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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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2.1. 중용
2.2. 신독(愼獨)
2.3. 지인용
2.4. 성(誠)
3. 원문 해석
4. 여담



1. 개요[편집]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저술한 책이다. 논어, 맹자, 대학과 더불어 사서에 속하며, 유교의 기초가 되는 책이다. 원래는 대학과 마찬가지로 예기 제31편 중용편에 속한 글이었으나, 남송 시대 정자와 주자 등의 성리학자들에 의해 독립하여 출간되었다.

예전에는 중용에서 다루고 있는 형이상학적인 내용이 자사의 시절에 존재하였을 것이라 보기 힘들었기 때문에, 중용을 송대에 만들어진 글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최근에 중국의 한나라와 전국 시대 고대 무덤에서 중용의 글귀가 쓰여져 있는 죽간[1]과 백서[2]가 발굴되면서, 중용의 글귀가 적어도 자사가 활동하던 시절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따라서 중용이 자사의 저서일 가능성도 매우 높은 편이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판본은 대체로 남송 주자의 수정을 거친 중용장구를 따른다. 그는 중용 전체를 33장으로 나누었으며, 각 장의 이름은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다.[3]

중용이라는 말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내가 남에게 베푸는 말과 행동 또는 감정표현[4]에 부족함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지나친 것인지를 살펴서, 상황에 맞는 적절함(中[5])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庸=用=施 이다. 즉, 상대방에게 베푸는 말과 행동에서 적절함을 지켜라는 것이 중용이다. 남에게 베푸는 말과 행동이 부족하면 상대는 원망하게 되고, 남에게 베푸는 말과 행동이 지나치면 상대는 부담스러워 한다. 그 과(過)와 불급(不及)의 중간이 중용인 셈. 이는 오륜인 부부관계, 부자관계, 군신관계, 형제관계, 친구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관계에서 내가 받기 싫어하는 감정표현을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중용의 가장 큰 원칙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눈치만 보며 남의 기분을 맞춰줘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만약에 인간관계에서 그 상대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면, 그것에 대해 정중하게 지적해 줄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 중용이다. 이럴 때는, 남의 비위만 맞추며 맞장구를 치는 것은 도리어 편향된 것이며, 만약 오랫동안 생각한 결과 그것이 옳다고 생각된다면 상대의 잘못에 '자신의 주관'을 정중하게 말할 줄도 아는 것이 중용이다.

즉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자신의 마음 속 원대한 뜻은 흔들리지 않고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감정은 상황에 맞게 잘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자신의 이익이나 남들의 소문에 따라 계산적으로 살지 말고, 자신이 스스로 세운 올바른 원칙만은 지키겠다는 마음을 가지되,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세련되게 표현할 줄 아는 것이다.


2. 상세[편집]



2.1. 중용[편집]


중용은 상황에 따라서 말과 행동(감정표현)을 해야 되는지, 해선 안되는지를 아는 판단력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상황에서 그 말과 행동이 지나친 것인지 모자른 것인지 그 적절함을 판단하는 것이 중용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중용은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성인들이 미리 그 기준을 만든 것이 예(禮)인 것이다.[6] 보통은 예(禮)를 따르면 그 적절함을 얻는다.

하지만 성인이 정해 놓은 예(禮)라 할지라도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 또한 중용이다. 이러할 때에는 형식보다 본질과 감정이 우선하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에[7] 의해서 윗사람을 존경하고 아랫사람을 아끼는 그 형식에 부족함이 생길지라도, 그 마음이 충분히 전해진다면, 그것 또한 예(禮)라고 하기에 충분하다고 공자[8]는 말한다.

중(中)이란 갑골문에서 깃대를 뜻한다. 깃대에 달린 깃발은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휘날리지만 그 중심에 있는 깃대는 굳건히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중용도 마찬가지다. 옳은 신념은 깃대처럼 중심을 잡고 있어야 되며, 바람이 사방에서 몰아쳐도 기울어지지 않고 상황에 맞게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 중용이다.[9]

여기서 '자신의 중심'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를 들자면, 감정표현을 상황에 맞게 잘하여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서도, 상대의 큰 잘못에 대해서 충고(忠告)를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이 또한 중용이라는 것. [10] 즉, 중용은 '상대방에게 맞추라'고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중용이란, 자신이 살아오면서 심사숙고 끝에 '옳다'고 생각한 것들을, 상황에 맞춰서 남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세련되게' 말할 줄 아는 것이다. (또는 그러한 자신의 생각에 따라 행동할 줄 아는 것.)

공자는 '지나친 것은 모자른 것과 같다(과유불급)'이라 말했는데, 중용의 뜻을 잘 말해주고 있다. 누군가에게 말을 할 때 지나치게 공격적이거나 설득하려고만 한다면 제대로 된 말과 행동이 아닐 것이다. 반대로, 상대의 기분이 상할까봐 남에게 너무 무르게만 얘기한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제대로 표현한 것이 아닐 것이다. 또한 남의 불행 앞에서 상대에게 충고를 해주려고 한다면 그것 역시 제대로된 말과 행동이 아닐 것이다. 반대로, 남의 분명한 잘못 앞에서 상대에게 충고해주지 않는다면 자신의 생각이 전달되지 않을 뿐더러 똑같은 잘못을 또 행할 것이다.

종종 '중간만 가라'는 말이 중용으로 쓰이는데, 이것은 중용이 아니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똑같이 따라하는 것은 분위기에 휩쓸리는 자의 판단이지 중용이라고 할 수 없다. 서로 다른 가치판단의 중간에 있으면서 회색분자처럼 아무 생각없이 중도를 지키는 것 역시 중용이 아니다. 상황이 계속 변한다고 지나치게 신중해져서 시간이 지나도 선택하지 않는 것은, 그 상황을 회피하고 판단을 미루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서로 다른 판단을 지켜보고 있다가 최후에 유리한 쪽을 "적절하게" 선택하는 것도 기회주의자이지, 중용이 아니다. 즉, 중용은 중립을 지켜라는 말도 아니고 확실해질 때까지 판단을 미뤄라는 말도 아니라, 판단을 하되 그 판단을 상황에 맞게 하라는 것이다.

공자의 사상이 여자를 부정적으로 인식한다고 생각할 수 있어도[11], 적어도 중용의 사상 앞에서는 여자를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기본 개념 자체가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마라."[12]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남자는 여자의 입장이 되었을 때 받기 싫은 말과 행동들을 여자에게 하면 안되고, 여자는 남자의 입장이 되었을 때 받기 싫은 말과 행동들을 남자에게 하면 안된다. 이렇게 양쪽의 두 관점을 전체적으로 살핀다면 남녀의 문제 뿐아니라 빈부, 인종, 이념, 종교 등에서 대립되는 현대적 문제들에 있어서도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현대의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중용의 필요성이 다시금 강조되고 있기도 하다.


2.2. 신독(愼獨)[편집]


'신독'이란, 혼자 있을 때도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고 스스로를 반성하는 것을 말한다.

남이 안 본다고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남이 안 볼 때도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이다. 전자와 후자는 외부적으로 보이는 평가가 비슷해 보일지는 몰라도, 자신의 마음가짐에 따른 실제 '삶'에서 다르게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중용의 제일 처음에서 「 "군자는 그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경계하고 삼가며, 그 들리지 않는 곳에서도 두려워하고 염려한다. 감추는 것보다 더 잘 보이는 것은 없으며, 작은 것보다 더 잘 나타나는 것은 없다." 」고 말한 것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삶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남이 안 볼 때 마음대로 해버린다면 결국 남이 볼 때에도 무의식적으로 그 행동이 드러날 것이다. 언제까지 숨기고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또한,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위해서이다. 상황에 따라 다른 사람과 사물에 함부로 대한다는 것의 결론은, 결국 자신 스스로의 삶과 행동에 대해서도 그렇게 함부로 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2.3. 지인용[편집]


중용 20장에서 "그러한 사람이 있어야 그러한 정치가 일어나고 그러한 사람이 없으면 그러한 정치는 그치게 된다."라고 말하면서 정치에 있어서 '방법과 시스템'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공자는 강조한다. 그렇다면 '사람'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길지만 요약하자면, 자신을 닦아야 그러한 '사람'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자신을 닦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그것이 바로 '지인용'이다.

"배움을 좋아하는 것은 지(知)에 가깝고, 힘써 행하는 것은 인(仁)에 가깝고,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勇)에 가깝다.

이 세 가지를 알면 곧 자신을 닦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요, 자신을 닦는 방법을 알게 되면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게되고,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면 곧 천하의 국가를 다스리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다."

지인용이란, 배워서 지식을 쌓고, 쌓은 지식을 통해 실제로 도덕(仁)을 행하며, 이런 실천의 과정 중에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부끄럽게 여기는 용기를 가져야 된다고 공자는 말한다.

즉, '(도덕적 삶을) 배움', '말과 행동의 일치', '자신의 부족한 점을 부끄럽다고 생각할 수 있는 용기'로 요약할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은 바로 뒤에 설명할 '성(誠)'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2.4. 성(誠)[편집]


중용을 이루는 방법. 정성스러움. 성실해야함을 말한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말과 행동'(중용)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될까? 오로지 훌륭함(善)을 선택하여 그것에 정성스럽게 한마음으로, 될 때까지 하는 것이다. 남들이 한번에 해내면 자신은 10번을 하고, 남들이 10번만에 해내면 자신은 100번을 해서, 결국 그것을 해내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정성스러우면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의 이치에 통달하게 되는데, 이러한 이치는 점점 확장되어, 세상 돌아가는 이치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사과나무를 갖은 정성을 들여 키우기를 수십년을 하게 된다면, 사과가 자라나는 이치에 대해서 능통하게 될 것이며, 그 사과가 자라고 병드는 이치와 비교해서, 다른 사회생활이나 연애 등의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게 되어, 해보지 않고도 그 적절한 정도를 잘 해낼 수 있다는 것.

중용은 사서 중에서도 제일 마지막에 배우는 것이다. 이는 유교에서 가장 어렵고 핵심적이라는 얘기다. 수천년의 유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말이 "성실" 이라니... 얼마나 맥이 빠지는 결론인가? 하지만 그렇기에 더 대단한 것이다. 성실하지 않고서는 자신을 알 수 없다. 자신을 알 수 없으면 사물의 이치도 알 수 없다. 사물의 이치를 알 수 없으면 세상의 이치를 알 수 없다. 자신의 행복, 가족과 재산, 사회생활, 연애와 부부관계, 권력과 명예에 이르기까지, 어떤 사람이든 성실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누리며 살 수 없는 것이다.


3. 원문 해석[편집]


1장.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 非道也. 是故君子 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하늘의 명령은 본성[13]을 말하는 것이다.
본성에 솔직한 것은 도(道)를 말하는 것이다.
도를 닦는 것은 교육을 말하는 것이다. [14] [15] [16]
도라는 것은 (삶과) 잠시라도 떨어질 수 없으니, 떨어질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다.
이 때문에 군자는 그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경계하고 삼가며, 그 들리지 않는 곳에서도 두려워하고 염려한다.
감추는 것보다 더 잘 보이는 것은 없으며, 작은 것보다 더 잘 나타나는 것은 없으니
그러므로 군자는 그렇게 혼자일 때 조심하는 것이다.
기뻐하고 화내고 슬퍼하고 즐거워 하는 것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 말하고
드러나서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고 말한다.
중(中)이란 천하의 큰 근본이요, 화(和)란 천하가 도달하는 길이니
중과 화를 지극히 하여야 하늘과 땅이 자리를 잡고 만물이 자라게 된다.[17] [18]
2장. 仲尼曰 君子中庸 小人反中庸. 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 小人之中庸也 小人而無忌憚也.
중니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중용하지만 (말과 행동을 적절하게 표현하지만),[19]
소인은 중용을 뒤집는다.
군자가 중용한다는 것은, 군자답게 상황에 맞도록(時中) 하는 것이다.
소인이 중용한다는 것은, 소인답게 아무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20]
3장. 子曰 中庸其至矣乎 民鮮能久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용은 어찌 지극한 것일까? 사람들이 오래할 수 있기가 드물겠구나."[21]
4장. 子曰 道之不行也 我知之矣 知者過之 愚者不及也. 道之不明也 我知之矣 賢者過之 不肖者不及也. 人莫不飮食也 鮮能知味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도가 행해지지 못하는 이유를 내가 알았으니,
지혜로운 자는 지나치고, 어리석은 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가 밝지 못하는 이유를 내 알았으니,
어진 자는 지나치고 어질지 못한 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마시지 않는 이가 없건마는, 맛을 잘 알 수 있기란 드문 것이다"[22]
5장. 子曰 道其不行矣夫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도는 행하여지지 않을 것인가?"
6장. 子曰 舜其大知也與 舜好問而好察邇言 隱惡而揚善. 執其兩端 用其中於民 其斯以爲舜乎.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舜)은 어찌해서 대단히 지혜로운 것인가?
은 묻기를 좋아하고 (주변의) 가까운 말을 살피기 좋아하여서 추한 부분은 숨기고 선한 부분은 드러내 주었다.
그 양극단을 맡아 다스려서[23] 그 적절함(中)을 백성들에게 쓰셨으니, 그래서 (舜)이 되었던 것인가?"
7장. 子曰 人皆曰予知 驅而納諸 罟擭陷阱之中 而莫之知辟也. 人皆曰予知 擇乎中庸而不能期月守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은 모두 '나는 이해했다'고 말하나,
그물이나 덫과 함정의 한가운데로 몰아 넣어도 피할 줄을 모른다.
사람들은 모두 '나는 이해했다'고 말하나,
중용을 선택하고는 한 달도 지키지 못한다."
8장. 子曰 回之爲人也 擇乎中庸 得一善則拳拳服膺 而弗失之矣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안회의 사람됨은 중용을 택하여 한 가지 선(善)을 얻으면, 받들어 가슴에 꼭 지녀서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9장. 子曰 天下國家可均也 爵祿可辭也 白刃可蹈也 中庸不可能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천하의 국가도 고르게 할 수 있고, 벼슬과 봉록도 사양할 수 있으며, 하얗게 빛나는 칼날도 밟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중용은 능히 할 수 없을 것이다."
10장. 子路 問強. 子曰 南方之強與 北方之強與 抑而強與. 寬柔以敎 不報無道 南方之強也 君子居之. 衽金革 死而不厭 北方之強也 而強者居之. 故君子和而不流 強哉矯 中立而不倚 強哉矯. 國有道 不變塞焉 強哉矯 國無道 至死不變 強哉矯
자로가 강함을 물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남방의 강함인가? 북방의 강함인가? 그렇지 않으면 너의 강함인가?
너그러워서 부드러움으로 가르치고 무도(無道)함에 보복하지 않는 것은 남방의 강함이니, 군자가 그렇게 산다.
창검과 갑옷을 단정하게 여미고 죽어도 물러나지 않는 것은 북방의 강함이니, 강자가 그렇게 산다.
그러므로 군자는 뜻을 맞춰 어울리되(和) 흘러 넘치지 아니하니, 강하구나. 꿋꿋함이여!
중심(中)을 세워 기울어지지 아니하니 강하구나. 꿋꿋함이여!
나라에 도가 있을 때는 곤궁함에서 변치 아니하니 강하구나. 꿋꿋함이여!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죽음에 이르더라도 변치 아니하니 강하구나. 꿋꿋함이여!"
11장. 子曰 素[索]隱行怪 後世有述焉 吾弗爲之矣. 君子遵道而行 半途而廢 吾弗能已矣. 君子依乎中庸 遯世不見知而不悔 唯聖者能之.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숨겨져 있는 것을 찾고 괴이한 짓을 행한다면 후세에 기록될 것이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군자가 도를 쫓아 행하다가 그것이 도중에 못 쓰게 되더라도 나는 그것을 그만둘 수 없을 것이다.
군자는 중용에 의거하여 세상을 피해 남들이 알아보지 아니해도 후회하지 않는데, 오직 성인이라야 그렇게 할 수 있다."[24]
12장. 君子之道 費而隱. 夫婦之愚 可以與知焉 及其至也 雖聖人亦有所不知焉. 夫婦之不肖 可以能行焉 及其至也 雖聖人亦有所不能焉. 天地之大也 人猶有所憾 故君子語大 天下莫能載焉 語小 天下莫能破焉. 詩云 鳶飛戾天 魚躍于淵 言其上下察也. 君子之道 造端乎夫婦 及其至也 察乎天地
군자의 도는 쓰이면서도 숨겨져 있다.
부부 사이의 바보같은 면[25]은 함께할 수 있어서 아는 것이지만,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비록 성인이라도 역시 알지 못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부부 사이의 서로 다른 점[26]은 능히 할 수 있어서 행하는 것이지만,
그 지극함에 미쳐서는 비록 성인이라도 역시 잘 할 수 없는 바가 있는 것이다.
하늘과 땅의 거대함은 사람이 오히려 유감스러워 하는 바가 있다.

그러므로 군자가 큰 것을 말하면 천하[27]는 그것을 실을 수 없으며,[28]
작은 것을 말하면 천하는 그것을 쪼갤 수 없다.[29]
시경에 "솔개는 날아 하늘을 거스르고, 고기는 못에서 튀어 오르는구나" 라고 하였으니, 그 위와 아래가 살피는 것을 말한 것이다.
군자의 도는 부부에서부터 만들기 시작해서,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하늘과 땅을 살펴서 안다.[30]
13장. 子曰 道不遠人 人之爲道而遠人 不可以爲道. 詩云 伐柯伐柯 其則不遠 執柯以伐柯 睨而視之 猶以爲遠. 故君子以人治人 改而止. 忠恕違道不遠 施諸己而不願 亦勿施於人. 君子之道四 丘未能一焉 所求乎子 以事父未能也 所求乎臣 以事君未能也. 所求乎弟 以事兄未能也 所求乎朋友 先施之未能也. 庸德之行 庸言之謹 有所不足 不敢不勉 有餘不敢盡. 言顧行 行顧言 君子胡不慥慥爾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도(道)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으니,
사람이 도를 하면서 사람을 멀리한다면 도라고 할 수 없다.
시경에 말하기를 '도끼자루를 베어라, 도끼자루를 베어라. 그 법칙이 멀리 있지 않도다.'라고 하였다.
도끼자루를 잡고서 (다른) 도끼자루를 베어내는 것인데,
곁눈질로 보고는 오히려 (그 법칙이) 멀리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군자는 사람을 가지고 사람을 다스리되 고쳐지면 그만둔다.
충(忠)과 서(恕)는 도에 어긋남이 멀리 있지 않으니,
자기에게 베풀어지기 원하지 않는 것을 또한 남에게 베풀지 말아라.
군자의 도가 넷인데 나는 아직 하나도 잘하지 못하였구나.
자식에게 바라는 것으로써 아버지 모시는 것을 잘하지 못했고,
신하에게 바라는 것으로써 임금 섬기는 것을 잘하지 못했으며,
아우에게 바라는 것으로써 형 섬기는 것을 잘하지 못했고,
벗에게 바라는 것으로써 먼저 베풀어 주는 것을 잘하지 못했다.
덕 베풀기를 행하며 말 베풀기를 삼가서,
부족한 바가 있으면 감히 힘쓰지 아니함이 없으며,
여유가 있으면 감히 다하지 않아서,
말로써 행동을 돌아보게 하고 행동으로써 말을 돌아보게 하니,
군자가 어찌 착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31]
14장. 君子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 素富貴 行乎富貴 素貧賤 行乎貧賤 素夷狄 行乎夷狄. 素患難 行乎患難 君子無入而不自得焉. 在上位不陵下 在下位不援上 正己而不求於人則無怨 上不怨天 下不尤人. 故君子居易以俟命 小人行險以徼幸. 子曰 射有似乎君子 失諸正鵠 反求諸其身
군자는 자신이 본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고 여겨서 행함에, 그 밖의 것을 바라지 않는다.
자신이 본래부터 부귀하고 여겨서 부귀를 행하고,
자신이 본래부터 빈천하다고 여겨서 빈천을 행하며,
자신이 본래부터 오랑캐라고 여겨서 오랑캐를 행하고,
자신이 본래부터 환난 속에 있었다고 여겨서 환난 속에서 행하니,
군자는 들어가서 스스로 얻지 못하는 바가 없는 것이다.
윗자리에 있어서는 아랫사람을 업신여기지 아니하고,
아랫자리에 있어서는 윗사람에게 매달리지 아니해서,
자기를 바르게 하고 (그 잘못의 원인을) 남에게 구하지 아니하면 곧 원망함이 없으니,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아래로는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평온하게 있으면서 명(命)[32]을 기다리지만, 소인은 위험한 짓을 하면서 요행을 바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활쏘기는 군자와 비슷한 점이 있으니,
정곡에서 빗나가면 반대로 (그 원인을) 자기 자신에서 구한다"고 하였다.[33]
15장. 君子之道 辟如行遠必自邇 辟如登高必自卑. 詩曰 妻子好合 如鼓瑟琴 兄弟旣翕 和樂且耽 宜爾室家 樂爾妻帑. 子曰 父母其順[34]矣乎
군자의 도는 비유하자면, 멀리 갈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부터 하는 것과 같으며,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반드시 낮은 곳에서부터 하는 것과 같다.
시경에서 말하기를 "아내와 자식이 좋아하여 한 마음 됨이 거문고를 타는 듯 하며,
형과 아우가 이미 한 마음이 돼서 어울리니 즐겁고도 즐겁도다.
너의 집안을 화목하게 하라. 너의 아내와 자식들이 즐거우리라"고 했으니,
공자께서는 "부모가 가르쳤을 것이다."[35] 라고 말씀하셨다.[36]
16장. 子曰 鬼神之爲德 其盛矣乎. 視之而弗見 聽之而弗聞 體物而不可遺. 使天下之人齊明盛服 以承祭祀 洋洋乎如在其上 如在其左右. 詩曰 神之格思 不可度思 矧可射思. 夫微之顯 誠之不可揜 如此夫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귀신의 덕 됨은 성대하구나.
그것은 보려 해도 보이지 않으며
그것을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아니하되
몸과 사물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천하의 사람으로 하여금 환하게 재계하고 옷을 차려 입게 하여 제사를 받들게 함으로써,
(그 귀신의) 만족스러운 모습이 그 위에 있는 듯 하고 그 좌우에 있는 듯 하다."
시경에 이르기를 "신의 강림하심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인데, 하물며 싫어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으니,
대저 작은 것이라도 드러나게 되니 성실함(誠)이 가려질 수 없기가 이와 같은 것이다.[37]
17장. 子曰 舜其大孝也與 德爲聖人 尊爲天子 富有四海之內 宗廟饗之 子孫保之. 故大德必得其位 必得其祿 必得其名 必得其壽. 故天之生物 必因其材而篤焉 故栽者培之 傾者覆之. 詩曰 嘉樂君子 憲憲令德 宜民宜人 受祿于天 保佑命之 自天申之. 故大德者必受命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舜)이야말로 위대한 효자일 것이다.
덕으로 성인이 되시니, 존귀하기로는 천자가 되시고 부유함은 세상을 다[38] 가지셨다.
종묘는 이를 제사지내고 자손은 이를 보전하였다."
그러므로 큰 덕은 반드시 그 지위를 얻고, 반드시 그 녹을 얻으며, 반드시 그 이름을 얻고, 반드시 그 수명을 얻는다.
그러므로 하늘이 만물을 낳을 때는 반드시 그 재질에 따라서 돈독하게 한다.
그러므로 심겨진 것은 북돋아 주고, 기울어진 것은 엎어 버린다.
시경에 이르기를 "아름답도다, 즐거워하는 군자여. 덕으로 하게 하심이 성대하구나.
백성과 사이가 좋고 사람과도 사이가 좋으니, 하늘에서 녹을 받았도다.
보호하고 돕기를 명령하시고, 하늘로부터 그것을 베푸시네"라 했다.
그러므로 큰 덕이 있는 자는 반드시 천명을 받는다.[39]
18장. 子曰 無憂者 其惟文王乎 以王季爲父 以武王爲子 父作之 子述之. 武王纘太王王季文王之緖 壹戎衣而有天下 身不失天下之顯名. 尊爲天子 富有四海之內 宗廟饗之 子孫保之. 武王末受命 周公 成文武之德 追王大王王季 上祀先公以天子之禮. 斯禮也達乎諸候大夫及士庶人 父爲大夫 子爲士 葬以大夫 祭以士. 父爲士 子爲大夫 葬以士 祭以大夫. 期之喪 達乎大夫 三年之喪 達乎天子. 父母之喪 無貴賤一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걱정 없는 이는 바로 문왕이시다.
왕계를 아버지로 하셨고 무왕을 아들로 하였으니, 아버지는 만들었고 아들은 그것을 계승했다.
무왕은 대왕과 왕계와 문왕의 사업을 이어서, 한번 군복을 차려 입으시니 천하를 가지게 되었다.
몸은 천하에 드러난 명성을 잃지 않으시어, 존귀로는 천자가 되시고 부유함은 세상을 다[40] 가지셨다.
종묘는 이를 제사지내고 자손들은 그것을 보전하였다."
무왕이 말년에 명을 받으시니, 주공문왕, 무왕의 덕을 이루시어 대왕과 왕계를 왕으로 추존하셨고,
위로는 조상들을 천자의 예로써 제사 지내셨다.
이 예(禮)는 제후, 대부 및 선비(士)와 서민들에게도 통용되니,
아버지가 대부이고 아들이 선비라면 대부로써 장례를 지내고 선비로써 제사지내며,
아버지가 선비이고 아들이 대부라면 선비로써 장례를 지내고 대부로써 제사지낸다.[41]
기년상[42](1년상)은 대부에게까지 통용되고 3년상은 천자에게까지 통용되나, 부모의 장례는 귀천없이 한가지이다.
19장. 子曰 武王周公 其達孝矣乎. 夫孝者 善繼人之志 善述人之事者也. 春秋修其祖廟 陳其宗器 設其裳衣 薦其時食. 宗廟之禮 所以序昭穆也 序爵 所以辨貴賤也 序事 所以辨賢也. 旅酬下爲上 所以逮賤也 燕毛 所以序齒也. 踐其位 行其禮 奏其樂 敬其所尊 愛其所親 事死如事生 事亡如事存 孝之至也. 郊社之禮 所以事上帝也 宗廟之禮 所以祀乎其先也. 明乎郊社之禮 禘嘗之義 治國 其如示諸掌乎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왕주공이야말로 효에 막힘이 없으셨구나!
대저 효라는 것은 사람의 뜻을 잘 계승하여, 사람의 사업을 잘 이어가는 것이다.
봄 가을로 그 조상의 묘를 수리하고 그 제기를 진열하여 그 의상을 펴놓고 그 때에 맞는 음식을 올린다."
종묘의 예(禮)는 소목[43]의 순서를 매기기 위해서요,
작위의 순서를 매기는 것은 귀천을 분별하기 위해서이며,
일의 순서를 매기는 것은 어진이를 분별하기 위해서이다.
려수[44]에서 아랫사람을 윗사람으로 여기는 것은 천한 사람에게까지 이르게하기 위해서요,
연모[45]는 나이의 순서를 매기기 위해서이다.
그 자리에 발을 디뎌 그 예를 행하고 그 음악을 연주하며 그 높이던 바를 공경하고 그 친하던 바를 사랑해서,
죽은 자 섬기기를 산 자 섬기는 것처럼 하고, 없는 분 섬기기를 있는 분 섬기는 것 같이 하는 것이, 효의 지극함이다.
교사(郊社)[46]의 예는 하느님[47]을 섬기기 위해서이고,
종묘의 예는 그 조상에게 제사지내기 위해서이니,
교사의 예와 체상[48]의 뜻에 밝으면, 나라를 다스림이 손바닥을 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
20장-1. 哀公問政. 子曰 文武之政 布在方策 其人存則其政擧 其人亡則其政息. 人道敏政 地道敏樹 夫政也者蒲盧也. 故爲政在人 取人以身 修身以道 修道以仁. 仁者人也 親親爲大 義者宜也 尊賢爲大 親親之殺 尊賢之等 禮所生也. 在下位 不獲乎上 民不可得而治矣. 故君子不可以不修身 思修身 不可以不事親. 思事親 不可以不知人 思知人 不可以不知天. 天下之達道五 所以行之者三 曰 君臣也 父子也 夫婦也 昆弟也 朋友之交也. 五者天下之達道也 知仁勇三者 天下之達德也 所以行之者一也. 或生而知之 或學而知之 或困而知之 及其知之 一也. 或安而行之 或利而行之 或勉強而行之 及其成功 一也. 子曰 好學近乎知 力行近乎仁 知恥近乎勇. 知斯三者 則知所以修身 知所以修身 則知所以治人. 知所以治人 則知所以治天下國家矣.
애공(哀公)이 정치를 물으니 공자께서 대답하시기를 "문왕무왕의 정치가 방책에 있어 널리 알려져 있으나,
그러한 사람이 있어야 그러한 정치가 일어나고 그러한 사람이 없으면 그러한 정치는 그치게 됩니다.
사람의 도는 정치에 민감하고 땅의 도는 나무에 민감하니, 무릇 정치라는 것은 부들과 갈대[49]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치를 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 사람을 취함은 자기 자신으로써 하고,[50] 자신을 닦음엔 도로써 하며, 도를 닦음엔 인(仁)으로써 한다.
인(仁)이라는 것은 사람다움이니 친족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크게 여기고,
의(義)라는 것은 마땅함이니 어진 이를 높이는 것을 크게 여긴다.
친족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덜어내고, 어진 이를 높이는 것에 등급을 두는 것이, 예(禮)가 탄생한 바이다.
아래 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백성을 다스리지 못할 것이니,
때문에 군자는 자신을 닦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자신을 닦는 것을 깊이 생각한다면 친족을 섬기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고,
친족을 섬김을 깊이 생각한다면 사람을 알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며,
사람을 알려고 깊이 생각한다면 하늘을 알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천하에 막힘이 없는 도가 다섯이 있는데 그것을 행하게 하는 것은 세 가지이다.
말하기를, 군신과 부자와 부부와 형제와 친구의 사귐, 다섯 가지는 천하의 막힘없는 도이고, 지인용의 세 가지는 천하의 막힘 없는 덕이며, 그것을 행하게 하는 바는 하나라고 한다.
어떤 이는 나면서부터 그것을 알며, 어떤 이는 배워서 그것을 알며, 어떤 이는 곤란해서 그것을 알게 되나,
그들이 그것을 앎에 이르러서는 한가지이다.
어떤 이는 편하게 그것을 행하며, 어떤 이는 이로울 것이라 생각해서 그것을 행하며, 어떤 이는 억지로 힘써서 그것을 행하나,
그 공을 이룸에 이르러서는 한가지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움을 좋아하는 것은 지(知)에 가깝고
힘써 행하는 것은 인(仁)에 가깝고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勇)에 가깝다.
이 세 가지를 알면 곧 자신을 닦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요,
자신을 닦는 방법을 알게 되면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게되고,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면 곧 천하의 국가를 다스리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
20장-2. 凡爲天下國家 有九經 曰 修身也 尊賢也 親親也 敬大臣也. 體群臣也 子庶民也 來百工也 柔遠人也 懷諸候也. 修身則道立 尊賢則不惑 親親則諸父昆弟不怨 敬大臣則不眩 體群臣則士之報禮重 子庶民則百姓勸 來百工則財用足 柔遠人則四方歸之 懷諸侯則天下畏之. 齊明盛服 非禮不動 所以修身也 去讒遠色 賤貨而貴德 所以勸賢也. 尊其位 重其祿 同其好惡 所以勸親親也 官盛任使 所以勸大臣也. 忠信重祿 所以勸士也. 時使薄斂 所以勸百姓也. 日省月試 旣稟稱事 所以勸百工也. 送往迎來 嘉善而矜不能 所以柔遠人也. 繼絶世 擧廢國 治亂持危 朝聘以時 厚往而薄來 所以懷諸侯也.
무릇 천하의 국가를 다스림에 아홉가지 방법이 있다.
말하기를, 자신을 닦는 것, 어진이를 높이는 것, 친족을 친하게 여기는 것, 대신을 존경하는 것, 여러 신하들을 알아주는 것, 서민을 자식으로 여기는 것, 모든 장인들을 위로하는 것, 멀리서 온 사람들을 부드럽게 대하는 것, 제후들을 품는 것이다.
자신을 닦으면 곧 도가 서고,
어진 이를 존경하면 의혹되지 않고,
친족을 친하게 지내면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와 형제들이 원망하지 않고,
대신들을 공경하면 현혹되지 않고,
여러 신하들을 알아 주면 선비들의 보답하는 예가 무겁게 되고,
서민을 자식으로 여기면 백성들이 열심히 일하고,
모든 장인들을 위로하면 재물의 쓰임이 넉넉해지고,
멀리서 온 사람들을 부드럽게 대하면 사방에서 몸을 의탁하고,
제후들을 품으면 천하가 그를 두려워한다.
재계하고 깨끗이 하며 성대한 복장을 갖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자신을 닦는 것이고,
중상모략(讒)을 버리고 여색을 멀리하며 재화를 천히 여기고 덕을 귀히 여기는 것은 어진이를 권장하는 것이고,
그의 자리를 높이고 그의 녹봉을 무겁게 해서 그 좋아하고 싫어함을 같이 하는 것은 친족과 친하게 지내기를 권장하는 것이고,
관(官)이 번성해서 하급관리(使)에게 맡기는 것은 대신을 권장하는 것이고,
마음이 흔들지 않고(忠) 믿으며 녹봉을 무겁게 하는 것은 선비를 권장하는 것이고,
때에 맞추어 부리고 거두는 것을 적게하는 하는 것은 백성들을 권장하는 것이고,
날마다 성찰하고 달마다 시험쳐서 쌀을 주고 일을 칭찬하는 것은 모든 장인들을 권장하는 것이고,
가는 것을 보내고 오는 것을 맞이하며 잘하는 것을 칭찬하고 못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멀리서 온 사람들을 부드럽게 대하는 것이고,
끊어진 세계를 이어주고 못쓰게 된 나라를 일으키며 어지러움을 다스리고 위태로움을 버티며 조정은 때마다 불러서 오는 것을 두터이 하고 가는 것을 옅게 함은 제후들을 품는 것이다.
20장-3. 凡爲天下國家有九經 所以行之者一也. 凡事豫則立 不豫則廢 言前定則不跲 事前定則不困. 行前定則不疚 道前定則不窮. 在下位不獲乎上 民不可得而治矣 獲乎上有道 不信乎朋友 不獲乎上矣. 信乎朋友有道 不順乎親 不信乎朋友矣 順乎親有道 反諸身不誠 不順乎親矣. 誠身有道 不明乎善 不誠乎身矣. 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誠者 不勉而中 不思而得 從容中道 聖人也. 誠之者 擇善而固執之者也. 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篤行之. 有弗學 學之弗能弗措也 有弗問 問之弗知弗措也 有弗思 思之弗得弗措也. 有弗辨 辨之弗明弗措也 有弗行 行之弗篤弗措也.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果能此道矣 雖愚必明 雖柔必強.
무릇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데에는 아홉가지 방법이 있으나 그것을 행하게 하는 것은 하나이다.
무릇 일은 미리 하면 세워지고 미리 하지 않으면 못쓰게 되니,
말이 먼저 정해져 있으면 헛디디지 않고,
일은 먼저 정해져 있으면 곤란하지 않으며,
행동은 먼저 정해져 있으면 걱정하지 않고,
도는 먼저 정해 있으면 궁하게 되지 않는다.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백성들이 다스려지지 않을 것이다.
윗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에는 도가 있으니, 친구에게 신용이 없으면 위의 신임을 얻지 못할 것이다.
친구에게 신용이 있는데도 도가 있으니, 친족을 따르지 않으면 친구에게 신용을 받지 못할 것이다.
친족을 따르는 데에도 도가 있으니, 자신에게 돌이켜보아 정성스럽지 않으면 친족을 따르지 않게 된다.
자신을 정성스럽게 하는 데에도 도가 있으니, 선(善)에 밝지 못한다면 자신에게 정성스럽지 않을 것이다.
정성(誠)은 하늘의 도요, 정성스러운 자(誠之者)는 사람의 도이다.
정성(誠)은 힘쓰지 않아도 적절하며,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얻어서, 느긋하게 도를 적절하게 하는 것이니, 사람을 성스럽게 하는 것이다.
정성스러운 자(誠之者)는 선(善)을 선택하여 굳게 잡는 자다.
널리 배워라. 자세히 물으라. 신중히 사색하라. 밝게 분별하라. 두텁게 행하라.
배우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그것을 배움에 능숙해지지 않고는 그대로 두지 않는다.
묻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그것을 물으면 알지 않고는 그대로 두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그것을 생각하면 얻지 않고는 그대로 두지 않는다.
분별하지 아니함이 있을지언정 분별할 바엔 그것을 밝히지 않고서는 그대로 두지 않는다.
행하지 아니함이 있을지언정 행할 바엔 독실해지지 않고서는 그대로 두지 않는다.
남이 한번에 할 수 있으면 자신은 백 번을 하고, 남이 열 번에 할 수 있거든 자기는 천 번을 한다면, 결국 이 도에 능할 것이니, 비록 어리석다 하더라도 반드시 밝아질 것이며, 비록 나약하더라도 반드시 강해질 것이다.[51]
21장. 自誠明謂之性 自明誠謂之敎 誠則明矣 明則誠矣.
정성으로부터 밝아지는 것은, 일컬어서 본성(性)이라 하고,
밝음으로부터 정성스러워지는 것은, 일컬어서 가르침(敎)이라 한다.
정성스러우면 밝아질 것이고, 밝아진다면 정성스러워질 것이다.
22장. 惟天下至誠 爲能盡其性 能盡其性 則能盡人之性 能盡人之性 則能盡物之性. 能盡物之性 則可以贊天地之化育 可以贊天地之化育 則可以與天地參矣.
오직 천하에 지극한 정성이어야 그 본성(性)을 다할 수 있게 된다.
그 본성(性)을 다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의 본성을 다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본성을 다할 수 있으면 사물의 본성을 다할 수 있다.
사물의 본성을 다할 수 있으면 천지의 화육[52]을 도울 수 있고,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으면 천지와 더불어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다.
23장. 其次致曲 曲能有誠 誠則形 形則著 著則明 明則動 動則變 變則化 唯天下至誠 爲能化
그 다음은[53] 굽은 곳까지 이르는 것(致曲)이다.[54]
굽은 곳에 정성스러움이 있을 수 있다.
정성스러우면 모양을 갖추고, 모양을 갖추면 뚜렷해지고, 뚜렷해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움직이고, 움직이면 변하니, 변하면 바뀐다(化[55]).
오직 천하에 지극한 정성만이 바꿀(化) 수 있다.[56]
24장. 至誠之道 可以前知 國家將興 必有禎祥. 國家將亡 必有妖孼 見乎蓍龜 動乎四體. 禍福將至 善必先知之 不善必先知之 故至誠如神
지극한 정성의 도(道)로 앞일을 알 수 있다.
국가가 흥하려고 할 때는 반드시 상서로움이 있고
국가가 망하려 할 때에는 반드시 요사스럽고 불길함이 있으니
시초[57]와 거북점에 보이고 사지로 떨림이 느껴져서,
화복이 장차 이르려 할 때에, 선함(善)을 반드시 미리 알게 되고 선(善)하지 않음을 반드시 미리 알게 된다.
그러므로 지극한 정성은 신과 같은 것이다.
25장. 誠者自成也 而道自道也. 誠者物之終始 不誠 無物 是故君子誠之爲貴. 誠者非自成己而已也 所以成物也. 成己仁也 成物知也 性之德也 合內外之道也 故時措之宜也
정성이라는 것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요, 그 길(道)은 스스로 길이 되는 것이다.
정성이라는 것은 사물의 끝과 처음이니, 정성스럽지 못하면 사물은 없다.
이 때문에 군자는 정성스러움을 귀하게 여긴다.
정성이라는 것은 스스로 자신을 이루게 할 뿐만 아니라 사물을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자신을 이룸은 인(仁)[58]이요, 사물을 이룸은 지(知)이니, 본성(性)의 덕은 이 안팎의 도를 합친 것이다.
그러므로 때에 따라 조치함이 마땅한 것이다.[59]
26장. 故至誠 無息. 不息則久 久則徵. 徵則悠遠 悠遠則博厚 博厚則高明. 博厚所以載物也 高明所以覆物也 悠久所以成物也. 博厚配地 高明配天 悠久無疆. 如此者 不見而章 不動而變 無爲而成. 天地之道 可一言而盡也 其爲物不貳[60] 則其生物不測. 天地之道 博也 厚也 高也 明也 悠也 久也. 今夫天 斯昭昭之多 及其無窮也 日月星辰繫焉 萬物覆焉. 今夫地一撮土之多 及其廣厚 載華嶽而不重 振河海而不洩 萬物載焉. 今夫山 一卷石之多 及其廣大 草木生之 禽獸居之 寶藏興焉. 今夫水一勺之多 及其不測 黿鼉蛟龍魚鼈生焉 貨財殖焉. 詩云 維天之命 於穆不已 蓋曰天之所以爲天也. 於乎不顯 文王之德之純 蓋曰文王之所以爲文也 純亦不已
그러므로 지극한 정성은 쉼이 없다.
그치지 않으면 오래되고, 오래되면 증명이 된다. 증명이 되면 여유가 깊어지고, 여유가 깊어지면 (식견이) 넓고 두터워지고, 넓고 두터워지면 고상하고 현명해진다.
넓고 두터움은 만물을 싣게 하고, 고상하고 현명함은 만물을 덮게 하며, 여유있고 오래됨은 사물을 이루게 한다.
넓고 두터움은 땅에 짝되고, 고상하고 현명함은 하늘에 짝되며, 여유있고 오래됨은 한계가 없다.
이와 같은 자는 보지 않아도 드러나며, 움직이지 않아도 변하며, 하려함이 없어도 이룬다.
천지의 도는 한 마디로 다할 수가 있으니,
그 물(物)을 이루려 하는 것이 둘이 아니라면 그 물(物)에서 태어나는 것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61]
천지의 도는 넓음이요, 두터움이요, 높음이요, 밝음이요, 여유로움이요, 오래됨이니,
지금 하늘은 빛남이 많아진 것이나 그 무궁함에 이르러서는 해와 달과 별들을 매달며 만물을 덮고 있고,
지금 땅은 한 줌 흙이 많아진 것이나 그 넓고 두터움에 이르러서는 화산(華嶽)을 실어도 무거워하지 않고 강과 바다를 거두고도 새지 않아서 만물을 싣고 있고,
지금 산은 한 주먹 돌이 많아진 것이나 그 넓고 큼에 이르러서는 풀과 나무가 자라고 새와 짐승이 살며 숨겨진 보물이 나오고 있고,
지금 물은 한 국자 물이 많아진 것이나 그것이 헤아릴 수 없음에 이르러서는 큰 자라·악어·교룡·용·고기·자라를 태어나게 하고 재화를 번식시키고 있다.
시경에 "아! 하늘의 명은 화목할 따름이도다!"라고 했으니, 대체로 하늘이 하늘이 되는 까닭을 말한 것이다.
"아아! 나타나지 않구나! 문왕의 덕의 순수함은!" 라고 했으니, 대체로 문왕이 문(文)이 되는 까닭인 것이니, 순수함은 또한 그치지 않는다.[62]
27장. 大哉 聖人之道 洋洋乎 發育萬物 峻[63]極于天. 優優大哉 禮儀三百 威儀三千 待其人而後行. 故曰 苟不至德 至道不凝焉. 故君子尊德性而道問學 致廣大而盡精微. 極高明而道中庸 溫故而知新 敦厚以崇禮. 是故 居上不驕 爲下不倍 國有道 其言足以興 國無道 其黙足以容. 詩曰 旣明且哲 以保其身 其此之謂與
크도다! 성인의 도는 넘쳐흐르는구나! 만물을 양육함에, 자라는 것이 하늘에까지 닿구나!
넉넉하게 크도다! 예절의 법식은 삼백가지요, 권위의 법식은 삼천가지이니, 그 사람을 기다린 뒤에야 행하라.
그러므로 "진실로 지극한 덕이 아니면 지극한 도는 굳어지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군자는 덕성을 존중하면서도, 묻고 배우는 것을 길로 한다.
넓고 큼에 이르면서도, 정미함을 다하며
고상하고 현명한 것에 이르면서도, 중용을 길로 여기고
옛 것을 쌓아가면서도, 새 것을 알며
예를 높이는 것으로써, 돈독하고 두터워진다.
이 때문에 위에 자리해도 교만하지 않고, 아랫사람이 되어도 배반하지 않는다.
나라에 도가 있으면 언론이 일어나기에 충분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침묵이 용납되기에 충분하니,
시경에 "이미 현명하고 또한 슬기롭기에, 그 몸을 보전하는구나"라고 한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64]
28장. 子曰 愚而好自用 賤而好自專 生乎今之世 反古之道 如此者 烖及其身者也. 非天子 不議禮 不制度 不考文. 今天下 車同軌 書同文 行同倫. 雖有其位 苟無其德 不敢作禮樂焉 雖有其德 苟無其位 亦不敢作禮樂焉. 子曰 吾說夏禮 杞不足徵也 吾學殷禮 有宋存焉 吾學周禮 今用之 吾從周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으면서 스스로 쓰이는 것을 좋아하며,
천박하면서 스스로 마음대로 하는 것을 좋아하여,
오늘의 세상에 살면서도 옛날의 도로 돌아가려는 이런 사람은
재앙이 그 몸에 미치게 되리라."고 하셨다.
천자가 아니면 예를 논하지 않고, 법도를 제정하지 않으며, 문자를 (새로) 생각해내지 않는다.
지금 천하의 수레는 궤적을 같게 하고, 글은 문자를 같게 하며, 행동은 윤리를 같게 하나,
비록 그 위치에 있더라도 진실로 그러한 덕이 없다면 감히 예의와 음악을 만들지 않으며,
비록 그러한 덕이 있더라도 진실로 그러한 위치에 없다면 또한 감히 예의와 음악을 만들지 않는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夏)나라의 예를 말하지만 기(杞)나라는 검증이 충분하지 못하고,
내가 은(殷)나라의 예를 배웠으나 송(宋)나라에만 존재하고 있으며,
내가 주(學)나라 예를 배웠고 오늘날 그것을 쓰고 있으니 나는 주나라를 따르련다"고 하였다.[65]
29장. 王天下有三重焉 其寡過矣乎. 上焉者[66] 雖善無徵 無徵不信 不信民弗從. 下焉者 雖善不尊 不尊不信 不信民弗從. 故君子之道 本諸身 徵諸庶民 考諸三王而不謬 建諸天地而不悖 質諸鬼神而無疑 百世以俟聖人而不惑. 質諸鬼神而無疑 知天也 百世以俟聖人而不惑 知人也. 是故 君子動而世爲天下道 行而世爲天下法 言而世爲天下則. 遠之則有望 近之則不厭. 詩曰 在彼無惡 在此無射 庶幾夙夜 以永終譽. 君子未有不如此 而蚤有譽於天下者也
천하를 다스림에 세 가지 중요한 것이 있으니, 그렇게 하면 허물이 적을 것이다.
윗 시대의 것은 비록 훌륭하다고 해도 증거 할 데가 없으니 증거가 없어서 믿지 않고, 믿지 않으니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다.
아랫 시대의 것은 비록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우러러보지 않으니, 우러러보지 않아서 믿지 않고, 믿지 않으니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는
그것을 자신에 근본을 두어서 백성들에게 증명하고,
그것을 세 명의 왕에게서 살펴보아도 틀린 것이 없으며,
그것을 천지에 세워놓아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
귀신에게 물어보아도 의심이 없으며, 여러 세월에 걸쳐 성인을 기다렸어도 미혹되지 않으니,
그것을 귀신에게 물어보아도 의심이 없음은 하늘을 아는 것이고, 여러 세월에 걸쳐 성인을 기다렸어도 미혹되지 않음은 사람을 아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군자가
움직이면 세상이 천하의 도로 여기고,
행하면 세상이 천하의 법이라 여기며,
말하면 세상이 천하의 준칙으로 여긴다.
멀리 있으면 그리워하고, 가까이 있어도 싫증내지 않는다.
시경에 이르기를 "저기에 있어도 미워하지 않고 여기에 있어도 싫어하지 않네.
밤낮으로 원해서 길이 영예로움을 이루었구나!" 라고 했으니,
군자가 이와 같이 아니하고서 일찍이 천하에 영예를 누린 자는 아직 없었느니라.[67] [68]
30장. 仲尼祖述堯舜 憲章文武 上律天時 下襲水土. 辟如天地之無不持載 無不覆幬 辟如四時之錯行 如日月之代明. 萬物竝育而不相害 道竝行而不相悖 小德川流 大德敦化 此天地之所以爲大也
중니께서는 을 조상으로 기술하고, 문왕무왕을 본받았으며, 위로 천시를 법으로 삼고, 아래로는 수토(水土)를 계승했다.
비유하자면 하늘과 땅이 잡고 실어주지 않음이 없고, 덮고 가려주지 않음이 없으며
비유하자면 사계절이 번갈아 행해지고, 해와 달이 교대로 비춰짐과 같다.
만물은 함께 커도 서로 해치지 않으며
도는 함께 행해져도 서로 어긋나지 않아서

작은 덕은 시내처럼 흐르고
큰 덕은 두텁게 감화시키니
이것이야말로 천지가 위대한 까닭이다.[69]
31장. 唯天下至聖 爲能聰明睿知 足以有臨也 寬裕溫柔 足以有容也. 發強剛毅 足以有執也 齊莊中正 足以有敬也 文理密察 足以有別也. 溥博淵泉 而時出也. 溥博如天 淵泉如淵 見而民莫不敬 言而民莫不信 行而民莫不說. 是以聲名 洋溢乎中國 施及蠻貊 舟車所至 人力所通 天之所覆 地之所載 日月所照 霜露所隊. 凡有血氣者 莫不尊親 故曰配天
오직 천하에 지극한 성인이어야
총명하고 슬기롭고 지혜로울 수 있어서, 임함이 있을 수 있고
너그럽고 넉넉하며 따뜻하고 부드러워서, 받아들임이 있을 수 있고
밝혀내고 힘쎄며 강직하고 의연하여서, 잡아냄이 있을 수 있고
단정하고 장중하며 흔들리지 않고 바르게하여서, 공경함이 있을 수 있고
글의 이치에 자세히 관찰하여서, 구별함이 있을 수 있다. [70]
넓고 광대함, 깊은 근원은 때에 맞춰 나오니
넓고 광대함은 하늘과 같고, 깊은 근원은 못과 같아서
보이면 백성들이 공경하지 않음이 없고
말하면 백성들은 믿지 않음이 없으며
행하면 백성들은 기뻐하지 않음이 없다.
이로써 명성이 중국에 넘쳐흘러 오랑캐 땅까지 널리 퍼진다.
배와 수레 이르는 곳과 사람의 힘이 통하는 곳, 하늘이 덮는 바와 땅이 실는 곳, 일월이 비치는 곳, 서리와 이슬이 내리는 곳에,
혈기가 있는 자는 모두 존경하고 친하게 여기지 않음이 없으니, 그러므로 하늘에 짝이 된다고 말한 것이다.
32장. 唯天下至誠 爲能經綸天下之大經 立天下之大本 知天地之化育 夫焉有所倚. 肫肫其仁 淵淵其淵 浩浩其天 苟不固聰明聖知達天德者 其孰能知之
오직 천하에 지극한 정성이어야 천하의 큰 도리를 경륜할 수 있어서,
천하의 큰 근본을 세우고 천지의 화육을 아니,
어찌 (다른 것에) 의지하는 바가 있겠는가?
간절하도다! 그 인(仁)이여!
깊고 깊구나! 그 연못이여!
넓고 넓도다! 그 하늘이여!
진실로 총명하여서 성스러운 지혜가 하늘의 덕에 도달한 자가 아니고서야
그 누가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33장. 詩曰 衣錦尙絅 惡其文之著也. 故君子之道 闇然而日章 小人之道 的然而日亡. 君子之道 淡而不厭 簡而文 溫而理. 知遠之近 知風之自 知微之顯 可與入德矣. 詩云 潛雖伏矣 亦孔之昭 故君子內省不疚 無惡於志. 君子之所不可及者 其唯人之所不見乎. 詩云 相在爾室 尙不愧于屋漏 故君子不動而敬 不言而信. 詩曰 奏假無言 時靡有爭 是故君子不賞而民勸 不怒而民威於鈇鉞. 詩曰 不顯惟德 百辟其刑之 是故君子篤恭而天下平. 詩云 予懷明德 不大聲以色 子曰 聲色之於以化民 末也. 詩云 德輶如毛 毛猶有倫 上天之載 無聲無臭 至矣.
* 시경에 이르기를 "비단 옷을 입고도 홀 겉옷을 더하였다"고 했으니, 그 화려함(文)이 드러나는 것을 기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는 어두운듯 하면서도 날로 빛나고, 소인의 도는 분명한듯 하면서도 날로 없어진다. 군자의 도는 담담하되 질리지 않고, 간결하면서도 화려하며, 온화하면서 도리가 있다. 먼 것은 가까운 것에서부터 함을 알고, 바람의 불어오는 곳을 알며, 작은 것이 드러나는 것을 알면, 가히 함께 덕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 시경에 이르기를 "잠기어 비록 보이지 않을 것이나, 또한 크고 밝구나"라고 했다. 그러므로 군자는 안을 살펴서 고질병이 안되니 그 뜻에 거리낌이 없다. 군자(의 경지)가 도달할 수 없는 바라는 것, 그것은 다만 사람들이 보지 않는 바가 아니겠는가.
* 시경에 말하기를 "너가 방에 있을 때를 살펴보아도 오히려 방구석에서도 부끄럽지 않구나"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군자는 움직이지 않아도 공경하며, 말하지 않아도 믿는다.
* 시경에 말하기를 "(신에게) 임시로 아뢰도 말이 없으매, 그 때에 아무 다툼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므로 군자는 상을 주지 않아도 백성들은 힘을 쓰며, 화내지 않아도 백성들은 형벌에 쓰는 도끼보다 더 두려워한다.
* 시경에 "드러나지 않아도 덕을 생각하니, 여러 제후들이 본받는다"고 했다. 이 때문에 군자는 공경을 돈독하게 하여 천하가 평정된다.
* 시경에 이르되 "나는 밝은 덕을 품어서, 얼굴빛으로 큰소리내지 않는다"고 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소리와 얼굴빛은 백성을 감화시킴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다"고 하셨다.[71]
* 시경에는 이르기를 "덕은 가볍기가 털과 같다"고 했으니, 털에 오히려 도리가 있다. "위쪽 하늘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고 했으니, 지극하다고 할 것이다.[72]


4. 여담[편집]


  • 숭례문의 '숭례'와 창덕궁 돈화문의 '돈화'가 바로 《중용》에서 나온 말이다.
  • 박진영은 2010년부터 오디션에 합격한 연습생들에게 "진실, 성실, 겸손"을 강조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진실'을 설명하면서 '카메라 앞에서 할 수 없는 짓을 카메라 밖에서도 하지마라'고 하였는데, 이는 중용의 "신독"과 똑같은 말이다. 또한 박진영이 두번째 말한 '성실'도 중용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 '겸손'은 역시 유교(중용)를 관통하는 주제이기 때문에, 아마 2010년 무렵 중용을 읽고 감명을 받은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 영화 역린에서 《중용》 23장을 읊는 대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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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나무에 쓴 글.[2] 비단에 쓴 글.[3] 도올 김용옥은 자신의 책 《중용 인간의 맛》을 내면서 각 장에 이름을 붙였다. 1.천명, 2.시중 3.능구 4.지미 5.도기불행 6.순기대지 7.개왈여지 8.회지위인 9.백인가도 10.자로문강 11.색은행괴 12.부부지우 13.도불원인 14.불원불우 15.행원자이 16.귀신 17.순기대효 18.문왕무우 19.주공달효 20.애공문정 21.자성명장 22.천하지성 23.기차치곡 24.지성여신 25.성자자성 26.지성무식 27.존덕성장 28.오종주장 29.왕천하장 30.중니조술 31.총명예지 32.성지천덕 33.무성무취.[4] 주자는 性은 理이고, 情은 氣 라고 해서 독립된 2개로 구분지었지만, 고대 무덤에서 발견된 성자명출(性自命出)에 따르면 인간의 감정의 기운은 성(性)이다. 감정이 인간의 본성인 셈. 자사는 情=氣=性 이라고 말하였다. 성자명출에 따르면, 자사에 대한 주자의 해설은 한참을 틀리고도 틀렸던 셈.[5] 여기서 中은 '가운데 중'이 아니라, '적중(的中)시키다 중'으로 쓰였다. 상황에 맞게 자신의 태도를 잘 적중시키는 것을 말한다.[6] 사실, 인간관계의 애매한 상황에서 성인들이 미리 대략적으로 정해 놓은 기준이 예(禮)이다.[7]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많이 벌어진다는 것이 문제다. 살다보면 이렇게 하는 것이 진짜로 예의에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을 것이다. 여기서는 그러한 상황을 말한다.[8] 수많은 일화에서 그것을 말한다. 그렇다고 예를 버려두고 마음만을 중요시하자는 것도 아니다. 예와 마음, 그 두개가 중용을 이뤄야 한다.[9] 주자는 중용의 중(中)에 대해서 환중(還中), 적중(的中), 표준(表準)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보았다. 환중은 문의 지도리를 나타내며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모든걸 변화시키는 중(中)이고, 적중은 관계 속에서 가장 올바른 형태이며, 표준은 보편적인 도덕적 윤리를 나타낸다. 주자는 이 중 환중은 도가의 사상과 비슷하기 때문에, 환중을 중으로 받아들이는건 옳지 않다고 주장하여서, 적중과 표준을 중용의 중(中)으로 삼았다. 하지만 최근 여러 무덤이 발굴되는 가운데 유교의 사상에 도가와 비슷한 부분이 많이 발견되므로써, 주자의 주장은 무색해지게 되었다.[10] 충고의 충은 한자로 忠인데, 중용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충(忠)과 서(恕)에서의, 그 충(忠)이다.[11] 여자와 소인을 가르치기 어렵다고 하나로 묶어서 말한다던가, 삼종지도 칠거지악에서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이미지로 묘사한다던가.. 하지만 그러한 부분은 시대적 한계라고 봐야 한다. 저 두개의 문장 이외에 여자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거의 없다.(사람을 극도로 중시하던 공자였기 때문에 이러한 점은 후대의 첨가로 의심되기도 한다.) 또한 공자가 개인 여성을 지칭할 때는 그렇게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이 드물다. 애초에 사람을 중요시 했던 사람이고, 중용의 사상도 사실 공자에게서 나왔기 때문.[12] 己所不欲勿施於人[13] 본성(性)이란 태어남(生)의 마음(忄)을 말한다. 나무는 자라서 열매를 맺는 것이 그 타고난 이치이고, 가축은 자라서 달걀과 우유를 생산하는 것이 그 타고난 이치이며, 사람은 자라서 참된 사람이 되는 것이 그 타고난 이치(마음)이라는 것. 이를 합쳐서 말하길 생명(生命)이라고 하는 것이다.[14] 쉽게 설명하자면, 성(性)이란 태어날 때 타고나는 DNA(설계도)를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DNA대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바꿀 수 없으므로 '천명 天命'이라고 하는 것. 이러한 타고난 성질(性)에 솔직한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길(道)인 것이며, 이러한 길은 계속 다니지 않으면 수풀에 덮혀 없어지므로 계속 그 길을 밟아 닦는 것이 교육인 셈. 여기서 교육이란 사람이 타고난 그 본성(性)이, 그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세련되게 표현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닦아주는 것을 말한다.[15] 후한시대 '성자명출'에 따르면 성(性)은 감정이다. 후대의 주자는 성(性)을 '이성(理性)'이라고 보았지만, 무덤에서 나온 과거의 증거들은 '성(性)이 감정'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증명해주고 있다. 따라서 주자학은 애초부터 잘못된 길을 갔던 셈. 주자의 이기론 등은 자사나 공자 시대에 발표했으면 헛된 소리라고 치부되었을 것이다.[16] 사람의 타고난 성질(본성)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이 되어라'는 것이다. '사람이 되어라'는 말은, 짐승이 되지 말고 사람이 되어라는 이야기. '사람답게 살아라'는 뜻. 즉, (올바른) 사람이 되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자사의 사상을 계승한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게 되는데 제대로 자사를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17] 감정이 드러나기 전 상태를 중(中)이라 하는데, 자신의 중심을 잡고 있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중심을 자신이 잡고 있기 때문에, 뜬소문이나 남들의 행동에도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기쁘고 슬픈 감정을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을 화(和)라고 하는데, 적절하게 감정을 드러내기 때문에 사람들과 뜻을 맞춰 어울릴 수 있게 된다. (和: 서로 뜻을 맞춰 어울리다.)[18] 즉, 이랬다저랬다 하지말고 자신이 세운 스스로의 원칙은 지키되, 자신의 감정을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것.[19] 庸=用=施이다. 적절한 말과 행동을 남에게 베푸는 것을 말한다.[20] 군자의 중용이란, 자신의 중심(中)을 잡은 상태에서,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상황에 맞게 하면서도 그 상황에 휩쓸리지 않는 것은 자신의 중심을 자신이 꽉 잡고 있기 때문이다. 소인의 중용이란, 상황도 살피지 않고 무턱대고 자신의 생각대로만 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이 중심을 잡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남의 말이나 행동에 쉽게 휩쓸려서 함부로 행동하고 후회한다.[21] 주자는 "사람들이 능한 이가 적은 지가 오래되었다"로 해석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能久'를 하나로 묶어 '오래할 수 있기'로 해석하는 편이다. 잠깐 동안 중용을 지키는 것은 쉬워도, 오랫동안 중용을 지킨다는 것은 어렵다는 뜻. 矣는 추측을 나타낸다.[22] 음식에 소금이 과하면 짜서 맛이 없고, 소금이 적으면 밍밍해서 맛이 없다. 소금을 적절하게 넣는 것이 중용인데, 사람들이 이러한 맛을 아는 것도 드물지만, 정도(正道)를 행하는 것에 이렇게 상황에 따라 적절한 중용을 지키는 자도 드물다는 것.[23] 執中이 아닌, 執其兩端인 셈. '집중'한다는 것이 중요한 하나에 정신을 쏟는 것을 말한다면, '집기양단'은 양극단의 모든 것에 정신을 쏟는 것을 말한다. 직역하면 '양 끝을 잡고'[24] 유행이나 시대에 뒤쳐진다고, 주목을 받기 위해 중용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며, 남이 주목하지 않는다고 해서 후회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다짐이다. 여기서 성인(聖人)은, 한자를 파자(破字)로 해석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25] 부부가 서로 바보같이 사랑하고 연애하는 것을 말한다.[26] 不肖: 서로 닮지 아니한 것. 남녀간의 서로 다른 역할을 말한다.[27] 하늘 아래 모든 사람 또는 하늘 아래 모든 생명을 뜻한다.[28] 군자의 큰 도는, 천하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벅찰 것이라는 것.[29] 세상의 커다란 이치를 가지고 부부에게 적용하면, 큰 담론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이해되지 않을 것이며, 작은 이야기는 천하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구체적으로 쪼개어 말해주기에 부족함이 있다.[30] 1. 부부 사이에 사랑을 해서 서로를 이해하고 2. 각각 남녀간의 서로 다른 역할을 아는 것은, 함께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미묘하고 지극한 부분에 있어서는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며, 성인도 그 남녀관계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힘든 것이다. 또한 군자의 도는 부부관계를 살피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며, 남녀 부부간의 미묘하고도 적절한 처신, 즉, 남녀 사이에서의 중용은 '솔개가 하늘을 거스르고, 고기가 물에서 튀어 오르는 것'처럼, 위 아래에서 각각 서로의 세계를 살펴보려는 노력을 통해 겨우 알 수 있는 것이다.[31] 군자의 도는 부부관계에서 시작하고, 부부관계의 지극함은 하늘과 땅에 비추어 보았지만, 그 밖의 인간관계는 사람에 비추어 봐서 사람을 고친다. 이는 나의 싫어하는 바를 비추어 봐서 남의 싫어하는 바를 이해하는 것이다. 즉, 부자관계, 군신관계, 형제관계, 친구관계에 있어서,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것. 또한 이런 관계에서 상대방에게 덕을 베풀되 말을 삼가고, 부족한 부분은 힘쓰고 여유로운 부분을 억지로 더하지 않으며, 말을 하면 그것을 행했는지 돌아보고 행동을 하면 자신의 말과 틀린게 있는지 돌아본다.[32] 여기서 명(命)은 1장에 나오는 '천명(天命)'을 말한다. 즉, '하늘(운명)이 정해주는 시기나 기회'를 의미한다.[33] 군자는 부귀와 빈천, 오랑캐와 환난에서도 그 속에 들어가 스스로 얻는 것이 있다. 마찬가지로 아랫사람이 되면 아랫사람의 역할을 잘 수행하여 거기서 얻을 것을 얻고, 윗사람이 되면 윗사람의 역할을 잘 수행하여 거기서 얻을 것을 얻기 때문에, 윗사람이 되면 아랫사람을 업신여기지 않고 아랫사람이 되면 윗사람에게 매달리지 않는다. 이렇게 잘못됨의 원인을 남에게 구하지 않고 그 원인을 자기 자신에서 구하기 때문에, 하늘을 원망하지도 않고 사람을 탓하지도 않는 것이다.[34] 順: 가르치다.[35] 부모가 순리를 따르도록 했을 것이다.(其~矣乎: ~할 것이다. 추측을 뜻함.)[36] 군자의 도는 화목한 집안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관계의 시작은 화목한 집안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37] 귀신은 보이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삼가게 하고 공손하고 신중하게 만들어 상대를 기리게 한다. 제사라는 작은 공경에서부터 그 성실함이 보인다면, 산 사람을 공경하는 것에 있어서는 얼마나 더 잘하겠는가.[38] 사해(四海)之內[39] 순 임금이 큰효자였기 때문에, 하늘이 그것을 북돋아주고 키워줘서, 순이 천자가 되었다는 뜻.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해서 멀리 있는 곳에 도달한다는 내용과 비슷하다. 다만 하늘이 그 재질을 미리 알고 그 선함을 적극적으로 도와줬다는 게 다른 점이다. 하지만 착하다고 하늘이 실제로 도와줬을리 만무하기 때문에, 현대의 시각으로 재해석하자면, '선한 사람을 높여주고 길러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된다'는 선언으로 봐야 할 것이다.[40] 사해(四海)之內[41] 장례와 제사는 다르다. 장례는 죽은자를 슬퍼하기 때문에 지내는 것이 3년동안 슬퍼하는 것이다. 제사는 그렇게 죽은 이를 기리는 것이니, 장례의 3년상을 지내고 나서 부터 제사를 지내는 것이고 매년하는 그 시일에 그 사람을 기리는 것이다.[42] 멀리 있는 친척의 장례를 지내게 될 때는 1년상을 하는데 이를 기년상이라고 한다.[43] 신주를 배열하는 방식.[44] 旅酬: 제사 술을 마시는 것. 아랫사람이 윗사람보다 술을 먼저 마신다.[45] 燕毛: 머리 색깔에 따라 잔치상의 순서를 정하는 것. 머리가 하얗게 될 수록 앞에서 먹는다.[46] 郊社: 성 밖으로 나와서 지내는 큰 제사를 말한다.[47] 上帝: 옥황상제[48] 《禮記》 〈祭義〉‧〈郊特牲〉에서 ‘春禘秋嘗’이라고 하였다. 禘는 ‘봄 제사', 嘗은 '가을 제사'를 말한다. 禘는 한 해가 시작할 때에 한해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기 위해 고대의 제왕들(수인, 복희, 신농을 말한다. 특히 농사의 신인 신농)을 모시는 제사였고, 嘗은 가을 곡식이 거둬지면 수확을 축하하여 수확한 곡식들을 맛보고 즐기는 제사였다.[49] 바람의 방향에 따라 부들과 갈대가 이리저리 흔들리듯이, 정치도 사람들의 생각에 민감하게 움직인다는 뜻.[50]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으며 남들에게도 잘 베푸는 그런 사람이 된다면, 주변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보고 그 '선함'을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가 거짓말이나 폭력 등으로 남의 등 쳐먹는 사람이라면,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끼리끼리 모이므로 먼저 자신을 갈고 닦아야 된다는 것.[51] 결국 하나로 귀결되니 성실해야 된다. 誠은 성실한 것을 말한다. 誠이란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려는 마음이다.[52] 化育: 만물을 길러서 바꿈. 나무를 길러서 열매를 맺거나, 병아리를 길러서 닭이 되어 달걀을 낳거나..[53] 앞의 22장은 성인의 도(道)이고, 지금 23장은 성인이 아닌 사람의 도(道)이다. 성인처럼 태어날 때부터 알지 못하더라도(生而知之) 그 부족한 부분을 정성스럽게 배워서라도(困而學之) 발전해 나가야 된다는 것. 20장 말미에 '하늘의 도', '사람의 도'를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54] 도리에 맞지 않는 것, 또는 편벽된 것까지 살피는 것이다. 굽어진 곳 뒤에는 사각이 생기므로, 그러한 사각까지 꼼꼼하게 확인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자세하게 살펴본다는 것.[55] 變은 서서히 변해가는 것을 말한다. 化는 변하다가 어느 순간에 이르러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56] 사람이 지극히 정성스러우면, 일의 모양이 갖춰지고, 해야할 일이 뚜렷해지며, 그 일에 밝아져서, 주변을 움직인다. 주변의 세상을 움직일 정도가 되면, 그 움직임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점차점차 커지게 되고, 결국엔 사람이나 사회가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57] 풀이나 나뭇가지로 치는 점.[58] 사람다움을 뜻한다.[59] 정성이란 자신 스스로가 그 방법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자신의 삶은 누군가를 참고할 수는 있어도, 남의 삶을 똑같이 카피해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벌어지는 사태를 잘 살펴서 스스로의 판단으로 필요한 대책을 세워 행하는 것이다.[60] 不貳: 두 마음을 품지 않다.[61] 지극한 정성이 한가지로 충실하다면, 거기서 태어나는 것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62] 지극한 정성으로 사물을 하나로 대하면 사물의 이치를 이해할 수 있는데, 이 때 여기서 창조되고 만들어지는 것은 너무나 많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하늘의 별빛, 한 줌의 흙, 한 주먹의 돌, 한 국자의 물 같은 작은 것에서 시작하여도, 거대한 하늘과 땅, 산과 바다 등의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63] 자라다. 생장하다.[64] 예절과 법(권위)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덕이 높고, 아는 것이 많으며, 적절하게 지금의 상황에 적용할 줄도 알고, 옛것을 무시하지 않고 거기서 발전하며, 예의를 지키는 사람이어야 한다. 만약 나라가 잘되려고 하려면,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자유롭게 내뱉을 것이고, 나라가 망하려고 하려면, 이런 사람들은 침묵을 지키고 세상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65] 도덕과 윤리와 법과 문자 등은, 그 공동체에서 합의한 게임의 규칙같은 것이니, 심판이 아니라면 굳이 바꾸어서 혼란스럽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물의 이치는 하나만 지극한 정성으로 밝혀도, 수많가지의 생각으로 만들어지고 응용하고 적용할 수 있지만,(26장) 예의와 윤리와 법과 문자 등은 '수만가지로 만들어내고 용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이 28장의 중요점이다.[66] 焉은 '어디에'라는 뜻. 따라서 上焉者는 '윗쪽 어디에 있는 것'을 말한다.[67] 천하를 다스림에 중요한 세 가지는, '1. 군자 자신이 모범이 되어야 한다. 2. 주나라 세 명의 왕(왕계, 문왕, 무왕)에 살펴보아 틀린 것이 없어야 된다. 3. 이것을 세상에 내어놓아도 세상과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68] 혹자는 '상언, 하언, 군자지도'가 중요한 3가지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굳이 '군자지도'에 해당되는 문장에서 다시 과거에 해당되는 세 명의 왕을 살펴보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언과 겹치기 때문이다.[69] 큰 도와 작은 도는 각각의 사람들에 의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펼쳐져도 서로 함께 어울린다. 큰 도를 행하는 사람에게 그게 너무 이상적이다고 할 필요는 없으며, 작은 도를 하는 사람에게 그것이 작은 것이 아니냐고 핀잔줄 필요도 없다. 각각의 자리에서 그 선함을 다르게 펼쳐도, 세상에 각기 기여하는 바가 된다.[70] 받아들임은 仁, 잡아냄은 義, 공경함은 禮, 구별함은 智 에 해당한다. 제일 앞의 '임함(臨)'을 信(또는 聖)이라고 보아, 다 합쳐 인의예지신의 五行으로 보기도 한다.[71] 화를 내서 큰소리를 치고 얼굴을 붉힌다고 백성들이 달라진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72] "德輶如毛"는 《시경》의 대아 증민편에 나온다. 여기서 가볍다는 말은, '덕을 행하기는 쉬우나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뜻으로 쓰였다. "上天之載 無聲無臭"는 《시경》의 대아 문왕편에 나온다. '하늘이 하는 일(덕을 말함)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으나, 만 가지 법이 일어나고 나라가 만들어지는 근거가 된다'는 뜻으로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