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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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서는 창간일자 순



파일:주간조선 로고.png
이름
주간조선
유형
시사 주간지
창간일
1968년 10월 20일
본사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
편집장
이동한
사이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
2. 상세
3. 주요 보도
3.1. 평민당 유럽순방 추태 보도
3.2. 평양 시민 210만명 신상정보 입수 보도
3.3. 조봉암과 관련한 소련 외교문서 보도
3.4. 심미자 할머니 일기장 보도
4. 비판 및 논란
4.1. 노무현 요트 관련 보도
4.2. 류삼영에 대한 허위 보도
5. 여담



1. 개요[편집]


조선뉴스프레스에서 발행하는 시사 주간지다. 원래는 조선일보사에서 발행했으나 2010년부터 조선뉴스프레스[1]로 분사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조선미디어그룹의 관계사로서 조선일보 온라인 사이트인 조선닷컴에 기사가 업로드되고 있다. 지면 기사 중 일부가 주말 조선닷컴 메인 기사로 업로드 되기도 한다. 대중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조선일보의 주간지라고 인식되고 있다.

2. 상세[편집]


주간조선은 1968년 10월에 창간되었는데 당시는 1964년 창간된 주간한국을 시작으로 여러 주간지들이 생겨나면서 붐을 이루던 시기였다. 대부분의 주간지들이 자극적인 기사들과 스캔들 위주의 황색언론인 상황에서 주간조선은 창간할 때부터 "격조 높은 주간", "지식인의 주간"이라는 모토로 정론지를 표방하며 차별화 하였다. 이를 보여주듯 창간호의 특집 기사는 '한국의 이상적 지식인상', '현대 에로티시즘의 분석과 비판'이었다.# 그 외에 멕시코시티 올림픽과 그 해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대한 내용 등이 기사로 실렸다.

초기엔 타블로이드판으로 발행하다가 1979년부터 4x6배판으로 바꾸며 책자의 형태가 되었다. 1994년엔 국배판(절단)으로 변경했고 2007년부터 변형 국배판으로 바꾸며 사이즈를 조금 더 키웠다.

1982년 10월부터는 가로쓰기를 도입했는데, 이것은 모체라 할 수 있는 조선일보(1999년)는 물론이고 중앙일간지 중 최초로 가로쓰기를 한 스포츠서울(1985년)과 한겨레(1988년)보다도 빠른 것이었다.

2004년엔 '환경 특대호'(1807호)를 내면서 시사잡지 최초로 하나의 호 전체를 하나의 주제로 채우는 새로운 시도를 하였고, 이후에도 '암 특대호'(1821호), '당뇨 특대호'(1852호) 등을 내며 호평받았다.

이원복현대문명진단이 1990년 4월부터 2002년 12월까지 무려 13년간 연재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어령의 창조이력서'도 2016년 2월부터 2017년 1월까지 이곳에서 연재되었다.#


3. 주요 보도[편집]



3.1. 평민당 유럽순방 추태 보도[편집]


이른바 '조평사태'[2]를 일으켰던 기사다. 주간조선은 1989년 3월 3일자 1039호에 "좌파에도 우파에도 손짓 / 수행의원들 '추태' 만발"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당시 평민당 총재였던 김대중이 평민당 40여명을 이끌고 유럽을 순방했었는데 이를 다루면서 순방의 내용과 여러 정치적 의의 등을 분석함과 동시에 현지에서 일어났던 여러 불미스러운 추태들도 함께 보도했다. 순방 의원들이 비행기에서 맨발로 돌아다닌다거나, 교황에게 '헤이(Hey)'라고 부르기도 하는 등의 행동을 했다고 한다.#

이후 김대중의 평민당은 이에 대해서 허위 왜곡보도라고 주장하며 당력을 총동원하여 조선일보에 전면전을 선포하고 전국적인 대규모 불매운동과 거액의 소송전을 벌였다. 대립은 7개월이나 지속되었다. 해당 기사를 썼던 주간조선 기자는 살해 위협에도 시달렸다.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에 따르면 이로 인해 조선일보의 타격이 컸으며 당시 전라도 지역에서 조선일보 판매가 2만 부나 줄었다고 한다. 전국적으로도 5만 부가 줄었다. 반대로 정작 주간조선은 조평사태 당시 15만 부까지 판매가 늘어났다.

긴 대립이 이어지다가 타 기자들이 유럽으로 가서 주간조선 보도의 사실여부를 취재하고 순방 때 같이 있었다던 다른 언론사 기자들의 증언도 이어지면서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평민당은 조건없이 소송과 고발을 취하했다. 평민당은 주간조선이 '김대중 총재가 1등석으로 예약된 자리를 사양하고 이코노미 클라스에 착석하기를 고집했다'고 한 부분에 대해서도 '김대중 총재의 좌석을 1등석으로 예약한 사실이 없으며 출발 전부터 전 구간을 수행한 일행과 똑같이 일반석(이코노믹클라스)을 예약했'다고 주장했으나 당시 비행기에 탑승했던 승무원의 인터뷰 결과 거짓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3.2. 평양 시민 210만명 신상정보 입수 보도[편집]


기사, 관련물

2177호(2011년 10월 17일)에서 북한 보위부가 작성한 평양 시민 210만명에 대한 신상정보를 단독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평양의 인구 구성 상황에 대한 상세한 분석이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납북자, 이산가족 등 자신의 연고자에 대한 생사 확인을 원하는 국민들에게 확인 문의를 받아서 생사확인도 진행했다.


3.3. 조봉암과 관련한 소련 외교문서 보도[편집]


기사

1968년 9월에 김일성이 소련 공산당의 드미트리 폴란스키에게 자신이 남한의 1956년 대선에 개입했다고 밝힌 내용이 적혀있는 소련 외교문서를 2608호(2020년 5월 18일)에 단독 보도했다. 당시 조봉암이 자신들(북한)에게 대선 출마 여부를 타진해와서 그에게 대선에 출마하라고 지시를 하고 자금도 지원했다는 내용인데 이 문서가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 동안 조봉암이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쓰고 사형당한 걸로 알려져왔던 진보당 사건에 대한 역사는 완전히 새로 쓰여지게 된다. 조봉암 문서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다만 해당 문건에 등장하는 김일성의 발언을 보면 숫자를 틀렸다든가 날짜를 틀렸다든가 전후관계를 바꿔 얘기한다든가 하는 식의 오류가 여럿 있어서 추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3.4. 심미자 할머니 일기장 보도[편집]


기사, 후속보도

이용수 할머니의 윤미향에 대한 폭로로 촉발된 정의연 사태 때 심미자 할머니의 자필 일기장을 2609호(2020년 5월 25일)에서 단독 보도했다. 그 일기장에는 정대협[3]윤미향의 실태에 대해 거세게 비난하는 내용들이 담겨있었기 때문에 상당한 파장이 일었다.


4. 비판 및 논란[편집]



4.1. 노무현 요트 관련 보도[편집]


1991년 10월 '노무현 의원은 재산가인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노무현의 재산상태가 상당하다, 인권변호사로서의 활동이 과장되어있다, 요트 타기를 즐겼다, 노사분규 중재과정에서 이득을 취하였다는 내용에 대해 썼는데 노무현 측으로부터 소송을 당했고 이중 일부 내용이 허위, 과장으로 인정되어 위자료 2,000만원을 선고받았다.판결문


4.2. 류삼영에 대한 허위 보도[편집]


2022년 7월 26일 류삼영이 과거 조국 수호 집회에 참석했으며 SNS에 올렸다가 뒤늦게 삭제를 했다는 보도를 했다. 그러나 해당 인물은 당시 경찰 수사구조개혁팀장이었던 황정인이었다.# 빠르게 비공개로 전환하는 추태를 보였지만 이미 아카이브로 박제된 상태다.기사 원문(삭제됨) 아카이브


5. 여담[편집]


  • 할리우드 배우들의 인터뷰를 싣는 "할리우드 통신"이라는 코너가 있는데 여기서 스칼렛 요한슨에게 조국 사태가 표지로 나온 주간조선 책자를 들게 한 뒤 사진을 찍었다.[4] 주간조선에서는 "이건 이 코너에서 인터뷰하는 할리우드 배우들에게 요청하여 자신이 인터뷰하는 매체(주간조선)의 책자를 들고 찍는 일종의 기념사진일 뿐이며 배우 본인이 특별히 거절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터뷰 하는 대부분의 배우들이 찍었다."고 주장했다. 즉, 유독 몇 명의 배우에게 특정 정치적 목적으로 찍는 것이 아니라 인터뷰 할 때마다 인터뷰어가 그 당시 가지고 있는 주간조선 호를 가지고 찍는 것일 뿐이라는 것. 실제 배우들의 사진은 이렇다.

  • 창렬이라는 표현을 주류 언론매체들 중 최초로 쓴 것으로 알려져있다.#

  • 이영훈, 김낙년 등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과 이선민 기자간의 논쟁이 지면을 통해 3개월 가량 이어진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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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간조선을 비롯하여 탑클래스, 여성조선, 월간조선, 월간 산 등 잡지만 전문으로 제작하는 시사 미디어 기업. 2010년 1월 월간조선과 주간조선이 하나가 되면서 출범했다.[2] 조선일보-평민당 사태[3] 정의기억연대의 전신[4] 2585호(2019년 12월 2일).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