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문즉설

최근 편집일시 :

1. 개요
2. 특징
2.1. 다양한 주제
2.2. 양적인 방대함
2.3. 무료 강의
3. 논란
3.1. 피해자 앞에서 가해자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
3.3. 남성 역차별에 '남자로 태어난 죄' 발언 논란
3.4. 여성 차별 발언 논란
4. 반박
4.1. 질문자에 맞는 설법 내용 (맞춤 법문)
4.2. 불교에 바탕을 둔 ‘법문’
4.3. 종교성
4.4. 다양한 관점에 따른 의견과 질문자의 '자각'
4.5. 하나의 사례에 대한 일반화


파일:external/blogfiles7.naver.net/%B9%FD%B7%FB%BD%BA%B4%D45.jpg

1. 개요[편집]


‘즉문즉설(卽問卽說)’은 뜻 그대로 풀면 '즉시 묻고 즉시 이야기'하는 것을 말하며, 달리 말하면 '살아가면서 겪는 괴로움과 어려움에 대해 종류와 무관하게 묻고 대화하는 자리'이다.[1]

그 시작은 법륜인 것으로 보이며, 그 뒤를 따라 여러 스님들이 '즉문즉설'을 진행중에 있다. 본 문서에서는 이른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 대해 서술한다. 법륜은 2000년대 초반부터 즉문즉설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2. 특징[편집]



2.1. 다양한 주제[편집]


즉문즉설의 내용은 다수를 차지하는 개인적인 고민, 가정사에 대한 것에서부터 사회, 정치, 철학, 과학, 종교적인 것까지를 포괄하며, 질문자의 연령대도 초등학생부터 7, 80대까지 다양하다. [2]

그 중 몇 가지의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고1 학생의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http://m.jungto.org/view.php?p_no=10&b_no=55688
아이를 보면 자꾸 화가 나는 부모
http://m.jungto.org/view.php?p_no=10&b_no=52328
환경 위기에 대한 질문
http://m.jungto.org/view.php?p_no=10&b_no=52913
결혼에 대해 자신이 없다는 질문
http://m.jungto.org/view.php?p_no=10&b_no=39860&page=9
열등감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
https://youtu.be/ibtm59lKhOU
오래가는 연애에 대한 질문
https://youtu.be/hzarCAGgNWo
트럼프 당선에 대한 질문
http://www.sisaplu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5323
통일의 시기에 대한 질문
https://youtu.be/56caHNnM7jY
사주팔자가 정말 있는지에 대한 질문
https://youtu.be/l1zuF0BAydw

2.2. 양적인 방대함[편집]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즉문즉설 영상의 개수는 약 1220여 개이다.(2017년 1월 기준)[3] 또한 해당 영상들이 평균 10여분 정도로 편집되어 있는데 실제 강연장에서의 즉문즉설이 한 번에 대략 3~4시간이 진행된다는 점을 보면[4] 실제의 즉문즉설의 양은 그보다 더 많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즉문즉설의 내용이 담긴 법륜의 저서가 1998년에 발간되었고[5] 많을 때는 연 300회의 강연[6]이 열렸다는 점을 보았을 때 그 동안 행해진 즉문즉설의 양과 내용은 방대하다고 볼 수 있다.
2017년 6월 기준 팟빵에는 약 1200여 개의 팟캐스트들이 올라와 있다.

2.3. 무료 강의[편집]


즉문즉설은 모두 무료강의다. 법륜스님은 일반 대중강의 뿐만 아니라 기업체 강의나 지자체 초청강의까지 모두 무료강의를 기본으로 한다. 무료강의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강당이나 공연장을 빌리는데 비용이 들고 이 비용을 스님(정토회)이 부담하기 때문에 실제는 자선사업에 가깝다. 실제로 이 비용조차도 아끼기 위해 대강당보다는 중소강당 위주로 빌려서 행사를 진행하다보니 간혹 행사장에 왔다가 입장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도 많다. 이렇게 무료로 강의하는 이유는 먼저 부처님도 돈받고 강의하지 않았으니 본인도 돈을 받고 강의할 수 없다는 대원칙과(하다못해 진행요원이나 정토회 직원, 사업들도 모두 자원봉사자들이 주축이 되어 꾸려간다. 이 이유도 부처님 시대에 돈받고 따라다니며 일한 사람이 없다는 이유와 같다.) 돈을 받고 강의를 하면 돈에 쫒아가게 되고,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대신 강의를 마치고나면 로비에서 법륜스님의 책을 판매하고, 저자 싸인도 해준다. 그 이익금으로 적자를 줄이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적자를 면할수 없는 구조다.

즉문즉설 유튜브 조회수도 회당 크게는 몇백만, 보통 몇십만을 찍지만 그 흔한 광고하나 안붙인다.

3. 논란[편집]



3.1. 피해자 앞에서 가해자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편집]


인간관계나 가해 행위에 피해를 입은 피해자 앞에서 가해자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이 논란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친부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자에게 한 법문이 있다.

법륜스님 : 그처럼 처음에는 내가 싫다는데도 강제로 괴롭힘을 당했지만 이미 괴로워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누가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없는데도 이제는 내가 괴로워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정신을 차려야 돼요. 원인이 누구한테 있었건, 아버지로부터 있었건, 어머니로부터 있었건, 오빠로부터 있었건, 길가는 사람에게 있었건, 누구한테 있었건, 그런 건 지금 논하는 게 중요하지 않아요. 기도를 이렇게 해야 돼요.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엄마한테 108배, 아빠한테 108배, 200배 절을 하면서 감사하다는 기도만 하셔야 합니다. 딴 생각은 하지 말고요. 낳아서 갖다 버려도 낳았으니까 내가 살고 있고, 설령 성폭행을 했다 하더라도 그래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고 있는 것은 누구 때문에 살고 있어요? 엄마 아버지 때문에 살고 있죠?

질문자 : 네.

법륜스님 : 감사하다는 생각만 해야 돼요. 그러면 치유가 됩니다. 자기 정신 질환도 치유가 되고요. 아버지가 나를 성추행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상에 집착하는 겁니다. 그 남자가 내 손을 잡을 때는 아버지예요, 남자예요?

질문자 : 남자.

법륜스님 : 그냥 남자예요. 상을 지었으니까 나에게 정신적인 고통이 큰 겁니다. 어떤 사람이 나를 껴안았어요.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예요. 그러면 사랑을 받았다 이렇게 말하죠?

원문 글 링크


정리하면 '친부가 성폭행을 했지만 어쨌든 자기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사람이니 감사하고 용서해야 한다' 인데 일반 신부님이나 목사님도 범죄 피해자에게 대놓고 가해자를 용서하라 하지는 않는다. 그런 경우, 흉악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의 회개를 바란다고 기도하는 게 일반적이다. 가해자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종교가 존재할 의미가 없으며 그것이 진정으로 원수를 사랑하는 길이다. 또, 위 발언들은 종교적 관점에서 말할 때 배제해도 될 발언들이다. 이러한 말들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가르침을 줄 수 있는데, 굳이 입에 담음으로서 논란의 불씨를 피웠다. 이는 타인의 성추행에 대해서도 좋아서 그런것일수도 있는데 뭐 그렇게 호들갑이냐. 큰 일도 아닌데.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또한 위의 성폭행에 대한 건뿐만이 아닌 가정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폭력 행위에 대해서도 위와 유사한 답변을 내리는데, 음주를 동반한 폭력에 대해서는 이혼이란 정확한 해결법이 있는데도 그 사람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마시는 만큼, 힘들어하는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줘라라는 답변을 하였으며, 자식과 남편(아내)의 갈등에 대한 질문에 관해서는 집에 두사람이나 들여서 그렇다. 한 사람(남편/아내)만 데리고 있고, 남은 한명은 신경 쓰지 마라라고 말한바가 있으며, 자식의 일탈행위를 우려하는 부모의 질문에 대해서는 자식이 범죄에 빠지거나 비행 청소년이 될수도 있는 위험성을 관과하지 않은채로 그러면서 크는 법이니 개입하지 말고 내버려둬라라는 천륜을 어기는듯한 답변을 한 바가 있다.

“인간관계에서 갈등은 어딜 가나 있어요. 그걸 가지고 괴로워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질문자 문제입니다. 갈등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사람마다 생각, 취향, 믿음 등이 다르기 때문에 누구나 자기주장을 하다보면 사람 사이의 갈등 자체는 너무나 당연한 거예요.

2016.11.02. 행복한 대화(15) 충주 학생회관 “우울증을 앓은 지 8년째, 어떻게 해야 정상인처럼 될 수 있을까요?”

사실 이런 문제점은 위에 언급된 성폭행 피해 문제만 해당되는게 아니라 뒷담화, 왕따, 갑질 피해등을 겪은 피해자들을 대상으로도 적용되는데, 대표적인 예시로 우울증에 걸려 힘든 사람이 질문을 했을 당시, 질문자가 사람들이 자신을 뒷담화 하는것 같다고 언급을 한적이 있었는데, 이때 뒷담화는 그냥 말하는거니 신경쓰지 마라. 질문자가 쓸데없이 그거 가지고 이유를 만드는것이다.라는 발언을 했다. 질문자가 잘못 이해하면 가해자들을 옹호하는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는 발언을 한 것이다.(유사한 경우) 실연같은 경우 역시, 남자 또는 여자에게 차인 질문자가 상담을 요청하면 그때마다 답변은 "차버린 상대방에게 감사해라."라거나 "내가 차버리면 비난받기 좋고, 상대가 있는데 다른 사람 찾는건 불륜인데, 그 사람이 차버렸으니 새로운 사랑을 찾을 기회가 생긴게 아니냐. 따라서 차인건 불행한게 아니다."며 자칫 잘못하면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많은 바람이나 불륜 행위를 별거 아닌것으로 취급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물론 의도는 실연을 딛고 일어서서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라라며 격려차원의 의도는 좋았다에 해당되지만 "과거에야 한 사람을 바라볼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여러 상대방을 만나 연애해도 문제없는 현대에서 오직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것은 어리석은 행위다라는, 오직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순애보나 일편단심을 부정적이게 보는거 아니냐는 논란이 생길수도 있다. 또한, 질문자는 치유 및 위로를 받기 위해 즉문즉설에 찾아갔는데, 정작 듣는 조언이 위의 발언 또는 질문자가 보는 눈이 없다는 팩트 폭력을 듣는다면 사람에 따라서는 더 힘들어질수도 있다.

또한 질문자가 심적인 고통을 받은 계기에 대해 너무 별거 아닌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질문자들에게서 위와 같은 질문 상담을 받을때마다 늘 공통적으로 "당신이 겪은 일은 과거에 불과합니다.""시간이 지나면 그런건 아무 일도 아니야."라는 말을 한다. 물론 시간이 약이 되는 경우는 있고 법륜 스님은 이를 좋은 의도로서 말하려고 한다 치더라도 시간이 지나도 가해자가 질문자에게 가한 성폭행등의 가해 행위는 지워지지 않을 낙인이며, 그와 동시에 입은 질문자의 정신적 피해는 과거의 일이나 별거 아닌 일로 치부할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 질문자가 겪은 사건보다 스케일이 큰 각국에서 일어나는 전쟁이나 위안부 사태에 대해서 위의 말을 꺼냈다가는 크게 논란이 생길 위험성이 있다. 이를 뒷받침 해주는 예시가 바로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로, 작중에서 의도야 어쨋든 악행을 저지른 캐릭터에 대해 그건 과거일뿐이다라고 말을 꺼냈다가 큰 비판이 일어났던 예시도 있으며, 위 예시뿐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든 미디어 상에서도 누군가가 저지른 행위에 대해 과거의 일이라며 옹호하다 논란이 있었던 경우는 많이 있었다. 그런 만큼 이런 의견은 의도는 좋았어도 경솔할수도 있기에 신중하게 써야만 한다.


그외에도 SBS의 힐링캠프에 출현했을 당시에 이경규가 악플로 인해 힘들다는 질문을 했는데, 이때 원래부터 세상과 모든 사람들은 원래 그렇다고 말하면서, 온라인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이 진심을 말할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한바가 있다. 그와 동시에 부처님도 예수님도 다 욕먹고 살았다고 덛붙혔는데, 악플같은 문제는 현재 진행중이며 이로 인해 멘탈이 붕괴하여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연예인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렇게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원래 세상사람들이 그래라고 하는것 자체가 피해자에게는 목전에 둔 피해 때문에 가해자를 옹호하는 듯한 말로 들릴 가능성이 높다.

즉, 이 논란의 핵심은 법륜 스님의 의도가 좋았다고 해도,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질문자는 실연이나 가해등으로 고통받고 후유증으로 힘들어하는데도 이 문제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게 아니냐라는 점이다.



3.2. 현실주의[편집]


이런 이유로, 법륜은 지나친 이상주의가 아니냐?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꽤 있는 편이다. 그러나 법륜이 하는 즉문즉설의 설법 방식은 현실을 중요시 여기는 현실주의에 가깝다. 이런 성향은 어떤 질문을 받더라도 마찬가지인데, 연애 관련 질문을 받을 때마다 "사랑 좋아하네."[7]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8] 또, 요즘 청년들이 과격하거나 부정적인 성격을 지니는건 가정환경이 안좋은 집안에서 자라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하거나, 할머니나 다른 사람들이 애를 맡아 키우면 아무래도 부모한테 받는 애정보다는 애정을 못받으니 아이는 되도록 부모가 직접 키워야 하야 한다는 말을 한적이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이상적인 교사가 되지 마라, 부자가 되면 큰집 청소하느라 힘들어지는 과보를 얻을 것이다 등등, 힐링과 희망을 줘야 할 멘토로서의 스님이 극도의 현실주의자 성향이 있다고 볼수 있다.

여러분의 직업이 인기에 민감한 직업이라는 것을 저도 잘 압니다. 그런데 작가든 배우든 누구나 다 자기가 좋아서 그 길을 선택한 거잖아요. 다들 열심히 하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인기라는 건 원래 영원한 게 아닌 일장춘몽이에요. 1년 열두 달 하는 해수욕장이 어디 있나요. 여름에 반짝하고 마는 거지요. 그래도 그것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것처럼 여러분들도 인기가 있는 기간을 딱 3년으로만 잡으세요. 그 후에도 인기가 유지되면 재수 없어서 그런 줄 알고요

-2016.04.07 방송, 연극, 문화, 예술인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中 (#)


"방송에 주로 종사하시는 분들이니까 인기로 먹고 살죠? 아름다운 얼굴이란 것도 70살, 80살을 넘어가면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습니다. 오늘 아름다운 사람들 흉을 좀 봐야겠어요"

2016.11.08방송, 연극, 문화, 예술인들을 위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中 (#)


저도 제가 입고 있는 옷과 명칭, 대중의 환호에 속을 위험이 있습니다.

연예인들이 대부분 대중의 환호에 속거든요. 대중의 환호에 속으면 자기 인생을 망치게 돼요.

2019.3.17. 룸비니 초청법회

법륜의 현실적인 독설은 연예인이나 자산가같은 유명인에게도 가차없다. 특히 연예인을 상대로 법문할때는 겉으로는 인기에 민감한 직업이고 이로 인해 힘들어하니 이해한다며 위로하듯이 말해놓고서, 그런 다음에 어차피 인기란건 허무한것이고 세월앞에는 장사 없다고 직설적으로 말한적이 있고, 연예인을 동경하는 사람들에 대해 "연예인들은 알고보면 힘든 직업인데 그걸 동경하고 앉아있네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위의 '피해자 앞에서 가해자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에서와 마찬가지로 사고나 다른 이유로 가족이나 지인에 대해 사망한 사람에게도 어차피 시간이 1년, 3년, 5년 지나면 웃을 거잖아라는 발언을 한바가 있다. 물론 법륜의 의도는 현재의 슬픔이 영원하지 않고 점차 옅어지다가 나중에는 일상 생활에 지장이 없을 수준이 될텐데 그것을 앞당기면 불필요한 괴로움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라는 의도만은 좋았은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통이 1년, 3년, 5년 지나면 회복되겠지만 당장 소중한 사람을 잃은 입장에서는 이게 이해가 될까?


3.3. 남성 역차별에 '남자로 태어난 죄' 발언 논란[편집]


지난 3천 년 내지 5천 년 동안

여성은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학대를 많이 당했습니다.

여성들에게 남성들이 빚을 많이 졌어요

그러니 질문자는 자기가 한 건 아니더라도

이 빚이 부모님의 것이니까 좀 물려받아야 해요.

억울하다 생각하지 말고

남자로 태어난 죄라고 생각하세요.

【해당 게시물 보기】
파일:1577541163495.jpg

2019년 12월 28일, 법륜은 "남성 역차별, 억울한 마음이 듭니다."라는 즉문즉설 질문에 '과거 여성들이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학대를 당했으니 현재 남성들은 참아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되었다. 현재 해당 페이스북 게시글은 삭제된 상태이다.

남성을 차별하는 여성들을 찾아다니며 생각을 바꾸게 하는 것은 불가능 하니, "아, 저렇게 생각하는 여성들이 있구나" 하고 넘겨 버리라고 불교식으로 답변을 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으나, 그럴 의도였다면 '지난 수천 년 간 여성이 받아온 억압을 현대의 남성들이 사죄하고 갚아야 한다'는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인간 세상에 퍼진 크나큰 문제는 한 개인이 노력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큰 문제 앞에서 개인이란 그저 이리저리 휩쓸리기 쉬운 미미한 존재일 뿐이다. 그렇다면 속세를 뒤흔드는 문제에 봉착했을 때, 전전긍긍해 하며 실현할 수도 없을 해결 방안을 찾느라 고뇌를 더 크게 키울 바엔 마음이라도 평온하게 먹고, 넓은 아량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한다면 적어도 마음의 짐은 덜 수 있을 것이다. 정 불교식으로 답변을 해줄 거라면 생판 알지도 못했을 이전 세대들의 업보를 현대의 청년들이 짊어져야 된다고 말할 게 아니라, 닥쳐온 문제 때문에 고뇌가 큰 것인지 아니면 그 고뇌를 걱정하느라 더 큰 고뇌를 낳는 것은 아닌지를 짚어주고 마음을 달리 먹게끔 조언을 해주는 것이 훨씬 더 옳았을 것이다.

다만 이에 대한 반박 의견도 있다. 법륜 스님이 지금까지 이런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아왔기에 이번에도 물어본 질문자의 시점에서 대답해준 것이다. 실제로 법륜 스님은 여자가 남자 문제로 하소연을 하면 남자 편을, 남자가 여자 문제로 하소연 하면 여자 편을 들어준다. 한마디로 역지사지의 위치에서 깨달으라고 하는 것.


3.4. 여성 차별 발언 논란[편집]


파일:img_114539_1.jpg
엄마·요부·유모·파출부…법륜스님, 여성에게 참 많은 걸 바라시네요 - 여성신문

2017년 5월 7일에 페이스북을 통해 여자는 때로는 엄마, 요부, 유모, 파출부로서 남편을 대해야 한다는 카드를 만들어 업로드한 적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커뮤니티상에서는 법륜이 여성 차별 발언을 했다라면서 위의 남성 차별에 대한 답변 건 못지 않게 논란이 인 적이 있다.

더욱이 이전에는 남성들을 상대로 때로는 친구, 야성적인 남자, 아버지로서 아내를 대해야 한다는 카드를 업로드한 적이 있는데, 이를 비교하면서 남자들에게는 친근하게 접근하라 해놓고 여자들에게는 노예로서 남자를 대하라고 하느냐라거나 이래서 여자들이 결혼 안하지라며 법륜이 성차별과 보수적인 의견만 내뱉는다고 주장한 것.

사실 법륜이 이런 논란이 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워킹맘인 질문자가 직장 생활이 힘든데 다른 엄마들처럼 취미생활도 하고 싶다고 하자 뜨개질 해서 뭐가 재미있나. 그냥 직장에서 일하는 게 훨씬 낫다라며 워킹맘은 취미생활 할 필요는 없다라고 하는등(#), 의도는 좋은 편인데 여자들에게 불리한 즉설을 해준 게 이번 일만이 아니었다.

현재 해당 카드 뉴스는 위의 남녀 역차별 논란이 있었던 즉문즉설 포스팅과 마찬가지로 삭제된 상태이다.

파일:CC-white.svg 이 문단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739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4;"
, 4번 문단}}}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단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739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4;"
, 4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424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4;"
, 4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문서의 r 판{{{#!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none;"
, 번 문단}}} (이전 역사)




4. 반박[편집]


다양한 연령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보는만큼 일반적인 관점에서 법륜의 이야기는 피해자에게 책임을 넘기거나 질문자의 이상과 꿈을 부정하는 식의 보수적 이야기및 힐링멘토로 보기 어려운 독설가처럼 들릴 수도 있다. 특히 듣는 시점에 따라서는‘미니스커트가 성폭행을 유발한다’와 같은 가해자를 합리화하는 사고방식이나 어차피 해봤자 안된다라는 식의 구시대적 어른식 발언, 논란이 큰 종교집단에서 자신들의 언행불일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늘어놓는 억지들처럼 보일 수도 있다. 다만 법륜의 법문을 단지 기득권을 옹호하는 논리나, 어이없는 궤변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의견 역시 존재한다.


4.1. 질문자에 맞는 설법 내용 (맞춤 법문)[편집]


붓다의 문답을 통한 대화에서 중요한 특징은 질문자에 맞추어 대화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즉 질문도 대답도 대화하는 상대방에 맞춘 대화로 이루어진 가르침이 바로 '대기설법'이다.[9] 그렇기 때문에 석가모니 또한 질문이 같더라도 사람에 따라 답변을 다르게 내어주는 경우가 있었다.[10] 그처럼 법륜의 즉문즉설도 얼핏 보면 같은 질문에 대해 서로 '모순'적으로 보이는 답변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래는 그와 같은 답변의 예이다.

(남편이 질문한 고부갈등)

Q :"어머니가 아내를 너무너무 미워합니다. 신혼초에는 음식을 못한다고 구박하더니 지금은 욕설까지 합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A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본인이 한 여인의 아들로서 살 것인지, 한 여인의 남편으로서 살 것인지 입장이 분명해야 합니다. 우선 이것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입니까?"

Q :"(한참 고민 후) 집사람 쪽을 선택하겠습니다"

A :"잘 선택하셨어요. (그렇게 남편은) 내 가정과 아내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어머니를 모신다 하더라도 반드시 먼저 아내의 동의하를 얻어야 합니다." [11]


(아내가 질문한 고부갈등)

Q : "시어머니에게 상처를 받아 피해의식이 있고, 상처 받을 때마다 남편이 저의 편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A :"남편의 입장에서 보면 아내에게 어머니를 이해하라고 말하는 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서운하고 무시당하는 생각이 드는 것뿐입니다." [12]


이처럼 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누가 질문하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답변이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 대해 법륜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누가 서울로 가는 방향을 물을 때 그가 인천에서 물었다면 '동쪽으로 가라'고 말하고, 수원에서 물었다면 '북쪽으로 가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질문자가가 선 위치와 관점에 따라 답변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즉문즉설에서 스님이 하는 말은 수행자들이 일반적으로 갖춰야할 '지혜'를 전달함과 동시에 질문자의 상황과 환경에 맞춘 대답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대답을 참고하여 스스로 본인의 상황에 맞게 응용 하도록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스님이 말하는 수행이기도 하다.


4.2. 불교에 바탕을 둔 ‘법문’[편집]


즉문즉설은 상담이나 대화처럼 보일 수 있지만, 불교의 원리를 바탕으로 깔고 진행되는 '법문'(法文Dharma)[13]이다. '붓다'의 법문 역시 대화의 형식을 띠고 있었고, 소크라테스의 철학도 대화를 통해 펼쳐졌던 것을 볼 때, 대화의 형식을 통한 설법 역시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법륜 스스로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저는 인생 상담사가 아니에요. 저의 본분은 담마를 전하는 것, 즉 사람들이 무지를 깨우쳐서 밝아지도록 하는 겁니다.”[14]


"즉문즉설의 해답이 금강경이었나요?" "꼭 금강경이라기보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핵심은 중도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고, 대승불교적으로는 공(空)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즉문즉설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 토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불교TV 대담)[15]


'술은 나쁜 것이라는 게 바른 생각일까요? 아니면 술이 좋은 것인가요? 아닙니다. 술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이것을 공(空)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술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에 근거해 술마시는 남편은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미워하면 상에 집착한 것이 됩니다. 상에 집착하면 괴로움이 생겨납니다... 술이 보약이라는 말 속에는 존재의 실상이 공하다는 표현은 없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면) 술은 나쁘다는 내 생각이 뒤집어 질 수 있습니다.’ .


불교는 깨달음을 위한 종교이고 법륜의 즉문즉설은 특정 상황이나 사람으로 인해 생기는 마음의 번뇌를 깨닫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와 같은 불교적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법륜의 법문을 보는 경우, 위의 논란점은 다소 황당한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공부를 하지 않는 자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부모’에게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는 문제가 없다’라고 답하고[16], 위의 비판 부분에서 서술된 술을 동반한 폭행 행위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남편에게는 술이 보약이다’라고 답변한다[17]


4.3. 종교성[편집]


‘상대’에 대한 ‘용서’를 말하는 것은 종교의 보편적 성질에 가깝다. 예를 들어 가장 유명한 경우로 성경에 나오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을 두고 가해자에 대한 면죄부로 해석하지는 않는다. 또한 세계 불교계의 대표적 지도자 중 한 사람인 ‘달라이 라마’ 역시 법문에서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강조한다.

“중국인들에게 잡혀 18년동안 감옥살이를 하면서 온갓 고문을 당했던 티베트의 승려는 두려웠던 적이 없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 한 가지 두려운 것이 있었습니다. 제 자신이 중국인들을 미워하게 될까봐, 중국인들에 대한 자비심을 잃게 될까봐 그것이 두려웠습니다. 하마터먼 큰일 날 뻔했습니다.”[18]


법륜이 질문자에게 말한 가해자를 용서해라란 말 역시 이런 종교성에 해당되는데, 이들을 미화하라는 의미가 아닌 이들에게서 졸업하라는 의미 또는 언제까지 과거의 일에 틀어박혀서 살아가지 마라라는 의미로서 정신차리라라고 날리는 일종의 일침이다. 불교 교리중 대표적인 교리가 집착을 놓아라, 즉 방아착인데, 질문자는 과거 입은 상처에 틀여박힌 나머지 이를 끝까지 잡고 앉아 있으니 법륜의 입장에선 이런 질문자가 안타깝고도 답답하게 느껴지기에 좀 심하다는것을 인지하더라도 세게 독설을 날릴수밖에 없던 것이다. 이는 첫번째 화살에 맞아도 두번째 화살은 맞지 마라하고도 일맥상통에 해당된다. 또한 붓다의 가르침 중에 '괴로움은 내가 내 생각에 사로잡혀 사물의 전모를 보지 못하고, 잘못 인식해서 발생하게 된다. 즉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나의 어리석음이 괴로움의 원인이며 이러한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는 것이 괴로움이 없는 열반,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는 길이다' 라는 말이 있다.
이 관점으로 즉문즉설에서 큰 비판을 받고 있는 가해자-피해자 프레임 문제를 봤을 때, 스님은 가해자에 대하여 잘했다 잘못했다 라든지 행동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 다만 그런 일을 당하고도 질문자가 앞으로 행복한 삶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가해자를 미워하고 복수하는 방향이 아닌, 이해하고 감사해하는 방향으로 인도해주는 것이 질문자의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보아 그러한 답을 해주는 것이다.[19][20] 이러한 답변의 의미를 알고나게되면 스님이 하는 말이 가해자나 범죄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며,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무작정 용서하거나 이해하라는 강요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가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천륜을 어기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가족간의 사이는 유지하되 적절한 때에는 손을 넣으라고 권하고 있다. 애초에 독립을 한다고 가족이 아니게 되는것도 아니기에 단ㄱ순히 집착을 놓고 대하면 피곤할 일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위의 이야기들을 우리의 삶에 그대로 적용시키기에는 너무 ‘이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종교성이라고 할 수 있고, 이상적인 이야기라고 해서 비판을 받아야 한다면 세상의 종교 중에서 비판받지 않을 수 있는 종교는 없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감정에 대한 정화로써의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폭력’ 자체에 대한 용서라고 비판하는 것 역시 잘못된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용서’로 ‘폭력’의 상흔에 대처하는 방법이 결코 ‘이상적’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사례 역시 존재한다. 연쇄 살인마에게 가족을 잃은 사람이 말하는 용서

추가적으로 즉문즉설을 많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강연의 시작 또는 끝 마무리를 할 때 항상 스님이 하는 말이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부가 검든 희든, 여자든 남자든, 나이가 적든 많든, 장애가 있든 없든, 어릴때 안좋은 경험(성폭력이나 집단 따돌림 등)이 있든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21] 즉, 이말은 본인의 현재 상황과 처지가 어떻든, 과거에 어떤 경험이 있든 지금 행복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는 것이다.


4.4. 다양한 관점에 따른 의견과 질문자의 '자각'[편집]


즉문즉설이 바탕을 두고 있는 붓다의 설법 방식은 대화를 통해 질문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순이나 무지를 깨닫도록 함으로써 '스스로' 의문이나 괴로움을 해결하는 방식의 대화를 말한다.[22]

이에 대해 법륜은 아래와 같은 붓다의 사례를 소개 한다.붓다,나를흔들다

어느 날 붓다에게 가미니라는 젊은 수행자가 물었다. “붓다여, 사제들이 말하기를 성스러운 갠지스 강에서 목욕을 하면 아무리 많은 죄를 지은 사람도 몸의 때가 씻어지듯이 죄업이 다 녹아서 천국에 이를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사실입니까?” 그러자 붓다는 빙긋이 웃으면서, “만약에 그들의 말이 맞다면 강가 강에 사는 물고기들이 가장 먼저 천국에 나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이와 같이 붓다는 질문자의 질문에 '답'을 준 것이 아니라, 그 질문 속에 있는 모순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스스로 깨닫게 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즉문즉설은 어디까지나 조언에 해당되며 명확한 답은 없다. 스님이 이거 해라라고 한다고 해서 무조건 할 필요는 없고 이거 하지 마라라고 해서 무조건 하지 않아도 되는게 아니며, 이는 어떠한 스님의 말에도 예외는 없다. 즉 질문자가 스님의 말에 모순이 있다고 생각하면 반영하지 않아도 되고 어느쪽을 선택하든 나오는 결과에 대해서는 본인의 책임이며, 법륜 스님 역시 이를 강조한바가 있다.[23] 그처럼 즉문즉설에서도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자 스스로 모순을 보게 하거나,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봄으로써 고민에서 벗어나도 도와주는 방식을 사용한다. 그래서 '즉문즉설'은 '즉문즉답'이 아닌 '즉문즉설'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정답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 대화를 통해 스스로 자신 문제를 깨닫게 하는 것을 말한다. 불교 교리로 치자면 중도에 해당되는 조언을 남기는 것이다. [24]

이는 즉문즉설을 신청하는 질문자에게도 원인이 있는데, 대다수의 질문자가 즉문즉설을 신청하는 이유는 스님이라면 어떻게든 해줄것이다라는 과도한 기대를 품으며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법륜 스님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질문자가 어리석다고 볼수 있는데,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되고 인간 관계는 심리 치료사나 카운셀러를 찾아가면 되는 일이거늘 굳이 질문할 필요 없는 고민까지 어떻게든 해달라고 구걸하다보니 문제인 것이다. 스님 역시 왜 경험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물어보느냐자신은 해결사도 의사도 아니며 그저 조언만 할뿐이라며 이 부분을 크게 비판하고 있다.

아래는 그에 대한 즉문즉설의 예시이다.

Q : "공무원 생활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A : "공무원 생활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제가 할 이야기는 아니에요. 인생은 일반론이 아니니까요. 오늘도 어느 회사에서 강의를 요청했지만 저는 할 말이 없다고 했어요. 묻는다면 이야기하겠지만 제가 먼저 가서 ‘어떻게 해라’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25]


따라서 질문자에게 ‘용서’를 강요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즉문즉설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위의 여성 옹호 논란 즉문즉설과 여성 차별 발언 논란 카드 뉴스도 마찬가지인데, 전자는 질문한 남자의 입장만이 아닌 여성의 시점에서도 바라보고 이런 의견을 말한 것이다. 질문자는 남성 역차별 때문에 억울하니 여성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의미로 질문했을 수 있으나, 만약 "남자들이 억울하겠다 여성들은 반성하라"라고 답변하면 당장 질문자의 속은 시원할 수 있으나 여성측에서는 남자들을 옹호하고 우리를 나쁜놈 취급하는것이냐라며 반발하는등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애초에 이는 일종의 카르마, 업에 해당되는 만큼 법륜이 한마디 했다고 여성들의 행동이 바뀔리가 없기 때문. 법륜 본인도 나도 여러분도 상대방을 고치기는 어렵다라고 한 바가 있다. 따라서 이 질문 역시 "여성들과 시시비비 할 것이 아니라, 지금은 아니지만 여성들은 오랜 시간 차별 받아왔고 그것에 대한 감정이 폭발해 지금에 이르렀으니 그냥 업보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속 편하다."고 답하면서 양쪽의 시점을 동시에 반영한 것. 이랗듯 법륜은 이런 상황에서 화나는 상황이 아닌 질문자에 집중한다.

그러나 법문영상의 12:30 부분에서 광풍이라고 표현한것으로 보아 젠더 갈등이나 혐오 문제애 대해서는 이와는 별개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성 차별 발언 논란 카드 뉴스 역시 남성은 아내가 때론 엄마처럼, 때론 유모처럼, 때론 요부처럼, 때론 파출부처럼 해 주길 원하는데 이것을 다 들어줄 수 있는 아내는 찾기 어렵기다는 의미로 말한것이며 해당 논란은 전체가 아닌 부분만 보고 확대 해석한 것에 해당된다


4.5. 하나의 사례에 대한 일반화[편집]


즉문즉설뿐만 아니라, 대개의 정신적인 고통에 대한 상담 사례들은 대부분 ‘피해자’의 입장에 대한 것이 많다. 한 정신과 의사가 이야기했듯이, 정말 치료를 받아야 할 가해자들은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고 정상적인 피해자들이 치료나 상담을 받으러 다니는 것이 현실이다.[26] 다시 말해, 즉문즉설 역시 대개의 경우 피해자들이 질문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의 입장에서 진행되는 것이 많고, 그에 따라 그런 입장의 내용이 많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드물지만 ‘가해자’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질문자의 경우에는 그에 맞는 ‘즉문즉설’이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래는 그와 같은 즉문즉설의 예이다.

Q : “어릴 적부터 늘 야단맞고 지적당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들만은 똑똑하게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다그치고 몰아세웠습니다. 격려하고 믿어주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제가 가장 많이 아이를 비난합니다…”

A : “내 아이는 잘 키우겠다고 다짐했지만 지금 질문자도 부모님과 똑같이 자식을 지적하며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군대 가서 신입 졸병일 때는 상사가 되면 절대 기합주지 않겠다고 결심하지만 기합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나중엔 더 심하게 굴곤 하는 것과 같습니다.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그런 흐름에 따라 자기가 배웠던 그대로 그저 행하고 있는 겁니다. 내 자식도 나처럼 부모에게 상처받고 자라서 제 자식에게 똑같이 대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내 자식이 나처럼 되지 않도록 똑똑하게 키우겠다는 바로 그 생각입니다. 똑똑하고 아둔하다, 잘나고 못났다는 구분은 다 (상대적인) 것입니다. 내 인생이 잘못됐다, 우리 아이가 잘못됐다는 건 어디까지나 나만의 생각일 뿐입니다.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자꾸 야단을 치기 때문에 잘못되는 겁니다. 인물 잘나고 공부 잘하면 세상 누구나가 다 좋아합니다. 아니, 세상 사람들은 그런 사람만 좋아합니다. 자식이 인물 잘났다고 좋아하고 똑똑하다고 좋아한다면 그건 엄마가 아니라 그냥 세상 사람이지요. 그렇지 못해도 기뻐하고 사랑해야 어머니입니다. 남들이 다 내 자식에게 문제 있다 해도, 내 자식을 못생겼다 해도 내 눈에는 제일 사랑스런 자식으로 보여야 부모입니다”[27]


위의 사례에서도 보이듯이, 가해자의 입장을 옹호한다는 것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진행된 즉문즉설이 더 많기 때문에 빚어진 일반화의 사례라고 볼 여지가 있다.

이런 문제가 가장 큰 케이스는 즉문즉설의 유튜브를 보는 시청자들 또는 비판하는 안티측인데, 이들은 즉문즉설의 진정한 의미를 전혀 간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유튜브를 보는 시청자들은 법륜 스님의 의견을 절대적으로 맹신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영상의 댓글을 보면 스님이 질문자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질문과 대답을 거의 똑같이 댓글로 달고있다. 즉문즉설을 지혜의 터득과 수행을 위해 듣는 게 아닌, 표면적인 내용만 습득해 단순 지식으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질문자에게 얘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수행이 부족한 중생이라고 할 수 있지만, 2차적으로 질문자를 어리석다, 이기적이다 라는 말을 하며 비난을 하는 모습까지 자주 나타난다. 다시 말하지만 즉문즉설을 통해 깨달은 지혜는 나 자신에게 1차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수행이며 남에게 강요하거나, 법문을 가르치려고 애를 쓰는 것은 단순한 지식의 사용에 불과하다.이런 문제가 있다보니 법륜 스님은 유튜브를 보고 팬이 되었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극성 빠로 판단하며 좋게 보지 않는다. [28] 비판하는 측 역시 마찬가지로 유튜브나 정토회의 즉문 즉설의 내용만 보고 판단하는 수박 겉핥기를 하다보니 스님이 특정 계층을 옹호했다거나 사회에 역행하는 말을 했다는 일반화만 가지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항목의 비판 부분에서 서술된 다양한 범죄 행위와 가해자를 옹호하며 피해자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서술 역시 일반화가 섞여 있는데, 법륜은 절대 위의 비판 항목에 예시로 든 범죄에 가까운 행위에 대해 옹호하지 않았다.. 즉 이들의 행위를 정당화 하지 않았으며 잘했다고 하는것이 아닙니다라며 확실하게 선을 긋고 있다. 범죄자를 개심 시키려는 어느 종교에서든 이들이 저지른 행위는 별개로 치고 있으며, 불교에서는 악행을 저지른 가해자에 대해서 이들은 죄가 없는 불쌍한 사람이다가 아닌 어리석기 때문에 잘못된 길로 간 중생으로 바라보고 있는 만큼 법륜 역시 마찬가지다. 즉 위의 발언은 옹호라기 보다는 가해자에 대한 이해를 하면서도 주어진 상황에서 여러가지 노력을 해보고, 정말로 답이 없다고 판단한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이혼이나 법적인 처벌을 택하고 이를 택한 뒤에는 안녕히 가십시오라며 놓아버리고, 법적인 처벌의 경우에는 그래도 애정이 있으니 이렇게 하는것이다라며 가끔식 면회를 갈것을 권하고 있다.

이와 같은 즉문즉설의 특성을 모르고 단편적으로 몇 개의 답변만을 보고 생각해서는 즉문즉설에 대해 잘못된 선입관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즉문즉설의 성질 때문에 즉문즉설을 듣다보면 '답변을 함부로 남에게 적용시키지 말 것'을 당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29]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7 21:20:42에 나무위키 즉문즉설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즉문즉설이란 [2] 내게맞는즉문즉설 [3] https://www.youtube.com/user/jungtosociety/featured [4] https://www.jungto.org/jungto/notice.html?sm=v&p_no=41&b_no=74566 [5] 번뇌속으로세상속으로 [6] http://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19803 [7] 사실 이 발언은 원래 법륜이 집필한 서적인 스님의 주례사의 초기 제목 원안이었다. 하지만 이 제목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크게 반발할 위험성이 있다는 만류로 인해 현재의 제목으로 바꾸어 낸게 현재의 스님의 주례사였던 것. 그런데 사실 법륜 스님은 책의 제목처럼 결혼식의 주례를 실제로 맡은적이 있다. (#)[8] 그외에도 부자랑 결혼하면 종살이를 할 확률이 높다, 리더쉽 있는 사람은 잡고 살 확률이 높으니 괴로울 수 있고, 친구같은 사람은 줏대 없을 확률이 높으니 피곤할 수 있다, 상냥한 사람이 접근하면 사기꾼일 확률이 높다. 백마탄 왕자나 운명의 상대는 없다.라는등의 연애를 바라는 남녀들의 마음을 꺾는 발언을 한적이 있다.[9] 붓다의 대화법과 『능가경』에 나타나는 무기설의 특징,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종교와 문화> 22권0호 (2012), pp.115-136 http://kiss.kstudy.com/journal/thesis_name.asp?tname=kiss2002&key=3073329 [10] 붓다는 유신론자에게 ‘신은 없다’고 답변했으며 무신론자에게는 ‘신은 있다’, 구도자에게는 침묵으로 답했다. 이를 지켜본 아난다가 혼란스러워 미칠 지경이라며 그 이유를 묻자 붓다가 대답했다. 유신론자는 신의 존재가 있다는 생각으로 정해진 대답을 가지고 와서, 주변사람들에게 ‘내가 옳다. 붓다도 신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 위해 나의 협조를 청하러 왔을 뿐이므로, 붓다가 그의 믿음을 깨트리기 위해서 신이 없다고 말해야만 했다. 믿음은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신론자는 ‘신은 없다’는 주어진 대답을 들고 왔고, 붓다가 그의 불신을 강화시켜주길 원했다. 그래서 붓다는 그에게 ‘신은 존재한다’고 대답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 의도는 같았다. 유신론자에겐 선입견적인 믿음을 깨트려주었고, 무신론자에겐 선입견적인 불신도 깨뜨려주었다. 신앙은 긍정이고 불신은 부정적이지만 양쪽 다 같다. 둘 다 아는 자도 아니고, 둘 다 경험한 구도자도 아니다. 그들은 이미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http://www.dailywrn.com/sub_read.html?uid=1025 [11] 유튜브 즉문즉설 아내를 미워하는 어머니 https://youtu.be/cadpjntGR0k [12] 유튜브 즉문즉설 "시집살이, 참고살기 억울하고 힘들어요" https://youtu.be/exdhN1pqb1Y [13] 여기서말하는 '법문'이란 전통적 의미에서의 '불교적 법문'과는 다르다. 법륜 자신도 즉문즉설 중에 강조하듯이 종교로서의 불교와, 일반적 진리를 말하는 'Dharma'는 다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현재 서구에서는 이른바 종교는 불교가 아니지만 불교적 수행의 방식을 따르는 사람들이나, 혹은 소위 크리스천-부디스트 등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0101024003[14] http://m.jungto.org/view.php?p_no=74&b_no=75957&page=1[15] BTN대담[16] 아이는 본래 아무 문제가 없는데 아이가 공부 잘 하기를 원하면 아이는 문제아가 됩니다. 그러나 ‘공부 잘해서 뭐하나?’, ‘공부 잘한다고 꼭 좋은 게 아니더라.’ 이렇게 생각해버리면 아이는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이 됩니다. 본래 문제가 없는데 내가 문제로 삼으면 문제가 있는 것이 되고, 내가 문제로 안 삼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 됩니다. 문제가 있고 없음이 아이에게 있어요? 나에게 있어요? 나한테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옳다, 그르다, 깨끗하다, 더럽다 하는 모양은 내 마음이 짓는 것이지 그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http://cafe401.daum.net/_c21_/bbs_read?grpid=uenT&mgrpid=&fldid=QyGP&content=N&contentval=000GDzzzzzzzzzzzzzzzzzzzzzzzzz&page=1&prev_page=0&firstbbsdepth=&lastbbsdepth=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listnum=20| 법륜, 희망편지[17] 법륜, <기도> [18]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15057 [19] 참고영상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기" https://youtu.be/KbUyPzfHZ14 [20] "타인에 대한 미움을 어떻게 없엘 수 있을까요?" https://youtu.be/6pw-oGZIs4U [21] 스님이 행복에 대해 구체적 정의를 내린 것은 아니지만 '괴로움이 없는 상태'라고 말한 적이 있다.[22] 붓다의 대화법과 『능가경』에 나타나는 무기설의 특징,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종교와 문화> 22권0호 (2012), pp.115-136 http://kiss.kstudy.com/journal/thesis_name.asp?tname=kiss2002&key=3073329 [23] 붓다는 어느 것이 옳다든지 혹은 그르다든지 하여 옳고 그름을 판정하기보다는 늘 스스로 알아서 깨닫도록 했다. 상대의 주장을 부정하거나 비난하거나 배척하지도 않았다. 위 이야기에서처럼 상대방 말 속의 모순을 지적해 줌으로써 질문자가 스스로 답을 찾도록 했다. 이렇게 스스로 깨달은 사람은 다시는 그 문제에 대해 의문이나 의혹을 품지 않는다. 붓다는 또 합당하고 합리적인 언어로, 상대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를 했다. 이론적인 이야기를 어렵게 한 적도 없고 신비로운 이야기를 알쏭달쏭하게 한 적도 없다. 그래서 붓다의 말은 아무리 무지한 사람이라도 한 번 들으면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붓다,나를 흔들다>[24] 즉문즉답이라고 하지않고 즉문즉설이라고 하는 이유는 질문을 하는 분에게 답을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질문자가 괴로운 이유는 한 면만을 보고 그것이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화를 하면서 다른 면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코끼리 다리를 만져보고 코끼리가 기둥같이 생겼다고 하면 귀를 만져보게 하고 부채같이 생겼네, 꼬리를 만져보고 빗자루같이 생겼네, 배를 만져보고 벽같이 생겼네 이렇게 다른 면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전모, 전체를 다 알게 되면 코끼리가 기둥같이 생겼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아 기둥같이 생긴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 이것이 깨달아 가는 것, 진리로 나아가는 것, 깨우쳐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설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스님의하루2013.5.13. [25] http://m.jungto.org/view.php?p_no=74&b_no=75523 [26] http://m.joongboo.com/?mod=news&act=articleView&idxno=24748#cb | 중부일보 - 피해자는 정신과 치료, 가해자는 거리를 활보?’ [27] http://m.jungto.org/view.php?p_no=10&b_no=52328[28] 참고영상 "남이야 어떻든 관여하지 말고 자기를 봐라" https://youtu.be/Sr_YcScNORY [29]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수백, 수천개를 들은 사람에게 스님이 한 말이 있다. "스님의 법문을 그정도 듣고 새로 올라온 영상을 봤을 때, 질문자의 말을 듣고 '스님이 이 질문엔 이런 답을 하시겠구나' 하며 자신이 질문에 답을 한다면 그것은 법문을 통해 지혜를 터득한 것이 아닌, 단순한 지식의 적용에 불과하다. 법문을 통한 수행은 지식의 축적이 아닌, 자신의 삶에 대입하여 괴로움을 없애는 지혜가 되어야 한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