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스트 퐁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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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스트 퐁텐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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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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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파일: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12대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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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4대





쥐스트 퐁텐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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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파일:골든슈.png

1958 FIFA 월드컵 골든슈





1958 Ballond'or
수상
레몽 코파
2위
헬무트 란
3위
쥐스트 퐁텐




쥐스트 퐁텐의 기타 정보








프랑스의 前 축구인


이름
쥐스트 퐁텐[1]
Just Fontaine
본명
쥐스트 루이 퐁텐
Just Louis Fontaine
출생
1933년 8월 18일
프랑스령 모로코 마라케시
사망
2023년 3월 1일 (향년 89세)
프랑스 툴루즈
국적
[[프랑스|

프랑스
display: none; display: 프랑스"
행정구
]]

신체
174cm
직업
축구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감독 은퇴
소속
선수
US 카사블랑카 (1950~1953)
OGC 니스 (1953~1956)
스타드 드 랭스 (1956~1962)
감독
프랑스 대표팀 (1967)
뤼숑 (1968~1969)
파리 생제르맹 FC (1973~1976)
툴루즈 FC (1978~1979)
모로코 대표팀 (1979~1981)
국가대표
21경기 30골[2] (프랑스 / 1953~1960)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지도자 경력
6. 사망
7. 기록
7.1. 대회 기록
7.2. 개인 수상
8. 여담




1. 개요[편집]


프랑스축구인. 선수 시절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FIFA 월드컵 한 대회 최다 득점자(13골)이자, 단일 토너먼트 최다 득점자(7골)이며 3·4위전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한 최초의 선수다.


2. 클럽 경력[편집]


1933년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프랑스인 아버지와 스페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1950년 모로코 리그에서 데뷔한 퐁텐은 1953년 프랑스의 OGC 니스로 이적해 리그와 컵대회 우승을 이끌었고 프랑스 리그 최고의 선수로 떠오른다.

그러던 그는 프랑스 리그 당대 최강팀이자 유러피언컵 초대 준우승팀이었던 스타드 드 랭스로 이적하여 레알 마드리드로 떠난 레몽 코파의 뒤를 이어 팀을 이끈다.

그는 랭스에서 초반 4시즌 동안 31골 - 26골 - 32골 - 28골을 기록하며 무시무시한 득점력을 앞세워 팀의 리그 우승을 2차례 이끌고 2차례의 득점왕을 차지하는 활약을 펼쳤다.[3]

1957-58 시즌에는 한 시즌 동안 53골을 넣는 가공할만한 득점력을 선보였는데 이는 이후 2022-23시즌 음바페에 의해 54골로 갱신되기 전까지 65년동안 프랑스 선수의 단일시즌 최다골 기록이었다.

1958-59 시즌 유러피언컵에서 10골을 터뜨리며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고 과거 유러피언컵 결승에서 자신들을 꺾었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이끄는 레알 마드리드와 맞붙는데 아쉽게도 0:2 패배를 당하며 다시 준우승에 그치게 된다.

이후 잦은 부상을 당하며 몸에 무리가 온 퐁텐은 결국 반월판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28세의 젊은 나이로 은퇴했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 16개국 본선에 진출해서 당시 퐁텐은 원래 후보였으나 주전 공격수들의 부상으로 인해 뛰게 되는데 여기서 전설을 쓰게 된다.

레몽 코파와 훌륭한 호흡을 보이며 팀의 공격을 이끌었고 조별리그 1차전에서 만난 파라과이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7:3 승리를 이끌었고 2차전에서는 유고슬라비아에게 패하긴 했지만 2골을 기록하였으며 3차전에서는 스코틀랜드를 상대로 1골을 기록하며 승리를 이끌어 팀을 8강으로 이끈다.

8강에서 만난 상대는 북아일랜드였고 퐁텐은 2골을 기록하며 4:0 승리를 이끌고 4강에 오른다.

하지만 4강에서 만난 상대는 다름 아닌 훗날 '축구황제'가 될, 어린 펠레가 뛰던 브라질이었다. 퐁텐은 대회 내내 무실점으로 쾌속 질주를 하던 브라질 수비진을 뚫고 팀이 잃은 빠른 실점을 만회하는데 성공, 동점을 만들었지만 이후 프랑스는 펠레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면서 결국 5:2로 패해 탈락하게 된다.[4]

파일:FIFA 월드컵 워드마크 화이트.svg
FIFA 월드컵 역대 득점 순위
골 수
선수명 (국적)
16
미로슬라프 클로제 (독일)
15
호나우두 (브라질)
14
게르트 뮐러 (독일)
13
리오넬 메시 (아르헨티나)
쥐스트 퐁텐 (프랑스)
12
킬리안 음바페 (프랑스)
펠레 (브라질)
11
위르겐 클린스만 (독일)
산도르 코츠시스 (헝가리)
10
토마스 뮐러 (독일)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아르헨티나)
게리 리네커 (잉글랜드)
헬무트 란 (독일)
테오필로 쿠비야스 (페루)
그제고시 라토 (폴란드)

그는 3·4위전에서 서독을 상대로 4골을 기록하며 6:3 승리를 이끌어 당시 프랑스 월드컵 최고 성적과 함께 한 대회에서 13골, 토너먼트에서 7골이라는 무시무시한 득점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 한 대회 최다 득점 기록단일 토너먼트 최다 득점 기록으로 남아있다.[5]

이 대회에서 기록한 골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분류
경기 결과
득점
누적 득점
조별 리그 1차전
프랑스 7-3 파라과이
3골
3골
조별 리그 2차전
프랑스 2-3 유고슬라비아
2골
5골
조별 리그 3차전
프랑스 2-1 스코틀랜드
1골
6골
8강
프랑스 4-0 북아일랜드
2골
8골
4강
프랑스 2-5 브라질
1골
9골
3·4위전
프랑스 6-3 서독
4골
13골


4. 플레이 스타일[편집]


쥐스트 퐁텐은 1950년대의 축구선수로,[6] 현대의 축구선수들에 비해 자료는 비교적 희박한 편이나 기록물과 회고를 통해 퐁텐의 플레이 스타일을 재구성해볼 수 있다.

주력, 제공권과 양발 능력을 모두 갖춘 걸출한 공격수로 수비수를 벗겨내는 능력이 특출났다. 퐁텐 본인의 말로는 어렸을 적 농구를 했던 경험 때문에 대인 마킹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과감한 돌파를 시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기록이 말해주듯이 실로 무시무시했던 골 결정력이 돋보이는데, 당시 리그앙에서 131경기 122골, 경기당 0.93골, 프랑스 국가대표팀 경기당 득점 평균 1.43골, 커리어 전체 통산 경기당 0.83골이라는 기록을 썼다. 무려 2000년대 초반까지도 탑 티어 공격수의 기준이 최소 2경기 1골이었다는 것과 현재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킬리안 음바페가 평균 0.83골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의 가공할 득점력을 체감할 수 있다.

월드컵 1개 대회 최다골이라는 불멸의 대기록과 팔방미인의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장래가 쭉 촉망받는 선수였지만 26살이라는 전성기에 첫 발을 내디딜 만한 어린 나이에 당한 살인 태클로 마치 마르코 반 바스텐처럼 30줄이 되기 전에 커리어를 조기 마감해버린 것이 유일하다시피 한 쓰라린 오점이라고 할 수 있다.


5. 지도자 경력[편집]


그는 프랑스 국가대표팀과 뤼숑, 파리 생제르망, 툴루즈, 모로코 국가대표팀 등의 팀을 이끌었다.

모로코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아프리카 최종예선 결승전까지 진출했지만 카메룬에게 패배했다.


6. 사망[편집]


2023년 3월 1일에 89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7]


7. 기록[편집]



7.1. 대회 기록[편집]






7.2. 개인 수상[편집]


  • 발롱도르 3위: 1958
  • FIFA 월드컵 골든슈: 1958[8]
  • 유러피언컵 득점왕: 1958-59
  • 디비지옹 1 득점왕: 1957-58, 1959-60
  • 골든풋: 2003
  • FIFA 100: 2004
  • FIFA 공로상: 2004
  • UEFA 주빌리 어워드: 2004
  • UNFP 특별상: 2008


8. 여담[편집]


  • 축구 역사상 실력에 비해 가장 운이 없었던 선수 중 하나다. 당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으나 클럽에서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9], 국대에서는 펠레에 의해 커리어에서 결정적인 순간 무너졌으며[10] 잦은 부상까지 겹쳐 결국 만 29세의 나이에 조기 은퇴를 하였다.

파일:2019 french football all time best.jpg

  • 퐁텐의 역대 월드컵 득점이 총 13개인데, 먼 훗날 리오넬 메시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13개를 달성함으로써 퐁텐과 기록이 같게 되었다. 물론 단일대회 득점으로는 여전히 퐁텐이 단독 1위다.[11]

[1] 프랑스어에서 모음 앞에 오는 aim, ain은 각각 /ɛm/'엠', /ɛn/'엔'으로 발음된다.[2] 대표팀 역대 득점 공동 8위.[3] 랭스는 이후 현재까지 리그 우승을 하지 못하고 있다.[4] 펠레가 이 경기에서 기록한 해트트릭은 월드컵 최연소 해트트릭 기록으로 남아있다.[5] 월드컵 통산 최다 골 기록은 이후 게르트 뮐러, 호나우두,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순으로 갱신된다. 2022년에는 리오넬 메시가 퐁텐에 이어 13골을 기록하기도 했다.[6] 펠레보다도 전 세대 선수이다.[7] 프랑스 축구협회(FFF)도 이날 "영원한 골잡이이자 세계 축구의 전설이 세상을 떠났다"고 애도했다.기사[8] 이전 문서와 위키백과 등지에서는 이때 브론즈볼을 퐁텐이 받았다고 했으나 정작 피파 공홈과 RSSSF에는 이 당시 수상자 명단은 나오지도 않았다. 1982년 이후 수상자만 피파 공홈에서 인정받을 뿐이고 후대 평가 중 피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건 신인상뿐이다. 자세한 내용은 FIFA 월드컵/수상 문서 참고.[9] 디 스테파노는 월드컵에 단 한번도 나가지 못해서 만날 일이 없었다.[10] 유러피언컵 결승전과 월드컵 4강.[11] 메시는 월드컵을 5번이나 출전한 반면에 퐁텐은 1958년 월드컵 단 하나만 출전했던 것을 감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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