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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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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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중국 영화 지도자 회의 현장. 위에 나오는 사람들은 전부 중국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 관련 인물들이다. 화이브라더스완다 시네마, 알리바바 픽쳐스 등의 CEO나 경영자 대표.
파일:rtx12sxq.jpg
2016년 8월 중국의 한 영화관. 기사 중국은 특정 영화관의 일부 상영관은 예매가 불가능하고 현장 구매만 가능한 곳이 존재한다. 중국의 인구 특성상 주말이나 성수기 때 예매 폭주를 막기 위해 제한을 둔 것.
기본정보 (2019년)
출처
인구
14억 2,764만 명
박스오피스
643억 중국 위안
(96억 미국 달러)
(전년비 ▲5.4%)
순수 자국생산 영화

관객 수

1인당 연간 영화 관람 횟수

자국영화 점유율
64%
스크린 수
69,787개(세계 1위)
(전년비 ▲9,708)
1. 개요
2.1. 현황 및 규모
2.2. 자국 영화시장의 강력한 통제 및 보호
4. 역사
4.1. 초창기 및 중화민국시기
4.2.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 문화대혁명
4.3. 개혁개방 이후 ~ 1990년대 말
4.4. 2000년대 이후
5. 특징
5.1. 중국판 블록버스터의 등장
5.2. 애니메이션 영화의 흥행
5.3. 관제영화 제작
6. 문제점
6.1. 엄격한 검열과 소재의 제한
6.2. 영화계의 부정부패
6.4. 상영 조작
7. 다른 나라 영화와의 관계
7.4. 기타 중화권
9. 역대 흥행 베스트 10
10. 영화 평점 사이트
11. 영화제
12.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중국 본토에서 만드는 영화를 말한다. 중화권 영화계의 맏형으로서, 시장이 워낙 크고 개혁개방 이후로 홍콩 영화계와 대만 영화계와 교류가 몹시 활발하기 때문에 그쪽 영화인들을 흡수하고 있다. 중국에서 본격적인 상업영화는 개혁개방 이후 경제발전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 만들어졌기 때문에, 개혁개방 이전부터 상업영화를 만들어온 다른 중화권 영화(특히 홍콩 영화)의 많은 노하우가 중국영화계에 흡수되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중국 정부의 엄격한 심의와 검열 때문에 특정 소재나 정치성 있는 주제는 금기시되고 있다. 이렇게 중국 영화는 거대한 단일 시장이라는 매력과 엄격한 소재 제한의 굴레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2010년대 들어 확실한 세계 2위 시장으로 부상했고, 성장세를 봐서는 2020년대는 세계 1위 시장으로 등극할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다.#

2022년 기준, 미국을 제치고 2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큰 영화 시장이다.#

해당 문서는 중국 본토, 중국 대륙의 영화에 대해 서술한다. 홍콩 영화나 대만 영화는 틀에 있는 각자의 문서로.


2. 영화 시장[편집]


중국 박스오피스(중국표방)


2.1. 현황 및 규모[편집]


중국 영화시장 박스오피스위안화 매출로 집계한다. 또한, 10분마다 실시간 집계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전 세계 보통 국가들의 박스오피스가 심야 관객을 고려하여 07:00 ~ 익일 06:59간의 매출로 집계하는데 반해, 중국 박스오피스는 00:00 ~ 23:59에 칼같이 끊는다. 따라서 영화 박스오피스는 한국 시간으로 오전 1시에 최종 결과가 집계된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중국에서 신작 개봉은 금요일에 하도록 정해져있기 때문이다. 금요일 새벽 박스오피스를 보면 개봉작들이 아닌 심야관객을 받고 있는 전주 상위권 영화들이 표출되고, 신작들은 금요일 오전 6시(한국시간 7시)부터 치고나오게 된다.

파일:2019 ex us film.png
MPAA(미국영화협회)의 집계에 따르면, 2019년 중국 영화 시장은 북미 영화 시장에 이어서 세계 2위를 유지하였다. 세계 3위인 일본 영화 시장을 무려 4배 차이로 따돌리고 있다. 위의 그래픽에서는 북미 영화 시장(114억 달러)이 따로 표시되어있지 않은데, MPAA가 미국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을 제외한 국가들만 표로 따로 나온 것이다.

미국 영화 시장에 이은 세계 2위 규모의 영화 시장이다. 2016년박스오피스는 457억 위안으로, 미국 달러화로 70억 달러이다. 미국 영화시장이 캐나다 합쳐서 114억 달러 정도이니 60% 이상 규모. 원래 일본 영화 시장이 세계 2위였으나, 일본 영화판이 갈라파고스화되고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일본 영화관람객 감소 추세가 지속되면서 2004년에 중국한테 2위를 내줬다. 중국 영화시장의 매년 성장률은 2000년대2010년대 초반에는 연 18-20%씩 성장, 특히 2010년은 37%나 폭증하며 미국 영화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2015년부터 성장률이 떨어지기 시작, 2017년에는 많이 떨어져서 연 8~10%씩 성장하고 있다. 이것도 사실 대단한 거지만. 늦어도 2020년 중반에는 연 2~3% 성장 내지는 한국 영화 시장처럼 0%대 정체상태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19년 11월 6일 글로벌 컨설팅 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서, 2020년에는 중국 영화 시장이 미국 영화 시장[1]을 따돌리고 세계 1위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기사

1980년대에 텔레비전 보급으로 영화관 관객수가 줄어드는 것은 한국이나 일본 등 다른나라와 마찬가지였었고 거기에 더해 영화 푯값도 일반인들에게 터무니 없이 비싸지는 바람에 영화관객들은 별수없이 따오판 영화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중산층이 급속히 늘기 시작하자 이를 노리고 중국 각지에 영화관 사업체들이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차리면서, 현재는 미국의 영화관 총 스크린보다 많아졌다. 기사 2016년 말 기준 미국의 스크린 개수는 40,000개를 넘는데, 중국은 2016년 말 기준 41,000개가 되었다. 중국 영화관 사업체들의 스크린 경쟁은 2026년까지 계속될 예정으로[2], 이 때에는 중국 스크린 개수가 14만 개를 찍을 것으로 목표치가 잡혀있다. 감이 안 잡히는 사람을 위해 말하자면, 한국 영화 영화관 스크린 개수가 2,700여개, 일본 영화 영화관 스크린 개수가 3,600여개이다. 미국 영화 시장 스크린 개수가 2020년에 가도 4만 개 남짓에서 정체상태를 유지할 걸로 보이니까 중국 14만 개 스크린이면 미국의 3.5배 수준이다. 한국의 50배, 일본의 30배. 2017년 11월 《저스티스 리그》가 개봉할 때 이미 중국 영화관 스크린 수는 47,000개를 넘겼으며, 2018년 3월에는 5만 개까지 돌파했다. 2017년 3월 말에 이미 46,000개를 넘겼다. 기사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2020년 상반기 시장규모가 대폭 감소하여 2020년 미국 시장 규모가 21억 미국 달러 그침에 따라 31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중국 영화 시장이 세계 1위의 시장으로 올라왔다. #[3]


2.2. 자국 영화시장의 강력한 통제 및 보호[편집]


기본적으로 중국 공산당소련의 영향을 받아 건국 때부터 영화산업을 당의 정강 정책을 홍보하고 인민을 교화시키는 수단으로 삼아왔다. 그리하여 자국 영화시장을 강력히 보호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강력히 통제한다. 고위층의 심기를 건드리거나, 정부나 공산당을 조금이라도 비판하거나 중국 공산당 정부의 정통성 문제를 거론하면 가차없이 제작이나 상영이 중단된다.[4] 그러니까 검열 당국의 입맛에 맞는 영화만을 보호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런 걸 제외하고, 할리우드 블랙아웃(6월 말 ~ 8월 중순까지 중국영화 외 외국영화 개봉 절대 금지 기간)이라는 정책을 펼치는 걸 보면 확실히 자국 영화 시장을 보호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에 영화를 수출하는 외국 영화사들은 영화사가 중국 흥행수입의 10%밖에 못 가져가는 계약을 중국 정부 및 영화관들이 강요하며, 이걸 받아들이고 있다. 원래 타 국가에서는 영화관이 50%, 세금 및 각국 영화발전기금 등으로 15%를 가져가고, 영화사(배급사 및 제작사)는 35% 정도를 가져가는데, 중국은 이 비율이 영화관 75%, 세금 및 영발기금 15%, 영화사 10%밖에 안 된다. 중국 영화사들이 자국 영화를 할 때에는 타 국가처럼 영화관 50% + 세금 15% + 영화사 35%이지만, 외국 영화사한테는 이렇게 9:1 배분을 강요한다. 하지만 외국 영화라도 흥행이 보장되는 속편의 경우는 좀 더 배분이 좋아진다. 예를 들어 아미르 칸의 인도 영화들은 25%까지도 올라갔다.

중국 영화시장은 외국 영화를 1년에 34편까지만 개봉할 수 있다.[5] 물론 이건 명목상이고 실제로는 중국 회사가 해당 외국영화에 투자를 가거나, 중국을 소재로 한 외국 영화에 대해서는 1년에 34편 수입 가능한 수입 쿼터를 0.5개, 0.2개 식으로 분할해서 적용하기 때문에, 실제로 개봉하는 외국 영화는 34편보다는 훨씬 많다. 실제로는 대략 60~70편 정도가 개봉. 2014년까지는 이랬다. 중국 자본이 할리우드와 합작하는 이유도 이렇게 외국 영화에 대한 중국 당국의 규제를 피하기 위한 이유도 있다.

2017년 들어서는 쿼터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분할해서 1년에 외국 영화를 거의 200편 이상 개봉했다. 중국 자본이 투자한 미국 영화들이 많아지다보니 쿼터 잔여분이 꽤 많이 남아서 일본 영화, 특히 극장판 애니메이션과, 인도 영화, 영국 영화에 쿼터 배분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일본, 인도, 영국 영화에 중국 자본이 열심히 투자하고 있다.

중국 시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외교 관계를 감안해서 외국영화 스크린 쿼터를 조절한다. 2016년 THAAD 배치 문제로 한국과 중국 간 외교 갈등이 터지자, 중국 정부는 한국 영화의 중국 개봉을 전면 금지하고 일본 영화를 대거 수입하는 식으로 견제를 하고 있다. 이 때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로 중국에 개봉을 한 것이 바로 《너의 이름은.》이다. 중국에서 2주 연속 1위를 하여 $83,678,210를 벌어서, 그 다음 타자로 개봉한 외국 영화 《로그 원》($69,484,899)을 따돌렸을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다.

2017년에도 《소드 아트 온라인 -오디널 스케일-》, 《목소리의 형태》,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심지어 장장 19년 8개월(1998년 3월 ~ 2017년 11월)동안 수입 절대 금지품이었던 포켓몬스터 극장판(볼케니온: 기계왕국의 비밀)을 개봉 허가해 줄 정도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적극적으로 개봉 허용하고 있다. 2016년 한중 사드 갈등 이후 한국 영화 대신 대체재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거 개봉시키고 있다. THAAD 갈등 이전에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중국 개봉을 매년 허용해줬던 건 중국 흥행 보증수표 도라에몽 시리즈[6] 정도였던 것에 비하면[7] 그야말로 격세지감. 단, 《너의 이름은.》의 흥행세가 좀 보기 싫었던지 2017년에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를 개봉 허가할 때에는 스크린 수를 10% 이상 넘지 못하도록 틀어막는 식으로 중국 정부가 흥행제한을 건다.

THAAD 갈등으로 인한 한국-일본 영화 중국 개봉 문제와 비슷한 예로, 2017년에 중국 영화 시장에 인도 영화인 《당갈》이 개봉해서 중국에서 대박을 쳤는데, 그 이후 2017년 중국-인도 국경 분쟁이 터지자 《당갈》의 성공으로 중국에서 개봉하려고 심의를 신청했던 인도 영화들을 광전총국이 줄줄이 개봉 금지 처분했다. 그리고 인도 영화 쿼터 자리에는 시진핑-테리사 메이 간 영국 - 중국 정상회담 기념으로 《러빙 빈센트》, 《47 미터》와 같은 영국 영화들이 들어오게 되었다. 특히 《47미터》는 원래라면 공포 영화로 중국 개봉 금지 대상이니까 인도 영화로 인한 견제로 상영이 허가된 게 100%이다. 그래도 다시 2018년부터 중국 영화 시장에 인도 영화들 개봉 허용이 결정되어서 《시크릿 슈퍼스타》 같은 인도 영화가 중국 영화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영화관 및 영화 배급 겸영 문제는 중국에서 더 심각하다. 차이나 필름 그룹차이나 필름 스텔라를 경영하는 등 영화의 기획/투자/제작/수입/배급/상영이 수직계열화되어 있다.

2018년 1분기 실적에서 미국 영화 시장을 일시적으로 추월했다. 기사

2018년 미중 무역 전쟁으로 인해, 시진핑 정부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 대한 보복조치 중 하나로 미국 영화의 중국 영화 시장 진입 제한을 검토하고 있다. 이 조치에 대해 미국 할리우드에서 경계하는 눈초리이다. 기사 월트 디즈니 컴퍼니부터 시작해서, 전세계 여러 영화사들이 중국 없어도 성공할 영화를 제외하고, A-~B급 영화는 중국 영화 시장 흥행 수입을 통해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중국 영화 시장에 대해 기본적인 설명을 한 중앙일보 기사. 기사1 기사2

3. 영화 배급사[편집]





차이나 필름 그룹(통칭 차이나필름)과 화샤필름이 초일류 투탑을 기록중인 가운데, 1류 배급사와 2류 배급사가 칼같이 구분된다. 중국 영화시장에는 외국계 직배가 금지되어 있다.


4. 역사[편집]


중국영화에는 시대별 감독들에 대한 세대 구분이 있다. 겹치는 시대도 있지만 대체로 아래와 같이 구분한다. 이들중 5세대 감독들은 30여년간 죽의 장막에 가려져 있던 중국영화를 세계적으로 알렸다.

  • 제1세대 (1906~1931)
영화 산업의 태동기에 활약했던 감독들. 이 시대의 영화는 모두 무성영화였다.
  • 제2세대 (1932~1949)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영화산업의 발달로 2세대로 넘어간다. 이 시기에는 유성영화의 도입. 소위 "좌익영화"와 항일영화가 융성했다. 중일전쟁 시기에 잠시 영화산업이 정지되지만 그 전후로 황금기를 맞는다.
  • 제3세대 (1949~1976)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의 시기이다. 이 당시는 중공정권이 주도하는 선전-계도 영화가 주류였다. 양적으로는 영화산업이 팽창했으나, 독자성은 거의 잃었던 시기였고, 문화대혁명 당시에는 아예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 제4세대 (1978~1989)
이 시기를 주도한 인물들은 문화대혁명 이전에 베이징전영학원을 졸업한 인물들로서 문혁 때 거의 작품활동을 못했고, 일부는 시골에 끌려가 삽질을 하기도 했다. 이들의 특징은 가급적이면 정치성 소재를 멀리하고 자연환경이나 소박한 전통 생활을 주제로 한 작품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5세대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들의 영화도 국제적으로 매우 호평받았다. 대표작으로 1993년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한 《향혼녀》가 있다.
  • 제5세대 (1983~1999)
이 시기 인물들은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 활동이나 상산하향 운동을 했던 인물들로서 문혁직 후 베이징전영학원에 입학해 1980년대 초반 졸업한 사람들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중공정권이 건국후 벌였던 여러 정치 변란(문화대혁명, 대약진운동) 중에 휘둘리는 인간상들을 화면에 담아 세계적인 성과를 냈다.
  • 제6세대 (1990~ )
개혁개방 이후 정규교육과정에서 제대로 영화를 배운 세대로서 현재 중국 영화의 약진을 이끄는 세대이다. 하지만 당국의 검열에 저항하며 지하영화나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있다.


4.1. 초창기 및 중화민국시기[편집]


중국에 활동사진은 1896년 소개되었고, 최초의 영화는 1905년 광서제 시절 경극을 필름에 담은 《정군산》이었다. 바로 황충하후연을 토벌하는 경극을 그대로 필름에 담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후 신해혁명이 발생하고 중국이 혼란에 접어들기 때문에 본격적인 영화의 본거지는 정변으로 바람잘날 없던 수도인 베이징이 아니라 상하이가 된다.

상하이는 외국 문물이 들어오는 조계가 있는데다가 정변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영화 제작을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1913년에 상하이에서 제작된 30분짜리 《난부난처》가 경극과 무관한 본격적인 중국 영화였다. 1920년대부터 상하이에 자리잡은 여러 영화사들이 작품을 내게 되며었고, 1931년부터는 유성영화가 나오게 되었다.

1930년대 장제스가 중국을 어느 정도 통일하면서 일단 안정기에 접어들고, 상하이의 영화산업은 황금기를 맞게 된다. 이 당시 주류를 점했던 영화들을 좌익영화(左翼电影)라고 하는데, 중국 사회의 문제에 대한 매우 비판적인 시선과 함께 점증하는 일본의 침략을 강하게 경계하는 작품, 그리고 봉건제에 얽매인 여성의 고난을 다룬 작품들이 계속 나왔기 때문이다. 영화인들은 시대를 불문하고 진보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중국사회의 모순을 지적하는 명작들이 대대적으로 나올 수 있었다. 게다가 상하이는 서방 여러 나라의 조계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 위치한 영화사들인 영국령 홍콩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국민당 정부로부터 창작의 자유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때를 중국 영화의 제1차 황금기라고 한다.

하지만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상하이는 곧 일본군에 함락되고 영화인들은 장제스 정부를 따라 충칭이나 일본의 손이 미치지 않는 홍콩으로 도피하거나 아예 영화 제작을 그만두었다. 상하이의 외국 조계에 위치한 영화사인 신화영화사는 일본군이 간섭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계속 작품을 냈고, 《무란종군》(木蘭從軍)[8]이라는 애국 작품을 냈으나,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고, 일본군이 상하이의 외국 조계도 삼키면서 더이상 영화제작을 할 수 없었다.

중일전쟁이 중국의 승리로 끝나고 1945년 상하이가 해방되자 중국 영화는 제2차 황금기를 맞는다. 이 당시에도 제1차 황금기와 마찬가지로 사회성있는 작품들이 많이 나왔는데, 코미디, 로맨스 등의 상업적인 영화들도 나와 흥행을 이끌었고, 곤륜영업공사(昆仑影业公司)나 문화영업공사(文华影业公司) 같은 메이저 스튜디오도 나왔다. 1948년에 나온 《생사한》(生死恨)은 중국 최초의 컬러 영화지만, 경극을 그대로 촬영한 것이었다. 이 때 대 활약한 배우가 바로 조선 출신의 김염이었다.

허나 공산당이 집권한 이후에는 이런 상업영화들이나 사회성 있는 영화들이 나오기 힘들어졌다. 상당수 영화인들이 국민당보다는 공산당에 가까운 성향이었지만, 공산당은 집권 후 사회 비판이나 사회의 어두운 면을 묘사하는 영화를 절대 용인하지 않았다.

4.2.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 문화대혁명[편집]


1949년 국공내전의 승리로 중국 공산당이 집권한 이후 중국 영화계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장제스 정권까지 제작되었던 상업영화는 모두 퇴색하고, 경극이나 곤곡 같은 전통 연극의 극장영상과 같은 예술관련 및 기록 목적을 제외하면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영화만을 만들도록 강요되었으며, 서방영화 (특히 인기 있었던 홍콩영화)는 모두 수입이 금지되었다.

이전의 영화중심지였던 상하이에 자리잡고 있었던 상업영화사들도 처음에 존속은 허가받았고 공산당의 입맞에 맞춘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미국 유학파인 쑨위(孙瑜) 감독이 1950년 제작한 《무순전》(武訓傳)은 청나라 시절 거부였던 무순이라는 인물이 문맹인 인민을 교화시킨다는 내용으로 문맹타파를 외치는 공산당의 입맛에 맞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마오쩌둥이 직관한 후 인민일보상에 직접 기고해 "이 영화는 유교를 가르쳤던 무순을 미화함으로서 봉건제를 옹호한다"며 비판한 이후에 영화산업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작업이 실시되었다. 그리하여 상하이의 8개의 상업 영화사들이 모두 국유화되어 통폐합되었고, 국영 상하이 스튜디오(上海电影制片厂)[9]로 통합되었다. 국민당 치하에서 명감독의 한명이었던 쑨위는 이렇게 "반동적"으로 찍힌 이후에는 거의 작품활동을 할 수 없었고 《무순전》은 35년이 지난 1985년에야 개봉될 수 있었다.

이와는 별도로 공산당 정부는 영화를 선전 계몽의 가장 큰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에[10], 각 도시마다 대대적으로 영화관을 짓기 시작했으며 소련 영화의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품들이나 공산당이나 정부의 선전을 위한 계도영화는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1949년 총 영화관객수가 4700만에 불과했으나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인 1959년 4억으로 늘어났다. 또한 영화 제작 편수도 늘어났고, 전문적으로 연기자 양성 및 영화 기술인력을 양성하는 학교도 세워져서 국민당 치하보다는 영화의 기술적 질은 좋아졌다. 1950년에 세워진 베이징전영학원과 중앙희극학원은 이후에 중국 영화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이런 양적 팽창 및 정부의 통제-검열 속에도 독자성을 가진 영화가 간간히 나왔다. 그러나 이중 일부는 당의 방침에 반한다는 이유로 상영금지를 당하고 연출자는 영구퇴출되었다. 예를 들어 코미디 영화의 대가인 뤼반(吕班)이 감독한 1956년작 《신임 국장님이 오시기 전》(新局长到来之前)과 《끝나지 않은 코미디》(没有完成的喜剧)는 당간부를 희화화했다는 이유로 상영금지를 당하고 이후 뤼반은 197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작품활동을 할 수 없었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발생하자 정상적인 영화 제작은 중지되었고, 외국의 영화는 물론, 공산당 정부 수립 후 만들어진 영화조차도 모두 상영금지 조치를 받았다. 그리고 이 자리를 문화대혁명 이념에 맞게 만들어진 혁명가극을 그대로 필름에 담아 상영하는 영화가 대체했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은 영화가 아니라 그냥 연극이나 공연 무대를 그대로 필름에 담아 상영하는 형식이었다. 또한 전문직이었던 영화 인력들은 반동으로 몰려 시골로 내려가 삽질을 하게 되었고, 영화인력을 배출하는 학교들은 문을 닫았다.

4.3. 개혁개방 이후 ~ 1990년대 말[편집]


1977년에 마오쩌둥이 사망하면서부터 이념적 경직성은 조금 완화되었고, 상업영화는 아니더라도 순수하게 오락을 위한 영화도 제작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공산당 및 중공지도부의 탄압이나 과오라고 할 수 있는 반우파투쟁,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의 개인적 경험을 다룬 후일담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 영화들은 이후 5세대 감독들이 계승하여 세계적인 작품을 내놓는다.

1979년 덩샤오핑이 집권함에 따라 중국은 점진적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하게 되며, 창작의 자유가 어느정도 주어졌다.[11] 이 때문에 관제-선전 영화를 만들어 왔던 영화인들이 본격적으로 정부의 입김이 배제된 독자적 영화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 영화를 제5세대 영화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영화인은 장이머우, 천카이거를 필두로 하는 제5세대 감독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중국 자체 내에서 교육받은 영화인이었으며, 대부분 중국 현대사의 질곡을 온 몸으로 겪은 사람들이었다.[12]

제5세대영화가 세계무대에 데뷔한 것은 1985년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천카이거의 《황토지》(1984)가 출품되어 은표범상을 수상하면서이다. 서방세계는 중국에 선전영화만 있는 게 아니라 예술영화도 있음을 알게되었고, 이때 명작들을 쏟아낸 장이머우, 천카이거 등을 제5세대라고 부른다. 이들은 1966년 문화대혁명으로 문을 닫았다가 1978년 다시 문을 연 베이징전영학원 82년 졸업생들이다.

이 당시 여러 명작이 나왔는데, 그 정점은 1993년에 나온 천카이거의 《패왕별희》라고 할 수 있다. 굴곡의 중국 현대사를 통해 중국 전통 미학을 보여준 이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음으로서 중국 영화의 수준이 세계적으로 전혀 손색이 없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나온 명작들은 대부분 예술영화로, 세계 각국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을 정도로 수준있는 작품이었지만 상업영화는 매우 부진했다. 여기에 중국 내부의 영화관객수가 크게 줄어나갔는데, 중국에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영화관을 찾으러 온 사람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의 질은 1970년대가 훨씬 뒤떨어졌지만 이때는 오락시설이 위낙에 빈약했고 TV도 별로 보급이 안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영화관객수가 많았다. 이러한 암울한 상황이 1990년대까지도 이루워졌으며 중국이 경제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중국 영화관객수는 매년 줄어들기만 했으며 1인당 영화관람 횟수는 연간 0.5회 수준으로 추락하기까지도 했다.[13] 물론 이 당시 중국영화관객수가 많지 않던 다른이유도 있는데 영화관의 매출액이 감소되면서 이를 메꿀려고 영화 표값을 급속히 인상했고 그러다보니 영화 관람자체가 경제적으로 부담되었기 때문에 대다수의 중국인들이 최소한 재미와 작품성이 보장된 대작이 아닌 이상 해적판(따오판)[14]으로 보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비싼 푯값이 중국영화의 발전을 저해했던 것은 당연지사였다.


4.4. 2000년대 이후[편집]


하지만 2000년대 중반에 멀티플렉스 도입 등이 이루어지면서[15]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으며 또한 중국의 경제성장으로 영화 푯값이 이전보다는 합리적인 수준이 되면서[16] 관객 수가 2배 이상 증가하였다. 물론 한국보다는 그 속도가 더딘 편이긴 하지만 중국의 인구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이 정도의 성장으로도 영화시장이 엄청나게 커지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으며 할리우드에서도 적극적으로 신경쓰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이 영화 총 관람객수가 90년대 중반 기준 4천만 명대에서 2010년대 기준 2억 명대로 성장한 수준이라면 중국은 2000년대 초반에 6억 명대에서 2010년대 후반에는 14억 명대로 성장했다.

이렇게 되자 1990년대 부진했던 상업영화도 흥행하고 있다. 이 시기의 주요 감독은 펑 샤오강 감독. 펑 샤오강은 5세대 감독보다는 조금 어리지만, 중국 영화감독으로는 드물게 작품성과 흥행성 두 가지 모두 잡아서 중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이 양반도 2017년 발표한 방화(2017) 때문에 중국 정부의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군내 왕따문제, 빈부격차, 전상군인에 대한 사회의 푸대접 등 방화의 현실비판이 상당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일부 혐중영화팬들은 1990년대 나왔던 걸작(패왕별희, 국두, 홍등, 인생(영화) 등등)들이 검열체제가 강회되어 현재 들어서는 못나온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사실과 다르며, 사실 검열은 당시보다는 훨씬 완화된게 맞다. 현재 이런 걸작들이 나올 수 없는 것은 중국 영화계에 만연한 상업주의 및 흥행제일주의가 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예술영화들은 영화사들이 상업성은 생각하지 않고, 예술성에 몰빵한 작품에 적극제작에 나섰기 때문에 현재보다도 훨씬 엄격한 검열체제 하에서도 상영금지등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걸작이 나온 반면, 현재에는 중국영화계도 상업주의가 제일이기 때문에, 돈을 벌 수 없는 영화들은 아예 거들떠보지 않기 때문이다.[17]

중국 영화판이 커지자 중화권 각지의 영화인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특히 홍콩 영화인들이 중국 영화에 대거 진출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주성치를 들 수 있다. 이미 대륙판 코미디 영화들(미인어, 서홍시수부)은 1970-80년대 홍콩 코미디 영화의 직접적 계승작으로 봐도 될 만큼 큰 영향을 받고 있으며, 사극, SF영화, 애니메이션들도 홍콩 영화인들이 각본이나 스태프로 대거 참여하고 있다. 다만 홍콩 영화의 주류였던 홍콩 느와르, 도박물, 에로물 등은 중국 검열기준 때문에 대륙에서는 나오지 못하고 있다.

5세대를 부정하며 나온 게 지하전영인데, 중국에서 영화 감독이 되려면 국가에 허락을 받아야 하고 제작, 개봉에도 검열 등의 제약이 많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 자장커 같은 감독들이 국가의 허가를 받지 않고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개방이 꽤 진행된 뒤의 2000년대 이후로는 제작환경은 둘째치더라도 멀티플렉스의 보급 등으로 시장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대형 배급사나 영화사가 생기기 시작했으며 중국의 넓은 땅덩어리와 인구수의 특성상 규모가 커졌다.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드는 제작진이 어느 정도 중국 시장의 눈치를 보는 것도 이젠 예사가 된 수준. 더군다나 스크린퀴터제로 시장점유율도 50-60%대로 한국보다 약 10% 가량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상황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2019년 유랑지구가 개봉하면서 중국영화로는 전랑 2 다음 가는 흥행순위를 세웠다.

2020년 코로나로 인해 침체된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영화 시장이 되자 중국 국가전영국은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중국을 “강력한 문화대국”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자신감의 이유로는 장진호 전투를 배경으로 한 선전 영화 "장진호"의 기록적인 대흥행(약 1조 5천억)이 클 것이라고 매체들은 분석하고 있다.

5. 특징[편집]



5.1. 중국판 블록버스터의 등장[편집]


2000년대 이후 자본이 확충되고 영화인력이 풍부해지자 화려하고 거대한 규모의 영화를 많이 제작하고 있다. 2010년대 말부터 중국판 블록버스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블록버스터는 다양한 장르가 있으며, 주로 《전랑 2》와 같은 액션물, 몽키 킹 시리즈와 같은 판타지물, 《몬스터 헌트》와 같은 애니메이션, 《미인어》와 같은 코미디, 《유랑지구》 등의 SF물도 있다.

이런 블록버스터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미화 5000만 달러 이상 1억 달러 안팎의 제작비를 쓰고 있다. 다만 돈을 쓴다고 무조건 흥행이 되는 것은 아니라서 2018년작 판타지 영화 《아수라》는 미화 1억 천만 달러의 돈을 쏟아붇고도 개봉 1주간 박스오피스가 700만 달러라는 사상 초유의 망작이 되었고, 제작사 스스로 일주일 만에 모든 배급라인에서 필름을 내려버렸다. DVD 발매나 스트리밍도 일체 없을 정도로 흑역사가 되고 있다.


5.2. 애니메이션 영화의 흥행[편집]


2010년 이후에는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대폭 성장했다. 중국의 애니메이션 회사들은 이미 1980년대 TV용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왔고, 이후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회사 및 미국 애니메이션 회사로부터 하청을 받았아서 기술축적을 해왔는데, 2010년대 들어서 중국의 영화자본이 독자영화를 제작할 수 있을만큼 성장하고, 중국 정부의 지원정책이 맞물려서 2010년대 중국 애니메이션 영화 퀄리티도 급성장하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제작비가 많아봐야 1000만 ~ 2000만 미국 달러 선인 것에 비하면, 중국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많으면 5000만 달러 이상의 제작비도 마구마구 투입한다. 중국 내수시장 자체가 크고 중국 영화 시장 자체가 엄청나게 크니까 여러가지 방법으로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애니메이션 영화도 제작비가 커진다.

중국산 애니메이션으로 최초로 대박을 낸 작품은 《몬스터 헌트》이다. 이 작품은 2015년 당시 중국 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흥행기록은 3억8천만 달러.[18] 이 때문에 중국 영화 제작자들은 애니메이션 영화의 가능성을 주목하게 되었고, 수많은 자본이 몰리게 되었다.[19]

2018년까지는 중국 애니메이션 영화는 전연령가인 어린이 애니메이션만 정부한테서 지원받고 개봉 허가되었지만, 작일청공이 최초로 청소년 및 성인향 애니메이션으로 중국 정부의 지원사업을 따냈다. 오히려 한국보다 나은 게, 할리우드 애니메이션만 흥행하는 한국과는 달리 중국은 자국산과 일본산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이 흥행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시장만 보면 중국이 한국보다 훨씬 다양성이 잘 되어 있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검열도 완화되어 2019년에는 지나친 일본정서 및 황당무계를 이유로 그동안 수입이 금지되었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개봉해서 대흥행을 하기도 했다.

중국 애니메이션 흥행 순위(2019년 11월 현재)[20] 출처

순위
영화명
국적
개봉일
1
나타지마동강세
중국
2019.7
2
주토피아
미국
2016.3
3
코코
미국
2017.11
4
슈퍼배드 3
미국
2017.7
5
쿵푸팬더 3
미국
2016.1
6
서유기지대성귀래
중국
2015.7
7
웅출몰 원시시대
중국
2019.2
8
쿵푸팬더 2
미국
2011.5
9
웅출몰 변형기
중국
2018. 2
10
너의 이름은.
일본
2016. 12
11
나의 붉은 고래
중국
2016. 7
12
도라에몽: 스탠바이미
일본
2015. 5

중국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한국 영화 시장에도 상당히 많이 들어오는 편이다. 《나의 붉은고래》, 《벅스 프렌즈》, 《꼬마영웅 바비》 등등이 들어왔다. 다만 한국에서는 할리우드산 이외의 영화는 흥행이 안되는지라, 개봉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2019년나타지마동강세》는 중국 애니메이션 영화 사상 최고 박스오피스 기록(2위)[21]를 세웠다. 이 영화는 중국에서 금기시하는 영적존재가 나오는 판타지지만, 고대소설인 《봉신연의》를 각색한 것이기 때문에 무리없이 나올 수 있었다. 2019년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영화인 《스노우 몬스터》도 중국 자본과 스탭이 상당히 참여했다.


5.3. 관제영화 제작[편집]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문화에 의한 선동을 중시하는 공산당 정책 아래 195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무수히 관제영화가 제작되었다. 이것은 중국 공산당 집권의 정통성을 주지시키고, 정부 시책을 홍보하려는 것으로, 공산당 집권 이후 창작의 자유가 없어진 현실에서[22] 중국 영화인들이 그나마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게 해준 긍정적인 면도 있긴 하다.

한국에서 1980년대까지 나왔던 배달의 기수반공영화의 대륙판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영화는 주제까지 배달의 기수와 똑같은데 대체로 중일전쟁,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의 활약상을 그린영화(건군대업, 건국대업), 모범적인 인물의 전기영화(대표적으로 1960년대 순직한 군인 레이펑이나 그밖의 모범적인 학자나 군인들이 주인공), 그리고 정부업적 홍보(려해료, 아적국) 등의 영화가 정부나 군의 대폭 지원을 받아 나오기도 한다. 이는 한국에서 국뽕영화라고 놀림을 받던 영화들을 중국에서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제작하는 셈이다. 배우들은 이런 영화에 출연을 거절하면 중국판 블랙리스트에 올라 이후 중국내에서 연예활동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좋든 싫든 출연할 수밖에 없다. 한국도 1960~80년대에는 반공영화나 반공드라마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출연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과 비슷하다.

이런 영화는 현재까지도 계속 나오고 있는데, 2019년작 《나와 나의 조국》은 역대 흥행 9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출연한 모든 배우들이 노개런티로 나왔다고 한다.

2020년에는 코로나 19를 극복해내는 과정을 다루는 선전영화를 제작한다고 한다.관련 기사 그 결과 최미역행이라는 영화가 나왔다.

꼭 정부주도의 관제영화가 아니더라도 상업영화사들이 흥행을 위해 애국주의를 강조한 소위 "국뽕영화"들이 정부나 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나오기도 한다. 이런 부류의 영화는 전랑 2, 홍해행동, 특수부대: 스카이 헌터 등이 있는데 이 중 전랑2와 홍해행동은 대박을 냈다.


6. 문제점[편집]


중국 영화 시장은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노다지 시장 중 하나인 건 확실하나, 문제점들도 많다.

6.1. 엄격한 검열과 소재의 제한[편집]


옛날 60-70년대 선전영화만 제작되었을 때보다는 한결 나아졌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의 1980년대와 비슷한 수준의 엄격한 심의 기준을 지니고 있어서 정치나 사회 관련 소재는 다루기가 힘들며, 기껏해봐야 하위 관료나 중간직 관료를 비판하는 수준에 그친다. 물론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독립영화나 지하영화들은 나오고 있지만, 절대로 상영되거나 동영상 사이트에 걸리거나 DVD로 나오지 못하며, 해외로 몰래 반출되어 상영되거나 파일공유로 제한된 수의 영화팬들에게만 공개된다.

물론 60-70년대보다는 사정이 좀 나아져서, 공산당도 과오라고 시인하는 문화대혁명이나 대약진운동을 다루는 영화는 특별히 상영이 용인되며, 중국 의료제도나 사법당국을 비판적으로 다룬 《나는 약신이 아니다》(我不是药神)[23] 같은 영화도 나오긴 했다. 하지만 집권 세력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거나 공산당의 집권 과정이나 혁명과정[24]을 비판적으로 보는 영화는 무조건 상영 불가이며, 딱히 상층부를 겨냥하지 않더라도 고위층의 심기를 건드리는 영화일 경우에도 얄짤없이 상영금지다. 하지만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사회성 있는 영화들은 계속 나오고 있다. 이중 일부는 중국에서는 걸리지 못하고 해외에서만 상영되기도 한다.

그래서 중국 내에서 한국의 사회 고발이나 독재정권하에서의 일, 시위를 다루거나 풍자한 영화를 볼 때마다[25] 중국에서는 비슷한 사건이 있어도 영화로 제작하지 못하거나 제작하기가 힘들다면서 씁쓸해하는 영화애호가들이 많기도 하다.

특히 정치성이 있거나 사회풍자성이 있는 영화 이외에도 검열 당국이 범죄미화, 미신조장, 풍기문란 등의 이유를 들어 가위질을 하기 때문에 범죄물이나 판타지물[26], 공포물, 에로물들은 절대로 나오지 못한다. 예를 들어 <보헤미안 랩소디>는 동성애에 관련된 몇 장면이 잘린 채 개봉되었다. 일본군의 난징대학살을 다룬 <난징 난징>의 경우 일본군의 잔혹성을 고발한다는 취지에서 상영하는데 별 문제 없이 보이긴 했지만, 학살의 잔혹성과 강간의 선정성이 문제되어서 중국에서도 상당 부분이 잘린 채 개봉했다.

문제는 이 검열이 중국 자국 내에서 제작된 영화의 상영 뿐만 아니라 외국 영화들이 중국에 상영될 때도 걸리기 때문에 외국 영화사들이 중국 업체가 아님에도 중국 정부 눈치를 보면서 자국 영화를 대폭 수정해서 내놓곤 하는데, 이것 때문에 종종 본국에서 말썽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자세한 건 Band in China 항목 참고.

의외지만 시간이 갈수록 검열 기준은 점점 완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위에 쓴 의료제도의 문제점을 고발한 <나는 약신이 아니다>나 사후세계를 다룬 <코코>는 몇년 전만 해도 개봉하기 힘든 영화였는데, 시진핑 정부하에서 검열을 통과해서 정식 상영되었다. 2017년 12월 개봉한 방화 또한 현실비판 수위 때문에 두달 연기되기는 했지만, 결국 공식 상영되었다. 또한 2019년에 11월에 개봉한 소년시절의 너(소년적니(少年的你))는 중국에서도 심각한 학교폭력, 과열된 대입입시, 경찰의 무능을 다루고 있는데, 이 영화도 검열에 통과되어 상영되었다.[27] 사회영화도 현 정부에 직접적인 화살을 돌리지 않는 한 검열을 통과할 수 있게 된 듯. 다만 중국 정부의 검열이 본격적으로 해외에서 문제시된 것도 시진핑 집권 시기인데다 아직도 많은 해외 작품이 검열되고 있어 여전히 갈 길은 멀다.

6.2. 영화계의 부정부패[편집]


이외에도 영화업계 내부의 문제점도 심각한데 영화지원 조항을 악용하여 연예인들과 감독들이 제작비를 비싸게 받거나 외부로 빼돌려서 해외탈세 수단으로 쓰고 주가조작에 쓰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저질 영화 투자가 꾸준히 진행되어서 원래는 상영되지 않아도 될 영화들이 상영된다거나 하는 현상도 있다.

이런 사례로 중국 사정당국에 걸려서 크게 털린 연예인이 바로 판빙빙이다. 2018년작 <대폭격>을 제작하면서 판빙빙이 거액을 다른 나라로 빼돌렸다가 거액의 벌금을 물었다. 패왕별희에서 만주족 극장관리인으로 나온 잉다도 영화 제작을 이유로 다른 나라로 자금을 빼돌리다가 걸려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6.3. 할리우드 블랙아웃[편집]


스크린 쿼터제의 극단적인 형태이다. 할리우드 뿐만 아니라 외국 영화를 못 거는 기간이 있다. 중국 영화를 보호한다는 목적인데, 자세한 내용은 할리우드 블랙아웃 문서를 참조.

6.4. 상영 조작[편집]


파일:중국 상영조작.png
중국 영화관에는 일부 영화 제작사와 영화 배급사, 영화관 사업체 등이 관객이 없어도 서로 짜고 영화관 전체 하나를 매진처리를 하는 상영 조작을 한다. 그래서 매진되었다는 영화관에 실제로 가보면 정작 사람이 없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상영조작 행태는 이전부터 중국에 만연했으나 영국 BBC의 보도로 외부에 알려지게 된다. 기사

이렇게 상영 조작을 한 영화들은 주로 저급 영화들인데, 순익분기점을 넘을 정도로 충분한 수입을 거둔 것으로 회계를 조작, '주가를 올려서 수익을 얻거나 혹은 국외탈세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이는 사람들의 많은 주목을 많이 받아 횡령이 어려운 명작 영화 대신 사람들이 등한시되어 횡령이 쉬운 저급 영화에 대한 투자가 조금씩 있기 때문에 중국 영화의 품질 상승을 막는 요인이 되고있다.

중국 정부가 이런 행위를 하면 미국 달러화 기준으로 7,000달러에서 74,000달러까지 벌금을 부과하고 영화 사업체에 벌점을 매기거나 영업 정지를 하는 조치를 하지만 벌금이 그다지 크지 않은데다가, 공무원들의 비호로 쉽게 근절되지 않고 있다.

7. 다른 나라 영화와의 관계[편집]



7.1. 대한민국[편집]


한국 영화와 중국 영화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흥행은 썩 좋지 않았으나, 2010년대 초반부터 합작영화가 만들어졌다.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로 《미스터 고》, 《엽기적인 그녀 2》 정도만 알려져 있지만, 이외에도 정우성, 고원원이 주연한 《호우시절》(2008, 허진호 감독), 장쯔이, 송혜교가 출연한 《태평륜》(2014, 오우삼 감독), 이민호탕옌이 주연한 《바운티 헌터스》(2016, 신태라 감독) 등 여러 편이다. 2016년 발효된 한한령으로 주춤해졌기는 했지만 그래도 배우가 아닌 스탭의 교류는 계속되고 있다.

한한령 이전 중국에서는 한류세가 강했기 때문에, 한국 영화인 영입에 적극적이었고, 적지 않은 한국 영화배우나 제작진이 중국 영화판에 진출해서 합작하는 일이 많았다. 기술적인 부분에서 교류가 많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한국 영화의 영향을 보이는 중국 영화가 적지 않다. 특히 중국 영화의 특수효과는 한국 특수효과사들이 수주한다. 《유랑지구》는 덱스터 스튜디오가 특수효과를 수주해서 중국 영화제에서 상까지 받았다.

2000년대 초반 당시에 중국에서 한국 영화가 음지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 가운데서 수익을 거둔 영화는 얼마 없었다. 당시에는 푯값이 비싸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었던 데다가 영화관도 그리 많지 않아 할리우드 대작이나 아니면 중국에서 제작한 대형 영화 정도를 빼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보다는 TV나 DVD로 영화를 보는 것을 선호하기도 했다.

문제는 적지 않은 한국 영화 블록버스터작들이 "정치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작품은 금지"라는 중국 심의기준에 걸려서 중국 영화관에 영화를 걸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대표적으로 친구[28],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등등) 다만 인터넷으로는 막지 않기 때문에 볼 사람은 다 봤다. 그 덕택에 기껏 영화를 개봉해도 수익을 얻지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정치성이 매우 강한 한국영화인 《1987》이나 《택시운전사》의 경우에는 아예 더우반이나 기타 중국 영화 사이트에서 검색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금지어가 되어 있다.

2016년 한한령 후에는 한국 영화는 비정치적인 영화라도 엄격히 수입이 금지되고 있고, 한국 배우가 나온 작품은 합작영화도 상영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스탭의 진출은 활발한 편이고, 최신 한국영화가 중국 인터넷 상에서 나돌아다니기는 한다.

중국 시장이 커지면서 한국에서 할리우드의 프로모션 활동(배우 방한) 등이 늘어났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한국 자체시장도 크긴 하지만, 중국에서의 간접 홍보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할리우드 배우들의 프로모션이 당국의 상당한 규제를 받는데 반해, 방한은 매우 자유롭고, 할리우드 스타의 방한 뉴스는 중화권 언론에 도배되면서 중국에서 간접 홍보효과가 있다.

7.2. 미국[편집]


중국이 할리우드를 변화시키는 방법

1980년대부터 중국 내에서 미국 영화가 몇 편씩 수입되기 시작한 이래로 합법적으로 수입된 것이든 공식수입이 되지 않은 것이든 간에 많은 작품들이 인기를 끌었고 기본적으로 30%대의 점유율을 보여주었다. 더군다나 미국 영화가 다른 영화 시장인 인도 영화 시장에서는 점유율이 10% 아래일 정도로 영 젬병이다보니 중국의 경제력이 성장하고 관객수가 늘기 시작하자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고, 중국 영화사들이나 영화사업을 하는 기업들도 할리우드에 투자하고 있다. 이미 레전더리 픽쳐스완다 그룹에 넘어갔고, 그외에도 개별 작품에 많은 중국 자본이 들어와 있는데, 일부 미국인들은 이를 비판적으로 보기도 한다.

이는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합작 영화들은 중국영화로 간주되어 할리우드 블랙아웃을 통과하는 것이 쉽기도 하거니와, 2010년대 들어 할리우드 작품들의 제작비가 너무 올라서 중국 이외에는 더 이상 투자할 만한 투자처를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드웨이 해전을 다룬 《미드웨이》만 해도 미국의 애국영화라고 할 수 있지만 중국 투자가들의 도움을 받아서 간신히 제작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할리우드와의 합작영화도 자주 제작되는데, 《그레이트 월》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베스트 키드》(2008년판), 《대폭격》(2018), 《어바머너블》(2019) 등도 있다.

2018년에 개봉한 《베놈》에 텐센트가 투자했는데, 미국 내에서는 가장 미국적인 장르인 슈퍼히어로 영화에까지 중국자본이 손대는 것을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사실 2010년대부터 상당수의 할리우드 영화에 알리바바 그룹이나 완다 그룹, 텐센트와 같은 중국 자본이 제작 등에 투자했다. 2019년에는 중국 성향과 안 맞는 쿠엔틴 타란티노에게조차 투자했는데, 바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다. 이에 대해 일부 미국언론들이 비판적으로 보도하기도 한다.[29]

그러나 중국 시장에서 큰 수익을 낸다는 점 때문에 반대로 소재에서 중국 당국이나 중국인들이 민감해 할 소재들을 다루는데 애로사항이 꽃필수밖에 없다는 얘기이기 때문에 중국을 비판하거나 신경을 거슬릴 만한 내용을 자체검열하기도 한다. 엄격한 규제와 검열은 자국영화뿐만 아니라 중국에 수입되는 외국영화라도 예외가 없다. 예를 들어 《월드워Z》의 좀비병 발원지가 중국이었다가 한국으로 급히 수정된 것이 대표적 예이다. 자세한 사항은 중국화 참조 바람.

또한 중국이 기피하는 연예인들은 수입금지를 맞을까봐 할리우드에서도 출연시키지 않고 있다. 대표적으로 1990년대말 중국의 사법제도를 비판한 《레드 코너》에 출연하고 달라이 라마를 옹호하며 오래 전부터 티베트를 지지한 반중 연예인으로 찍힌 리처드 기어.


7.3. 인도[편집]


의외지만 발리우드와의 교류도 있다. 그 이유는 스크린 블랙아웃제 및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견제심리로 인도 영화 수입을 대안으로 삼은 것이다. 사실 중국의 인도 영화 수입은 역사적으로도 유구하며 개혁개방 전인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인도 영화가 할리우드에 앞서 중국에 먼저 수입가능하게 된 이유는 정치적 금기 대신 사회적 금기가 많은 인도 사정상, 인도 영화에도 여러 제약이 있는데[30], 이 제약은 의외로 중국의 엄격한 심의기준과도 맞아 떨어져서 인도 영화가 수월하게 중국시장에 들어올 수 있었다.

중국에서 개봉된 역대 인도 영화서 《당갈》(2016)은 미화 2억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이것은 자국보다 흥행 성적이 더 좋아서 전세계에서 가장 흥행을 했고, 인도 영화도 중국에서 대박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이후로 발리우드에서도 중국팬을 겨냥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중국에도 인도영화 팬들이 상당히 있다. 《당갈》로 대박을 낸 제작자이자 주연배우 아미르 칸은 2018년 뮤지컬 영화 《시크릿 슈퍼스타》를 제작했고, 방중해서 대대적인 프로모션을 했으며 CCTV 등 유력 방송사들이 앞다투어 그를 예능이나 대담프로에 출연시켰다. 이 영화 역시 중국에서 대박(1억 2400만 달러)을 내서 자국보다 거의 10배(약 13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특히 당갈 때는 인도측 분배율이 12.5%에 불과했으나, 당갈의 성공 이후 이후 25%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이외에도 합작영화도 종종 제작되는데 성룡의 《쿵푸요가》(2017), 《나는 약신이 아니다》(2018) 모두 발리우드와의 합작영화이다.


7.4. 기타 중화권[편집]


위에서 지적했듯이 중국 영화판은 여러 중화권 영화인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노릇을 하고 있다. 홍콩의 경우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이뤘던 대부분의 감독들이나 배우들은 현재 대륙에서 일하고 있다. 오우삼, 서극이 대표적. 이들은 모두 홍콩이 중국에 귀속된 시기를 전후로 중국 간섭을 우려해 해외진출했으나, 할리우드에서는 자리잡지 못하다보니 결국 중국으로 갔다. 그리고 대만도 중국영화판에 스탭과 배우들의 진출이 활발하다. 임심여, 왕대륙, 서기 등등이 있다.

이렇게 되다보니 홍콩과 대만 영화계는 완전히 대륙영화에 종속되어 버렸고[31], 특히 거액의 제작비를 들인 작품은 수익을 위해 대륙의 심의기준을 의식하다보니 독자성은 퇴색하고 있다. 게다가 홍콩과 대만은 대부분의 영화사들이 아예 대륙 자본에 넘어 가기도 했다. 예를 들어 홍콩 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골든하베스트는 일찌감치 2004년 대륙계 자본에 넘어갔다.


8. 영화관[편집]


중국이 먹고 살 만하게 되자 2010년대 들어 한국의 1990년대 말처럼 영화관 체인들이 우후죽순으로 커지고 있다.


9. 역대 흥행 베스트 10[편집]


중국 역대 영화 흥행 순위

( 참조, 중국 내 기준)

[접기/펼치기]
순위
영화 제목
제작연도
박스오피스 (단위: 위안)
1위
장진호
2021년
57억 7,546만 위안
2위
전랑 2
2017년
56억 8,874만 위안
3위
안녕, 리환잉
2021년
54억 1,330만 위안
4위
나타지마동강세
2019년
50억 3,502만 위안
5위
유랑지구
2019년
46억 8,680만 위안
6위
만강홍: 사라진 밀서
2023년
45억 4,568만 위안
7위
탐정 당인 3
2021년
45억 2,154만 위안
8위
어벤져스: 엔드게임
2019년
42억 5,038만 위안
9위
장진호지수문교
2022년
40억 7,114만 위안
10위
유랑지구 2
2023년
40억 2,888만 위안





10. 영화 평점 사이트[편집]




11. 영화제[편집]


  • 금계장: 중국의 영화제로 대만의 금마장에 대항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2.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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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영화 시장은 북미 영화 시장이라고 해서 캐나다 영화 시장이 합쳐져 있는데, 캐나다 영화 시장은 12억 달러 수준이다. 그래서 미국 영화 시장만 따지면 2018년 기준 106억 달러 정도 한다.[2] 중국 정부의 영화산업 진흥책의 시한이 2026년까지다.[3] 물론 이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 탓이지만 2020년대에 중국의 영화시장 규모가 미국보다 더 커질 것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영화 시장 전문가들이 예상해 왔다. # # (2019년 예상) # (2016년 예상)[4] 대약진운동문화대혁명은 현 중국 집권세력도 피해자이기 때문에 비판이 가능하다.[5] 사실 한국도 1960년대부터 1987년 이전까지는 이런 식으로 외화 수입을 제한했었다.[6] 도라에몽은 중국에서도 국민 애니메이션급이다.[7] 명탐정 코난 극장판도 꾸준히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에 자주 개봉되긴 했다. 왜색이 심한 극장판은 개봉에서 짤리는 식으로 견제가 들어가서 그렇지. 보통 2-3년에 한 개씩은 개봉시킨다.[8] 뮬란의 원형이 되는 작품이다.[9] 이 회사는 1920-30년대의 상하이 시내를 재연한 거대한 세트장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색계와 같은 홍콩 영화뿐만 아니라 암살(2015)밀정 같은 한국 영화도 찍었다.[10] 당시 중국에는 TV는커녕 라디오도 희귀했다.[11] 중화인민공화국의 정통성을 건드리거나 현 집권세력을 비판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지만, 그 이외의 비판(공산당도 과오라고 시인한 문화대혁명이나 대약진운동에 대한 비판)은 그럭저럭 넘어간다.[12] 천카이거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홍위병으로 활동했으며, 장이머우는 농장에 내려가 삽질하고 있었다.[13] 비슷한 시기 한국은 1인당 영화관람 횟수가 1.1회 정도까지 하락했던 수준. 사실 영화관 관람횟수 하락 추세는 사실 한국이나 중국이나 비슷했다.[14] 홍콩영화의 몰락 원인중의 하나가 이 해적판의 범람이었다. 1990년대말 홍콩 뒷골목에 가면 해적판 비디오CD를 1,000원 안팎의 가격으로 살 수 살 수 있었다. 당시 홍콩은 인터넷은 안되지만 PC는 많이 보급되었기 때문에 저런식의 해적판이 많았고, 이는 대륙으로 흘러들어가서 중국의 인터넷 환경이 열악했던 2000년대 초반까지 해적판은 널려 있었다. 한국도 사실 그 당시 불법CD는 없었지만 불법 다운로드가 극심하긴 했다.[15] 한국도 멀티플렉스의 도입이 이루어지면서 1인당 영화 관람 횟수가 1인당 1회 수준에서 4회 수준으로 오르게 된다.[16] 즉, 영화표값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중산층들이 대규모로 늘어났다는 뜻이다.[17] 이는 중국영화만의 문제는 아니며, 할리우드나 한국에서도 예술영화는 흥행성이 좋지 않아서 대체로 독립영화 수준으로 제작이 이뤄진다. 해외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한국 영화들은 대부분 흥행성이 좋지 않다. (시(영화)인트로덕션) 등등.[18] 이 기록은 다음해 나온 미인어가 5억달러를 마크해서 깼고, 몬스터 헌트의 흥행기록은 현재는 아예 10위권 밖으로 벗어났다.[19] 2018년에 나온 속편 몬스터 헌트 2는 더 자본을 투입했으나 흥행에 저조했다.[20] 다만 몬스터 헌트는 실사가 들어가 있어서 이 순위에는 들어가있지 않다. 몬스터 헌트의 흥행 성적을 포함하면, 주토피아를 제친 2위에 해당한다.[21] 중국 내에서의 매출로 미화 7억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렸는데, 할리우드의 《코코》가 월드와이드로 8억달러 조금 넘은 것을 보면 대단한 흥행기록이다.[22] 사실 국민당 치하에서도 검열이나 소재억압은 마찬가지였는데, 그래도 국민당 시절에는 상업영화는 자유로이 제작할 수 있었다.[23] 해당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변호인이나 도가니 같은 한국 영화들을 많이 참고했다고 하며, 시나리오에 있어서도 한국의 의료사고 사례를 참고했다고 한다. 그래서 전형적인 한국 영화 스타일이라는 평이 많은 편. 흥행도 대성공으로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 잡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24] 공산당은 집권 후 토지개혁을 위해 지주들을 모조리 숙청했는데, 이들 상당수가 수용소에 가거나 처형되었다.[25] 예를 들면 박하사탕이나 실미도,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 1987 등.[26] 단, 고전에 기반을 둔 것은 허용된다. 서유기봉신연의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은 여럿 나왔다.[27] 단, 정부의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서인지, 영화가 끝나고 엔딩 그레딧이 올라가기 전에 '중국정부와 각종 정부 관련 단체가 학내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홍보성 동영상을 넣었다.[28] 정치성은 없지만 "범죄 미화"적 요소가 있기 때문에 금지.[29]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일본자본도 우후죽순처럼 할리우드에 투자했고, 소니 픽처스가 이때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이때도 미국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던 것으로 봐서는 미국 영화계 우려도 어느정도 한 몫하는 것도 있다.[30] 예를 들어 러브신 금지, 복잡한 인도의 정치-종교-사회 사정상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재 금지.[31] 다만 중국만 탓할 것은 못되는 게 대만은 WTO 가입을 위해서 1987년에 스크린쿼터제를 폐지했는데 그 이후로 대만 영화의 점유율이 하락 일로를 달려서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대만 영화계가 사실상 멸망당했다고 무방할 정도로 개판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당시 대만 영화계에서 타이완 뉴웨이브라고 통칭될 정도로 좋은 작품들을 상당수 내놓았지만 시장논리에 밀려버린것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대만 영화계가 어느정도 회복은 하고있지만 점유율은 고작 20%에 미달하는 수준이다. 독자성을 유지하려면 자국영화 점유율이 일정 수준을 넘어야되지만 대만 영화가 이를 넘지 못해서 문제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