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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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LIFE_LOGO.png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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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미국의 시사잡지인 라이프에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인 100인을 선정했다. 순위는 없으며, 만장일치로 선정된 인물은 헨리 포드라이트 형제뿐이다.
제인 애덤스
<사회 개혁가>
무하마드 알리
<권투선수, 인권 운동가>
엘리자베스 아덴
<사업가>
룬 알레지
<방송 경영자>
루이 암스트롱
<재즈 뮤지션>
조지 발란신
<안무가>
존 바딘
<물리학자>
어빙 벌린
<작곡가>
에드워드 버네이스
<홍보 책임자>
레너드 번스타인
<작곡가, 지휘자>
말론 브란도
<배우>
베르너 폰 브라운
<로켓 공학자>
데일 카네기
<작가>
월레스 캐러더스
<발명가, 화학자>
윌리스 하빌랜드 캐리어
<에어컨 발명가>
레이첼 카슨
<작가, 해양생물학자>
빙 크로스비
<가수, 배우>
클래런스 대로
<변호사>
유진 데브스
<노동운동가, 사회주의자>
로버트 더그래프
<포켓북 창업자>
존 듀이
<철학자>
월트 디즈니
<기업가, 애니메이션 제작자>
W. E. B. 듀보이스
<NAACP 설립자>
앨런 덜레스
<CIA 국장>
밥 딜런
<포크 뮤지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물리학자>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
<시인>
윌리엄 포크너
<소설가>
에이브러햄 플렉스너
<교육자>
헨리 포드
<기업가>
존 포드
<영화감독>
베티 프리댄
<페미니스트 여성 작가>
밀턴 프리드먼
<경제학자>
조지 갤럽
<여론 분석가>
아마데오 지아니니
<은행가>
빌리 그레이엄
<목사>
마사 그레이엄
<댄서, 안무가>
데이비드 와크 그리피스
<영화감독>
조이스 홀
<사업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소설가>
올리버 홈스 주니어
<법학자>
존 에드거 후버
<FBI 초대 국장>
로버트 허친스
<교육자>
헬렌 켈러
<인권 운동가>
잭 케루악
<시인, 작가>
빌리 진 킹
<인권 운동가, 테니스 선수>
마틴 루터 킹
<목사, 인권 운동가>
알프레드 킨제이
<성과학자, 생물학자>
빌렘 콜프
<생명과학자>
레이 크록
<맥도날드 창업자>
에드윈 랜드
<과학자, 발명가>
윌리엄 레빗
<부동산 개발업자>
존 L. 루이스
<노동당 지도자>
찰스 린드버그
<비행기 조종사>
레이먼드 로이
<산업 디자이너>
헨리 루스
<편집자>
더글러스 맥아더
<군인, 정치인>
조지 C. 마셜
<군인, 정치인>
루이스 B. 메이어
<영화 제작자>
클레어 매카델
<패션 디자이너>
조지프 매카시
<변호사, 정치인>
프랭크 맥너마라
<신용카드 발명가>
마거릿 미드
<인류학자>
칼 메닝거
<정신과 의사>
찰스 E. 메릴
<주식 중개인>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
<건축가>
로버트 모세
<공무원>
윌리엄 멀홀랜드
<토목 기사>
에드워드 R. 머로
<종군기자>
랠프 네이더
<소비자 보호가, 환경보호가>
라인홀드 니부어
<윤리학자>
존 폰 노이만
<물리학자, 수학자>
유진 오닐
<극작가, 작가>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물리학자>
윌리엄 S. 페일리
<방송 경영자>
잭슨 폴록
<화가>
에밀리 포스트
<소설가, 작가>
엘비스 프레슬리
<가수>
재키 로빈슨
<야구선수>
존 데이비슨 록펠러 주니어
<기업가>
리처드 로저스
(로저스 앤 해머스타인)
<뮤지컬 작곡가, 작사가>
윌 로저스
<배우, 작가>
엘리너 루스벨트
<FDR의 아내, 사회운동가>
베이브 루스
<야구선수>
조너스 소크
<소아마비 백신 개발자>
마거릿 생어
<사회운동가>
앨프리드 P. 슬론
<사업가, 산업가>
벤자민 스팍
<소아과 의사>
앨프리드 스티글리츠
<사진작가>
로이 스트라이커
<공무원, 사진작가>
빌 윌슨
<AA 창립자>
앤디 워홀
<화가>
얼 워런
<대법원장>
제임스 듀이 왓슨
<생물학자, 유전학자>
토머스 왓슨 주니어
<사업가, 정치인>
테네시 윌리엄스
<극작가>
월터 윈첼
<신문기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건축가>
라이트 형제
<최초의 비행기 제작자>
말콤 엑스
<인권 운동가>
출처



존 듀이
John Dewey


파일:John_Dewey_cph.3a51565.jpg

출생
1859년 10월 20일
미국 버몬트주 벌링턴
사망
1952년 6월 1일 (향년 92세)
미국 뉴욕주 뉴욕시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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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직업
철학자, 교육학자
모교
버몬트 대학교 (학사) (1879년)
존스 홉킨스 대학교 (철학 / 박사) (1884년)
경력
미시간 대학교 교수
시카고 대학교 교수 (실험학교)
콜럼비아 대학교 교수
자녀
6명

1. 개요
2. 생애
3. 사상
3.1. 도구주의
3.2. 민주주의
3.3. 경험중심적 교육 이론
4. 사상적 영향
5. 어록
6. 여담



1. 개요[편집]


미국철학자이자 교육학자. 근대 교육학의 아버지. 근대 교육이론계의 중심으로 평가받는다. 학습자의 상황과 사회적 맥락을 생각하지 않고 정제된 지식을 단순히 주입시키는 것을 죽은 교육으로 비판하였으며, 교육은 실제 생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개인의 삶과 사회 생활에 실용적인 측면에서 실제로 도움이 되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이를 통해 듀이는, 종래의 교사 중심적이고 교과 중심적인 교육이론을, 교사와 학습자 간의 상호소통 중심의 교육이론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는 93세까지 살면서 엄청난 양의 저술과 사회 활동을 지속하였고, 미국의 진보주의 교육운동을 이론적으로 주도하며 미국 사회와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2. 생애[편집]


1859년 미국 버몬트 주에서 태어난 듀이는, 버몬트 대학을 졸업하고 존스홉킨스 대학교의 철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그리스철학, 독일철학, 특히 그 중에서도 헤겔 철학을 공부하였고, 퍼스, 제임스의 사상을 계승하여 미국의 독특한 사상인 프래그머티즘을 발전시켰다. 모리스의 도움으로 미시간 대학교에 교수진으로 임용되면서 많은 논문과 저서들을 남겼으며, 이후 1894년 시카고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자신의 지식에 대한 경험주의적 신념과 학교 제도에 대한 실험주의적 주장을 펼치게 된다. 이후 듀이는 철학 교수이자 철학, 심리학, 교육학 연구소장으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게 되는데 또한 대학 실험학교를 설립한 것이 유명하다. 흔히 '듀이 스쿨'로 불렸던 실험학교는 대학으로부터의 원조도 약간 있었으나 그보다는 후원자와 친구들의 지원 하에 7년 반 동안 계속되었다. 이 학교의 지도를 통해서 얻은 경험은 그 후 듀이의 여러 저작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93세까지 살면서 40여권의 저서와 700여 편의 논문을 저술하면서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현대철학과 교육학 특히 교육철학 분야에서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인물 중의 하나로 꼽힌다.

주요 저서로는 『학교와 사회』, 『민주주의와 교육』, 『경험으로서의 예술』, 『경험과 교육』, 『논리학 탐구의 이론』등이 있다.


3. 사상[편집]


듀이의 사상은 과학적 탐구의 도구주의적 관점을 사회, 도덕, 정치 영역에 적용시켰다는 점에서 프래그머티즘의 철학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환경에 반응하며 이러한 인간의 반응은 다시 환경을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인간의 지식, 이론, 학문 같은 것들은 모두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도구로서 발달한 것이라고 듀이는 주장한다.


3.1. 도구주의[편집]


듀이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이 외부 자연 환경을 만나면서 이루는 모든 상호교섭 작용을 '경험'으로 본다. 모든 경험은 항상 새로운 경험이고, 새로운 경험은 항상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고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가 바로 인간의 '사고와 지식'인 것이다. 즉, '경험'에 따른 '문제'의 인식은, 문제의 당사자로 하여금 '사고와 지식'을 통해 그것에 대한 문제해결 방안을 찾을 것을 촉구한다. 그래서 '경험'하는 인간은 그 문제를 어떤 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를 매번 모색하는데, 그것이 듀이가 말하는 '탐구'이다.

이러한 '탐구'는 일정한 단계가 있다. 1 문제해결이 가능한 방향으로 마음을 도약시키는 '제안(suggestions)' 단계. 2 문제를 확정짓는 '지성화(intellectualization)' 단계. 3 관찰에 의해 제기된 아이디어 같이 해결 가능한 해법을 제안하는 가설(hypothesis) 단계. 4 아이디어를 결합하여 사고를 구성하고 체계화하는 추론(reasoning) 단계. 5 발견된 가설, 추론을 실제적인 경험을 통해 검증(examine)하는 단계. 이렇게 5단계를 거쳐 탐구 과정은 시작되고,[1] 이로서 '불확정 상황'에서 '확정 상황'으로 나아간다. 이는 물론 오류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하지만 비슷한 경험과 탐구를 끊임없이 반복함으로써 우리는 축적된 지식을 얻을 수 있고 결국 그 속에서 신뢰할 만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탐구를 통해 문제에 대한 답을 얻었을 때, 우리는 '문제 해결'이 실제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는다. 하지만 이 새로운 지식은 어떤 절대적인 진리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매순간 변하고 환경도 매순간 변하므로, 우리가 해결해야할 문제도 그때그때마다 다르고 문제에 대한 상황도 매번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듀이는 진리라는 말 대신 보증된 주장가능성(warranted assertibility)을 쓰자고 제안한다. 우리의 지식은 나중에 틀린 것으로 될 수도 있으니, 지금 탐구를 통해 밝혀진 지식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일시적으로 '보증'된 주장에 불과하며, 우리는 이를 끊임없는 행동과 실천을 통해 늘 검토하고 수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론(지식)과 실천(경험)의 영역을 구분하는 과거의 인식론적 방법은 아무 의미없는 일이 된다. 애초에 실천(경험)과 분리된 이론적 탐구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우리는 실천(경험)에 근거하여 이론을 세울 수밖에 없고, 그런 이론은 오직 또다른 실천(경험)을 통해서만 검증할 수 있을 뿐이다.

듀이의 이러한 도구주의적 관점은 퍼스제임스의 방법론과 비슷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제임스는 탐구가 심리적 긴장에서 시작해서 심리적으로 만족할 만한 새로운 '신념'을 발견함으로써 끝나게 된다고 보았지만, 듀이는 개인의 심리적 상황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상황'까지도 바꾸는 데서 탐구가 끝난다고 보았다. 퍼스는 탐구가 개인의 '의심'에서 출발한다고 보았지만, 듀이는 개인이나 사회가 '문제 상황'에 직면할 때 탐구가 시작된다고 보았다. 또한 퍼스는 자신의 의심을 단지 과학적 탐구과정에서의 개념에 국한해서 말했지만, 듀이는 문제 상황에서 해결에 이르는 탐구과정이 굳이 과학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탐구 과정은 인간이 생각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든 영역에서 일어날 수 있다. 즉, 과학적 문제 해결 방식은 사회적, 도덕적, 정치적 영역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3.2. 민주주의[편집]


이처럼 듀이는 사회 문제의 해결에도 과학적 문제 해결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이 협동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그러한 점에서 듀이는 민주주의를 옹호한다. 그 사회 문제를 풀기위한 우리의 노력은, 각각의 개인이 제안한 의견들을 놓고 함께 토론을 벌려서 선별된 의견을 실천으로 검증함으로써 이루어지게 된다는 점에서 그것은 민주주의 방식으로만 나타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 해결은 '실질적인 대안'으로 우리의 삶에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시켜 나갈 수 있다고 듀이는 주장한다.

민주주의의 다수결이 '다수에 의한 지배'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듀이는, 이러한 주장이 인간과 사회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잘못된 결론에 도달한 것이라고 일축한다. 민주주의를 다수의 지배라고 보는 사람은 사회가 그저 독립된 각 개인이 모여 이루어진 것으로 잘못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초부터 사회적이지 않은 인간은 없다. 사회와 개인은 서로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처음부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하나의 사회적 유기체다. 이런 관점에서 사회를 보면, 투표를 한다는 것은 비사회적인 개인들의 숫자놀음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그 사회의 어떤 경향을 표현하는 것이 된다. 즉 민주주의적 투표 과정이란 다수파와 소수파가 서로 밀고 당기는 싸움을 하면서 전체 국민의 평균적인 의견을 반영할 때까지 '조정'을 거치는 유기체적 상호작용이다. 이 과정에서 소수는 다수가 주장하는 것 만큼의 큰 메세지를 사회에 전할 수 있다. 그리고 다수는 그 사회의 대표라는 지배 자격을 갖추기 위해 소수의 의견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보면 개인의 투표는 그저 독립된 개인의 외침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사회라는 전체적인 유기체의 의견을 반영하는 하나의 상호작용 행위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듀이는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엘리트주의를 비판한다. 어떤 이상적인 엘리트주의가 있어서 그 사회를 최대한으로 발전시킨다고 가정할지라도, 그래서 아무리 풍족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린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에 의해서 강제된 부분이 대부분인 삶이라면 우리는 행복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 속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개인의 문제이지, 엘리트가 다른 사람에게 삶의 방식을 강요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의 개성과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제도인 민주주의가 가장 바람직하다. 듀이는 또한 사회가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으려면 경제적 민주화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듀이는 단지 정치적 갈등만을 해소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입장을 '사회민주주의'라고 불렀다.


3.3. 경험중심적 교육 이론[편집]


듀이의 교육 방법은 한마디로 "행함으로써 배운다" (learning by doing)라는 말에 잘 나타난다. 듀이의 진보적인 교육이론에서 가장 중심을 이루는 개념이 바로 ‘경험’이다. 여기서 경험은 능동적인 요소와 수동적인 요소의 특수한 결합이다. 능동적 요소로서의 ‘해 보는 것(trying)’과 수동적 요소로서의 ‘겪는 것(undergoing)’ 사이에 ‘사고(thinking)’가 개입함으로써 어떤 연속적(계속적)이고 상호적인 관계를 만들어 낸다. 예를 들면, 주입식 교육은 수동적인 요소이고 행동기반 교육은 능동적인 요소이다. 교육은 수동적 지식과 능동적 실천, 둘 사이에서 서로 상호작용하는 반성적 사고(thinking)를 통해서만 종합적인 경험을 구성하여 배움을 형성한다.[2]

듀이는 경험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두 원리로 상호작용계속성을 말한다.[3] '계속성의 원리'는 원래 생물학적 의미에서 '유기체가 그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재구성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듀이가 교육에서 목표로 삼았던 '성장(growth)'도, 자신을 계속해서 재창조(재구성)해 나간다는 점에서 '계속성'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듀이는 이렇게 말한다. "교육은 경험의 의미를 더해주고, 경험의 방향을 결정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경험의 재구성[4]이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을 살펴보면, 우리는 평생동안 학습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재구성해 나가며 성장하는 존재이다. 듀이는 특히 재구성에서의 '습관'의 역할을 강조한다. 습관은 유기체가 조직을 구성하고 계속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며,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써 의지와 행위를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한편, '상호작용의 원리'는 모든 존재가 외부와 상호작용하는 사건들의 결합체라는 것을 말한다. 즉 경험이란 유기체가 주변 환경과의 통합을 이룰 때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하면서 평형을 유지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 때 주변 환경에 맞추어 유기체는 스스로를 바꾸는 '적응'을 함과 동시에, 유기체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바꾸는 '조절'을 한다. 따라서 유기체가 생존한다는 것은 환경과의 역동적이고 교호적이며 항상적인 '조정(adjustment)'을 이루는 것이다. 듀이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주요한 '상호 작용'이 의사소통(communication)이라 생각한다. 의사소통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조정을 위해 의미를 소통하는 수단이라는 도구적 측면 이외에도,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경험의 질을 높여주며 사회의 의미 구성에 함께 참여했다는 질적 성취의 뿌듯함도 느낄 수 있게 하는 목적적 측면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 다만 경험은 결국 자기 목표에 유용한 방식으로 자극을 선별하는 편향적인 속성을 지닐 수밖에 없으며, 수많은 의사소통 중에서도 학습자에게 맞는 의사소통을 선별하고 집중시키는 교육을 찾는 것도 듀이에게 있어선 중요한 과제가 된다.[5]

재구성을 통해 '나(개인)'를 변화(성장)시키는 방식이 '교육'이고, 의사소통을 통해 '세상(사회 또는 환경)'을 변화(상호작용)시키는 방식이 '민주주의'다. '나'를 성장시키면 '세상'도 바뀌고, '세상'이 바뀌면 '나' 역시 거기에 적응한다. 이 둘은 구분되지 않으며 서로 간에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즉, 재구성으로 대표되는 ‘계속성의 원리’와 의사소통으로 대표되는 ‘상호작용의 원리’는 사실상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에 있으므로, 이를 합쳐서 상호작용적 구성주의라고 말한다. 따라서 어떤 경험이 교육적으로 중요하다거나 교육적인 가치를 가지는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경험의 두 가지 원리의 측면을 종합하여 고려해 보아야 한다. 이점에 착안한 것이 바로 교과의 진보적 조직(progressive organization of subject of matter)이며, 그것은 현재 학습자의 상태와 교과 사이에 숨어있는 다양한 의사소통(상호작용)에 주목하여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스스로를 재구성할 수 있는 습관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의사소통(또는 상호작용)을 찾아가는 것, 즉 그것은 정답만을 가르쳐주는 주입식의 ‘죽은 수업’이 아니라 학습자들이 몰입하여 문제 해결을 탐색하고 반성적 사고를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지식과 실천(경험) 사이의 끊임없는 질문-피드백 식 수업이 된다.


4. 사상적 영향[편집]


존 듀이의 사상은 현대 교육학 이론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쳐왔으며, 오늘날 실시되는 교육의 산파 역할을 했다고 평가 받을 정도로 교육학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듀이의 사상은 현대의 놀이중심, 흥미중심적인 아동 교육 체계에 기틀을 마련했고 그의 실험학교는 과학적 정신으로 교육이론을 검증하고자 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실험학교를 통해 듀이는 당시의 생활과 분리된 교육을 반대하고 아동의 본질인 자발성과 활동성을 중시하는 교육, 즉 활동과 경험, 생활중심의 교육, 탐구 중심의 교육을 체계화하고 실천하였다. 이는 교재를 중심으로 행해졌던 학교교육을 재검토하게 하고 이른바 신교육 운동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런 진보주의 교육은 지식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비판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적극적 학습보다는 수동적 학습, 학생 중심보다는 교육과정 중심, 비판적 성찰보다는 전통의 보존, 흥미보다는 훈육을 중시하였다. 흔히 전통주의자들로 분류되는 보수적 교육은 흔히 앨런 블룸, E.D. 허시 등에 의해 옹호되었다. 이들은 미국 정신의 쇠퇴와 함께 오늘의 교육적 난관을 초래한 원천이 진보주의 교육에 있다고 보고, 그 책임을 모두 듀이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이는 듀이의 진보주의가 내용없는 방법주의라고 곡해했기 때문에 생긴 오해이다. 듀이는 과도한 주입식 전통주의나 지식주의를 비판한 것이지 전통이나 교과 지식 그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듀이는 분명 학습의 수동성과 능동성, 경험의 당함과 해봄, 아는 것과 하는 것, 이론과 실천, 흥미와 정신, 감각과 이성, 경험과 지식, 방법과 내용, 개인과 세계, 자아와 사회성의 변증법적 통합을 역설하였다. 다만 당시 교육이 너무 지식위주의 수업만을 강요했기 때문에, 지식과 활동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선 활동에 중점을 둔 교육을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5. 어록[편집]


우리는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않습니다. 우리는 경험을 반성하는 것으로부터 배웁니다.


교육은 삶을 위한 준비가 아닙니다. 교육은 삶 그 자체입니다.


실패는 교육적입니다. 진정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성공뿐만 아니라 실패에서도 많은 것을 배웁니다.


학생들에게 '배울 것'이 아니라 '할 것'을 주십시오. '할 것'은 생각을 요구하는 그런 성질이 있습니다. 거기서 배움은 자연스레 생깁니다.


우리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만 생각합니다.


어제 가르친 것처럼 오늘의 학생들을 가르친다면, 그것은 그들의 내일을 빼앗는 일입니다.


예술은 현존하는 가장 효과적인 의사소통 방식입니다.


교육은 사회적 과정입니다. 교육은 성장입니다. 교육은 삶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삶 그 자체입니다.


세상의 모든 차이는 '할 말이 있는 것'과 '말을 해야 되는 것' 사이에 있습니다.[6]



6. 여담[편집]


  • 근대 교육학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교육의 역사를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이론 자체가 크게 난해한 건 아니지만 교육학에서 반드시 언급되는 학자 중 하나다 보니 임용고시나 공무원 시험 등으로 교육학을 공부했던 사람이라면 존 듀이라는 이름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특히나 현 교육의 트렌드와도 같은 구성주의의 거장이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

  • 중국 현대사와 인연이 있는데 1919년 중국을 방문했을 때 군벌 옌시산이 그를 산서성에 특별초빙하여 강연해줄 것을 요청한 바가 있으며 그의 제자 중 한사람으로 중국 철학계의 거장인 후스가 있다. 현대 중국 철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서양철학자 중의 한명이다.

  • 또한 러시아의 혁명가 레프 트로츠키와도 연결점이 있다. 소련에서 추방된 트로츠키는 대숙청 당시 열린 궐석재판에서 국가전복 기도혐의와 나치 독일의 스파이 혐의 등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트로츠키 측은 존 듀이를 위원장으로 한 위원회를 위촉해 독립적인 조사를 요청했고, 이 위원회는 조사 끝에 트로츠키에 관한 혐의는 전혀 근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던 바가 있다. 그러나 이 위원회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민간위원회일 뿐이었다는 한계가 있다.[7][8]
[1] 단 여기에 고정된 순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음 단계를 놓칠 수도 있고, 여러 단계를 하나로 압축할 수도 있다. 이 단계들은 또한 순환적이다. ㅡ 『존 듀이와 교육』 p.149 [2] 다만 여기서 사고(thinking)는 경험에 기반한 것이다. 즉 사고(thinking)는 끊임없는 경험에 의해서 촉발되므로 사실상 듀이에게 있어서 사고와 경험, 둘 사이에 엄격한 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3] 듀이에게서 모든 경험이 교육적인 것은 아니다. 어떤 경험은 이후의 경험과 서로 관련을 맺어 계속 확장되고 통합되면서 개인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그러한 특성을 갖지만, 어떤 경험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후 경험의 성장을 억제하거나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듀이는 전자를 ‘교육적 경험’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비교육적 경험’이라 부른다.[4] 사실, 재구성(reconstruction)이라는 용어보다 재창조(re-creation)나 갱신(renewal)이라는 용어가 많은 측면에서 듀이의 철학을 훨씬 잘 나타내 준다. ㅡ 『존 듀이와 교육』 p.126 [5] 교육적 경험의 측면에서 이를 적용해보면, 교과 수업이나 교실, 학교 환경 등과 같은 객관적인 요소와 학생의 흥미나 욕구 등의 내적인 요소 중 어느 한 쪽만 강조하는 것이 아닌 양자 모두에게 동일한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듀이는 전통적인 교육이 학생들의 내적인 요소에 대한 고려를 거의 하지 않음으로 이 원리를 위반했다고 보며, 또한 진보적인 교육이 전통적인 교육이 소홀히 했던 요소만을 강조하여 이 원리를 위반하려는 경향, 소위 '아동의 흥미와 욕구에 교육이 종속되어야 한다'는 식의 경향으로 빠지는 것을 경계한다.[6] '할 말이 있는 것'은 자율적 태도, '말을 해야 되는 것'은 타율적 태도.[7] 이때 존 듀이는 트로츠키와 대면하면서 질의를 했는데, 트로츠키의 사상에는 동의하진 못했지만 꽤나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듀이와 트로츠키 간에 오갔던 논쟁은 책으로도 나왔으며, '그들의 윤리, 우리의 윤리(원제: Their Morals and Ours: The class foundations of moral practice)'라는 제목으로 한국에도 출간되었다.[8] 참조: 에듀인뉴스 - <왜, 지금 존 듀이를 읽어야 하나> 자유주의자 듀이, 공산주의자 트로츠키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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