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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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내시
John Nash


파일:Cassidy-The-Triumph-of-John-Nash-Game-Theory-1200.jpg

본명
존 포브스 내시 주니어
John Forbes Nash Jr.
출생
1928년 6월 13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 블루필드
사망
2015년 5월 23일 (향년 86세)
미국 뉴저지 주 먼로 타운쉽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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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직업
수학자, 교수
신체
185cm
학력
블루필드 고등학교 (졸업, 1941~45)
카네기 멜런 대학교 (수학 / B.S. · M.S.) (1948년)
프린스턴 대학교 대학원 (수학 / Ph.D.) (1950년)[1]
수상
존 폰 노이만 이론상 (1978)
노벨 경제학상 (1994)
NAS 회원 (1996)
아벨상 (2015)
배우자
앨리샤 라지
(1957~63년, 이혼; 2001년 재결합)
자녀
2명[2]

1. 개요
2. 업적
2.2. 아벨상 수상과 사망
3. 기타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미국의 수학자이자 경제학자. 게임 이론의 초안을 낸 인물로,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내시균형에서 말하는 내시가 바로 존 내시이다.

밀레니엄 문제 중 하나인 리만 가설을 강연하다가 정신병을 앓게 된 일화가 유명하다. 이를 토대로 만든 전기 영화러셀 크로우가 주연을 맡은 뷰티풀 마인드(A Beautiful Mind, 2001)가 있다.

2015년 5월 23일 아벨상을 받은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2. 업적[편집]


박사과정 1~2년차에 그의 가장 대표적인 이론인 게임 이론의 논문을 작성했다.[3] 워낙 유명한 이론인지라 비전공자들도 게임 이론에서 내시균형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내시균형은 비협조적 게임에서의 개념이고, 협조적 게임에서 협상이 이뤄질 때에 대한 내시협상해[4]라는 개념을 제시한 업적도 있다. 참고로 뷰티풀 마인드에서 러셀 크로우가 그리는, 제 1사분면에서 위로 볼록한 그래프를 보고 게임이론에서의 내시균형을 나타낸 것이라고 말하는 영화평론가나 블로그, 책 등이 꽤나 있는데, 이는 내시협상해와 관련된 그래프이다.

이런저런 이론으로 경제학에 크게 기여를 했지만, 이와는 별개로 리만 가설에 대해 연구했었다고 한다. 수학자 본연의 정수론적 떡밥인 소수의 성질과 관련한 문제였기에, 내시는 이를 지나칠 수가 없었다.


2.1. 정신병원 입원[편집]


그런데 콜롬비아 대학 학회에서 리만 가설 관련 강연을 하던 내시는 말을 더듬고 횡설수설하는 등 정상이 아닌 모습을 보였고 결국 강연이 취소되는 일이 일어났다. 사실 원래부터 내시의 정신상태는 상당히 심각해지고 있었고, 끝내 조현병 판정을 받고 매사추세츠 주맥린 정신병원에서 입원 생활을 하기에 이른다.

그의 초기 증세는 다분히 망상적이었으며, 붉은 넥타이를 한 사람들이 자신을 감시하는 소련의 공산주의 스파이라는 망상에 시달렸다. 그는 이후 워싱턴 D.C.에 이러한 주장을 담은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후 내시는 정신병원에서 9년 간을 보내며 약물 치료와 인슐린 요법 등을 받았다. 병원을 나온 이후 간혹 처방된 약을 먹었으나, 내시는 약의 효능이 과장되었으며 부작용에 대해 과소평가되었다고 주장했다.[5]

조현병 발병으로 인해 내시는 학계에서 은퇴했었으나, 이후에 병에서 회복하여 활동을 재개하여 추가적인 업적까지 쌓는 천재적 능력을 보였다. 사실 퇴원 이후에도 내시는 환청을 포함한 조현병 증상을 간혹 겪었지만, 망상증이 자신의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자신이 특별하다는 자의식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기에 점차 이러한 망상적 생각(비이성적인 생각, 정치적 동기를 가진 생각)들을 이성적인 사고와 분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2.2. 아벨상 수상과 사망[편집]


2015년 5월 19일, 노르웨이에서 하랄 5세에게 아벨상을 수여받게 되었다. 연구업적은 편미분방정식을 통한 다양체 연구에 대한 업적이 인정받아 수상하게 되었다. 수상 인터뷰에서 노벨상과 아벨상 중 어느 것이 더 가치 있게 느껴지냐는 질문에 2분의 13분의 1보다 더 낫지 않겠냐는 재치있는 답변을 내놓았다고 한다.[6]

그런데, 5월 23일 미국으로 돌아와 공항에서 귀가를 위해 부인과 함께 택시를 탔는데 교통사고로 부인과 함께 사망했다. 사고 경위는 택시기사가 앞에 있던 차를 추월하기 위해 차선을 넘던 중(가변도로의 중앙차로였다) 그만 가드레일에 충돌한 것이라고 현지 경찰이 밝혔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있던 내시 내외는 그만 차 밖으로 튕겨져 나가 안타깝게도 사망했다. 기사


3. 기타[편집]


파일:john_nash_mathematical_genius.png
  • 전설적인 추천서로도 매우 유명하다. 카네기 멜런 대학교[7]에서 (만) 19세의 나이에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지도교수인 리처드 더핀(Richard Duffin)이 추천서를 써주었는데, 사실상 단 한줄의 추천 문구를 기술하였다. "이 학생은 수학 천재입니다(He is a mathematical genius)". 이 추천서로 하버드와 프린스턴 등에 합격하고 프린스턴의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공개한 추천서
  • 네이버 인명사전에서는 존 내쉬로 표기되어 있다. 존 내쉬의 존내 쉬운 수학
  • 명예를 얻기를 원했던 존 내시는 충분한 업적과 능력이 있었지만, 그 과정은 매우 험난했다. 30대 초반에 이미 필즈상[8] 수상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이 사람은 나중에도 충분히 받을 수 있다며 다른 사람을 선정하였다. 이후로 내시는 리만 가설에 도전하게 되는데, 이로 인한 조현병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또 다시 필즈상에 탈락하고, 결국 나이 문제로 필즈상은 받지 못했다. 수십년간 정신병원 생활을 했지만, 이후 조현병 증세도 완화되고[9] 노벨상도 받고, 아벨상을 수상하는 등 축복 속에 말년을 보내다가 그만 아벨상 수상 직후에 택시로 귀가하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하여 극적이면서 파란만장했던 한 천재 수학자의 삶을 마감했다.
  • 존 내시의 아들도 수학적 재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는데, 불행히도 아들 역시 조현병에 걸려 정신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10]
  • 존 내시가 연구하던 리만 가설은 증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워서 '리만 가설을 증명하는데 성공하는 순간 미쳐버리거나 죽어버리기 때문에 해답이 아직까지 알려져 있지 않는 것'이란 오래된 농담이 존재한다. 그런데 존 내시 역시 이렇게 조현병에 걸려서 호사가들 사이에서 말이 좀 있는 편이다. 게다가, 마이클 아티야 같은 천재 수학자도 리만 가설을 연구하다가, 말년에 엉터리 증명을 발표하고 사망하면서, 리만가설의 저주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 젊었을 적에 다룬 게임 이론 외에는 해석학, 미분기하학, 편미분방정식론 등 경제학과는 거리가 있는 분야에 집중했지만, 그와 별개로 경제사상적으로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그것과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인플레이션, 트리핀 딜레마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이상화폐(Ideal Money)라는 관념을 제시하였으며, 그래서인지 비트코인이 경제계 및 금융권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기 이전에 사망하였음에도 생전에 비트코인에 대해 제법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학파의 연구방법론은 굉장히 현대수학과 유사한 연역적 사고방식이니만큼 수학자인 내시의 입장에서도 오스트리아 학파와 유사한 방식으로 사고하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이다.

4. 관련 문서[편집]



[1] 박사 학위 논문 : Non-Cooperative Games = 비협력적인 게임들(1950).[2] 둘다 아들이며 어머니는 각자 다르다.[3] 이 논문으로 내시는 박사과정을 2년만에 졸업했다. 물론 박사과정 입학 당시 이미 석사학위를 가지고 있었고, 당시에는 박사과정이 그렇게까지 길지 않긴 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빠르다. 참고로 박사 과정 지도교수는 쿤-터커 정리로 알려진 알버트 터커.[4] 좀 더 첨언을 하자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분배방식에 대한 특성들 중 파레토효율성, 대칭성, 무관한 선택대안으로부터의 독립(IIA) 그리고 선형변형에 대한 불변성이라는 4가지 공리를 동시에 만족하는 협상해가 유일하게 내시협상해로 결정됨을 증명하였다.[5] 전기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는 내시의 이러한 주장이 정신질환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해당 내용을 다소 각색했다. 1세대 항정신병제들이 부작용이 심각했던 건 사실이지만 요즘에는 부작용이 많이 줄어든 2세대 치료제들도 많이 나왔으며, 1세대 치료제들도 부작용이 견딜만한 수준으로 개선되었다고 한다. 존 내시도 말년에 나온 2세대 신약 리스페리돈은 잘 맞아 증상이 상당히 호전되었다고 한다.[6] 아벨상은 최대 2인까지, 노벨상은 최대 3인까지 공동수상이 가능하다. [7] 당시 명칭은 카네기 공과대학교(Carnegie Institute of Technology), 줄여서 카네기텍(Carnegie Tech).[8] 40세 이하만 수상 가능.[9] 말년에 가서 증상이 완화된 이유는 당시 신약이던 '리스페리돈'이 매우 잘 맞았기 때문이란 말이 있다. 그렇다면 그 전까지 약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이유도 자신에게 잘 맞는 약을 찾지 못해서였을 수 있다.[10] 실제로 암이 그렇듯이 유전적인 요소도 조현병의 유발 원인 중 하나다. 즉 내시(Nash)가문에게 있어 조현병은 가족력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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