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길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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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참고문헌



1. 개요[편집]


북한의 정치인, 화학공업 테크노크라트

2. 생애[편집]


1932년 4월 29일, 함경남도 함흥시 해안구역 운중동의 노동자 집안에서 출생했다. 1949년 청진상업기술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5월, 해군군관학교에 입학하여 1년간 군사교육을 받았고 6.25 전쟁에 참전하여 동해안에서 해군으로 유엔군과 교전했다.

1957년, 함흥화학공업대학을 졸업하고 화학공업기사 자격을 취득했다. 흥남화학설계연구소에 배치되어 일하다가 1961년 함흥시 지도원에 배치, 이후 비서까지 승진했다. 1973년부터 2.8 비날론공장, 흥남제약공장, 흥남비료공장의 당비서로 사업했고 1976년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보선되었다. 하지만 1978년에 흥남비료련합기업소 노동자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이 잘 되고 있지 않다고 비판을 받은 일이 있다. 하지만 흥남비료련합기업소 생산성 향상을 위한 똥꼬쇼를 한 덕분에 1979년 6월, 함흥시 현지지도를 온 김일성에게 일을 잘 했다고 감사를 받는 등 전화위복에 성공했다.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했다. 1982년 순천비날론련합기업소 지배인이 되었으며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1986년 2월 4일 당정회의에서 화학 및 경공업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86년 12월 8기 최고인민회의가 소집되면서 대의원에 선출, 김환(북한)에게 자리를 내주고 중앙위원회 부부장으로 이동하였다.

1991년 12월 18일, 부총리 겸 화학공업부장 김환(북한)의 뒤를 이어 신임 정무원 화학공업부장에 임명되었으나 1년 만인 1992년 12월 11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해임되고 다시 김환과 바통터치 이후 순천비날론련합기업소 책임비서로 좌천되었다. 이후 2.8 비날론연합기업소 책임비서로 재임하다가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6년 6월 13일, 중앙위원회 위원 및 2.8 비날론연합기업소 책임비서로 재임하던 중 병환으로 64세를 일기로 사망하였고 중앙위원회에서 부고를 발표하였다. 다음날 김정일이 화환을 보내주었다. 이후 애국렬사릉에 순천비날론련합기업소 책임비서의 직함으로 안치되었다.

3. 참고문헌[편집]


  • 조선대백과사전 1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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