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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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역임 직책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프레디 융베리
(2006~2008)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2008~2016)


안드레아스 그랑크비스트
(2016~2021)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수상 이력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기타 정보







스웨덴의 前 축구 선수


이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Zlatan Ibrahimović
[1]
출생
1981년 10월 3일 (42세)
스웨덴 스코네 주 말뫼
국적[2]
[[스웨덴|

스웨덴
display: none; display: 스웨덴"
행정구
]]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display: none; display: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행정구
]]
|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display: none; display: 크로아티아"
행정구
]]

신체
195cm / 체중 95kg[3]
포지션
스트라이커
주발
오른발 (양발)
유스 클럽
말뫼 BI (1989~1991)
FBK 발칸 (1991~1995)
말뫼 FF (1995~1999)
프로 클럽
말뫼 FF (1999~2001)
AFC 아약스 (2001~2004)
유벤투스 FC (2004~2006)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06~2009)
FC 바르셀로나 (2009~2010)
AC 밀란 (2010~2012)
파리 생제르맹 FC (2012~201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6~201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7~2018)[4]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2018~2019)
AC 밀란 (2020~2023)
국가대표
122경기 62골[5] (스웨덴 / 2001~2023)
통산 득점
573골
SNS
파일:트위터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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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아버지 세피크 이브라히모비치[1]
어머니 주르카 그라비치[2]
배우자 헬레나 셰예르
장남 막시밀리안 이브라히모비치
차남 빈센트 이브라히모비치
등번호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 10번, 21번[3], 11번[4]
AFC 아약스 - 9번
유벤투스 FC - 9번
인테르나치오날레 - 8번, 10번[5]
FC 바르셀로나 - 9번
AC 밀란 - 11번, 21번[6]
파리 생제르맹 FC - 18번[7], 10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9번, 10번[8]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 9번
종교
불명[9][10]
에이전트
라파엘라 피멘타[11]


1. 개요
3. 플레이 스타일
3.1. 플레이 스타일의 변천사
4. 평가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5.3. 통산 기록
6. 어록
7. 즐라탄에 대한 헌사
8. 여담
8.1. 게임에서
9.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스웨덴 국적의 前 축구 선수.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2. 선수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선수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195cm / 95kg이라는 강력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스트라이커로 결정력, 공중볼, 몸싸움에도 강하지만, 볼 키핑, 볼 컨트롤도 준수한 수준이며, 무엇보다 스트라이커로서 플레이메이킹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장신의 선수들은 발기술이 떨어진다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이에 반하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브라히모비치이다.[6] 그래서 큰 키에 비해 공중볼과 피지컬 경합에 적극적이지는 않았고, 발을 주로 사용하여 볼 터치와 아크로바틱한 슈팅으로 득점 기회를 노렸다.

스피드는 젊었을 때는 신체 조건과 무관하게 빠른 편이었다.(03-04 챔피언스 리그 셀타비고 전에서 치달로 수비를 제치고 골을 넣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속도가 줄었다. 대신 2010년 밀란 이적 이후부터 플레이 스타일을 바꿔나갔는데 195cm라는 피지컬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되었고, 젊은 적에는 기피하던 공중볼 경합과 헤더도 적극적으로 한다.[7]

메시와 포지션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팀의 공격에서 맡는 부분은 거의 비슷하다. 플레이 메이킹, 득점 등등 공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즐라탄이 피지컬을 이용한 볼간수로 팀에게 공간을 벌어주는 스타일이라면 메시는 수비진을 돌파해 팀에게 기회를 창출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하면 매우 강력한 프리킥을 빼놓을 수 없다. 프리킥 전담 키커는 아니지만 통산 18골을 집어넣었다.[8]

단점이 있다면, 의외로 거친 압박을 위주로 플레이 하는 팀이나 확실한 상위 클래스팀들과의 경기에서 상당히 부진한다는 것이 있다. 누가 보더라도 확실한 월드클래스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거품설이 도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 본인의 장기 중 하나인 볼 키핑이 이러한 경기에서 별 강점을 드러내지 못한다.[9]


3.1. 플레이 스타일의 변천사[편집]


축구를 본지 얼마 안되었거나 이브라히모비치에 대해 잘 모르면 원래 타겟형 스트라이커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유튜브에서 이브라히모비치 아약스~인테르 시절 동영상을 짧게라도 보면 그것이 전혀 사실이 아님을 바로 알 수 있다. 아약스 시절 카메라맨조차도 속이는 카메라맨 능욕[10] 화려한 드리블에 이은 골은 유명하다. 물론 드리블이야 FC 바르셀로나 이적 후에는 메시, 이니에스타가 있기 때문에 좀 빛이 바래는 감도 있지만 골 결정력도 일품이다. 하지만 드리블이 지나치게 길기도 하고, 폭발적인 스피드는 없다는 약점이 있다. 참고로 자서전에 따르면 원래 어릴 적에는 키가 작았다고 한다. 그래서 전형적인 단신 선수들처럼 발재간 위주의 플레이를 익혔는데 어느 순간 폭풍성장하면서 장신에 테크니션이라는 말도 안되는 선수로 성장한 것이다.

또한 아크로바틱한 골을 넣는 것으로 유명한데, 저 동쪽 어느 나라의 무술을 배웠다고 한다. 그냥 뻥친 게 아닌 실제 태권도 검은띠 유단자라 한다. 어려서부터 태권도를 시작해서 17살에 태권도 검은띠를 땄고, 유소년 시절 거칠 것 없는 성격으로 인해 구단과 불화가 있었을 때에는 진심으로 축구를 그만두고 태권도 선수가 될 생각까지 했다. 2010년에는 이탈리아 태권도 대표팀으로부터 명예 검은띠를 받기도 했다.

파일:20121116000232_1.jpg



195cm의 거한이 자신의 머리 위 볼을 향해 거침없이 다리를 뻗어올리는 유연함과 날렵한 동작을 보고있자면 즐라탄이 축구에 태권도를 접목시켰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태권도가 그의 유니크한 스타일에 영향을 준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이건 이것대로 문제인 게, 헤더 찬스에서 머리 대신 발을 갖다 댄다. 넣으면 멋있기는 한데 안 들어가면 오죽하면 즐라탄은 좀 더 쉽게 골을 넣을 필요가 있다라든가 쉬운 골은 못 넣는데 어려운 골은 천재적으로 넣는다[11] 등의 평가를 받을까. 골을 못 넣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 버릇 때문에 의도치 않은 반칙을 범한 적도 있다. 동영상 즐라탄의 소속팀인 파리 생제르멩과 AS생테리엔과 경기에서 후방에서 넘어오는 공을 보고 처리하려고 발을 들었는데 본의 아니게 공이 아니라 상대 골키퍼를 걷어차 버려서 레드카드를 받고 팀은 리그 첫 패배를 당했으며 레드카드를 받은 즐라탄은 2경기 출장 정지를 당했다.

유벤투스, 인테르 시절 세리에 A에서 뛰면서 화려한 시절을 보냈지만 이 시절에도 자주 까였는데, 그 이유가 바로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부진한 성적을 보였기 때문. 인테르가 번번히 16강에서 탈락하면서 욕을 먹었다. 덕분에 세리에 A 전용, 큰 경기엔 약하다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모 축구잡지에 의하면 이는 약한 팀들이 가득한 리그에서 그냥 경기를 이기는 방법이 '즐라탄에게 시키면 그 놈이 다 알아서 한다'라는 방법이라서 즐라탄이 틀어막힐 수도 있는 챔스 같은 상황에서는 대안 없이 그대로 무너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에 와서는 엘 클라시코 1골, 챔피언스 리그 8강 1경기에서 2골 등을 얻어내면서 큰 경기에 약하다는 징크스는 약간 떼어낸 눈치였으나 4강에서 완벽하게 봉쇄당하며 큰 경기에 약하다는 평을 떼어내지 못했다.

이렇게 바르셀로나 시절과 챔스에서의 부진으로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이 들지만, 아약스 2003-04 시즌 우승을 시작으로 유벤투스에서의 2년(칼초폴리로 취소되긴 했지만), 인테르에서의 3년, 임대로 갔던 AC 밀란에서의 2010-11 시즌까지 모두 리그 우승을 기록했다. 심지어 실패한 시즌으로 앞에서 써내려간 바르셀로나에서도 리그 우승을 기록했다.

2011-12 시즌 이전까지의 즐라탄의 최대 문제점은 자신의 피지컬을 제대로 이용할 줄 모른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발재간 등 아크로바틱한 플레이를 즐겼으나 이는 기복이 심할 수 밖에 없었고, 시즌 중반을 넘어가면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며 항상 지적되던 챔피언스 리그와는 별개로 리그 경기력도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을 보였다.

인테르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리그 MVP급 전반기를 보낸 바르셀로나 시절, '즐라탄의, 즐라탄에 의한, 즐라탄을 위한 공격 전개' 소리를 듣던 밀란에서의 첫 시즌 모두 후반기에 접어들자 급격히 경기력이 하락했고 나이를 먹어가는 만큼 인테르, 바르셀로나, 밀란 식으로 경기력 낙폭이 심해졌다.

그리고 역동성 등이 더 죽으면서 과거와 같은 플레이 스타일을 유지하기 어려워지자 키 190cm를 넘는 축복받은 신체능력을 활용하기 시작한 2011-12 시즌부터는 후반기에도 좋은 플레이가 가능해진 것이다. 과거와 비교해보면 역동성, 순발력 등 운동능력은 확실히 감소했으나 그만큼 자신의 신체능력을 이용한 플레이를 하며 플레이의 질 자체는 오히려 진화한 나이 먹으니 더 잘하는 특이한 케이스다. 진작에 젊었던 시절부터 테크닉에만 집착하지 않고 피지컬을 적절히 활용 했더라면 지금보다도 훨씬 좋은 평가를 받았을 수도 있다.

유나이티드에 이적해 무리뉴와 재회한 후부터는 전처럼 깊게 내려와 플레이메이킹을 하기 보다는 본연의 전방 스트라이커의 역할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다만 그 결과 팀의 공격전개가 잘 되지는 않고 있다.

미국에서 나이를 잊은 실력을 보여준 후 밀란으로 돌아와서는 나이에 맞게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었다. 속도가 느려진 대신 젊을 때보다 좀 더 타겟형 스트라이커의 느낌으로 바뀌었는데 플레이메이킹도 같이 해주느라 꽤 낮은 지역까지 내려오기도 한다. 다만 체력이 떨어져 지속적인 압박을 보여주지는 못하며, 손발이 안 맞아서인지 패스 성공률도 아주 좋지는 못하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마다 골을 넣는데다 팀의 동기부여라는 부분에서 대단한 역할을 해준다.


4. 평가[편집]


파일:zlatan's.jpg

여러 리그와 팀들을 옮겨 다니며 20년 넘게 롱런한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이다. 동시대 스트라이커이자 비교대상인 사무엘 에투, 다비드 비야는 즐라탄보다 먼저 은퇴했지만 즐라탄만은 플레이 스타일을 바꿔가며 2010년대는 물론, 2022년까지 40대의 나이에도 빅클럽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

또한 스웨덴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 중 하나[12]로 평가받으며 8월 12일 기준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 축구선수 5위에 달하는 전세계적 인기를 보유한 스타 플레이어[13]이며 과대평가와 과소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14]

사실 아약스를 거쳐 초기 유벤투스에서의 두 시즌은 즐라탄이라는 선수가 빅리거로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였다. 2004-05 ~ 2005-06 시즌 동안은 이 선수가 과연 어떤 선수인지 조금은 애매한 포지션 정체성을 띄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한창 때의 라울 곤잘레스 같은 세컨탑 스타일로 뛰었지만, 개인 기량에 대한 믿음과 볼 욕심이 다소 지나쳤었다. 그러다보니 볼을 받고 싶어서 그라운드 전 지역을 이리저리 뛰게 되면서 가뜩이나 평범한 체력은 급속히 딸리고, 정작 최전방으로 다비드 트레제게를 지원사격 들어가줘야 할때는 자리에 없는 일이 다반사에,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슛팅 능력으로 초점없이 난사하거나 득점을 놓치는 일도 허다했다.[15][16]

축구팬이라면 다들 널리 알고 있는 칼초폴리의 여파로 유벤투스가 세리에 B로 강등되면서 이적하게 된 인테르에서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세리에 밖으로 알리기 시작한다. 즐라탄의 원더골 모음의 상당수가 인테르에서의 3시즌에 거의 다 몰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선수 개인으로서도 엄청난 성장을 이룩한 시기이며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타이틀도 2008, 2009년에 연속 수상했고, 리그의 킹이자 세리에의 왕 이미지가 애초에 이시기에 거의 굳어져 갔다고 봐도 된다.[17]

다만 승승장구하는 리그와는 달리 이 기간동안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이름값에 미치지 못했다.
  • 2006-07 시즌에는 7경기에서 0골 1도움을 기록하였고, 발렌시아와의 16강에서 무득점에 그치며 팀은 탈락.[18]
  • 2007-08 시즌에는 7경기에서 5골을 기록하며 기록면에서는 훌륭했으나 리버풀과의 16강에서 무득점에 그치며 팀은 탈락.[19]
  • 2008-09 시즌에는 8경기 1골 3도움을 기록하였고, 맨유와의 16강에서 무득점에 그치며 팀은 탈락.[20]

이렇듯 중요 경기에서 기대에 못미치는 활약들이 빅리그 팬들, 즉 빅리그 팬들에게는 실망스런 모습으로 비춰지면서 장장 10년간 이어지는 세리에 평가절하의 시발점이 됐다.[21] 세리에의 킹은 즐라탄이었지만 당시 축구 아이콘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메시, 호날두에 비빌 레벨은 결코 아니었고, 그 바로 밑 단계라고 여겨진 에투-비야-토레스 등과의 경쟁에서도 밀렸다.[22]

국가대표에서도 팀 전력을 감안하더라도 예선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유로에서는 본선에서 UEFA 유로 2008부터 UEFA 유로 2016까지 조별 리그를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하드캐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월드컵은 아예 2010 남아공 월드컵부터 2014 브라질 월드컵까지 본선에 진출하지도 못했다.[23][24]

더불어 축구팬의 세대교체가 자연스럽게 진행된 것도 저평가에 한몫했다. 비교적 부족한 인기로 인해 세리에 시절의 본인이 한창 날리던 실제 플레이를 본 인원은 적은 반면, 하필 또 초인기팀인 바르셀로나의 소속으로 본인의 강점[25]과는 확연히 다른 롤[26]로 뛰게 되자 메시와의 경쟁에서 밀리고 선수로서도 망가지는 모습들을 주로 보여주게 되다 보니, 이 시기에 축구를 접하기 시작한 해외축구 팬들로부터는 되려 '피파 온라인' 및 여타 게임에서의 사기적 성능 때문에 국내에서의 평가가 비정상적으로 오른 선수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는 상황이 되었다. 더군다나 전 소속팀과 재회한 2009-10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이라는 빅게임을 대차게 말아먹었으니 '즐라탄'이라는 선수에 대한 박한 평가가 절정해 달한 시기도 이 때를 전후로 형성이 되었다.

다만 세리에 A로 곧바로 돌아오면서 AC 밀란에서의 두 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낸 덕분에, 바르셀로나 시절의 암흑기[27]를 뒤로하고 직접 그의 플레이를 지켜보지 않은 팬들에게도 그에 대한 평가를 어느정도 후하게 되찾는 요인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물론 밀란의 두 시즌 동안 여전히 본인의 활약상이 미미했던 2010-11 챔스에서는 토트넘에게 16강에서 패하며 탈락했고, 2011-12 시즌에는 조별 리그에서 바르셀로나를 맞아 득점에서도 성공하고 팀도 어느정도는 따라붙었다고 보여지나 토너먼트에서의 리턴매치에서 본인은 무득점에 그치고 결국 패배하면서 챔스 울렁증이라는 꼬리표는 여전하였다. 다만 퍼포먼스 자체만을 놓고 봤을 때는 득점권에서 동료에게 넣어주는 패스의 질, 플레이메이커로서 그라운드 좌우를 자유롭게 캐치할 수 있는 축구 비전, 자신의 좋은 체격을 기반으로 포스트 플레이와 함께 득점 본능에도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인테르, 바르셀로나 시절의 모습과는 또 다른 공격수로서 진화를 보여주었다.

이후 밀란의 심각한 재정상황의 여파로 원치않는 반강제 이적을 통해 옮겨간 PSG에서는 신체능력의 하락으로 인해 플레이 스타일을 간결하게 가져가면서 상대팀에 따라 포쳐 스타일과 경기 전체에 관여하는 스타일로 본인 스스로가 선택지를 가지고 경기에 임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득점력이 폭발적으로 증대하면서 클럽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고, 거기에 평소 본인의 터프한 입담과 언행, 경기장에서의 다혈질적이면서도 카리스마적인 본인의 성향이 경기력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팬들에게 어필하면서 그간 다소 실추되었던 "슈퍼스타"로서의 이미지와 평가를 회복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이러한 즐라탄의 "슈퍼스타 이미지"는 결국 PSG라는 클럽의 브랜드 이미지를 처음 세계구급으로 격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할 요소임이 분명하다.

파리에서의 절대자적인 모습을 보였던 시즌들을 뒤로하고, 2016-17 주제 무리뉴와 함께 입성한 맨유에서는 스스로를 사자로 비유하기 시작하면서 득점이나 도움 등의 개인 타이틀보다는 새로운 리그에 대한 적응과 축구의 승리 자체에 집중하는 도전자의 이미지를 가졌다. 34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몸관리 능력을 바탕으로 팀이 휘청거리는 가운데에서 경기 템포를 잡아먹는다는 비판을 들어가면서도 꾸역꾸역 득점만큼은 책임을 져주면서 맨유의 순위 경쟁과 유로파리그 우승에 일조를 한다.[28]

미국 이적 이후에는 너무도 잘 알려져있다시피 LA 갤럭시에서 리그를 접수하고 있는 중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인터 밀란, CA 보카 주니어스 등 여러 클럽들과의 이적설이 제기되었으나 2019년 겨울 이적시장 이후 AC 밀란으로 이적이 확정되었다. 8년 만에 AC 밀란으로 복귀한 즐라탄의 세리에 활약이 기대되는 중이다.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역시 즐라탄은 즐라탄이었다. 즐라탄이 AC 밀란으로 복귀한 이후 공격진, 아니 팀 전체가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즐라탄 자신이 아직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즐라탄은 40세를 넘었다.[29] 불혹의 나이에도 현역 생활을 이어간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존경받을 일인데, 세계 축구 4대 리그 중 하나인 세리에 A에서 아직도 팀을 이끌어나가는 에이스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향후 평가는 더 올라갈 것이다. 20-21 시즌 AC 밀란이 8년 만에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할 수 있게 한 선수를 뽑으라면 단연 즐라탄일 것이다.

그리고 21-22 시즌 비록 많은 경기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기어코 밀란에 10년만의 스쿠데토를 선물하며 밀란을 원래 위치로 돌려놓겠다던 약속을 지켰다. 밀란 복귀 이후에는 경기장 내에서의 퍼포먼스 외에도 라커룸에서의 영향력 등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재조명받고 있다. 수년 전까지 노인정 소리를 듣던 밀란이지만 수년간의 암흑기 이후로는 오히려 영건들이 주축이 된 젊은 팀으로 변모했는데, 그런 팀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즐라탄이 최고참으로서 중심을 잡아주며 즐라탄을 중심으로 뭉쳐서 팀의 멘탈리티 자체가 강해졌고 이것이 이전에는 잘 나가다가도 고꾸라지던 팀이 상승세를 탄 비결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선수로서 매우 긴 활동 시기로 인해 유럽 현지에서도 한세대 뒤의 당대 최고 스트라이커들인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루이스 수아레스, 카림 벤제마와의 활동 시기가 겹치면서 저 3명과의 비교 선상에도 꾸준히 거론이 되고 있다.#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 유벤투스 FC (2004~2006)
    • 세리에 A: 2004-05, 2005-06[30]







5.2. 개인 수상[편집]


  • FIFPro 월드 XI: 2013
  • UEFA 올해의 팀: 2007, 2009, 2013, 2014
  • UEFA 유로 토너먼트의 팀: 2012
  • UEFA 유로 토너먼트의 골: 2004, 2012
  • UEFA 챔피언스 리그 도움왕: 2012-13
  • UEFA 챔피언스 리그 시즌의 스쿼드: 2013-14
  • UEFA 유로파 리그 시즌의 스쿼드: 2016-17
  •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2007-08, 2008-09, 2010-11
  • 세리에 A 올해의 외국인 선수[31]: 2004-05, 2007-08, 2008-09
  • 세리에 A 득점왕: 2008-09, 2011-12
  • 세리에 A 올해의 팀: 2010-11, 2011-12
  • 세리에 A 이달의 선수: 2007년 9월, 2008년 12월, 2012년 1월, 2020년 10월
  • 리그 1 올해의 선수: 2012-13, 2013-14, 2015-16
  • 리그 1 득점왕: 2012-13, 2013-14, 2015-16
  • 리그 1 올해의 외국인 선수: 2012-13, 2013-14, 2014-15
  • 리그 1 이달의 선수: 2012년 9월, 2014년 1월ㆍ2월ㆍ3월, 2015년 11월
  • 리그 1 올해의 골: 2014
  • UNFP 리그 1 올해의 팀: 2012-13, 2013-14, 2014-15, 2015-16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2016년 12월
  • PFA 팬 선정 이달의 선수: 2016년 12월
  • MLS 올해의 신인상: 2018
  • MLS 베스트 XI: 2018, 2019
  • MLS 올스타: 2018, 2019
  • 베스트 MLS 플레이어 ESPY 어워드: 2019
  • MLS 올해의 골: 2018
  • 쿠프 드 프랑스 득점왕: 2014-15, 2015-16
  • 쿠프 드 라 리그 득점왕: 2014-15
  • EFL컵 득점왕: 2016-17
  • FIFA 푸스카스상: 2013
  • ESM 올해의 팀: 2006-07, 2007-08, 2012-13, 2013-14
  • 스웨덴 올해의 축구 선수: 2005,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5, 2016
  • 스웨덴 올해의 영플레이어: 2001
  • AC 밀란 명예의 전당: 2015
  • 파리 생제르맹 명예의 전당: 2017
  • 파리 생제르맹 이달의 선수: 2012년 8월ㆍ9월, 2013년 11월, 2014년 1월, 2015년 2월ㆍ11월ㆍ12월, 2016년 1월ㆍ2월
  • 유벤투스 올해의 선수: 2004-05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달의 선수: 2016년 12월, 2017년 2월
  • LA 갤럭시 올해의 선수: 2018, 2019
  • LA 갤럭시 골든부트: 2018, 2019
  • LA 갤럭시 올해의 골: 2018, 2019
  • 에투알도르[32]: 2014, 2016


5.3. 통산 기록[편집]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1999
말뫼 FF
알스베스칸
6
1
0
0
0
0
-
-
-
2000
말뫼 FF
알스베스칸
26
12
0
0
0
0
-
-
-
2001
말뫼 FF
알스베스칸
8
3
0
0
0
0
-
-
-
2001/02
AFC 아약스
에레디비시
24
6
4
3
1
1
6
2
0
2002/03
AFC 아약스
에레디비시
25
13
1
3
3
0
13
5
1
2003/04
AFC 아약스
에레디비시
22
13
7
1
0
0
8
2
0
2004/05
AFC 아약스
에레디비시
3
3
1
-
-
-
-
-
-
2004/05
유벤투스
세리에 A
35
16
0
0
0
0
10
0
3
2005/06
유벤투스
세리에 A
35
7
1
2
0
0
9
3
1
2006/07
인테르나치오날레
세리에 A
27
15
5
2
1
0
7
0
2
2007/08
인테르나치오날레
세리에 A
26
17
9
0
0
0
7
5
0
2008/09
인테르나치오날레
세리에 A
35
25
8
3
3
0
8
1
3
2009/10
바르셀로나
라리가
29
16
7
2
1
0
10
4
2
2010/11
AC 밀란
세리에 A
29
14
11
4
3
0
8
4
0
2011/12
AC 밀란
세리에 A
32
28
9
3
1
0
8
5
5
2012/13
파리 생제르맹
리그 1
34
30
8
3
2
1
9
3
7
2013/14
파리 생제르맹
리그 1
33
26
11
4
5
1
8
10
0
2014/15
파리 생제르맹
리그 1
24
19
6
3
4
0
6
2
0
2015/16
파리 생제르맹
리그 1
31
38
13
6
7
0
10
5
3
2016/1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리그
28
17
4
1
1
0
11
5
1
2017/1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리그
5
0
0
0
0
0
0
0
0
2018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메이저리그 사커
27
22
6
0
0
0
0
0
0
2019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메이저리그 사커
31
31
8
0
0
0
0
0
0
2019/20
AC 밀란
세리에 A
18
10
5
2
1
0
0
0
0
2020/21
AC 밀란
세리에 A
19
15
2
2
1
0
1
0
0
  •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리그 최고 기록
  • 마지막 수정일: 2020년 8월 3일


6. 어록[편집]


실력 못지 않게 경기장 밖에서 남긴 말들도 걸작이다. 다른 선수가 이런 말을 했다면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겠지만 실력을 갖춘 즐라탄이기에 인정받는 어록들. 3인칭화 화법을 자주 쓰는지라 더욱 즐라탄이라는 이름이 돋보인다. 물론 몇몇 어록들은 즐라탄의 BADASS 이미지를 위해서 과장된 것들도 있고, 즐라탄은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는데 언론에서 날조한 것들도 있다.

I came like a king, left like a legend.[33]

나는 왕으로 이 곳에 왔고, 전설이 되어 떠난다.


DARE TO ZLATAN(어디 감히 즐라탄에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생일에 선물로 보낸 속옷에 적혀 있었던 문구.[34]

[35]


I AM ZLATAN.(나는 즐라탄이다)[36]


내가 바로 세계 최고의 선수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그 사람은 끝난 것이다.


즐라탄은 오디션 따윈 보지 않는다.

17세의 나이로 아스날 입단이 확실시되던 때 아르센 벵거 감독의 입단 트라이얼을 거부하며[37]

[38]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즐라탄을 가졌기 때문이다.

여자친구에게 약혼 선물로 무엇을 주었냐는 기자의 질문에.[39]


내가 얼마나 완벽한지 생각하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보통 수준의 선수에게는 보통 수준의 클럽이 더 어울린다. 그에게는 레알보다 바르사가 더 낫다.

자신과 비교되는 건 즐라탄에게 영광이라는 마리오 발로텔리의 인터뷰에 대한 화답.[40]


우리에겐 나와 드워프면 충분하다. 철학가는 필요 없다.

바르사 시절, 자신을 왕따시켰던 과르디올라를 디스함.


그들은 페라리를 사놓고 피아트처럼 몰았다.

바르셀로나에서의 부진에 대해 묻는 기자에게.[41]


신을 믿으세요? ('그렇다'고 하자) 좋아요. 그렇다면 나를 믿는 거네요. 안심해도 돼요.

12-13 시즌 막바지 당시 PSG 감독 카를로 안첼로티와의 대화에서


카레브축구공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나는 오렌지로도 할 수 있다.

욘 카레브가 자신의 실력에 대해 디스하자 곧바로 맞받아치며[42]


파리에서 집을 구하는 중이다. 마땅한 곳이 없다면, 그냥 호텔을 사버릴 것이다.

파리 생제르맹 이적 직후 근황을 묻는 기자에게


사실 난 비행기를 질렀어. 그게 훨씬 더 빠르니까.

페라리를 구입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만약 내일 맨유가 첼시를 이긴다면, 나는 축구를 은퇴하겠다.

13-14 시즌 맨유의 부진에 첼시와의 일전을 앞두고 곧바로 디스.[43]


클롭, 난 언제 영입할 거야? ("이 녀석아, 너 영입하려면 우리 선수단 다 팔아치워야 돼!") 괜찮아, 자유계약이 있잖아! (옆의 인터뷰하던 직원에게) 이거 들었지? ㅋㅋ

나는 도르트문트를 자유계약으로 갈 거야!ㅋㅋ

파리는 아직 이 대화를 몰라 ㅋㅋ

FIFA 푸스카스상을 받으러 온 2013 FIFA 발롱도르 시상식장에서, 인터뷰 중 뒤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위르겐 클롭이 지나가자 인터뷰를 끊고 곧바로 말을 걸고 클롭 감독과 대화한 내용[44]


이봐, 트위터. 즐라탄은 140자 이상이 필요해. 즐라탄을 위해 규칙을 바꿔 줘.

2014년 3월 9일 즐라탄이 트위터에 올린 글[45]


(기자: "카바니에게 패스를 안 한다는 말이 있다") 당신이 나보다 축구를 더 잘 안다는 얘기인가?

기자와의 인터뷰 중[46]


진짜 최악이었던 게 뭔지 알아? 내가 레드 카드를 받고 첼시 선수들이 몰려들었을 때야. 꼭 내 주위에 11명의 아기들이 있는 것 같더군![47]


덴마크는 나를 은퇴시키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오늘 내가 그들의 국가대표 팀 전체를 리타이어시켰다.

덴마크를 상대로 UEFA 유로 2016 플레이오프에서 2골을 뽑아낸 후 한 말.[48]


일어나봐! 나 방금 악몽을 꿨어! 꿈에서 크리스티아누가 나보다 좋은 선수였어!

유벤투스 시절 아드리안 무투에게 한 말.[49]


나한테 패스 좀 잘 해봐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어.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거고.")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뛰어! 그러면 잘 풀릴 테니깐.

3월 13일 리그 30라운드 ES 트루와와의 경기에서 그레고리 판데르빌과 한 말.[50]


기자: 당신이 현재 영국 내에서 모든 대회를 통틀어 가장 많은 골을 넣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즐라탄: 별로 놀랍지 않습니다. 예상했으니까요.

2016-17 풋볼 리그컵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나의 회복에 대해 말하자면, 난 서두르지 않았다. 빠른 회복의 비결은 오직 열심히 했다는 것뿐이다. 내가 해온 훈련 덕분에 끝난 것이다. 매일 5~6시간 동안 운동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포기는 나의 옵션 안에 없다.

2016-17 시즌 막판에 입은 끔찍한 부상 이후 복귀전인 2017-18 시즌 프리미어리그 12라운드 뉴캐슬 전이 끝난 후 인터뷰에서.[51]


사자는 인간처럼 회복하지 않는다.

맨유 시절 1년 재활이 예상된 십자인대 파열 부상에서 7개월만에 복귀한 후 인터뷰에서


팬들이 '우리는 즐라탄을 원한다'고 외쳤다. 그래서 난 팬들에게 즐라탄을 선물했다.

미국 메이저 리그 사커(MLS)의 LA 갤럭시로 이적 후 교체 투입된 첫 데뷔전에서 동점골과 역전골을 성공시켜 팀을 승리로 이끈 후 인터뷰에서.


기자: 카를로스 벨라는 지금까지 19골 12도움을 기록하고 있고, 그의 팀은 MLS 1위를 달리는 중이다. 그런데도 자신이 MLS 최고의 선수라 생각하는가?

즐라탄: 큰 차이로 내가 우위다. 벨라가 그의 전성기를 보내는 중이라면...지금 몇 살인가?

기자: 29살이다.

즐라탄: 벨라는 29살이고 현재 그의 전성기를 MLS에서 보내고 있다. 내가 29살때는 어디에서 뛰고 있었는가?

기자: 당신은 유럽에 있었다.

즐라탄: 그래, 그건 큰 차이다.

LA 갤럭시 이적 이후 ESPN과의 인터뷰에서.[52]


팬들이 즐라탄을 원해서 즐라탄을 보여줬다. 이제 가서 야구나 봐라.

LA 갤럭시를 떠나며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에 남긴 글.[53]


바이러스가 즐라탄에게 오지 않으면, 즐라탄이 바이러스에게 가겠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로 전세계가 대혼란에 빠지자 인스타그램에 올린 비디오에서 한 말.[54]

이 발언과 함께 즐라탄은 코로나 퇴치를 위해 한화 약 2억원을 기부했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가장 완벽한 스트라이커다. 아직 다른 아브라카다브라를 보지 못했다. 마이크 타이슨처럼 힘세고 무하마드 알리처럼 춤추며 이소룡처럼 빠른 사람? 글쎄, 그건 나 말고는 없다.

2020년 7월 이탈리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자신의 후계자를 묻자 대답한 말.


어제는 음성이었지만 오늘은 양성이다. 하지만 증상 따윈 없다. 감히 나한테 도전할 용기가 생기다니, 좋은 생각은 아닌걸?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선수 정기검진에서 즐라탄도 양성 판정을 받자 트위터에 해당 글을 올렸다. 즐라탄식으로 유쾌하게 표현하여 팬들을 안심시켰다.


이 동물은 길들여질 수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 완치 판정을 받고 혼자 훈련하는 동영상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써놓은 말(...).


공기가 맑군.

코로나 바이러스 완치 판정을 받고 팀 훈련에 복귀한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써놓은 말.


시간이 지나면서 더 완벽해짐을 느끼고 있다. 내가 20세에서 30세 사이의 나이였다면 아무도 나를 막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지금도 그들은 나를 막지 못하지만.

코로나 완치 후 복귀전 (밀란 더비) 에서 2골을 넣은 후 트위터에 올린 말.


밀라노는 왕을 가진 적이 없다. 밀라노는 신을 가졌다.

2020년 10월 밀란 더비 승리 후 밀라노의 새로운 왕이 나타났다는 루카쿠의 트윗에 답하며,


바이러스는 나에게 도전했고, 나는 승리했다. 하지만 당신들은 즐라탄이 아니며, 바이러스에 도전하지 마라. 머리를 써라. 항상 거리를 유지하고, 규칙을 지켜라. (마스크를 쓰면서)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코로나 완치 후 본인 인스타그램에 사회적 거리두기 및 마스크 착용을 지지하며 업로드한 동영상의 대사.[55]


가 프로에서 지금까지 뛴 경기 수보다 내가 넣은 골의 수가 더 많다.[56]

2021년 1월 23일 AC 밀란 소속으로 아탈란타에게 3:0으로 패한 후 공격수 두반 사파타페널티킥 없이는 못 이기느냐고 조롱하자.


나는 경기장에서 내가 맡은 일을 할 뿐이다. 경기 전에 계획을 하지는 않는다. 모든 플레이는 충동적이다. 내 안에는 닌자가 잠들어 있고 39세인 지금도 여러 동작을 할 수 있다.

2021년 3월 5년만의 국가대표 복귀전이 끝난 후 인터뷰에서.


나는 너희 모두가 자랑스러워, 이제 내 부탁을 들어줄래? 챔피언처럼 즐겨, 이젠 밀라노만이 AC 밀란의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가 AC 밀란의 것이니까!![57]

2021-22 시즌 11년만에 AC 밀란이 우승한 이후 라커룸에서 팀원들에게 연설하며[58]


그런 질문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너말고는 다 내가 누군지 알고 있으니까 즐라탄을 아는 사람에게 물어봐.

즐라탄이 누군지 설명해달라는 인터뷰에서.



7. 즐라탄에 대한 헌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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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격수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난 즐라탄이 메시, 호날두와 같은 수준에 있다고 본다. 그는 가는 곳마다 우승을 차지했다.

로베르토 만치니


즐라탄은 스웨덴에서 최강이었다. 그는 최고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알고 있고 그에게 관심 있는 사람들도 많다.

헨릭 라르손


세상에 엄청난 골이에요! 축구장에서 본 가장 대단한 골입니다! 엄청납니다! 엄청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세상에! 월드클래스예요!

Oh my god insane goal! I just saw! The most insane goal I have ever seen on a football pitch! Incredible! Incredible Zlatan Ibrahimovic! World! World class!

2012년 11월 14일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즐라탄이 환상적인 오버헤드킥으로 쐐기골을 장식한 후 중계진의 말. 즐라탄은 이골로 FIFA 푸스카스상을 수상한다.


나는 이브라히모비치가 세계 최고의 공격수라고 생각한다. PSG에서 그의 등번호는 10번이지만 9번처럼 플레이한다. 나는 작년에 파리를 방문했었고 즐라탄이 뛰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 즐라탄의 움직임은 놀라웠다. 그는 정말 정말 좋은 선수이다. 세계 최고의 공격수다.

호나우두


이브라히모비치는 수준 높은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한명이다. 간단하게 말해 그는 최고다.

살바토레 시리구


즐라탄은 천재다. 완벽하다. 몸싸움이 강하고 공중볼도 잘 따낸다. 공간을 창출할 줄 아는 선수다. 미래에서 온 축구선수라고 생각한다.

파트리크 비에라


즐라탄은 가는 곳마다 우승을 경험했다. 그는 항상 우승하는 남자다.

웨인 루니


35세 나이에 즐라탄이 지닌 동기는 믿기 힘들 정도다. 그 스스로 계속 맞춰나가고 있다고 본다. 프로페셔널한 인물임은 물론, 득점력 역시 굉장하다.

네마냐 비디치


이브라히모비치의 체격과 열정, 경기에 대한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함께 뛰어본 선수 중에서 여전히 최고의 선수 중 하나다.

데이비드 베컴


나는 이브라히모비치의 환상적인 플레이를 지켜봤다. 나는 그가 인테르에서 성공시대를 열어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쿠


모든 기록은 깨질 수밖에 없네. 나는 도미니크 로슈토의 기록을 넘어설수 있는 기회를 잡았었고, 언젠간 다른 선수가 나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네. 세계 최고 선수 중 하나인 자네가 나를 뛰어넘어 정말 기쁘네...(중략)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이미 내 국가대표 최다 득점 기록을 뛰어 넘었고, 오늘은 자네가 PSG 기록을 넘어섰지.

파울레타


나는 인터 밀란에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라는 세계 최고의 선수를 발견 했다.

주제 무리뉴


나는 이브라히모비치와 함께 뛰어봤었다. 나와 그는 훌륭한 친구 사이다. 그는 프로 정신이 대단하지만, 유머 감각도 있다. 그러나 경기장의 이브라히모비치는 괴물이다. 그는 경기장 안팎으로 완벽한 팀동료였다. 이브라히모비치에 대해서는 나쁘게 말할게 아무것도 없다. 나는 그의 맨유, 그리고 프리미어 리그에서 성공을 확신한다.

티에리 앙리


그는 좋은 영입이 될 것이다. 지난 시즌 PSG에서 50골을 넣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에게는 에이징 커브가 없다.

앨런 시어러


지금 맨유에게 가장 필요한 선수는 즐라탄이다. 그는 전성기 때 로빈 반 페르시 역할 이상을 해낼 수 있는 인물이다.

폴 스콜스


즐라탄은 즐라탄이다. 파리에서 그 어떤 선수도 즐라탄을 대체 할 수 없다.

레뱅 퀴르자와


즐라탄은 지금 최고의 공격수로 평가 받는 바르셀로나의 루이스 수아레스, 네이마르와 비교 할 수 있다. 즐라탄과 2년간 함께 뛰어본 결과, 그는 진정한 프로다. 스스로 훌륭한 동기 부여를 갖고 플레이 한다.

잔루카 잠브로타


이브라히모비치는 내가 불멸의, 불사의 등의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선수다.

왈테르 마짜리


이브라히모비치는 팀에 중요한 영향력을 끼치는 선수다. 나 뿐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그를 훌륭한 선수라고 생각 할 것이다. 이브라히모비치는 주변 동료들의 실력까지 향상 시킨다. 대체가 불가능한 선수다. 이브라히모비치가 그립다.

마르코 베라티


맨유에는 이브라히모비치가 있다. 호날두, 메시가 한다면 그도 가능하다. 30대 중반의 끝자락이나, 여전히 자신의 방식으로 뛰며 골을 넣는다. 앞으로 10년은 더 최고 수준일 것이다.

폴 포그바


2017년, 오랜 통치 후 나는 마침내 언론인들에게 받은 가장 공격적인 선수라는 타이틀을 포기했다. 즐라탄은 나의 타고난 후계자로, 나의 유산을 이어받을 것이다.

에릭 칸토나


그는 맨유의 진정한 리더였다. 그를 마지막으로 맨유의 리더는 없다. 이때에도 선수들이 오만하고, 개인적인 성향을 가졌지만, 성적이 좋았던 이유는 즐라탄이 그 기강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맨유의 젊은 선수들은 그를 우러러보았고, 현재까지도 즐라탄을 아주 그리워하고 있다

조나단 존슨


즐라탄은 그냥 챔피언이 아니다. 그는 많은 재능을 갖고 있고, 프로페셔널 처럼 살고 숨쉬고 행동한다. 우리 처럼 젊은 선수가 많은 팀은 그 처럼 경험이 많은 선수를 통해 좀더 성숙해진다.

즐라탄과 반 바스텐은 챔피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선수들이다. 우열을 가리긴 어렵다. 반 바스텐은 다른 선수들보다 더 많은 장점을 가졌던 선수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최고의 순간에서 은퇴를 했다. 즐라탄도 지금까지 해온 업적과 지금의 기량을 보면 의심할 여지없이 반 바스텐의 수준에 올랐다.

파올로 말디니


어렸을 때 수많은 축구 선수가 내 우상이었다. 만약 2명을 뽑으라면 호날두와 이브라히모비치다.

엘링 홀란드


38세의 나이에도, 그가 이러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건 내 입장에서는 보통 일과 다름 없다. 이브라히모비치는 훈련을 많이 소화한다. 우리가 맨유에 있을 때 그는 내게 늘 많은 조언을 해줬다. 그리고 그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함께 좀더 높은 곳에 있는 선수다.

로멜루 루카쿠


즐라탄이 미국으로 이적했을 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는 줄 알았다. 그가 이탈리아로 돌아왔지만 나는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다시 매주 일요일마다 골을 넣고 있다. 그는 호날두처럼 불멸의 인물이다. 좋은 선수라면 계속 경기에 나서는 건 쉽지만 경기에서마다 골을 넣는 건 쉽지 않다.

카를로 안첼로티


즐라탄은 듀오를 위한 파트너가 필요없다. 즐라탄은 그 자체만으로 이미 듀오다.

2020년 12월 프로축구통계매체 스쿼카에서 최고의 듀오를 뽑을 때 순위권에 즐라탄을 선정하며.


나는 즐라탄이 G.O.A.T ( Greatest of All Time )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이케르 카시야스


내게 그는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명.

안토니오 콘테


즐라탄은 환상적이고 감각적인 능력을 가진 선수다. 중요한건 나이가 아니라 그가 여전히 경기를 뛰고 싶어하고 밀란을 위대하게 만들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카푸


그는 우리의 리더이다.

테오 에르난데스


세계 최고의 선수인 그와 함께 뛴다는 건 명예로인 일이다.

디에고 밀리토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믿을 수 없는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안드리 셰브첸코


이브라히모비치는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선수다.

앙헬 디 마리아


우리는 오랜 기간동안 그와 같은 골잡이를 프랑스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는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 같았습니다.

장피에르 파팽



8. 여담[편집]


  • 호날두와 메시가 탈세를 저지른 것과는 대조적으로 즐라탄은 성실한 모범 납세자로 유명하다.
난 연봉의 75%를 세금으로 내는데 올랑드 대통령은 한 게 뭐야? 내가 프랑스 대통령보다 낫다.

잡지 '르 몽드'와의 인터뷰 중
와이네스에게 내가 할 말은 단 한 가지다. 아 회네스였나? 아무튼, 나는 그를 내 세금 상담역으로 두고 싶은 마음이 없다.

탈세로 징역형을 받은 회네스 전 바이에른 뮌헨 회장에게#

  • 맨유로 오는 날, 즐라탄 짐에서 태권도 가방이 발견되었다. 즐라탄의 자서전을 보면 10대 초중반 축구가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하키 선수로 전향하려고 했으나 장비가 비싸서 포기했고 그 이후에는 태권도가 더 쿨하다고 태권도 선수를 하려고도 했다.[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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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벤투스에서 첫 세리에 A 우승컵을 차지한 이후, 너무나 기뻐서 팀 동료들과 술파티를 벌이며 놀다가 깨어나 보니 집의 욕조 안이었다는 썰을 자서전에서 풀었다. 다비드 트레제게가 계속 술을 따라줬다고. 여담으로 그 우승은 칼초폴리 사건으로 인해 박탈당했다.

  • AC 밀란 시절에는 엄청난 떡대를 가진 미국의 수비수 오구치 오니우와 시비가 붙어서 싸운 적도 있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갈비뼈에 금이 갔다고 한다.

  • 워낙 리그 및 팀을 옮겨다닌 터라 진기한 기록이 있는데, 챔피언스 리그 데뷔전, 세리에 A 데뷔전, 라리가 데뷔전, 리그앙 데뷔전, EPL 데뷔전, MLS 데뷔전에서 모두 골을 득점한 바 있다. 이 정도로 리그를 옮겨다니는 것도 드문 일인데다가, 옮기는 리그에서 족족 데뷔전 득점을 했다는 점에서 즐라탄의 클래스를 엿볼 수 있는 진기록이라 할 수 있다.

  • 득점에 관한 기록을 한 가지 더 보유하고 있는데, 로케 산타 크루즈, 엠레 벨로조글루, 이동국과 함께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에 걸쳐서 모두 골을 기록한 지구상 단 네 명의 선수 중 한 명이다. 이는 성실한 자기관리만으로는 부족하며 타고난 체력과 프로에서 살아남는 꾸준한 실력이 같이 뒷받침되어야만 달성할 수 있는 대 기록이다. 즐라탄은 1990년대 스웨덴 리그에서 첫 득점을 기록한 이후 2000년대 세리에 A와 라리가에서 세계 최고의 공격수가 되었고, 2010년대 후반까지 바르셀로나, PSG, 맨유에서 모두 제 몫을 해주었으며 2020년대 AC밀란으로 복귀해 40대에 팀의 에이스 공격수로 활약하는 회춘을 하며 팀을 하드캐리하고 있다. 기록의 범주를 조금 더 넓히면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에 모두 골 맛을 본 핀란드의 전설 야리 리트마넨도 이 기록에 포함될 수 있다. 하나같이 자국 축구의 전설들만 보유한 기록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런식으로 연도를 끊는 방식은 사실상 1990년대 후반에 데뷔한 선수들만 가능하고 수비수는 기록하는게 힘든것이지만 일단 20년 넘게 활약하는 선수 자체가 매우 적은것을 생각하면 일단 박수 받을 만한 기록임은 틀림없다.

  • 위의 기록에서 보듯이 지금까지 클럽에서 15시즌을 보냈는데 13번이나 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게다가 13번의 모든 리그 우승에서 주역이 되었다. 즐라탄이 없어도 리그를 우승할 만한 팀은 칼치오폴리 이전의 카펠로의 유벤투스[60], 한 시즌만 보냈던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우승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전력을 가졌거나 즐라탄이 우승 전력 구축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한 경우였다.

  • 단점 또한 분명한 선수다. 팀에 도움이 되고 팀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려줄 수 있는 특급 선수임에는 확실하나, 경기에 나오지 못하는 경우나 팀의 공격이 제대로 풀리지 않고 말려버린 상황에 있어서 이런 경우, 해당 경기를 대차게 말아먹는 경우가 많다. 이는 즐라탄이 공격 템포, 포스트 플레이, 플레이 메이킹 등 공격 전개와 마무리를 전부 수행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 리오넬 메시와 역할이 비슷하긴 하나, 메시가 드리블, 골 결정력에 특화되어 있다면, 즐라탄은 수비진 붕괴, 포스트 플레이, 피지컬 플레이에 더 특화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증거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티아고 실바가 이적해버린 AC 밀란은 그야말로 몰락이 무엇인지를 그대로 증명하며 열심히 박살나는 중이다. 즐라탄 하나 빠져서 공격진은 그야말로 막장이 되었다. 반면, PSG는 첫 시즌부터 즐라탄의 대활약을 바탕으로 리그를 씹어먹어버렸고 13/14 시즌부터는 스타일 변화에 성공한 즐라탄을 바탕으로 국제 무대에서건 리그에서건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며 빅클럽으로 거듭났다. 즐라탄이 떠난 현재도 그간 보여준 자국 리그와 유럽 무대에서의 강력함에 힘입어 네이마르, 킬리안 음바페 같은 슈퍼스타들을 영입하며 몸을 불리고 있으니 PSG에 즐라탄이 끼친 영향은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 즐라탄의 어린 시절을 말할 것 같으면 한마디로 개판이었다. 자서전 ‘나는 즐라탄이다’에 따르면 스웨덴의 외국계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빈민촌에서 꽤나 불우하게 자랐다고 한다. 뭐 빈민가에서 자란 축구선수가 한 두명이겠냐만은, 가난하게 자랐어도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부모님 및 가족이 항상 큰 힘이 되었다고 말하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네이마르와 달리 즐라탄은 좋지 못한 가정환경 탓에 지금의 공격적이고 제멋대로인 성격이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자서전에 언급된 내용만 봐도 부모님은 국적을 얻기 위해 위장결혼을 했다가 즐라탄이 두 살 때 이혼했으며 그 이후에도 가정불화가 심했다고 한다. 이복 형제, 자매들이 사고 치고 다니고 본인도 도둑질을 일삼는 등 여러모로 복잡한 집안이었다고 한다. 아주 어린 시절, 어린이집 지붕 위에서 떨어졌는데 울면서 어머니에게 달려간 즐라탄에게 날아온 것은 어머니의 귀싸대기였다고 한다. 다만 즐라탄이 조금 자라고 나선 아버지와 함께 지냈으며, 즐라탄에게 축구선수의 꿈을 심어준 것도 아버지였다. 이렇듯 불우한 가정사를 지닌 탓에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하고 손가락질 받은 기억이 있어서 현재도 무시당하거나 별 이유없이 손가락질 당하는 것을 매우 혐오한다고 한다. 즐라탄의 초기 시절인 말뫼-아약스 시절 희귀영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을 보면 즐라탄의 이러한 모습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데 여기서 즐라탄은 평소에 사람들이 즐라탄에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는 다소 다른 모습으로 보여진다. 여기서 그는 어린시절의 영향으로 예민하고 복잡한 내면을 가지고 있고 다소 내성적이고 외로운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탈리아에 와서도 헬레나와 같이 지내기전에는 언제나 혼자 다녔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저녁은 항상 이케아 내에 있는 식당에서 홀로 밥을 먹었다고 한다.

  • 그래도 처음 프로선수가 됐을 때는 여느 사람처럼 설레어하며 고참 선수들이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이 제2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며 지냈던 말뫼 구단의 하세 보리단장에게 이용[61]을 당한 이후, 그리고 네덜란드 시절을 통해 완전히 현재의 성격이 됐다. 그리고 유벤투스에서 다시 그런 마음이 들었으나 그때 감독이었던 파비오 카펠로 감독에게 지도받으며 거침없는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 이 남자,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호나우두팬이다. 자신의 방에 호나우두의 벽지를 붙여놓고 잡지를 읽으며 사진을 찍는 등등의 모습을 보아 잘 알 수 있는 사실. 그 이유에서인지 즐라탄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크리스티아누'라고 부른다. 즐라탄에게 RONALDO는 오직 호나우두 한 명이기에. 호나우두가 밀란에서 뛸 시절, 돈신님을 그윽한 눈길로 쳐다보는데, 거기에 눈맞은 돈신님은 머쓱하고 뻘쭘해서 다른 곳을 쳐다보더라. 즐라탄은 훗날 우상인 호나우두와 한 피치에서 경기를 한다는 사실이 너무 감격스러워서 당시에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도 기억이 안난다고 회고했다. 호돈신을 바라보는 매의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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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혹자는 인테르에서 바르사 간게 호돈신의 경력을 따라가기 위해서다라는 우스갯소리도 하고 있는데, 진짜 같아서가 문제다.

  • 브라질 출신의 축구선수 막스웰과 아약스, 인테르, 바르셀로나, 파리 생제르망에서 함께 뛰어 선수생활 대부분을 함께했다.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두 선수는 매우 가까운 사이로 서로 영혼으로 이어져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실제로도 호텔 한 방 쓰는 사이라고 한다. 방에 함께 있을 때는 영화를 보며 껴안고 있기도 한다. 시작은 아약스로 올 때 같이 오면서 서로 안면을 트게 되었는데, 계약 문제로 돈에 쪼들리던 즐라탄이 막스웰의 집에 한 달 동안 얹혀 살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최근에도 즐라탄 본인이 같이 뛰어본 선수들로 세계 베스트 11을 짰을 때에 당연히 본인은 최전방 스트라이커 자리에 있고 뜬금없이 레프트 풀백 자리에는 막스웰이 있었다. 즐라탄은 세상에서 자신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11살 연상의 와이프 헬레나와 막스웰뿐이라고 말한다. 즐라탄은 자서전에서 막스웰에 대해 'sensitive(세심한)', 'elegant(우아한), 'beautiful(아름다운)' 등으로 형용하며 장점을 늘어놓았다. 막스웰의 단점을 굳이 꼽자면 지나치게 착하다는 것이랄까?라며... 막스웰의 플레이에 대해서는 "파워풀한 브라질선수이면서 감히(!) 아름답게 플레이 할 줄도 안다. 내가 아는 가장 우아한 축구선수이고, 그가 플레이하는것만 그저 지켜보는 것도 즐길정도"라고 최상급의 칭찬을 늘어놓았다. 어릴때부터 브라질 축구의 열렬한 팬이었고 즐라탄 스스로도 그 피지컬에도 섬세한 플레이를 한다는 점에서도 즐라탄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 2010년 친선 경기차 한국에 온 바르셀로나 선수진 중에서 유일하게 바르셀로나 측 관계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성심성의껏 기자들의 인터뷰에 응해주었고 팬들에게도 시종 웃는 얼굴로 친절해서 가루가 되도록 까였던 바르셀로나 구단과 선수진 중 유일하게 까이지 않았다. 즐라탄은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기에 사람에게 무시당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잘 알아서 유소년 선수 시절 절대로 팬을 무시하지 않고 모든 팬들을 응대해야겠다고 다짐한 이래 팬들에게 성심성의를 다하는 선수이다. 그런데 의외로 팬레터는 절대로 읽어보지 않는 선수로 유명한데, 그 이유는 "오는 편지가 너무 많다보니 어떤 편지는 읽고 어떤 편지는 안 읽으면 형평성에 어긋나서"라고 한다.

  • 즐라탄은 전 소속팀이나 감독 디스하기로 유명한 선수였다. 유벤투스, 인테르, 바르사 모두 그의 디스를 피해가지는 못했고 때문에 그 팬들에게 까이는 경향이 있다. 혹자는 즐라탄은 죽기 직전에는 스웨덴을 디스할 것이라고까지 한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과르디올라에 대한 디스였다. 자서전 에서 몇 챕터씩 할당해서 과르디올라를 까고 2013년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까는 등 과르디올라라면 입에 거품을 물고 디스한다. 사람들은 에고가 강한 즐라탄 본인의 성격과 팀을 학교처럼 일사불란하게 운영하는 과르디올라와는 상성이 극악이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63]

  • 펩 과르디올라와의 갈등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이 바로 본인이 리오넬 메시에게 밀렸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메시도 굉장히 싫어하거나 심지어 질투하고 있을 것이라는 통념이나 루머가 퍼져 있는데 오히려 메시와는 사이가 아직까지도 매우 좋다. 파리 생제르망과 바르사가 챔스에서 만났을 때 메시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고 바르사 시절에 메시가 즐라탄에게 PK를 양보해주기도 했으며 메시를 칭찬하고 추켜세우는 인터뷰도 많이 했다. "메시는 세계 최고의 선수이고 발롱 도르를 받을 자격이 있다. 이미 여러 차례 상을 받았지만, 또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었다."메시는 마치 플스의 캐릭터와 같다. 메시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축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이다."'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메시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막스웰의 증언에 따르면 본인은 즐라탄과 메시 중에 메시가 세계 최고라고 생각하는 데 즐라탄도 자신과 똑같이 생각한다고 한다.# 말 뿐인 것도 아닌 것이, 한창 불화설이 나돌 때도 발롱도르 투표때마다 메시한테 잊지 않고 투표해서 츤데레라 하는 사람도 있었다.#

  • 2012 발롱도르 시상식 후에는 타겟을 바꿔서 "호날두는 항상 메시의 수상을 바로 앞에서 본다. 영광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보다 잘한 선수가 최소한 10명은 됐는데 2위라도 한 걸 다행으로 알아라"라며 그를 조롱하는 인터뷰를 하고 "메시는 발롱을 하나 더 탈 수도 있을 정도로 실력이 있긴 하지만 키가 작잖아ㅋ"라고 저 둘을 동시에 까서 사람들이 뜬금포라고 황당해 했으나 이것조차도 평상시 디스 잘 하는 그의 성격을 이용하여 언론이 지어낸 이야기라는 듯. 본인은 메시나 호날두에 대해 나쁘게 말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래도 각종 인터뷰를 보면 메시가 호날두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메시의 첫 발롱도르 수상을 축하하는 즐라탄

  • 사실 메시는 인정하지만 호날두에게는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는데 이유는 본인과 체격이나 플레이가 비슷해서도 있지만 메이저 대회 중요한 순간마다 호날두에게 깨져서 그렇다. 처음 둘이 대결한 것은 2008/09시즌 챔스 16강전이었고 이때 인테르는 맨유를 만나 16강 탈락한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과 2014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모두 포르투갈에게 깨져서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특히 2014년 플레이오프에는 멀티골 넣고 분전하더니 호날두에게 해트트릭 먹고 탈락했다. 이래저래 엄청난 악연이다.

  • 마찬가지로 의외인 사실이지만, 성깔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주제 무리뉴와도 굉장히 사이가 좋다. 즐라탄 본인이 "난 조제를 위해서라면 그게 사람을 해하는 것이던 무슨 짓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난 조제를 위해 죽을 수 있다. 혹은 (밖에 나가서 아무나)죽 수 있다"고 인터뷰했을 정도. 사실 즐라탄과 무리뉴가 같이 있던 시기는 2008-09시즌 인테르에서 딱 1시즌뿐으로 오랜시간을 같이 하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그 시기만큼은 즐라탄이 구설수에 오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훗날 즐라탄은 자신의 강한 성격과 자존심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존중했으며 동시에 끊임없는 자극과 동기부여로 멈추지 않는 전진을 이끌어준 사람이 바로 무리뉴 감독이라며 한없는 존경심을 표했고 무리뉴도 인테르를 떠나 바르사로 향했을 때나 지금이나 즐라탄은 세계 최고의 선수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장난기 기질도 닮았는지 2013-14 시즌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이 무리뉴의 첼시에 패배했을 때도 인터뷰 도중 난입해서 장난치는 모습을 보이면서 무운을 빈다고 할 정도. 무리뉴 감독이 맨유에 부임하고 나서는 통화할 때 그냥 "그래서 언제 가면 되는거죠?"라는 식이었다고. 이제는 맨유에서 함께하게 되었다.

  • 예전 클롭이 돌문 감독 시절 인터뷰 중일 때 나타나 클롭에게 자신을 언제 데려갈꺼냐 물었고 클롭은 너 사려면 선수단을 다 팔아야한다며 농담을 했다. 그러자 즐라탄은 FA로 데려가라고 말했고 클롭이 리버풀에 왔을 때 많은 리버풀 팬들의 마음을 두근두근하게 했다.

  • 여러 팀을 옮겨다닌 선수이면서도 AC 밀란에 대한 애정이 특별히 강렬하다. PSG로 팀을 옮길 때 주도했던 라이올라와 한달 정도 사이가 틀어졌었다는데 즐라탄과 라이올라의 특별한 관계를 생각하면 얼마나 AC 밀란에 대한 애정이 컸는지 알 수 있다. 본인은 AC 밀란 시기를 경력 터닝 포인트로 생각하는듯 하다. 즐라탄이 바르셀로나에서 후반기 부진을 거듭하며 감독과 불화로 최악의 시기를 보낼때 밀란으로 가서 플레이 스타일을 갈아엎으며 다시 인정 받기도 했고, 다시 특별한 선수이자 주인공의 역할을 했기 때문인듯. 그리고 즐라탄 스스로도 AC밀란에 있던 때를 가장 좋았던 시기였다고 회자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던 AC 밀란으로 엄청나게 늦은 나이에 돌아와 경력을 이어가게 된 부분이 있다. 돌아오기 전까지 즐라탄이 AC 밀란에서 뛰었던 시즌은 단 두시즌이었기에 이 정도의 애정은 상당히 독특한 편. 게다가 유벤투스와 인테르를 모두 거친 선수이기에 더욱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 축구 선수 중 드물게 국내에서 이름으로 통하는 사나이. 대개의 축구 선수들은 웨인 루니의 루니, 리오넬 메시의 메시, 하비에르 사네티의 사네티, 아르연 로번의 로번(로벤) 등 성으로 불리지만 즐라탄은 즐라탄으로 통한다. 이유야 알다시피 성이 이브라히모비치로 발음도 어렵고 길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아약스 초창기 이 성이 싫어 유니폼에 Zlatan이란 이름으로 붙이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약스 생활 후반기에 아버지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Ibrahimovic로 마킹을 바꿨다.[64] 즐라탄이라는 이름은 보스니아어로 '황금'이라는 의미이다.

  • 라파엘 판데르파르트와의 불화로도 유명한데, 이것은 그들이 아약스에서 같이 뛰던 시절 국가대표 친선경기로 만났을 때 반 더 바르트가 즐라탄이 자신을 고의로 부상을 입혔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팀 전체가 네덜란드 출신들은 판데르파르트 편을, 외국인 출신들은 즐라탄 편을 들면서 갈라진 적도 있다고 한다. [65]

  • 국내에서는 대구광역시의 누군가가 '이브라히모비치'로 개명을 신청하였으나 기각되었다. 재판부는 결정문을 통해 "개명을 허가할 만한 이유가 인정되면 원칙적으로 개명을 허가해야 하나 주변 사람들에게 국적에 대한 혼란을 줄 수 있고 누가 들어도 외국인이라고 착각할 만한 이름이기 때문에 개명을 허가할 수 없다"고 한다. 참고로 저 사람 외에도 가수 정준영이 이브라히모비치로 개명을 고려했다고 1박 2일에서 밝혔다. 관련기사

  • 배우 신현준이 닮은꼴로 유명하다. 둘 다 장신이다.(신현준 184cm, 즐라탄 195cm) 특히 가 비슷하다.
파일:신현준 이브라히모비치.png
신현준과 즐라탄을 합성한 사진도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냥 닮은꼴 정도의 유머가 아니라 대표적인 밈이고 즐라탄=신현준 밈은 그냥 스포츠에 관심있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연예가중계에서도 "신현준씨, 브라질 월드컵에 나갔었어요?" 라면서 농담을 했을 정도였다. 러시아 월드컵 때도 한국이 스웨덴과 같은 조가 되자 "빨리 머리 기르고 러시아로 가서 스웨덴 대표팀에 몰래 끼어들어라"' 같은 농담까지 나왔을 정도였고 이에 신현준 본인도 "국민 여러분께서 원하시면 정말로 러시아로 가겠습니다!!" 같은 드립을 치면서 재미있어했다.
  • 하도 여기저기서 신현준에게 즐라탄을 닮았다는 밈을 알려주자 신현준은 그저 재미있어하면서 웃기만 했고 결국 신현준은 진짜로 즐라탄을 사칭하면서 흉내내는 기믹으로(...) FIFA 모바일 게임의 CF까지 찍었다.# 처음에는 농담조로 "자존심이 상한다" 같은 반응으로 즐라탄을 흉내내는 기믹 CF 제의가 들어왔을 때 안 찍으려고 했지만 나쁜 의미가 아닌 재미있는 밈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찍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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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유튜브 채널에서 영국인들에게 즐라탄과 신현준 사진을 보여주면서 구분해달라는 실험을 했는데, 정말로 구분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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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 본인도 신현준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인지, 그의 인스타 스토리에 방문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 인터 밀란 시절 발로텔리가 즐라탄을 놀려먹은 뒤 화장실로 튀어 문을 잠근 뒤, 참다참다 변기통 위에서까지 놀려먹자 빡쳐서 발로텔리가 있는 화장실 칸 문짝을 부숴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 소문난 자동차 애호가이다. 꽤 후덜덜한 자동차 콜렉션을 보유하고 있으며 시속 325km로 경찰차 달고 도로질주 해봤다고 하는걸 보면 본인도 어지간히 그 스릴을 즐기는 듯. 참고로 전세계에 399대밖에 없는 엔초 페라리를 갖고 있다. 이 엔초 페라리는 유벤투스 FC 이적 당시 이적 조건으로 엔초 페라리 제공을 걸어서 으로 받은 것이다. 유벤투스의 대주주인 아녤리 가문이 페라리를 보유한 FCA의 소유주였기에 가능한 협상이었지만, 아무리 그렇다 쳐도 유벤투스 측에서는 엔초 페라리의 재고가 당시 단 세 대만 남은 상태였기에 난색을 표했다. 그 이유로 유벤투스는 중고 엔초로 퉁칠려고 했는데 즐라탄과 에이전트 미노 라이올라는 신차를 주지 않는 한 협상 불가를 고수했고 차후엔 직접 유벤투스 회장단과 협상을 시도해 평생 중고로 팔지 않는 조건으로 페라리를 획득하게 된다. 그만큼 유벤투스가 즐라탄을 원했다는 일화이기도 하다. 엔초 페라리 이외에도 노란색 라페라리의 오너이기도 하다. # #포르쉐 918 스파이더의 오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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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신이 탑클래스임을 3인칭화로써 표현하는것으로 유명하다.
    • "즐라탄이 생각하건데, 이것은 즐라탄이 차야한다고 생각한다." (프리킥을 차려는 마리오 괴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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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웨인 루니: 우리 모두 클론들을 파괴하고 싶어요. 하지만 클론들은 무적이에요!
즐라탄 : "즐라탄도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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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년 2월 24일 데일리미러와의 인터뷰에서 “EPL에 뛰었다면, EPL 수비수을 파괴해버렸을 것”이라는 발언을 하였다. 이는 자존심 센 영국 축구팬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되었다. 그런데 본인은 트위터로 이러한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현지 축구팬들의 투표에서 63%가 긍정의 표를 던져 그의 클래스를 인정했다.

  • 헌데 이렇게 거침없는 언변, 상대방에 대한 디스, 다혈질적인 성격과 과격한 행동 때문에 사생활이나 바깥생활에 대해서 구설수에 오를 법한데 이 사람 신기하게도 바깥에서는 매우 조용하고 착한 편이다.[66] 몇몇 다른 선수들처럼 전혀 방탕하거나 문란한 적도 없이 언제나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지금 현재는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는 가정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옛날부터 인간관계의 문제가 있었을 뿐, 타 감독, 스태프, 선수들은 모두 그를 높이 평가했다. 심지어, 갓난아기 때부터 부모님의 이혼을 겪고, 어머니에게 전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음에도 부모님을 안 좋게 생각하긴 커녕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며, 주택까지 선물해주었다는 것을 자서전에서 밝혔다.

  • 지적 장애인 축구단에게 거금을 기부한 것이 알려졌다!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지적장애인 축구단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출전비용을 대기 위해서 유명선수의 사인이 담긴 유니폼과 각종 스포츠 물품을 판매하려고 즐라탄에게 전화를 하여 혹시 유니폼을 줄수 있냐고 물으니까 "그러지 말고 계좌번호를 알려달라. 내가 모든 비용을 다 대겠다"며 한화로 약 5,300만원에 달하는 돈을 기부하였다. 그러면서 축구는 남녀노소 누구든지 즐길 수 있는 평등한 스포츠가 되어야 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 낚시에 빠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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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바일 게임 Zlatan Legends 런칭과 함께한 sportbible과 인터뷰에서 같이 뛴 선수 중 가장 뛰어났던 재능을 선택해주라는 질문에 前 인테르 소속 공격수 아드리아누를 뽑았다.

  • 그의 꽁지머리 덕에 한 때 이런 짤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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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서전 '아이 엠 즐라탄' 기초로 한 전기 영화가 제작된다. 즐라탄도 영화 기획에 참여한다. 초기 말뫼의 초기 성장기와 유럽 클럽의 이야기를 같이 그릴 것으로 보인다.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스웨덴어를 포함해서 세르보크로아트어,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를 할 줄 안다.[67]

  • 2019년 경 리더십 관련으로 재평가를 받고 있다. 2016년 여름 파리 생제르맹 FC를 떠난 뒤부터 팀내 파벌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고, 2018년 3월 맨유를 떠난 뒤로는 맨유의 젊은 선수들과 몇몇 베테랑 선수들도 감독과 불화를 일으키거나 주급 문제, 프로의식 등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68] 즐라탄이 그라운드 위에서 성격만 거칠 뿐, 일상에선 대인배스럽고 배려심 넘치는 성격을 보여주다 보니 실제로 어린 선수들에게 높은 카리스마를 보여 주었을 것이다. 또한 당시 팀 내에서 몇 몇 선수들을 제외하면 가장 나이가 많은 고참이기도 하였으니.

  • 2019년 여름에 자신의 SNS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팀의 사진을 올렸는데, 골키퍼부터 공격수까지 열한명 모두 즐라탄이다. 그러곤 캡션에 한다는 말이: "이제 감독을 뽑을 일만 남았군. 그 감독이 즐라탄일 수도 있다". 직접 보자.

  • 2019년 10월 고향인 말뫼에 3m 짜리 전신상이 건립되었는데 11월에 즐라탄이 친정팀인 말뫼 FF의 라이벌 함마르뷔 IF에 투자해 대주주가 되자 말뫼 FF의 팬들의 비난여론이 들끓면서 애먼 동상에 화풀이를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불을 지르고, 코가 베이고, 얼굴에 봉지를 씌우기도 했으며 오른팔에 변기 커버가 걸렸고, 발목 절단 시도가 발각되는 등 온갖 수난을 당하다 끝내 2020년 1월 초에 발목이 완전히 절단되었다. 보도기사 결국 2020년 5월 중순에 말뫼시에서 철거를 결정했다. 현재 동상은 따로 보관중이라고.

  • 2010년부터 2019년까지의 득점 순위에서 7위를 차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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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득점 순위

  • 엑스박스를 상당히 즐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PS2PS3도 즐겼다고. 가장 좋아하는 건 콜 오브 듀티. 그의 자서전에도 엑스박스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데, 스트레스를 풀기에 딱이라고 한다. 그래서 새벽 5시까지 게임을 하다가 이래서는 안될 것 같아서 밤 10시 이후로는 게임을 안한다고 한다. 팀 동료들에게 엑스박스 원을 돌리기도 하였다. 언론에서 뭐 다양한 이야기를 하였지만 그저 게임을 같이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싶다. 에이전트인 라이올라와 같이 게임을 할 때도 많다. 온라인게임을 하다가 만난 게이머가 '한정판 시계가 구하고 싶은데 대기자가 넘 많아'라고 하니 '나 구할 수 있는데, 다음달 스톡홀롬 호텔로 와 구라 아님' 이라고 한 뒤 구해줬다고 한다. 그 게이머와는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 외국에서도 그의 게임 사랑은 잘 알려져서 파리에서 뛰고 있을 때 엑스박스 원의 프랑스 광고 모델을 하기도 했다.

  • 한국 기준 2017년 8월 18일 자신의 이름을 딴 즐라탄 레전드라는 게임을 출시했다. #
우주에서 벌어지는 드리프트볼이라는 전우주 스포츠에 지구의 대표로 납치되어 플레이하는 스토리. 그리고 다른 플레이어들은 평행세계의 즐라탄이라는 설정이다.
  • 2018년 호날두가 유벤투스로 갈 당시 유벤투스로 가는 건 도전이 아니라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로 가는 건 도전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그는 "도전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나에게 도전은 그 팀에 들어가 높은 곳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게 도전이다"라고 말했다. 그 후 2019년 AC 밀란으로 돌아온 즐라탄은 도전이 무엇인가를 손수 보여주게 된다.

  • 2020년 1월 LA 갤럭시에서 AC밀란으로 이적시 구단측에서 제시한 18개월 계약을 거부하고 6개월 단기계약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2020년 12월 4일 기준으로 리그 최다 득점, 최다 공격포인트, 최다 슈팅을 뽐내는 대활약을 통해 자신을 보여주고 있다.

  • 즐라탄의 에이전트는 2020년 12월 그와 일하면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 LA 갤럭시의 제안을 받아들여 유럽이 아닌곳에서 시간을 낭비하게 된 것이었고 즐라탄의 은퇴는 5년 뒤에 해도 좋을 것 같다고 팔불출 발언을 했다. 그리고 즐라탄이 UEFA 회장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발언했다.

  • 2021년 3월 첫째주에 열린 제70회 산레모 음악제에 공식 초청되어 모든 일정에 참석했다. 그러나 가는 길에 교통체증이 있자 고속도로에 들어가서 히치하이킹으로 밀라니스타의 바이크를 얻어 타고 제시간에 참석했다. 그러나 고속도로에서 히치하이킹은 도로교통법 위반이라서 벌금을 냈다.

  • 2021년 10월 23일 볼로냐전에서 자책골을 기록했다. 이 날 기록한 자책골은 세리에A 최고령 자책골이다.

  • 호주의 수영스타 이안 소프랑 굉장히 닮았다. 얼굴뿐만아니라 신체스펙도 비슷하며 나이도 한 살 차이다.

  • AC 밀란으로 컴백한 후 거의 모든 선수들이 인터뷰를 할 때마다 언급할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다. AC 밀란 선수들이 대체로 어리고 경험이 적은 편이라 즐라탄의 태도와 조언에 상당히 영향을 받는 듯 하다.


  • 영화배우로 데뷔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위의 여러 일화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에이전트였던 미노 라이올라와는 고객과 에이전트 관계를 뛰어넘어 절친한 사이였다. 아약스에서 같이 뛰던 유망주 시절 막스웰이 에이전트가 라이올라이기도 해서 그 셋은 여러모로 뗄레야 뗄 수 없던 관계. 2022년 4월 라이올라가 위독하다는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시즌중임에도 직접 그를 찾아갔고, 그의 임종을 지켜 본 유일한 라이올라의 고객이었다고 한다.

  • 2021-22 시즌 밀란에서 우승한 후 라이올라에게 트로피를 바친다고 했다. 이 트로피는 그가 없이 이뤄낸 첫 트로피라고 언급하며 사실 유럽으로 돌아올때 나폴리랑 근접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즐라탄은 라이올라에게 변화를 만들려면 어디 갈 수 있냐고 물었는데 너만이 밀란을 구할 수 있다고 말에 밀란행을 결정했다고.

  • 2021-22 시즌 우승이 목전에 있을 무렵, 구단 버스를 타고 홈 팬들과 함께 우승을 자축하던 중, 기쁨에 겨워 버스 앞유리를 손바닥으로 쳤는데, 얼마나 강하게 쳤는지 앞유리에 금이 갔다.

  • 2022년 9월, 즐라탄은 자신보다 강한 선수가 나와야만 은퇴를 하겠다며, 은퇴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관련 기사

  • 2022년 9월, 인스타를 통해 아스테릭스 & 오벨릭스:미들 킹덤이라는 영화에 출연하게 됨을 밝혔다. 이 영화에서 즐라탄은 켄투리오라는 로마군 장수 역할을 맡는다.

  •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예언을 했다. 하나는 지루가 최고의 활약을 할 것이라는 것. 또 하나는 메시가 월드컵 우승할 것이라고 예언했고 모두 맞았다.

  • 2022-23 시즌 2월에 훈련 중 U-18 선수인 자신의 아들 막시밀리안과 팀내 연습경기를 가졌다.

  • 2022년부터 즐라탄에 척 노리스 밈을 인용하는 즐라탄 드립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유튜브나 축구관련 커뮤니티 등지에서 유행하고 있는 드립으로 즐라탄과 관련된 게시물이면 무조건 나오는 드립이다. 즐라탄의 겉멋과 강한 자존심으로 인한 캐릭터성에서 파생된 드립이며, AC 밀란이 2021/22 시즌 세리에를 우승했을때 화제가 되었던 즐라탄의 우승연설 영상이 퍼졌을때 유행을 탄 드립으로 보인다.[69] 즐라탄을 거의 축구의 신이 아닌 아예 이 세계의 창조주로 추앙하는 드립이다. 예를 들어, 즐라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진실이 잘못됐을 뿐. 같은, 혹은 즐라탄이 홧김에 공을 하늘로 차버렸는데 훗날 그 공의 이름을 이라고 지었다. 등등 즐라탄이 거의 세계를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추앙글이다.
  • 축구 외의 좋아하는 스포츠로 빠델이 있다. 자신의 이름을 딴 Padel Zenter라는 브랜드로 상당한 규모의 경기 시설을 설치 운영 중이다.


8.1. 게임에서[편집]


FM 유저들에겐 지랄탄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FM 2006 시절 사기적인 능력 덕에 붙은 별명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일단 포지션이 ST가 아닌 CF인데 즉 프리 롤도 소화할 수 있다는 뜻이고, 잘 쓰는 발이 오른발이라는 것은 즉 오른발만 잘 쓰기 때문에 왼발에 가야 할 능력치가 기술 쪽으로 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사실은 능력치가 기술로 가는 것보다 양발이 되는 것이 훨씬 좋다. [70]

거기다가 기술적 능력을 보게 되면 키가 195cm나 되는 놈이 플레이는 메시처럼 한다. 또한 쓸데없이 장거리 스로인이 16이나 되어 총알 스로인 선플만 찍으면 로리 델랍의 스로인을 직접 구사할 수 있고(단 FM 2006 때는 총알 스로인 선플이 존재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생긴 건 FM 2010 때부터다. 즉 어빌 낭비일 뿐) 골 결정력과 헤더 둘 다 최정상급이라 올려주든 깔아주든 다 받아먹는다. 정신적 능력 부분으로 가 보면 공격 위치 선정이 20이라 인자기도 울고 갈 정도이고 나머지 능력도 수비 위치 선정만 빼면 도대체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토 나오는 수준이기 때문에 지랄탄이라는 별명이 붙을 수밖에 없다. 특히나 피지컬 부분을 보면 인간의 피지컬이 아니다. 말하자면 호날두와 메시를 합쳐놓은 것보다 더 한 놈이다. 즉 플레이하는 감독 마음대로 메시처럼 쓸 건지 호날두처럼 쓸 건지 선택이 가능하다(...).

그야말로 FM 최고의 개캐. 그렇기에 당시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던 아드리아누와 함께 '아들탄' 투 톱으로 불리며 많은 FM을 비롯한 축구게임 유저들의 공격수를 담당했다.[71] 이것이 즐라탄의 인테르 이적으로 현실화되었으나 06-07시즌부터 아드리아누의 실축 기량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PES6, 위닝일레븐 2007에서밖에 빛을 발하지 못하였다. 이쯤 되니 컴퓨터가 잡아도 흉악한 공격력으로 플레이어를 괴롭힌다. 전반전을 3대 0으로 끝내서 다 이겼군 하고 있는데 후반전에만 혼자서 4골을 박아 기어코 역전패를 안겨주는 지랄같은 원맨쇼를 보여준다. FM 2006 시절엔 그냥 시즌을 돌려도 5~60골 정도는 기본으로 찍어주고 30골 정도면 전술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72]

최전성기였던 2010년도에 발매된 위닝일레븐 2011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를 능가하는 최고의 사기캐로 군림하였다.[73] 메시는 스피드, 드리블에 특화되어 있어 피지컬이 매우 부실하고[74], 호날두는 즐라탄보다 나은 점이 스피드뿐이었다.[75][76] 속도가 80중후반, 피지컬은 피칠갑이 되어있어서 상대 수비수가 오히려 튕겨나가고, 슛정확도,슛파워도 높은지라 중거리슛도 찼다 하면 들어갈 정도. 실제로 2010년 여름 이적시장이 일부 반영된 FC 바르셀로나는, 다비드 비야, 즐라탄, 메시라는 희대의 사기 3톱을 선보일 수 있었다. PES 2013에서도 여전히 위력적인 모습을 과시, 파리생제르망이 PES에서 손꼽히는 강팀인 주된 이유로 군림하고 있다.

위닝과 비슷하게 즐라탄이 많이 관심을 받는 게임이 바로 피파 온라인 3. 전작들에서도 많은 관심이 있었으나 피파 온라인 3에서는 몸싸움 능력의 중요도가 올라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취급받는다. 몸싸움과 슈팅 능력 뿐 아니라 드리블 기술과 속도/가속도도 출중하여 수비수 서너명 달고서도 골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인 수준. 능력치가 고루 좋기에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써도 좋고 2선에서 수비수를 뚫어내는 역할로 써도 좋다. 게다가 2013년 11월에 이루어진 패치에서는 속도와 골 결정력 등이 버프를 받아서 유저들을 또 한 번 충격에 빠뜨리더니, 2014년 8월 말 2011시즌 업데이트로 출시된 11즐라탄이 상당한 사기캐라 유저들은 그저 충공깽.[77] 그리고 09시즌 즐라탄도 11시즌과 더불어 가장 많이 쓰이는 시즌으로 쌍벽을 이루었다. 그러다 2015년 11월 뉴 임펙트 엔진 업데이트 이후 단순히 몸싸움 만으로는 게임을 하기 어려워졌음에도 불구하고 큰 키에서 나오는 제공권과 그 피지컬에서 보기힘든 뛰어난 체감 등의 장점으로 여전히 가장 많이 쓰이는 선수로 군림했다.

하지만 이후 라이선스 문제로 인한 생성제한으로 시즌카는 점차 잘 쓰이지 않게 되었으며, 월드베스트는 더 좋은 선수들이 연달아 나오며 가성비 선수로 전락했다. 그러나 더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온 2018년이 되어서도 그 성능은 어디 안가는지, 월드베스트 시즌은 피파온라인3 공식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순위경기 1000위 이내 랭커들이 많이 쓰는 포지션 별 선호선수 목록에서 보일 정도로 여전히 많이 쓰이는 편이다.

다만 게임들 특성상 즐라탄의 유연한 발리슛들은 구현을 못 하고 그냥 발리 수치가 높은 정도로만 책정된다. 호나우지뉴와 비슷한 케이스.[78]

후속작인 피파 온라인 4에서도 전작만큼은 아니지만 준수한 성능으로 많은 유저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동 포지션에서 호날두와 호나우두가 워낙 사기적인 성능을 자랑하기에 이전만큼의 위엄은 보이지 못하지만, 저 둘에 밀리지 않는 강력한 슈팅과 유연한 드리블 및 연계, 무엇보다도 호날두와 호나우두가 가지지 못한 압도적인 피지컬을 무기로 삼아 즐라탄의 매력에 빠진 유저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피지컬 온라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피지컬의 중요도가 온라간 피온4이다 보니 속도가 뒤떨어져도 195cm의 압도적인 제공권, 건장한 수비수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몸싸움, 호날두 부럽지 않은 묵직한 슈팅, 게임의 묘미를 더해주는 화려한 개인기와 발리슛은 실축에서 나이를 잊은 활약을 보이는 즐라탄을 구현해 낸 듯한 모습이다.

아쉽게도 시간이 점점 갈수록 수요도가 줄어들고 있는데, 이유는 피파 온라인 4 메타가 침투 메타로 변화되어가며 속도가 느린 즐라탄의 수요가 많이 떨어졌다. 일단 신규 클래스가 출시되어야지 속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오랫동안 신규 클래스가 나오지 않음에따라 다른 선수들에 비해 경쟁력이 약화되었고, 그로 인해 예전과 같은 명성은 지니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슛과 피지컬이 뛰어나며 헤더가 안정적이기에 어느 정도 수요가 있는편.

그리고 FIFA 21 39세 축구선수 중 가장 높은 능력치인 83을 받았다.


8.2. WAGs[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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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즐라탄은 20세에 결혼을 했고 아내 헬레나가 무려 11살 연상이다. 그리고 두 아들이 있는데 즐라탄의 인터뷰에 따르면 즐라탄은 장남 막시밀리안이 여자친구와 손을 잡고 즐라탄 앞에 서있는 사진을 항상 간직하고 다닌다고 한다. 그리고 막시밀리안의 여자친구는 막스웰의 딸이라고 한다.

  • 2020년 8월에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백만 명인 이탈리아의 1991년생 세리에 A 리포터 딜레타 레오타와 식사를 하면서 스캔들이 터졌다.# 그러나 9월 인터뷰에서 그녀가 바쁜 사람은 내 취향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일단락되었다.


9.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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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 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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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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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데 칼라브리아
Davide Calab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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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2.06
2015~2025
이스마엘 베나세르
Ismaël Benna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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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2.01
2019~2027
야신 아들리
Yacine Ad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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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7.29
2021~2026
루벤 로프터스치크
Ruben Loftus-Ch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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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01.23
2023~2027
올리비에 지루
Olivier Gir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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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09.30
2021~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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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파엘 레앙
Rafael Leã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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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6.10
2019~2028
크리스천 풀리식
Christian Puli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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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028
티자니 라인더르스
Tijjani Reijn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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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07.29
2023~2028
루카 요비치
Luka Jovi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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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024
마이크 메냥
Mike Maig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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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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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오카포
Noah Oka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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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028
루카 로메로
Luka Rom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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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027
테오 에르난데스
Theo Hernánd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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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26
피에르 칼룰루
Pierre Kalul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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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6.05
2020~2027
사무엘 추쿠에제
Samuel Chukwue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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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5.22
2023~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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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요 토모리
Fikayo Tom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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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2.19
2021~2027
시몬 키예르
Simon Kjæ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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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024
말리크 치아우
Malick Thi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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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2027
마티아 칼다라
mattia cald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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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펠레그리노
Marco pellegr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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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마소 포베가
Tommaso Pob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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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25
라데 크루니치
Rade Kruni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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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10.07
2019~2025
알레산드로 플로렌치
Alessandro Floren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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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03.11
2021~2025
마르코 스포르티엘로
Marco Sporti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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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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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 나바
Lapo Francesco Maria Na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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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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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카 트라오레
Chaka Traor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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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3
2023~2028
프란체스코 카마르다
Francesco Camar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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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0
2023~????
유누스 무사
Yunus Mus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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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29
2023~2028
안토니오 미란테
Antonio Mira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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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07.08
2021~2024
구단 정보
단장: 파일:UEFA EURO ITA.png 제프리 몬카다 / 감독: 파일:UEFA EURO ITA.png 스테파노 피올리 / 홈구장: 산 시로
출처: AC 밀란 공식 웹사이트, 트랜스퍼마크트, 마지막 수정 일자 2023년 10월 13일
[각주]



[1] 이 표기는 국립국어원의 세르보크로아트어 표기법에 따른 것이다. 발음은 [zlǎtan ibraxǐːmoʋitɕ\]이다. Zlatan과 Ibrahimović라는 두 단어는, 스웨덴어에서 쓰지 않는 글자인 ć를 비롯하여 스웨덴어에서 보통 쓰는 철자와 발음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따라서 세르보크로아트어 이름으로 쳐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라고 표기하는 것이다. 만약 스웨덴어 표기법을 적용한다면 '슬라탄 이브라히모비크'라는 표기가 되겠지만 스웨덴어로도 [ˈslǎːtan ɪbraˈhǐːmʊvɪtɕ\](슬라탄 이브라히무비치)로 발음한다.[2] 아버지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어머니가 크로아티아 국적을 가지고 있다.[3] Zlatan Ibrahimović: Stats, age and bio, AC Millan, 2023년 6월 5일 발췌, URL[4] 맨유와의 계약이 종료된 후에 다시 계약을 체결하였다.[5]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출장 6위, 역대 최다 득점자.[6] 이러한 능력 덕분에 어릴적에는 제2의 마르코 반 바스텐이라는 평가를 들었다.[7] 2010년 이후에는 타겟맨 역할도 자주 하는데, 젊은 시절 즐라탄을 보았다면 상상도 할수 없던 일.[8] 메시나 더 브라위너가 '저런 궤적이 들어간다고?' 스타일의 프리킥을 찬다면 즐라탄은 '저렇게 강하게 찰 수 있다고?' 스타일의 프리킥을 차는 편이다.[9] 그중에서도 챔피언스 리그에서 만난 강팀상대로 유독 그렇다. 그와 반대로 리그에서는 밀란 더비, 맨체스터 더비 등 더비에서 수많은 득점을 보여주었다.[10] 슛인 줄 알고 수비수는 몸을 날리고 카메라도 골문을 잡았지만 몇 번씩 접으면서수비진을 농락하다 결국 집어넣었다. 축구에 조금의 관심이 있다면 관련 영상이나 움짤은 한번쯤 검색해서라도 볼 만한 가치가 있다. 해설자가 이 골을 보고 지단과 마라도나를 언급한다.[11] 나무위키 내에서도 축구선수들의 문서에 이런 표현이 등장하고 링크가 걸려있다면 100% 즐라탄이다.[12] 군나르 노르달과 쌍벽을 이룬다.[13]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 네이마르 주니오르, 킬리안 음바페에 이은 5위[14] 국내에서는 근래까지 여전히 FM, PES, 특히 피파 온라인 3 등의 게임에서 사기적인 위력으로 호즐메란 단어가 나올 정도로 과대평가를 받고 있지만, 사실 AC 밀란 시절 전까지만 해도 즐라탄은 한국에서 실력에 비해 과소평가를 받던 선수이기도 했다.[15]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맨유 초창기에 현란함을 넘어선 과한 스텝오버 동작으로 댄서 명성을 얻고 있을 때, 즐라탄 또한 스킬을 보여줄 명목으로 경기장 한복판에서 상대선수 등지면서 발바닥으로 긁고 다니던 시절이 바로 이 시기였었다.[16] 다만 이러한 볼 욕심과 그라운드 전체를 휘젓는 당시의 스타일이 상성이 맞았던 것인지, 2004-05 시즌 챔스에서 붙었던 레알 마드리드와의 16강 1,2차전에서는, 본인의 컨디션만 완벽하다면 그야말로 상대팀 수비수를 가지고 노는 게 뭔지를 보여준다는 플레이를 할정도로 화려한 발바닥 볼컨트롤과 위협적인 몸싸움 등을 보여주면서 레알을 박살냈다.[17] 2007-08 시즌 AS 로마와 치열하게 다투면서 마지막 라운드까지 우승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만난 AC 파르마와의 어웨이 경기에서 부상으로부터 복귀한 후반 수중전 속에 내리 2골을 박아주면서 팀원들에게 둘러쌓이면서 최종 우승을 만끽하던 장면과, 2008-09 시즌 아탈란타와의 홈경기에서 백힐로 득점에 성공하면서 카포칸노니에레(득점왕)와 세리에 A 우승을 동시 석권하는 모습은 당시 인테르 팬들과 세리에 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될듯하다.[18] 특히 2차전 메스타야 원정은 그 유명한 '나잡아바로' 사태로 인해 양팀이 이성을 잃었던 모습이었으며, 즐라탄 역시 상대팀 카니자레스와 한판 직전까지 갔다.[19] 다만 마르코 마테라치의 퇴장도 한몫하긴 했다.[20] 1차전에서는 맨유의 적극적인 압박으로 인해 무득점에 그쳤고, 2차전에는 비교적 좋은 경기력에도 불구하고 즐라탄 본인이 결정력이 부족한 모습으로 일관하였고 팀은 네마냐 비디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실점을 허용하며 탈락하게 된다.[21] 즐라탄은 2021년 12월 기준 챔피언스리그에서 124경기 출전하여 48골을 기록 중이다. 기록상으로는 좋다고 할 수 있지만(안드리 셰브첸코와 함께 득점 공동 10위) 토너먼트에서 46경기 10골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게 흠이다.[22] 여기에 AC 밀란의 노인정 영입정책이 겹치면서 세리에는 상위리그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선수들이 가는 이미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후 유벤투스가 2번의 챔스 준우승, 호날두가 유벤투스 이적하는 2015~2020년에 들어서야 이러한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시작했다.[23] 축구팬들의 경우 대체적으로는 "정점에서의 퍼포먼스"를 높게 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만약 디에고 밀리토의 09/10 인테르 트레블 시즌의 챔스 공헌도와 그에 따른 UEFA 올해의 클럽 선수상 퍼포먼스, 디에고 포를란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우루과이를 4위를 차지하는데 크게 일조한 골든볼 퍼포먼스, 앙투안 그리즈만UEFA 유로 2016 MVP 및 득점왕 퍼포먼스를 즐라탄이 본인의 챔스 혹은 월드컵, 유로 경력 평생에 단 한차례만 기록했더라도 지금의 애매한 평가는 확연히 달라졌을 것이다.[24] 비슷한 평가를 받는 사무엘 에투, 다비드 비야와 비교해도 차이는 분명하다. 에투는 클럽 축구의 정점인 3번의 챔스 결승에서 모두 공격포인트(2골 1어시스트)을 기록했고 그 중에서도 2005/06 시즌에는 6골 4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소속팀 바르셀로나의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며 결승전 MOM까지 수상하였다. 또한 비야와 즐라탄이 축구 개인상으로서는 가장 영예로운 발롱도르FIFA 올해의 선수,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에 단 한 번도 포디움에 들지 못한 것에 비해 2005년 FIFA 올해의 선수 3위와 2006년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2위를 차지하면서 포디움에 들었다. 비야 역시 UEFA 유로 2008,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공헌도로 그것을 증명한 바가 있다. 유로 2008에서는 4골로 득점왕을 차지하였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5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브론즈볼과 실버슈를 차지하였다. 하지만 즐라탄은 그 "정점에서의 퍼포먼스"를 보여준 대회가 리그뿐이라는 것이 문제다. 6번의 리그 MVP(세리에 A 3회, 리그 1 3회)가 증명하듯 리그에서는 엄청난 활약을 펼쳤지만 그 이상의 대회(챔스, 월드컵, 유로)에서 보여준 결과물이 기대이하라는 것. 단, 즐라탄이 PSG에서 뛰던 시절의 리그 1은 UEFA 리그 랭킹이 프리메이라 리가보다도 낮은 6위였기에 아주 높은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25] 경기장 전체를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개인의 볼점유를 통해 팀이 라인을 끌어올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면서 경기를 풀어나가는 역할이다.[26] 세컨탑과 최전방으로 움직임을 제한하면서 동료들의 패스를 기다려 마무리에 집중하는 역할.[27] 사실 45경기 21골 11도움이 기록상으로는 크게 떨어지는 수치는 아니다. 하지만 전 시즌에 36골 8도움를 기록하며 트레블을 이끈 에투를 무려 4,000만 파운드나 얹어 주면서 트레이드 해온 선수의 기대치에는 턱없이 모자라고 무엇보다 인테르와의 챔피언스리그 4강전을 대차게 말아먹었기 때문에 '실패'라고 평가받는 것.[28] 특히나 다음 시즌에 훨씬 젊고 빠르고 체력좋고 체격도 우위였던 루카쿠보다, 나이도 많고 속도도 쳐지고 상대적으로 마른 편으로 보였던 즐라탄이 2016-17 시즌에 보여주었던 본인이 중심이 되어 포스트플레이를 해주거나 동료들을 활용하여 패스를 주고받으면서 보여주는 세련된 연계 플레이에 상당수의 축구팬들이 느끼는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29] 2022년 2월을 기준으로 만 40세이며, 부상으로 이른감에 은퇴를 하긴 했지만, 동갑인 박지성이 은퇴한지 8년이나 지났음에도 챔피언스리그 진출팀에서 팀을 이끌고 있다.[30] 칼초폴리로 인한 우승 박탈[31] 2010년에 폐지[32] Étoile d'Or[33] 2016년에 파리 생제르맹 FC를 떠나면서 기자에게 남긴 말[34] 호날두가 본인 이니셜을 딴 속옷 브랜드(CR7)를 운영하는 걸 노렸다.[35] 또한 즐라탄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가장 간결하게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36] 본인 자서전 제목이기도 하다.[37] 사실 훗날 나온 자서전에 밝힌 바에 의하면 잘못된 말이고 실제론 입단 트라이얼을 볼 필요가 없어서 안 봤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 벵거 감독이 '실력을 보지 못해서 영 의심스럽네~' 라는 농담을 하자 발끈해서 내뱉은 말이 지금 보여줄 테니 당장 축구화를 가져와라였다고. 당시만 해도 유럽 변방 리그에서 뛰는 17살 꼬마가 당시 축구계의 혁명가이자 세계 최고의 감독중 하나였던 벵거에게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것도 상당히 패기가 넘친다.[38] 축구 잡지 포포투의 취재에 따르면 사실은 이 당시에 말뫼의 이사진이었던 하세 보리가 즐라탄에게 아스날의 입단 테스트 경기에 출전하지 말라고 조언했고, 벵거에게도 이브라히모비치를 영입하고 싶어하든 말든 상관없다고 통보했다고 한다.[39] 참고로 이 여자친구는 현재의 아내가 아니다. 과거 약혼했던 다른 여자에 대해 즉석에서 내뱉었던 말이 잘못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그녀의 이름은 미아(Mia)이며 나중에 아약스 시절 초기 힘들었을 때 다시 연락을 걸기도 했다 한다. 지금은 친구처럼 지낸다고(포포투 11월호 출처).[40] 기자가 발로텔리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설에 대해 묻자 발로텔리와 바르사를 동시에 디스하는 위엄을 보여주었다.[41] 이 발언은 나중에 소설 '나는 즐라탄이다'에서 첫 파트의 제목으로 인용된다. 나온 제목은 페라리를 사놓고 피아트처럼 몰고 있다고. 다만, 이 책은 즐라탄의 자서전이 아니라 작가인 다비드 라게르크란츠가 쓴 지어낸 이야기다.출처 [42] 이후에 기자가 과일로 무슨 묘기를 부릴수 있는지 묻자, "오렌지를 집어서 껍질을 벗긴 후에 입에 넣어 먹으면 됩니다. 그럼 몸에 좋은 비타민도 섭취할 수 있어요" 라고 말하는 패기(...)를 선보였다.[43] 경기는 3:1로 첼시가 승리했다. 이 선수는 훗날 맨유에 갑니다[44] 이탈리아어 자막 있음 [45] 출처 [46] 28초부터 [47] 이 인터뷰는 한국에서 '첼시 아기들이 날 불쾌하게 했어'라는 헤드라인으로 옮겨졌다. 한국어 번역 기사 [48] 덴마크 팬들이 스웨덴을 꺾어서 즐라탄을 은퇴시키겠다고 도발하자 맞받아친 것이다. 은퇴를 뜻하는 단어가 리타이어임을 이용한 언어유희. [49] 그리고 무투는 즐라탄에게 "아니야, 즐라탄 넌 세계 최고야"라고 말해줬고 즐라탄은 그제야 잠을 청했다고 한다.[50] 참고로 위에 대화는 전반 종료 이후 3:0으로 PSG가 리드하고 있을 때 하프타임에 벌어졌는데, 이후 후반전에서 4골을 넣으며 판데르빌을 데꿀멍시킨다. 링크 [51] 2017년 기준 즐라탄은 한국 나이로 37살이다. 웬만한 축구 선수들은 이미 은퇴했을 나이에 무릎의 십자 인대가 파열되는 엄청난 부상을 당하고도 무사히, 그것도 당초 기대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복귀하는 바람에 즐라탄의 괴물같은 신체 능력이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그리고 즐라탄은 해당 경기에서 교체 출전 직후 특유의 아크로바틱한 발리슛으로 뉴캐슬의 골문을 위협하면서 팬들에게 복귀를 알렸다. 하지만 부상이 또 다시 재발했고 결국 LA 갤럭시로 이적하며 맨유에서의 경력을 아쉽게 마무리한다.[52] 벨라가 결코 축구를 못 하는 선수는 아니지만, MLS를 보는 미국인들은 벨라의 환상적인 경기력 때문에 벨라의 실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53] 즐라탄은 MLS에서 53경기 52골 17어시스트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우고 떠났다.[54] 여담으로 이 발언을 다룬 한 유튜브 영상의 베댓들이 압권: "즐라탄이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코로나는 이제 2주동안 격리해야 한다(...)."[55] 여담으로 이 대사는 똑같이 양성 판정을 받았는데 방역 지침을 어겼다는 소문이 도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저격한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56] 즐라탄은 당시 544골을 기록하고 있었고 사파타는 국대 경기까지 합쳐서 389경기를 뛰었다.[57] 이때 함께 선보인 탁자 뒤엎기는 팀 동료에게는 물론 팬들에게 까지 전율을 준다.[58] 이 장면은 은퇴식 중 헌정 영상에도 수록되었다.[59] 해외 매체에서는 즐라탄의 발차기 방식을 태권도 킥 이라고 부른다.[60] 승부 조작 스캔들이 있었지만 스쿼드만 봐도 우승권 멤버들이었다.[61] 에이전트는 다 사기꾼이라고 말하고 다녔으며 아약스와의 계약 당시 단장만 믿고 계약을 체결했다. 나중에 보리 단장이 이적료는 최대한 높게 연봉은 최대한 적게 계약하여, 본인이 아약스에서 가장 급여가 적은 선수라는것을 알게 된 이후로 그를 매우 싫어한다. 자서전에서 이용당한 것을 처음으로 알았던 시기의 파트 제목은 하세보리를 용서할 수 없다.이런 짓을 해서는 안된다.였다. 이 때 입단한 날 만난적이 있던 막스웰의 집에 급여가 나오기까지 3주 간 같이 지내면서 버티게 된다. 또한 이 때 막스웰을 통해 알게되어 고용한 에이전트가 바로 미노 라이올라.[62] 이 짤방에 대해 자서전에서 설명한바 있는데, 인테르에 갓 들어온시기에 밀라노 더비에서 우상인 호나우두를 마주보고 있다는것에 너무 감격하여 어쩔수 없었다는 말을 했다. 호나우두는 이 당시 레알 마드리드에서 AC 밀란으로 겨울 이적시장때 합류했다. 경기는 호나우두가 선제골을 넣었지만 줄리우 히카르두 크루스와 즐라탄이 각 각 1골을 넣으며 2:1로 인테르가 역전승했다.[63] 과르디올라: 바르셀로나에서는 선수들이 땅에 발을 붙이고 지내지/즐라탄: 그건 당연하잖아요?/과르디올라: 바르셀로나에는 훈련장에 차를 타고 오는 선수가 없다는 말이다!/즐라탄: '정말 쓰레기 같은 얘기였지' - I'm Zlatan Ibrahimovic' 中. 이 내용은 주간 서형욱에서 짧은 드라마 형식으로 방송한 적이 있다.[64] 단 프로 에볼루션 사커 같은 게임에서는 Z.Ibrahimovic 혹은 Ibrahimovic로만 표시되기때문에 위닝 등에 익숙한 팬들사이에서는 이브라히모비치, 줄여서 이브라 라고 불리기도 한다. 게임 내 중계 음성에서 공을 넘겨받았을때도 이브라히모비치라 부른다. 이브라히모비치라는 성은 무슬림 이름인 이브라힘(Ibrahim)에서 따온 것이다.[65] 즐라탄 본인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라파엘 판데르파르트를 비난하며 고의적으로 태클을 한게 아님에도 판데르파르트가 자신을 음해하기 위해 언론 플레이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훈련장에서 자신이 고의가 아니라고 한번 더 판데르파르트에게 이야기하여 알았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썼다. 당시 상황(관련영상)을 보면 고의적이라는 시각도 있으나, 공을 뺏으려는 바르트의 경로를 몸으로 막으려다 몸에 균형을 잃어 본의 아니게 태클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 즐라탄 문서는 여러 차례 관리되어서 시각이나 주장이라는 애매한 용어를 사용하나, 굳이 이 용어에 맞춰서 설명해 주자면 즐라탄 팬페이지 같은 곳을 제외한 다른 인터넷 축구 공간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면 십중 팔구의 확률로 빼도 박도 못한 고의라는 것으로 중지가 모아진다. 가장 큰 증거는 라파엘 본인이 즐라탄을 원수처럼 여기고 있으며 수차례나 고의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축구 선수들은 흔히 접촉이나 타격이 일어난 순간 상대방이 자신을 고의로 타격한 것인지 고의가 아니었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하는데 그 라파엘 본인이 확신하고 있는 것이 가장 결정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으며, 라파엘의 증언을 빼고 생각해 봐도 좀 심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건 이후 즐라탄과 원수가 된 라파엘 판데르파르트는 급기야는 이런 짓까지 하였다.[66] 다만 최근에는 미승인 슈퍼카를 운전하다 걸려 벌금을 물었다.[67] 출처는 영어 위키백과[68] 두 팀 모두 저 문제들이 2022년에도 현재진행형이고 맨유 선수단의 프로의식, 태도, 전반적인 인성 문제 등은 즐라탄이 떠난 2018년과 비교하면 훨씬 더 심각하면 심각하지 덜하지 않다. 2022년 현재 맨유는 다른 클럽 관계자들과 팬들에게 웃음거리로 전락했고 어떻게 팀을 운영하면 안되는지 보여주는 최고의 반면교사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69] 유행을 타게 된건 최근이지만 즐라탄 드립은 그 이전에도 사용하긴 했다.[70] 한발잡이들이 눈에 보이는 능력치는 양발잡이보다 높지만 게임 플레이에선 윙을 제외하곤 양발이 훨씬 좋다.[71] 이 조합은 당시 모든 축구 게임을 통틀어 최강의 공격 듀오로 유명했다. 특히 프로 에볼루션 사커에서 그 명성에 정점을 찍었다.[72] 다만 FM 2006은 선수 능력치와 기록 인플레가 굉장히 심했던 버전임을 감안해야 한다.[73] 클래식 팀까지 포함시키면 최고의 사기 캐릭터는 루드 굴리트다. 스피드는 호날두에 비해 느리지만 성능은 즐라탄+야야투레+다니 아우베스를 믹스시켜 놓은데다 포지션은 골키퍼, 센터백 제외하고 전부 파란 불이 켜진다. 마라도나가 초급자부터 상급자까지 가장 쓰기 쉬운 사기 캐릭터이지만 유틸성은 시궁창이라 마라도나가 죽어버리면 클래식 아르헨은 현역 아르헨보다 못한 팀이 되버린다.[74] 메시의 특성이기도 하다. 대신 마라도나 마냥 수비진을 이리저리 휘저을 수 있다. 호날두에 비해 상급자용 캐릭터[75] 위닝 시리즈가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피파 마냥 개인기량(특히 속도)에 의존하는 경향이 생겨서 디디에 드록바같은 속도가 어정쩡한 피지컬 플레이어는 상급자용 캐릭터가 돼버렸다.[76] 이 경우엔 루카 토니, 앤디 캐롤,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해당된다.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경우엔 즐라탄 마냥 만능이지만, 즐라탄에 비해 능력치가 다소 어정쩡하다.[77] 일반적인 유저들의 생각과 다르게 n카는 n-1~n시즌 성적과 n~n+1시즌 소속팀을 기반으로 만든다. 즉 11즐라탄은 AC 밀란이 우승한 10~11시즌의 성적을 기반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즐라탄 개인의 성적은 11~12 시즌(PSG 소속으로 되어있던 12즐라탄)보다 나빴는데 카드 성능은 11이 훨씬 좋다.[78] 이쪽은 드리블을 특이하게 하지만 구현은 역시 못하고 그냥 드리블이 빠르고 개인기가 높은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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