했다.


4. 여담[편집]


  • 2007년, 본인의 이름을 딴 조셉 요보 자선재단을 설립했다. 고국의 소외된 아이들을 돕기 위해 그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300개 이상의 장학금을 수여했다. 또한 그는 나이지리아의 오고니 지역에서 축구 아카데미를 시작했고, 라고스에서는 축구 캠프를 운영하며 후배들을 양성하고 있다.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5.2. 개인 수상[편집]


  • CAF 올해의 팀: 2005, 2008

[1] 이후 2012년 초에 호주의 팀 케이힐이 경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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