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마 이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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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제6대 국왕
祗摩 尼師今 | 지마 이사금

파일:지마왕릉.jpg
지마왕릉 전경.
출생
(음력)

연대 미상
사로국 서라벌
사망
(음력)

134년 8월
사로국 서라벌
능묘
지마왕릉
재위기간
(음력)

신라의 태자
연대 미상 ~ 112년 10월
제6대 이사금
112년 10월 ~ 134년 8월 (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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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밀양 박씨

지마(祗摩) / 지미(祗味) / 기미(祇味)
부모
부왕 파사 이사금
모후 사성부인
왕후
애례부인 김씨
자녀
왕자 박원랑, 박아도, 박이비[1]
왕녀 박내례
왕호
지마 이사금(祗摩 尼師今)


1. 개요
2. 생애
3. 기타
4. 《삼국사기》 기록



1. 개요[편집]


신라의 제6대 군주. 칭호는 이사금.

제5대 파사 이사금의 아들이다. 왕비는 마제(摩帝) 갈문왕의 딸 애례부인(愛禮夫人) 김씨였다.


2. 생애[편집]


신라 초기는 아직 장자 계승이 확정되지도 않아 왕위 순서가 복잡한데 박지마는 아버지 파사 이사금의 태자로서 비교적 순조롭게 성장할 수 있었다. 박지마가 애례부인 김씨를 얻은 일화가 고대의 국왕치고는 비교적 자세하게 남아 있다. 그가 아직 태자이던 시절, 아버지 파사 이사금과 호숫가에서 사냥을 즐기고 돌아오는 길에 한기부에 들렀는데 허루(許婁)라는 사람이 잔치를 열어 대접했다. 술기운이 오르자 허루는 어린 딸에게 나와서 을 추게 했는데 파사 이사금과 태자 지마에게 잘 보이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김씨 성을 가진 마제(摩帝)라는 사람도 딸을 춤추게 했는데 태자 박지마는 오히려 마제의 딸을 마음에 들어했고, 반면 허루의 딸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아랫사람의 딸이 오히려 태자의 관심을 받자 허루는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이걸 뒤에서 보던 파사 이사금이 마제의 딸은 태자의 비로 삼고, 마제의 상급자인 허루는 멋진 연회를 열어준 공으로 대신 더 높은 관직을 줘서 위로했다는 것이다.

재위 기간 동안에는 즉위하자마자 일단 백제에는 사신을 보내 동맹을 맺고, 주로 덤비는 가야를 공격했다. 먼저 115년 2월 가야가 남쪽 변방에 쳐들어와 노략질하자 그 보복으로 115년 7월 친히 병력을 이끌고 황산하[1]를 건너 가야를 공격했지만 숲에서 가야군 복병을 만나 몇 겹으로 포위당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1년 뒤인 116년 8월에는 부대를 둘로 나눠 10,000명 이상을 동원해 다시 친정했지만 이번에는 가야가 성문을 닫고 우주방어를 하는 통에 장마까지 와서 별 소득없이 군사를 되돌리기도 했다. 동해를 건너오는 왜군의 침략에는 주로 당하는 편이었다. 121년 4월에 가 동쪽 변경을 침략했고, 122년 4월에는 왜가 쳐들어온다고 하는 소문서라벌 사람들이 모두 골짜기로 튀어버려서 왕이 일일이 사람을 보내 헛소문이라고 내려오라고 하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123년 3월에 결국 왜와 화친해 이 때부터는 거의 80년 가까이 왜군이 신라에 쳐들어오는 기록이 없어진다. 왜에서 히미코여왕에 올랐을 때 신라는 다다음 왕인 아달라 이사금(제8대)이었으니 중국 측 기록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참고하면 지마 이사금 때가 대강 히미코가 등장하기 전에 있었다는 일본 열도의 혼란기였기 때문에 내부 사정이 복잡해 대한해협 건너편까지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왜국과 화해한 후에는 그동안 별 일이 없었던 북방의 말갈족이 자주 쳐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이 말갈은 훗날 여진족, 만주족으로 이어지는 퉁구스계 부족이 아니라, 실제로는 지금의 강원도 지역에 분포하던 동예 계통 집단으로 추정되고 있다. 위말갈 문서 참조. 아무튼 이들이 125년 1월과 7월에 두 번 쳐들어와 약탈을 하자 백제 왕에게 지원군을 요청해 이들을 물리치기도 했다. 이렇게 백제와는 사이가 좋았던 편이었다.

134년 8월에 죽었는데 자식으로는 딸인 아달라 이사금의 왕비 내례부인(內禮夫人)만 있었다. 그래서 지마 이사금의 큰아버지인 일성 이사금이 다음 군주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역사학계에서는 일성 이사금이 지마 이사금의 큰아버지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2]고 보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3]

이름 말고는 특이한 점이 없고, 천재지변이 있었다. 황충, 서리, 우박, 홍수, 가뭄, 전염병, 화재, 지진이 모두 하나씩 골고루 발생했다. 그 외에 일식혜성의 기록도 몇 차례 있다. 참고로 지금이야 단순한 천문 현상인 것을 다들 알지만 전근대 시대에는 동양서양을 막론하고 일식과 혜성이 별로 좋지 않은 징조로 여겨졌다.[4]

참고 자료: 위키백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3. 기타[편집]


  • 본관이 밀양 박씨이므로 본명은 박지마[5], 사후 왕으로 추존된 그 아들은 박아도이다.[6] 신라 제8대 군주의 본명 박아달라와 함께 묘한 어감을 주는 이름이다.


4. 《삼국사기》 기록[편집]


삼국사기(三國史紀)

[ 본기(本紀) ]
1권 「신라 1권 (新羅 一)」
2권 「신라 2권 (新羅 二)」
박혁거세 · 박남해 · 박유리 · 석탈해 · 박파사 · 박지마 · 박일성
박아달라 · 석벌휴 · 석내해 · 석조분 · 석첨해 · 김미추 · 석유례 · 석기림 · 석흘해
3권 「신라 3권 (新羅 三)」
4권 「신라 4권 (新羅 四)」
5권 「신라 5권 (新羅 五)」
김내물 · 김실성 · 김눌지 · 김자비 · 김소지
김지대로 · 김원종 · 김삼맥종 · 김사륜 · 김백정
김덕만 · 김승만 · 김춘추
6-7권 「신라 6-7권 (新羅 六-七)」
8권 「신라 8권 (新羅 八)」
9권 「신라 9권 (新羅 九)」
김법민
김정명 · 김이홍 · 김융기
김승경 · 김헌영 · 김건영 · 김양상
10권 「신라 10권 (新羅 十)」
11권 「신라 11권 (新羅 十一)」
김경신 · 김준옹 · 김청명 · 김언승 · 김수종 · 김제융 · 김명 · 김우징
김경응 · 김의정 · 김응렴 · 김정 · 김황 · 김만
12권 「신라 12권 (新羅 十二)」
13권 「고구려 1권 (高句麗 一)」
14권 「고구려 2권 (高句麗 二)」
김요 · 박경휘 · 박승영 · 박위응 · 김부
고주몽 · 고유리
고무휼 · 고색주 · 고해우
15권 「고구려 3권 (高句麗 三)」
16권 「고구려 4권 (高句麗 四)」
17권 「고구려 5권 (高句麗 五)」
고궁 · 고수성
고백고 · 고남무 · 고연우
고우위거 · 고연불 · 고약로 · 고상부 · 고을불
18권 「고구려 6권 (高句麗 六)」
19권 「고구려 7권 (高句麗 七)」
20권 「고구려 8권 (高句麗 八)」
고사유 · 고구부 · 고이련 · 고담덕 · 고거련
고나운 · 고흥안 · 고보연 · 고평성 · 고양성
고원 · 고건무
21-22권 「고구려 9-10권 (高句麗 九-十)」
23권 「백제 1권 (百濟 一)」
고장
부여온조 · 부여다루 · 부여기루 · 부여개루 · 부여초고
24권 「백제 2권 (百濟 二)」
부여구수 · 부여사반 · 부여고이 · 부여책계 · 부여분서 · 부여비류 · 부여계 · 부여구 · 부여수 · 부여침류
25권 「백제 3권 (百濟 三)」
부여진사 · 부여아신 · 부여전지 · 부여구이신 · 부여비유 · 부여경사
26권 「백제 4권 (百濟 四)」
27권 「백제 5권 (百濟 五)」
28권 「백제 6권 (百濟 六)」
부여문주 · 부여삼근 · 부여모대 · 부여사마 · 부여명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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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3권 「열전 1-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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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권 「열전 5권」
46권 「열전 6권」
을파소 · 김후직 · 녹진 · 밀우 · 유유 · 명림답부 · 석우로 · 박제상 · 귀산 · 온달
강수 · 최치원 · 설총 · 최승우 · 최원위 · 김대문
47권 「열전 7권」
해론 · 소나 · 취도 · 눌최 · 설계두 · 김영윤 · 관창 · 김흠운 · 열기 · 비녕자 · 죽죽 · 필부 · 계백
48권 「열전 8권」
향덕 · 성각 · 실혜 · 물계자 · 백결선생 · 검군 · 김생 · 솔거 · 지은 · 설씨 · 도미 · 필부
49권 「열전 9권」
50권 「열전 10권」
창조리 · 연개소문
궁예 · 견훤




《삼국사기》 <지마 이사금 본기>

一年冬十月 지마 이사금이 즉위하다
二年春二月 시조묘에 제사지내다
二年春三月 백제가 사신을 보내오다
三年春三月 우박보리를 상하게 하다
三年夏四月 큰 비가 내린 뒤 사면을 단행하다
四年春二月 가야가 남쪽 변경을 침범하다
四年秋七月 가야를 친히 정벌하다가 황산하에서 퇴각하다
五年秋八月 가야를 치다가 큰 비 때문에 중단하다
九年春二月 큰 별이 월성 서쪽에 떨어지다
九年春三月 서울에 전염병이 돌다
十年春一月 이찬·파진찬·아찬을 임명하다
十年春二月 대증산성을 쌓다
十年夏四月 왜인이 침입하다
十一年夏四月 왜군의 침공 소문으로 도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十一年秋七月 메뚜기 피해로 기근이 들다
十二年春三月 왜국과 강화를 맺다
十二年夏四月 서리가 내리고 금성 동쪽의 백성들 가옥이 연못으로 변하다
十三年秋九月 일식이 일어나다
十四年春一月 말갈이 북쪽 변경을 침입하다
十四年秋七月 말갈의 침입을 백제의 도움으로 물리치다
十六年秋七月一日 일식이 일어나다
十七年秋八月 꼬리가 긴 살별이 하늘에 뻗치다
十七年冬十月 지진이 일어나다
十七年冬十一月 천둥이 치다
十八年 파진찬 옥권을 이찬으로 삼다
二十年夏五月 홍수로 가옥이 떠내려가다
二十一年春二月 궁궐의 남문이 불타다
二十三年夏六月 봄과 여름에 가물다
二十三年秋八月 왕이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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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의 낙동강 하류,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으로 추정.[2] 일성 이사금 문서에서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만 나이 차이 문제로 삼촌이 아니라 실은 중간에 한 사람이 빠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학자들은 본다.[3]족보》에는 지마 이사금에게 아들손자가 있다고 나오는데 여기서 손자로 나오는 박아도는 그와 관계된 설들이 복잡하여(그 중 하나가 일성 이사금의 아버지라는 것) 문제가 있다. 어쨌든 역사학계에서는 지마 이사금에게 아들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4] 서양에서 이런 미신이 깨진 것도 16세기나 되어서였다. 에드먼드 핼리 문서 참조.[5] 祗은 '기'로 읽혔으므로 박기마, 박기미. 신라의 옛 촌장 지타는(祗陀) '지타'(只他)로도 쓰는데 只는 예전에 '기'로 읽혔다.[6] 경상도 사투리 반영.