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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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 조선족 자치주 초대 주장
주덕해[1]
朱德海 | Zhū Déhǎi


본명
오기섭
吳基涉
출생
1911년 3월 5일
러시아 제국 우수리스크 도별하
사망
1972년 7월 3일 (61세)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
국적
[[중국|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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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민족
조선족
가족
배우자 김영선[2]
학력
동방노력자공산대학 (졸업)
직업
정치인, 군인[3]
소속
중국공산당, 팔로군
1. 개요
2. 생애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중국조선족 출신 정치인으로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초대 주장을 지냈다. 본명은 오기섭(吳基涉)으로 1930년대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항일투쟁에 나서면서 여러 가명을 썼다가 주덕해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다.


2. 생애[편집]


1911년 러시아 제국 우수리스크 부근 농촌마을인 도베야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서 어머니와 같이 잠시 조선으로 간 적도 있었지만, 여의치가 않아서 결국에는 연변에 정착하게 된다.

연변에서 일제의 만행으로 1930년중국공산당에 입당하게 되었고, 조선의용군에 입단하기도 했다. 1936년에는 소련으로 유학갔다가 중일전쟁이 터지자 다시 중국으로 와서, 항일투쟁을 하는 동시에 학교를 세우고, 황무지를 개간하고, 벽돌공장과 설탕공장을 꾸리는 사업을 벌였다. 중일전쟁이 끝나고 나서 국공내전이 벌어졌을때 다시 참전하여 나름대로의 활약을 보였다고 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이후에 연변조선족자치구역의 신설을 당국에 요구했고,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면서 1952년부터 1966년까지 초대 연변조선족자치주 주장을 지냈고, 이외에도 지린성 부성장, 전국인민대표대회소수민족 대표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지방정부 수장으로써는 그런대로 능력이 있어서 연변 발전의 초석을 닦은 인물이라는 평을 받는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인생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자기보다 한참 어린 홍위병들에게 집안을 털리고, 능욕 당한 건 물론이고 연변자치주장 자리에서 쫓겨나 후베이성 일대 농촌지역으로 하방당하며 말년을 비참하게 지내야했다. 폐암으로 병석에 들었을 때도 병원에서 약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상태가 악화되었으며,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저우언라이에게 편지를 보내서 그나마의 배려를 받을 수 있었지만, 끝내 공직에 복귀하지 못한 채 1972년에 세상을 떠났다.

사후 4인방이 쫓겨나면서 명예회복이 이루어졌으며, 1986년에 주덕해 기념비가 세워짐으로써 현재는 조선족들 사이에서 존경의 대상이 되는 인물로 연변자치주의 초석을 닦은 인물로 평가되며 위인전도 여럿 나오고 있기도 하다.

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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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식 독음을 옮기면 주더하이.[2] 중국 이름은 Jin Yongshun.[3] 1939 ~ 1947년까지 복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