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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대구광역시)/정치 대한민국의 폐지된 선거구
|
| 중구 중구 일원 中區 Jung-gu |
|
선거인 수
| 73,188명 (2000)
|
상위 행정구역
| 대구광역시
|
관할 구역
| - [ 펼치기 · 접기 ]
중구 전체동인동, 삼덕동, 대신동, 대봉1동, 대봉2동, 성내1동, 성내2동, 성내3동, 남산1동, 남산2동, 남산3동, 남산4동
|
신설년도
| 1988년
|
이전 선거구
| 중구·서구 (대구 제 1 선거구)
|
이후 선거구
| 중구·남구
|
국회의원
| [[무소속|
무소속
]]
| 백승홍
|
대구광역시
중구를 관할했던 선거구로, 소선거구제 실시와 함께
13대 총선부터 신설되었고,
17대 총선부터
도심 공동화에 따른 인구 감소로 인하여 남구 선거구와 합구되어 중구·남구 선거구가 되었다.
1990년대까지 중선거구제 시절 같은 선거구였던
서구 갑[1] 정호용의 사퇴로 치러진 1990년 4·3 재보궐선거 당시 전국적으로 주목받았다.
과 함께 대구 정치 1번지로 높은 위상을 자랑했으나,
1994년 재보궐선거 이후
수성구 갑이 신정치 1번지로 주목받기 시작한 이후로는 대구 정치 1번지 위상은 꽤 떨어졌다.
이 선거구 출신 유명 인사는
이만섭 전
국회의장,
박준규 전
국회의장,
유성환 국시론 파동의 주인공인
유성환 전 의원,
유승민 전 의원의 아버지인
유수호 전 의원이 있다.
2. 역대 국회의원 목록과 역대 선거 결과[편집]
총선
| 당선자
| 당적
| 임기
|
제13대
| 유수호
|
| 1988년 5월 30일 ~ 1992년 5월 29일
|
제14대
| [[민주자유당| ]]
| 1992년 5월 30일 ~ 1996년 5월 29일
|
제15대
| 박준규
| [[자유민주연합| ]]
| 1996년 5월 30일 ~ 2000년 5월 29일
|
제16대
| 백승홍
|
|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
중구 대구 중구 일원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1
| 유수호(劉守鎬)
| 47,594
| 1위
|
| 56.87%
| 당선
|
2
| 김현규(金鉉圭)
| 31,660
| 2위
|
[include(틀:통일민주당)]
| 37.83%
| 낙선
|
3
| 구영(具永)
| 549
| 5위
|
[[평화민주당| ]]
| 0.65%
| 낙선
|
4
| 이수만(李守萬)
| 2,783
| 3위
|
[[신민주공화당| ]]
| 2.32%
| 낙선
|
5
| 서병환(徐秉煥)
| 1,099
| 4위
|
[[무소속|
무소속
]]
| 1.31%
| 낙선
|
계
| 선거인 수
| 105,892
| 투표율 79.58%
|
투표 수
| 84,269
|
무효표 수
| 584
|
민정당 유수호 후보는
박정희 정부 시절 판사로써 소신있는 판결을 내려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했고, 변호사 시절에도 무료 변론 등 사회활동에 앞장섰다. 다만 본격적인 정계입문 과정에선 경북고 동기인
노태우,
김윤환,
정호용 등과의 인연으로 인해 민정당을 선택했다.
민주당은 구미시-군위군-칠곡군-선산군 선거구에서 3선을 기록한 야권 중진인 김현규 의원을 공천했다. 김현규 후보는 소선거구제 하에서 민정당 실력자인
김윤환을 상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는데, 하필 대구의 중심지인 중구 선거구에 마땅한 거물 후보가 없자 지역구를 옮겨 출마했다.
유수호 후보가 19% 차이로 승리했다.
중구 대구 중구 일원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1
| 유수호(劉守鎬)
| 29,625
| 1위
|
[[민주자유당| ]]
| 46.87%
| 당선
|
2
| 이강철(李康哲)
| 12,122
| 3위
|
[include(틀:민주당(1991년))]
| 19.18%
| 낙선
|
3
| 박양식(朴陽植)
| 21,454
| 2위
|
[[통일국민당| ]]
| 33.94%
| 낙선
|
계
| 선거인 수
| 93,739
| 투표율 68.47%
|
투표 수
| 64,182
|
무효표 수
| 981
|
이 선거에서 당선된 유수호 의원은
김영삼이
14대 대선 후보로 선출되자 민자당을 탈당,
통일국민당에 입당하였다.
중구 대구 중구 일원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1
| 유성환(兪成煥)
| 17,079
| 2위
|
[[신한국당| ]]
| 32.22%
| 낙선
|
2
| 이수만(李守萬)
| 991
| 7위
|
[[새정치국민회의| ]]
| 1.86%
| 낙선
|
3
| 이강철(李康哲)
| 7,183
| 3위
|
| 13.55%
| 낙선
|
4
| 박준규(朴浚圭)
| 17,631
| 1위
|
[[자유민주연합| ]]
| 33.26%
| 당선
|
5
| 한병채(韓柄寀)
| 3,686
| 5위
|
| 6.95%
| 낙선
|
6
| 김영철(金映徹)
| 1,126
| 6위
|
[[무소속|
무소속
]]
| 2.12%
| 낙선
|
7
| 유병율(柳炳律)
| 344
| 8위
|
[[무소속|
무소속
]]
| 0.64%
| 낙선
|
8
| 이우대(李愚大)
| 167
| 9위
|
| 0.31%
| 낙선
|
9
| 임철(林哲)
| 4,790
| 4위
|
| 9.03%
| 낙선
|
계
| 선거인 수
| 83,545
| 투표율 64.51%
|
투표 수
| 53,896
|
무효표 수
| 899
|
15대 총선 대구 중구 개표 결과
|
정당
|
|
| 격차
| 투표율
|
후보
| 유성환
| 박준규
| (1위/2위)
|
득표수 (득표율)
| 17,079 (32.22%)
| 17,631 (33.26%)
| -552 (▼1.04)
| 64.51%
|
동인1·2가동
| 30.72%
| 27.96%
| △2.76
| 80.88
|
동인3가동
| 30.80%
| 34.68%
| ▼3.88
| 63.74
|
동인4가동
| 27.69%
| 34.06%
| ▼6.37
| 64.05
|
삼덕1·2가동
| 36.23%
| 37.11%
| ▼0.88
| 62.82
|
삼덕3가동
| 32.72%
| 31.02%
| △1.70
| 67.32
|
봉산동
| 38.91%
| 33.95%
| △4.96
| 66.63
|
동성동
| 35.87%
| 36.66%
| ▼0.79
| 61.92
|
서성동
| 33.53%
| 38.37%
| ▼4.84
| 62.94
|
남성동
| 35.08%
| 32.23%
| △2.85
| 64.79
|
북성동
| 33.71%
| 38.45%
| ▼4.74
| 64.38
|
달성동
| 31.37%
| 35.21%
| ▼3.84
| 66.17
|
대신1동
| 34.37%
| 32.17%
| △2.20
| 61.57
|
대신2동
| 37.37%
| 31.62%
| △5.75
| 66.04
|
남산1동
| 33.29%
| 32.87%
| △0.42
| 61.10
|
남산2동
| 32.83%
| 30.83%
| △2.00
| 62.44
|
남산3동
| 30.37%
| 30.80%
| ▼0.43
| 61.58
|
남산4동
| 30.72%
| 33.61%
| ▼2.89
| 64.82
|
대봉1동
| 28.65%
| 37.35%
| ▼8.70
| 63.55
|
대봉2동
| 31.36%
| 31.49%
| ▼0.13
| 62.15
|
출구조사에선
신한국당 유성환 후보가 앞섰으나 대구의 반 신한국당 정서로 인하여
자유민주연합 박준규 후보가 당선, 9선 고지에 오르고 3선
국회의장을 지내게 된다.
중구 대구 중구 일원[2] 동인동, 삼덕동, 대신동, 대봉1동, 대봉2동, 성내1동, 성내2동, 성내3동, 남산1동, 남산2동, 남산3동, 남산4동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1
| 백승홍(白承弘)
| 24,558
| 1위
|
| 58.37%
| 당선
|
2
| 이치호(李致浩)
| 4,890
| 3위
|
| 11.62%
| 낙선
|
3
| 박양식(朴陽植)
| 1,484
| 5위
|
| 3.52%
| 낙선
|
4
| 김현규(金鉉圭)
| 3,526
| 4위
|
| 8.38%
| 낙선
|
5
| 최우석(崔祐碩)
| 132
| 8위
|
| 0.31%
| 낙선
|
6
| 박진호(朴晋鎬)
| 133
| 7위
|
| 0.31%
| 낙선
|
7
| 이광수(異光洙)
| 332
| 6위
|
| 0.78%
| 낙선
|
8
| 임철(林哲)
| 7,013
| 2위
|
| 16.67%
| 낙선
|
계
| 선거인 수
| 73,188
| 투표율 58.20%
|
투표 수
| 42,599
|
무효표 수
| 531
|
서구 갑과
서구 을이
서구 단일 선거구로 합구되자 서구 을의 현역 의원인
강재섭이 서구에 공천을 받고 서구 갑 현역의원
백승홍이 중구로 이동해 당선됐다. 백승홍 의원은 이후
한나라당을 탈당해
17대 총선과
4회 지선에서 무소속으로 서구 국회의원과
대구광역시장에 도전하지만 낙선하고 이후 정계를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