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엔트위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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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트 타운젠드
로저 달트리
존 엔트위슬
키스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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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멤버 ]
[ Studio Album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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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Generation
1965.12.03.

A Quick One
1966.12.03.

The Who Sell Out
1967.12.15.

Tommy
1969.05.23.

Who's Next
1971.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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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drophenia
1973.10.26.

The Who By Numbers
1975.10.03.

Who Are You
1978.08.18.

Face Dances
1981.03.16.

It's Hard
1982.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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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less Wire
2006.10.30.

WHO
2019.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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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펼치기 · 접기 ]
롤링 스톤이 2020년 가장 위대한 베이시스트 50명을 선정한 순위다.
1위
2위
3위
4위
5위
제임스 제머슨
찰스 밍거스
존 엔트위슬
부치 콜린스
캐럴 케이
6위
7위
8위
9위
10위
잭 브루스
래리 그레이엄
자코 파스토리우스
폴 매카트니
론 카터

[ 11위-20위 펼치기 · 접기 ]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필 레시
윌리 딕슨
스탠리 클라크
존 폴 존스
도널드 ‘덕’ 던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찰리 헤이든
로비 셰익스피어
찰리 스콰이어
버딘 화이트
릭 댕코

21위부터는 링크 참조.
같이 보기: 명반, 명곡, 앨범 커버, 아티스트, 송라이터, 기타리스트, 보컬리스트 1 / 2, 베이시스트, 드러머, 듀오




존 엔트위슬
John Entwistle


파일:John_Entwistle (1).jpg

본명
존 알렉 엔트위슬
John Alec Entwistle
출생
1944년 10월 9일
영국 잉글랜드 런던 치스윅
사망
2002년 6월 27일 (향년 57세)
미국 네바다 주 패러다이스
국적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직업
음악가
소속
더 후 (1964 -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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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아버지 : 허버트 엔트위슬 (1915 - 2003)
어머니 : 퀴니 존스 (1911 - 2011)
배우자
맥신 할로우 (1991 - 1997, 이혼)
앨리슨 와이즈 (1997 - 2002)
자녀
크리스토퍼 엔트위슬
학력
액튼 카운티 문법 학교 (졸업)
신체
182cm, 95.2kg[1]
활동 기간
1961년 – 2002년
사용 악기
베이스 기타, 보컬, 호른
장르
하드 록, 파워 팝, 아트 록


1. 개요
2. 생애
2.1. 유년기
3. 음악적 역량
4. 기타



1. 개요[편집]



파일:TheWho.jpg

<math>Thunderfingers</math>

"로큰롤 음악계에서는 최고의 베이스 연주자이다. 가장 최고이다. 경쟁자가 없다."

레미 킬미스터(모터헤드)#

영국의 베이스 기타리스트.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더 후베이시스트로 유명하다. 록뿐만 아니라 베이스 역사 전체로 범위를 넓혀봐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무조건 꼽히는 전설적인 베이시스트로 평가받는다.

Thunderfingers라는 별명에 걸맞게 생전 번개같은 베이스 속주를 보여준 베이시스트였지만 2002년 코카인 과다투여로 인한 심장마비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2. 생애[편집]



2.1. 유년기[편집]


존 엔트위슬은 영국 런던의 치즈윅에서 태어났다. 존의 아버지는 트럼펫 연주자였고,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는데, 존이 태어난 이후 결혼 생활이 실패해서 외할아버지의 집인 런던의 사우스 액튼에서 자랐다.

존은 7살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피아노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액튼 카운티 문법 학교에 11살에 입학한 이후 트럼펫으로 바꾸었고, 미들섹스 학교에서 관현악단에서 호른을 맡게되었다. 액튼 카운티 문법 학교에 입학한지 2년째에 피트 타운젠드를 만나게 됐는데, 둘이서 재즈밴드를 만들게 된다. 이후 로큰롤로 전향하기 전까지 한 번의 공연만을 하게된다.

존은 트럼펫을 듣는데 어려움을 느꼈고, 기타로 바꾸려고 하지만 손가락이 너무 컸고, 듀언 에디의 낮은 음색에 매력을 느끼고 베이스에 관심을 갖게 되어 베이스를 집에서 만들게 된다.


2.2. 더 후[편집]


파일:엔트위슬.gif

베이스에 관심을 가진 존 엔트위슬은 연주를 하기 위해 베이스를 들고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같은 학교를 다니던 로저 달트리가 길거리에서 베이스를 들고 있는 존을 보게 되고, 스쿨 밴드인 '디투어스'의 베이시스트로 존을 영입하게 된다. 이때 영입된 배경이 조금 골때리는데, 엔트위슬과 같은 학교를 다니던 달트리가 엔트위슬의 사기적인 베이스 실력을 보자 "우리 밴드에 들어오면 돈을 더 많이 주겠다."며 엔트위슬을 꼬셔서 더 후에 들어오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로저 달트리에게는 돈이 전혀 없는 상태였고(...) 엔트위슬은 매우 빡쳤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서 더 후에 계속 재적했다고 한다.[1]

존 엔트위슬은 뛰어난 베이스 연주 실력으로 더 후의 음악을 한층 더 풍요롭게 만들었다. 피트 타운젠드는 거의 대부분의 곡에 베이스 속주 솔로를 만들어서 넣었고, 이러한 베이스 솔로는 더 후의 상징 중 하나가 되었다.


3. 음악적 역량[편집]


Won't Get Fooled Again 연주.
베이스 솔로
베이시스트로서 독보적인 테크닉과 스피드를 보유했었다.[2] 말년에도 젊은 베이시스트들 조차 쫓아오지 못하는 스피드를 보유할 정도. 더 후에서 피트가 리듬 기타리스트같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존은 베이시스트임에도 리드 기타리스트같은 면모를 보여줬다.

작곡에도 어느정도 소질이 있어서 My Wife 같은 곡의 작곡과 보컬을 맡기도 했다.

성격도 그렇고 무대 퍼포먼스도 상당히 조용했다. 과거 영상들을 보면 피트가 기타를 부수고 로저가 마이크 돌리고 키스가 폭탄을 터트릴 때에도, 존은 늘상 짓던 표정과 같은 표정으로 묵묵히 베이스만 치고 있다. 다른 멤버들이 공연할 때의 열정을 다소 파괴적이면서 격정적인 무대매너로도 발산할 때, 존은 그 열정을 온전히 베이스 연주로 모두 승화시킨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정도.

참고로 2006년에 그가 참여한 앨범 중 하나가 발매되었는데, 그 정체는 다름 아닌, 그가 주다스 프리스트(밴드)의 기타리스트 글렌 팁튼(Glenn Tipton)과 레인보우(영국 밴드), 블랙 사바스(밴드), 화이트스네이크 등등 여러 밴드의 드러머 코지 파웰과 손을 모아 만든 앨범 <Edge of the World>였다! 발매 당시인 2006년에는 코지 파웰도, 존 엔트위슬도 사망한 상태였다. 따라서 글렌은 이 앨범을 두고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이 앨범은 그들이 가진 독특한 스타일과 기술에 대한 헌정인 동시에,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세월 동안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그들이 남기고 간 어마어마한 유산들의 일부분입니다. 모두가 그걸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I'm sure everyone will know, this album is a tribute to their unique styles and skills and a small part of the immense legacy they have left behind which will continue to inspire people all over the world for many years to come.")


세월이 흐를 수록 목소리가 낮아져 저음역대의 목소리를 지니게 되었는데,[3] 젊은 시절의 경우 말하는 목소리는 낮았으나 노래할 때는 고음역도 비교적 자유로이 넘나드는 모습을 보였다.


예스(밴드)의 키보디스트로 유명한 릭 웨이크먼(Rick Wakeman)과 존 로드, 이안 페이스와의 조인트로 유명한 토니 애시턴(Tony Ashton)이 진행하는 TV 프로그램 <Gastank> 4편에 나와 Twist and Shout을 부르는 영상. 존 레논 못지 않은 시원시원한 목소리를 선보인다.


4. 기타[편집]


  • 더 후 중에서 유일하게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였다.[4] 다만 당시의 여타 록밴드들처럼 마약도 자주 했기에 코카인 과다투여로 사망했다. 더 후에서 마약을 아예 안 했던 멤버는 로저 달트리이다.

  • 또한 사망 직전엔 노안의 소유자였다. 외모는 잘생겼으나 워낙 노안이어서 50대 초중반에 미노년 소리를 듣기도했다. 동갑인 로저 달트리가 관리를 잘 해서 매우 동안인 것과는 대비된다.[5] 또한 프린스와 같은 나이에 사망했는데, 프린스는 엄청난 동안이고 엔트위슬은 엄청난 노안이라 둘을 모두 좋아하는 팬들은 이에 괴리감을 느끼기도 한다.[6]

  • 생전 인터뷰를 보면 베이시스트라기보다 베이스 기타리스트라고 불리는 걸 선호했다. 자신은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지 베이스를 연주하는게 아니라고. 기존 베이스는 지루해서 솔로연주에 집중해 트레블을 최대치로 올려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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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로 롤링 스톤스찰리 와츠도 이런 방식으로 브라이언 존스에게 영입되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엔트위슬이 같이 밴드를 하던 피트 타운젠드에게도 이 소식을 알려, 로저 달트리는 피해자를 한명 더 만들었다는 것(...). 뭐 더 후가 상업적 성공을 거둬 존 엔트위슬도 억만장자가 되어서 결론적으로는 해피엔딩이긴 했다만.[2] 스타일 측면에서 미스터 빅빌리 시언이 연상된다.[3] Boris The Spider의 경우 노년기에 접어들었을 때의 라이브 공연에서 그로울링이 정말 자연스럽다. #[4] 나머지 세 명은 모조리 다혈질에 과격한 성격의 소유자여서 밴드 할 당시엔 마찰이 매우 잦았다고 한다.[5] 실제로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콘서트를 보면 달트리는 전성기와 그닥 달라진 게 없으나 엔트위슬은 할아버지가 된 모습을 볼 수 있다.[6] 이는 세대차 때문에 더 늙어보이는 점도 없잖아 있다. 1996년 이주일의 투나잇쇼 때부터 원로 연예인, 노인 연예인 컨셉이었던 이주일은 사망 당시 노인 축에도 끼지 못하는 만 61세로 현재의 이경규보다 더 나이가 어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