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사라 음란물 지정 및 탄압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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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2020년 대한민국의 젠더 관련 이슈

[ 1987년~2009년 ]
1987년
2월 18일
한국여성단체연합 창립
1992년
10월 29일
즐거운 사라 음란물 지정 및 탄압 사건
1994년
1월 10일
성폭력특별법 제정
1995년
12월 30일
여성발전기본법 제정
1997년
날짜 미상
된장녀 용어 생성
1999년
12월 23일
군가산점 폐지
2000년
1월 13일
군인은 집 지키는 개 표현 논란
7월 1일
운동사회 100인 위원회 사건
2001년
1월 29일
여성부 설립
4월 25일
월장 사건
9월 23일
성매매 특별법 시행
2005년
2월 3일
호주제 헌법불합치 결정
날짜 미상
'된장녀' 용어 확산
2006년
11월 14일
서정범 교수 무고 사건
11월 26일
남성연대 설립
12월 25일
여성부 성매매 예방 다짐 이벤트 논란
2009년
11월 9일
루저의 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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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2020년 ]
2011년
9월
김치녀 용어 확산
9월 15일
아청법 개정
2012년
6월 2일
일베 여성 강간모의 사건
2013년
7월 26일
성재기 한강 투신사건
2014년
5월 31일
무한도전 홍철아 장가가자 2부 취소 및 사과 사건
7월
SLR클럽 소모임 성인 정보 자료실화 사건
8월
남성연대, 양성평등연대로 명칭 변경
9월
성매매 예방교육 동영상 '공감' 논란
2015년
2월 10일
#나는_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
4월 12일
장동민 여성비하 발언 논란
5월 6일
2015 여성시대 대란
5월 12일
여성시대 고발 대란
8월 6일
메갈리아 탄생
날짜 미상
메갈리아4 개설
9월
일베 친척 신체부위 몰카 인증 사건
12월 8일
메갈리아 분열 사태
2016년
1월 22일
워마드 탄생
3~4월
소라넷 폐지운동, 소라넷 폐쇄
4월 13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5월 17일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
5월 20일 ~ 말일
강남역 시위 충돌 사건
6월
강남패치 생성
스타벅스 군인 커피 성차별 논란
7월 18일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
7월 20일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의 위 사건에 대한 논평 발표
7월 21일
레진코믹스 집단 환불 및 탈퇴 사태
7월
웹툰 규제 찬성 운동 발발
7월 22일
메갈리아 회원 등 여성 시민들의 넥슨 본사 앞 시위
7월 24일
아름드리 위키 설립
7월 25일
페미위키 설립
7월 28일
이화여대 미라대 반대 시위
8월 2일
나무위키 성 평등주의 날조 사건
8월 25일
고스트버스터즈의 한국 개봉
티파니 광복절 욱일기 게시 사건
날짜 미상
갓건배 아프리카TV 스트리밍 시작
10월
2016년 문화계 성추문 폭로 사건
10월 14일
82년생 김지영 출간
10월 21일
SJ레스토랑 불매운동 사건
11월
전국디바협회 트위터 계정 생성
11월 18일
강남패치 수사 종결
2017년
1월 24일
나무위키 성 평등주의 날조 사건
3월 29일
인천 동춘동 초등학생 유괴 살인사건
7월 27일
서울위례별초등학교 페미니즘 교사 논란
8월 5일
상서중학교 성추행 의혹 교사 자살 사건
8월 8일
호주국자 등장
8월 30일
여성징병제 1차 청원
9월
파이널 판타지 14 메갈리아 분쟁
10월 3일
워마드 운영진 분열 사건
11월 6일
현대카드 성폭행 의혹 사건
11월 18일
유아인 사이버 불링 사건
11월 20일
워마드 호주국자 아동 성범죄 사건
11월 30일
배성재의 TEN 작가 SNS 논란
12월
메갈리아 폐쇄
2018년
1월 29일
검찰청 내부 성추문
3월 5일
안희정 성폭력 사건
서울시립대학교 정현남 린치 사건
3월 21일
소녀전선 K7 업데이트 연기 논란
3월 26일
김학규의 일러스트레이터 사상 검증 논란
4월
인벤 메갈리아 편파 운영 논란
2018년 소방관 여성비하 욕설 사건
5월 1일
워마드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도촬 사건
5월 10일
서강대학교 인권 강연 논란
5월 16일
양예원 스튜디오 출사 관련 논란
5월 19일
제1차 2018년 혜화역 시위
5월 24일
2018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 인권축제 사태
6월 9일
제2차 2018년 혜화역 시위
7월 7일
제3차 2018년 혜화역 시위
7월 10일
워마드 성체 훼손 사건
7월 13일
워마드 남아 낙태 인증 사건
7월 21일
그것이 알고싶다이재명·은수미·국제마피아파의 유착 의혹 보도
7월 28일
그것이 알고싶다웹하드 카르텔 보도
8월 2일
트페미 청년다방 몰카 누명 사건
8월 4일
제4차 2018년 혜화역 시위
8월 5일
도전 골든벨 화이트보드 모자이크 사건
8월 21일
전자책 "페미니스트와 반려견의 안전한 성" 출판 논란
8월
유흥탐정 개설
9월 5일
보배드림 곰탕집 성추행 판결 논란
9월 8일
네이버 카페 "당당위" 개설
9월 13일
구하라가 최종범을 폭행했다는 소식 보도
10월 6일
제5차 2018년 혜화역 시위
10월 15일
성균관대학교 총여학생회 폐지 사건
10월 17일
유흥탐정 운영자 체포
10월 27일
제 1차 제1차 사법부 유죄추정 규탄 시위
10월 29일
뉴스타파, '몰카제국의 황제' 양진호 첫 보도
11월 6일
광운대학교 총여학생회 폐지 결정
11월 13일
이수역 폭행 사건
11월 15일
산이 - 제리케이 디스전
11월 21일
동국대학교 총여학생회 폐지 사건
11월 28일
숙명여대 남성혐오 대자보 사건
11월 30일
YES24 한국 남성 비하 마케팅 사건
12월 8일
여성폭력방지기본법 국회 통과
12월 22일
제 6차 2018년 혜화역 시위
2019년
1월 4일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 폐지 사건
1월 8일
2019년 체육계 성추문 폭로사건
서강대학교 국제인문학부 성평등위원회 린치 사건
1월 9일
양예원 스튜디오 출사 관련 논란 1심 판결
1월 28일
클럽 버닝썬 폭행 사건 및 강간 약물 유통 의혹
2월 1일
안희정 성폭력 사건 2심 판결
2월 12일
2019년 인터넷 검열 논란
3월 11일
정준영 등 도촬 및 음란물 유포 사건
4월~10월
인헌고등학교 사상 강요 사건
4월 11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4월 18일
양예원 스튜디오 출사 관련 논란 2심 판결
4월 26일
보배드림 곰탕집 성추행 판결 논란 2심 판결
5월 9일
걸캅스 한국 영화 시장 개봉
5월 15일
서울 대림동 여경 논란
5월 25일
워마드 청해부대 순직자 비하 사건
6월 28일
배스킨라빈스 핑크스타 광고 논란
7월 8일
리얼돌 전면금지 청와대 국민청원
8월 8일
양예원 스튜디오 출사 관련 논란 3심 판결
9월 9일
안희정 성폭력 사건 3심 판결
10월 2일
선문대학교 칼부림 사건
10월 14일
설리 사망 사건
10월 23일
82년생 김지영 한국 영화 시장 개봉
11월 16일
게임계 페미니즘 사상검증 논란
12월 12일
보배드림 곰탕집 성추행 판결 논란 3심 판결
12월 19일
인천 공무원 갑질 사건
12월 28일
설리, 구하라 혜화역 규탄 집회
2020년
1월 2일
명일방주 남성혐오 일러스트레이터 축전 배제 논란
1월 30일
트랜스젠더 숙명여자대학교 합격자 입학 반대 논란
2월 3일
크로노 아크 일러스트레이터 래디컬 페미니즘 논란
2월 21일
이천 경찰 자살 사건
3월 16일
n번방 성착취물 제작 및 유포 사건
4월 17일
한국 페미니스트 명탐정 코난 사과 요구 사건
5월 10일
제 1회 안티페미니스트 집회 개최
7월 21일
여성가족부 폐지 국회 국민동의청원
8월 2일
가디언 테일즈 이벤트 대사 수정 논란
8월 11일
기안84 웹툰 '복학왕' 여혐 논란
8월 15일
서울시 코로나 19 구상권 동영상 논란
10월~
네이버 웹툰 검열 논란
11월 12일
젠더 미디어 〈slap〉의 조용한 학살 동영상 논란
11월 19일
비동의간음죄 녹취금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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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소설 '즐거운 사라'
3.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4. 사건의 진행
4.1. 체포와 유죄 선고
4.1.1. 재판
4.2. 연세대학교 학생들의 구명 운동
4.3. 유죄 선고 이후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이 사회가 기피하는 부분들을 은폐하려고만 하면 아이들은 어디서 알고 어디서 느끼나요? 나는 마 교수가 잘했다고 봐요.

김광석[1]

, 1993년 2월 월간 『길』과의 인터뷰 중


1992년 10월 29일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마광수(1951~2017)가 집필한 소설 《즐거운 사라》가 형법 제243조244조음란물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강의 도중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체포된 후 법정에서 유죄가 확정되어 징역을 선고받은 사건.

이렇게 작가가 공권력에 의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하는 것을 필화(筆禍; 붓으로 인한 재앙)라고 한다. 대부분의 필화는 반체제 인사가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는 이유로 당하는 것이지만 이 사건은 단순히 '야한 소설을 창작했다는 이유'로 대학 교수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는 점에서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2. 소설 '즐거운 사라'[편집]


즐거운 사라

파일:external/bookimg.naver.com/115061.jpg

저자
마광수
출판사
청하
출간일
1992년 8월 20일
쪽수
363p
ISBN
8940301463

이 소설은 성에 대해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프리섹스를 지향하는 자유로운 여대생 '사라'가 온갖 섹스를 즐기며 쾌락을 추구한다는 내용이다. 당시 한국에서 전반적으로 벌어지던 일들[2]을 기준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그다지 반사회적인 사상을 내세우고 있지 않으며 소설에 등장하는 성애 묘사들도 비슷한 시기에 버젓이 출판되어 팔린 다른 소설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법적인 처벌을 받을 정도로 음란한 편이라고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1980년대나 90년대에 웬만한 스포츠신문이나 잡지에는 즐거운 사라보다 훨씬 더 선정적인 묘사를 자랑하던 소설이나 만화들이 버젓이 실렸기 때문이다. 무협 소설들도 일명 노루표 무협지라고 하여 웬만한 작품들에 수위가 높은 섹스 장면이 꼭 들어가 있었으며 하다못해 춘향전 같은 고전 문학조차 굉장히 자유로운 성적 묘사가 드러나는 판이다.

동시대 다른 외국 서적과 비교해 봐도 이 소설이 특별이 이상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일본프랑스, 독일처럼 서점에 야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나라와는 비교할 것도 없고 《롤리타》나 《소돔의 120일》에 비하면 양반이다. 당시 한국에 출판된 서적들을 봐도 그보다 훨씬 야한 일본의 에로티시즘 소설인 《여인의 추억》이나 《요마록》 같은 물건이 아무 문제 없이 버젓이 출판되었는데 누구는 체포되었다. 사법부에서는 '음란성의 정도를 사회 일반인의 기준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명시한 적이 있으나 사회 일반적으로 이 소설만이 특히 이상한 것이 아님에도 실형이 선고되었다는 것은 오판이라는 것이다.

3.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편집]


파일:초록색 상자.png 포르노그래피가 원천적으로 합법인 나라
파일:노란색 상자.png 포르노그래피가 조건부 합법인 나라
파일:붉은색 상자.png 포르노그래피가 원천적으로 불법인 나라
※1 회색은 자료 없음.
※2 실재하는 아동을 소재로 한 포르노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불법이며, 위 지도의 구분에 포함되지 않음.




냉전기 자유 진영인 제1세계에서는 68혁명과 함께 전후 세대에 성적 자유주의가 확산되어 성인이 성인물을 향유하는 것을 개인의 권리로 생각하는 사상이 확산되었으나 대한민국소련이나 중국 못지않게 엄숙주의를 제도적으로 강요하였다. 당시 한국은 계획경제국가, 경찰국가로서 수십 년간 지속된 군사정권 하에서 '북한사회주의 이념이 들어오는 것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국민을 계도・검열하기 위한 규제가 문화 산업 전반에 아주 팽배해 있었다. 음악계에서는 건전가요가 대표적인 사례다. 배경에는 성 문화를 부끄러운 것이라고 여기고 터부시하는 성리학적 잔재도 깊게 깔려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정부의 미니스커트 단속 같은 것도 이러한 배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루어졌다.

1987년 대한민국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민주화를 맞이하였지만 여전히 국민의 문화 지체는 계속되었고 특히 성 문화와 관련된 의식은 70-80년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호주제혼인빙자간음죄, 간통죄의 존재였는데 심지어 후자는 각각 2009년2015년에야 폐지되었다. 불과 20세기까지 한국에는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도 비교적 최근인 1992년에 일어난 것이며 '국민소득 2만불'을 목표로 하고 선진국의 반열을 넘본다던 한국에서 현직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야한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징역을 선고받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특히 이 사건이 유명해진 이유는 마광수 교수가 근대 문학 비평에 지대한 공로를 세운 천재라는 점과 쌍팔년도[3]도 아니고 도화(圖畵)나 영상이 아니라 활자 매체인 소설에까지 공권력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맞는 것이냐는 비판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마광수 교수는 '즐거운 사라'만 그렇게 혹독한 처분을 받은 것이 일단 교수가 쓴 것이기 때문이고[4] 주인공 '사라'가 방탕한 삶 끝에 불행해지거나 정신 차리는 교훈적, 도덕적 결말이 아니기 때문에 불편하신 분들의 심기를 건드린 게 아닐까 하고 언급한 바 있다.


4. 사건의 진행[편집]



4.1. 체포와 유죄 선고[편집]



파일:external/monthly.chosun.com/1206_376.jpg

연행 당시 모습

당시 1심 판결문[5]

1992년 9월 1일 간행물윤리위원회는 출판 서적에 대한 검열 작업 도중 《즐거운 사라》를 발견해 검찰음화제조음화반포죄로 마광수 교수와 청하출판사를 고발했고 9월 24일 문화부(현 문화체육관광부)에 마 교수에 대한 제재를 건의하였다.

10월 29일 강의 중에 형사가 들어와 그대로 마광수의 손목에 수갑을 채워 끌고 가면서 그대로 구속되었다. 출판사 직원도 줄줄이 체포되었고 검찰은 책을 인쇄했던 업체 고려제책(주)을 압수수색해 5천여 권의 서적을 수거했다.

당시 마광수는 검찰에 강력하게 항의하였으나 세간의 인식은 "뭐? 연세대 교수씩이나 된다는 사람이 야한 소설을 써!? 세상이 망했구나! 저 놈을 매우 쳐라!!" 수준이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작가 조경휘는 자신의 소설인 '마지막 손오공'에서 "요즘 인간 세상은 대학 교수나 되는 사람이 야한 소설을 쓰고 그게 무죄라고 징징거릴 만큼 품위가 떨어졌고 말세다."라고 비아냥거렸다.[6] 소수의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마광수를 옹호하였으나 결국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판결이 내려졌다.[7]

사건 당시 보수 성향의 유력 일간지 등을 통하여 "마광수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 지식인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서울대학교손봉호[8] 교수는 "마광수 때문에 에이즈가 유행한다, 마광수는 교수가 아니라 마광수 씨로 불러야 한다" 등의 공격적 발언을 쏟아내면서 자신의 위세를 높이기도[9] 했으며 이태동 당시 서강대학교 영문과 교수는 "<즐거운 사라>에 나오는 여대생과 그를 가르치는 교수 사이에서 문란하고 변태적인 성관계가 성실한 노력의 상징인 학점의 흥정대상이 된다는 것은 커다란 사회적인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라며 마광수와 여제자 사이의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인신공격을 하기도 했고 이문열중앙일보에서 그의 작품을 '구역질을 동반한다, 보잘 것 없다'며 노골적으로 비난했다.[10] 다만 해당 칼럼에서 이문열은 동시에 검찰의 마광수 교수에 대한 대처도 구역질 나는 짓을 했지만 그렇다고 잡아가는 것도 구역질 나는 짓이라며 비난했다. 해당 칼럼의 링크는 이문열 항목에 있다.

실질적으로 마광수를 법적 처리하라고 검찰에 "명령"한 것은 당시 국무총리였던 현승종인데 현승종은 원래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이자 고려중앙학원 이사장, 성균관대학교 총장을 지냈던 인물로 정치적으로도 매우 보수적인 사람이다. 민주당계 정권이 들어선 후 극우적인 시국선언에 단골로 나왔다.[11] #

여담으로 문재인 정부 초기 법무부 장관후보자였다가 자진 사퇴한 안경환 서울대학교 교수는 마광수 교수의 항소심에서 <즐거운 사라> 2차 감정 때 재판부측 감정인으로서 감정했는데 그 감정서로 인해서 마광수 교수의 항소심이 기각되었다고 한다. #

4.1.1. 재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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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형사 주요 판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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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總論

'항로'의 의미 (땅콩회항 사건 / 2015도8335) · 유추해석금지의 원칙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 2017도14749) · 부작위범 (보라매병원 사건 / 2002도995) · 부작위범 (세월호 사고 / 2015도6809) · 정당방위의 요건 (김보은·김진관 사건 / 92도2540) ·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 (조형기 뺑소니 사건 / 92도999) · 승계적 공동정범에서 후행자의 귀책범위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 / 82도2024) ·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대한 기대가능성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 87도2358) · 국회의원 면책특권의 한계 (삼성 X파일 사건 / 2009도14442) · 위법성조각사유의 전제사실에 대한 착오 (여우고개 사건 / 86도1406) · 제12조의 의미 (KAL기 폭파 사건 / 89도1670) · 제12조가 적용되지 않는 경우 (동림호 사건 / 73도1684) · 과실범의 공동정범 (성수대교 붕괴 사고 / 97도1740) · 군용물분실죄의 '분실'의 의미 (백 소령 사건 / 98도1719)
각론
各論

내란죄의 의미 (전두환·노태우 내란 사건 / 96도3376) · 주거침입죄의 '침입'의 의미 (초원복집 사건 / 95도2674, 2020도12630) · 내란선동죄의 구성요건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사건 / 2014도10978) · 피해자 특정성 (아나운서들의 강용석 고소 / 2011도15631) · 사문서위조 (성수대교 붕괴 사고 / 97도1741) · 업무상배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 / 2007도4949) · 음란문서제조등 (즐거운 사라 음란물 지정 및 탄압 사건 / 92고단10092) · 사칭과 정통망법위반 명예훼손 (타인을 사칭해 데이팅 앱과 일베에 글을 올린 경우 / 2015도10112, 2017도607)
형사소송법
刑事訴訟法

외국에서의 사인에 의한 체포(2011도12927) · 미국문화원의 관할권(86도403) · 제3자 소유 임의제출물의 증거능력(2021도11170) · 원격지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2017도9747) · 검사의 공소권남용 2016도14772)






이 판결의 판시사항 및 판결요지는 다음과 같다.

서울형사지방법원 1992. 12. 28. 선고 92고단10092 판결

[음란문서제조등][하집1992(3),393]

【판시사항】

변태적인 성행위를 선동적인 필치로 노골적,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소설 "즐거운 사라"가 음란문서에 해당한다고 본 사례

【판결요지】

소설 "즐거운 사라"는 때와 장소, 상대방을 가리지 않은 각종의 난잡하고 변태적인 성행위를 선동적인 필치로 노골적,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데다가 나아가 그러한 묘사부분이 양적, 질적으로 문서의 중추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구성이나 전개에 있어서도 문예성, 예술성, 사상성 등에 의한 성적 자극 완화의 정도가 별로 크지 아니하여 주로 독자의 호색적 흥미를 돋구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는 점 등을 종합 고찰하여 볼 때 위 소설은 문학작품에 있어서의 표현의 자유의 최대한 보장이라는 명제와 오늘날의 개방된 성문화 및 작가가 주장하는 '성 논의의 해방'이라는 전체적인 주제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형법 제243조[12]

, 제244조[13]에서 말하는 음란한 문서에 해당된다.



4.2. 연세대학교 학생들의 구명 운동[편집]


마광수를 지지한 연세대 학생들이 구명운동을 벌였는데 "마 교수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가 주한인도대사관의 항의를 받는 일이 있었다. 플래카드를 건 사진이 신문 1면에 실리자 이를 본 인도대사관이 "아직도 우리가 식민지냐"고 항의했고 이에 연세대학교 학생회가 사과했다고 한다.#


4.3. 유죄 선고 이후[편집]


이 사건으로 인해 마광수는 당시 연세대학교 교수직에서 해임되었다가 1998년에 다시 교수직에 복직하였지만 <즐거운 사라>는 아직도 재판이 허용되지 않는 금서[14]이며 마광수는 국문학계에서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아 전공 수업을 하거나 연구에 매진하지 못하고 교양 강의만 하는 교수로 좌천되고 말았다.[15]

이 사건은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이현세 화백의 <천국의 신화>와 함께 '예술과 외설의 경계가 과연 어디까지인가?' 하는 답 없는 논쟁을 사회 전반에 일으키기도 하였다.

훗날 어떤 열성 팬이 마광수의 홈페이지에 <즐거운 사라>를 전부 손으로 쳐서 올렸다가 2007년에 마광수 본인이 약식기소되기도 하였다. '달라진 시대상에 비추어 봐도 음란물이기는 하지만 과거 정식기소했을 때보다는 음란성이 약하다'는 것이 약식기소의 이유였다.# 마광수는 이 사건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즐거운 사라> 때문에 전과가 두 개나 생긴 것이다. 이때 마광수는 항소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이 책 하나 때문에 불거진 두 사건으로 생긴 전과는 마광수가 정년퇴임한 뒤 연금조차 못 받게 만들었고 퇴임한 지 1년 뒤 자살하는 큰 원인이 되었다. 2009년 인터뷰

마 교수는 2016년 강단에서 퇴임하였다. 전과 때문에 연금 수급에 문제가 있어[16] 생활고에 시달리던 와중에 우울증까지 심해져 결국 2017년 9월 5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마광수가 세상을 떠나면서 전 아내측도 이 사건에 대해 더 이상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발언을 하기도 하였다.

마광수는 이 사건에 대해 "10년 정도 지나면 어처구니 없던 해프닝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그 말대로 10년이 지난 2002년과 이후를 기준으로 야만적이었던 그 시절을 상징하는 비웃음거리로 여겨지고 있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즐거운 사라>에서 묘사되는 삶의 태도는 소설 속에서가 아니라 일상의 영역에서 등장해도 별 문제가 안 될 정도로 성적인 개방이 이루어졌지만 마광수를 유죄로 만든 법조항은 아직도 살아 있으며 그 판결도 전원합의체로 변경되지 않았다. #

그리고 <즐거운 사라>는 재출판되지 않고 있다. 재출간되려면 유죄 판결을 재심을 통해 뒤집어야 하는데 마광수 본인이 상술한 '홈페이지 사건' 당시에도 항소를 아예 하지 않았을 정도로 법정 다툼에 지쳐 있었기 때문에 요원한 일이었고 결국 재심하지 않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앞으로도 <즐거운 사라>를 정식 출간물로 보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5. 관련 문서[편집]


  • 괘씸죄[17]
  • 음란물
  • 검열

[1] 후술하겠지만 마광수와 함께 방송 출연정지에 오른 적이 있다. 초대 게스트로 출연한 마광수에게 간통죄에 대해서 먼저 물어봤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악법", "사람이 도덕적인 틀에 얽매여서 진실을 왜곡할 때가 많다. 도덕성보다는 솔직성이 중요하다."라는 등 비판적인 그의 발언에 "맞습니다"라며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이유에서였다.[2] 21세기처럼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고 언론을 통제하기 상대적으로 쉬웠던 시기였기 때문에 묻혔을 뿐 훗날 재발굴된 당시의 성추문들을 보면 지금 기준으로도 혀를 내두를 만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웬만한 부자나 공무원들은 죄다 본부인 이외에 을 거느리고 사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고 86세대라고 불리는 당시의 젊은이들도 이들을 동경하여 권력자가 되면 자신도 수많은 여자들을 거느리고 살 것이라든가 첩이라도 좋으니 부잣집에 들어가고 싶다든가 하는 대사들이 소설이나 드라마 등에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곤 했다. 박정희 정부 시절에 벌어졌던 정인숙 살해사건만 보아도 당시 한국인들이 얼마나 방탕하고 난잡한 성생활을 즐겼는지 알 수 있다.[3] 쌍팔년도를 1988년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서기로 쌍팔이 아니라 단기로 쌍팔이다. 즉 1955년이다. [4] 만약 마광수가 대학 교수가 아니라 스포츠신문이나 잡지에 성인 소설을 연재하던 평범한 소설가였다면 처벌을 받기는커녕 그 이름조차 언론 매체에 언급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의견들도 있다.[5] '범죄사실'의 2번째 줄에 언급된 불교방송에서 김광석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인 '밤의 창가에서'에 출연하여 성적인 발언을 하였다가 출연금지 처분을 받은 일은 1991년이 아닌 1992년에 일어났다.[6] 그런데 정작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 손오공'은 작중 내내 온갖 섹드립이 난무한다.[7] 항소심에서는 재판장이 "이 판결이 불과 10년 후에는 비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판사로서 현재의 법감정에 따라 판결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는 소문이 있으나 이 사건의 항소심 판결문이 공개된 바 없어 저 소문의 진위는 확인하기 어렵다.[8] 국어국문학과는 학과 문서에도 있지만 문과 기초학문의 보루이기 때문에 역사 깊은 학교들은 모두 나름의 역사와 고유의 업적, 학풍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 연세대서울대는 그 중에서도 견원지간인 데다 연대 국문과 내부의 갈등까지 겹치면서 마 교수는 이중고를 겪은 셈이었다. 손봉호는 국문학자도 아닌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소속이었는데도 이 정도 극딜을 해댔다. 특이한 것은 손 교수는 매춘을 막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논리에 의거해 공창제에 찬성했다고 한다.[9] 손 교수는 이후 동덕여자대학교 총장, 초대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낸다.[10] 1990년대부터 마광수는 이문열전두환 정권의 교육정책에 대한 문제점 덕분에 상업적으로 성공했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어쩌면 정곡을 찌른 발언인데 이문열 본인은 전두환의 생일 잔치에도 참가했을 만큼 전두환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대표작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주인공인 엄석대가 바로 전두환에 대한 이문열의 그리움을 나타낸 것이라는 해석은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정설로 통한다.[11] 다만 이 부분은 심재륜 전 대검 중수부장의 발언에 따르면 수사시작은 본인의 의견으로부터 시작했으며 훗날 검찰총장에 오르는 김진태(1952) (당시 특수 2부 소속)검사에 의해 진행되었다고 한다.[12] 음란한 문서, 도화, 필름 기타 물건을 반포, 판매 또는 임대하거나 공연히 전시 또는 상영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13] 제243조의 행위에 공할 목적으로 음란한 물건을 제조, 소지, 수입 또는 수출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14] 시장에 극소수 풀렸던 1992년 초판본만이 수집가들 사이에서 괴랄한 가격으로 거래되는 실정이다.[15] 마광수도 강의 시간에 대놓고 다른 국문과 교수들을 깠다. 다만 필화 사건 이후 해임 및 복직과정에서 본인을 지지하는 교수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본인의 개인주의를 반성하는 시간도 되었다고 한다.[16] 다만 징계를 받아도 50% 정도는 수급을 받은게 있었다.[17] 현직 교수라는 신분이 크게 작용하여 처벌까지 간 대표적인 사건으로 보는 시각이 큰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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