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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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중국 공산당 문장 옐로.svg 중국공산당의 최고지도기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中国共产党中央委员会

Central Committee of the Communist Party of China


▲ 제18차 대회 (2012년)
다른 이름
중공중앙(中共中央)
2023년 기준
회기

제20기(第二十届)
(2022년 12월 23일 ~ )
설립근거
중국공산당 규약 (제2장 제10조)
지위}}} "당의 최고지도기관"[상설]
상위 조직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
기율기관
중국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총서기
시진핑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시진핑
리창, 자오러지, 왕후닝, 차이치, 딩쉐샹, 리시
사무실 주소
베이징시 시청구 푸유제 12호
北京市西城区府右街12号

1. 개요
2. 설립 근거
3. 연혁
4. 중앙위원회의 구성과 산하 조직
4.2. 정치국
4.3. 정치국 상무위원회
4.4. 중앙위원회 서기처
4.5. 중앙군사위원회
5. 기타 하위 조직
5.1. 활동부서
5.2. 직능부서
5.3. 직속사업단위



1. 개요[편집]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中国共产党中央委员会(Zhōngguó Gòngchǎndǎng Zhōngyāng Wěiyuánhuì)중국공산당평시[*] 최고지도기관으로 중국공산당의 중앙당이라고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중국공산당의 최고지도기관은 전국대표대회(=당대회)이나, 전국대표대회는 5년에 한번 꼴로 개회하는 비상설회의체이므로 평시엔 전국대표대회에서 선출한 중앙위원회가 전국대표대회를 대행한다.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의 관계와 비슷하다. 중화권에선 보통 중공중앙(中共中央) 또는 당중앙(党中央)이라고 한다.

2. 설립 근거[편집]


제2장. 당 조직제도
제10조. 당은 자기의 강령과 규약에 의하여 민주주의중앙집권제에 따라 조직된 통일적인 전일체이다. 당의 민주주의중앙집권제의 기본원칙은 다음과 같다.
 ① 당원 개인은 당조직에 복종하며 소수는 다수에 복종하며 하급 조직은 상급 조직에 복종하며 전당의 매개 조직과 전체 당원은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중앙위원회에 복종한다.
 ② 당의 각급 지도기관은 그에 의하여 파출된 대표기관과 비당조직의 당조를 제외하고는 모두 선거에 의하여 선출된다.
 ③ 당의 최고지도기관은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와 그에 의하여 선출된 중앙위원회이다. 당의 지방 각급 지도기관은 지방 각급 당대표대회와 그에 의하여 선출된 당위원회이다. 각급 당위원회는 동급 대표대회 앞에 책임지며 사업을 보고한다.
(후략)

- 중국공산당 규약 (2017년 개정) #

3. 연혁[편집]




4. 중앙위원회의 구성과 산하 조직[편집]


파일:중공중앙조직도.png
5년 주기로 개회하는 전국대표대회에서 중앙위원회를 선출하고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보통 1중전회)에서 총서기와 정치국 위원 등 최고지도부 및 중앙군사위원회를 구성한다.

제2장. 당 조직제도
제22조.
당중앙위원회의 임기는 5년으로 한다. 전국대표대회를 앞당겨 진행하거나 연기하여 진행할 경우에는 그 임기도 따라서 변경된다. 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위원의 당년한은 5년 이상이여야 한다. 중앙위원회 위원수와 후보위원수는 전국대표대회가 결정한다. 중앙위원회 위원들중에 결원이 생긴 경우에는 중앙위원회 후보위원들 가운데서 득표수에 따라 차례로 보궐한다.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중앙정치국의 주관하에 1년에 1회 이상 소집한다. 중앙정치국은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 사업을 보고하며 그 감독을 받는다.
중앙위원회는 전국대표대회 휴회기간에 전국대표대회의 결의를 집행하며 당의 전반 사업을 지도하며 대외적으로 중국공산당을 대표한다.
(후략)

- 중국공산당 규약 (2017년 개정) #
전국대표대회에서 370명 가량을 뽑아 중앙위원회를 구성한다. 중앙위원회의 기수는 직전 전국대표대회의 회차를 기준으로 한다.[예] 위원의 임기는 5년이며 의결권이 있는 중앙위원과 의결권이 없는 후보위원으로 구분된다. 정식 중앙위원의 수는 205명으로 고정되어 있다. 하술할 정치국 상무위원과 정치국원을 제외한 나머지 180명의 중앙위원은 장관급의 대우(중국에서는 부/성의 책임자라는 의미의 성부급(省部级)으로 부른다.)를 받는다. 다음은 중앙위원들이 역임하고 있는 당직 혹은 공직의 대략적인 목록이다.



  • 대외연락부, 통일전선부 등 당중앙 주요 부서의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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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4중전회 어떤회의인가, 공산당 '중전회'란?
중앙위원과 후보위원들의 집회를 중앙위원회 전체회의, 줄여서 중전회(中全会)라고 한다. 중전회는 징시호텔에서 기본 연 1회 집회하나 전국대표대회가 개최되는 해와 그 다음 해에는 각 두 번씩 집회한다. 매 5년 전국대표대회가 치러지는 해 가을에 두차례(7중전회와 새로운 기 출범후 1중전회), 새 지도부 출범 이듬해에 두차례(3월 양회 개회전 국가직 인선을 위한 2중전회와 가을 3중전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고로 중앙위원회 한 기() 당 중전회는 기본적으로 7번 열린다.

통상 1중전회는 전국대표대회 폐회 다음 날 바로 소집돼 정치국과 총서기 등의 지도부를 구성하는 회의다. 중국 공산당은 지난 2017년 10월 18차 전국대표대회 폐회 다음날인 10월 25일 열린 19기 1중전회에서 시진핑을 중앙위원회 총서기로 선출했다.

2중전회는 통상 가을 전국대표대회 이듬해인 3월 양회 개회 직전에 열려 5년간 정부 운영을 책임질 국가직 인사문제를 결정한다. 19기 2중전회는 시진핑 총서기를 국가직인 국가주석에, 리커창을 국무원 총리에 재추대했다.

3중 전회는 통상 5년을 임기로 하는 중앙위원회의 새로운 기(届)가 시작된 후 1년만인 가을(10월~11월)에 열리며 1년간 경제운영 결과를 토대로 향후 9년 집권기간(4년*5년)동안의 새로운 집정이념을 제시한다. 경제 사회적으로 역사적인 정책들이 논의 결정되기 때문에 3중전회는 흔히 ‘개혁회의’로 불린다.

대표적인 3중전회는 11기 3중전회(1978년 12월 18~22일)로 문화대혁명의 혼란을 수습하고 중국 현대화건설에 관한 결의(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선언)을 이끌어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

4중전회는 당 건설의 중요 방침과 전년도 3중전회 지도 노선의 수정 및 개혁 심화방안을 다루고, 5중전회는 국민경제 계획 심의에 중점을 두며, 6중전회는 특별한 고정 안건이 없는 회의로 전해진다. 7중전회는 보통 차기 전국대표대회 개회 준비를 위해 열리는 회의다.

제2장. 당 조직제도
제23조
당의 중앙정치국,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와 중앙위원회 총서기는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선거한다. 중앙위원회 총서기는 반드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가운데서 선출되여야 한다.
중앙정치국과 그 상무위원회는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휴회기간에 중앙위원회의 직권을 행사한다.
중앙서기처는 중앙정치국과 그 상무위원회의 사무기구이며 그 구성원은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가 인선을 제의하고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통과한다.
중앙위원회 총서기는 중앙정치국 회의와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를 책임지고 소집하며 중앙서기처의 사업을 조직지도한다.
당중앙군사위원회 구성원은 중앙위원회가 결정하고 중앙군사위원회는 주석책임제를 실행한다.
매기 중앙위원회에서 선출된 중앙지도기구와 중앙지도자는 다음기 전국대표대회 회의기간의 당의 일상사업을 조직지도하며 다음기 중앙위원회에서 새로운 중앙지도기구와 중앙지도자가 선출될 때까지 사업을 계속한다.
(후략)

- 중국공산당 규약 (2017년 개정) #

4.1.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중국공산당의 수장으로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보통 1중전회)에서 선출된다. 국무원 당조서기(국무원 총리)와 함께 정치국 상무위원회 당연직이다.

4.2. 정치국[편집]


중국공산당을 지도하며 정책을 토의·결정하는 기관으로서 중앙위원회 위원 중 24명을 당 중앙정치국 위원으로 뽑는다. 정치국에 들어갈 정도면 이제 명실상부한 최고 권력기관의 일원으로, 상무위원이 아닌 정치국원은 국가지도자급, 혹은 국가급 기관의 부책임자라는 의미의 부국급(副国级)으로 불린다. 부총리급으로 예우되는데 예외적으로 당 서열 8위인 국가 부주석은 부통령급이고 9위인 중앙정치법률위원회 서기는 총리급으로 본다.(단 정치국원이나 정치국상무위원 겸직일 경우 해당)

또한 이들 24명도 당서열이 앞서나 그중 7명은 사실상 권력 서열 최고 정점인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이 된다.

다음은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으로 겸임되는 공직 리스트이다.

  •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7명)

  • 공산당 중앙정치법률위원회(정법위) 서기 궈성쿤
경찰검찰, 법원을 담당한다. 말이 정치국원이지 총리급으로 예우하며, 대한민국으로 본다면 사법부와 경찰조직의 수장이다. 막강한 보직으로 한때는 정치국 상무위원 중 1명이기도 했으며, 말이 9위지 무장경찰까지 휘하에 두어 중앙군사위 주석의 군통수권까지 분점하는 실세 보직이었다. 그러나 전임 서기였던 저우융캉의 전횡과 정변시도로 인해 정치국원으로 강등되고, 무장경찰부대의 통수권을 중앙군사위로 넘겨주고, 중앙서기처 소속이 되면서 총서기의 명령계통 하에 놓이게 되었다.

  • 직할시의 시위서기(베이징시차이치, 상하이시리창, 톈진시의 리홍종, 충칭시천민얼) 4명[1]
  • 부총리급 성의 성위서기(현재 광둥성의 리시, 신장 자치구천취안궈) 2명[2]
33개의 일급 행정구(직할시, 성, 자치구, 특별행정구) 중 경제적으로 앞서 있거나, 국가안보를 위해 중요한 직할시 또는 성의 수장들이다. 물론 각각이 수천만에서 많으면 1억이 넘는 주민들의 생활과 안전을 책임지는 만큼 하나하나가 중요한 자리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상하이 서기는 상무위원, 거기서 더 나아가 국가주석이나 총리로 나아가는 지름길로 여겨진다. 장쩌민주룽지가 상하이 서기 출신이고, 잠깐이지만 시진핑 역시 상무위원 진입 직전에 상하이 서기를 거쳤다. 비리혐의로 낙마한 천량위를 제외하고, 우방궈, 황쥐, 위정성 등 이후 부임한 상하이 서기들은 전부 상무위원 자리를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 현임 7위 상무위원인 한정 상무부총리도 직전에 상하이 서기를 거쳤다. 그 다음 노른자위로는 광둥성 서기가 꼽힌다.

  •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수석부위원장 왕첸[3]
  • 수석부총리(상무위원)를 제외한 국무원 부총리 3명
제2부총리 쑨춘란은 보건 및 교육, 문화,[4] 제3부총리 후춘화는 상업과 농업, 제4부총리 류허는 금융과 산업, 사회복지를 담당한다.
  •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기율위) 부서기 겸 중화인민공화국 국가감찰위원회 주임 양샤오두[5]
  •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장유샤, 허웨이둥 2명[6]
이상은 전인대와 국무원, 기율검사위 등 상무위원이 책임을 맡고 있는 국가 혹은 당 조직의 부수장들이다.

  • 공산당 중앙위원회 소속 부총리급 부서의 장(중앙조직부장 천시, 중앙선전부장 황쿤밍)[7]
  • 공산당 중앙위원회 판공실 주임 딩쉐샹[8]
  • 공산당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 양제츠[9]
  • 공산당 중앙재경위원회 판공실 주임 류허[10]
이상은 중국공산당 내 주요 부서의 수장 혹은 실질적 책임자들이다. 이들은 총서기와 서열 5위 상무위원인 중앙서기처 제1서기의 지시를 받는다. 아래의 3가지 보직은 총서기의 참모로서[11] 전통적으로 정치국의 일원은 아니었으나, 총서기의 권한이 강해지며 정치국에 편입된 케이스다.

이렇게 상무위원 7명과, 상무위원이 아닌 정치국원 17명이 24명의 중앙정치국 위원이 된다. 아래 보직은 부총리급으로 예우받거나 위상이 정치국원에 못지않은 것으로 간주되지만, 현재(19기)는 정치국 위원이 맡고 있지는 않은 보직들이다. 중국의 정치상황 변동에 따라 이 보직들 일부는 다시 정치국원이 맡게 될 수도 있다.

  • 중화인민공화국 부주석
  • 국무원 국무위원(국방부 외교부 재경부 공안부 부장)
  • 국무원과 정협의 비서장[12]
  • 중앙위원회 소속 부의 부장(통일전선부, 대외연락부)
  • 최고인민법원 및 최고인민검찰원장
  • 24명의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13]


4.3. 정치국 상무위원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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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순
1위
시진핑
(국가 주석)
2위
3위
4위
리창
(국무원 총리)
자오러지
(전인대 상무위원회 주석)
왕후닝
(정협 전국위원회 주석)
5위
6위
7위
차이치
(당 중앙서기처 제1서기)
딩쉐샹
(국무원 상무부총리)
리시
(당 기율검사위 서기)
←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상무위원 (제19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상무위원 (제21기) →



당과 국가의 사실상의 최고 권력 기구이자 최고 의사결정기관으로써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선거로 선출된다. 선출된 7명의 위원은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불린다. 국가주석 겸 당 총서기국무원 당조서기(국무원 총리)는 당연직이며, 그 외의 구성은 고정되어 있지는 않으며 인원도 적을 때는 5인부터 많을 때는 9인까지 늘어나는 등 변화를 겪었으며, 시진핑 총서기 취임 이후에는 7명으로 고정되었다. 주로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국무원 상무부총리, 중앙서기처 제1서기와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등이 상무위원으로 선출되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으로 대입하면 대통령 겸 당대표와 당 원내대표, 5부 요인(국회의장, 국무총리, 대법원장, 헌재소장, 선관위장)과 국회 법사위원장, 감사원장경제부총리와 방통위장이 서로 만나 국가 중대한 사항을 의논하고 결정하는 최고기구나 마찬가지이다. 정치국 상무위원의 직급은 국가기관의 최고책임자라는 의미의 정국급正國級으로 호칭된다.

'68세 이상은 상무위원을 맡지 않는다(七上八下)'는 암묵의 룰이 있다. 시진핑이 68세를 넘은 자신의 오른팔 왕치산을 상무위원으로 유임하여 이걸 깨려 한다는 관측이 있었는데, 일단 그렇게 하지는 않았고 대신 국가 부주석으로 삼았다.

<현 20대 정치국 상무위원회>
※ 다음 인물들이 상무위원(당직)이며 별도의 직책을 겸임한다.
공산당 서열 1위로서 명실상부한 중국공산당, 나아가 중화인민공화국 전체의 최고영도인이지만, 그 실제 위상은 시기에 따라 상당히 변화를 겪었다. 최고영도인은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 주석의 세 가지 직함을 갖고 있는데, 겸임이 제도화된 것은 장쩌민 때부터로, 최근의 일이다. 최고영도인은 총서기 직함을 통해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대표자로서 당 조직을 관할하고, 국가주석 직함을 통해 중국 정부의 국가원수로서 의전과 외교 업무를 수행하고,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직함을 통해 당군인 인민해방군의 최고 통수권자 역할을 한다. 후진타오 시절에는 공산당과 중국 정부의 얼굴로서 대외적으로 중국을 대표하는 역할을 수행했지만 당과 국가의 각종 업무의 결정권은 후진타오가 아닌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있었고, 그의 권한은 상무위원 중 1인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러나 시진핑이 1인 지도체제를 수립하면서 당과 정부의 많은 업무가 총서기의 소관이 되고, 다른 상무위원들에게 상관으로서 보고를 받는 위치가 되면서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로서의 위상을 굳히게 되었다. 급기야 20차 당대회에 들어와서는 반대 계파를 상무위원회에서 일소하고 상무위원단 전원을 본인의 측근 혹은 친시진핑파로 채워 형식적으로 유지되던 집단지도체제가 붕괴되면서, 시진핑 1인 체제가 확고해지게 되었다.

공산당 서열 2위이자 중국의 정부수반인 국무원 총리. 상무위원 인선에 따라 때로는 3위인 전인대 상무위원장과 서열이 뒤바뀌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국가주석/총서기와 투톱으로 여겨졌고 때때로 정상회담에 국가주석 대신 참여할 정도로 위상이 높았다. 경제 분야에 대해서는 독자적인 결정권을 갖고 있었던지라, 고도성장기 시절에는 주룽지, 원자바오 등의 총리들이 경제성장을 주도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때문에 국무원이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 기술관료들이 득세하고 시장경제 체제가 강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14]가 많았고, 시진핑 집권 이후 당에 중앙재경위를 설치하고 측근인 부총리 류허를 주임으로 앉힌 뒤 경제정책에서도 당의 지도를 강조하는 등 시진핑의 1인 지도체제가 확고해지면서 총리의 위상 역시 예전같지는 않다. 결국 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의 비서장 출신인 리창이 총리로 지명되며, 총리가 총서기의 지시를 받는 구도가 굳어지게 되었다.

공산당 서열 3위이자 중국의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상무위원장. 국회의장에 대응하는 보직으로 당연히 그에 따른 외교업무도 같이 수행하고 있다. 타국의 입법부에 비해 전인대가 고무도장이라 그 위상에 비해 실권은 적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1년에 한 번 열리는 전인대 전체회의와는 달리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수시로 열리며 각종 정책 및 법률을 수립 및 집행하는 기관이니, 홍콩보안법 같은 중요 법률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전인대 상무위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 부총리와 각 부 부장(장관) 등 상무위원 아래의 공직에 대해서는 전체회의가 폐회중일 때에도 수시로 상무위원회를 통해 임면을 결정[15] 할 수 있는 만큼, 실제로는 정부의 인사권을 총서기와 공유[16]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요직임은 분명하지만 그 존재감은 총리에 비해서는 옅은 편.

공산당 서열 4위이자 중국의 상원 격인 정치협상회의의 주석. 중앙정치에서의 파워는 적은 편이지만 중국공산당의 전통적인 통일전선 전략의 책임자로서 경제인, 과학기술인, 문화예술인, 화교 및 홍콩/마카오 출신 인사 등 중국공산당 바깥의 저명인사들을 포섭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헝다그룹의 창업자인 쉬자인, 배우 성룡, 판첸 라마 등이 정협의 구성원이다. 20차 당대회에서는 중앙서기처 제1서기,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자리에서 당 이데올로기를 담당하던 왕후닝이 정협 주석에 임명되고, 정치국원으로 승격된 스타이펑 통일전선부장이 정협 제1부주석을 겸직하면서 대만에 대한 정치공작을 전담하는 부서임을 드러내며 이전에 비해 힘이 실리게 되었다.

  • 차이치: 중앙서기처 제1서기(당직), 중앙판공청 주임(당직)
공산당 서열 5위이자 중앙위원회의 실무를 총괄하는 중국공산당 중앙서기처의 제1서기로서 총서기를 보좌한다. 중앙서기처 제1서기는 중앙서기처 서기이면서 정치국원인 중앙조직부와 중앙선전부 부장의 상관으로서 공산당에서 매우 중시하는 인사와 선전, 이데올로기 실무의 책임을 맡고 있다. 공직과 당직 중에서는 무조건 당직이 우위에 있고 3위와 4위 상무위원은 국회의장에 해당하는 자리니[18] 실제로는 당내 3인자에 가까운 포지션이고, 원래는 이 서열 5위의 상무위원이 차기 대권주자의 자리였다. 이 때는 대외적으로 중국 정부를 대표하는 국가부주석과 고급 당료의 교육을 담당하는 중앙당교 교장을 겸임[19]하여 후진타오 1기 시절 이 자리를 맡았던 쩡칭훙은 후진타오의 입지까지 위협[20] 할 정도로 위세가 막강했다. (단, 상무위원이 9인이던 시절에는 선전담당 상무위원이 별개로 존재했음) 그러나 시진핑의 1인체제 수립 이후 차기주자를 지명하지 않고, 국가부주석은 시진핑의 측근 왕치산이, 마찬가지로 중앙당교 교장은 시진핑의 측근 중앙조직부장 천시가 차지하면서 위상이 예전만 못한 감이 있다. 20차 당대회 이후 시진핑의 30년 지기인 차이치가 중앙서기처 제1서기로 임명되고, 이례적으로 중앙위원~정치국원급이 맡던 총서기 비서실장 격의 중앙판공청 주임까지 겸임하면서 총서기를 견제하는 보직으로서의 의미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고 최고지도자를 제일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일본의 내각관방장관의 역할과 같은 직책을 새롭게 부여받았다.

  • 딩쉐샹: 국무원 당조부서기(당직), 국무원 상무부총리(공직)
공산당 서열 6위이자 중국의 경제부총리 격인 국무원 상무부총리(수석부총리). 총리 리창에 이어 상무부총리 자리까지 시진핑의 비서장 출신인 딩쉐샹이 차지하면서 20차 당대회 이후 시진핑은 국무원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다. 딩쉐샹은 현재 상무위원 중 1명이 맡는 중국공산당의 홍콩마카오공작소조 조장을 겸임하고 있다.

  • 리시: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당직)
공산당 서열 7위이자 공산당원을 감찰하고 징계하는 중국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의 서기. 정부보다 당이 우위에 있는 중국 체제의 특성상 당원에 대한 감찰을 담당하는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법원과 검찰보다 우위에 있다. 때문에 부패 혐의를 받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처벌은 보통 이 중앙기율검사위원회에서 시작된다. 이후 당적이 박탈되면 검찰과 법원에서 최종 판결을 내리는 식. 원래도 막강한 기관이었지만 자오러지의 전임자인 왕치산 시절 전직 정치국 상무위원인 저우융캉, 정치국원인 링지화를 처벌해 그 위세를 보여주면서 위상이 더욱 커졌다.


4.4. 중앙위원회 서기처[편집]


약칭은 중앙서기처. 중앙위원회의 일상 사무 처리가 주된 업무로, 정치국 상무위원회보다는 격이 떨어지지만 주요 권력기관으로 여겨진다. 서기국이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과거 소련만큼은 아니고 정치국원이면서 서기처 소속은 아닌 최고 요직 상하이시 서기 같은 자리도 있지만, 서기처 소속이면 같은 정치국원들 중에서도 권한이 상대적으로 크다고 봐도 된다. 서기는 제1서기를 포함해 총 7명이다. 대체로 조직부장, 선전부장, 중앙판공청 주임, 기율검사위 부서기[21]는 서기처의 단골 멤버지만 나머지 두 자리는 정법위 서기, 통일전선부장, 국무원 부총리 또는 비서장, 중앙군사위 부주석, 정협 비서장 등으로 일정하지 않아 매 기수마다 당내 역학관계에 따라 꽤나 변화가 있는 편이다.[22] 대체로 서기처에 속하는 업무는 총서기와 제1서기가 좀 더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업무라고 봐도 된다.[23]

한국으로 치면 이 곳의 제1서기는 당의 부당수이면서 원내대표 겸 당 사무총장 보직. 나머지 여섯 명은 중앙조직부장, 중앙선전부장, 중앙판공청 주임, 기율검사위원회 부서기, 정법위 서기, 통일전선부장[24]으로 정치국원급에 해당하는 당내 각 부서의 책임자들이 모여 부서간 입장을 조율하고 실무를 협의하는 기관이다. 국무회의 아래 국무조정실장이 주관하는 차관회의가 있는 것과 비슷한 셈.

4.5. 중앙군사위원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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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민해방군의 통수기관으로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보통 1중전회)에서 주석과 부주석을 선출한다.

5. 기타 하위 조직[편집]



5.1. 활동부서[편집]




5.2. 직능부서[편집]


  •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조직부(中共中央组织部) : 인사관리부서로 당원의 영입과 교육, 당내 인사배치를 담당한다.
  •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선전부(中共中央宣传部) : 언론과 창작물 등 미디어에 대한 통제를 담당한다.
  •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통일선전공작부(中共中央统一战线工作部) : 민주당파(위성정당), 무소속 인사, 종교계 인사, 해외 인사와의 연계를 담당하는 기구로 쉽게 말해서 중국공산당에 예속(당원은 아니지만 공직자인 사람들도 포함)되지 않은 중국인들(대만인들도 중공 입장에서는 중국인이기 때문에 포함)과의 연계를 담당한다고 보면 된다.

  •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대외연락부(中共中央对外联络部) : 당 차원의 외교부서,
  •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사회공작부(中共中央社会工作部)
  •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법위원회(中共中央政法委员会)


5.3. 직속사업단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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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설] [*] 전국대표대회가 폐회중일 때[예] 19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선출한 중앙위원회면 19기(十九届) 중앙위원회[1] 대한민국으로 치면 장관급 서울특별시장과 부산 광주 인천광역시장겸 특 광역시 당위원장 정도이다.[2] 대한민국으로 치면 경기도지사제주특별자치도지사겸 도당위원장이 장관급이 된 경우. 천취안궈는 21년 말 신장위구르 당서기에서 물러나 정치국원 신분은 유지하며 당 농촌공작영도소조 부조장으로 이동하여 취소선 표기[3] 대한민국으로 치면 국회 부의장(여당 소속). 우리 국회부의장처럼 의전서열은 높지만 정치국원 중에서는 무게감이 떨어지는 자리인 것은 어쩔 수 없다.[4] 암묵적으로 여성에게 할당되는 자리로, 최근 4기 동안 우이, 류옌둥, 쑨춘란 등 3명의 여성 부총리가 거쳐갔다. 아무래도 경제성장과 직접 관련되지 않다보니 권한은 크지 않은데 고생스럽기만 한 자리로 인식되는 편. 실제로 제2부총리 자리는 대부분 역임자의 마지막 공직으로, 최근 40년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진한 인사는 없다. 정원 24명의 정치국 내에서 여성은 보통 1명~2명으로, 상대적으로 한직으로 인식되며 승진 가능성이 낮은 보직을 맡는다.[5] 대한민국으로 치면 감사원장[6] 최선임 제복군인으로 군 통수권자인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보좌하는 역할을 한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합참의장, 국방장관(거기에 더해 인민해방군에는 당군의 특성상 국방장관, 연합참모부 참모장(한국의 합참의장)과 동격인 정치공작부 주임, 기율검사위 서기가 있다.) 위에 통수권자를 보좌하는 부통수권자 2명이 더 있는 셈이다.[7] 전자는 대한민국으로 치면 청와대 인사수석 겸 여당 조직부총장, 후자는 청와대 홍보수석, 방통위원장 겸 여당 홍보위원장. 이들은 한국으로 치면 당 사무부총장 격인 중앙위원회 서기직을 겸직한다. 당이 모든 것을 지도하고 언론의 자유가 제약된 통제국가인 중국 특성상 중앙조직부장은 당직뿐만 아니라 정부의 장관급 이하 인선, 국영기업의 수장 등 민간분야까지 좌지우지하는 핵심보직이고, 마찬가지로 중앙선전부장은 전국의 모든 언론보도를 통제하는 자리다. 당연히 24명의 정치국원 중에서도 요직으로 평가받는다. 전임 조직부장이었던 자오러지는 서열 6위 상무위원인 중앙기율위 서기로 영전했다.[8] 대한민국으로 치면 대통령비서실장겸 당 대표 비서실장겸 경호처장. 총서기를 정치적으로 보좌하는 것 뿐만 아니라 중국 요인들의 안전을 책임지는(한편으로는 감시하는) 핵심 요직으로, 당연히 총서기 본인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자리이다. 당연히 정치국원 중 상하이 당서기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자리이고 역사적으로 중국 정계의 쟁쟁한 실력자들이 거쳐갔다. 전임이었던 리잔수는 이 보직을 역임한 후 공로를 인정받아 서열 3위의 전인대 상무위원장으로 영전했다.[9] 일반적으로 외교부 장관은 보통 정부 내 서열이 못해도 5위 안에는 들어가는 요직이지만, 중국의 외교 담당 국무위원(부총리급 대우)과 외교부장의 당내 서열은 장관급 중앙위원(205명)에 불과해 책임과 권한을 갖고 외교 교섭을 진행하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또 외교 교섭창구가 외교부(국무원)과 대외연락부(당)으로 이원화되어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이에 따라 19기에 들어와 태스크포스 개념이었던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를 격상시켜 당 중앙에 당과 정부 양쪽을 통합해 지휘하는 중앙외사공작위(조장과 부조장은 각각 국가주석과 국가부주석이 맡는다.)를 두고, 실무 책임자인 판공실 주임을 정치국원으로 승격시켜 외교 사령탑 역할을 하도록 했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국가안보실장겸 외교안보특별보좌관.[10] 대한민국으로 치면 정책실장겸 경제정책특별보좌관. 외사공작위와 마찬가지로 19기에 들어와 태스크포스 개념이었던 중앙재경영도소조를 격상시켜 당 중앙의 지휘를 받도록 확대개편한 기관으로, 이를 통해 총리 영역이던 경제정책에 대한 권한을 총서기인 시진핑이 가져왔다고 평가받는다. 현재 시진핑의 최측근인 부총리 류허가 겸임 중이므로 취소선으로 표시했다.[11] 대한민국으로 치면 각각 청와대 비서실장 겸 경호처장, 청와대 안보실장, 청와대 정책실장[12] 대한민국으로 치면 국무조정실장과 국회 부의장(상원)[13] 의전상 부총리, 정치국원과 동격이긴 하다. 아무튼 국가급 기관인 정협의 부주석이니 부국급(副国级)의 정의에 부합하기 때문. 물론 현실적으로는 권력투쟁에서 밀린 당 원로들을 예우하기 위한 자리에 가깝고, 이들 중 실제 정치적 역할이 있는 건 정협 비서장 정도밖에 없다. 다만 발개위 주임 허리펑처럼 실권이 있는 중앙위원급(장관급) 보직과 겸임하는 경우 중앙위원과 정치국원 사이 대우를 받는다고 봐도 무방하다.[14] 당은 발목이나 잡고 권력투쟁이나 일삼는 반면, 국무원 총리는 경제에 집중하며 실제 인민들의 생활 발전에 도움을 줬다는 이미지가 있다. 이는 당중앙의 사회주의 이념체계를 크게 건드리지 않으면서 상대적으로 당의 지도에서 자유로운 국무원에 경제 문제를 일임한 의도적인 안배였지만, 총리의 대중적 인기와 그를 기반으로 한 정치적 존재감이 총서기를 추월할 정도가 되니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시진핑이 권한을 강화하고 리커창이 많은 견제를 받는 상황에 대해서 말하자면 시진핑 개인의 권력욕과 둘 사이의 권력투쟁이라는 표면적 현상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시진핑의 권력이 기존 관례와 당원들의 예상을 벗어날 정도로 지나치게 강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의 바탕에는 사회주의 가치가 무너지고 절대적이어야 할 당의 권위가 훼손됨을 우려하는 당 내부의 여론이 있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당 원로들과 각 파벌 간부 등 주요 구성원들의 공감대에 의거한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15] 친강 외교부장이 이 규정을 통한 전인대 상무위의 의결을 거쳐 해임되었다.[16] 국가직은 전인대에서 결정하지만, 겸임하는 당직의 인사는 당 중앙위원회에서 결정하기 때문이다. 수시 임면권은 원래는 없었으나 2021년 전인대 조직법 개정을 통해 새로 생긴 권한이다. 현재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시진핑의 측근인 자오러지인 만큼 통과 당시에는 시진핑이 국무원을 통제할 도구를 획득하며 권력을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만약 전인대 상무위원장과 총서기의 정치적 계파가 엇갈린다면 강력한 견제도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17] 당연히 이런 자리들에는 실무를 맡는 정치국원이나 중앙위원급 인사들이 위원으로 참여한다.[18] 물론 상무위원들은 본업 외에도 상무위원간 업무분장을 통해 당과 정부 내 여러 업무들을 나눠 맡고 의사결정권을 가진 여러 소조나 위원회[17]에 조장이나 부조장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전인대 상무위원장과 정협 주석이라고 권한이 전무하다고 오해하면 안 된다. 전임 장더장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홍콩과 마카오 업무를 맡았고, 현임 왕양 정협 주석은 신장과 티베트를 관리하고 있다.[19] 중앙당교 교장은 재교육을 위해 이 곳을 찾는 차세대 관료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게 되며, 간부 양성을 중시하는 중국공산당의 특성상 당의 방침과 이념을 교육하는 기관으로서 중앙당교의 역할이 작지 않다. 결국 차기 대권주자가 자기 사람을 키워낼 수 있는 자리인 셈이다. 후계자 자격으로 이 자리를 맡은 후진타오와 시진핑은 중앙군사위 부주석까지 겸임했다.[20] 당연히 서기처를 장악하게 되면 총서기의 지도력이 크게 약화되기 때문이다. 당시 조직부장이었던 허궈창, 선전부장 류윈산, 공안부장 저우융캉까지 장쩌민과 쩡칭훙의 지시를 받는 상하이방이었으니 어찌나 견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던지 결국 쩡칭훙은 자신의 퇴진을 조건으로 후진타오의 후계자를 시진핑으로 결정하는 캐스팅보트를 행사하게 되었다.[21] 19기부터 국가감찰위 주임까지 겸임[22] 심지어 13기에서는 중앙조직부장이었던 쑹핑이 서기처에서 빠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총서기인 자오쯔양을 배제하고 당 조직업무를 직접 관장하기 위한 중앙고문위 주임 천윈의 조치였다고 한다. 한국으로 치면 청와대 인사수석이 전직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현직 대통령은 배제되는 일이 일어난 셈인데. 당시 총서기가 실무 책임자에 불과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23] 예를 들면 18기의 정법위 서기 멍젠주는 서기처 멤버가 아니었지만, 19기의 궈성쿤은 서기처 소속이기 때문에 정법계통에서의 시진핑의 영향력이 더 강해졌다고 봐도 무방한 것.[24] 역사적으로 정치국에 속한 적이 더 많았지만, 19기에서는 정치국원이 아니었고 20기에서 다시 정치국에 진입한다. 외부 관찰자들은 집권 2기까지는 내부 단속에 정신없던 시진핑이 대만 병합에 힘을 싣기 위해 통일전선부의 위상을 높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