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정부총통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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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3일에 치러지는 총통 선거에 대한 내용은 제16대 대만 정부총통 선거 문서 참고하십시오.
대만의 총통 및 부총통 선거로, 정식 명칭은 '대만지구 거주민에 의한 중화민국 총통·부총통 직접선거와 파면(中華民國總統及副總統在臺灣之公民直接選舉與罷免)'이다. 특이하게도 다른 나라의 선거와는 달리 파면도 언급하고 있다.
러닝메이트 제도로 시행된다. 임기는 4년이며 중임 가능하다. 대만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로, 대만 총통으로 누가 당선되냐에 따라 중국과의 관계가 완전히 달라지며, 이는 동아시아를 넘어 미국과도 연계된 국제적인 외교, 안보 지형이 변경될 수 있는 큰 이슈가 되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에서 관심을 가지는 선거다.
임시정부는 1911년 17개의 성 대표들끼리 투표 실시하여 쑨원이 임시 대총통 당선되었다.
북양정부는 국회의원들을 통한 간선제를 실시하였다. 북양정부 시기는 투표권 행사를 하는 국회의원들에게 소위 거마비니 하는 명분으로 여러 수당을 지급하였기 때문에 재정력에 따라서 투표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여력이 컸다. 게다가 어용정당, 깡패, 군경이 총동원되어 제대로 된 민주주의 선거라고 하기는 지극히 어려운 실정이었다. 1923년 대총통 선거 때에는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는 여러 지방에서 국회의원들에게 더 많은 출석비를 지급하겠다고 서로 국회의원들을 꼬셔서 국회의원들이 돈 많이 주는 곳으로 몰려가는 실정이었다.
중화민국 임시약법에 따르면 국회의원의 3분의 2가 출석하여 그 중에 75% 이상이 지지하는 후보만이 대총통에 선출될 수 있었기 때문에 선출 자격이 까다로운 편이었다. 이 투표를 통해 위안스카이, 쉬스창, 차오쿤이 대총통으로 당선되었다. 리위안훙과 펑궈장은 전임 대총통의 사망, 궐위에 따라 부총통에서 대총통으로 계임한 케이스다.
중국국민당이 집권하던 중화민국의 과도정부였다. 1925년 광저우에서 국민정부를 선포하는 것으로 출범하였으며, 공식적으로는 1948년 중화민국 헌법을 시행하며 종결되었다.
중국국민당은 혁명의 완성기를 무력으로 탈환한 지역에서의 안정을 위해 군대에 의한 '군정(軍政)', 과도기로서 국민당의 일당 체제인 '훈정(訓政)', 중국이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충분한 준비가 되었을 때 헌법을 제정하여 의회 정치를 이루는 '헌정(憲政)'의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1925년부터 1950년까지 중화민국의 주권은 광저우 국민정부(훈정 0기)→우한 국민정부(훈정 1기)→난징 국민정부(훈정 2기)로 계승되었다.
초대 국민정부 주석으로는 호남군의 영수이자 국민당의 군사지도자 중 가장 연륜이 많았던 탄옌카이가 당선되지만 얼마 안 가 실질적인 최고 지도자인 장제스에게 2대 주석직을 넘긴다. 그러나 1차 양광사변으로 반장제스 세력이 집결하자 모든 공직에서 내려오고 3대 주석으로 린썬이 당선된다. 양광사변으로 성립된 쑨커 내각이 28일을 버티지 못하고 붕괴하며 장제스가 다시 집권했으나 상징적 국가원수인 주석직은 계속 린썬이차지했다.[2][3] 린썬이 1943년 사망한 이후에서야 장제스가 공식적으로 국민정부 주석직에 다시 임명되었다.
1948년 4월 20일에 초대 선거가 실시되었다. 이후 리덩후이 정권에서 민주화가 되기 전까지는 국민대회에서 간접선거를 하고 이를 통해 장제스 - 장징궈 - 리덩후이가 당선된다. 임기도 6년이었으며, 따라서 6년마다 선거가 이루어졌고 이것이 1996년(제9대)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1996년 리덩후이가 대만 헌법에 증수조문을 추가하면서 직선제로 바뀌게 된다.
그 이후로는 4년마다 한번씩 직선제 총통 선거를 시행하며, 2012년 제13대 대만 정부총통 선거부터는 대만 입법위원 선거와 동시 시행한다. 대만의 모든 선거와 마찬가지로, 기호는 추첨으로 결정한다.[4]
결선투표제는 따로 실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만은 양당제적 구도가 확립된 국가라 3파전으로 치러진 2000년 이외에는 모든 총통이 50% 이상의 득표로 당선되었다.
1925년 광저우에서 국민정부를 선포하는 것으로 출범하였으며, 공식적으로는 1948년 중화민국 헌법을 시행하며 종결되었다. 1948년 헌정 실시 이전까지는 훈정에 해당되어 과도정부로서 중국국민당의 일당 체제가 이루어졌다.
1996년부터(제9대~)는 토요일에 실시되고 있으며, 직접 선거로 전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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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대 대만 정부총통 선거 당시 선거 유세 모습. 마잉주와 차이잉원.
1. 개요[편집]
대만의 총통 및 부총통 선거로, 정식 명칭은 '대만지구 거주민에 의한 중화민국 총통·부총통 직접선거와 파면(中華民國總統及副總統在臺灣之公民直接選舉與罷免)'이다. 특이하게도 다른 나라의 선거와는 달리 파면도 언급하고 있다.
러닝메이트 제도로 시행된다. 임기는 4년이며 중임 가능하다. 대만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로, 대만 총통으로 누가 당선되냐에 따라 중국과의 관계가 완전히 달라지며, 이는 동아시아를 넘어 미국과도 연계된 국제적인 외교, 안보 지형이 변경될 수 있는 큰 이슈가 되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에서 관심을 가지는 선거다.
2. 역사[편집]
2.1. 헌정 이전[편집]
2.1.1. 임시정부 시기[편집]
임시정부는 1911년 17개의 성 대표들끼리 투표 실시하여 쑨원이 임시 대총통 당선되었다.
2.1.2. 북양정부 시기[편집]
북양정부는 국회의원들을 통한 간선제를 실시하였다. 북양정부 시기는 투표권 행사를 하는 국회의원들에게 소위 거마비니 하는 명분으로 여러 수당을 지급하였기 때문에 재정력에 따라서 투표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여력이 컸다. 게다가 어용정당, 깡패, 군경이 총동원되어 제대로 된 민주주의 선거라고 하기는 지극히 어려운 실정이었다. 1923년 대총통 선거 때에는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는 여러 지방에서 국회의원들에게 더 많은 출석비를 지급하겠다고 서로 국회의원들을 꼬셔서 국회의원들이 돈 많이 주는 곳으로 몰려가는 실정이었다.
중화민국 임시약법에 따르면 국회의원의 3분의 2가 출석하여 그 중에 75% 이상이 지지하는 후보만이 대총통에 선출될 수 있었기 때문에 선출 자격이 까다로운 편이었다. 이 투표를 통해 위안스카이, 쉬스창, 차오쿤이 대총통으로 당선되었다. 리위안훙과 펑궈장은 전임 대총통의 사망, 궐위에 따라 부총통에서 대총통으로 계임한 케이스다.
2.1.3. 국민정부 시기[편집]
중국국민당이 집권하던 중화민국의 과도정부였다. 1925년 광저우에서 국민정부를 선포하는 것으로 출범하였으며, 공식적으로는 1948년 중화민국 헌법을 시행하며 종결되었다.
중국국민당은 혁명의 완성기를 무력으로 탈환한 지역에서의 안정을 위해 군대에 의한 '군정(軍政)', 과도기로서 국민당의 일당 체제인 '훈정(訓政)', 중국이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충분한 준비가 되었을 때 헌법을 제정하여 의회 정치를 이루는 '헌정(憲政)'의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1925년부터 1950년까지 중화민국의 주권은 광저우 국민정부(훈정 0기)→우한 국민정부(훈정 1기)→난징 국민정부(훈정 2기)로 계승되었다.
초대 국민정부 주석으로는 호남군의 영수이자 국민당의 군사지도자 중 가장 연륜이 많았던 탄옌카이가 당선되지만 얼마 안 가 실질적인 최고 지도자인 장제스에게 2대 주석직을 넘긴다. 그러나 1차 양광사변으로 반장제스 세력이 집결하자 모든 공직에서 내려오고 3대 주석으로 린썬이 당선된다. 양광사변으로 성립된 쑨커 내각이 28일을 버티지 못하고 붕괴하며 장제스가 다시 집권했으나 상징적 국가원수인 주석직은 계속 린썬이차지했다.[2][3] 린썬이 1943년 사망한 이후에서야 장제스가 공식적으로 국민정부 주석직에 다시 임명되었다.
2.2. 헌정 이후[편집]
1948년 4월 20일에 초대 선거가 실시되었다. 이후 리덩후이 정권에서 민주화가 되기 전까지는 국민대회에서 간접선거를 하고 이를 통해 장제스 - 장징궈 - 리덩후이가 당선된다. 임기도 6년이었으며, 따라서 6년마다 선거가 이루어졌고 이것이 1996년(제9대)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1996년 리덩후이가 대만 헌법에 증수조문을 추가하면서 직선제로 바뀌게 된다.
그 이후로는 4년마다 한번씩 직선제 총통 선거를 시행하며, 2012년 제13대 대만 정부총통 선거부터는 대만 입법위원 선거와 동시 시행한다. 대만의 모든 선거와 마찬가지로, 기호는 추첨으로 결정한다.[4]
결선투표제는 따로 실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만은 양당제적 구도가 확립된 국가라 3파전으로 치러진 2000년 이외에는 모든 총통이 50% 이상의 득표로 당선되었다.
3. 선거권 / 피선거권[편집]
- 선거권자: 20세 이상의 중화민국 국민이 선거권을 갖는다.
- 피선거권자: 선거권을 가진 40세 이상의 대만인이 피선거권을 갖는다. 실제 출마자는 직전 국정선거(입법위원 선거, 총통선거, 지방선거 등)에서 5% 이상 득표한 정당의 추천을 받거나 두 개 이상의 정당에서 추천을 받고 그 정당들이 직전 국정선거에서 총합 5%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무소속인 경우 유권자의 1.5% 이상의 지지 서명이 필요하다.
4. 역대 선거[편집]
4.1. 임시정부 시기[편집]
- 1911년 12월 29일 임시 대총통 선거: 17개의 성 대표들끼리 투표 실시, 1912년 1월 1일 쑨원 임시 대총통 당선.
4.2. 북양정부 시기[편집]
- 1913년 10월 6일 1대 대총통 선거: 베이징에서 대총통 선거가 실시되었으나 75%의 지지가 확보되지 않아 2차 투표, 3차 투표까지 이어졌고 밤 10시가 되어서야 겨우 위안스카이를 대총통으로 선출했다.
- 1916년 10월 30일 계임 부총통 선거: 강소도독 펑궈장이 부총통에 당선되었다.
- 1918년 9월 5일 2대 부총통 1차 선거: 88명의 국회의원만 출석하여 무산되었다.
- 1918년 10월 9일 2대 부총통 2차 선거: 정족수 미달로 무산.
- 1918년 10월 16일 2대 부총통 3차 선거: 정족수 미달로 무산. 이 선거까지 무산되자 북양정부는 부총통 선거를 무기한 연기한다고 선포했다.
4.3. 국민정부 시기[편집]
1925년 광저우에서 국민정부를 선포하는 것으로 출범하였으며, 공식적으로는 1948년 중화민국 헌법을 시행하며 종결되었다. 1948년 헌정 실시 이전까지는 훈정에 해당되어 과도정부로서 중국국민당의 일당 체제가 이루어졌다.
4.4. 헌정 시기[편집]
1996년부터(제9대~)는 토요일에 실시되고 있으며, 직접 선거로 전환하였다.
- 1948년 4월 19일~4월 29일: 초대 선거: 총통에 장제스, 부총통에 리쭝런이 당선되었다.
- 1954년 3월 21일: 2대 선거: 총통에 장제스, 부총통에 천청이 당선되었다.
- 1960년 3월 21일: 3대 선거: 총통에 장제스, 부총통에 천청이 당선되었다.
- 1966년 3월 21일: 4대 선거: 총통에 장제스, 부총통에 옌자간이 당선되었다.
- 1972년 3월 21일: 5대 선거: 총통에 장제스, 부총통에 옌자간이 당선되었다. 75년 장제스는 사망하였다. 잔여임기는 옌자간이 승계했다.
- 1978년 3월 21일: 6대 선거: 총통에 장징궈, 부총통에 셰둥민이 당선되었다.
- 1984년 3월 21일: 7대 선거: 총통에 장징궈, 부총통에 리덩후이가 당선되었다. 88년 장징궈는 사망하고, 장씨가문의 통치가 종결되었다. 잔여 임기는 리덩후이가 승계하였다.
- 1990년 3월 21일: 8대 선거: 총통에 리덩후이, 부총통에 리위안추가 당선되었고, 이 선거를 마지막으로 간접선거가 폐지되었다.
- 1996년 3월 23일: 9대 선거: 총통에 리덩후이, 부총통에 롄잔이 당선되었다. 대만 최초의 총통 직접 선거.
- 2000년 3월 18일: 10대 선거: 총통에 천수이볜, 부총통에 뤼슈롄이 당선되었다. 대만 최초의 정권교체.
- 2004년 3월 20일: 11대 선거: 총통에 천수이볜, 부총통에 뤼슈롄이 당선되었다.
- 2008년 3월 22일: 12대 선거: 총통에 마잉주, 부총통에 샤오완창이 당선되었다. 국민당의 재집권.
- 2012년 1월 14일: 13대 선거: 총통에 마잉주, 부총통에 우둔이가 당선되었다.
- 2016년 1월 16일: 14대 선거: 총통에 차이잉원, 부총통에 천젠런이 당선되었다. 2차 민진당 집권.
- 2020년 1월 11일: 15대 선거: 총통에 차이잉원, 부총통에 라이칭더가 당선되었다.
- 2024년 1월 13일: 16대 선거
4.5. 역대 지역별 승리 후보[편집]
5. 그 외[편집]
- 현재 대만의 총통선거는 재외선거・사전투표 제도가 없다. 무조건 대만 국내 지정 투표소에서 당일 투표만 가능하다. 부재자 투표 제도는 중화민국군 또는 중화민국의 재외 공관 직원에만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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