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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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민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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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등번호 101번
조정원
(2018.4.20.~2018.10.4.)

조한민
(2020~2020.5.7.)


김인환
(2021)
한화 이글스 등번호 4번
이창열
(2019.5.1.~2019)

조한민
(2020.5.8.~2021)


송호정
(2022~2022.7.31.)
한화 이글스 등번호 118번
김명서
(2017)

조한민
(2023~)


현역



파일:조한민2021.png

한화 이글스 No.118
조한민
Jo Hanmin

출생
2000년 10월 20일 (23세)
전라북도 군산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군산중앙초 - 군산중 - 대전고
신체
182cm, 77kg
포지션
내, 외야 유틸리티[1]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19년 2차 8라운드 (전체 73번, 한화)
소속팀
한화 이글스 (2019~)
병역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22~2023)
응원가
[ 이전 응원가 보기 ]
상무 피닉스 야구단 복무 전
전수연 - 《Smile Smile Smile》[1][2]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2.2.1. 2019 시즌
2.2.2. 2020 시즌
2.2.3. 2021 시즌
2.2.5. 2023 시즌
3. 플레이 스타일
4. 연도별 성적
5. 여담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한화 이글스 소속 야구 선수.


2. 선수 경력[편집]



2.1. 아마추어 시절[편집]


2018년 4월 28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홈런 2방을 때려내며 전문가와 커뮤니티에서 이목을 끌었다. 다만 타격에서 돋보이는 점은 많지 않았다. 타율이 0.202로 매우 낮으며 삼진율도 30%에 가깝다. 다행히 볼넷은 16%로 준수하다. 타율이 비교적 낮은 편이었지만, 타고난 손목 힘과 장타력으로 인해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드래프트 직전, 1라운드 후보로도 거론이 되었지만 뒤로 밀렸다.

2.2. 한화 이글스[편집]



2.2.1. 2019 시즌[편집]




2.2.2. 2020 시즌[편집]


코로나 19 유행으로 자체 청백전을 진행하고 있는 와중에 공격과 수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속적으로 유격수 선발로 출전하는 동안 김도현을 상대로 만루홈런까지 기록하면서 팀 내에서 기대가 높은 유망주로 급부상하였다.

4월 21일 kt와의 연습경기에서 교체출전해서 유격수로 공수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5월 8일에 정식선수로 등록되었고 등번호도 4번으로 바뀌었다.

5월 22일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다. 다만, 현재 노시환이 2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는 등 타격감이 좋아서 많은 기회를 받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파일:0000701881_001_20200609192006831.jpg


6월 9일 1군 엔트리 대거 개편으로 송광민이 내려가면서 노시환이 원포지션인 3루수로 가게 되어 유격수 포지션으로 선발출장했다. 안타 두개를 기록하며 멀티 히트를 기록하게 되었다. 다만 수비에서는 중계플레이 도중 공을 흘리는 아쉬운 수비를 보여주었다.

6월 10일 롯데전에서 9번 유격수로 선발 출전했다. 3회말 1사 롯데 오윤석의 타구를 포구했으나 송구를 하려는 과정에서 공을 흘리는 실책을 범해 출루를 허용했다. 이후 롯데 마차도의 타구도 평범한 땅볼타구로 왔으나 포구를 하지 못하고 뒤로 흘리는 실책을 범해 실점까지 허용했다. 이 두번의 실수가 굉장히 크게 작용한 듯 이 경기 전까지 하주석 복귀 이전까지 한시적으로 뛸 주전 유격수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하던 박한결이 공격력이 수준 미달인 선수라 주전을 무난하게 먹을 것이라 예상되었는데, 교체를 당한 후 그 주에는 경기를 출전하지 못하고 벤치만 달궜다.

연패를 끊은 14일에서 박한결이 공격에서도 수비에서도 못 미더운 모습을 보인 탓인지 연패를 끊은 뒤의 첫 경기였던 16일 경기에서 다시 출장, 2루타를 포함한 안타 2개를 보여주면서 확실히 자신이 공격 포텐이 있다는 건 보여줬다. LG와의 3연전에서 11타수 5안타 2루타 3개로 팀 타선이 맥을 못추는 와중에 혼자서 미친 듯이 날아다니면서 자신의 자리라는 듯 시위를 했다.

6월 19일에는 데뷔 이후 처음으로 선발타선 7번에 이름을 올렸다.

6월 20일에 선발로 나와서 1:0에서 한 점 도망가는 좌중간 가르는 적시타를 쳤다. 다만 7회에 2사 2,3루를 1사 만루로 만드는 수비 실책 후 박한결과 교체되었다.

6월 23일 선발로 나와 2회 실책으로 선두 타자를 내보내며 실점의 원인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이후 교체된 박한결의 6회 결정적인 실책을 원인으로 빅이닝을 내주며 패배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며 유격수 하주석의 빈자리를 크게 만들었다.

6월 23일 경기가 끝난 시점 타구처리율은 76.92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공이 100번 오면 25번은 놓치거나 내야안타를 내준다는 것. 하지만 24일 박한결이 끝내기 패배를 당하게 하는 클러치 에러를 기록하면서 그나마 기회가 가긴 갈 것 같다. 경쟁자들이 공평하게 못하는 꼴이 되자 프런트나 코치진들에게 이를 가는 팬들이 많아졌다. 조한민의 경우 전체적으로 교정중인 선수를 급하게 올려서 쓴거라 어쩔 수 없었지만 박한결의 경우 최소한 수비는 해줘야하는 고참이었기에 박한결보다 잘하는 선수 한명도 못 뽑은 스카우트 진 + 공격은 그렇다 치더라도 최소한 수비는 1군급으로 만들어 놓았어야 할 코치진 + 유격수 주전과 백업이 같은 날에 동시에 부상으로 사라지는데 책임이 있는 트레이닝 팀에게 분노가 쏟아졌다.

이후 10월 15일 김민우가 시즌을 마치며 말소된 자리에 올라와 두산전에 9번 유격수로 선발출장하기도 하면서 주전 하주석과 백업 박정현이 모두 사라진 유격수 자리에서 뛰었다. 수비는 어느 정도 개선됐지만 여전히 장기적으로 유격수를 보기에는 힘든 수준이었으며 7월부터 죽어버린 타격감을 못 살려서 15타수 1안타만을 기록, 시즌 타율 2할 2푼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주전 유격수와 백업 유격수가 한 날 한시에 사라진 상황에서 혜성같이 등장해 2군 유망주 중에 가장 뛰어난 타격능력을 보여주면서 하주석의 타격 능력 부족에 실망한 상태였던 팬들은 그의 타격을 보고 열광했다. 그러나 곧 수비 능력에서 심각한 결점을 보였고, 2군에 내려간 뒤에도 거의 경기당 1실책씩을 하면서 1군레벨이 아니라 2군 레벨의 수비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경기 출장수가 적어서 그렇다고 보기에는 심각한 수준의 돌 글러브.

장점이었던 타격 능력 자체도 수비 때문에 1군에 복귀한 이후로 영향을 받았는지 심각하게 저하되기 시작, 7월 타율은 0.222에 불과했으며 반등하지 못한채 시즌 OPS 0.699로 마무리 했다. 6월에 보여준 임팩트가 너무 강했던 탓에 타격 재능을 높게 평가하는 팬들이 다수 있으며 극소수지만 주전 유격수인 하주석보다도 타격능력이 낫다고 평가하는 팬도 보일 정도로 기대치가 높은 상태이나, 엄밀하게 보면 6월의 성적이 반짝 활약이고 2군에서 한참 다듬어야 할 유망주다. 수비 능력에 약점을 보인 것은 분명하나 그렇다고 타격능력을 살리기 위한 포지션 전향을 논하기에는 타격 재능을 확실하게 보여줬다고 하기엔 1군 샘플은 너무 적은 데다가 그나마 시즌 전체로 보면 별로이며, 2군 성적을 봐도 별로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냥 툴만 보여준 상태.

조한민의 재능을 폄하할 이유는 없지만, 1군에서 바로 육성하기에는 2군 성적도 좋지 못하다. 2군 성적이 좋은 선수가 무조건 1군에서 성공하는건 아니지만, 데뷔를 1군에서 시작한 선수들을 제외하고 2군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선수중에 2군 성적이 좋지 못했던 선수가 1군에서 레귤러급으로 자리잡은 선수는 극히 드물다. 조한민은 먼저 2군에서 자신의 타격 재능이 진짜임을 증명하고, 18시즌 퓨처스 올스타에 선발됐던 이도윤와 비교할만한 성적은 내어야 할 것이다.

시즌 후 상무에 지원했다. 팀 동료 최인호, 유장혁과 함께 서류 전형에는 합격했으나 모두 최종 합격자 명단에는 들지 못했다.


2.2.3. 2021 시즌[편집]


1군 스프링캠프 명단에 들어갔으나 2월 22일 종아리 비복근 손상으로 3주간 이탈하게 되어 신인 정민규와 자리를 맞바꿨다.

시즌을 2군에서 시작했는데, 1군 내야에 정은원, 노시환, 하주석, 박정현 등이 확고한 주전으로 자리잡으면서 타격 능력을 살리기 위해 외야 수비도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장타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어린 선수들이 기회를 받고 있는 한화 이글스의 주전 외야수 경쟁에서 이길 가능성이 있으며, 포수 최재훈이 2번을 치고 있을 정도로 고민이 많은 상위타선에도 조한민의 전진배치를 해결책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퓨처스리그에서 3할 2푼대의 타율과 1.0이 넘는 OPS를 기록하며 좋은 타격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 경기가 없던 5월 25일 장웅정과 함께 1군에 처음으로 등록되었다.

5월 26일 잠실 두산전에서 8번 좌익수로 시즌 처음으로 라인업에 들었다. 첫 번째 타석과 두 번째 타석에서는 플라이 아웃과 삼진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3번째 타석에서 볼넷을 골라내었고, 4번째 타석에서는 우익수 키를 넘기는 프로 데뷔 첫 3루타를 기록과 함께 득점에 성공했다. 생애 첫 좌익수 수비에서도 딱히 불안한 모습을 노출하지는 않았다.

5월 27일 잠실 두산전에서 전날과 같은 8번 타순에 라인업을 올렸지만, 이날 경기에서는 조모상으로 빠진 힐리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1루수로 출장했다. 이날 경기에서도 전날과 똑같이 볼넷 1개와 3루타 1개를 기록했고, 9회초 팀이 2-0으로 달아나도록 하는 시즌 첫 타점을 올렸다.



6월 4일 창원 NC전에서 8번 3루수로 출장했다. 3회초 첫 타석에서 0-2로 지고 있는 가운데 선발 루친스키를 상대로 좌익수 뒤로 넘어가는 1점 홈런을 쳤고, 이는 본인의 프로 데뷔 후 첫 홈런이 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 타석에서는 문경찬을 상대로 2-5로 추격하는 1타점 적시타를 날렸다.



6월 6일 창원 NC전에서 8번 유격수로 출장했다. 첫 번째 타석에서는 3루 내야 땅볼로 아웃되었으나, 두 번째 타석에서는 신민혁의 초구를 받아쳐 좌익수 뒤로 넘어가는 시즌 2호 홈런을 날렸다. 이후 네 번째 타석과 다섯 번째 타석에서는 동점 적시타와 2루타까지 치며 데뷔 첫 한 경기 3안타를 기록했다.



6월 11일 수원 kt전에서 8번 2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2회와 4회 두 타석에서는 모두 삼진을 당했으나, 6회 세 번째 타석에서는 힐리장운호가 출루해 있는 상황에서 안영명을 상대로 시즌 3호이자 3점 홈런을 날렸다. 그러나 다른 타석들에선 출루하지 못했다.



6월 17일 대전 롯데전에서 8번 우익수로 선발 출장했다. 3회와 5회에는 땅볼과 삼진으로 물러났으나, 7회 세 번째 타석에서 김건국의 초구(140km/h 직구)를 받아쳐 1-9에서 2-9까지 쫓아가는 시즌 4호 홈런을 쳐냈다.



6월 22일 대구 삼성전에는 무려 중견수로 선발출전했다. 경기 전에는 정진호김민하를 코너에 두고 조한민이 중견수로 나오는 것에 대해 우려의 시선이 있었지만 예상과는 달리 좋은 수비를 보여주며 우려를 잠재웠다. 이후로도 유격수, 좌익수 등 투수와 포수 제외 전 포지션에 출전하고 있다.

7월 1일 7번 좌익수로 선발 출장해 7회초 무사 1, 3루 상황에서 우익수 방면으로 얕은 뜬공을 쳤는데 3루 주자 힐리가 적극적이고 재치 있는 주루 플레이로 득점을 올리며 희생 플라이가 기록되었다. 그러나 나머지 타석에선 출루하지 못해 3타수 무안타 1타점 1삼진을 기록했다. 타율은 .224까지 내려갔다. 7월 1일까지의 기록 상으론 타율도 출루율도 3할을 넘기진 못했으나 4개의 홈런 덕인지 장타율이 5할이 넘어 .817의 높은 OPS를 기록하고 있다.

7월 4일 LG전에서 8번 우익수로 출장해 몸 맞는 볼과 안타로 멀티 출루를 기록했다.

7월 7일 KIA전에 6번 1루수로 출장해 멀티히트를 기록했고 연장 11회말 0:4에서 추격하는 1타점 적시타를 쳤다.

7월 9일 SSG전 6번 1루수로 선발 출장 했으나 4회 낫아웃 상황인데도 타구를 제대로 보지 않고 그대로 들어가 버리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문책성 교체를 당했다. 덕분에 1루수에 노시환이 들어가고 대체 3루수로는 이도윤이 들어왔다.[2]

7월 10일 SSG전 다시 선발 출장했고, 1타수 1안타 3볼넷에 도루까지 하나 성공함으로 전화위복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줬다. 또한 1회초 1사 2루의 위기에서 추신수의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잡아 더블 플레이를 만드는 호수비까지 보여주었다.

리그 중단 이후 후반기 복귀했으나 컨택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며 타율 2할이 붕괴되었고 2군으로 내려갔다.

10월 27일 LG전에서 사구 부상의 영향으로 미출장한 정은원 대신 2루수로 선발 출장했고, 9회말 1사 1, 2루 상황에서 팀의 영봉패를 막는 1타점 2루타를 쳤다.

10월 28일 8회말 9번 이동훈의 대타로 투입되어 삼진을 당해 타율 2할이 또다시 붕괴되었다. 지명타자의 타석이었던 지라 수비에는 투입되지 않았다.

시즌 종료 후 상무에 지원, 최종 합격했다. 전역일은 2023년 6월 12일이다.


2.2.4. 상무 피닉스 야구단[편집]


2022 시즌 성적은 53경기 22안타 2홈런 22타점 22득점 타율 0.220로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다.

2023 시즌에는 아직 출장 기록이 없다.


2.2.5. 2023 시즌[편집]


전역 다음 날인 6월 13일 육성선수로 전환되었다.

전역 이후 밝히길 연골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이 해에는 1군 출장 기록은 없었다. 시즌 이후 10월 30일 발표된 마무리캠프 명단에 포함되었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준수한 파워와 나쁘지 않은 주력을 가진, 컨택이 많이 부족하지만 타구의 질은 준수한 유망주이다. 아직 1군에서 뛰기엔 많이 부족했던 2020년에도 외야로 보내는 타구가 많은 편이었고, 2021년 올라왔을 때는 더 많은 장타를 생산했다. 덕분에 정은원, 노시환, 하주석, 김태연, 최재훈 등만 밥값을 하던 타선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주는 등 쏠쏠한 활약을 했다. 그러나 문제는 떨어지는 컨택. 2021년 기준 60% 정도의 컨택을 기록하고 있으며, 덕분에 삼진의 개수가 많고 선구안 역시 좋은 편은 아니라 경기당 하나 정도의 삼진을 기록하고 볼넷도 많지 않다. 한가운데 공은 잘 컨택하나 그 외의 코스에서는 컨택에서 심각한 약점을 보인다. 그러나 이 정도의 결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훌륭한 장타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굉장히 고무적이다. 아직 3년차의 선수인 만큼 컨택에서의 문제점을 개선 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히 남아있다.

수비는 2020년 박한결과 함께 그야말로 환장의 유격 수비를 보여주면서 강렬한 인상을 심었지만 후반기에 다시 올라왔을 때 나쁘지 않은 수비력을 보여주었고, 2021년엔 외야와 내야 전 포지션을 커버하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성장하면서 수비력의 평가가 수직상승했다. 원래 이 역할은 박정현의 역할이었는데 박정현이 타격에서 부진하면서 내려간 뒤 박정현보다 공수 양면에서 더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면서 수비의 안정성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4. 연도별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삼진
출루율
장타율
wRC+
2019
한화
1군 기록 없음
2020
25
50
.220
11
4
0
0
2
7
0
0
22
.250
.300
43.5
2021
52
127
.197
25
6
2
5
18
15
3
13
57
.278
.394
77.6
2022
군 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2023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2시즌)
77
177
.203
36
10
2
5
20
22
3
13
79
.270
.367
67.1


5. 여담[편집]


  • 과거 인스타그램의 아이디가 미니미니였다.[3][4] 그러나 지금은 인스타그램 계정을 삭제한 듯하다.



  • 다른 여담으로 현재 응원가에 대한 민심이 되게 안좋다. 현재 거의 모든 팬들이 '응원가를 직접 하나 새로 만들어주고 싶다'라고 할 정도로 안좋은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2023 시즌부터 응원가의 원래 주인 오선진이 돌아오게 됨에 따라 응원가가 없을 예정이다.


6. 관련 문서[편집]


[1] 유격수로 지명되었으나 불안한 내야 수비와 잠재력 있는 타격 능력 때문에 외야수로 자주 출장한다. 투수와 포수 제외 전 포지션 소화가 가능하다.[2]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10연패 도중 연패가 길어지는 것은 참을 수 있으나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왔다고 1루 베이스까지 전력 질주하지 않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수단 전체에게 경고한 적이 있다.[3] 최재훈의 별명인 '후니후니'가 연상된다는 팬들이 많았다.[4] 다만 이 별명은 최재훈이 두산에 있을 때부터 쓰인 별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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