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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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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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거우차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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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상하이 사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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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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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쑹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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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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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칭 대공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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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동계공세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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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힌골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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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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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단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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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창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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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 공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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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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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괌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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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크 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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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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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셜-길버트 공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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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공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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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측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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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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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우드 포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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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류샨 열도 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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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다 트랙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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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달카날 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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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나루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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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섬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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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달카날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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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와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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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스터 곶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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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팔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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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타통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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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판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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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괌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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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렐리우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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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가우르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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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에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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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폭탄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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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리 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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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낭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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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지마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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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전투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미국 파일:영국 국기.svg 대영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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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탕 굽이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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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전략 공세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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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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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할린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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슘슈 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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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 구분은 전투 및 교전 발생 일자 기준, 전투 기간(및 결과)는 개별 문서 확인




중일전쟁
中日戰爭
Second Sino-Japanese War[1]


파일:external/www.emersonkent.com/china_1945.jpg

제2차 세계 대전의 일부
날짜
1937년 7월 7일 ~ 1945년 9월 3일[2]
장소
티베트를 제외한 중국 대륙 전역, 영국령 버마
원인
일본 제국중국 대륙 침략 야욕
교전국
파일:대만 국기.svg 중화민국[3]
파일:중국 공산당 당기.svg 중국 공산당[4]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
파일:만주국 국기.svg 만주국
파일:몽강연합자치정부 국기.svg 몽강국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 지둥방공자치정부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 중화민국 임시정부
파일:중화민국 유신정부 국기.png 중화민국 유신정부
파일:왕징웨이 정권 국기.svg 중화민국 난징 국민정부
지원국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5]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미국[6]
파일:소련 국기.svg 소련[7][8]
파일:몽골 인민 공화국 국기.svg 몽골 인민 공화국[9]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나치 독일[10]

지휘관
파일:대만 국기.svg 장제스
파일:대만 국기.svg 린썬
파일:대만 국기.svg 허잉친
파일:대만 국기.svg 옌시산
파일:대만 국기.svg 리쭝런
파일:대만 국기.svg 바이충시
파일:대만 국기.svg 천청
파일:대만 국기.svg 펑위샹
파일:대만 국기.svg 두위밍
파일:대만 국기.svg 쉐웨
파일:대만 국기.svg 푸쭤이
파일:대만 국기.svg 쑨리런
파일:중국 공산당 당기.svg 마오쩌둥
파일:중국 공산당 당기.svg 펑더화이
파일:중국 공산당 당기.svg 린뱌오
파일:중국 공산당 당기.svg 주더
파일:영국 국기.svg 루이스 마운트배튼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조지프 스틸웰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클레어 셰놀트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앨버트 웨드마이어
파일:소련 국기.svg 바실리 추이코프
파일:소련 국기.svg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파일:몽골 인민 공화국 국기.svg 허를러깅 처이발상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알렉산더 폰 팔켄하우젠[11]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쇼와 덴노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고노에 후미마로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도조 히데키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오카무라 야스지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무타구치 렌야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하타 슌로쿠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마쓰이 이와네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우메즈 요시지로
파일:만주국 국기.svg 아이신기오로 푸이
파일:만주국 국기.svg 장징후이
파일:몽강연합자치정부 국기.svg 데므치그돈로브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 인루겅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 왕커민
파일:중화민국 유신정부 국기.png 량훙즈
파일:왕징웨이 정권 국기.svg 왕징웨이
파일:왕징웨이 정권 국기.svg 천궁보
결과
제2차 세계대전 패전에 의한 일본의 항복과 중국의 피로스의 승리
영향
중국 공산당 세력 확대 및 국공내전 발발
병력
6,270,000명
500,000명(1937년)
860,000명(1939년)
610,000명(1941년)
600,000명(1943년)
1,088,500명 + 괴뢰군 1,006,086(1945년)
피해규모
3,320,000~10,000,000 명 전사
1,597,000명 부상
455,000-700,000여 명 전사
1,172,200여 명 부상
민간인 사망
22,000,000~35,000,000명

1. 개요
2. 전쟁의 시작과 성격
4. 전후 처리
4.1. 사상자 논란
6. 역사에서의 비중
7. 기타
7.1. 70년 후
8. 참고문헌
8.1. 기세찬 교수의 중일전쟁 논저들
8.2. 평전, 회고록
8.3. 전쟁사 논저
8.4. 배경 및 체제 설명
8.5. 기타
9. 중일전쟁 관련 문서
9.1. 배경 관련
9.2. 전투, 사건
9.2.2. 주요 전투
9.3. 인물
9.4. 관련 단체
10. 대중매체
10.1. 영상물
10.2. 게임
10.3. 문학작품
11. 어록
12. 둘러보기



1. 개요[편집]


1937년부터 1945년까지 중화민국(이하 '중국')과 일본제국(이하 '일제') 사이에 벌어진 전쟁. 1931년 만주사변 이래로 시작된 일제의 중국 침략의 절정이며 일제의 폭주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1939년 이전까진 나치 독일의 확장, 스페인 내전 등과 함께 고조되는 세계 긴장의 한 사례였으며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후에는 주요 전역 중 하나로 격상되었다. 영어로는 Sino-Japanese War.[12]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중국항일전쟁(中國抗日戰爭) 혹은 간단히 항일전쟁, 8년 항전이라고 부른다. 현재 일본에서는 일중전쟁(日中(にっちゅう戦争(せんそう)[13]이나 지나사변(支那(しな事変(じへん)[14]이라고 한다.

소련이 독일을 완전히 밀어낸 독소전쟁과는 달리 중국은 일제를 밀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종전이 되었기에, 과거에는 무능한 국부군과 폭주하는 일본군의 일방적인 전쟁으로 인식되었으나, 현대에는 빈약한 공업력에 낙후된 농촌사회를 이끌고 무기대여법의 이득조차 거의 보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이 8년이나 수백만에 달하는 일본군 육군을 대륙에 묶어두고 태평양 전쟁 중 일본군 전사자의 30%를 담당했다는 점에서 재평가되고 있는 추세이다.


2. 전쟁의 시작과 성격[편집]


일제는 선전포고도 하지 않고 침공해왔는데 이는 루거우차오 사건이 확대되어 교전이 발생했다는 일본측 시각에 의한 것으로 일본은 중일전쟁을 '일중사변' 또는 '지나사변'으로 낮추어 부르기도 했다.[15] 이렇게 명칭을 낮춘 이유는 꽤 여러가지 추론이 있다. 당시 1차대전 이후로 전쟁이 국제법상 금지되었기에 "나 전쟁 안했소" 하여 국제적 추궁과 국내의 국민의 신뢰추락을 피하고 싶었던 것[16], 중국을 인정치 않았던 일제의 정책 등이 있다. 결국엔 제국주의 침공을 면피하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일제의 행각은 계속 유지되어 할힌골 전투를 노몬한 사건으로 축소했다.

여기서 일제가 나중에 선전포고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언급한 것이 있다. 일단 선전포고 문제는 의외로 나라 간의 이해타산이 엮여들어간 문제였다. 전쟁 내내 중국은 선전포고를 안했다는 것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초기에는 일제가 하더라도 선전포고로서 받아들이지 말아달라고 미국에 타진하기도 했었다. 여기서 문제가 되었던게 미국의 중립법이었는데, 국내 기업이 전쟁을 벌이는 쌍방과 경제적 활동을 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법률이었다. 따라서 선전포고가 공식으로 받아들여져 공식적인 전쟁이 되면 중국은 미국에게 물자원조를 전혀 받을 수 없고, 오히려 몰래하려다가 일제에게 나포당할 수도 있으며 미국이 이 나포문제와 한창 노리고 있던 중국과의 경제교류를 통한 이득에 손해를 볼 것 같다는 이유 등으로 피해가 우려되어 껄끄러워 했고 일제도 당시 경제의 태반을 미국에 의지하던 상황에서 미국과의 경제교류가 전쟁기간 동안 정지되던 상황이었다. 전후는 어쨌든 전쟁 시작 시에는 공식적인 전쟁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다. 오히려 일제의 침공군 중 고참급 인사들은 선전포고를 하고 싶었던 부류가 꽤 많아 비선전포고파와 아웅다웅했는데, 경제문제 따위가 뭔 상관이냐며 경시하는 시각과 함께 선전포고를 하는 편이 전후 패전국에게서 영토와 물자를 더 뜯어내고 점령시의 절차가 간단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비선전포고파의 경우는 손해없이 이득을 끌어내자, 즉 어떤 방식으로 중국을 침탈하는가에 대한 방법론 문제였다.

그러나 이런 일본의 입장을 100% 인정해주더라도 엄연하게 선전포고를 하지도 않고 기습적으로 개전한 것은 국제법상으로 변명할 수 없는 전범행위다. 특히 일본에서 중국이 선전포고에 관련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랍시고 대는데, 가해자들이 흔히 하는 변명중 하나다. 피해자가 이론을 제기하던 안하건 간에 범죄로 엄연하게 성립되는 내용을 가지고 정당화를 시도하는 것이니 전혀 의미가 없다. 일본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태평양전쟁 등 앞서 언급했듯이 선전포고 안하고 기습을 해서 개전하는 것을 당연시여기는 행적들을 보인데다가[17] 그렇게까지 선전포고를 하고 싶었다면 나중에라도 하면 되는데 끝까지 안했으니...그 때문에 1941년 12월 9일 장제스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기 전까지 중일전쟁은 공식적으로는 사변, 영토 분쟁이었다.


3. 전개[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중일전쟁/전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전후 처리[편집]


"8년간의 항전은 양국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우리 양국 형제들은 머리를 싸받고 비통하게 울어야한다. 오늘 우리는 무기를 버리고 여러분을 고향으로 돌려보낸다. 언젠가는 우리는 양손에 옥과 수놓은 비단을 들고 당신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환영할 것이다."

탕언보


8월 27일 난징에 중국군 100명과 탕언보 장군이 탄 비행기가 착륙했다. 이어 중국군 부대들이 속속 도착했다. 9월 8일 중화민국 국군 총참모장 허잉친이 난징에 도착, 난징의 중앙군관학교 강당에서 오카무라 야스지의 항복을 받아냈다. 중국, 타이완, 북베트남에 주둔한 전 일본군과 일본인은 이제 국민당에게 접수되었는데 그 수가 지나파견군 105만, 해군 7만, 기타 관동군을 비롯한 중국에 주둔한 총병력 128만을 합쳐 311만에 달했다. 미군의 협조를 얻어 이들을 일본에 송환하기 시작했지만 1946년 12월 일본 정부의 송환 완료 발표에도 불구하고 그 중 돌아온 사람은 100만에 지나지 않았고 향후 1980년대까지 송환 문제가 거론되었으며 귀환한 일본인들은 본토에서 차별을 당했다. 이들을 히키아게샤라 한다.

이후 11만 명의 미군이 중국에 상륙했으며 중국군은 서둘러 점령지를 탈환했으나 너무도 갑작스러운 승리는 웨드마이어의 경고대로 대혼란을 초래했다. 이는 미국이 중국에 정보 공유를 하지 않아 중국이 자신들의 승리를 예상하지 못한 것도 컸지만 전근대적인 중국의 행정력과 부패 자체도 문제였다. 국민당은 점령지의 질서 유지를 위해 한동안 한간들을 일시 등용했는데 이후 장제스가 고위 한간들의 대부분을 총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국민당이 한간들과 결탁했다는 악의적 선전이 곳곳에서 나돌게 된다. 일본인의 재산, 즉 적산가옥 등은 국고가 아닌 개인의 주머니에 들어가는 일이 많았고 전쟁 종료 이후 다시 촉발된 초인플레이션은 중국의 경제와 민심을 크게 동요시켜 향후 국민당이 국공내전에서 패배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특히 타이완에서 국민당이 현지 주민들과 충돌한 2.28 사건은 수많은 무고한 희생자들을 낳았으며 오늘날까지 장제스와 국민당의 흑역사로 남게 된다.

한편 세력을 백만으로 키운 공산당은 국민당에 복종하겠다는 맹세를 걷어차고 황허 이북, 그리고 전 중국의 영토를 통제하려 시도했다. 곳곳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이 충돌하기 시작했고 장제스는 중국 중공업의 90%를 차지하는 공업지역인 만주를 확보할 것을 명령했지만 중국의 무리한 전과확대와 부실한 병참능력으로 인하여 애로사항이 꽃피었다. 웨드마이어는 만리장성 이남의 교통망과 통신망을 먼저 회복하고 만주는 미국, 영국, 소련의 3국 신탁통치를 맡긴 다음에 나중에 찾으라고 제안했지만 장제스는 이를 또 다시 만주를 외세에 넘기는 행위라고 거부했다. 장제스는 충칭에 있던 반면 공산당은 진작부터 화베이, 만주에 지하조직을 침투시켜 민심을 확보하고 있었으며 중심지가 옌안이었던데다 소련의 후원을 얻었던터라 훨씬 만주에 접근하기 용이했다. 결국 공산당은 만주의 90%를 장악했다. 장제스는 쑨리런 산하의 신1군을 만주에 파견했으나 병참능력의 부족과 소련의 비협조로 일부 대도시만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소련은 여기서 막대한 일본군 무기를 노획하여 이것으로 린뱌오의 동북인민자치군을 무장시켰는데 실제로 린뱌오는 국공내전 발발 이후 만주의 요양-심양 회전에서 중화민국 국군을 크게 격파한다.

결국 전쟁이 끝난 지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국공내전이 발발했고 중일전쟁에서 크게 타격을 입은 국민당은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할 겨를도 없이 다시 전국구 규모의 내전에 돌입했다가 허망하게 패배하여 대만으로 밀려나 오늘날의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의 관계가 성립되게 된다.


4.1. 사상자 논란[편집]


8년간의 전쟁에서 중국은 1950년 발표한 중국백감을 통해 전사자 103만을 포함한 321만 명의 군인 사상자를 발표했으며 일본군의 경우, 후생성 통계를 통해 공식 전사자가 40만 5,000명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공식 수치는 너무 축소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중국의 경우, 학계의 추가연구 결과 최소 2,000만명을 상회하는 민간인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공산당의 공식 역사서인 중화인민공화국 중앙당사연구실에서 편찬한 중국공산당 역사에서는 총 3,500만명의 군인과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공식적 입장이다. 군인 사상자 역시 국민정부 관방이 처음 발표한 321만명 설은 지나치게 축소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며 1959년 하버드 대학교 출판부에서 내놓은 <Studies on the Population of China(1396~1951)>에서는 군인 사망자가 124만명, 부상자가 167만명, 실종자가 13만명에 달한다는 추정을 내놓기도 했으며 민간인 사상자의 경우에도 중화민국 행정원배상위원회는 처음에 총 사상자 913만명을 발표했지만 1988년, 이를 훨씬 상회하는, 사망자 930만명, 부상자 950만명 등 2,000만명 이상이라는 추론이 나왔다. 이후 중화민국 군사작전국은 전사자를 131만 224명, 부상자를 175만 2,591명, 행방불명자를 11만 5,158명으로 발표하여 총 피해가 317만명이라고 주장했다.

극단적인 경우, 군인만 최대 1,000만명의 사상자를 내었다는 주장도 있다. 중국에서는 최대 사망자 5천만명설까지도 제기된다.

일본 역시 공식적 전사자는 40만 5,000명 수준이지만 일본 후생성이 지나치게 많은 수의 행방불명자를 기록하였으며 전후에 일본이 중일전쟁 관련 기밀문서를 많이 폐기한 것등이 지적된다. 이시카와 요시히로는 일본군 전사자를 47만 명 정도로 보았으며, 허잉친도 <팔년항전사>에서 일본군 전사자가 48만 3,000명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허잉친은 부상자까지 합치면 일본군이 241만명의 피해를 입었다고 보았다. 중화인민공화국은 공산당이 섬멸한 일본군만 52만 7,000명, 왕징웨이 정권의 괴뢰군을 합치면 171만 4,000명에 달한다고 주장하지만 거짓이다.[18]

한국 국방대학교의 기세찬 교수의 경우, 일본군 전사자가 172만명에 달하여 일본군 전체 전사자의 55%를 차지한다는 수치를 인용했고[19] 중국사회과학원 류다녠 교수는 일본군 전사자가 198만 4,000명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일본군 전사자가 100만이 넘는다는 주장 역시도 중국군 전사자가 1,000만명을 넘긴다는 주장처럼 상당히 급진적인 주장으로 보인다.

라나 미터의 <Forgotten Ally>에 따르면, 서구 학계의 정설은 중국의 군민 총 사망자는 최소 1,400만명이며 최대 2,000만명에 이른다고 본다고 한다.


5. 중일전쟁 관련 편견에 대한 고찰과 반박[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중일전쟁/오해와 편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역사에서의 비중[편집]


중일전쟁은 엄청난 역경에도 불구하고 고난에 처한 정부와 인민이 적에게 맞서 "최후까지의 항전"에서 승리를 거둠으로 기자들과 외교관들이 중국이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고 거듭해서 내놓은 예측이 틀렸음을 증명한 영웅적인 저항이었다. 진주만 공습 이전까지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중국은 일본에 맞서 사실상 홀로 싸웠다. 이 시기에 가난하고 낙후된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잘 무장되고 기술적으로 발달된 나라 중 하나의 80만 병력을 저지했다. 이후의 또 다른 4년 동안, 유럽과 아시아 두 전선에서 동시에 싸워 연합국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중화민국이 전쟁에 남아 분명한 역할을 수행한 덕분이었다.

<중국, 잊어진 연합국>(Forgotten Ally: China’s World War II, 1937-1945), 2013년도 출판, 라나 미터(Rana Mitter, 옥스퍼드 대학 역사학 교수, 중국연구센터 주임), 서문 6페이지.

194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 세계 진보적 지식인들과 예술가, 정치가, 혁명가들에게 파시즘에 맞서는 영웅적인 항쟁으로 기록되면서 찬사를 받으며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중일전쟁이었지만 정작 중일전쟁이 종결된 다음에는 역사에서 완전히 잊혀지다시피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을 다룬 전쟁사 연구에서도 대부분 누락되어, 1980년대에 나온 타임라이프사의 제2차 세계 대전사의 경우는 아예 중일전쟁을 2차 대전의 배경 중 하나로 간주해 중국 - 버마 - 인도 전역만을 다루고 있고 충칭 대공습과 대륙타통 작전을 제외하고는 버마 전선만 다루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전쟁 당사자인 중화민국이 패배하여 대륙에서 쫓겨났고 그 뒤를 이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중일전쟁 담론을 깨끗이 무시했으며 냉전의 결과로 서방에서는 국공내전에서 중국을 잃었던 이유를 추궁하기에 바빴던 탓이다.

연구에도 오랫동안 난황을 겪었는데 기본적인 사료가 그렇게 빈약하지는 않으나 객관성의 문제가 있어서 검증이 어려운 탓이 크다. 일단 일본군의 1차 자료는 일제 패망 이후 자신들에게 불리한 자료를 조직적으로 파기한데다가 전쟁 합리화, 선전을 위해 사상자 누락, 왜곡 등 조작이나 자화자찬이 많고, 중국군의 경우에는 중화민국측 자료는 양은 많으나 대만 밖을 나가질 못했는데다가 이 또한 객관적이지 못하다. 게다가 국공내전의 승자인 중화인민공화국의 프로파간다에 묻혀버렸고[20] 장제스가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어용학자들을 고용해서 조작한 자료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우, 중일전쟁 극초기와 백단대전을 빼면 거의 싸우지 않았는데도 집권 정당성을 위해 이를 숨기고 전쟁의 주역 국민당을 깔아뭉갰다는 근본적 문제가 있으며 공산주의 국가 특유의 과장성으로 인해 사료에 기재된 전황의 정확성에 문제가 많으며[21] 애초에 중일전쟁 자체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감이 크다.[22] 80년대 이후로 중일전쟁 관련 자료를 공개하고 유격전과 전면전을 분리해 국민당의 역할도 조명했으나 장제스 비하 등이 사라지는덴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상당히 전향적으로 재평가하는 편이지만 공산당 독재 치하의 연구라는 점에서 한계가 명확하다.

미국 등 기타 연합국의 자료는 애초에 버마 전선이나 대륙타통작전 정도만 빼면 관심도 없고[23] 스틸웰과 장제스의 불화에 집중했는데다가 당시 미국의 중국통이 패트릭 헐리나 앨버트 웨드마이어, 조지프 앨솝 정도만 빼면 마오빠가 되어서[24] 공산당을 '농촌 민주주의자' 정도로 인식한 낙관적 옹호와 국민당을 항일을 회피하는 부패정당으로 묘사하는 악의적인 보고를 많이 올렸으며 국공내전 이후 중국을 공산주의자들에게 잃은 것에 대한 미국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화살을 국민당에게 돌리는 통에 이후 미국 쪽의 기록들은 국민당 정권 비난 일색에다가 역시 제3자라 자료가 적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의외로 일본에서 전후에 발간된 자료들이 어느 정도 신빙성 있을 정도이다.[25] 난징대학살 부정론자들은 예외 게다가 전투가 크게 벌어지고 사상자도 많은데 실제 전쟁에 끼친 영향이 거의 없다는 인식 또한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일본이 중국을 치지 않았으면 태평양 전쟁은 아예 발발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중국을 정복할 꿈에 가득 차 있었으나, 어마어마한 규모의 인구와 크기를 자랑하는 중국은 끝까지 버티면서 일본에 맞섰고 일본은 결국 이 수렁에 빠져 피해가 커지자 더욱 군국주의를 밀어붙이고, 손해를 메꾸기 위해 동남아시아를 치기로 결정, 본격적으로 연합국, 그리고 미국과 마찰이 일어난다. 중일전쟁이 없었다면 이후 동아시아 역사는 매우 크게 달라졌을게 뻔하기에 동아시아권에서는 매우 중요한 전쟁 중 하나이다.

중일전쟁은 태평양 전쟁 발발에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고 발발 이후에도 태평양 전쟁의 일부이자, 일본 육군의 절대 다수를 붙잡아둔 중요 전선으로 기능하였다. 일본군,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중일전쟁은 일본 육군이 주도하여 일으킨 전쟁이고, 태평양 전쟁은 일본 해군이 주도한 전쟁이다. 당연히 일본 육군의 주 관심은 중원, 만주 일대였지, 듣도 보도 못한 머나먼 태평양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들이 아니었다. 따라서 태평양 전쟁 초, 중반에 지상군 병력을 필요로 하는 전장에 대해 일본 육군은 그다지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고, 태평양 방면의 병력 파견 규모도 작전 구역의 면적을 생각해 보면 중원과 만주에 투입한 것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당장 과달카날 전투의 진행 경과만 봐도 이러한 점은 여실히 드러난다. 때문에 태평양 전쟁 개전 직후를 제외하고 연합군 지상군과 맞붙은 전장에서 일본군의 지상병력이 연합군 지상병력을 능가한 적은 없었으며[26], 이로 인해 태평양 전쟁에서의 지상전 양상은 대부분 '밀어붙이는 연합군(사실상 미군) vs 밀리는 일본군'이라는 구도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지상전의 패배는 그 일대의 제해권, 제공권 영구 상실[27]로 이어지면서 일본의 패망으로 이어지는데 한몫 하였다. 그리고, 전개 항목에 언급된 바와 같이 태평양 전쟁의 주요 전투들 중 일부는 중국 전역의 경과에 적게나마 영향을 받아 일어난 것도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제2차 세계 대전의 시발점을 폴란드 침공이 아닌 중일전쟁 발발로 봐야한다는 주장이 2000년대 들어서 나오고 있다.[28] 하지만 중일전쟁이 국제적으로 번져가지 않았다는 점에서 2차대전과 중일전쟁은 별개의 전쟁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애초에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주제에서 나치 독일의 지분이 너무 크다. 전역의 규모로는 독소전쟁 하나만으로도 당시 전개된 모든 전역을 곁다리로 치부해버리는 게 가능한 수준이고 전쟁 이외의 부분으로 보더라도 나치당의 권력장악 과정 및 수권법, 그리고 체계적으로 산업화되어 전개된 홀로코스트까지 생각한다면 2차대전 = 나치 독일이라고 해도 전혀 부족하지가 않다. 다만 저 시각은 유럽 쪽으로 좀 많이 쏠린 관점이다. 독소전쟁을 예로 들었는데 전역 규모로는 아시아-태평양 전쟁은 결코 뒤지지 않고, 태평양 전역은 인류가 전쟁을 벌인 전역중 가장 넓은 지역이다. 중일전쟁 사상자 숫자 또한 그때 당시 중국의 행정력 부족과 일본 측의 자료 폐기등의 사료 인멸로 인해 적게 집계되었을 뿐이지, 실제론 독소전보다 더 많은 사상자가 났을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뛰어드는 계기가 된 태평양 전쟁이 중국 전선에서의 막장 상황을 타개한답시고 일본군이 벌인 자살 행위였다는 점에서 어느정도의 연결고리는 있다. 어차피 스페인에서는 스페인 내전이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아프리카에서는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략 전쟁, 반공학자의 일부는 적백내전 기원설까지 주장하니 그리 이상할 것이 없는 현상이긴 하다.

또한 이 전쟁의 결과로 중화민국은 2차대전의 승전국 중 하나가 되어 UN 상임이사국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직후 발발한 국공내전에 패해 타이완으로 이동하고 대륙을 중국 공산당이 접수하면서 극동 질서를 담당할 상임이사국, 즉 정통 중국이 누구냐에 대한 대립이 생기게 되었다. 결국 1971년 중화민국이 형식적으로 자진 탈퇴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상임이사국 권리를 확보하였다. 그러나 중국이 일본에게 어찌어찌 승리하긴 했으나 일본이 점령지에서 저지른 생체실험, 신멸작전(특히 난징대학살) 등의 전쟁범죄로 인해 지금도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7. 기타[편집]


중일전쟁 초기인 1938년 5월에는 중국 공군이 일본 본토 공격감행한 적이 있다. 중국 공군의 소련제 SB-2 폭격기 2대[29]가 일본 큐슈구마모토 상공까지 온 것. 이 때 중국군 폭격기가 투하한 것은 폭탄이 아니라 일본군의 만행을 비난하는 선전물(삐라)들이었다(...). 작전을 수행한 폭격기들은 아무런 공격을 받지 않고 무사히 귀환했다. 작전으로 인한 실질적인 효과는 거의 없었고 이후에도 중국 공군은 더 이상의 일본 본토에 대한 폭격 작전을 시행하지 않았다. 다만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일본의 대공 방어 체계가 엉망이었다는 것이다. 일본군 수뇌부는 이 사건을 단순 해프닝으로만 생각하고 대공 방어의 증강 등 대응책을 전혀 세우지 않았던 것이다.

지도만 놓고 보면 죄다 평지로 보여서 일본군이 중국에서 발목 잡힐만한 이유를 모를수도 있지만, 이 지도를 삼국지로 가져다 놓으면 답이 나온다. 더럽게 험난한 지형을 가진 지역들이 보일 것 이다. 정말 저런 곳들 제외하면 일본 육군이 나름 최선을 다한 셈(...)

이 중일전쟁 덕분에 일본은 1940년 동계(삿포로) 올림픽/ 1944년 하계(도쿄) 올림픽 개최권을 반납할 수밖에 없었다. 자업자득인 셈이지만 당시의 숙원이 있었는지 전후 그곳에서 다시 개최[30]했다.


7.1. 70년 후[편집]


전승절(중국) 항목 참조.


8. 참고문헌[편집]


중일전쟁과 그 하위문서들은 다음과 같은 저서, 논문들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8.1. 기세찬 교수의 중일전쟁 논저들[편집]


기세찬(국방대. 육군 장교) 교수는 한국 학계에서 중일전쟁 관련 국민정부군에 대한 대표적 전문가이자 선구자이다. 그동안 중일전쟁 시절 국민정부군에 대한 연구가 매우 부진했던 실정에서 중국쪽 연구를 인용, 연구하며 해외에서 재평가 된 국민정부군을 국내 학계에서 본격적으로 소개한 것이다. 또한 조지프 스틸웰의 실체를 분석해서 국내 학계에서 비판적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 단행본)『중일전쟁과 중국의 대일군사전략(1937-1945)』, 경인문화사(2013)[31]
  • 논문)「中日戰爭 中期(1939~1941) 國民政府의 抗戰戰略과 實踐」, 역사와 담론 第56輯, 2010.8
  • 논문)「남경국민정부의 국방건설 재검토(1928-1937)」, 中國近現代史硏究 第 46輯, 2010.6
  • 논문)「中日戰爭 初期 國民政府軍의 抗戰戰略과 戰術 再檢討(1937~1938)」, 군사지 제78호, 2011.3
  • 논문)「태평양전쟁 초기 연합국의 동맹전략과 대일작전」, 사총, 72권 0호, 2011
  • 논문)「인도-버마전역과 중국원정군」, 군사지 제88호, 2013.9,
  • 논문)「태평양전쟁시기 미국의 종결전략과 중국」, 中國近現代史硏究 第 57輯, 2013.3
  • 논문)「국민정부의 항일유격전에 관한 연구」, 사총, 82권 0호, 2014
  • 논문)「중일전쟁시기 국민정부의 전시동원에 관한 연구」, 사총, 85권 0호, 2015


8.2. 평전, 회고록[편집]


  • 장제스 평전, 조너선 펜비, 민음사(2014년)
  • 히로히토 평전, 허버트 빅스, 삼인(2010년)
  • 히로히토 평전, 에드워드 베르, 을유문화사(2002년)
  • 마오쩌둥 평전, 로스 테릴, 이룸(2008년)
  • 마오쩌둥 평전, 알렉산드르 판초프, 스티븐 러빈, 민음사(2016년)
  • 왕징웨이 연구, 배경한, 일조각(2012년)
  • The Generalissimo, Jay Taylor, Belknap Press(2009년)
  • 장제스 일기를 읽다, 레이 황 저, 푸른역사(2009년)
  • 웨드마이어 회고록과 논평, 이종학 저, 충남대학교출판문화원(2014년)
  • 제2차 세계대전 상하권, 윈스턴 처칠, 까치(2016년): 윈스턴 처칠의 2차 세계대전 회고록을 상하권으로 축약한 버전. 중일전쟁에 대해 많이 다루지는 않았으나 카이로 회담에서 장제스와 만난 일 등이 기록되어 있다.


8.3. 전쟁사 논저[편집]


  • 중일전쟁(용, 사무라이를 꺾다 1928~1945), 권성욱, 미지북스(2015) - 인터넷에서 인기있는 블로거가 쓴 대중서적. 부흥 카페, 밀군카 등에서 활동하는 역덕이 연재한 중일전쟁사 시리즈를 편집, 수정하여 내놓은 단행본이다. 연재 때부터 역덕계에서 상당한 관심과 호응을 받아왔고 출판 후에 여러 역덕들에게서 인식을 바꾼 전환점이 되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정당화하는 혁명사관이나 국공내전의 패배에 대한 책임을 면피하려는 미국식 사관이 주류이던 시점에서 장제스와 국민정부에 대한 재평가 경향을 소개한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중국 근현대사를 파는 역덕들은 손에 꼽을 정도고 다른 분야에서 박식한 역덕들도 중일전쟁과 근현대 중국 전쟁사에 대해선 피상적으로 알거나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정부군에 대한 실체는 한국 인터넷에선 블루오션이었던 점이 크겠다. 하지만 해당 블로거는 오로지 본인이 개인적으로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쓴 작가이지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고[32], 저서인 중일전쟁에서도 여러 오류나 주관적 해석이 많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수용할 만한 물건은 아니며 역으로 지나치게 국민당의 실책에 대해서 면피한다는 등의 여러 비판도 있다. 입문을 넘어서 중일전쟁 시절 국민정부군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알고싶다면 위의 기세찬 박사의 글을 읽어보아야 한다.
그러나 기세찬씨의 글 역시 국민정부군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이나 제대로 된 중일전쟁 통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논문으로서 그것도 한국인의 입장에서 단편적인 시각을 담고 있으며, 교수들이 흔히 그러하듯 필력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서 접근성과 가독성 면에서 쉽게 접근하기 어렵고 설명이 상당히 불친절하다는 단점이 있다. 차라리 국방대학교 이건일 교수가 2019년에 출간한 <군벌2, 삼화>가 만주사변부터 국공내전기까지 국민정부군을 다루고 있어 권할 만하다. 애초에 비교 대상 자체가 없는 현실에서 명확한 근거의 제시 없이 학계 교수가 썼으니 당연히 전문성을 갖추었을 거라는 식의 이분법적인 논리는 전형적인 '그릇된 권위의 호소'에 지나지 않는다.(오류와 주관적인 시각 운운한다면 당장 이 글부터 고스란히 해당된다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9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단순히 학계 밖에 있는 사람이 썼다는 이유만으로 '입문용'운운하면서 폄하하기에는 시중의 여느 작가들마냥 기존에 나온 책을 재구성하는 수준이 아니라 전쟁 전반의 과정은 물론이고 단순히 중국, 일본의 테두리를 넘어서 세계사적인 흐름과 당시 중국에서 활동했던 임정과 광복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각에서 폭넓게 다루고 있디다. 또한 풍부한 지도와 사진, 체계적인 구성으로 누구나 전쟁의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당장 이대영씨의 <알기쉬운 2차대전사>가 라이프 2차대전사의 표절작이라는 점이나, 심지어 태평양전쟁을 다룬 어느 작가는 참고문헌에 '나무위키'를 버젓이 적어놓은 것과 비교하여 이 책은 100권이 넘는 해외자료와 국내외 논문을 참고하고 있다.
디테일한 부분에서 오류는 있겠지만,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국내 중국통으로 알려진 학계 전문가들조차 중국 근현대사를 중국의 공산주의 정치사관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한 채 몇몇 정치적 사건만 간략하게 언급했다는 점, 출간된지 7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이 책을 제외하고 시중에는 제대로 된 중일전쟁 통사가 나오지 않았으며, 심지어 전쟁 당사국이면서도 자국 중심의 정치사관에만 갇혀 있는 중국이나 일본쪽 서적들이 중일전쟁을 태평양전쟁의 일부로만 바라볼 뿐 이만한 중일전쟁 통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인문학 불모지인 국내 여건을 고려했을 때 학계 바깥에서 이러한 도전 자체가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블루오션' 운운하기 앞서서 왜 블루오션인가를 먼저 생각해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존 키건의 <제2차 세계대전사>와 같은 명저라고 할 수야 없지만(20세기를 대표하는 전쟁사 연구가 중 한 사람이자 영국 귀족 칭호까지 받은 사람과 비교하는 것부터 어불성설이다.) 정통사학을 전공한 순수혈통이 아니라는 이유로 폄하하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학벌지상주의와 비주류가 주류 세계에 도전하기가 얼마나 어려우며 나무위키를 이용하는 역덕들부터 색안경을 끼고 보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 중일전쟁 - 역사가 망각한 그들 1937~1945 (2013년): 원제는 잃어버린 동맹Forgotten Ally: China‘s War with Japan, 1937~1945 그동안 국내만큼이나 중일전쟁에 대해 무관심했던 서구 학계에서 중일전쟁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한 가장 최신 서적. 기세찬 교수와 권성욱씨가 공동번역하여 인문학 전문 출판서인 글항아리 출판사에서 2020년 3월 정식 출간되었다. 제목대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중요한 한축이었음에도 중일전쟁 말기, 국공내전을 거치면서 미중의 갈등과 장제스의 몰락 속에서 사실상 역사가 잊어버린 중국의 항전사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권성욱씨의 <중일전쟁>처럼 중일전쟁 전반을 다룬 전쟁사라기보다는 장제스를 중심으로 그의 성공과 실패, 스틸웰과의 갈등 등 정치사 중심이라는 점에서 아래의 리처드 번스타인의 저서와 유사하며 중일전쟁 전반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는 일반인에게는 다소 장벽이 높은 점도 있다. 저자 레너미터가 인도 출신이다보니 항전 당시 중국 3대 재난 중 하나이자 장제스가 가장 욕 먹는 사건 중 하나인 허난 대기근을 같은 시기에 있었던 인도 벵갈 대기근과 비교하면서 진정으로 욕을 먹어야 할 쪽은 장제스가 아니라 처칠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 2차세계대전사, 존 키건, 류한수 역, 청어람미디어(2016)[33]
  • 2차 세계대전사 1~3권, 제러드 와인버그, 길찾기(2016)
  • 제2차 세계대전, 앤터니 비버, 글항아리(2017년): 스탈린그라드, 디데이, 스페인 내전으로 유명한 2차 세계대전 연구가 앤터니 비버의 저작. 엄청난 분량 가운데서 지금까지 출판된 2차 세계대전 관련 서구 학계의 저서들 중에서 중일전쟁의 비중을 가장 많이 할애한 저서로, 개전부터 종전까지 꽤나 자세히 다루었으며 국민정부와 장제스의 분투 및 정책에 대해서도 재평가 담론을 실었다. 다만 집필 과정에서 <마오: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로 유명한 장융과 교류하면서 장융이 제기한 공산당 음모론 역시 상당히 인용하였는데 이는 다른 사료와 교차검증해서 주의해서 읽어볼 부분이다.


8.4. 배경 및 체제 설명[편집]


  • 중국근현대사 3권 (1925-1945, 혁명과 내셔널리즘), 이시카와 요시히로 저, 삼천리(2013년)
  • 일본 근현대사 시리즈 5권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으로, 가토 요코, 어문학사(2012년)
  • 중국의 당과 국가(정치체제의 궤적), 니시마루 시게오, 고쿠분 료세이 저, 한울(2012년)
  • 쇼와 육군, 호사카 마사야스, 글항아리(2016년)
  • 쇼와사 1 전전편, 한도 가즈토시, 루비박스(2010년)
  • 일본군사사-전전편, 후지와라 아키라, 제이앤씨(2013년)
  • 다큐멘터리 중국 근현대사 3권, 서문당 편집실(2014년)
  • 중국인민해방군사, 국방군사연구소(1998년)
  • 중화민국과 공산혁명, 신승하, 대명출판사.


8.5. 기타[편집]


  • 역사는 누구 편에 서는가(난징의 강간), 아이리스 장, 미다스북스(2014): 난징대학살을 다룬 기념비적인 저서.
  • 1945 중국, 미국의 치명적 선택, 리처드 번스타인, 책과함께(2016): 미국의 언론인 리처드 번스타인이 중일전쟁~국공내전 기 중국에서의 미국 외교 활동과 국공 갈등에 대해 써낸 책. 중국 공산당의 미국 접근 정책과 미국의 중국통들이 어떻게 마오에게 기울었는지, 그리고 국공내전 직전의 중국의 사회상에 대해서 매우 자세하게 다룬 역작이다.
  • 남경사건, 가사하라 도쿠시, 어문학사(2017)


9. 중일전쟁 관련 문서[편집]



9.1. 배경 관련[편집]




9.2. 전투, 사건[편집]



9.2.1. 화북전역[편집]




9.2.2. 주요 전투[편집]




9.3. 인물[편집]


중일전쟁/관련 인물 문서 참조.


9.4. 관련 단체[편집]




10. 대중매체[편집]


중국에서는 당연히 근현대사극으로도 많이 제작되지만, 2010년대 전반기에 같은 중일전쟁을 우려먹으면서 시청률을 잡으려다 보니 항일신극(抗日剧)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을 정도의 초 막장 드라마양판소처럼 쏟아져 나왔기도 했다. 이들 드라마는 중국내에서도 고증이 막장인건 물론이고 내용전개도 무협지판타지로 전개되냐며 엄청나게 까이다보니 광전총국[34]에서조차 막장 고증으로 유명한 드라마에 대해서 과징금이나 방영중지같은 재제조치를 취했기 때문에 이 정도로 맛이 간 드라마는 줄어들었다. 가끔씩 항일신극이라며 까이는 작품들이 좀 나오기는 하지만. 여하튼 이 때의 막장고증이 어느정도였는지 바이두 백과 항일신극 항목에서 화살로 일본군을 때려잡을려고 한다거나 맨손으로 일본군을 반으로 갈라낸다거나 일본군의 전쟁범죄 등 방영시간대에 걸맞지 않게 폭력적이고 자극적이며 선정적인(...) 장면들이 줄줄히 나올 정도.

그리고 정작 중일전쟁 당시 연안에만 있다시피한 중국공산당을 의롭고 일본을 상대로 열심히 싸운 항일열사로 묘사하는 반면, 실제 역사대로 일본을 상대로 싸웠던 중국국민당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능력도 없는 모지리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36] 심지어 극 중 원래 국민당 소속이었던 주인공이 진정한 애국자인 공산당에 감화(...)되어 당적을 옮긴다던지, 아예 공산당 소속의 스파이인 주인공이 중국국민당의 정보기관에 침투해서 오랫동안 국민당 관료 노릇을 하다가 마지막에 공산당으로 되돌아간다는 식의 묘사도 많이 나온다. 실제 역사를 알고나면 정말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중국국민당의 도움을 받아 독립운동을 했던 한국인의 입장에서 더 오글거리고 낯뜨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도 북한은 공산당의 도움을 받긴 했는데 그래도 팔로군에 비해 국민혁명군 군복의 디자인이 압도적으로 예쁜 탓에 극 중 국민당에 침투한 공산당 스파이인 주인공은 항상 국민혁명군 군복을 입고 나온다

그나마 최근들어 800중국국민당의 항일투쟁을 재조명하는 매체도 늘어나고는 있지만... 사실 이 800만 하더라도 국민당군을 재조명했단 이유로 높으신 분의 심기를 거스른 모양인지 개봉이 수차례 연기된 적이 있었고, 2019년을 기점으로 광전총국에서 아예 국민당을 공산당보다 더 유능하게 그리면 방영허가를 내리지 않겠다고 못을 박은 상태이기도 하다.


10.1. 영상물[편집]




10.2. 게임[편집]


  • 광영사명 - 항전용사, 몽회항전 모드. 각각 상하이 전투루거우차오 사건, 쓰싱 창고 전투[37]를 배경으로 하는 모드다.
  • 팔년항전 - 2001년 대만에서 제작된 게임, 장르는 SLG.
  • 팔년항전 2 - 2012년에 제작된 팔년항전의 후속작인데 장르가 RTS로 바뀌었고 무난한 전작에 비해 별로 호평도 듣지 못했다.
  • 항일: 혈전상해탄 - 2003년 대륙에서 제작된 FPS 게임. 퀄리티나 완성도가 좋다고는 말 못하지만 의외로 중국에서 인지도는 있는듯.
  • 항일: 혈전면전 - 2004년 제작된 후속작으로 이번에는 미얀마 원정이 주무대가 된다. 역시 호평은 받지 못했다. 제작사는 야심차게 후속작을 기획했으나 망해버렸다.
  • 호이4Eight Years' War of Resistance모드: 동아시아 국가들의 국가집중을 뜯어고치고 당시 중국의 지도를 훨씬 세밀하게 내놓은 모드다. 초반에는 일본의 국가집중만 손봤으나 이젠 중국의 국가집중과 국가정신 등이 대폭 추가되어서 고증에 맞는 플레이가 가능하다. 실제 역사대로 국민정부로 플레이하여 쓰촨 군벌들의 권력을 해체한다거나 1936년 2차 양광사변을 통해 광둥의 지배권을 확보하는 등 중화민국 입장에서 더 다채로운 정치적 이벤트를 겪으며 플레이 할 수 있으며 오로지 일본의 괴뢰국이 되느냐, 일본과 전쟁하느냐만의 선택지가 있던 원작과 달리 만주국 인정을 담보로 한 중일동맹 체결도 가능하다. 당시 중공업이 부재하고 정치적으로 혼란했던 중화민국 상황을 고려하여 기갑 관련 기술 연구에 1,000%이상 시간 연장을 하는 국가정신 페널티를 부여하는 등 중화민국의 정치, 경제적 상황 등도 고증이 되었으며[38] 일본 쪽도 다양한 정치 이벤트가 가능하다. 2차 양광사변같은 것은 이전 호이 시리즈엔 원래 있던 이벤트였지만 호이4에선 그냥 버려졌다만... 2017년 11월 15일 중국관련 확장팩인 Waking the tiger의 트레일러가 나오면서 보완될것으로 보여진다 자세한건 Hearts of Iron IV/DLC 항목 참조. 이에 맞춰서 8년 항전 모드도 Waking the tiger DLC에 맞춰서 새로 출시되어 지금까지 계속 패치되고 있다.
  • Order Of Battle : World War II - The Morning Sun 캠페인에서 1937년부터 1940년까지의 중일전쟁을 다루고 있으며 플레이어는 일본군을 맡게 된다. 아마 중일전쟁 초반 전투를 가장 자세히 다룬 게임 중 하나일 것이다. 상대가 많이 약하기 때문에 여러 캠페인 중에서 난이도가 가장 낮은 편이다. The Rising Sun 캠페인에서 미군 상대로 밥솥처럼 터져나가는 치하도 이 캠페인에서는 최강의 전차이다. 1937년 베이핑-톈진 전투를 시작으로 1939년 동계공세작전까지 10개 시나리오를 역사적 전투에 따라가고 있으며, 마지막 가상 시나리오에서 국민당의 수도인 충칭을 점령하는 걸로 캠페인이 끝나게 된다. 이 캠페인이 끝나면 일본군의 승리로 중일전쟁이 마무리 되며 이어지는 The Rising Sun 캠페인에서는 미군을 상대로 싸우게 된다.


10.3. 문학작품[편집]




11. 어록[편집]


"한 방울의 피는 한 치의 강토로, 10만의 청년은 10만의 정병으로!"

중일전쟁 당시 중국 정부의 슬로건.[39]


"폭악(暴惡)한 지나(支那)를 응징하자(暴支膺懲)!"

중일전쟁 당시 일본 정부의 슬로건.[40]


"...우리의 피와 살로 우리의 국방을 대체하고 우리의 피와 살로 적의 총포에 저항한다면, 비록 모든 전투에서 패할지라도 나는 최후에는 반드시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종류의 혁명전술을 사용한다면 그들이 중국의 1개 성을 점령하는데 최소한 1개월이 걸릴 것이고 통계적으로 그들이 중국의 18개 성을 점령하자면 최소한 18개월이 걸릴 것이다. 이 18개월의 시간 동안에 국제 정세의 변화가 (일본에게) 이익으로 돌아가겠는가? 하물며 그들은 1개월에 결코 우리의 1개 성을 신속하게 점령할 수도 없을 것인데..."

1934년 7월, 루산군관훈련단에서의 장제스의 강연.


"일본이 얻고자 하는 것은 전 태평양의 패권이지 일본과 중국의 양 국가의 문제가 아니다. (중략) 우리가 능히 자강할 수 있다면 천하가 모두 우리의 우방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일본의 무력이 얼마나 강대하던가에 관계없이 사실상 그들은 이미 고립의 위치에 처해 있으며 전 세계의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다."

장제스


"이번 사건은 완전히 중국 측의 계획적인 무력항일인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정부는 일본의 각의에서 중대결의를 행하여 북중국출병에 관해 정부로서 취해야 할 필요조치를 내릴 것을 결정한다."

1937년 7월 11일, 일본 정부의 성명.


"萬一真到了無可避免的最後關頭,我們當然只有犧牲,只有抗戰"

"만일 정말로 회피할 수 없는 운명의 갈림길에 이른다면, 우리에게는 당연히 희생과 항전만이 있을 뿐이다!"

1937년 7월 17일, 장제스의 루산성명.


"우리가 일개 약소국이긴 하나 만일 '최후의 관두'에 달했을 때에는 전 민족의 생명을 희생해서라도 국가의 생존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중략) 만일 피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하여 '최후의 관두'에 서게 되면, 우리에게는 당연히 최후의 희생과 응전이 있을 뿐이다."

1937년 7월 17일, 장제스의 루산성명.


"제가 어디로 가든지 간에 그곳이 바로 정부이자 저항의 중심지입니다. 제가 곧 국가입니다."

장제스


"현재 상황은 제국이 경험해 온 것과 전혀 다르다. 우리는 이 전쟁이 전면전으로 이행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1937년 9월 4일, 스기야마 하지메 일본 육군대신.


"중화민국과의 제휴 협력에 의지하여 동아시아의 안정을 확보하느라 불철주야 애썼으나 중화민국은 제국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일을 크게 만들어 결국 이번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짐은 이를 개탄하는 바이다. 이제 군인은 온갖 어려움을 물리치고 충성을 다해달라. 이로써 중화민국의 반성을 촉구하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빨리 확립할 수 있으니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1937년 9월 4일, 쇼와 덴노의 제국의회 개회식 칙어.


"중일의 싸움은 본당 발전의 절호의 기회이며 우리 공산당의 기본정책은 전력의 70%를 자기 세력 확대에, 20%를 국민정부와의 대응에, 나머지 10% 항일에 사용한다."

1937년 9월 26일, 8로군 중대장 이상 모든 간부들을 모아서 실시한 마오쩌둥의 훈시.


"상하이에서 내신을 통해 난징에서 보인 아군의 잔학상을 자세히 전해왔다. 약탈, 강간은 눈 뜨고는 못 볼 참상이다. 아아, 이것이 황군이란 말인가."

외무성 동아국장 이시이 이타로


"우리는 승리할 때까지, 우리의 두 다리가 정말로 부러질 때까지, 설령 우리의 아름다운 땅과 유구한 역사 그리고 중화의 갈망이 피로 물들고 화염에 삼켜져 멸망할지라도 계속 싸울 것입니다."

1937년 11월, 쑹메이링


"...굴복해서 멸망당하느니 차라리 전쟁을 벌이다 패배해서 멸망하는 편이 낫겠다."

1938년 1월 2일, 장제스


"...국민정부를 부인하며 이를 말살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1938년 1월 18일 공식 성명.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비록 우리가 18개 성 중에서 15개를 잃는다손 치더라도 오로지 쓰촨, 윈난, 구이저우를 지킬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적일지라도 물리칠 수 있으며 잃어버린 땅을 수복하고 국가를 재건하고 우리의 혁명을 이룰 수 있다.

1938년, 장제스의 난웨 군사회의에서의 발언.


"나는 일부 도시들을 잃었다고 동요하지 않소. 만약 너무 많은 것을 잃는다면 우리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일으켜 세울 참이오."

장제스


"차라리 산산이 부서진 옥이 될 망정 온전한 기와가 되지는 않겠다."

장제스, 우한 함락 이후의 발언.


"중국과 같은 대국이 나 따위에 팔릴 나라는 아니다. 비록 내가 조인하더라도 그것은 내 몸을 파는 계약에 지나지 않는다."

1939년 12월 30일, 왕징웨이


"(중국에서의 최종 목적은) 군사적인 승리를 얻는 것 뿐 아니라 중국의 재생과 일본, 만주국, 중국의 상호협력을 기초로 하여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것이다. 이 목표가 실현되지 않는 한 충돌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1940년 1월, 히라누마 기이치로


"우리는 항복하지 않고 앞으로, 반드시 앞으로 진군해야만 한다. 항복은 틀림없이 전 국가적인 참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1940년, 장제스


"적의 전의를 파괴하고 쇠망시키라."

1941년 12월 3일, 쇼와 덴노의 대륙명 575호.


"옌안은 끓어올랐다. 붉은 깃발이 곳곳에 내걸렸다. 중심가는 물론 주변의 산악도 마찬가지였다. 북이 울리고 폭죽이 터졌으며 사람들은 모자를 하늘로 던졌다. 농민들은 사과와 배를 내놓았고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도 얼싸 안고 춤을 추었다. 그날 밤 산과 들은 불이 바다를 이루었고 기쁨이 흘러넘쳤다. 8년에 걸친 일본과의 힘든 싸움은 마침내 승리로 끝났다. 축제는 사흘 동안 계속되었다."

마오쩌둥의 러시아어 통역 스저의 회고.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공무원, 학생, 상인과 이른바 상류층이란 사람들은 환락의 소용돌이로 몸을 던졌다."

수필가 겸 극작가 루링


"이 100년에 가까운 굴욕의 역사는 마침내 끝났다. 신화일보 전 직원은 열광했다. 사실상 충칭의 모든 주민, 중국의 모든 국민이 열광했다."

신화일보 설립자이자 좌익작가연맹 작가 샤엔


"모든 사람은 오늘을 영광스러운 날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나는 홀로 커다란 부끄러움과 슬픔을 느낀다."

장제스



12.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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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irst Sino-Japanese War는 청일전쟁이다.[2] 이날 난징에서 중국군은 만주를 제외한 전 지나주둔군과 인도차이나 방면 남방총군의 항복을 받아냈다. 만주는 소련군이 담당했다.[3] 시안 사건으로 인한 2차 국공합작 이후 초공작전을 중단하고 본격적인 항일전을 시작함.[4] 중화소비에트공화국 시기인 1932년 4월에 형식 일제에 선전포고, 2차 국공합작 후 중국군 산하 팔로군으로 참전.[5] 차관 제공과 태평양 전쟁 당시의 공동전선[6] 차관 지원과 태평양 전쟁 당시의 공동전선[7] 차관과 군수물자 지원 및 불가침조약 체결.[8] 만주 전략 공세 작전으로 관동군만주국, 몽강연합자치정부를 붕괴시킴.[9] 소련과 함께 만주 전략 공세 작전에 가담.[10] 공산당 파괴를 위한 군수물자, 고문관 및 군수산업 건설을 위한 대규모의 차관 및 무기 제공. 주중 독일 군사고문단 문서 참조.[11] 나치 독일은 일본의 동맹국이였지만 동시에 거대한 시장 중 일부인 중화민국에 대한 군사적 고문 및 장비 지원을 했었다. 이후 일본의 항의로 독일로 송환당한다.[12] 청일전쟁도 Sino-Japanese War라고 부르기 때문에 앞에 First, Second를 붙이거나 뒤에 연도를 달아서 구분한다.[13] 현대 일본 주류 학계에서 지칭하는 단어.[14] 당시 일본 제국에서 지칭한 단어. 일본의 극우들은 현재에도 이 단어를 쓰는 경우가 많다.[15] 오늘날 나이드신 어르신들(1920~30년대생) 상당수가 중일전쟁을 '지나사변'이라고 부르는 분들이 많다.[16] 이게 맞다면 특별군사작전의 선배격인 셈이다.[17] 하지만 태평양 전쟁에서는 선전포고를 하려고 했다. 여러 문제로 선전포고문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서 문제지...[18] 공산당이 직접적으로 섬멸한 일본군은 10만 명에서 20만 명 사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백단대전 참고.[19] 283페이지 참조.[20] 이러한 경향은 국공내전이 재개되기 전인 중일전쟁 시절부터 심했다. 자기들이 민주적이고 혼자 싸우고 있다는 마오쩌둥의 낚시질에 미국 언론인, 외교관, 군인까지 속았는데다가 중국의 학생과 지식인들도 낚여 국민당은 싸우지 않는단 인식이 파다했다.[21] 당장 사상자 논란에서 보았듯이 자체 일본군 사살이 50만이 넘는다고 주장하는데 대체 국민당과 싸우다 전사한 공식 전사자가 40만인데 이 50만은 또 어디서 나온걸까?[22] 그 유명한 난징대학살이나 충칭대공습조차도 중국에서는 한때 신경을 안썼다.[23] 미 육군을 중심으로 미국 참전 전인 1937년에서 41년까지의 무관심과 편견이 당시부터 심각했다. 참전 후 이전까지의 국민당군의 승리한 전투들을 모조리 조작이라고 치부할 정도.[24] 주중 미국 대사 클레런스 가우스가 대놓고 국민당을 멸망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였다.[25] 일본 우익들 중에서도 만주사변까진 찬양해도 중일전쟁까지 찬양하는건 많이 답없는 자들이라 수가 적은 것도 있고 중일전쟁의 당사자인 일본에선 중화인민공화국의 자화자찬 혁명사관을 진작부터 비판적으로 보아 중화민국 중심의 민국사관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움직임의 일환으로 나온게 산케이신문에서 연재후, 출판된 장개석비록.[26] 이는 지상병력의 신속한 기동이 불가능한 해상/섬 지역이라는 특성과, 요새화된 곳은 가급적 건너뛰고 상대적으로 취약한 곳만 골라서 찔러대는 미군의 전략에 의한 영향도 크다.[27] 물론 전쟁 후반에 가면 압도적인 질적, 양적 차이에 의해 지상 점령 전부터 제해/제공권이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상태에서 전투가 시작되었지만, 지상에 안정된 기지를 확보한 상태에 비할 바는 못 된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땅을 딛고 사는 존재이다.[28] 다만 대부분이 중국 연구에 관련된 학자나 중국 국적의 학자들이라는 특성이 있다.[29] 단, 자료에 따라선 마틴 B-10 폭격기인 것도 있다.[30] 1964 도쿄 올림픽(예정으로부터 20여년 뒤), 1972 삿포로 동계올림픽(예정으로부터 32년 뒤)[31] 본인의 고려대 박사학위 논문(2010)을 중심으로 보완, 개정한 책이다. 학사, 석사는 각각 육군사관학교와 국방대에서 취득했다.[32] 애초에 본업조차도 작가는 아니고 공무원이다.[33] 이 책은 구소련 및 동유럽권 자료가 뚫리기 전에 나온 책이라 서부전선에 대한 내용은 필요이상으로 많지만 동부전선이나 태평양 전쟁에 관련한 내용은 서부전선에 비해 많이 부족한 면이 있다. 특히나 중일전쟁 관련한 서술은 거의 의미없는 수준이다.[34] 한국 방심위에 상응하는 기관[35] 그래도 80년대 아직 계엄령이 떨어지고 중국국민당이 장기독재하던 시절에는 오늘날 중국 본토에서 자주 제작되는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항일 영화나 드라마들이 대만에서 많이 제작되기는 했다.[36] 그래도 2020년대를 기점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중국국민당의 본거지인 대만 드라마에서보다 중국 본토에서 제작되는 시대극에서의 국민당 묘사가 훨씬 나은 편이긴 하다. 대만에서는 2.28 사건의 만악의 근원으로 그려져서 오히려 국민당 치세의 대만이 일본 식민지 시절보다 더 암울하게 묘사되는반면[35], 어쨌든 중국 드라마에서는 나름 열심히 싸우고 포스쩌는 군복을 입은 항일 영웅으로 묘사되기는 하는 편. 아무래도 국민당이 공산당보다 패션에서는 압도적으로 우월하다보니(...) 극 중 원래 공산당 스파이인 주인공이 오랫동안 국민당 관료처럼 멋있고 옷 맵시가 좋은 군복이나 중산복을 입는 걸로도 묘사되기도 한다.[37] 상하이 전투의 일부. 자세한 것은 상하이 전투 문서 참조.[38] 이러한 페널티들은 산업 국유화, 법폐개혁 등의 일련의 국가집중을 완성시킨다면 없앨 수 있다. 다만 혼란한 상황을 다 고증해서 아예 일본에 동맹국으로 붙지 않는 이상은 없애기가 더럽게 어렵다.(...) 그리고 천리푸, 다이리 등이 반일파였다는 것을 고증하여 만약 일본과 동맹을 맺는다면 이들을 고용할 수 없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국민당 강화 루트를 못 타서 정치적으로 망한다.(...)[39] 대륙타통작전 당시 엄청난 피해를 입은 중화민국은 그때까지 병역이 면제되어있던(1935년부터 중화민국은 징병제를 실시했다.) 중학교 졸업생 이상에게도 자원입대를 호소했다. 이에 10만명의 목표는 12만 5천명으로 초과달성을 이루는데 성공하였고 이들로 구성된 8만 6천명의 지식청년군은 빠른 전쟁 종결로 실전에는 투입되지 못했으나 당시의 높은 내셔널리즘을 짐작할만한 일화이다.[40] 1928년경부터 일본군이 중국에 출병할 당시의 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