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몰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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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몰츠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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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
1995





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Smoltz_0.png
존 스몰츠
헌액 연도
2015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82.9% (1회)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92년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MVP
스티브 어베리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존 스몰츠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커트 실링
(필라델피아 필리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96년 메이저리그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
그렉 매덕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존 스몰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페드로 마르티네즈
(몬트리올 엑스포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97년 메이저리그 내셔널 리그 투수 부문 실버 슬러거
톰 글래빈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존 스몰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톰 글래빈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200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롤레이즈 구원 투수 상
아만도 베니티즈
(뉴욕 메츠)

존 스몰츠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에릭 가니에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파일:MLB 로고.svg 2005년 메이저 리그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

에드가 마르티네즈
(시애틀 매리너스)

존 스몰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카를로스 델가도
(뉴욕 메츠)

보유 기록
챔피언십 시리즈 통산 최다 탈삼진
89K[1]
내셔널 리그 단일 시즌 최다 세이브
55세이브[2]
(2002)
통산 200승-100세이브




파일:CC6C4C36-6547-4398-996A-BB545ED023F9.jpg

파일:폭스 스포츠 로고.png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No. 29
존 앤드류 스몰츠
John Andrew Smoltz

생년월일
1967년 5월 15일 (56세)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출신지
미시간 주 워런
신체
190cm / 95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5년 드래프트 22라운드 전체 574번 (DET)
소속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988~2008)
보스턴 레드삭스 (2009)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009)
종교
개신교

1. 개요
2. 플레이 스타일
3. 선수 생활
3.1. 디트로이트의 지명과 트레이드
3.3.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마무리, 그리고 다시 선발
3.4. 은퇴와 명예의 전당 입성
5. 이모저모
6.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편집]


미국의 전 야구 선수로 포지션은 투수.

1990년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으로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과 함께 언급된다.

3,000탈삼진을 기록한 19명의 선수 중 한 명이자, 유일하게 200승과 150세이브를 동시에 달성하면서 선발 투수와 마무리 투수 모두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 특히 포스트시즌에서 매우 강한 면모를 보였다. 국내에서 불렸던 별명은 'STEELHEART'(강철 심장)

통산 성적은 22시즌 동안 213승 155패 154세이브,[1] ERA 3.33, 3473이닝, 3084탈삼진, 1010볼넷, K/9 7.99, BB/9 2.62, K/BB 3.05, HR/9 0.75, 53완투, 16완봉을 기록했다.


2. 플레이 스타일[편집]





파일:external/pds26.egloos.com/f0139781_55a9f031d7dfc.gif

89mph(143.2km/h) 슬라이더


82mph(131.9km/h) 커브[2]

압도적인 구위로 타자들을 찍어누르는 우완 정통파 투수로 주무기는 최고 98마일까지 기록하는 패스트볼과 최고 90마일까지 나오는 슬라이더와 80마일 후반대의 스플리터였다. 각각의 구종 구사 비율은 포심 50 : 슬라이더 35 : 스플리터 10 : 나머지 5 정도. 전성기 시절 스몰츠는 이 구종들을 앞세워서 리그를 평정했고, 이 3개의 구종들을 흔히 스몰츠 3종세트 라고 한다. 3인방 중 탈삼진 능력이 제일 좋았고 가장 오래동안 애틀랜타에서 뛴 덕분에 필 니크로를 제치고 브레이브스 프랜차이즈의 최다 탈삼진 기록을 세웠으며 3000K까지도 돌파하였다. 부상을 당했을 때는 사이드암으로 던지기도 하고, 너클볼도 쓰기도 했는데, 요 레퍼토리는 뒤에 부상이 회복된 후에도 종종 써먹으면서 재미를 보기도 했다.

투구폼은 인버티드-W로, 페드로 마르티네즈와 함께 대표적인 인버티드-W 투구폼 투수로 언급된다. 현대야구에서 대부분의 투수들이 구속 증가를 위해 해당 투구폼을 차용하는 것으로 보았을 때 스몰츠는 현대야구의 에이스 투수들의 모태격 정도 되는 존재라고 봐도 무방하겠다.[3]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사이 영 상 3인방 가운데서는 가장 구속이 빨랐지만 막상 3인자의 이미지가 제일 강했다. 실제로 사이 영 상 수상에서도 셋 중에서 가장 밀린다. 부상 때문에 마무리를 본 시절도 있고 해서 다승도 100승까지는 나름대로 빨리 도달했음에도 200승 도달에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신 마무리로서도 꾸준히 맹활약하며 150세이브 이상을 기록하였다. 20승 시즌과 50세이브 시즌을 모두 달성한 역대 두번째 선수[4]다. 동시에 3,000탈삼진을 기록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구위 하나는 당대에도 손꼽히는 그야말로 파워피처였다. 3인방 중 그렉 매덕스톰 글래빈이 상대적으로 임팩트 있는 파워피칭보다는 기교파에 가까운 스타일[5]이었음을 것을 감안할 때, 3인방 중에서는 오늘날 일컬어지는 정통파 우완 에이스의 스타일에 가장 가까웠다.[6]

무엇보다 그를 상징하는 것은 강심장, 포스트시즌의 사나이다. 포스트 시즌 통산 209이닝 15승[7] 4패, 평균자책점 2.67, 탈삼진 199개[8]로 매우 좋은 성적이며 1992년에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MVP이기도 했다. 소속팀 애틀랜타가 최악의 새가슴 팀임을 생각해 본다면 포스트시즌에서 허구한 날 삽을 푸는 팀 내에서 꾸준하게 에이스로 제몫을 다해준 스몰츠는 그야말로 군계일학이 따로 없던 셈이었다.

3. 선수 생활[편집]




3.1. 디트로이트의 지명과 트레이드[편집]


1985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드래프트에서 22라운드라는 하위 지명을 받고 고향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그러나 1987년 디트로이트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치열한 선두 다툼 중에서 투수진의 노련미를 더하기 위해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36세의 투수 도일 알렉산더를 받는 조건으로 스몰츠를 트레이드시켰다. 도일 알렉산더는 디트로이트에 합류한 후 9승 무패 1.53의 성적을 찍으며, 디트로이트를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결국 디트로이트는 정규시즌 겨우 87승을 거둔 미네소타 트윈스에게 일격을 당하며,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적어도 이 때 당시에는 디트로이트로 간 도일 알렉산더의 활약이 워낙 뛰어났고, 반대로 애틀랜타가 받은 것은 고작 22라운드에서 지명된 새가슴과의 투수였기 때문에 애틀랜타의 트레이드 실패로 여겨졌다.[9]

3.2.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선발 투수[편집]


그러나 결국 이 트레이드는 애틀랜타의 승리가 되었다. 왜냐하면 스몰츠가 메이저리그에서 뛰어난 투수로 성장한 것. 1988년 본격적으로 팀 선발진에 합류하여 12승을 거두머 동료인 톰 글래빈과 함께 애틀랜타의 미래를 책임질 투수로 인정받는다. 애틀랜타로의 연고 이전 이후, 암흑기에 시달리던 브레이브스 프랜차이즈의 서광이 비치는 순간이었고, 스몰츠는 그 선두에 서서 애틀랜타의 반격을 진두지휘했다.

가장 빛나는 것은 1991년 월드시리즈. 이 월드시리즈에서 스몰츠는 미네소타 트윈스 상대로 빼어난 피칭을 잇따라 선보이면서 큰 경기에 강하다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게 된다.[10] 그리고 이 때 붙은 별명이 바로 앞에서 언급한 강철심장. 특히 1991년 시즌 초반 최악의 부진에 시달리면서 심리적으로 무너져서 심리치료사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소심한 새가슴과 선수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 것이었다. 비록 이 해와 1992년 모두 아쉽게 월드시리즈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기는 했지만, 스몰츠는 젊은 선발로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3년 '마스터' 그렉 매덕스가 이적하자 애틀랜타는 매덕스-글래빈-스몰츠로 이어지는 MLB 역사상 최강의 선발 쓰리펀치를 구성하였고 스몰츠도 이에 편승하여 10승 이상을 지속적으로 기록하며 1995년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공헌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듬해인 96년에는 다승 타이틀(24승), 탈삼진(276) 타이틀을 거머쥐며 사이 영 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러나 워낙 많은 슬라이더를 던지면서 활약한 그의 팔꿈치는 그의 구위를 감당하지 못했다. 이미 1994년과 1997년에 두 차례 팔꿈치 수술을 받았던 그였지만, 두 차례 수술로도 팔꿈치는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팔꿈치 인대가 끊어지면서 2000년 토미 존 수술을 받아서 시즌을 쉬게 된다.



3.3.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마무리, 그리고 다시 선발[편집]


팔꿈치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서 재기 자체가 불투명했지만, 2000년을 통째로 재활에 매진한 끝에 2001년 후반기에 마침내 복귀에 성공했다. 하지만, 선발로서 긴 이닝을 던지기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결국 선발진에서 탈락했고, 결국 불펜으로 전환했다. 내심 선발을 원했고, 실제로 2002년 FA로 풀렸을 당시 선발자리를 보장하겠다면서 달려든 팀이 많았지만, 결국 스몰츠는 팀을 위해 마무리로 남았다. 그리고 약 4년간 무려 150세이브 가량 거두면서 2000년대 초반 무적의 마무리로 이름을 날렸다.

불펜으로 부활한 원인에는 짧게 던지면서 과거 위력을 보여줬던 슬라이더와 스플리터를 마음껏 던질 수 있었던 것과 토미 존 수술이후 패스트볼 구속이 충실한 재활을 통해 다른 몸의 밸런스가 맞아가면서 오히려 증가한 것에 기인했다. 즉, 토미 존 수술의 성공적인 케이스중 한 명. 4년을 마무리로 뛰면서 활약한 후, 2005년부터 선발에 복귀했다.

이전 서 2005년도의 스몰츠는 리그 5위의 이닝을 먹으면서 평균자책점 8위, WHIP 7위를 기록하고 3차례의 완투와 완봉을 기록했다. 2006년에는 리그 4위의 이닝을 먹으면서 다승왕에 오르는 동시에 리그 7위의 평균자책점과 WHIP을 기록했고, 탈삼진은 3위에 올랐다. 2007년에도 200이닝을 넘기면서 리그 4위의 평균자책점에 리그 6위의 WHIP을 기록하며 탈삼진은 다시 3위를 기록했다.

3.4. 은퇴와 명예의 전당 입성[편집]


그러나 2008년 말 스몰츠는 그간 다쳤던 팔꿈치가 아닌, 어깨를 다치게 된다. 팔꿈치 부상에도 스몰츠의 강속구는 문제가 없었지만, 어깨 부상은 그의 강속구를 앗아갔다. 결국 애틀랜타는 구위가 떨어진 그를 방출하기에 이르고, 2009년 정든 팀을 뒤로 하고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했지만, 더 이상 전성기의 모습을 보이지 못한 스몰츠였기에 보스턴은 8월 17일 자로 스몰츠를 방출시키게 된다. 다행히 방출 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계약하여 예전 모습까진 아니지만 본분을 충실히 수행하는 투수로 다시 거듭나게 되면서 말년을 그래도 깔끔하게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09시즌 그의 투구폼을 분석한 결과 직구를 던질때와 변화구를 던질때 준비동작이 비전문가인 아마추어 네티즌이 지적할 수 있을정도로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것이 발견되었다. 보스턴에 있을땐 교정이 전혀 안 되다가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코치 중 하나라는 데이브 던컨이 있는 세인트루이스로 향하고 나서 교정된 모습을 보여줬다. 보스턴에서 난타 당한 것과 세인트루이스에서 회복한 건 이것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

선수 자신은 선수 생활을 더 연장하고 싶어했지만, 어깨를 다친 노장 투수를 원하는 팀은 없었고, 그는 공식적으로 은퇴식은 치루지 않았지만, 2010년 3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재도전하지 않고 포스트시즌 주관방송사인 TBS에서 해설가로 계약하며 야구인생의 제 2막을 열었다.

2012년 4월 17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구단은 존 스몰츠의 등번호 29번을 팀의 아홉 번째 영구결번으로 지정해 브레이브스에 오래도록 헌신한 스몰츠의 공로를 기린다고 발표했다.

2015년 1월 6일,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득표율 82.9%로 첫 턴 입성에 무난히 성공했다. 이로서 90년대 브레이브스 왕조를 이끈 에이스 3인방이 모두 영구결번과 함께 명예의 전당 첫 턴 입성의 영예를 안았다.

파일:/image/001/2015/07/27/AKR20150727035700007_01_i_99_20150727091604.jpg
7월 26일, 공식 입회식이 이뤄졌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크레이그 비지오, 존 스몰츠,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즈.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먼저 명예의 전당 유니폼의 단추를 다 차고 모자까지 쓴 뒤 의자 위에 올라가 아직 준비 중이던 옆자리의 랜디 존슨의 머리 위에 모자를 씌어주며 분위기를 훈훈하게 만들어주었다. GIF짤 또한 MLB 네트워크와의 인터뷰에서는 당시 뉴욕 메츠로 이적했던 글래빈의 3루 쪽 타구를 역동작 송구로 보여준 스몰츠의 멋진 수비 영상을 함께 보며 화면을 통해 마주한 글래빈과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영상

명예의 전당 이후 FOX Sports로 옮겼고 현재까지 포스트시즌 전경기 생중계를 하고 있다.

4. 명예의 전당 통계[편집]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존 스몰츠
34
199
162
44
HOF 입성자 평균
40
185
100
50

  • JAWS - Starting Pitcher (58th)

career WAR
7yr-peak WAR
JAWS
존 스몰츠
69.5
38.8
54.1
선발투수 HOF 입성자 평균
73.9
50.3
62.1


5. 이모저모[편집]


  • 슬하에 아들이 넷이고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와도 친교가 깊은것으로 유명하며 은퇴 후에는 골프에도 도전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원래 새가슴이었는데, 스포츠 심리학을 꾸준히 적용한 결과 환골탈태해서 대표적인 강심장이 되었지만, 이는 야구 한정. 골프에서는 여전히 새가슴과의 전형이다.

  •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그래서 애틀랜타 시절 일요일에 예배 진행 및 설교말씀을 했다고 한다. 동료들에게 '스몰츠 장로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여담으로 봉중근이 애틀랜타 투수 시절 일요일 경기 전에 스몰츠와 함께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11]

  • 흔히 황당한 부상을 입은 야구선수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는데, 바로 옷을 입은 채 다림질을 하다가 화상을 입은 선수라는 것. 하지만 스몰츠가 이 소문이 근거 없는 소문임을 자서전을 통해 밝혔다. 단지 증기 다리미로 다림질을 하다 증기가 튀어 화상을 입었을 뿐이었는데, 언론이 과장보도했다는 것. 옷을 입은 채 다림질을 하다 화상을 입은 선수는 스몰츠의 동료였던 다른 선수라고 한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긴 있었다는 것이 몹시 신기하다

  • 2010년대 들어 파워 피쳐들의 부상이 잦아지고, 특히 2017년 현재 최고의 파워 피쳐 중 하나인 노아 신더가드 역시 부상자 명단에 오름에 따라 스몰츠는 메이저리그의 '구속 만능주의'에 대해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물론 자신 역시 강속구를 주야장천 던졌던 파워 피쳐였고 이 때문에 부상에 신음한 적이 몇 번 있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현역 시절 강속구 대신에 뛰어난 무브먼트와 칼같은 제구력으로 타자들을 요리했던 호프집 투수 2명을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 그리고 굳이 이런 빅네임을 대지 않아도 루스 광팬인 뚱땡이50세까지 현역이셨던 산신령과 같이 기교파 투수로서 200승을 훌쩍 넘기며 롱런한 사례도 그 당시에는 충분히 있었다. 즉, 스몰츠는 파워 피쳐들의 부상 위험성을 알면서도 파워 피쳐만 계속 찍어내는 듯한 현 메이저리그의 상황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련 칼럼


  • 탈모인이다. 현역 때에도 머리숱이 별로 없었는데, 50대를 넘긴 현 시점 원형 탈모가 많이 진행되었다. 그래도 외모 자체만 놓고 보자면 미중년이다.

  • 은퇴이후 아마추어 골프선수로도 활동하고 있는데,최근에 기발한 퍼팅 장비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 2019년과 그 이후의 포스트 시즌, 월드 시리즈에서 조 벅과 함께 중계를 맡고 있다. 특히 2021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친정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우승하는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하였다. 다만 현지 팬들 사이에서 중계 평이 좋지는 않았다. 뜬금없는 해설과 자잘한 말 실수가 있던 것이 큰 모양. 이후 2022년 코로나 백신을 맞기를 거부하면서 중계진에서 하차할 것으로 보여졌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중계만 하는 것으로 허용했으며, 인터내셔널 시리즈나 캐나다에서 열리는 FOX 중계는 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12]

  • 2022년 10월 19일 중계에서 NPB 경험이 없는 김하성선수에 대해 "일본에서 홈런 타자로 유명했다고 알고 있습니다."라고 발언하였다. #

6.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파일:MLB 로고.svg 존 스몰츠의 역대 MLB 기록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88
ATL
12
2
7
0
0
64
5.48
78
10
33
2
37
1.672
67
-0.4
-0.2
1989
29
12
11
0
0
208⅓
2.94
160
15
72
2
168
1.115
123
4.1
3.8
1990
34
14
11
0
0
231⅓
3.85
206
20
90
1
170
1.280
105
3.8
3.9
1991
36
14
13
0
0
229⅔
3.80
206
16
77
3
148
1.232
103
3.7
5.2
1992
35
15
12
0
0
246⅔
2.85
206
17
80
5
215
1.159
130
5.3
3.7
1993
35
15
11
0
0
243⅔
3.62
208
23
100
6
208
1.264
111
4.3
2.8
1994
21
6
10
0
0
134⅔
4.14
120
15
48
4
113
1.248
102
2.3
1.3
1995
29
12
7
0
0
192⅔
3.18
166
15
72
4
183
1.235
133
4.6
3.9
1996
35
24
8
0
0
253⅔
2.94
199
19
55
2
276
1.001
149
9.0
8.1
1997
35
15
12
0
0
256
3.02
234
21
63
1
241
1.160
138
7.5
5.5
1998
26
17
3
0
0
167⅔
2.90
145
10
44
4
173
1.127
144
5.7
3.7
1999
29
11
8
0
0
186⅓
3.19
168
14
40
4
156
1.116
141
6.3
5.3
2000
메이저 기록 없음
2001
36
3
3
10
5
59
3.36
53
7
10
2
57
1.068
133
1.2
0.7
2002
75
3
2
55
0
80⅓
3.25
55
4
24
0
85
1.033
128
2.5
1.2
2003
62
0
2
45
0
64⅓
1.12
48
2
8
0
73
0.870
385
2.9
3.3
2004
73
0
1
44
0
81⅔
2.76
75
8
13
0
85
1.078
156
2.1
2.1
2005
33
14
7
0
0
229⅔
3.06
210
18
53
1
159
1.145
139
5.2
5.0
2006
35
16
9
0
0
232
3.49
221
23
55
9
211
1.190
128
5.5
5.9
2007
32
14
8
0
0
205⅔
3.11
196
18
47
4
197
1.182
140
5.1
4.3
2008
6
3
2
0
0
28
2.57
25
2
8
0
36
1.179
164
0.9
0.7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2009
BOS/STL
15
3
8
0
0
78
6.35
95
11
18
3
73
1.449
69
1.2
-0.5
MLB 통산
(21시즌)
723
213
155
154
5
3473
3.33
3074
288
1010
57
3084
1.176
125
82.8
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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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승- 100세이브는 메이저리그 불멸의 기록 중 하나로 일본프로야구에서는 에나츠 유타카, KBO리그에서는 송진우만이 가지고 있는 기록이다. 데니스 에커슬리의 경우는 세이브는 스몰츠보다 많은 390세이브지만 승리가 197승으로 200승에 못 미친다.[2] 통산 구사율이 4%에 많이 구사하였을때가 7% 정도로 가끔씩 던졌다.[3] 단 과도한 슬라이더 사용과 더불어 해당 투구폼의 영향이었는지 결국 토미 존 수술을 받고 만다.[4] 첫번째는 1이닝 마무리의 원조로 꼽히는 데니스 에커슬리로, 에커슬리 역시 한때는 선발로도 이름을 날린 적이 있었다. [5]그렉 매덕스는 구속은 느렸을지언정 무브먼트로 끌어올린 투심패스트볼의 구위는 지금까지도 손꼽힐만큼 타자를 압도했으며 스트라이크존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공격적인 피칭때문에 파워피처로 분류되기도 한다. 배리 본즈는 "2스트라이크 노볼카운트에서도 스트라이크를 잡으려고 들어오는데 매덕스가 파워피처가 아니면, 누가 파워피처냐?"고 했다. 물론 강속구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정통적인 파워피처와는 거리가 있는건 사실이다.[6] 이로 인해 현재 기준으로는 셋 중에서 가장 현대야구의 투수들에 부합하는 투수로 여겨진다. 매덕스는 제구력과 무브먼트는 현대야구의 모든 투수를 통틀어서도 따라올 자가 없고 글래빈은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정교한 핀포인트 커맨드를 자랑하지만 아무래도 구속이 두드러지게 느린 게 현대야구 투수들과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단 앞의 둘은 롱런하여 통산 300승을 해냈고, 스몰츠는 결국 못 해냈기에 이는 현대야구에서는 통산 300승이 사실상 불가능한 기록임을 나타내는 훌륭한 사례로 사용되기도 한다.[7] 포스트시즌 통산 18승인 앤디 페티트에 이어 2위[8] 포스트시즌 통산 3위. 1위 커쇼와 2위 벌랜더는 각각 4.19, 3.40으로 스몰츠의 2.67보다 부진한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우승 횟수는 세 명 모두 1회로 동일.[9] 지금은 일반화된 심리상담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수혜자로 꼽힌다. 폭발적인 구위를 가졌지만 마운드에서는 항상 위축된 그를 보고 구단은 심리상담을 권유했고 지속적인 상담과 관리로 자신감을 얻어 강철 심장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됐다.[10] 특히 스몰츠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명 투수전으로 손꼽히는 그해 월드시리즈의 최종 7차전에서 애틀란타의 선발투수로 등판했다. 비록 상대인 미네소타 잭 모리스의 10이닝 완봉승에 가리긴 했지만, 스몰츠도 8회 교체될 때까지 무실점의 호투를 기록하였다.[11] 봉중근은 개신교 학교인 신일중학교와 신일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본인의 종교도 개신교다.[12] 왜냐하면 미국 연방 정부에서 해외(도로 교통으로도 가능한 캐나다 포함)로 출국 시 백신 접종은 필수라는 의무 이행 사항을 공포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